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략) 이러한 면이 번역과 원문의 관계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를 알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비유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마치 접선이 원을 살짝, 그것도 단지 한 점만을 건드리고 또 이러한 건드림이 무한대의 직선으로 이어지는 접선의 법칙을 규정하는 것처럼, 번역 역시 살짝, 그것도 단지 의미의 무한히 작은 점들만을 건드림으로써 언어적 움직임의 자유 속에서 충실성의 법칙에 따라 그 스스로의 고유한 길을 추적하는 것이다….’

Walter Benjamin <번역가의 과제> 중에서

그의 비유는 무한한 상상력의 영역을 건들면서 그가 말하는 순수한 언어의 영역에 우리 영혼의 직선이 살짝 접하도록 해 준다. 그가 말하는 아우라가, 또는 시각의 무의식적 세계가, 또는 역사적 유물론이 신학과 만나면서 밝아오는 구원의 가능성은 이처럼 잠시 원을 스쳐 지나가기만 하는 하나의 접선이 그 일회적이지만 영원한 순간을 기억하면서 나름의 길을 가는 것과 같다. 그 순간은 결코 머무르지 않으며 섬광처럼 지나갈 뿐이다. 그가 멜랑콜리한 것은 인간은 결코 그 원을 ‘획득’할 수 없기 때문이며 살짝 스쳐 지나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멜랑콜리커의 노스탤지어는 결코 퇴행적이지 않다. 과거가 아름다웠다고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가 원에 접하지 못했음을, 비상사태가 진정한 비상사태가 되지 못했음을, 실패와 패배 속에서 나타나는 바로 앞의 원과 접할 수 있었다는 것의 증명 속에서 쓸쓸히 현재를 과거와 연관시키는 감성으로서 노스탤지어를 지닌다.
과거가 아름다웠다고 느끼는가? 그것은 과거가 너무나도 추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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