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은 자연스러운 내 욕심에서 사진을 찍는 게 아니라 전시회를 앞두고 업데이트된 사진이 필요하다는 강박관념에서 찍다 보니 안 그래도 그러한 사진들이 더욱 강박관념만 보이고 있다. 게다가 나도 사진으로 이미지를 탐닉, 남용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굳이 이렇게까지 찍을 필요는 없는 것이다. 어느 정도 내게도 사진은 일상생활의 잉여, 과잉이다. 그리고 이 과잉이 내 일상을 지탱해 줄만큼 내 생활도 보잘 것 없다. 동호회의 몇몇이 농담반 진담반 말하는 것처럼 내가 작가라고 보기에는 사실 나는 대단치 않다. 그러나 창작활동을 하는 이들은 모두 작가라고 할 수 있다. 누구나 언젠가는 이 단계를 넘어 고유함을 찾아내고야 말겠다는 욕구가 있지 않겠는가. 사진을 찍는 동안은 이 욕구를 열심히 따를 필요가 있다. 진실로 고유한 작품은 그 자체가 대안세계를 제시하는 것이고 그만큼 세상은 더 나아질 가능성을 넓혀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고유함의 기회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 사진을 탐닉, 남용하면서 영화를 소홀히 하는 것 같다. 정확히 말하면 영화를 보면서 생각하려고 들지 않는 것 같다. 언제는 영화를 보면서 참신한 생각을 해 보았겠냐마는. 오남용의 부작용인가? 조금이라도 영화의 이미지를 부여잡고 생각할 필요가 있다. 더불어 책도 좀 읽어야 한다. 몇 년째 열 권 가량의 책을 한 켠에 마음의 짐처럼 쌓아두고만 있다. 스스로에게 생각할 여유를 줄여가고 있는 것 같다.
– 최근 한국에서 분신이, 미국에서 살인이 있었다. 이 두 큰 일은 비교우위가 모든 것을 취하라는 자본주의의 all or nothing 명제가 가져오는 결과를 보여주는 것 같다. 우위는 언제나 열위를 파괴하고 있고, 열위는 결국 자신을 파괴하거나 분노를 응축시켜 모두를 파괴하고. all or nothing의 연쇄와 증폭. 둘 다 그럴 필요는 없지만 그래야만 하도록…분노와 우울은 전염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