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기업원에서 퍼옴

하이에크 탄생 102주년을 기념하면서

2001. 5. 8

  의도적으로 사회를 계획하지 않고서도 사람들이 자유롭고 평화롭게 번영을 누리면서 공존할 수 있는 사회가 어떻게 가능할까요? 계획에 의해 사회를 조종 통제하는 것보다 계획이 없을 때, 정말로 사회는 보다 잘 번영하고 평화롭습니다. 사회는 자생적 질서이거든요. 자생적 질서는 인간들이 어떤 목적을 가지고 계획하여 만든 것이 아니라 인간들이 각자 자신의 뜻에 따라 행동하는 과정에서 생겨나지요.  그것은 언어와 똑같아요. 언어를 누가 계획해서 만들었나요? 에스페란토와 같은 것이 있기는 하지만 그러나 별로 쓸모가 없어요.

  자생적 시장경제는 정말로 광대하고  복잡· 미묘합니다. ‘복잡계’라는 말이 적절한 표현일 것입니다. 복잡한 자생적 시장경제는 방대한 정보와 지식이 유통되는 거대한 소통 체계(communicative system)입니다. 자생적 시장경제는 개개인들이 가지고 있는 지식과 정보를 최대한으로 활용하지요  그리고  자생적 시장경제는 그들이 잘못된 지식을 사용하면 이를 엄격하게 가려내어 인정사정 보지 않고 가차없이 처벌합니다. 이 처벌 메커니즘이 혼란 대신에 질서를 야기하는 중요한 원동력이지요.

  시장경제에서 소통되고 활용되는 지식과 정보는 엄청나게 방대하고 또 복잡합니다. 그 어느 누구도 이를 전부 갖는 것은 절대적으로 불가능합니다. 그 어떤 전문가집단도 시장경제의 자생적 소통체계를 도저히 흉내 낼 수 없습니다.

  따라서 자생적 시장경제의 복잡계를  우리가 조작하려 하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이보다 더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계획하여 이를 대체하려고 한다면, 그러한 시도는  절대적으로 무모한 짓입니다. 아니 그것은 건방진 일이지요.

  그 시도의  결과는 성공은 고사하고 오히려 혼란이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합니다. 따라서 정부는  계획에 맞추어 사회를 조작하고 인위적으로 만들려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사회를 계획하려는 사회주의적 시도는 필연적으로 제왕적 폭정으로 변질됩니다. 궁극적으로는  자유로운 시민들과 경제주체들을 노예로 만들고야 말지요.  

  그러니까 정부는 자기가 머리 속으로 꾸며낸  질서를 사회에 강제로 부과하려고 하지 말고 시장의 자유로운 작동을 방해하는 제도적 장애물들을 제거해야 합니다. 이 장애물 중에서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정부가 경제사회를 간섭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마련한 제도들입니다. 그리고 정부의 과제는  자생적 시장경제가 작동할 수 있도록 하는 자유를 보장하는 정의의 행동규칙을 찾아내고 이를 집행하는 데에만  공권력을 행사해야 합니다. 법치주의를 지켜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인류를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20세기 가장 위대한  자유주의 대변자

  위의 글은 하이에크(Friedrich August von Hayek; 1899∼1992)의 유산 중에서 필자가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는 부분을 연설문 형식으로 재구성한 내용입니다. 그는  대다수의 지식인들이 사회와 경제는 인위적으로 계획되어야 하고, 이 계획에 따라 사회와 경제를 통제해야 한다는, 그리고 정부의 간섭을 될 수 있는 대로 증대해야 한다는 좌파이데올로기가 압도하던 시기에 이런 내용의 사상을 개발하고 정립하여 이를 설파하는데 일생을 받혔습니다. 당시 그의 사상은 인정을 받지 못했고 인기도 없었지요.

  그러나 그는 결코 인기에 영합하지 않고 엄정하게 반대파의 논리를 반박하면서 자유주의를 이론적으로 그리고 철학적으로 정립하는데 일생을 바쳤습니다. 유명한 영국의 『이코노미스트(The Economist)』誌가 일컫듯이, 그는 “20세기 가장 위대한 자유의 대변자”였습니다. 1974년, 75세가 되던 해에  노벨 경제학상이라는 명예를 안은 그 노학자는 좌파이데올로기에 편향된 정부개입이나 간섭은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유해할 뿐이라는 것을, 그리고  자유사회를 회복하는 것만이 인류에게 평화와 번영을  보장해 줄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주장했습니다.

  올해는 하이에크가 태어난지 102주년이 되는 해입니다(5월 8일). 이 시점에서 그의 자유주의 유산을 다시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그가 전 생애를 바쳐 날카롭게 비판했던 계획과 통제 그리고 정부 간섭이라는 좌파 이데올로기가 지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우리 사회를 압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서구사회와 전혀 다른 현상입니다.

  서구사회는 오늘날 과거의 낡은 복지정책과 계획경제를 과감히 버리고, 될 수 있는 대로 개인의 자유와 시장경제를 복원하려 하고 있습니다. 영국, 미국, 뉴질랜드, 칠레, 싱가폴, 심지어 독일 등에서도 민영화, 규제개혁, 의료보험과 연금개혁 그리고 노동시장의 유연화 등, 다양한 개혁정책들을 펼치고 있습니다.  자유지향적으로 개혁하면서 정부의 간섭과 통제를 될 수 있는 대로 줄이려 하고 있습니다.

  하이에크 사상은 여전히 이러한 정책들을  이론적으로 그리고 철학적으로 뒤받침하고 있습니다. 그의 사상은 서방국가들에게 현실의 경제를 설명하고, 현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뚜렷한 방향과 비젼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1991년 그는 1980년대 미국의 시장친화적 개혁을 주도한 로날드 레이건 대통령으로부터 자유를 수호하는데 기여한 공로로 자유메달 상을 받은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이들 국가에서는 민간 기업은 물론 금융기관, 교육, 의료 등, 어느 것에도 간섭하고 통제하거나 직접 개입하는 일이 흔하지 않습니다. 관치금융이나 구제금융이 없습니다. 정부의 기업통제나 조사, 사찰도 있을 수가 없습니다.

좌파 이데올로기로 경도된 한국사회

  그러나 지금 우리 사회는 그렇지가 못합니다. 좌파이데올로기에 경도된 지식인들은 하이에크의 사상을 ‘신자유주의’라고 부르면서 우리 사회가 현재 겪고 있는 모든 어려움을 이 신자유주의 탓이라고 매도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수많은 사회적 경제적 문제는 사실상 계획과 통제 그리고  정부간섭의 결과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국가의 간섭이 적기 때문에 생겨났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보다 더 큰 평등을, 복지사회 건설을 위해서, 정부가 더 많이 개입해야 한다는 좌파 주장이 우리사회의 여론형성을 주도하고 있습니다. 좌파이념에 편향된 각종 지식인 사회단체들의 목소리와 정치적 영향력도 매우 큽니다.

  정부도 계획과 통제 그리고 간섭이라는 좌파이데올로기에 편향되어 있는 듯한 인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정부는 좌파 사회단체들의 영향을 너무 많이 받고 있습니다. 이들의 목소리만을 진리인양 기꺼이 경청하고 이들의 요구를 흔쾌히 들어주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더욱 더 많은 정부의  계획과 통제, 그리고 간섭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당연하지요.

  관치경제, 관치의료, 관치교육, 구제금융이 과거 어느 때보다도 더욱 더 심화되고 있다는 말이 거짓이 아닌 것 같습니다. 공기업의 민영화는 고사하고, 오히려 금융기관의 공기업화가 더욱 심화되고 있습니다. 시장의 역할을 정치적인 전문가 집단(관료, 정치가, 학자나 지식인)이 대신하고 있는 것이지요.

좌파 지식인의 지적 자만은 치명적 결과를 초래

  그러나 하이에크는 시장경제와 같은 자생적 질서의 역할을 전문가 집단이 대신하려는 시도를 강력히 반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도는  사회를 계획할 수 있고 조종통제할 수 있는 지적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전문가들의 지적 자만심에서 비롯된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그와 같은 시도는 치명적 결과만을 초래할 뿐, 절대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지요.

  자생적 시장경제의 가격들은 수백, 수천만의 인간들이 제각기 가지고 있는 서로 다른  지식들을 최대한으로 수렴하고  반영하여 그들의 행동을 안내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지요. 가격은 칠흑같이 어두운 밤에 나침반이 없이 항해하는 항해사들에게 방향을 제시하는 등대와도 같이 훌륭한 역할을 수행합니다. 그것은 모든 사람들의 행동을  똑같이 차별하지 않고  안내하는 역할을 하지요.

  그리고  개개인들이 오류를 범하면, 자생적 시장경제는 그 실수를 정확하게 그리고 빠짐없이 가려 내는 역할도 하지요. 이를  인정사정 가리지 않고 공정하게 처벌하거든요. 잘못된 지식을 가지고 행동하는 사람들을 모조리 처벌하거든요. 부자라고, 아니 권력자라고 봐주지 않습니다. 시장경제가 수행하는 상벌에는 예외(특혜와 특권)가 있을 수 없습니다. 이런 통제행사의 자의성이 개입될 여지도 없습니다.

  자생적 시장질서를 선험적으로 고안된 인위적 질서로 대체한다면  시장경제의 안내기능과 통제기능은 소위 전문가 집단이 대신하여 맡게 됩니다. 그 집단은 가격을 정치적으로 정할 것이고 개개인들의 행동을 통제하겠지요.

  그러나 전문가 집단은 적절한 가격을 산출하고 개인들의 행동을 적절히 통제하는데 필요한 지식과 정보를 완전히 갖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 집단은  필연적으로  단편적이고 오류 투성이의 지식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지식을 가지고 가격을 정하여 불특정 다수의 인간들을 안내할 것이고, 또 이들의 행동을 통제할 것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건방진 일인지 생각해봐요.

  필연적으로 경제주체들을 잘못된 방향으로 안내할 것이고, 그리고 그들의 행동을 통제하는 경우에도 자의적이고 차별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 때문에 사회주의 계획경제가 실패한 것입니다.

  그리고 공교육 파탄, 의료보험의 재정 파탄, 의약분업의 실패,  구조조정의 실패, 거액의 공적 자금유실 등,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사회적 문제들도 예외가 아니에요. 자생적 시장이 해야 할 일을 관료나 정치가 그리고 지식인 집단이 대신 하겠다는 시도에서 생겨난 것입니다.

좌파 지식인은 하이에크로부터 배워야

  하이에크는 1940년대부터 사회주의 계획경제와 복지국가는 스스로를 붕괴시키는 고질적 요인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을 줄기차게 주장했습니다. 그 요인이 바로  지식의 문제입니다. 지식의 문제 때문에 계획경제는 불가능하다는 것이지요. 그의 예측은 맞아 떨어졌습니다. 그가 1989년 병석에 누어 동유럽이 무너지는 광경을 TV를 통해 지켜보면서 ” 저것 봐, 내가 뭐랬어”라고 말했다는 군요.

  그가 지금 한국의 실정을 본다고 해도 똑같이 말할 것입니다: “사회주의 이념에 편향된 전문가 집단의 지적 자만 때문에 한국 사회경제가 멍들어 가고 있군.”

  복잡한 사회경제를 계획하고 통제하고 간섭하는 것이 얼마나 건방진 일인가를 좌파들은 곰곰이 따져봐야 할 것입니다.  인위적으로 사회를 만들려고 건방지게 대들지 말라는 것이지요. 그리고  자생적 질서의 존재에 대하여 경외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지요.  

  하이에크 탄생 102주년에 즈음하여 강조하고자 하는 바는 다음 네 가지입니다. 첫째로  좌파이데올로기에 편향된 지식인들은 지적인 자만심을 버리고 겸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사회질서를 계획하고 조종 통제하여 사회주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지적 능력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거대하고 복잡한 현대 사회를 좌파적 이데올로기로는 결코 다를 수 없다는 것이 그 두 번째입니다. 좌파 이데올로기는 오로지 소규모 사회에만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을 좌파 지식인들은 인정해야 합니다.

  셋째로 강조하고자 하는 바는 오늘날과 같은 거대한 사회에  좌파이데올로기를  실현하려고 할 경우, 정직성, 책임감, 타인의 권리에 대한 존중심, 그리고 관용, 법의 지배 등, 자유주의 가치가 여지없이 손상될 뿐만 아니라, 좌파가 애지중지하는 유대감, 연대감 같은 도덕까지도 파괴된다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홉스의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상태가 야기된다는 것이지요.  

  마지막으로 우리는 불가피하게 개인의 자유와 이를 바탕으로 하는 자생적 시장경제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지요. 교육에 대한 국가독점, 의료서비스 질서의 정부간섭과 계획 대신에 민간 영역의 자유로운 경쟁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민경국, 강원대 경제무역학부 교수, kwumin@hanmail.net)
* CARLITO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2-11-24 17: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