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 영화의 많은 면이 좋다. 시대의 모순에 저항한 좌파활동가의 경직된 언어를 잘 씹어주는 것이나 그들의 뒤에서 더 많은 고통을 겪어야 했던 그들의 후원자, 어머니, 여성에 대해 최소한의 예의를 다하려는 태도가 좋다.
하지만 나는 약간의 딴지를 걸고 싶다. 왜 바깥에서 오현우를 위해 인고의 세월을 견뎌내는 한윤희는 단 한 번도 기다림과 생활의 고단함을 보여주지 않는 것일까. 그는 80년대 산골에서도 커리어 우먼과 같은 세련미를 지니고 있고, 서울에 올라와서는 번듯한 화방을 꾸리고 잘 산다. 심지어 어머니는 한의원으로 생각되는 멀쩡한 가게를 운영하고 있어 딸 은결의 양육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인다. 한윤희는 오현우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지켜주고 시대의 아픔을 가만히 참아내기만 하면 될 만큼의 여건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성적, 계급적 약자에 대한 묘사는 까만 땅콩이라는 학출 공순이에게 위임하고 한윤희는 세련되고 쿨하기까지 한 이상적 어머니의 모습만 취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한윤희는 좀더 세밀히 다듬어졌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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