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촛불집회가 이렇게 불붙기 시작한 데는 수많은 중고교 학생들의 역할이 컸다.
5월 2일 처음 촛불집회에 가 봤을 때 나는 놀랐다.
주위에 다 중고등학생, 특히 여학생들이 많았다.
이들은 그 어떤 정치적 조직도 없이 자발적으로 청계천에 모여들어 자신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광우병 쇠고기의 수입 가능성에 대해 규탄했다.
그것도 아주 발랄하게.
이들만큼 자발적이고 단순명쾌한 정치적 사고와 행동을 먼저 보여 준 이들은 없다.
그런 면에서 이 학생들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주체적이다.
엄격한 통제하에 비인간적 경쟁과 수동성을 강요받는 최악의 환경에서 말이다.
그런데 이 학생들은 여전히 시민 주체와 다른 존재로 취급받는다.
오마이뉴스나 프레시안 같은 인터넷 언론에서조차 이들은 ‘시민과 학생’이라는 표현으로 구별된다.
그들은 아직도 주체적인 판단을 할 수 없는 미성숙한 존재로 간주된다.
이는 근대 자본주의가 가부장제와 결합하면서 사회 최소 단위인 가족을 효과적으로 통제하기 위한 방식 중 하나로 볼 수도 있다.
이들은 보호해야 할 대상이다.
그런데 이 때문에 이들은 성숙한 시민 이전 단계에 있는 존재, 판단이 어떤 순간에도 승인받지 못하는 존재, 즉 주체가 아닌 존재로도 규정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들이 지식을 습득하고 시민사회의 규범을 익혀 나가면서 동시에 그것을 증명하고 실천하는 주체라는 것이다.
물론 이들이 보호해야 할 대상이라는 근대적인 관념이 그들을 억압하는 이들에 대한 시민들의 분노를 불러일으키며 촛불집회의 어떤 상승 효과를 불러일으킨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이 학생들의 주체적인 판단과 실천마저 구분지어 보게 해서는 안된다.
투표권이 문제인가?
이 상황에서 투표권을 갖고 있는 시민들이 떳떳할 것은 눈꼽만큼도 없다.
시민들의 투표권이 보인 과오로 이 학생들이 시민들의 운동을 이끌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 학생들의 촛불집회를 시민들의 그것과 구분짓는 것은 부당하다.
아니, 정확히 말해 촛불집회에 참여하는 구성원을 시민과 학생으로 구분짓는 것은 부당하다.
시민들 속에 노동자, 학생, 자영업자, 농민, 공무원 등등이 있는 것이다.
괜히 말꼬투리 잡는 것 같지만 이들 학생들이 제 몫의 인정을 과연 제대로 받고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에 끄적여 본다.
“한국사람은 시민과 학생으로 나뉘나?”에 대한 한 개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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