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진한 웃음이 무서워!
컴퓨터 게임 – 뽑기 게임
<DDR
>로 시작해 엄청나게 쏟아져 나온 댄스 게임기들은 오락실의 새 장을 얼었다. 전에는 초등학생에서 고등학생까지의 남자들만 득실댔지만 이제 연인끼리, 아니면 여자들끼리도 자주 오락실을 찾는다. 지하의 어두운 공간은 1층에 당당히 자리잡은 밝고 깨끗한 곳으로 바뀌었고, 더이상 오락실에서 학생주임 선생이 불길한 그림자로 군림하지도 않는다. 이제는 더이상 오락실을 ‘비행 소년들의 칙칙한 공간’이라고 부를 수 없다. 하지만 댄스 게임기 열풍은 시작되었던 것만큼이나 갑작스럽게 식어버렸다. 무리해서 너도나도 들여놓았던 게임기들은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값비싼 기계를 여러 대씩 사들이랴, 덩치 큰 것들을 들여놓느라 공간 확장하랴, 이래저래 출혈이 컸던 오락실들은 궁지에 몰렸다. 우울한 오락실에 그나마 희망이 되어준 게 뽑기 기계들이다. 금속 집게를 조절해서 인형을 뽑아내는 단순한 게임은 의외로 수많은 중독자를 양산했다. 게다가 이 게임에 열광하는 사람들 중에는 청소년뿐 아니라 구매력이 있는 성인들도 얼마든지 있었다. 넥타이를 맨 샐러리맨들이 그 자리에서 1만원, 2만원씩 써가며 인형 뽑기에 열을 올리는 광경은 별로 신기한 일이 아니다. 인기에 힘입어 인형 뽑기는 오락실이 아닌 팬시점이나 문방구 등에도 많이 설치되었고, 몇몇 오락실에서는 현금을 은밀하게 경품으로 내거는 일까지 벌어지기도 했다. 인형 뽑기가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돼 나온 게 <가재 뽑기>다. 사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가만히 누워 얌전하게 뽑아주기만 기다리는 곰인형이나 오리인형은 시시할 수밖에 없다. 인공지능이 아무리 발전해봤자 살아 움직이는 가재 한 마리보다 더 드라마틱하고 예측 불가능한 움직임을 보여줄 수는 없다. 더 구미가 당기는 건 가재가 헝겊인형보다 훨씬 더 비싼 ‘물건’이라는 점이다. 가재요리를 먹어보려면 적어도 2만∼3만원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조금의 노력과 재능, 운만 있으면 몇푼 안 되는 돈으로 횡재수를 낚을 수 있다. 집에 가져가서 요리하느라 익숙지 않은 집게발과 씨름을 벌일 필요도 없다. ‘잡은 가재는 즉석에서 매운탕을 끓여 드립니다’란 팻말이 친절하게 붙어 있다. 하지만 자본주의 시스템의 상품으로서, <가재 뽑기> 기계에는 약점이 있다. 바로 단가가 높다는 점이다. 값비싼 가재로는 생각보다 영 수지가 안 맞는다. 그래서 등장한 게 햄스터, 병아리, 토끼들이다. 원가가 몇백원에 불과한데다가, 크고 힘센 가재보다 뽑기도 편리하고, 작고 귀여운 동물들이니 일종의 캐릭터성도 있는 셈이다. 조준을 잘못하면 연약한 피부가 찢어지는 일도 종종 일어난다. 직접 피를 보니 스릴이 한층 더한다. 내가 지배자란 느낌이 더 많이 든다. 동물 뽑기는 어른들뿐 아니라 아이들에게도 인기다. 아이들은 대개 동물을 좋아한다. 제발 강아지 한 마리만 주면 정말 예쁘게 잘 키우겠다는 읍소가 인터넷에 넘쳐나고, 초등학교 교문 앞에서 자리를 펴고 병아리를 파는 할머니는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풍경이다. 버둥거리는 병아리에게 차가운 금속 집게를 겨누는 건 놀라운 경험이다. 그냥 돈 내고 사오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다. 노란색 학교 체육복을 똑같이 입은 아이들이 책가방과 신발주머니를 한 구석에 던져놓고 뽑기 기계를 둘러싼다. 고사리손으로 꼭 쥐고 와 따뜻해진 동전을 한명이 내민다. 정작 당사자보다는 구경하는 여러 명이 더 침이 마른다. 연약한 어린 생명은 필사적으로 도망치려고 하지만 언제까지나 그럴 수는 없다. 몇번의 실패 끝에 드디어 성공이다. 아이들이 한꺼번에 웃음을 터뜨린다. 티 하나없이 맑고 깨끗한 웃음이다.
박상우/ 게임평론가 sugulman@chollian.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