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욱의 스타일은 수식이 많은 것 같지만 본질적으로는 무뚝뚝하다. 이미 출간된 동명 소설을 읽어보면 현상현 신부와 태주의 관계, 그들이 흡혈귀와 팜므파탈로 만나 치정극의 얼개를 짜는 것이 그리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이 스토리가 영화로 옮겨지면 박찬욱은 이야기의 얼개를 짜는 것보다는 단속적이고 폭발적인 인상들에 훨씬 집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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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중에서도 압권은 영화의 클라이맥스에서 상현의 본격적인 흡혈 행위를 보여줄 때다. 3분 넘게 지속되는 이 장면에서 상현 역의 송강호는 어떤 흡혈귀 영화에서도 보여주지 못한 격정적인 행동을 이어간다. 물리적인 표면의 극한까지 파고드는 이런 것이 박찬욱 연출의 진심이다. 슬프게 탐닉하는 행위, 짐승처럼 헐떡거리면서 상대의 육체를 남김없이 핥고 빨며 다시 수혈해주는 동류의 행위, 타락하면서 제어할 수 없지만 궁극에 파멸로 귀결될 것임을 아는 행위, 이런 장면의 물리적 직접성이 연출자에게는 캐릭터 묘사를 대치하는 것이다. 나는 불편하면서도 쾌락적인 이런 장면에 어떤 낭만적인, 또는 감상적인 윤기를 입히지 않은 것이 박찬욱 영화의 본령이라고 생각한다.

– 씨네21 <김영진의 점프컷 – 그게 박찬욱의 예술적 자유다> 중

박찬욱의 영화를 볼 때마다 과시적인 스타일이 이야기와 신화, 흥미로운 영감들을 갉아먹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나는 바로 그 때문에 박찬욱의 영화를 본다. 박쥐는 절제와 이타심이 욕망과 이기심과 충돌하는 이미지를 격렬하게 표현한다. 박찬욱은 어쩌면 화가나 사진가의 욕심을 갖고 있는 감독인지도 모른다. 이미지로 서사를 종결짓고 싶어 하는 것 같은 욕심을 나도 조금은 느끼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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