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은 개인이 사회의 표준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가족 수준에서 규율하는 장치다.
실은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 표준을 지키지 못하고 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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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도 마찬가지다.
아버지는 항상 마이너스 운영을 하는 노래방을 건사하기 위해 낮밤이 바뀐 생활로 명절을 제대로 지낼 수가 없다.
사회적으로는 영향력을 발휘하더라도 경제적으로는 유능하지 않으니 가족 내에서의 권력은 이미 휘청한 지 오래다.
어머니는 지금까지 한번도 전업주부인 적이 없었고 지금도 생계를 위해 공장 기능직으로 일을 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우리 부모가 생각하듯 남자 나이 서른에 결혼해야 한다는 표준에서 완전 벗어나 있고 현재 변변한 직업도 없는 자발적 실업 상태다.
그나마 내 동생이 그 표준과 흡사한 모습의 삶을 살고 있지만, 박봉의 케이블 방송사에서 뺑이 치고 있고, 물론 결혼을 못했다.
– 나이 서른 이전에는 결혼해야 한다는 어른들(적어도 내 부모)의 표준은 이미 표준이 아닌 것이 되고 있다 –
이와 달리 어떤 집은 가족 내 또는 가족간(친척들 사이) 화목을 찾아보기 힘들 수도 있고, 어떤 집은 부모자식 구성원 자체가 온전치 못할 수도 있고 등등…
어쨌든 어느 집이나 이런 식의 결핍이나 부족은 존재하기 마련인데, 문제는 이를 그대로 인정하거나 이해하기보다 이상적이고 표준적인 어떤 형태에 목매달고 서로 남걱정해 주는 데 인색하지 않다는 것이다.
남걱정, 이건 한국인들의 표준에 대한 강박, 달리 말하면 다른 형태의 삶에 대한 배타성을 드러내는 가장 흔한 예이다.
그리고, 명절은 이 남걱정으로 서로가 하나되는 중요한 기회다.

_M#]이 규율을 수행하기 위해 한국인들은 수백 킬로미터를 수천만이 일시에 이동하는 기이한 의식을 행한다.
나도 지금 이 의식을 치르기 위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대구에 내려왔다.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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