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섭
77년 대구출생 / 대학시절부터 서울생활 / 모회사 취직 / 다른 길을 찾아 퇴사 후 현재 백수
작업노트(Cliche)
– 어느 영화평론가는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영화를 즐기는 최선의 방법은 영화를 직접 찍어보는 것이라고 언젠가 말했다. 나는 영화를 좋아했고 물론 나에게도 그 지극한 지점에 대한 막연한 희망이 있었다. 그리고 어느 때부터인가 나에게는 사진기가 쥐어져 있었다. 나는 그 지극한 지점을 사진기로 어설프게 훔쳐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사진기는 나도 모르게 남 앞에서 자꾸 숨기만 하는 나에게 중요한 표현 수단이 되었다. 이제 내게는 사진이 영화보다 친숙한 습관이 되어 버렸다.
– 나는 말하지 않는 사진이 좋다. 아니, 사진가가 너무 열심히 말하지 않는 사진이 좋다. 사진가는 사진이 말할 수 있게끔 적절하게 자리를 만들어 놓는 것이 제 몫이다. 나는 사진에 담긴 피사체가 지나치게 아름답지 않은 사진이 좋다. 피사체의 표면적 아름다움이 사진 자체, 사물 자체의 아름다움을 눈멀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피사체에 적당한 거리감을 유지하는 사진이 좋다.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사진에 담긴 주관적 시선보다 객관적 응시가 더 매혹적이다. 그리고 나는 무엇보다도 사진을 찍고 보는 사람은 사진이 충분히 쉽고 흔하고 대중적이고 가볍기도 하다는 사실을, 동시에 충분히 어렵고 고유하며 계몽적이고 무겁기까지 하다는 사실을 혼란 없이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사진가는 자신이 찍은 사진에 대해 오만하지 않을 수 있고 감상자는 사진을 오해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 나는 내 사진에 대해 이러한 의도로, 이러한 느낌으로 찍었다고 설명하고 싶지는 않다. 사진이 말해야 하고 나는 언제나 사진에게 미안해야 한다. 5년 남짓 사진을 찍으면서 나는 단 한 번도 포트폴리오라는 것을 만들어 보지 않았다. 그만큼 욕심은 많지만 실망이 크고 부끄러운 응모가 됐다. 그래서 더욱 사진에 미안하다. 마음을 비우고 지난 사진들을 스스로 다시 훑어보는 기회로 삼고자 한다. 내가 수없이 걸어다닌 골목길, 특히 이제는 뉴타운 개발로 사라진 또 하나의 척박하고 사랑스러운 동네 진관동을 한낱 상투적인 표현처럼 찍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사진에, 이 사진을 볼 이들에게 부끄럽다.
전시회 준비하면서 제출해야 했던 작업노트.
확실히 나는 글보다 생각이 앞서고 동어반복에 다듬는 데 인색하다.
항상 나는 대충 하고 부끄러워 한다.
p.s. 지금은 백수 신분이 아니다. 그래봤자 알바 십장이지만…
글 좋구만 뭐. 부끄러워하시긴.
-_-
부끄럼쟁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