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나는 새로 조성된 대규모 아파트 단지로 이사를 했다. 그러고 처음 나간 반상회에서, 아파트 경비원과 청소원의 급여를 조금씩 더 올려주자는 제안을 했다가 웃기는 사람 취급을 당한 경험이 있다. 경비원들은 정년퇴직하고 용돈벌이삼아 나오는 사람들이라느니, 다른 데 가면 더 낮은 임금도 준다느니, 컴퓨터 자물쇠 달면 경비를 더 줄여도 된다느니, 정말 듣기 민망한 말들이 많이 쏟아져 나왔다. 언젠가는 일가족 최저생계비는 되는 임금을 주어야 하지 않느냐는 내 말이 외계인의 말처럼 되어버렸다. 불과 60여만 원밖에 안되는 급여를 한 사람당 10만원 더 올려주기 위해 한 가구가 부담해야 하는 관리비는 기껏해야 2천원에서 3천원 안팎인데, 그것이 아까워서 눈에 불을 켜고 나를 질타한 것일까?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는 단순히 절약정신이나 부담금의 과다 문제만은 아니다. 경비원에게는 낮은 임금을 주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문제인 것이다. 이 고정관념은 두 가지의 잘못된 전제에 기초하고 있다. 첫째, 그런 일을 하는 사람들은 일하지 않아도 되는데 과외의 노동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나이든 사람들의 소일삼은 일자리, 남편있는 여성들의 부업삼은 노동이란 것이다. 그런데 정말로 그럴까? 그들 가운데 일가족의 생계를 실질적으로 책임져야 하는데도 도저히 다른 일자리를 구할 수 없어서 그 일을 하는 사람이 오히려 훨씬 많다는 점이 어떻게 그렇게도 간단히 외면될 수 있을까? 이는 문자 그대로 가진자들의 사악한 무지이다. 두번째 전제는 경비 업무 등은 보조적인, 어쩌면 불필요한 노동인데 부러 일하게 해주는 것이기 때문에 급여가 낮아도 된다는 생각이다. 이것은 위선이다.
이 두 전제는 서로 꼬리를 물고 악순환을 만든다. 그리하여 낮은 임금을 받는 사람들을 전인적 인격이 아니라 분할된 하나의 기능으로 취급하게 한다. 바로 그때문에, 대개의 경비원들은 그 낮은 급여의 일자리마저 용역회사를 통해 분배받음으로써 최저임금을 겨우 상회하는 급여를 받게 되고 그나마 언제라도 잘릴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최근 부산대학교에서 무인경비시스템을 설치하면서 각 단대별로 2명씩 배치되었던 경비원을 너무나 손쉽게 절반으로 줄여버린 터무니없는 사건 같은 것이 그 실례이다.
그러나, 인간이 하는 노동은, 그것이 심지어 “경비”나 “청소”라고 하는 특수목적을 두드러지게 취한 것일지라도 언제나 그 목적을 넘어선다. “단대경비원은 자물쇠가 아니다. 자물쇠 수리공도 아니며 도난경보장치도 아니다. […]늦은 시간 마지막까지 남아 공부를 하는 학생들의 뒷모습을 챙겨주는 것이 그들이고 이른 새벽 학생들의 공간을 미리 준비해 주는 것도 그들이다.”
이것은 부산대학교 민주노동당 학생위원회가 단대경비원 감원을 반대하며 발표한 성명서이다. 나는 부산대가 학생들의 이같은 항변에 귀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하거니와, 이 말은 곧바로 중산층이 거주하는 아파트 단지의 경비원들에게도 적용될 수 있다. 놀이터에서 뛰노는 아이들이 다치지 않게 보호하는 사람들, 밤늦어 학원봉고를 타고 돌아오는 소녀들을 가장 늦게 기다려주는 사람들이 바로 경비원들이 아닌가?
중산층으로 이루어진 대규모 아파트단지의 보이지 않는 곳을 메꾸는 사람들, 이미 중산층인 교수들과 장차 이 나라 중산층이 될 대학생들의 연구실과 강의실 뒤에 숨어 일하는 사람들, 이들에게 안정된 일자리와 적정수준 이상의 급여를 보장하는 것이 반드시 국가만이 염려할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정작 우리가 아이들을 키우고 하루의 마지막 피곤을 푸는 보금자리가 임금 착취와 인간에 대한 무시라는 기반위에 조성되어 있다는 점을 부끄럽게 생각한다. 조금 낫게 사는 사람들이 먼저 나누려고 마음을 먹자. 이것은 우리 재산의 손실이 아니라 우리 아이들에게 더불어사는 사회를 위해 인간에게 투자하는 법을 가르치는 너무나 작은 실천이 될 것이다.
* CARLITO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2-11-24 17: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