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당 팟캐스트에서 삼성전자서비스 노조 지회장의 이야기를 듣고, 연달아 몇 개의 기사(‘설국열차’와 삼성전자서비스노조, 케이블방송 비정규 노동자 현실 알리는 ‘희망지하철’)를 읽으며 내가 다니고 있는 회사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국에서 고객 대면 서비스를 하는 거의 모든 사업장에서 실제 대면 업무를 보는 이들은 비정규직이거나 하청 업체 직원이다. 그리고 이들은 거의 전부 노조를 결성하지 못했고 원청 업체의 직간접적인 업무 통제를 받으며 일을 하고 있다. 특히 인프라 플랫폼 사업을 하는 거의 모든 업체는 본사에서 관리 업무를 보는 이들을 제외하고, 전국 곳곳에 자리한 대면 업무 종사자들을 하청 형태로 관리하고 있다. 영업, 설치, A/S, 상담 등 인프라 플랫폼 사업의 상시적이고 핵심적인 서비스 기능을 외주화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외주화된 대면 업무 종사자들은 박봉과 격무, 그리고 무엇보다도 불안정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원청 업체의 사업이 완성되는 것은 외주화한 인력들을 통해 대면 서비스가 실현되는 순간이다. 기업은 이를 MOT라는 낯 간지러운 용어로 표현한다. 바로 ‘Moment of Truth’, 진실의 순간이다. 기업의 서비스와 고객이 만나는 가장 진실한 지점은 그러나 첨예하게 거짓이 실현되는 순간이다. 원청 업체가 책임지지 않는 불안정 노동자에게 고객 앞에서 그들의 서비스에 책임 지라고 요구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진실의 책임을 전가 당한 노동자가 원청 업체마다 수천, 수만에 이른다.
이런 구조가 한국에서는 너무나도 보편적인 것이어서 지금껏 아무도 문제 제기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위영일 삼성전자서비스 지회장의 말처럼, 티브로드 노조원들의 외침처럼, 이들은 분명 원청 업체의 핵심적인 서비스를 대신 수행하면서도 간접 고용으로 인한 차별과 억압에 시달리고 있다.
한국 사회는 가난과 피로의 모든 책임을 개인에게 돌린다. 마찬가지로 한국 기업은 비용 절감을 최고의 가치로 하면서 실제로 감수해야 할 비용을 외주화된 불안정 노동자에게 돌린다. 분리와 차등화는 전가를 통한 착취 구조를 지탱하는 패러다임이다.
지금까지 통신 회사와 방송 회사, 두 플랫폼 기업에서 근무하면서 핵심 기능의 외주화를 통한 비용 전가, 그리고 고객 접점에서 일하는 핵심 서비스 인력들이 응당 누려야 할 안정과 복지의 권리의 문제에 대해 의문을 지닌 원청 업체 직원을 본 적이 없다. 나 역시 그 구조를 업무의 전제로 상정하고 일을 해 왔을 뿐이다. 누리는 자는 그러지 못한 자를 쉽사리 먼저 배려하지 않는다. 아프게도 이는 내게도 해당되는 말이다. 내게 그럴 권한이 없기도 하지만 나 역시 누리는 자의 간사하고 달콤한 어리석음에 갇혀 있는 것이다.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배려는 삼성전자서비스와 티브로드의 수많은 현장 노동자들이 제기한 당연한 문제의식이 전염병처럼 퍼지는 것을 지지하는 것이다. 그들이 쟁취할 빵과 장미만큼 결국 우리의 고통은 함께 덜어질 것이다. 허위적 진실이 지배하는 구조, 서로를 괴롭히고 경쟁적으로 혐오해야만 만족할 수 있는 구조는 이들의 진실이 인정 받는 만큼만 바꿀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