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티조선 우리모두 문화칼럼
김영하, 문학권력, 지식인
“나는 지식인으로 교육받았으며 지식인으로서 생각하고 지식인으로서 산다.” 소설가 김영하가 어느 칼럼에서 한 말이다. 지식인 문제가 화두로 등장한 현실을 감안해 볼 때, 김영하의 이러한 발언은 일단 흥미롭다.
한 인터뷰어가 그에게 물었다. <조선일보>에 대한 생각은? “조선일보에는 별 감정이 없다.” “조선일보의 실제적 파급효과는 없다고 본다.” <조선일보>에 대한 자의식이 없다는 이야기다. 사실 문인들 중에는 이런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뭐 여기까지야 그냥 넘어가자. 문제는 그 다음인데, 그렇다면, 소위 ‘최장집 사태’는 무엇이고, 시도 때도 없이 등장하는 ‘색깔론’은 무엇이며, 동인문학상을 둘러싼 논쟁은 다 무엇이었나.
다시 인터뷰어가 물었다. ‘문학권력 논쟁’에 대한 생각은? “문학권력 논쟁은 전형적인 가짜 문제라고 생각한다.” “단순한 결정론적 시각으로 빚어낸 아주 지루한 논쟁이라고 생각한다.” 논리적 ‘분석’은 없고 감정적 ‘반응’만 드러난다. 그나마 분석의 예로 드는 것이, 출판시장은 완전 경쟁시장이다, 모든 출판사가 좋은 작품을 찾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다와 같은 주장이다. 그러나 주장이 설득력을 갖기 위해서는 보충되어야 할 것이 있다. 완전경쟁 시장처럼 보이는 출판시장 역시 실제로는 ‘과점체제’이며, 좋은 작품보다는 ‘잘 팔리는’ 작품이 선호의 대상이라는 것. 거기에 다양한 형태의 문화적 위계와 심지어는 연고주의까지 작동된다는 것.
드라마 <아줌마>에 대한 그의 비판 역시 언급해야 할 것 같다. 김영하는 이 드라마가 “1930년대 소비에트 사회주의 선동극이 아닌 바에야”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민중의 무오류성과 위선적인 지식인을 단순 대비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물론 일리는 있다. 그리고 하는 말이, 민중은 지식인보다 영악하며, 지식인은 장진구 보다는 훨씬 교활한 존재라는 말을 덧붙이고 있다. 일견 그럴 듯해 보이지만, 김영하는 이 드라마의 ‘풍자성’을 ‘현실성’으로 착각하는 결정적인 우를 범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공자도, 유비도, 예수도 한때는 장진구였다는 김영하의 정색을 한 풍자는 전혀 맥락이 통하지 않는 발언이다.
김영하는 자신을 ‘이야기꾼’이 아닌 ‘지식인-작가’라고 주장하고 있는 셈인데, 그렇다면 자신의 발언에 대한 사회적 책임과 지식인의 정체성에 대한 더욱 ‘정교하고 세련된’ 자의식 역시 갖추어야 하지 않을까. 김영하의 주장처럼 지식인이 ‘사회적 잉여’인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이 놀기 좋아하는 ‘사회적 잉여들’에게 때때로 ‘현실권력’은 물론 ‘상징권력’까지 주어지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개인의 발언을 공적인 발언으로 전환시키는 ‘의제설정권’이 현실 속에서, 여전히 지식인들에게 집중되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거기에는 ‘시스템의 마술’이라는 문제가 잠복되어 있다.
그러므로, 그가 진정으로 ‘지식인’이기를 자처하고자 한다면, “조선일보에는 별 감정이 없다”는 하나마나 한 발언이나, “나는 <아줌마>가 싫다”는 식의 즉물적인 반응의 문제성에 대해서도 곰곰이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