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파란 : http://www.batoo.co.kr

이상윤(편집장. 이하 이) : 형, 정말 너무 오랜만에 뵙는 거 같아요.
김규항(이하 김) : 그래. 너무 오랜만이지?

: 일단 한 잔 하시죠.
: 그래. (모두 건배)

: 일산에 혼자 사신지 꽤 됐는데, 외롭지 않으세요?

: 음… 괜찮아. 나는 혼자 있어도 괜찮은 정도를 지나서 혼자 있는 거, 심심한 걸 즐기는
성격이니까. 원래 그랬어.

: 일산은 러브호텔이 많기로 유명한 동넨데, 어떻습니까? 그 문제 때문에 한참 말들도 많았는데…

: 글쎄… 한 번도 이용해본 적은 없어.(웃음)
… 사실 일산 지역에 대해 별 관심이 없어. 밖에 잘 나가지도 않고. 다만… 내 생각엔, 그건 관하고 주민들과의 싸움인데, 러브호텔이라는 업 자체가 불법이거나 죄는 아니라고 생각해. 그런 업소도 필요하지. 수요가 있으니까… 그런데 관에서 세수 확대를 위해서 그러는지 구분 없이 주택 옆에다 허가를 내주고 그러니까 자꾸 주민들은 업주들이 마치 사탄의 자식이라도 되는 양 싸워대는 거라구. 다 관의 책임이지.(웃음)

: 일산은 러브호텔이 많기로 유명한 동넨데, 어떻습니까? 그 문제 때문에 한참 말들도 많았는데…

최근에 화가 홍성담 선생의 홈페이지 게시판에 들어가 보니까 형이 계속해서 꽤 많은 이야기를 남기고 계시더라구요. 그런데 저는 그걸 보면서 ‘이게 과연 규항이 형이 올린 글인가?’ 했어요.

: 왜?

: 거기 올리신 글들을 보면 도무지 형의 무게를 느낄 수가 없더라구요. 형 하면 원래 ‘무게’잖아요.(웃음)

: 내가 그나마 글을 올리고 하는 유일한 웹 커뮤니티가 바로 거기야. 암튼… ‘품위’ 같은 좋은 말도 있는데… 무게라고? 나쁜 자식…(모두 웃음)

: (웃으며) 거기에 ‘알통닷컴’이라는 싸이트에 대한 언급을 하신 적이 있는데, 그곳은 무얼 하는 곳이죠?

: 나하고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곳은 아니고 도와줄 수 있는 일이 있을 때 그저 도움을 주고 그러는 곳인데, 거기는… 육체미를 하는 곳은 아니고(모두 웃음), 인터넷상에서 시각매체운동을 하려고 하는 곳이야. 홍성담 선생을 비롯한 몇몇 미술가들이 웹상에 모여서 새로운 방식의 운동을 해보겠다는 거야.

: 형은 딴지일보 이사로 재직하시다가 그만두신지 좀 되었는데, 딴지에 계실 때 느낀 그곳의 분위기 혹은 그들 의 마인드에 대해 들어볼 수 있을까요? 그리고 그만두시게 된 구체적인 이유도 궁금하구요.

: 음 그건 내가 얘기하긴 좀 그렇다. 내가 지금 딴지에 대해 칭찬을 한다거나 비평을 하는 일은 좀 적절하지 못한 일이지. 다만… 그만둔 이유는, 진보가 잘 안되더라구. 월급도 많이 받는 편이었고. 내가 경제적으로 늘 쪼이다가 그렇게 좀 제대로 돌아가게 되니까 정신적으로 좀 느슨해지더라는 거지. 좀 어려워야(경제적으로) 돼. 어려워야 어느 정도 긴장도 유지되고, 어려운 사람들에 대한 공감도 가질 수 있고.

: 그렇다면, 형 말씀은 경제적으로 좀 여유가 있는 상태에서는 진보라는 것은 불가능하단 의미인가요?

: 뭐… 그렇게 될 수 있는 사람도 있겠지. 그렇지만… 진보주의자라는 것은 지금 현재사회의 문제를 지적하면서 바뀐 세상을 지향하는 건데, 그건 현재 사회에서 잘먹고 잘살고 별 문제가 없는 사람들의 삶을 개선하려고 하는 게 아니잖아.
문제가 많은 사람들이 부당하게 많다는 사실을 개선하려고 하는 거지. … 한국사회에서 진보주의를 주장하면서 자기 자신은 한국인들의 평균 삶보다 안락한 삶을 산다는 것은 좀 코믹하다고 봐야지. 만약 그러면서도 진보의식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지나치게 관념적인 사람이나 정신적으로 분열이 쉽게 되는 사람, 혹은 유머 감각이 너무 몸에 밴 사람일 꺼야.

: 얼마 전에 형의 칼럼집 「B급좌파」가 나왔죠. 저희는 그 책이 ‘한겨레’나 ‘아웃사이더’에서 나올 줄 알았는데
‘야간비행’이라는 출판사에서 냈더라구요. 형이 운영하시는 ‘아웃사이더’와 ‘야간비행’은 어떤 관계죠?

: 같은 곳이야. 그러니까 ‘야간비행’은 일종의 독립 레이블이지.

: 그렇게 따로 만드신 이유는요?

: 그건… 나는 작년 하반기부터 공식적으로 「아웃사이더」의 편집진에서 빠졌어. ‘아웃사이더’라는 출판사는 내 것도 아니고 나를 중심으로 해서 돌아가는 것도 아니거든. 언제든 나하고 분리될 수 있는 거지. 그래서 ‘야간비행’을 따로 만든 거야. 둘의 성격을 굳이 구분해 본다면, ‘야간비행’은 좀더 진보적이고 좌파 지향적인 출판을 할 생각이고, ‘아웃사이더’는 극우와의 싸움을 하는 곳으로서 어디까지나 자유주의적인 것을 지향하는 곳이지.

: ‘야간비행’이라는 이름에 담긴 나름의 뜻이 있을 것 같은데요.

: 잘 모르겠는데.(웃음) ‘야간비행’이라는 이름이 너무 멋있다고 하면서 물어봤으면 할 말이 있을 텐데.(모두 웃음) 근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설명을 하자면(모두 또 웃음)…, 요즘의 항공기술이나 비행기술로 봤을 때는 야간비행이라는 건 주간비행하고 사실 아무런 차이가 없어. 다 컴퓨터로 하니까. 조종사들이 조종교육을 받는 것도, 컴퓨터 시스템에 문제가 생겼을 때를 대비하는 거야. 하지만 초기 비행역사를 보면, 야간비행이라는 것은 모험의 차원을 넘어서 거의 못 돌아오는 것이었다구. 사람의 육안과 감각에 의존해서만 조종을 했으니까. … 그렇게 어려운 상황, 불확실한 상황, 하지만 상당히 도전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의미… 뭐 좋게 해석한다면 그렇게 해석할 수 있겠지. 책에도 ‘저 너머 세상을 향하여’라고 나와 있는데, 그건 진보주의의 서정적인 표현이지.

: (기자 중 한 명이 무릎을 꿇고 앉아 있자) 왜 이렇게 앉아 있지? 편하게 앉아요.

김이연(기자. 이하 연) : 어… 편한데요.

: … 나는 이렇게 앉으면 답답해서 견디질 못하는데.

: 저는 아예 저렇게 앉질 못합니다.(편집장 덩치 장난 아님. 모두 웃음)

: 그래? (웃으며) 코끼리는 말이야 성교 중에 죽기도 한데. 무게를 못 견뎌서…

: 에이∼ 형 지금 저 들으라고 하시는 말씀이에요? 정말 너무 하시네요.(모두 웃음)

: 「아웃사이더」 편집진에서 빠졌다고 하셨는데, 「아웃사이더」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형과 노선을 같이하는 분들(홍세화, 진중권, 김정란 등)과도 분명 모든 의견이 같을 수는 없었을 것 같은데, 그분들과 형 사이에 차이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그리고 강준만씨와 형과의 차이가 있다면… 평소에 느끼신 대로 얘기해주세요.

: 음… 간단하게 말하면, 지금 언급된 분들은 좌파가 아니지. 나는 좌파고. 그 사람들 중에 좌파적 자유주의자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은 있지만, 내가 보기엔 좌파는 아니야. … 우리가 이념적인 구획을 얘기할 때 좀 헷갈리기도 하는데, 강준만씨가 마치 진보주의자처럼 말하지만 사실 그 사람은 보수주의자라구. 현재의 자본주의시장경제 시스템을 옹호하는 사람이니까. 지금 현재 자본주의 사회에서 좌파라는 것은 자본주의 체제 자체를 부인하는 사람이야. 문제의 출발은 여기서부터 있는 거지. 물론 세부로 들어가면 연대할 수 있는 사람들이지만…. 근데 재미있는 것은, 내가 「아웃사이더」를 구상하고 사람을 모으고 하던 시점에서는 나도 그랬다는 거야. 소위 학생운동을 하던 80년대 좌파들이 90년대 들어서는 집으로 다 돌아갔거든. 다 그런 식으로 사고가 굳어졌지. 그런데 나는 글을 쓰고 「아웃사이더」를 만들고 하면서 그 와중에 스스로를 다시 좌파로 추스른 거야. 그러니까 재미있는 건, 아니 재미있다기보다는 좀 불행한 건데…, 내가 「아웃사이더」를 구상하고 진행하는 데 몇 달이 걸렸는데 그 동안에는 자유주의적인 좌파 혹은 좌파적인 자유주의에 가까웠다가 「아웃사이더」가 실제로 나오고 몇 달 지나고 그러면서 분명한 좌파로 스스로를 잡아가기 시작했다는 거지. 그렇게 되면서, 그 전하고 달리 그분들하고 한 조직 안에서 연대하기가 조금씩 어려워진 거지. 하지만. 그런 차이가 그렇게 중요한 건 아니야. 「아웃사이더」는 원래 내걸은 구호 자체가 ‘차이를 무릅쓴 연대’였다구. 「아웃사이더」의 실제적인 적대 대상은 창간호에서도 적시했듯이 조선일보와 같은 한국사회의 ‘극우’였고, 그것을 해결하는 데에 있어서 자유주의자와 좌파의 구분은 없다는 거였지. 그것이 둘 다에게 공통된 과제였던 거야. 내가 처음에 한참 조선일보에 대해서 공개적으로 욕을 하고 그럴 때에는, 나와 마찬가지로 조선일보에 대한 반대의사를 표명하는 지식인은 한국을 통틀어서 대여섯 명 이내였어. 그런데 지금은 수도 없이 많지. 지금은 조선일보를 옹호하는 게 더 어렵잖아. 오히려 마이너야.

그랬다간 인간 취급을 못 받게 되지. 아무튼 작년 말쯤부터 그런 세가 상당히 커졌고, 내가 가장 우선시 해서 열정을 바칠 운동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 나는 ‘내가 무엇을 하는가’가 중요한 게 아니라, ‘내가 나를 어떻게 가장 효과적으로 사용하는가’가 중요하다고 생각해. 그것이 진보주의자의 자세니까. 그런 차원에서 봤을 때…, 안티조선 운동은, 이제 ‘운동’이 아니잖아? 거기에 무슨 실존적인 결단이 필요한가? 그건 이제 대통령도 하고 있는 거고, 공익 캠페인에 가까운 거지. 나는 작년 말쯤에 그런 징후에 대해 확신했던 거지. 물론 조선일보에 대해 분명한 의사표시를 하는 지식인이 대여섯 명밖에 안될 때에는, 사회주의고 뭐고 내가 거기에 전념할 수 있었어. … 하지만 이제 그것이 이렇게 확대되고 어느 정도 기반이 생긴 다음에는 굳이 내가 그렇게 앞장서서 전념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거지. 그리고, ‘그렇다면 지금 현재 내가 열정을 바쳐야 할 문제는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됐고. 이런 것이 바로 좌파적인 모색을 분명히 하는 것이기도 하고. 그러니까… 선택은 두 가지였던 거야. 「아웃사이더」를 내가 구상했고, 내가 주도했다는 걸 니가(이상윤 편집장) 옆에서 봐서 알지만… 「아웃사이더」자체를 변화시키는 방법과, 내가 나가는 방법이 있었어. … 나는 후자를 선택했지.

내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게 전부는 아니야. 나한테 중요한 것일 뿐이지. 나를 뺀 지금 현재 나머지 세 사람은, 비슷하게 연합할 수 있는 사람들이야. 그건 중요한 거야. 극우와의 싸움은 아직 끝난 게 아니거든. 그렇지? 매스컴 영역, 지식인 영역, 청년 영역에서는 이미 세가 우세해졌다고 볼 수 있지만, 실제 걔들(극우)의 권력이나 자금력을 보면 여전히 그쪽이 우세하다고. 아직 바뀐 게 아니야. 겉으로만 바뀐 거지. 그래서 나는 후자를 선택한 거고. 조선일보하고 싸우는 「아웃사이더」는 여전히 중요하니까….

그런데, 하지만, 내가 하고싶은 다른 것도 내겐 중요하니까, 내가 생각하는 ‘가장 좋은것’을 따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 거야. 두 개가 있으면 더 좋으니까. … 어떤 후배들은 ‘처음부터 거의 혼자 살림하듯이 해놓고 왜 남 주듯이그러느냐’고 하기도 하는데, 그것은… 진보주의자로서는 가질 수 없는 생각이야. 그건 자기 재산이 아니거든. 이 : 근데 말이죠…, 극우라는 것도사실은 다양한 분야에 있어서 각기 다른 모습으로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에, 형이 지금 말씀하시는 극우의 개념 그 반대쪽에 놓여 있는 사람들도 어떤 다른 면에선 상당히 극우적인 성향을 보이기도 하거든요. 김 : 그렇지.(웃음) 이를테면, 밖에서 정치·사회적으로는 상당히 진보적인 사람인데 집에들어가면 부인한테 ‘이년아 물 가져와’ 그러고.(모두 웃음) ‘남편 들어왔는데 밥도 안 해놨냐’, ‘이 아버지는 민족과 역사를 위해서 이렇게고생을 하는데 니들은 공부도 안하고…’ 이러면서 막 애들 때리고 그러는 놈들. 이거… 미친놈들 아니야? 정치적으로는 진보적일지 모르지만 다른일체의 부분에서 완전히 파시스트인 거지.

: 그렇다면, 자신을 ‘늘’ 좌파적이고 진보적인 상태에 놓여 있게 하려면 항상 스스로를 긴장시키는노력이 필요할 것 같은데요… 그런 것은 어떻게 가능할까요?

: … 그러니까 그것은 상당히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해. 이건 아주 의미심장한질문인데, … 나는 주 활동이 글을 쓰거나 말을 하는 거잖아. 그렇다면 나에게 있어서 그런 긴장은, 내가 하는 활동과 내 지향이 드러나는 글과 나의 실제 삶이 일치하도록 하는 노력인데… 다행히도 내 글을 보면 정치·사회의 영역만 얘기하는 것이 아니고 별 얘기를 다 한다고. 심지어 나중에 읽어보면, 낯뜨거워서 볼 수 가 없는 경우가 있어. 도대체 이런 얘길 왜 썼을까 하는 생각까지 한다고. 그런데, 그러니까… 그런 과정을 통해서 비교적 폭넓게 나 스스로를 긴장시키는 거야. … 예를 들어, 누군가 낯도 모르는 대중들을 대상으로 어떤 글을 썼다고 해보자. 나름대로 옳고 좋다는 얘길 했을 거 아니냐? 근데 그렇게 해놓고 지는 그렇게 안 살아. 그건 미친놈이지.(웃음) 이건 이념의 문제가 아니야, 인간성의 문제지.

그냥 못된 놈이야. 거짓말쟁이고.(모두 웃음) 나는 진보고 좌파고 다 필요 없고, 그런 거를 다떠나서 낯모르는 남들한테 어떤 얘기를 해놓고 지는 엉뚱하게 산다면 그건 미친놈이나 할 수 있는 짓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게 살 수가 없는 거야. 그런데, 너무나 당연한 이 이치를 지키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것이 참 안타깝지. 특히 한국 지식인들이 그런 경우가 많지. 글과 학적(學的)인 것과 자기 생활의 철저한 분리! 그런 거 보면 아주 돌아버리겠다.

: 사람들이 김규항 선배님의 특이사항으로 꼽는 것 중에 하나가, 98년 이전까지는 그저 출판인으로서 있다가 갑자기 글을 쓰기 시작하셨다는 건데, 저는 그 얘길 듣고서 ‘왜 그 전까지는 글 쓸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라는 의문이 들었거든요. 글을 쓰게 된 구체적인 이유랄 것이 있을까요? 그리고, 그때까지는 글 쓸 생각을 아예 하지 않으셨나요, 아니면 그 동안 꾸준히 연마하고 계셨던 건가요?

: 나는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한 건 없고 그냥 우연히 쓰게 된 거죠. 글을 쓰고 싶다거나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 적도 없어요. 음… 답변이 너무 간단해서 미안하네.(웃음) (잠시 생각을 하다) 어쨌든 나는… 인간관계를 통하지 않는 세상과의 소통방법으로 글쓰기를 생각한 건 사실인데, 그렇게 처음부터 그런 지면에 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어요. 씨네 21의 유토피아디스토피아 지면은 그렇게 싸구려 지면은 아니라구. 그건 씨네21 중에서도 약간… 무인도 같은 지면이니까…. 무슨 글쓰기 이력이 있는 사람도 아니었고. 씨네 21 입장에서도 아마 그건 모험이었을 거야. 암튼 글을 쓰기 위한 무슨 연마 같은 걸 하거나 그러진 않았어요.

: (의아한 듯)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글을 잘 쓰시죠?(모두 웃음)

: (장난스럽게) 그러게 말이야.(모두 웃으면서, 동시에, 너무 한다는 표정) (상황을 수습하려는 듯, 편집장에게) 이 말은 빼줘.
: (단호하게) 아∼ 이거 절대 못 빼요.(모두 웃음)

: (잠시 생각후) 그러면, ‘이 말은 빼줘’까지 넣어 줘. … 아∼ 완전히 좆됐구만.(모두 웃음)

: 그러니까 앞으로는, 글을 쓰기 위해서 무던한 노력을 했다고 얘기하세요. 그래야 시기를 안 당한다니까…(모두 웃음). (잔을 내밀며) 한 잔 하시죠.

최하영(기자. 이하 최) : 선배님께서 가장 인상깊게 읽은 책은 어떤 거죠?

: 음… 딱히 그런 건 없고, 대학 때 읽었던 김수영 산문집은 내가 솔직한 글쓰기를 하는 데에 영향을 줬지. 크∼ 오늘 쏘주가 맛있다.

: 김규항 선배님이 처음 글쓰기를 시작할 때, ‘솔직하게 써야겠다. 그리고, 익명의 사람들에게 영양가 있고 유익함을 줄 수 있어야겠다’는 두 가지 다짐을 하셨다고 들었거든요. 제가 보기엔 그 두 가지 다짐이 어느 정도 잘 지켜지고 있는 것 같은데, 선배님 스스로는 그러한 점에 대해서 개인적으로 만족을 하고 계시나요? 김 : 아∼ 이건 정말 중요한 질문이야. 음… 그것은, 한때는 상당한 회의를 갖게 하는 부분이었어요. 내가 작년 말쯤에 씨네 21에 쓰던 글을 한 석 달 정도 쉬었어요. 원래 두 명이 번갈아 가면서 썼기 때문에 쉴 수가 없었는데, 도정일 선생이 필자로 참여해서 세 명으로 늘어나는 바람에 쉴 수가 있게 됐지. 근데… 쉰 이유가 바로 그런 문제 때문이었어요. 그러니까… 참 부끄러운 일인데, 글을 쓰다보니까 슬슬 같잖은 권위 같은 것이 생기더라구. 내가 언제부터 지식인이었다고…. 글을 쓸 때도, 이 얘기는 좀 창피하다 싶으면 그걸 빼는 거야. 그러니까 처음처럼 그냥 완전히 빤쓰를 홀딱 벗는 것도 아니고, 내가 내세울 건 솔직함뿐이라는 생각도 없어지기 시작하는 거지. 근데 스스로 그걸 발견하게 됐어요. 나는 이런 걸, 소위 정신노동 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가장 치명적인 쥐약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거든요. … 사람은 칭찬을 많이 받고, 알아주는 사람이 많이 생기면 그런 게 생겨요. 어디 가서도 자꾸 자기가 이런 사람이라는 걸 내세우려고 하고, 겸손함을 잃어 가는 거죠. 음… 정말 창피한 일이지만 나한테서도 그런 징후가 보인 거예요. 정말 창피한 일이지만, 질문을 그렇게 정곡 을 찔러서 하니까 내가 얘기를 안 할 수가 없네. 암튼 그래서 또 선택은 두 가지다라고 생각했죠. 딱 그만두던지, 아니면 조금 쉬었다가 다시 하던지…. 나는 글쓰는 걸 그만둔다고 해도 상관없는 사람이에요. 내가 원래 지식인이었던 것도 아니고… 그냥 건달이었거든. 당신들처럼 말이지. 나한테 글쓰기라는 것은 그저 딱 삼 년 동안의 에피소드인 것이거든. 그러니까 그만두게 되면 그냥 그전처럼 살면 되는 거야. 그때도 굶어죽지 않고 살았다고. … 그런데도 미련이 좀 생겨서 좀 쉬는 방법을 택한 거지. 그래서 일단 석 달 정도를 쉬기로 했고, 그 동안 내 마음이 좀 추슬러지면, 초기의 겸손함이나 빈 마음 같은 게 다시 회복이 되면, 다시 쓸 것이고 아니면 그만둔다고 생각한 거지. 근데 이제 그게 회복이 된 건지, 그냥 계속 하고 싶어서 회복됐다고 내가 합리화하는 건지… 사실 잘 모르겠어요. … 솔직히 말하면, 나는 회복됐다고 생각을 하는데, 인간은 잠재적으로 자신을 합리화하니까… 그걸 객관적으로 확정할 순 없겠죠. 다만 앞으로 그것은, 글에서 드러나겠죠.

: 선배님의 글은, 아무리 딱딱한 얘기를 하더라도 늘 소소한 일상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예를 들거나 하시니까 참 재미가 있거든요. 문화비평가 고종석씨는 선배님의 글을 보고 “자신의 다채로운 인생체험을 에피소드로 박아 글쓰기의 효과를 최대화시키는 고도의 전술가”라고도 하셨잖아요. 이런 독자의 반응에 대해서…, 그러니까, 본인 스스로도 자신의 글이 재미있다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해요.

: 재미있다기보다는… 일상의 체험이나 에피소드가 많이 도입되니까, 좀더 쉽게 다가가는 것은 있겠죠. … 어떤 사람들은 그런 걸 보고, 상당히 전략적인 글이라고 하기도 하죠. 글의 설득력을 높이기 위해서 일부러 사적인 에피소드를 많이 집어넣는다는 거죠. 그게 칭찬일 수도 있는데…, 사실 그런 건 아니고, 그냥 생각나는 대로 쓰는 거예요. 나는 어떤 학적 이론 같은 것을 들이밀면서 글을 쓰거나 하는 일에는 익숙지가 않아서…. 오히려 딸하고 얘기했던 것이 쉽게 떠오르고 그러니까. 그리고 내 글을 읽는 사람들의 대다수는 사실 그런 생활 속에서 살잖아요. 보통 사람들이 늘 학술적인 토론이나 세미나를 하면서 살진 않잖아.

: 단이(김규항의 딸 김단)도 선배님의 글을 읽곤 하나요?

: (웃으며) 아직 못 읽지. 걔가 재밌어 하는 글은 또 따로 있지. 지 나이에 맞는…. 다만 나는, 나중에 단이가 고등학생이나 대학생이 됐을 때, 그땐 이미 오래된 책이겠지만, 내 글을 읽으면서 ‘이게 우리 아버지 글이네’ 이럴 것을 생각하면 좀 재미있지. 음… 이런 경우가 있어요. 사회적으로는 저명하고 칭찬을 받는 사람인데 자기 자식한테는 존경을 못 받는 사람들이 많다고. … 나는 내 인생의 목표는 없는데, … 나는 원래 목표가 없거든. 그냥 하루 하루를 사는 사람이야. 하루하루를 똑바로 살기도 어렵다는 게 내 생각이야. … 근데 한 가지 놓치고 싶지 않은 것이 있다면, 내 딸아이가 머리가 굵어졌을 때 나랑 딸아이가 인간대 인간으로서 서로 존경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그런데, 그렇게 되기 위해선… 아무 리 내가 세상 사람들을 좋은 글로 다 속일 수 있다고 하더라도 딸은 속일 수 없어요. 가정 생활에서는… 엄마한테 하는 모습도 매일 보고 그러니까. 딸아이가 나를 존경할 수 있으려면, 최소한 내가 인간적으로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어야 하거든. 나중에 자기 친구들이 내 글을 읽으면서 ‘야 이거 참 좋지 않냐’ 그러는 걸 보면서도, 자기 자신 은 그게 아버지 글이라는 사실이 쪽팔려서 얘기도 못하고 아버지를 경멸하고 그러면, 그건 정말 끔찍한 거지. … 내가 아무리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좌파가 된다고 하더라도, 심지어 내가 맑스가 된다고 하더라도, 나를 일상에서 매일 보는 딸아이가 ‘거짓말’ 이라고 한다면, 그건 인생 완전히 실패한 거죠.

: 그렇네요. 한 잔 하시죠.

: 그래. (웃으며) 내 얘기 괜찮았어?(모두 웃음)

: 네. 상당히 좋은 얘기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하신 얘기는…, (야비한 표정으로) 단이 뿐만 아니라 평소에 알고 지내시는 주변 사람들에게도… 예를 들어 저 같은 사람들에게 늘 최선을 다 하셔야 하는 이유가 되기도 하겠네요. 앞으로 두고 보겠습니다.

: (마구 웃음) 지금 최선을 다 하고 있잖아.(모두 웃음)

: 지식인으로서의 글쓰기라는 것이 스스로에게 주는 가장 큰 책임감은 어떤 거죠?

: 그것은 나의 도리인 것이고, 가장 중요한 것은… 내 글의 효용성에 대한 문제지. 세상에 어떻게 작용하는가 하는 문제. 이 세상을 보존하는 데 기여하는가, 아니면 별 생각 없이 사는 사람들을 자극해서 다시금 되돌아보게끔 하는데 기여하는가 하는 것. 나는 후자 쪽에 기여하길 바라지.

: 어느 글에서, 지식인이란, ‘내가 지향하는 바’와 ‘실제의 나’ 사이에 숙명적인 거리를 갖고 사는 ‘삶의 코미디언’이라고 언급하셨는데, 지향하는 자신과 실제의 자신의 모습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세요.

: 음… 어떻게 들을지 모르겠지만, 내가 좀 안이하게 생각하는 건지도 모르지만, 비교적 최선을 다 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지향하는 나와 실제의 나 사이의 간격을 좁히기 위해 최대한 노력하는 거죠. 나는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것 이상의 구호를 외치진 않아요. 그것도 중요한 문제인 것 같아. 지향하는 바라는 것도, 내가 내심 지향하는 것이 있고 공식적으로 지향한다고 표명하는 것이 있지. 근데 후자에 대해선 책임을 져야죠. 나는 후자에 대해 책임을 지려고 노력을 해요. 물론 그 책임의 수준을 전진시키기 위해서 더 노력해야겠지만. 외람 되지만 그렇게 최선을 다하고 있는 거죠

 

: 혹시 형의 그 말씀(지식인이란 ‘내가 지향하는 바’와 ‘실제의 나’사이에 숙명적인 거리를 갖고 사는 ‘삶의 코미디언’이다)이나 그 말로써 대변되고 있는 형의 입장과 생각이, 좌파 지식인을 지향하는 형에게 있어서 ‘어쩔 수 없음’을 인정하는 일종의 ‘융통성’으로 작용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으세요?

: 그렇게 듣고 보니까… 그렇게 사용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렇게 사용하는 건 아니야. 지식인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이란 그 숙명적인 간격을 좁히려고 하는 것이란 말이지. 이 말은, 일치하지 않아도 좋다는 뜻은 분명 아니거든. 오히려, 아무리 노력을 해도 일치하기가 어려우니까 최대한 끊임없이 노력을 해야하겠다는 뜻이지. … 좀 좋게 해석해주지 자식∼(모두 웃음)

: 연달아 죄송하지만, 형은 또 ‘서준식 선생은 자신의 이상을 활동가로서 펼치는 분이라면, 자신은 글과 말로 자신의 생각과 이상을 펼치는 지식인이라고 할 수 있다. 그 활동가에 반응하여 자괴감을 갖는다’고 하셨는데, 그런 솔직한 토로 역시 오히려 형의 입장의 방패막이가 되어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봤는데요. 물론 이런 질문은 형의 입장에서 본다면, 상당히 악의적인 질문일 수 있겠죠.

: 글쎄… 들어보니까 그것도 마찬가지로, 그렇게 사용될 수 있는 말이긴 하네. 그렇게 되지 않도록 노력을 할께. 나는 워낙 그저 그 간격을 좁히는데 갈급하니까…(웃음)

: 김규항 선배님 글에 자주 등장하는 말 가운데 몇 가지가 지식인, 진보, 좌파, 파시즘인데요, 과연 우리 나라에 진정한 진보, 진정한 지식인, 진정한 좌파가 있을까요?

: 다 알면서 왜 물어보지?(웃음) 날 또 사람들 욕을 하게 만드네.(웃음) … 별로 없는 거 같아요. 밥값을 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은 거 같지가 않다는 말이지. 그렇다고 또… 별로 없는 와중에 나만 진정한 지식인이나 좌파란 얘기는 아니고…. 나는… 내가 아직도 지식인들 사이의 일원이라는 생각은 별로 안 하는 거 같아. 그저 좋게 말하면, 주먹대신 글을 사용하는 건달. 이런 생각을 해요. 이런 것이 때론 나의 특성이 되기도 하지. 그래서 말도 망설이지 않고 하고….

: 제 주위의 한 친구는 스스로 좌파들을 싫어한다고 그러거든요. 그 이유는, 좌파라고 하는 자들과 그렇지 않은 자들을 보면 혀가 아닌 생활 면에서는 다를 것이 아무 것도 없기 때문이라고 하더라구요. 이건 현재의 좌파들이 끊임없이 받는 비판들 중에 하나이기도 할텐데, 이 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하네요.

: 그것은… 좀 간접적으로 설명을 해보자면, 교회가 싫다고 해서 예수 자체를 그런 식으로 재단할 수는 없잖아요? 이건 무슨 얘기냐면, 교회라고 이름이 붙어 있고 교회라고 주장한다고 다 교회는 아니라는 거지. 마찬가지로 좌파도… 좌파라고 칭해진다고 다 좌파는 아닌 거예요. 제대로 된 좌파, 그러니까… 좌파 그 자체를 함부로 재단하고 판단하는 것은 좀 무리죠.

: 굉장히 솔직하고 직설적인 글을 발표하시기 때문에 지지와 칭찬만큼이나 비판과 비난을 받을 때도 있을 텐데요, 그럴 때는 어떤 생각을 하시는지 궁금해요. 또, 익명을 전제로 아무런 논리 없이 감정적으로 인격적 모욕을 주는 사람들도 있잖아요, 그런 경우엔 어떤 감정으로, 어떻게 대처를 하시죠?

: 나는… 인터넷 게시판에서의 그런 류의 일들은 한국 사회의 특별한 현상이라고 보는데, 어쨌든 인터넷이든 오프라인이든 익명으로 다른 사람을 비판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나는 그 자체를 인정할 수가 없어. 익명으로 다른 사람을 비판할 때에는 함부로 말을 하게 되어 있어요. 그 비판에 대한 책임을 지지도 않는다고. 예전에 나에 대해서 아무런 근거도 없이 그냥 막 욕을 해대는 사람이 있었어요. 그래서 내가 개인적으로 그 사람한테 메일을 보냈지. 뭐라 그랬냐면, ‘또 그러면 목을 따버리겠다’고 그랬다고.(웃음) 그랬더니 답장이 왔어. ‘정말 잘못했다. 그 글 다 지웠다. 앞으로 주의하겠다.’ 나는 그게 더 싫더라구. 얼마나 근거 없이 함부로 씹어댔으면 자기 말을 그렇게 쉽게 취소할 수 있었겠어요. … 남에 대한 비판은, 아무리 싫어하는 사람이더라도 정말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해야하는 거라구. 그리고 아주 정당하게 해야하고. 예를 들어서 이런 말들… ‘김규항은 신촌 밤거리의 토사물과 같다.'(모두 웃음) 좋다 이거야. 토사물이든 뭐든. 그런데 그렇다면 왜 그렇다는 건지 근거를 대야 할 꺼 아니야. 이런 말들은 토론이 불가능한 얘기라구. 그건 그냥 순간적인 자기 느낌일 뿐이지. 익명이 아니면 그렇게 얘기할 수 있을까? … 예를 들어, 내가 만약 ‘진중권은 신촌 밤거리의 토사물이다.’ 이렇게 말한다면 나는 완전히 끝장날 거라구.(모두 웃음) … 암튼 그런 경우를 만나게 되면 정말 기분이 안 좋아.

: 형이 또 원래 기분 나쁜 건 절대 못 참으시잖아요.(웃음) 터프가이∼(모두 웃음)

: 터프가이? 나는 아주 섬세한 남자지.(모두 웃음) … 상윤아! 내가 재밌는 얘기 하나 해줄까?

: (반갑게) 네∼

: (미리부터 혼자 웃으며) ‘GQ’라는 세계적인 남성잡지 한국판 창간호가 올 봄에 나왔는데, 거기서 뭘 하자고 그랬는지 아니? (계속 웃으며) 최민수하고 나하고 대담을 하자는 거야.(모두 뒤집어짐) 주제가 ‘남자란 무엇인가?’였어.(탁자를 주먹으로 내리치며 웃음)

: 그래서 그걸 하셨어요?

: 아니 안 했지. 전화 오면, ‘아 여기 지리산인데요. 잘 안 들려요∼’ 하면서 끊고 그랬다고.(웃음)

: 아∼ 이거 너무 웃어서 안되겠다. 분위기를 좀 추스를 수 있는 질문을 빨리 합시다.

: 제가 할께요. … 사람들이 살다보면 여러 가지 원인에 의해서 변화를 겪게 되잖아요. 예를 들어, 학생시절 진보적인 학생운동을 하던 사람이 나이가 들어 보수적으로 변할 수도 있는 거구… 암튼 자신의 신념을 평생에 걸쳐 유지하기란 너무 힘든 일인 것 같거든요. 선배님은 생각이 분명하고 강한 분으로 보이는데, 심경에 변화가 와서 자신이 고수하던 신념이 변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세요? 만약 그런 경우가 생긴다면 자의식 때문에 쉽게 받아들일 수 없을 것 같은데…

: 일단, 누구나 그럴 가능성이 있지. 음… 자기의 신념을 자기의 힘으로 지킬 수 있는 사람은 없어요. 무슨 얘기냐 하면, 자기의 신념을 지킬 수 있는 자리에 자기를 계속 두는 것이 힘들다는 거지. 예를 들어서, 예전에는 운동하다가 현재는 한나라당에 들어가서 여당 속에서 진보적 모색을 하겠다거나 그러는 거. 그건 초인적인 목표이기 때문에 있을 수가 없는 일이라구. 근데 그런 게 되는 사람이 있긴 있어요. 자기의 신념을 어떤 경우에도 지킬 수 있는 사람. 이를테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게바라 같은 사람. 하지만 그런 사람은 알다시피 한 세기에 한 두 명 있겠지. 신념을 지키기 위한 방법은 신념을 지킬 수 있는 상황에 자신을 위치시키는 거예요. 자의식 때문에 신념을 쉽게 바꾸기 힘들지 않겠느냐고 했지만, 아까도 얘기했듯이 사람은 일초 일순간 늘 자신을 합리화하기 때문에 그렇지가 않아요. 이미 순간 순간의 합리화에 의해서 자연스러워졌을 테니까.

: 그런데… 그렇게 신념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이 정치를 해야 세상이 변할 수 있는 거 아닐까요?

: 그렇진 않지. 그런 사람은 워낙 적기 때문에 정치를 감당할 만큼 많지가 않다구.(웃음)

: 오늘… 음주인터뷴데 음주가 좀 부진하네요. 한 잔 하시죠들.

: 어, 그래. 말을 많이 하다보니까.(웃음) 암튼 참… 재밌네. 원래 ‘짬’ 인터뷰가 제일 재밌어.

: (불만스럽게) 형! ‘짬’은 이제 없어졌거든요.

: 아∼ 그렇지. 새파란이지! 허허허.

: 말 나온 김에, ‘새파란’이란 이름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세요?

: 음… 그러니까… 뭐 가장 좋은 건 ‘좆만한’… 이런 거지만(모두웃음), 그런 걸 사용할 순 없으니까…(웃음) 암튼 상당히 좋은 거 같아.

: 아무 것도 정해져 있지 않은 젊은 시기에는 각각 가슴속에 열정을 품고 사는 젊은이들이 많지만, 정작 삶에 있어서 선택의 갈림길에 서게 되면, 용기가 부족하거나 세상이 두렵거나… 쉽게 떨쳐낼 수 없는 고정관념 같은 것들의 영향 때문에 자신의 열정을 터뜨리지 못하고 세상의 주류적인 방향으로의 편입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요. 지금도 고민하고 방황하고 있을지 모르는 ‘새파란’의 젊은 독자들을 위해서 한 마디 해주실래요?

: 그런 건 마지막 질문으로 나와야 되는 거 아닌가?

: 에이 새파란 인터뷰에 그런 순서가 어디 있겠습니까.

: 그렇군. 그건… 어느 것이 진정 가치 있느냐 하는 건데… 사람은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 즉 ‘신념’을 자기 삶과 일치시키는 것이 가장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거죠. 근데 사람이 좀 이상해지기 시작하면 그런 건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게 되어버리지. 이른바 세속적인 것에 매달리게 되고. 하지만 본인의 내심 한 구석에는 분명 행복하지 않다는 생각이 남겠지. 자기가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정신을 유지하는 것은 상당히 중요한 거예요.

: 선배님은 젊었을 때 그런 고민 안 하셨나요?

: 고민 안 했어요. 나는 그런 걸 걱정해본 적이 없어. 내가 좋다고 생각되는 것이 있으면 그냥 그걸 하는 거야. 상당히 이분법적인 사고를 하는 거지. 이것이 또 나한테는 상당히 중요한 일이고…. 나는 어떤 선택의 문제에 있어서 나 자신을 속이거나 양보하거나 타협한 적은 없어요. 물론 그 선택에 오류는 있었을 수도 있었겠지만….
어떻게 보면 나는 세상에서 제일 마음이 편한 사람이라고 할 수도 있지. 그래서 대단히 무대책하기도 하고. 생활은 늘 위기의 상황이고.

: 선배님은 자신과 생각을 달리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 그 사람의 생각을 변화시키려는 쪽이신가요? 아니면 그 사람의 생각을 인정하는 쪽이신가요?

: 나는, 자기 주장만을 되풀이하는 것은 어떤 설득력도 없다고 봐요. 내 글에 사적 에피소드 같은 것이 자주 등장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지식인이라고 분류될 수 있는 사람치고는, 입장이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해도 상당히 유연한 대화가 가능한 편이라고 자부를 해요. …사람은 누구나 자기 생각이 옳다고 생각을 해. 그래서 주장을 하고. 그렇지만 그 이면에 자기 생각에 틀린 부분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겸손함이 있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대화가 있을 수가 없다구. … 나는 맑스에서 출발한 사람이 아니고 예수에서 출발한 사람이기 때문에, 인격 자체에 대한 존중, 존엄에 대한 인정 같은 건 좀 철저한 편이지.

: ‘세상에 의심을 품기 시작한 것은 고등학교 시절이었던 것 같다’ 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고등학교 시절에 어떤 학생이셨나요?

: 고등학교 초기에는 모범적이고 평범했지. 근데… 내가 내신 첫 세대거든. 그때 내신이 15등급까지 있었는데, 내가 13등급이야. 말 다했지.(웃음) 고등학교 2학년 이후로는 거의 학교도 잘 안 나갔고…. 내 글 ‘영감과 빠가사리’를 봤으면 알겠지만, 수업시간에 교실 문 걷어차고 죽도록 두들겨 맞으면서도 끝까지 잘못했다는 말을 안 해서 계속 죽도록 더 두들겨 맞은 그날… 그 즈음에서 내가 급변했지. 보통 애들이 탈선하는 데에는 어떤 경로가 있게 마련인데, 나는 그걸 그날 하루에 그냥 끝낸 거야. 내 입장에서 지금 보면, 그때 이후로 내가 사람이 됐고 아무 것도 모르던 아이 하나가 인생에 대해서 알기 시작하게 된 거지. 물론 어른들이나 선생의 입장에서 보면 애 하나가 갑자기 완전히 망가진 거겠지만.(웃음) … 암튼 그날의 일하고 나중에 우연히 한신대에 들어가게 된 일 두 가지가 나를 만들었다고 생각해.

: 선배님, 어렸을 때 꿈은요?

: 없어요. 나는 어렸을 때고 지금이고 꿈이 없어. 오늘 하루를 똑바로 살기도 힘든 판에 무슨 꿈을 꾸겠어. 잘 때 꾸는 그런 꿈도 잘 안 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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