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리적이고 평화로운 노르웨이의 데모문화… 한국에서 ‘진압’의 망령은 언제쯤 사라질까
교환학생으로 한국에 있었던 1991년 가을은 ‘학생 데모’나 ‘노동자 데모’의 젊은 혈기가 또 한쪽의 탄압과 부딪치는 충돌의 장처럼 느껴졌다. 필자가 그때 맡았던 최루탄 냄새, 그리고 가끔 목격했던 폭력의 장면- 넘어진 여학생을 경찰이 군화로 차는 모습, 방패에 눌려 비명 지르는 모습- 들이 때때로 기억난다.
심지어 경찰들까지도 데모 참여
듣고 싶지 않은 소리를 못하게 하려고 한쪽에 정신적·신체적 상흔을 입히고, 또 한쪽에 폭력을 익히도록 한, 그때 정권의 정신적 상태는 과연 무엇이었는가? 그리고 현 정권이 대우 노동자나 반미·반전 시위들에 가한 폭력에서도 느껴지는 것은 반대의 목소리는 무조건 억누르는 정권과 경찰당국의 수십년간 몸에 밴 야만성이 쉽게 누그러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힘을 가진 쪽이 대화보다 ‘독백’을 선호하는 상황에서, 가정이나 학교, 각종의 사회단체들에까지 보이지 않는 폭력이 퍼져 있는 것은 당연하다. 의사 발표나 목소리 내기의 기본적인 수단이어야 할 데모가 엄청난 이탈행위로 취급되는 이상 다양한 목소리들의 공존 풍토를 기대하기는 힘들 것이다.
독립협회의 데모에 어용 보부상을 풀어 유혈진압을 유도한 한말의 대한제국 정권, 3·1운동의 데모 행렬들을 선혈이 낭자한 아수라장으로 만든 일제, 좌익 데모에 실탄을 발사했던 미군정, 데모 진압을 자기 존재 확립의 의례로 여겼던 역대 군사정권과 최근의 유사 ‘민주주의적’ 정권…. 최근 100년 동안 이 땅을 다스리는 ‘큰 주먹’들은 수차례에 걸쳐서 바뀌었지만, ‘이단’을 다루는 방법에서만큼은 놀랄 만한 상호 계승을 보여준다. 결국 곤봉에 맞고 최루탄을 마신 쪽도, 야만적 정권의 군사·폭력문화의 상당 부분을 나름대로 익혔다는 사실을 비판할 수 있겠는가? 권력자의 폭력은 말 그대로 선(善)한 구석이 없는 절대악이다. 그 폭력을 행사하는 하수인들도, 심지어 폭력의 위력을 절감하며 결국 폭력을 전유(專有)하게 되는 희생자들도, 탈(脫)윤리화의 길로 갈 가능성이 매우 높다.
노르웨이에 와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은, 데모가 얼마나 일상적인가 하는 것과 합리성, 그리고 교육적인 효과 등이다. 대학생뿐만 아니라 고등학생이나 교수, 노동자와 국가공무원, 심지어 월급에 불만을 가진 경찰(!)까지도 노르웨이에서는 데모라는 의사표현의 방법을 일상적으로 사용한다. 예를 들어 지난달에 이루어진 노동당의 선거 참패에 따른 보수내각의 수립으로 말미암아, 전 노동당 내각이 약속했던 ‘고등학생 무료 교과서 배급’은 취소의 위기에 처했다. 학생과 교사의 불만 타개방법은 물론 데모였다. 저녁 몇 시간 동안 “도둑정부 각성하라!”는 플래카드를 들고 국회의사당에 몰려와 보수내각을 열심히 성토한 고교생과 교사의 노력 덕분에, ‘무료 교과서’ 약속이 지켜질 가능성이 커졌다. 당연한 권리인 데모가 주효한 셈이다.
이외에도 ‘일상적인 데모’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지난해에 노동당 내각의 고등교육 예산삭감 움직임에 항의하여, 오슬로대학교 학생과 교수, 직원들이 의사당 앞에서 데모를 벌인 일이 있었다. 그 데모의 결과는 역시 정부의 사과와 삭감 계획의 포기였다.
경찰의 제재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
우리의 당연한 권리, 정부와 대화를 나누는 우리의 언어 표현방법인 데모에 참가했던 필자나 동료들은, 경찰이 우리에게 제재를 가할 수 있다는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다. 물론, 지난번 스웨덴 괴테보르그 초대형 반세계화 시위 때 경찰에 의한 실탄 발사사건만 보더라도, 스칸디나비아의 데모문화에 문제가 전혀 없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 사건은 오히려 반세계화 운동을 방해·교란할 목적으로 시위자의 대열에 끼어들어, 경찰에게 의도적으로 도발행위를 저지른 여러 국적의 극우·신나치 행각의 결과라는 유력한 설이 있기도 하고, 사건이 발생된 뒤에 경찰을 포함한 전 사회에 자성의 목소리가 매우 컸다. 보통 1주일에 서너번씩 일어나는 노르웨이의 ‘일상적’ 데모들은 보통 매우 평화롭고 합리적이다.
데모를 통해서 교육 효과를 기한다는 것은, 최루탄 냄새와 곤봉의 소리에 익숙해진 사람에게는 믿어지지 않는 이야기로 들릴지 모른다. 그러나 많은 경우에 노르웨이의 데모는 말 그대로 교육적이다. 좋은 예로, 필자가 동료, 그리고 학생들과 같이 참가한 일이 있는 최근의 한 반전 데모를 들 수 있다. 데모는 학생과 노동자들이 많이 찾아오는 사회주의 좌익당(SV: 현재 국회에서 23석을 차지함)과 반제국주의 운동의 사이트(www1.sv.no; aksjon.fix.no/krig)에서 매우 체계적으로 공고됐다. 그 사이트에서 참가할 사람들은 전세계 진보 언론들의 사태 분석과 파키스탄·인도 등 인접 국가의 영자 신문들의 생생한 현지 르포, 그리고 스칸디나비아의 국가를 비롯한 전세계 반전 운동 전개에 관한 최신 정보를 마음껏 접하고 상황에 대한 좀더 확실한 개인적 판단을 내릴 수 있었다.
절반 넘은 문건들이 그대로 영어로 등재된 반제 운동 사이트의 폭발적 인기는, 영어를 모국어 정도로 구사하는 노르웨이 사람들의 언어생활의 일면을 보여주기도 한다. 반전 사이트와 전쟁에 대한 많은 분석적 글들을 내보낸 진보 일간지와 온건 보수 일간지 덕분에, 데모에 참석했던 사람들은 우리 집단 행동의 이유와 목적을 잘 알고 있었다. 데모하는 자리에서 공산주의자와 무정부주의자, 반전주의자들의 이론 잡지까지도 잘 팔렸고, 데모 자체의 과정도 일종의 교육의 면모를 가졌다. 연단에 나섰던 국가 교회 대표자들과 사회주의 이론가, 노르웨이 노총 활동가들과 중앙아시아 전문가, 대학교 인류학 교수와 학생 대표들은, 전쟁을 반대하는 각자 나름의 이유를 자세히 밝히고 아프간에 대한 각종 제국주의 세력의 침략의 연혁을, 그리고 미래의 중앙아시아 정세의 전망을 설명했다. 노르웨이 거주의 아프간 피난민의 대표자, 그리고 아프간 여성의 혁명연맹(RAWA)의 한 멤버는 격앙된 목소리로 만성적 기아와 미국의 폭격, 그리고 미국이 과거에 지원했던 탈레반과 현재에 지원하는 북부동맹의 폭력으로 비참히 죽어가는 아프간 어린이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렇게 상황에 대한 충분한 정보의 전달이 이루어진 뒤에 데모의 행동적인 절정인 횃불 행진이 이어졌다.
신나게 반전 가요 부르는 유치원 꼬마들
어두운 저녁에 4500여명의 남녀노소의 참가들에 의해서 이루어진 그 횃불 행진은 정말 장관이었다. 무수한 횃불 사이에서 100여년 된 각종 노조의 깃발들이 나부꼈다. 역사가 깊은 건설노동자 노조의 고색이 창연한 깃발, 교사 노조의 커다란 깃발, 교수·학자 노조의 기치, 금속공업 노조의 깃발…. 직장, 배경, 나이 등이 완전히 다른 많은 사람들이, 미국 제국주의에 의한 대량 학살을 막겠다는 공통된 일념으로 같이 모였다는 생각에, 새로운 희망이 생기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많은 노조원들이 가족 단위로 아이 손을 잡고 왔다. 유치원 교사들이 한반의 꼬마들을 다 데려온 풍경도 볼 수 있었다. 꼬마들은 부모·교사와 같이 “살생을 그만 하라! 폭격을 중단하라!”를 외치고 신나게 반전 가요를 불렀다. 그 장면을 보면서, 그 꼬마들이 크고 나서도 살생에 반대했던 이 경험을 기억하겠구나 싶었다. 선생과 학생, 성직자와 신도, 관료와 건설노동자, 어른과 꼬마들이 같이 연령과 차별없이 감성과 지식을 나누고 평화를 외치는 이와 같은 경찰없는 데모는 언제쯤 한국에서도 재현될 수 있을까 싶었다.
경찰 투입은 지배자들이 민중을 보는 시각을 직설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진압용 방패에 몸을 부대끼며 곤봉을 피하는 시위자들과 큰 권력을 가지고 무력을 행사하는 진압 세력과의 극히 대조적인 모습은, 현대적인 평등과 상호 존중의 시민사회가 전혀 형성되지 못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시위의 현장에서 ‘진압’이라는 망령이 사라질 때까지는, 정부가 자칭 ‘문민’이나 ‘국민’을 붙이는 꼴은 웃음거리로 남을 것이다.
박노자/ 오슬로 국립대 교수·한국학
* CARLITO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2-11-24 17: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