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역’의 공포
군가산점 위헌 판결을 둘러싸고 인터넷 공간에서 보였던 한국 남성들의 마초적 언어폭력이 또다시 재연되고 있다. 부산대학교 여성주의 웹진인 ‘월장’이 기획기사에서 예비역 남학생들의 문화를 비판한 글을 둘러싸고 “XX를 찢어죽일 년들”, “지금 강간 때리러 간다”는 등 차마 끔찍해서 눈을 뜨고 볼 수 없는 언어폭력이 난무하고 있다. 글을 쓴 여학생들의 신상명세가 폰섹스 사이트에 공개되어, 그중 4명의 여학생들이 ‘폰섹스’ 요청전화를 받는 등 피해를 입었다. 문제가 되는 ‘월장’의 글이 어느 정도 문제가 있었다는 것은 인정할 수 있다. 내가 보기에도 별로 효과적인 방법으로 쓰여진 글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런 방식의 끔찍한 언어테러가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남성들의 도착적 자기신비화
군가산점 위헌 판결 때 이화여대 홈페이지를 엉망으로 만들었던 남성들의 태도나 이번 월장 사태에서 나타난 태도를 보면서, 나는 한국사회의 군대문화가 정말 심각한 독소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더 확인하게 되었다. 그리고 젊은 남성들이 자신들의 군경험에 대해 커다란 상실감과 박탈감에 시달리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월장을 공격하는 예비역 남학생들의 주된 논리는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고 돌아온 자기들을 ‘감히’ 모욕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표현을 뒤집어보면, 가장 찬란한 젊은날에 원하지 않는 방식으로 저당잡혀야 했던 몇년간의 볼모 상황에 대한 불만과 그 불만을 과도한 신비화를 통해 보상받고 싶어하는 욕구가 숨어 있다. 나는 군대에 가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국가가 요구하므로 하는 수 없이 갔다왔다. 그 몇년간의 억압을 나는 견딜 수가 없었다. 그것은 내 찬란한 젊은날에 뚫려 있는 검고 어두운 허공이다. 내가 그 상실을 설명할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은 그것이 ‘신성한 사나이의 임무’였다고 굳게 믿는 것이다.
이러한 도착적 자기신비화는 우리나라 남성들에게서 종종 발견된다. 사회 안에서 자기가 원하는 방식으로 삶을 영위하지 못하는 어떤 미숙한 남성들은, 자신으로 하여금 그 상태에서 벗어나게 해줄 수 있는 결정권을 쥐고 있는 강자에게 항의하고, 상황의 수정을 요청하는 대신, 자신의 분노를 풀어낼 수 있는 약자를 사냥한다. 물리적으로 연약한 여성들이 이 사냥의 주된 희생자가 된다. 그렇게 하면서 그들은 자신의 테러를 그럴듯하게 포장한다. 아내를 두들겨패는 남성들이 한결같이 주장하는 폭력의 이유는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것은 뻔한 자기 합리화이다. 문제의 본질에는 해소되지 않은 공격성 하나밖에는 없다. 이러저러 늘어놓는 핑계는 순전히 폭력을 행사하기 위한 계기를 마련하는 데 종사할 뿐이다.
월장 사태에서 보이는 남성들의 언어폭력에서도 똑같은 심리적 방어기제가 작동한다. 그들이 스스로의 몸에 휘황하게 둘러놓는 ‘신성한 국방의 의무’라는 말은 실은 자신의 내면에 들끓고 있는 군복무에 대한 억울한 감정을 신비화하려는 노력이다. 국가권력에 의해 강탈당한 젊음의 몇년이 억울하다고 느끼는 만큼 더더욱 남성들은 자신의 안에 상실로 남아 있는 그 기억을 신비화하려고 한다. 상실을 메우기 위해서는 자신의 안에 내재되어 있는 공격성을 풀어내야 하는데, 그 폭력성의 행사를 정당화하기 위해서는 어떤 절대적으로 우월하기 때문에 일체의 비판을 차단할 수 있는 최고 심급의 신화적 세팅이 필요해진다. 그들은 ‘국가’라는 심급에서 국가의 대리인으로 움직인다. 그렇게 일단 자기합리화를 하고 난 남성들은 그 절대적으로 우월한 자리에서 ‘응징’의 검을 들고 마구잡이로 휘두른다.
군대를 책임지고 있는 분들에게
요즈음 젊은이들은 욕망의 무한 발산이 허용되어 있는 듯한 분위기 안에서 살아가고 있다. 이런 젊은이들은 전혀 억압에 대한 내성이 없다. 이런 분위기 안에서 살아가다가 어쩔 수 없이 겪게 되는 군경험은 그야말로 공포 그 자체이다. 군기를 잡는다는 이유로 행사되는 설명되지 않는 폭력을 참고 견뎌야 한다. 그 사이에 젊은이들의 부드러운 내면은 말할 수 없는 상처를 입는다. 세상이 하도 빨리 변하므로, 제대 뒤에도 극심한 이질감에 시달려야 한다. 사회의 전반적 분위기가 칙칙하던 전 시대와는 비교도 안 되는 상실감에 시달리게 된다. 그러니 이들의 마음속에 대상을 알 수 없는 증오와 미움이 쌓이는 것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군입대를 앞둔 아들을 기르는 어미의 한 사람으로서 군대를 책임지고 있는 분들에게 간절하게 당부하고 싶다. 전혀 다른 군문화를 만들어주기 바란다. 현 단계에서 군복무를 없앤다는 것은 전혀 현실성이 없는 제안이므로 군복무 자체를 부정할 수 없는 일이라면, 젊은 남성들이 사회에 나와 상실감과 공포를 느끼지 않을 수 있는 의미있는 군복무 경험을 제공할 수는 없는 것일까? 그리고 대학에서도 예비역 학생들이 좀더 자연스럽게 캠퍼스로 돌아올 수 있도록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것을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다. 이들을 이대로 버려두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든다.
김정란/ 시인·상지대 인문사회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