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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러스틴과 『근대세계체제』
- 총평
- 월러스틴의 주장에 의하면 세계체제란 단일 분업에 의하여 성립된 광대한 영역으로, 그 내부에는 복수의 문화체를 포함하는 것이다. 역사상 세계체제는 두 개의 형태로 나타나는데, 즉 “세계제국”과 “세계경제”이다. 전자는 단일 분업체계일 뿐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통합된 체제이며, 후자는 정치적 통합이 없는 단일 분업체제를 의미한다. 세계제국은 공납이란 형태로 변경의 이익을 중핵에 이송하는 것처럼 세계경제는 교환이란 형태로 세계의 변경의 이익을 중핵에 이송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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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체제론은 19세기의 마르크스주의와 20세기의 아날 학파1)의 역사적 성찰을 결합하여 21세기에 대한 역사적 전망을 가능하게 하는 새로운 역사인식을 제시해 주었다고 평가된다. 월러스틴은 근대 자유주의와 마르크스주의의 공통적 전제와 패러다임의 구조적 동일성을 비판하면서 양자를 넘어서는 새로운 사상을 모색하고 있다. 이러한 그의 입장은 한편으로 포스트 모더니즘과 해체주의의 흐름과 문제의식을 공유하면서도 자본주의 세계경제라는 인식틀하에 거시적인 전체사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한다고 할 수 있다.
- 마르크스와 월러스틴2)
가. 세계 경제의 단일성
- 그에게 마르크스와 마르크스주의는 다른 것이다. 이데올로기로서의 마르크스-레닌주의는 이미 끝났으나 마르크스의 사상은 21세기 사회생활에서도 여전히 중심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그가 이제까지의 지배적인 사회과학으로부터 벗어날(unthinking) 것을 역설하면서 그 과제를 위해서 다시 찾아가야 할 사람으로 마르크스와 브로델을 들었듯이 마르크스와의 대화는 월러스틴의 사고와 분석 곳곳에 스며있다.
마르크스 사상을 국내 내부과정에 대한 인식 틀로 받아들일 때는 오류이지만 세계체제의 사상으로 이해할 때는 타당할 뿐만 아니라 혁명적이기도 하다(마르크스는 세계체제의 단일성의 정치경제적 결과들을 과소평가 하였다).
근대사에서 자본축적이 자국 노동자로부터의 잉여착취 뿐 아니라 핵심지역에 의한 세계경제의 잉여착취를 통해 진전되어 왔고 그 체제의 작동이 가져온 잉여 분배의 양극화는 하나의 자본주의 세계경제 내에서 이루어졌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따라서 세계경제의 단일성은 결국 체제의 계급적, 지리적 위계화라는 중첩적 과정을 의미한다. 이 중첩적 과정이 그 체제의 정치적, 문화적 복합체, 특히 국가 간 체제라는 틀 속에 존재하는 국가들을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이는 근대국가와 민족의 형성을 위계화된 세계경제의 구조적 작동에서 바라보는 시각이라 할 수 있다.
→ “복수의 자본주의 국가들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자본주의 세계체제가 있다.”
- 세계경제의 단일성은 고전적 자본주의로 상정된 현실과 다른 온갖 변칙형태, 왜곡, 잔재, 비정상이라 해야 할 사태의 확산을 설명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것 역시 계급적, 지리적 위계화와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는 것이다(근대국가를 이념형적 자본주의의 시장구조와 계급관계와 연결시키는 틀에서 벗어나고자 함).
자본주의 세계 경제는 엄청난 비합리성을 유기적 이부로 가지는 체제이고 그 팽창과 발전에 따라 그 비합리성이 제거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다.
이윤을 추구하는 끊임없는 자본축적이 체제의 동력으로 작용할 때 자본주의 체제라고 할 수 있다.3)
자본주의와 시장경제의 내적 연관성 만큼은 마르크스에게도 역시 중심적인 것이다. 전체로서의 자본주의적 생산과정은 생산과정과 유통과정의 통일이고 자기확대하는 자본은 생산수단이 되어 사용가치 아닌 교환가치와 연관된 것이다.
월러스틴에게는 끊임없는 자본축적이라는 현상이 세계적 차원에서 부분적 임노동화에서만 유지된다는 것이기 때문에(장지적 추세로서는 확대되지만) 여러 착취양식이 결합된 세계적 생산관계에서 자본주의의 작동양상을 바라본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생산력에 비해 사회적 생산 관계를 우위에 두는 관점이다). 그러나 그 중심에는 계급투쟁을 자기 사고의 중심에 두고 있다. 세계적 차원의 잉여착취와 지배가 복합적인 사회적 관계를 매개로 이루어지는 것이 현실이고 특히 남-북 문제나 인종문제, 혹은 핵심적 국가에서의 인종적 계서화, 성, 세대 등에서 계급관계가 다면적으로 표현된다는 것이다.4)
나. 자본주의와 근대성
- 월러스틴은 마르크스의 역사인식 틀이 어느 정도 프랑스 혁명 이후 자유주의가 제공해 준 지배적 신화에 얽매여 있다고 비판한다. 그는 마르크스와 자유주의의 합의에 의해서 근대사를 중세적 속박으로부터의 자유와 성장이라는 모델로 파악하는 인식 틀이 의심없이 받아들여졌음을 주목하고 기존의 역사인식에 반대한다.
마르크스가 자본주의를 그 이전의 체제에 비해서 진보적인 것이고 유럽 봉건체제에서 불가피하게 자라나온 장상적 과정으로 인식하였다는 것은 틀림없다. 그는 자본주의적 근대를 역사적 필연성 속에 위치시키면서 생산력의 진보, 정치적 법적 해방, 새로운 사회계급의 대두가 가져올 자유의 진보를 확신하였다. 월러스틴은 봉건적 생산양식은 래된 자기모순 때문에 붕괴가 필연적이었지만, 자본주의의 출현 자체는 결코 필연성이 없었다고 비판한다.
봉건제의 위기 기간에 농민들의 봉기와 인구감소, 정치구조의 취약성과 귀족들의 내부상쟁 가운데 토지제도가 한층 평등한 체제로 나아가고 있는 추세에서 위기에 몰린 귀족계급이 역사의 흐름을 거슬러 기존하는 시장기제를 이용해 간접적으로 잉여를 착취하는 체제를 이루어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자본주의는 후진적 원시경제도 아니고 아시아처럼 생산력과 체제 결속력, 그리고 지식 면에서 높은 수준을 갖춘 지역도 아닌 중간 수준의 유럽에서 쇠퇴해 가는 지주 귀족계급이 부르주아지로 변신함으로써 하층계급과 다른 지역 대중에 대한 착취와 지배를 지속시킨 체제인 것이다. 자본주의는 성장하는 부르주아지가 주도해 이루어진 체제가 아니다. 오히려 그 맹아는 중국을 비롯해 여기저기 있었지만 그것을 성장을 가로막은 제동장치로서의 정치적, 사회적 구조들이 있었는데 바로 그 혼돈기에 제동장치가 풀린 결과 등장한 것이다.
단일한 세계경제하에서 그 이후로 물질적 성장에도 불구하고 계급적, 지리적 위계화가 더욱 심각하게 전개되었다면 이것은 다수 대중에게 진보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월러스틴에게 자본주의는 결코 진보적인 것이 아니며 대안적인 역사적 가능성들이 제거되어 버린 것으로서 퇴보의 역사이다. “유럽은 다른 모든 문명들이 현명하게 피하였던 불합리한 모험의 길로 들어감으로써 후퇴의 길을 밟았다.”
마르크스에게 프랑스 혁명의 구호는 억압으로부터의 자유와 봉건적 특권의 폐지를 통한 평등인 반면 월러스틴에게 그것은 부르주아지들에 대항한 위험한 계층들의 구호이다. 그는 프랑스 혁명을 지배계급 내부의 투쟁인 동시에 직접 생산자들, 민중의 반자본주의 투쟁으로 파악하고 있다.
자유주의는 귀족과 싸우면서 민주주의를 신장시켜 온 결과가 아니다. 오히려 자유주의는 프랑스 혁명 이후 분출된 반자유주의적인 위험한 계급들의 저항과 요구를 막기 위해서 등장한 자본주의 정치적 문화적 방패막이다.
월러스틴에게는 이러한 진보의 필연성에 대한 믿음, 발전론적 역사관 바로 그것이 현 자본주의 세계체제가 상대적으로 정치적 안정을 누려온 중요한 지리문화이다.
그는 자본주의 내에 경쟁적 시장과 독점 간에 일종의 긴장이 있다는 브로델의 근본 사상5)을 받아들이고 체제의 규칙적 팽창을 이 독점의 우위에서 설명한다.
자본주의의 특징은 국가의 개입에 반하는 자유시장 경제가 아니라 시장기제가 정치 권력체들의 벡터에 의해서 좌우되는 것이다. 결국 자본주의와 자유주의는 반민주주의적이긴 하되 반국가주의적인 것은 아닌 것이다.
다. 역사적 체제의 인식론
- 월러스틴은 어떤 현실이든 복잡한 현실적 총체에서 그 복잡성을 최소로 환원시켜서 설명하는 전통적인 사회과학에 대해서시공간의 경계를 감안하면서 그 복잡성을 해석하는 과정 해석의 과학을 제시한다.
- 월러스틴의 자본주의 세계체제론과 제국주의론6)
- 고전적 마르크스주의는 각 국의 자본주의 발전을 우선적으로 그 나라의 내부 구조에 의해서, 특히 지배적 생산양식의 성격에 의해서 규정된다고 본다.
자본주의적 세계경제의 비자본주의적 주변부로의 팽창 과정은 핵심부 내부 경제의 주기적 순환과정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콘트라티예프 B국면은 세계경제의 확산을 보장해 온 독점이 약화되는 시기 즉 경쟁이 심화되는 시기에 나타나는 이윤수취의 장기적인 침체기를 의미한다). 월러스틴은 핵심부 내의 자본 축적의 위기를 조정하는 수단으로서 주변주 지역의 지본주의 세계경제로의 통합을 들고 있다. 이러한 통합은 핵심부 내의 상대적 저소득층에 대한 잉여의 부분적 재분배를 통해서 세계적 유효수요를 확장할 필요에서 요청되었다.
근대세계체제의 시기 구분
① 1450~1640 : 유럽적 세계체제
② 1640~1815 : 자본주의 세계체제가 강화되는 시기
③ 1815~1917 : 세계 경제가 지구적 기업체로 전환하는 시기
④ 1917~현재 : 자본주의적 세계 경제가 공고화되고, 특히 이러한 공고화가 야기한 혁명적 긴장이 존재하는 시기
- 월러스틴은 자본주의 세계 경제의 끊임없는 확장의 결과로 20세기에는 유일하게 자본주의 세계 경제만 존재하는 것으로 보았다(사회주의 진영을 자본주의 세계 경제에 속한다고 간주하였음).
세계 시장 내의 다양한 가격 구조들은 절대적인 자유시장에서 형성된 것이 아니라, 모든 정치권력체들(불균등한 힘을 가진 주권국가들)이 가격 결정에 대한 규칙을 결정하는 시장에서 형성되었다.
독점에 대한 욕구와 그것의 자기 파괴적인 성격 사이의 이 같은 긴장을 통해서 자본주의 경제 활동의 순환적인 성격을 설명할 수 있으며, 또 자본주의 세계 경제의 양 축을 이루는 핵심부의 (고도로 독점화된) 상품들과 주변부의 (고도로 경쟁적인) 상품들 사이에서 기본적인 분업을 설명할 수 있다.
- 월러스틴 저작의 국내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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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매뉴얼 월러스틴, 『우리가 아는 세계의 종언』, 창작과비평사,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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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매뉴얼 월러스틴, 테렌스 K.홉킨스 , 『이행의 시대』, 창작과비평사,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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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매뉴얼 월러스틴, 『유토피스틱스』, 창작과비평사,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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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매뉴얼 월러스틴, 『근대세계체제 1~3』, 까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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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매뉴얼 월러스틴, 『자유주의 이후』, 당대,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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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매뉴얼 월러스틴, 『사회과학의 개방(당대총서5)』,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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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매뉴얼 월러스틴, 『반체제운동(창비신서133)』, 창작과비평사,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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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매뉴얼 월러스틴, 『역사적 자본주의/자본주의 문명(창비신서119)』, 창작과 비평사,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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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매뉴얼 월러스틴, 『사회과학으로부터의 탈피 : 19세기 패러다임의 한계』, 창작과비평사, 1994
1) 아날학파(Annales School) : 1929년 프랑스의 역사학자인 L.페브르와 M.블로크에 의해 창간된 『사회경제사 연보』(1946년에는 ‘아날․경제․사회․문명’으로, 1994년에는 다시 ‘아날․역사와 사회과학’으로 제명 변경)를 중심으로 형성된 학파이다. 랑케의 사실주의에 토대를 둔 근대 역사학은 역사철학이나 낭만주의적 역사서술의 굴레로부터 벗어나기는 하였으나, 사료의 정확성에 지나치게 집착함으로써 역사학의 폭과 깊이를 축소시키는, 그 부정적 측면을 노출하여, 결국 인문, 사회과학의 세계에서 자료제공자의 위치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러한 역사학의 위기 상황에서, 프랑스에서는 뒤르켐의 사회학, 비달 드 라 블라슈(Vidal de Blache)의 인문지리, 철학자인 H.베르의 역사적 종합 등이 인문, 사회과학을 주도하는 가운데, F.시미앙이 제기한 ‘역사가들의 3가지 우상(정치․개인․연대)’에 대한 논박, 그리고 이러한 도전에 대한 역사가로서의 수용은 새로운 역사학의 형태를 결정지었다. 정치보다는 사회, 개인보다는 집단, 연대보다는 구조를 역사인식의 기본 골격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 이 학파의 정신이 된 것이다. 이렇게 출범한 이 학파가 역사학 안팎에서 지배적인 위치를 확보한 것은 제2세대인 F.브로델에 의해서이다. 그가 1949년에 발표한 『지중해』는, 지중해 세계라는 자연환경 속에서 ‘시간이 잘 마모시키지 못하는 장기지속(la longue duree)’적인 지리적인 삶, 그리고 그 위에서 완만하게 주기적으로 변하는 사회 경제적인 삶, 그리고 표면의 거품과 같은 정치적인 삶을 구조적이며 총체적으로 그린 아날학파의 교과서였다. 이후 G.뒤비, E.르 루아 라뒤리, J.르 고프 등의 제3세대는, 이러한 브로델의 역사학을 기본으로 하면서도 집단심성(集團心性)에 대한 연구를 아날학파의 영토에 편입시켰다. 그리고 최근에 이르러, R.샤르티에는 문화현상에 대한 사회사적 접근을 시도하면서 제4세대를 이끌고 있다. 이 학파는 역사에서의 개인의 역할, 변동에 대한 설명 등에서 한계를 드러내기도 하였으나, 일상적인 사람들의 삶을 역사의 무대에 소생시켜 주었다는 점에서 사학사적인 공헌을 하였다. 이 학파는 1970년대에 특히 세계적인 주목을 받기 시작하였으며, 1970년대 말에는 한국에도 소개되었다. 최근에는 국내의 관심도 더욱 높아져, 브로델의 대작인 『지중해』(한길사, 1995)와 『물질문명과 자본주의』(까치, 1995)를 위시한 이 학파의 주요 연구업적들이 활발히 번역 소개되었다.
1) 아날학파(Annales School) : 1929년 프랑스의 역사학자인 L.페브르와 M.블로크에 의해 창간된 『사회경제사 연보』(1946년에는 ‘아날․경제․사회․문명’으로, 1994년에는 다시 ‘아날․역사와 사회과학’으로 제명 변경)를 중심으로 형성된 학파이다. 랑케의 사실주의에 토대를 둔 근대 역사학은 역사철학이나 낭만주의적 역사서술의 굴레로부터 벗어나기는 하였으나, 사료의 정확성에 지나치게 집착함으로써 역사학의 폭과 깊이를 축소시키는, 그 부정적 측면을 노출하여, 결국 인문, 사회과학의 세계에서 자료제공자의 위치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러한 역사학의 위기 상황에서, 프랑스에서는 뒤르켐의 사회학, 비달 드 라 블라슈(Vidal de Blache)의 인문지리, 철학자인 H.베르의 역사적 종합 등이 인문, 사회과학을 주도하는 가운데, F.시미앙이 제기한 ‘역사가들의 3가지 우상(정치·개인·연대)’에 대한 논박, 그리고 이러한 도전에 대한 역사가로서의 수용은 새로운 역사학의 형태를 결정지었다. 정치보다는 사회, 개인보다는 집단, 연대보다는 구조를 역사인식의 기본 골격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 이 학파의 정신이 된 것이다. 이렇게 출범한 이 학파가 역사학 안팎에서 지배적인 위치를 확보한 것은 제2세대인 F.브로델에 의해서이다. 그가 1949년에 발표한 『지중해』는, 지중해 세계라는 자연환경 속에서 ‘시간이 잘 마모시키지 못하는 장기지속(la longue duree)’적인 지리적인 삶, 그리고 그 위에서 완만하게 주기적으로 변하는 사회 경제적인 삶, 그리고 표면의 거품과 같은 정치적인 삶을 구조적이며 총체적으로 그린 아날학파의 교과서였다. 이후 G.뒤비, E.르 루아 라뒤리, J.르 고프 등의 제3세대는, 이러한 브로델의 역사학을 기본으로 하면서도 집단심성(集團心性)에 대한 연구를 아날학파의 영토에 편입시켰다. 그리고 최근에 이르러, R.샤르티에는 문화현상에 대한 사회사적 접근을 시도하면서 제4세대를 이끌고 있다. 이 학파는 역사에서의 개인의 역할, 변동에 대한 설명 등에서 한계를 드러내기도 하였으나, 일상적인 사람들의 삶을 역사의 무대에 소생시켜 주었다는 점에서 사학사적인 공헌을 하였다. 이 학파는 1970년대에 특히 세계적인 주목을 받기 시작하였으며, 1970년대 말에는 한국에도 소개되었다. 최근에는 국내의 관심도 더욱 높아져, 브로델의 대작인 『지중해』(한길사, 1995)와 『물질문명과 자본주의』(까치, 1995)를 위시한 이 학파의 주요 연구업적들이 활발히 번역 소개되었다.
-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
2) 유재건, “마르크스와 월러스틴”, 한국 서양사학회 편, 『근대 세계체제론의 역사적 이해』, 까치, 1996 참고
3) 이러한 그의 자본주의에 대한 입장은 사회의 내적 생산관계의 역동성과 차이를 무시하고 국제적인 외적 관계의 중요성을 과정하는 유통주의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4) 마르크스는 노동자들의 절대적 빈곤화론에 대해서는 반대 입장을 표명하면서도, 자본가들이 노동자가 얻는 몫보다 상대적으로 더 많이 얻게 되었다는 사실을 지적함으로써 상대적 빈곤화론의 입장을 견지하였다면, 월러스틴은 자본주의 발전 과정에서 야기된 문제점들을 프롤레타리아의 절대적 빈곤화론의 입장에서 파악하고자 하였다.
5) 브로델은 15~18세기의 자본주의를 연구하면서 자본주의에서는 언제나 독점이 정상적일 뿐 아니라 중심적인 것이라는 생각을 제시했다.
6) 강성호, “월러스틴의 자본주의 세계체제론과 제국주의론”, 한국 서양사학회 편, 위의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