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트 식스틴>의 켄 로치가 이야기하는 ‘좌파영화만들기’
– 희망은 없다, 하지만 끝없이 투쟁한다
켄 로치를 만나러 가는 길에 들은 인상적인 이야기 하나. 이제는 칸영화제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 레드카펫 세리머니에서는 주인공은 물론 민간인도 턱시도나 이브닝 드레스 차림이어야 한다. 그런데 누군가 말하길, 언젠가 딱 한 사람, 바로 켄 로치가 청바지 차림으로 레드카펫에 오른 적이 있다는 것이다. 딱 그다운 행동이다 싶어 흐뭇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슬그머니 걱정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대중매체에서 사라져간 좌파의 자리를 40년 가까이 씩씩하게 지켜온 고집스런 감독. 혹 꼬장꼬장한 성미라서, 말 한마디 잘못했다고, 쫓아내는 건 아닐까.
그러나 모든 게 기우에 지나지 않았음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한적한 호텔 정원에서 다른 기자와 인터뷰중인 켄 로치를 발견했는데, 그는 온화하고 겸손한 얼굴로 경청하거나 대답하고 있었다. 그리고 창백한 얼굴에 맑은 미소를 띠며 이쪽으로 다가와 먼저 인사를 건넸다. 그는 칸영화제의 단골 손님으로 느끼는 남다른 소회를 털어놓는 것으로 말문을 열었다. “정확히 이번이 몇 번째인지는 모르겠지만, 많이 온 것 같긴 하다. 초대받는 건 언제나 기분 좋은 일이다. 칸은 여러 가지 요소가 복합돼 있는, 재미난 곳이다. 쇼 비즈니스, 진지한 영화, 파는 사람, 사는 사람, 저널리스트. 정말 많은 사람들이 모인다. 괜찮은 자리인 것 같다.”
<스위트 식스틴>,’가정’을 소망한 소년의 좌절 그려
한국에 그의 영화가 적잖이 소개됐고, 팬도 많다는 이야기를 하자, 켄 로치는 의외라는 듯 수줍게 웃어 보였다. 하지만 자신의 영화가 어떤 이유에서 다른 문화권의 관객에게 어필하고 있는지, 모르지 않았다. “한길을 걸어왔다는 데 있지 않을까. 예나 지금이나 같은 얘기를 하고 있다는 점. 모든 사회는 계급간의 갈등 위에 세워졌고, 역사는 특정 계급의 손에 좌우돼왔는데, 그런 문제의식에 많이들 공감하는 것 같다.”
지금 한국에서 상영중인 <빵과 장미>는 그가 3년 전에 완성해 2년 전 칸영화제에서 선보인 작품. “스토리는 작가 폴 레버티가 90년대 중반 LA에 머물 때 청소부 노동조합에 관여했던 경험에서 나온 거다. 그는 이 이야기가 꼭 영화화돼야 한다고 했다. 이민자가 된다는 것, 시민권 없이 산다는 것, 아메리칸 드림을 창조하는 도시에 산다는 것의 의미를 영화 속에 녹여낼 수 있다고 생각해서였다. 그건 영화의 모델이 된 LA 히스패닉 노동자들의 영화다. 그들이 그렇게 느끼길 바란다.”
올해 칸영화제에는 스코틀랜드의 글래스고 지방을 배경으로 한 청소년 드라마 <스위트 식스틴>을 들고 왔다. LA로 날아가 <빵과 장미>를 찍을 때 켄 로치는 세계화라는 슬로건을 내건 미국과의 싸움을 선언한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그는 <스위트 식스틴>으로 다시 글래스고로 돌아왔다. <내 이름은 조>으로 시작된 ‘글래스고 3부작’의 2편이라는 것이 그의 소개. 글래스고라는 공간은 그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 “나로서는 시추에이션은 어디든 다 비슷하다. 글래스고 3부작을 만들자는 건 작가의 아이디어인데, 그는 스코틀랜드 출신이라 그 지역을 잘 안다. 사투리에 익숙하다는 것도 장점이다. 강한 사투리 억양의 대사는 그 지역의 이야기라는 믿음을 주니까. 글래스고는 긴 투쟁의 역사가 있고 문화가 아주 강하다. 영화의 공간으로서 런던보다 훨씬 드라마틱한 곳이다.”
<스위트 식스틴>은 마약 딜러인 남자친구 때문에 감옥에 가 있는 엄마, 어린 나이에 미혼모가 된 누나와 함께 제대로 된 ‘가정’을 꾸리길 소망했던 한 소년의 좌절을 그리고 있다. 켄 로치 영화로는 드물게 사생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사적인 영역과 공적인 영역이 어떻게 관계를 맺고 돌아가는지에 대한 문제에 늘 관심이 많았다. 마약문제로 인한 가정파탄 등의 문제는 이 사회가 병들어 있고 붕괴하고 있기 때문에 생겨난다. 공적인 이슈는 사생활을 갉아먹는다. 세상 어느 누구도 진공 상태에서, 고립 상태에서 살아갈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디서 희망을 발견할 수 있는 걸까. “희망은 없다. 정치가와 경제인은 대개 남을 위해 일하지 않고 자기 이익을 위해 일한다. 고용주는 고용인의 일자리를 뺏고, 헐값으로 대체 노동력을 산다. 이런 구조 안에서는 누구도 빠져나갈 수 없다. 유일한 희망은 새로운 경제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소수의 탐욕에 봉사하는 경제가 아니라, 다수의 생계를 안정시키는 그런 구조 말이다.”
켄 로치의 작업 방식에는 일관된 스타일이 있다. 그 중 하나가 아마추어 배우들에게서 신선하고 자연스러운 연기를 이끌어낸다는 것. “역할에 어울리는 배우를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관객이 믿고 싶어하는 재능을 찾는 것 또한 중요하다. 오디션에서 많은 사람을 만나곤 하는데, 요즘 젊은 친구들이 배우로서의 재능과 상상력, 에너지가 충만하다는 걸 느낀다. 그래서 별 어려움이 없다. 한 가지 상황을 두고 여러 가지 버전으로 즉흥 변주 리허설을 해보고, 배우들을 강하게 푸시한다는 게 비결이라면 비결일까.”
이 골수 사회주의자에게 촬영의 원칙을 물어보는 일을 빼놓을 수 없다. “내 생각에 촬영은 심플하고 경제적이어야 한다. 경제적인 촬영의 핵심은 자연광을 최대한 활용한다는 것이다. 와이드 렌즈나 망원 렌즈도 잘 쓰지 않는데, 그건 렌즈가 사람의 눈과 같아야 한다고 믿어서다. 대상을 조용히 응시하고 연민하는, 사람의 눈 말이다.”
좌파영화를 만드는 외로움
켄 로치는 칸영화제에만 10번 넘게 초대된, 공인된 거장이지만, 아직도 한편한편 만들 때마다 제작비 마련에 어려움을 겪는다. 그렇지만 그는 그조차도 일상인 듯, 자동적으로 이뤄지는 건 아무것도 없다, 며 득도한 사람처럼 웃어보였다. “펀딩 여건은 경우에 따라 다르다. 전작의 흥행 성적에 따라, 영화제 진출 성과에 따라, 다 다르다. 그래도 지난 4년 동안은 형편이 좋았다. 영화 찍는 데 돈을 많이 쓰는 편이 아니라 제작비 마련에 큰 어려움은 없다.” 정작 그를 괴롭히는 건 상업성이 없는 영화를 만드는 고충이 아니라, 우파가 득세하고 있는 이즈음의 유럽에서 좌파영화를 만드는 외로움인 것 같았다. “토니 블레어는 좌파지만 우파처럼 생각하고 행동한다. 점점 그렇게 변해가고 있다. 이탈리아는 우파가 장악했고, 프랑스와 영국에서도 우파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 와중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글쎄, 계속 투쟁하는 것밖에 없겠지.”
인터뷰를 하는 동안 켄 로치의 얼굴에 수시로 햇살이 내리비쳤다. 불편한 듯 눈을 찡그리는 그에게 자리를 바꿔 앉자고 제안했지만, 그는 “괜찮다. 곧 해가 기울 것”이라며 손사래를 쳤다. 작은 배려지만, 그 따뜻한 맘이 그대로 와 닿았다. 그는 영화가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거라고 믿진 않는다 했다. 자신은 그저 “미력하게나마 돕는 것뿐”이라고 했다. 그렇게 말하는 켄 로치의 목소리는 작고 낮았지만, 묵직한 울림이 있었다. 그 울림이 일파만파 퍼져나가, ‘좋은 세상 만들기’에 얼마간 봉사해왔다는 것을, 우린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