5월 늦봄은 필름 현상하기 가장 좋은 계절이다.
흑백필름은 현상방법이 간편하고 현상약품의 독성도 상대적으로 약한 편이라 보통 집에서 직접 하는 경우가 많다.
현상할 때 보통 참고로 하는 온도는 20도이다.
현상액, 정착액 등 필름 현상을 위한 약품을 필름에 접촉시키는 시간을 각 제조회사에서는 20도의 온도를 기준으로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름이나 겨울은 이 20도를 맞추기가 쉽지 않다.
20도를 웃돌거나 밑돌면 그 온도를 맞추는 데 적게는 5분, 크게는 30분까지 온수나 얼음으로 인내심을 갖고 수온을 조절해야 한다.
하지만 5월 전후의 늦봄에는 수돗물을 받으면 그 자체가 그대로 20도이다.
그래서 수온을 맞추기 위한 인고의 시간을 감내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게다가 봄은 가장 활기찬 계절이 아닌가.
어두운 겨울을 지나고 맞는 봄은 무척이나 밝다.
나는 요즘 저녁 6시, 7시가 되어도 감도 100짜리 필름으로 조리개 8에 맞추고도 촬영이 가능한 셔터 스피드를 확보할 수 있다는 것에 적잖이 놀란다.
언제나 겨울을 지나면 봄이 오기 마련인데 올해는 유독 이 봄의 축복에 놀라는 중이다.
그러나 역시 게으름이 문제이다.
나는 사람들이 가장 열정적으로 사진 생활을 즐기고 있을 봄이라는 계절에 게으름이라는 병을 앓고 있는 것 같다.
1주일에 한 롤이라는 최소 필름 소모량을 훨씬 밑돌고 있다.
피사체를 쉼없이 찾아다니는 부지런함을 요즘 내게서는 찾기 힘들다.
아무리 생각해도 슬럼프라는 것은 게으름의 다른 이름인 것 같다.
피사체를 찾아 발품을 파는 일, 사물을 관찰하고 프레임을 구성하는 일, 또는 필름을 현상하고 말리고 또 인화 또는 스캔하는 일, 더 비약하자면 내 세계관을 고민하는 일에 게을러지는 그 순간이 바로 슬럼프인 것이다.
지금 참 오랜만에 또 현상을 하고 있는 중이다.
내 일상에서 게으름을 조금씩 물러내야 할 시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실행에 옮기는 데 게을러져서는 안되는데…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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