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하는 지성’의 상징인 프랑스의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가 23일 밤 71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구별짓기> <상징폭력과 문화재생산> 등에서 이룬 비판사회이론가로서의 업적과 함께 무엇보다 그는 실천적 지식인의 전형이었다. <쎄느강은 좌우를 나누고 한강은 남북을 가른다>의 저자 홍세화씨가 글을 보내왔다.편집자
에밀 졸라에서 사르트르로 이어지는 프랑스 지식인의 사회참여 전통을 이어받은 큰 별, 피에르 부르디외가 세상을 떠났다. 농민운동가 조제 보베의 말처럼, 그는 이론적 담론과 사회운동을 분리시키지 않는 의지를 한 순간도 놓지 않은 `삶 자체가 참여’였던 지성인이었다.
개인적으로 콜레주 드 프랑스의 강의실에서 먼발치로 본 적밖에 없지만 나에게도 그는 큰 스승의 한 분이었다. “사회학적 성과를 이루면서 사상과 행동의 변증법을 살았다”거나 “사회 참여와 분리될 수 없는 과학으로 사회학을 살았다”는 평가들 너머 내가 그에게서 받은 가장 중요한 가르침은 지식인의 자기성찰에 관한 것이었다. 사계의 권위자로 인정받는 콜레주 드 프랑스의 사회학교수가 되었을 때 그 학교와 교수들에 대한 사회학적 분석으로 첫 강의를 시작했던 그는 20년 뒤 마지막 강좌의 주제를 `피에르 부르디외’로 정해 자기 자신을 분석 대상으로 삼았다. 요컨대, 그에게 있어서 사회와 만나는 방식에 관한 지식인의 자기성찰은 사회 참여의 기본 조건이며 출발점인 것이다. 그에 따르면, 가령 한국의 대학강사들에 대한 착취구조에 맞서 싸우지 않는 대학교수들은 한국사회를 진단하고 비판할 자격이 없다. 그들 중엔 피에르 부르디외를 자주 인용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식민지땅 알제리에 대한 증언을 통해 연구 작업을 시작했던 그는 최근 몇년 동안 `행동하는 이성'(raison d’agir) 그룹과 함께 신자유주의에 대한 반대 투쟁에 온 힘을 경주했다. 그에게 “신자유주의는 보수주의 혁명으로, 과거를 복고시키면서 진보인 양 드러내는, 퇴보를 진보로 둔갑시킨 기이한 혁명”이다. 그리고 “쉬뢰더, 블레어, 조스팽은 `신자유주의를 적용시키기 위해 사회주의를 끌어들인’ 가짜 좌파들”이다. 그는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불러온 `비참한 세계’에 맞서, 그것이 빚어내는 사회적, 문화적 폐해에 맞서 지식인들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고 끊임없이 물으며 `좌파의 좌파’를 제기한다. 3년 전에 그는 귄터 그라스와 가졌던 회견에서 사회적 발언을 할 기회가 없는 사람들을 대신하여 발언해 마땅한 공인들이 공인으로 남기 위해 입을 봉하고 있다면서 `아가리를 열라’고 아가리를 열었다. 또 <세계의 진짜 지배자들에 관한 물음>을 통해 오늘날 정치경제적 권력보다 더 강력하게 작용하고 있는 상징 권력, 즉 커뮤니케이션을 장악하고 문화상품을 생산, 유통시키는 권력에 대한 비판적 지식인들의 견제 구실을 강조하였다.
피에르 부르디외, 그는 갔다. 그러나 그가 남긴 교훈은 우리들의 현실 속에 그대로 살아 있어야 할 것이다.
홍세화/<아웃사이더> 편집위원
그냥 오늘 우연히 알게 되어서 처음 들러봤는데…소개글 쓰기도 뻘쭘하고 해서…
자전거 타기는 오늘 건너뛰었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