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을 넘어, 월장 그 이후를 이야기하자
나의 경솔한 비판에 대한 사과
대자보에 첫 번째로 올린 글은 월장의 기사 파동 사건을 본 직후였다. 그때 당시의 감정은 월장의 대학생들에 대한 “그 멍청함. 그 경솔함”그 자체였다 그 이후 24시간 동안 우리모두 쟁점 게시판에서 진중권님을 비롯한 여러 사람들과 이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면서 여러 가지를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진중권님과 미둥님을 비롯한 여러 사람들에게 나의 생각을 순화할 수 시킬 수 있는 기회를 준 것에 대해 이 자리를 빌려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물론 앞으로 인용을 할 정문순님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혹시라도 마음의 상처를 받았을지 모르는 월장의 멤버들에게도 진심으로 사과드린다.
내가 갖고 있던 답답한 생각은 군가산점제 논란 이후부터였다. 그 당시 나는 2개월 동안 흔히 말하는 사이버마쵸들에 대한 비판글을 써댔다. 그건 대자보에도 게시되어 있을 것이다. 그 사이버 마쵸들에 대한 나의 감정 역시 “그 멍청함, 그 경솔함”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이후이다. 그 사이버 마쵸들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외계인들이 아닌 이상 진보진영이 애지중지하는 평범한 일반 소시민이 아니겠는가? 그럼 일단 사이버 마쵸들의 천박한 행태에 대해 비판을 했다면 그 이후부터는 “저들이 왜 저럴까?” 이런 분석적 사고가 동반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그건 그들의 잘못에 대한 단죄와는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어떤 사람이 살인을 저질렀다면 그는 당연히 법적 처벌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진보진영의 지식인들이나 운동가라면 그와 비슷한 환경에 처한 사람이 살인을 저질렀을 때, “이것 구조적으로 봐야 하는 것 아니야?” 이 정도의 생각은 해줘야 한다. 그러나 불행히도 군가산점제 논쟁에 대한 여성주의 쪽의 사후토론 글을 봐도 그런 것은 없었다. 여전히 사이버 마쵸들에 대한 두들겨패기만을 강조하고 있었다. 내가 월장의 기사에 대해 갖고 있던 불만도 이것이었다. 처음도 아니고 이미 다 같이 국가주의의 억압에 대해 저항할 수 있는 저항세력 혹은 소시민들끼리 치고받으며 큰 홍역을 치룬 이후에 왜 또 다시 그와 똑같은 수준의 기사를 올려대냔 말이다. 뭐라도 좀 배웠어야 하는 것 아닌가?
군필자에 대해 진솔된 대화가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모두 게시판에서 여러 사람들과 토론을 한 끝에 그건 내가 너무 무리한 기대를 했다는 반성을 하게 된다. 한국 사회에서 군대에 대해 제대로 토론을 해본 적은 없었다. 군가산점제 토론에서 수많은 네티즌들이 올린 폭력성 글의 행간에서 그 의미를 찾아보라고 요구하는 건 최소한 그 문제에 관해선 피해자라고 생각하는 여성주의자들에겐 무리였다. 그렇다면 군필자들의 의식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고 판단하는 나라도 나서서 더 친절하고 성실하게 그들의 생각을 전달할 필요가 있었다. 나의 첫 번째 글은 그 점에서 부족했던 것이다.
여성들이 군대에 대해 제대로 들을 수 없다는 건 군필자들의 자업자득이나 마찬가지이다. 군대에 대해서 똑바로 이야기를 안 하니까 자꾸 오해가 생기는 것이다. 나만 해도 같은 군필자들끼리 이야기해보면 거의 다 공수특전부대 출신인양 떠들어대는 말을 듣는 게 전부이다. 물론 나야 그 말을 죄다 행간으로 읽어낸다.
“내가 설악산을 10번을 오르내리고, 상륙작전을 20번 정도 해봤어.” 이런 말을 하는 군필자가 있다면 여성들은 “되게 잘난 척하네.” 이렇게 생각하는 반면 나 같은 경우는 “뭔가 많이 잃어버렸구나.” 이렇게 돌려 생각해준다. 또한 “나는 조국을 위해 충성을 다했어.” 이렇게 이야기하는 군필자가 있다면 여성들은, “저런 국가주의의 화신.” 이렇게 생각하겠지만 나는 “국가로부터 아무 것도 받지 못했구나.” 이렇게 반대로 생각하게 된다. 그건 내 자신부터 그렇기 때문이다.
“왜 이걸 이해 못해줄까?” 투덜거리기 전에 이런 문제들에 대해 이야기할 기회가 없었다는 점부터 미리 파악했어야 했다. 그래서 이미 사이버 테러가 벌어졌고, 여러 사람들이 그에 대한 응징을 하고 있으니 나는 앞으로 그런 일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군대와 군필자에 대한 솔직한 내 생각을 적어볼까 한다. 다음부터 군필자에 대해 패러디를 하든 뭘 하든 이 점을 염두에 두었으면 한다. 이 글에서 정문순씨의 글을 비판하려는 건 아니지만 정문순씨가 갖고 있는 군필자들에 대한 오해를 풀어주기 위해 필요한 경우 그의 글을 직접 인용해보겠다.
군필자들은 사회적 기득권 세력이 아니다.
가장 많은 오해가 빚어지고 있는 건 군필자들이 사회적 기득권 세력 혹은 국가의 대리인이라는 생각이다. 그건 다시 말하지만 정치인, 언론사 사주, 재벌 아들일수록 군면제 비율이 높다는 말로 대신하겠다. 군대가 기득권을 보장해준다면 왜 사회 기득권층일수록 군대를 더 기피하려 할까? 서울대 기득권이 있다는 증거는 대부분의 학생들이 서울대에 가고 싶어 한다는 데에서 증명된다. [조선일보」 기득권이 있다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조선일보」에 글을 쓰고 싶어하는 데서 증명된다. 그런데 군대는 그런 게 아니지 않는가? 대학에서만 해도 군대에 빠지려는 사람이 가려는 사람보다 훨씬 더 많고, 심지어 편법적으로 군대를 기피하는 자에 대해서도 어떠한 비난도 가해지지 않는 게 현실이다. 그리고 많은 예비역들이 바로 이런 점에서 분노를 하고 있는 것이다. 왜 자신들에게 주어진 의무를 다했는데 오히려 그 의무를 저버린 사람 보다 더 정당한 대우를 받을 수 없냐는 말이다. 그러니 정문순씨의 이런 오해도 이제 그만되었으면 좋겠다.
“마초 예비역들이 자신들을 군사문화의 피해자라고 명명하는 것도 모순이다. 그들이 피해자라고 자각하는 순간, 군사문화의 부정적인 면모를 인정하는 셈이 되며, 여성 등 군대 경험이 없는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모습이 부정적으로 비쳐왔음을 동시에 인정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애초에 죄 없는 자신들을 매도하지 말라고 난리를 칠 이유도 없는 것이다.”
그건 모순이 아니다. 군필자들이 자기 자신들을 피해자로 느끼는 결정적인 이유는 군사문화의 피해자라는 게 아니다. 그보다는 왜 2년 2개월 동안 죽도록 노가다 뛰고 왔는데 한 달에 만 원 정도의 보상밖에 받을 수 없는지, 그 잃어버린 시간에 대한 피해를 입었다는 것이다. 물론 그 이전에 강제로 끌려갔다는 것에 대한 불만도 빼놓을 수는 없다. 그건 내 자신의 경험으로 간단하게 증명할 수 있다. 나는 매우 합리적인 시스템에서 군생활을 할 수 있었다. 오히려 배째라 문화에 집단 떼거리 문화가 팽배한 대학보다도 훨씬 더 선진적인 문화였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그 2년 동안 노동한 대가가 없다는 점에서 피해의식을 갖고 있다. 그러니 앞으론 이런 것도 좀 조심해주면 좋겠다.
“그들은 자신의 목숨을 걸고 나라를 지켜주었으니 군에도 가지 못한 허약한 자들을 상대로 독점적 권력을 누리는 것은 당연하다는 의식이 있다. 군 복무는 건강한 남성들이 제대 후에 사회에서 누릴 특권을 보장받기 위해 치르는 한시적인 희생 제의이자, 분단을 빌미로 병영적 사회질서를 유지하려고 하는 국가와 정치적 다수자 남성들의 소극적 공모라는 측면도 살펴야 한다.”
일단 제대 후에 누릴 특권은 없다는 점을 제발 좀 인정하자. 그런 특권을 놔두고 이회창 아들이 군대를 왜 안 갔겠는가? 대통령의 아들이 될 사람들인데. 100번 이야기해도 안 들어주니까 답답하다는 거다. 그리고 군필자들이 갖고 있는 도덕적 우월감은 다른 게 아니다. 샐러리맨은 자신들이 자영업자에 비해 세금을 더 많이 낸다는 것에 대한 피해의식과 함께 도덕적 우월감을 갖고 있다. “너희는 치사하게 세금 다 떼어 먹지만 우리는 정정당당히 다 낸다.” 이런 것 말이다.
군필자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나는 예비역 병장이다.” 이런 말을 하는 건 군대를 가지 않는 여성들이나 장애인에 대한 우월감이 아니라 온갖 편법을 동원해 다 빠져나가는 사회 기득권층에 대한 도덕적 우월감이 더 크다. 설사 이런 도덕적 우월감이 일부 군필자들이나 갖고 있는 생각이라 할지라도 앞으로의 문제해결을 위해선 이런 점을 강조해줘야 한다. 그래야 정작 우리가 화살을 날려야 할 병역비리 문제로 군필자들의 분노를 돌려놓을 수 있지 않겠는가? 지금 병역비리가 터져나오는 시점에서 군필자들이 월장의 여대생들과 한판 하는 게 무슨 꼴인가? 자꾸 최악의 군필자를 상정해서 두들겨 패버리면 병역비리자에 대한 도덕적 판단 잣대를 잃어버리게 된다. 벌써 대학에서는 편법적 불법자가 군기피자가 정당한 군필자보다 더 대접을 받고 있다. 그리고 그런 편법적 불법적 군기피자가 “군대는 마쵸들의 집단이다.” 이렇게 호통을 치기도 한다. 이런 엿같은 경우가 다 있는가? 그러니까 역시 이 말도 수정되어야 하다.
“만약 그들이 진정 군대의 피해자라고 생각한다면, 병역을 신성한 국방의 의무라고 입버릇처럼 말해서는 안된다. ‘신성한 의무’를 수행했다는 사람이, “나는 피해자란 말이야.” 라고 항변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나는 이런 게 역시나 답답하다. 군가산점 논쟁 때,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강조한 네티즌은 거의 없었다. 대부분 다, “내 2년 돌리도.” 이 수준의 한탄을 하곤 했었다.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다한 사람이 ‘나는 피해자란 말이야.’ 이런 말하는 것 당연히 모순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래서 그렇게 이야기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러나 이 수준에서는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은가? 한 샐러리맨이 “나는 납세의 의무를 다했다.”. 그렇지만 탈세한 놈들에 비하면 피해자다. ‘신성한’이라는 형용사만 빼주면 되지 않냐는 거다.
이 정도면 최소한 군필자가 사회 기득권 세력이라는 어이없는 오해는 많이 풀렸을 줄 안다. 또한 제대로 이야기가 안 되어서 끊임없이 돌고 있는 군필자들의 의식에 대한 오해도 많이 풀렸을 줄 안다. 하지만 내가 정말 이야기하고 싶은 건 이런 거다. 지금 사이버에서 폭력을 저지르든 글발을 날리든 하는 네티즌들은 군필자들 내에서조차 약자라는 거다. 사회적 강자들은 어차피 알아서 빠지든 편한 곳을 가든 군대에 대한 별다른 불만이 없다. 그 약자들을 끌어안아 사회 저항세력의 힘을 키우는 게 목적이지 그들을 정적으로 간주하여 내려치는 게 진보진영의 임무란 말인가? 또 한 가지. 군필자들은 조직화된 세력이 아니다. 의제설정 권력이 없다. 그 점에서는 오히려 여성주의자들을 비롯한 진보진영이 더 사회적 강자에 가깝다. 생각해보라. 군가산점제를 비롯해 문제를 제기하는 쪽은 여성주의 진영이지 군필자들이 아니다. 그럼 사회를 이끌어보겠다는 변혁세력 입장에서 군필자들의 흩어진 분노를 하나의 정당한 힘으로 모아야 하는 의무가 있는 게 아닌가? 지금까지야 워낙에 군필자에 대한 오해가 많았기 때문에 힘들었다 해도 앞으로는 좀 신경을 써달라는 말이다.
그래서 내가 위에서 열거한 군필자상을 좀 참고해주었으면 좋겠다. 지금까지 여성주의자들이 이야기하는 군필자상은 정신착란 증세를 보이는 최악의 인물을 상정해 놓았다. 이런 건 논의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런 정신착란 증세를 보이는 군필자도 월장의 기사에 불만을 갖고 있고 나 같이 상식적은 군필자도 월장의 기사에 불만을 갖고 있다. 그렇다면 그 중에서 가장 합리적인 사람을 골라서 비판해야 하는 것 아닌가? 나는 여성주의자들이 말하는 군필자상을 보면 “과연 저런 사람이 어디 있을까?” 이런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최소한 여성주의자들과 논쟁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정신을 갖고 있는 군필자를 상정해서 비판해야지 무언가 생산적인 것을 찾을 수 있다. 나는 아무리 이야기해줘도 왜 가장 쓰레기 같은 군필자를 하나의 모델로 상정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예비역 문화와 저급 문화
어쩌면 주제에서 벗어날 수도 있겠으나 이것도 한번 짚어볼 만한 화두이다. 여성주의자들을 비롯해 진보진영에서 예비역 문화를 도마 위로 올린 이유는 바로 예비역 문화의 천박함 때문일 것이다. 그건 내가 보기엔 하류계층의 저급 문화와 무척이나 닮아있다. 스파이크리 감독의
솔직히 이런 건 인정했으면 좋겠다. 대학생들이 특별히 저급한 최하층 문화를 접하지 못했다면 그런 저차원적인 하층민에 대한 혐오는 어쩔 수가 없을 거란 말이다. 그리고 실제로 군대에서 접하는 문화가 그와 무척이나 닮아 있다. 왜? 군대에 끌려오는 사람들 대부분이 다 밑바닥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 밑바닥 사람들의 문화는 힘차게 일어설 민중적 의식을 담보한 것으로 보인기 보다는 정말 때려잡아야 할 쓰레기 같은 부류로 보이게 마련이다.
그래서 역시 내 경험상으로 보면 상류계급 학생들이 많은 서울대 내에서는 복학생들의 저급 문화라는 게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필연적으로 얻은 천박한 현실주의를 제외한다면 대부분의 서울대 학생들은 군대에 대한 혐오감을 갖고 있고 제대한 이후에도 이에 대해 별다른 좋은 기억을 가지려 하지 않는다. 내가 갖고 있는 문제의식은 지금 사회적 악으로 규정하려 하는 군대문화라는 것이 실제로 이태원 양아치들의 문화와 뭐 크게 다르겠냐는 거다. 자기 한번 노려봤다고 병을 깨서 찔러 버린 다거나, 여자 친구가 바람피웠다고 개패듯이 패던 양아치 문화와 내가 한국군 해병대에서 2달 파견근무하며 체험한 군대문화는 거의 유사했다.
그렇다면 이 문제도 계급적 관점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겠다. 군대문화가 개판이라면 왜 그런가? 그게 국방부의 노력만으로 가능한 것인가? 김정란 선생의 말처럼 국방부 장관이 결단만 내리면 군대문화가 그대로 바뀔 수 있단 말인가? 나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이미 국방부에선 할 만큼 다했다. 군대에서 구타에 사라진 것 국방부의 노력이 크다. 그러므로 군대문화가 하류층의 저급문화의 특성을 갖고 있다면 그와 똑같은 방식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다. 이런 저급 문화는 경제적 뒷받침이 따라주지 않으면 간디가 설교하러 와도 바뀌지 않을 거다. 아무리 지식인들이, “군대 파쇼 문화 개혁하라.” 이렇게 해봐야 거의 소용없다는 거다. 동네 양아치들만 고스란히 모아 한 달에 만 원만 주고 12시간 이상 죽노동시키는 곳에서 무슨 얼어죽을 선진 문화 창달이란 말인가?
그러나 정말 여성주의자들을 비롯한 진보진영 운동가라면 이 문제를 두들겨 패서 해결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냥 일개 개인이라면 그런 문화에 대해 극단적 혐오감을 갖는게 정상이겠지만 남에게 “이리 가라. 저리 가라.” 말하는 사회적 리더의 역할을 자임하는 사람들이라면 그들이 그럴 수밖에 없는 조건을 더 이해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지금의 사태와 마찬가지로 아무리 좋은 설교를 해도 정작 듣는 당사자들은 다 흘려듣게 되어있다. 언제 스파리크 리가 흑인들 문화 개같다고 두들겨 패기만 했던가?
예비역 문화가 대학문화 위기의 주범인가?
이제부터는 예비역 복학생 문화에 대한 내 생각을 적어보겠다. 사회는 이미 권력변환기에 접어들었다. 대통령의 권력보다 조선일보의 권력이 더 막강해보이기도 한다. 그 정도로 크게 변한 것이다. 그런데 월장의 기사를 비롯한 여성주의자들의 복학생에 대한 시각은 아직도 10년 전의 그것을 유지하고 있다. 이에 대해 복학생들이 고개를 가로젓는 것은 월장의 기사가 말해주는 복학생의 상과 자신들의 실제 삶이 너무나 다르기 때문이다. 물론 그 월장의 기사를 쓴 사람은 자신의 체험담을 적은 것일 게다. 그렇지만 그 체험이 보편적인 동의를 얻기 힘들다면 보다 더 세밀하게 접근했어야 했다. 모든 글을 다 그렇게 힘들게 써야 하느냐는 항변을 할 수 있을 거다. 나는 예비역 문화를 한번 다루어보겠다는 전위세력 여성주의자들에게 요구를 한 것이다. 이왕 할 바에야 좀 제대로 해서 무언가 발전을 꾀하는 방향으로 해보자고. 실제로 나는 복학생 문화를 포함한 대학 문화 전반을 다뤄볼 기획을 하고 있었다. 졸업 때문에 할 수 없었지만 그 문제의식엔 변함이 없다.
대학문화 자체가 문제이다.
오히려 지금 대학은 복학생의 참여가 절실히 필요하다. 이건 80년대에 비해 크게 변한 대학사회에 관한 사실이자 팩트이다. 활동가들은 군대만 가면 모든 활동을 다 뒤로 하고 도서관에 숨어버리기 때문에 대학은 언제나 어린 학생들만이 담당한다. 그러면서 지적 문화적 인프라는 상실된다. 나는 심지어 현재의 대학문화를 “학예회 문화”라 혹평한 적도 있었다. 예비역 문화가 대학문화를 망치는 게 아니다. 문화의 인프라가 축적되는 것을 막는 저학번 중심의 단절된 문화가 대학문화를 죽이고 있다. 이미 90년대 중반부터 대학의 중심에서 거의 사라진 복학생들 때문에 대학문화가 지금 이 지경에 이르렀단 말인가? 어차피 지금 대학문화는 창의성은커녕 기본 상식조차 지켜지지 않을 정도로 유아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다. 학회 시간 하나 맞추는 사람이 드물 정도이다. 또한 시대는 변했는데 오로지 인적 동원만 신경쓰는 학생정치의 수준도 엉망이긴 마찬가지이다. 이게 지금 예비역 문화의 문제인가?
예비역 문화나 여성주의자들이 중심이 된 학생회 문화나 다 거기서 거기다. 누가 누구를 날려버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물론 이제 여성비하나 성폭력에 관해서라면 복학생들이 우선적으로 주범을 찍힐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이것도 통계적으로 보면 복학생들이 성폭력에 걸리는 게 아니라 학생회 간부들이 주로 걸리고 있다. 복학생의 성폭력은 공론화가 잘 안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내 경험으로 보면 복학생들은 원천적으로 대학문화에 거의 참여를 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대학문화의 중심에 있는 학생회 활동가들이 더 많은 책임을 부담해야 한다고 본다. 복학생이 완전히 사라진 나의 과 학생회에서 왜 성폭력이 발생하는가? 이것도 복학생의 책임이란 말인가? 나는 성폭력 또한 집단주의의 폐해라 판단한다. 대학에서 집단적으로 술쳐마시고 자취방에서 혼숙하다 벌어지는 성폭력이 과연 누구의 책임이냔 말이다. 그 집단주의도 군사주의의 폐단이 아니냐고 물어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역시 나의 경험으로 보면 군사문화와 담을 쌓은 것처럼 이야기하는 여성주의자들의 모임에서도 똑같은 집단주의적 폐단이 나타난다고 했을 때 이걸 복학생 문화의 탓으로 돌릴 수는 없다. 현재의 대학문화 자체가 이미 80년대부터 회일적인 집단성을 이어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건 다 같이 반성을 하는 것은 물론 오히려 대학문화의 중심에 서 있는 미필자 활동가들의 책임이 더 크다.
여성주의자들은 10년 전의 복학생의 모습을 상정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그럼 왜 여성주의자들이 복학생에 대한 이런 잘못된 스테레오타입을 갖게 되었는지 적어보기로 하겠다. 나는 이것을 강준만이 인용한 푸코의 에피스테메 지체현상으로 보고 있다. 이미 사회의 중심권력은 변했는데도 항상 진보진영은 그 변화에 뒤지는 너무나 관습화된 현상이다. 그래서 「조선일보」를 놔두고 대통령만 죽도록 패는 현상도 벌어진다. 이미 대학은 학번의 권위부터 선배의 권위가 거의 무너졌다. 그리고 군대의 의무를 다했다는 것에 대한 최소한의 고마운 마음을 갖고 있는 사람도 없다. 이 상황에서 복학생들이 무슨 권력을 휘두르겠는가? 오히려 저학번들과의 세대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또한 취업준비에 치여 다들 도서관에 짱박혀 있는 게 대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주의자들은 끊임없이 예전의 복학생 상을 고수한다. 나는 그걸 이렇게 생각한다.
복학생이란 존재는 현재 대학에서 어둠의 그림자에 가깝다. 그건 한창 꿈과 이상을 위해 돌진하고 있는 여성주의자 대학생이나 운동권 학생들에게는 두려움에 가깝다. 별로 보고 싶지도 않고 믿고 싶지도 않은 존재이다. 취업 같은 개인적 안위를 위해서만 노력하고 천박한 문화나 즐기고 이상과 정의감도 없는 3류 대학생. “우리가 아무리 운동을 해봐야 나중에 졸업할 때쯤 되면 저렇게 되겠지.”이런 생각을 갖게 되는 거다. 또 하나, 복학생들이 정말 그렇게만 살아주면 그냥 개무시하듯 넘어가면 되는데 가끔가다 1학년 학생과의 술자리에 끼게 되면 그들이 가장 두려운 말을 쉽게 내뱉어 버린다. “야. 나도 한 때 운동 좀 해봤는데 그거 다 어릴 때 하는 장난이야. 너도 내 나이 되보면 알아.” 특히 아직 여성주의를 제대로 접하지 못한 복학생이라면 자기보다 한참 어린 여성주의자 과 후배의 말이 귀에 들어올 리가 없다. 그들이 성폭력을 저지른다거나 예쁜 여자 후배에게 술을 따르게 한다거나 그런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요즘에 그런 짓은 하라고 시켜도 못한다. 그냥 “에이. 여성주의, 열심히 해봐. 세상 살다보면 그게 아니란 거 알 거야.” 이런 정도의 말만 해도 그 복학생의 천박한 현실주의와 여성주의자 대학생과의 갈등은 이미 잠복하게 된다. 역시 나의 경험이지만 월장에서 말한 그런 복학생이 없었던 우리 과에서도 이런 방식의 여성주의자와 복학생간의 갈등은 매우 심각했었다. 그래서 우리 과 복학생들은 과에서 완전히 철수하여 종강파티와 개강파티까지 따로 한 적이 있을 정도였다.
내가 파악하고 있는 여성주의자들이 갖고 있는 복학생에 대한 불만은 바로 이것이다. 거기다 이미 10년 전에 쓰여진 교재를 들고 군대와 복학생에 대한 공부를 하고 있으니 당연히 예전의 잘못된 복학생 상을 머리에 넣고 복학생을 바라보는 것이다. 여기에 편견이 개입 안 되겠는가? 물론 복학생들의 천박한 문화가 없다는 게 아니다. 내가 강조하는 건 그게 핵심은 아니라는 점이다. 이런 잘못된 스테레오타입의 복학생을 상정하고 있는 이상 똑같이 행동해도 복학생만 잘못하고 있다는 편견을 갖게 되는 것이다. 나는 월장의 여대생이 과연 몇 명의 복학생과 생활을 해봤는지 궁금하다. 왜냐하면 우리 과 여자 후배들도 성폭력 노트를 쓰며 “복학생 선배가 내 몸을 훑어봤다.”, “고학번 선배가 쭉쭉빵빵이라 그랬다.” 이런 글을 쭉 게시했는데 내가 알아본 결과 구 복학생 고학번 선배는 딱 한 명이었다. 딱 한 명이 실수하고 있는 걸 여대생들은 “복학생이 실수하고 있다.” 이렇게 세뇌되어 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 딱 한 명은 군대에 가기 전부터 그랬다는 걸 알려둔다. 여성주의자들과 복학생들이 대학에서 거의 물과 기름의 관계에 가깝다는 걸 생각해보면 아마도 월장의 여대생이 체험한 복학생 수는 극히 적었을 거라 짐작해본다. 어쩌면 그 복학생의 특징은 단 한 명의 특징일 수도 있다.
내 진단이 맞다면 이미 대학의 중심에서 사라진 복학생들을 두들겨 팬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부작용만 난무할 뿐이다. 지금부터 여성주의자들을 포함한 대학의 리더들이 해야할 일은 구조적으로 필연일 수밖에 없는 천박한 현실주의자 복학생들을 어떻게 대학에서 수용할 것인가를 고민해하는 것이다. 나는 나 나름대로의 대안을 갖고 아직까지고 계속 대학에서 이를 실험하고 있다. 최소한 나보다 더 큰 세력을 갖고 있고 이 문제와 직간접적으로 연계되어 있는 여성주의자들 쪽에서는 보다 더 진지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군필자들의 국가에 대한 군복무 보상요구와 여성주의자들의 국가에 대한 모성보호법 제정 요구가 다른 성격의 문제는 아니지 않는가? 모두다 국가주의에 대한 저항성을 담보하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왜 자꾸 둘이 싸우려 하는가?
마지막으로 한 개인이 체험을 바탕으로 한 패러디글 갖고 뭘 그러냐는 논리에 대해서도 한 마디 하려 한다. 대자보 독투에 올라와 있듯이, 한 경상도인이 전라도 사람에 대한 개인적 체험을 바탕으로, “전라도 개새기들, 천박하고, 품위없고 유치한 놈들.” 이런 글을 올렸다고 치자. 그에 대해 전라도인들이 “이럴 수가 있는가?” 이렇게 항변했다고 해서 그게 전라도인에 대한 비판을 성역화하는 발상이라 볼 수 있는가? 그리고 그런 패러디를 그냥 재미로 보자고 용납해줄 수 있단 말인가? 그건 물론 군필자를 사회적 약자로 보는가 강자로 보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그러나 이미 별 추잡한 짓을 다해대는 군필자들의 반응만으로도 그들이 사회적 약자라는 게 증명되었다고 본다. 공적 소통을 활용할 수 있는 사회적 강자가 그런 방식으로 일을 처리하겠는가?
왜 약자들끼리 싸우는가?
대학에서 가부장제 문화나 군대문화 퍼뜨리는 주범이 과연 누구던가? 복학생인가? 이것 모두가 다 아는 거다. 대학교수로부터 시작되는 정점의 피라미드 조직이다. 이게 대학의 가부장제 문화의 주범이다. 그런데 운동권이든 대학교수든 복학생이든 이 권력에 대한 저항하는 사람은 없다. 자기 과 학과장과 싸움판 벌인다는 건 목숨을 내거는 일이기 때문이다. 내가 갖고 있는 복학생에 대한 불만은 그 위에다 기어대는 비열함이다. 천박한 현실주의를 넘어서 기지 않아도 되는데 가서 기어버리는 노예근성을 군대에서 체득해 온다. 나는 왜 월장의 기사에서 이런 복학생의 가장 비열한 특성을 무시했는지 모르겠다. 내가 찾아본 다른 글에서도 그건 마찬가지이다. 권위적이고 게으르다는 그런 말도 안 되는 비판 다 때려치우고 나보고 하나 잡아내라면 그 비열함인데도 말이다. 그 여대생에겐 왜 비열함은 하나도 안 보였냐는 거다.
나보고 대학문화가 엉망진창으로 되버린 원흉을 찾으라 그러면 자신의 과에서 벌어지는 권력의 폭압을 그대로 지켜보면서 어느새 힘 앞에 익숙해지는 대학생들의 자신감 상실을 꼽고 싶다. 그런데 이게 복학생만의 문제가 아니다. 대학생들은 자신의 교수가 걸려있는 문제에 대해서는 정도 이상으로 비굴해진다. 월장이든 누구든 대학사회의 가부장제 문화나 군대문화를 다루려 한다면 1차적으로 대학교수들의 권위적 문화를 건드리지 않을 수 없을 거다. 그 와중에서 그런 교수에게 비굴하게 기어대는 복학생들을 비판했더라도 이런 반발을 사게 되었을까? 내가 생각하는 군가산점제 파동의 문제점은 군필자들이 정작 칼을 겨누어야 할 곳은 피해가고 상대적 약자인 여성들에게 달려갔다는 것이었다. 나는 대학사회의 가부장제 문화를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이런 문제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분명히 핵심이 보이는데 그 핵심을 피해가고 상대적으로 약자에 불과한 복학생에게 화살을 날려버리는 것이다. 언제끼리 약자들끼리 치고 받고 싸울 건가?
복학생들은 90년대 중반 이후 자신들이 대학에 약자라 생각하게 되었다. 상대적으로 자신보다 훨씬 저학번인 여대생들이 과의 중심에 서 있는 것을 보고 그들이 강자라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대학에서 주변부로 밀려났다. 그런데 강자로 인식되던 여성주의자들이 안 그래도 피해의식에 젖어 숨어 있는 자신들을 두들겨 팼다. 지금의 복학생들의 반발은 이런 성격을 갖고 있다. 내가 그래서 무리한 요구인지 알지만 정말 대학사회의 가부장 문화의 철퇴를 가하기 위해서라면 이걸 꼭 해달라는 거다. 진짜 강자와 싸워주면 그 앞에선 거의 다 고개를 숙일 거다. 설사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입은 함부로 열지 못할 거다. 여성주의자들이 대학문화를 이야기할 때 반드시 교수사회의 비판을 첨가해달라는 거다. 그런 식으로 최강자와의 싸움을 준비해줘야지만 약자들끼리 물어뜯는 일이 없어진다. 하기야 내가 아는 한 과에서는 교수의 불법적 강제노동 지시에 여성주의자와 복학생이 나란히 힘을 합쳐 노가다를 뛰어주었으니 그것도 약자들끼리 물어뜯지 않은 건 마찬가지겠다. 아무리 여성주의자라도 대학원만 가면 커피노동에 잔심부름 다해야 되는 상황 아니던가? 이걸 학부시절부터 고쳐나가려 할 때 과연 복학생이 문제가 된다면 그건 그들의 비굴함 때문이다. 정말 복학생을 욕하고 싶으면 이런 걸 지적하라는 거다. 내가 아는 어떤 과처럼 교수의 불법적 강제노동 지시에 여성주의자와 복학생이 합심해서 열심히 노가다 뛰어주는 약자들의 비굴한 모습을 보여주지 말고.
다시 강조하지만 나는 여기서 정문순씨를 비롯한 여성주의자들을 비판할 의도가 없다. 어차피 그들이 이 문제를 책임지고 해결해야할 주체들이다. 다시 한번 이런 문제에 접근할 때에는 이런 의견을 버리지 말고 섬세하게 검토해달라는 부탁을 하기 위해서이다. 누가 이기고 지고의 싸움이 아닌 이상 서로의 논리 중에서 가장 타당하고 합리적인 것을 골라 비판하든 수용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미 한번 겪은 군가산점 토론처럼 또 다시 중요한 문제를 생각해볼 기회를 “사이버 폭력 퇴치 작전” 정도로 희석시키며 끝내고 아마 조만간 또다시 이런 문제가 터지게 될 것이다. 다시 한번 나에게 여러 가지 생각할 거리를 준 분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며 이 긴 글을 마칠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