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파란 : http://www.batoo.co.kr

이상윤(편집장. 이하 이) : 형, 정말 너무 오랜만에 뵙는 거 같아요.
김규항(이하 김) : 그래. 너무 오랜만이지?

: 일단 한 잔 하시죠.
: 그래. (모두 건배)

: 일산에 혼자 사신지 꽤 됐는데, 외롭지 않으세요?

: 음… 괜찮아. 나는 혼자 있어도 괜찮은 정도를 지나서 혼자 있는 거, 심심한 걸 즐기는
성격이니까. 원래 그랬어.

: 일산은 러브호텔이 많기로 유명한 동넨데, 어떻습니까? 그 문제 때문에 한참 말들도 많았는데…

: 글쎄… 한 번도 이용해본 적은 없어.(웃음)
… 사실 일산 지역에 대해 별 관심이 없어. 밖에 잘 나가지도 않고. 다만… 내 생각엔, 그건 관하고 주민들과의 싸움인데, 러브호텔이라는 업 자체가 불법이거나 죄는 아니라고 생각해. 그런 업소도 필요하지. 수요가 있으니까… 그런데 관에서 세수 확대를 위해서 그러는지 구분 없이 주택 옆에다 허가를 내주고 그러니까 자꾸 주민들은 업주들이 마치 사탄의 자식이라도 되는 양 싸워대는 거라구. 다 관의 책임이지.(웃음)

: 일산은 러브호텔이 많기로 유명한 동넨데, 어떻습니까? 그 문제 때문에 한참 말들도 많았는데…

최근에 화가 홍성담 선생의 홈페이지 게시판에 들어가 보니까 형이 계속해서 꽤 많은 이야기를 남기고 계시더라구요. 그런데 저는 그걸 보면서 ‘이게 과연 규항이 형이 올린 글인가?’ 했어요.

: 왜?

: 거기 올리신 글들을 보면 도무지 형의 무게를 느낄 수가 없더라구요. 형 하면 원래 ‘무게’잖아요.(웃음)

: 내가 그나마 글을 올리고 하는 유일한 웹 커뮤니티가 바로 거기야. 암튼… ‘품위’ 같은 좋은 말도 있는데… 무게라고? 나쁜 자식…(모두 웃음)

: (웃으며) 거기에 ‘알통닷컴’이라는 싸이트에 대한 언급을 하신 적이 있는데, 그곳은 무얼 하는 곳이죠?

: 나하고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곳은 아니고 도와줄 수 있는 일이 있을 때 그저 도움을 주고 그러는 곳인데, 거기는… 육체미를 하는 곳은 아니고(모두 웃음), 인터넷상에서 시각매체운동을 하려고 하는 곳이야. 홍성담 선생을 비롯한 몇몇 미술가들이 웹상에 모여서 새로운 방식의 운동을 해보겠다는 거야.

: 형은 딴지일보 이사로 재직하시다가 그만두신지 좀 되었는데, 딴지에 계실 때 느낀 그곳의 분위기 혹은 그들 의 마인드에 대해 들어볼 수 있을까요? 그리고 그만두시게 된 구체적인 이유도 궁금하구요.

: 음 그건 내가 얘기하긴 좀 그렇다. 내가 지금 딴지에 대해 칭찬을 한다거나 비평을 하는 일은 좀 적절하지 못한 일이지. 다만… 그만둔 이유는, 진보가 잘 안되더라구. 월급도 많이 받는 편이었고. 내가 경제적으로 늘 쪼이다가 그렇게 좀 제대로 돌아가게 되니까 정신적으로 좀 느슨해지더라는 거지. 좀 어려워야(경제적으로) 돼. 어려워야 어느 정도 긴장도 유지되고, 어려운 사람들에 대한 공감도 가질 수 있고.

: 그렇다면, 형 말씀은 경제적으로 좀 여유가 있는 상태에서는 진보라는 것은 불가능하단 의미인가요?

: 뭐… 그렇게 될 수 있는 사람도 있겠지. 그렇지만… 진보주의자라는 것은 지금 현재사회의 문제를 지적하면서 바뀐 세상을 지향하는 건데, 그건 현재 사회에서 잘먹고 잘살고 별 문제가 없는 사람들의 삶을 개선하려고 하는 게 아니잖아.
문제가 많은 사람들이 부당하게 많다는 사실을 개선하려고 하는 거지. … 한국사회에서 진보주의를 주장하면서 자기 자신은 한국인들의 평균 삶보다 안락한 삶을 산다는 것은 좀 코믹하다고 봐야지. 만약 그러면서도 진보의식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지나치게 관념적인 사람이나 정신적으로 분열이 쉽게 되는 사람, 혹은 유머 감각이 너무 몸에 밴 사람일 꺼야.

: 얼마 전에 형의 칼럼집 「B급좌파」가 나왔죠. 저희는 그 책이 ‘한겨레’나 ‘아웃사이더’에서 나올 줄 알았는데
‘야간비행’이라는 출판사에서 냈더라구요. 형이 운영하시는 ‘아웃사이더’와 ‘야간비행’은 어떤 관계죠?

: 같은 곳이야. 그러니까 ‘야간비행’은 일종의 독립 레이블이지.

: 그렇게 따로 만드신 이유는요?

: 그건… 나는 작년 하반기부터 공식적으로 「아웃사이더」의 편집진에서 빠졌어. ‘아웃사이더’라는 출판사는 내 것도 아니고 나를 중심으로 해서 돌아가는 것도 아니거든. 언제든 나하고 분리될 수 있는 거지. 그래서 ‘야간비행’을 따로 만든 거야. 둘의 성격을 굳이 구분해 본다면, ‘야간비행’은 좀더 진보적이고 좌파 지향적인 출판을 할 생각이고, ‘아웃사이더’는 극우와의 싸움을 하는 곳으로서 어디까지나 자유주의적인 것을 지향하는 곳이지.

: ‘야간비행’이라는 이름에 담긴 나름의 뜻이 있을 것 같은데요.

: 잘 모르겠는데.(웃음) ‘야간비행’이라는 이름이 너무 멋있다고 하면서 물어봤으면 할 말이 있을 텐데.(모두 웃음) 근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설명을 하자면(모두 또 웃음)…, 요즘의 항공기술이나 비행기술로 봤을 때는 야간비행이라는 건 주간비행하고 사실 아무런 차이가 없어. 다 컴퓨터로 하니까. 조종사들이 조종교육을 받는 것도, 컴퓨터 시스템에 문제가 생겼을 때를 대비하는 거야. 하지만 초기 비행역사를 보면, 야간비행이라는 것은 모험의 차원을 넘어서 거의 못 돌아오는 것이었다구. 사람의 육안과 감각에 의존해서만 조종을 했으니까. … 그렇게 어려운 상황, 불확실한 상황, 하지만 상당히 도전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의미… 뭐 좋게 해석한다면 그렇게 해석할 수 있겠지. 책에도 ‘저 너머 세상을 향하여’라고 나와 있는데, 그건 진보주의의 서정적인 표현이지.

: (기자 중 한 명이 무릎을 꿇고 앉아 있자) 왜 이렇게 앉아 있지? 편하게 앉아요.

김이연(기자. 이하 연) : 어… 편한데요.

: … 나는 이렇게 앉으면 답답해서 견디질 못하는데.

: 저는 아예 저렇게 앉질 못합니다.(편집장 덩치 장난 아님. 모두 웃음)

: 그래? (웃으며) 코끼리는 말이야 성교 중에 죽기도 한데. 무게를 못 견뎌서…

: 에이∼ 형 지금 저 들으라고 하시는 말씀이에요? 정말 너무 하시네요.(모두 웃음)

: 「아웃사이더」 편집진에서 빠졌다고 하셨는데, 「아웃사이더」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형과 노선을 같이하는 분들(홍세화, 진중권, 김정란 등)과도 분명 모든 의견이 같을 수는 없었을 것 같은데, 그분들과 형 사이에 차이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그리고 강준만씨와 형과의 차이가 있다면… 평소에 느끼신 대로 얘기해주세요.

: 음… 간단하게 말하면, 지금 언급된 분들은 좌파가 아니지. 나는 좌파고. 그 사람들 중에 좌파적 자유주의자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은 있지만, 내가 보기엔 좌파는 아니야. … 우리가 이념적인 구획을 얘기할 때 좀 헷갈리기도 하는데, 강준만씨가 마치 진보주의자처럼 말하지만 사실 그 사람은 보수주의자라구. 현재의 자본주의시장경제 시스템을 옹호하는 사람이니까. 지금 현재 자본주의 사회에서 좌파라는 것은 자본주의 체제 자체를 부인하는 사람이야. 문제의 출발은 여기서부터 있는 거지. 물론 세부로 들어가면 연대할 수 있는 사람들이지만…. 근데 재미있는 것은, 내가 「아웃사이더」를 구상하고 사람을 모으고 하던 시점에서는 나도 그랬다는 거야. 소위 학생운동을 하던 80년대 좌파들이 90년대 들어서는 집으로 다 돌아갔거든. 다 그런 식으로 사고가 굳어졌지. 그런데 나는 글을 쓰고 「아웃사이더」를 만들고 하면서 그 와중에 스스로를 다시 좌파로 추스른 거야. 그러니까 재미있는 건, 아니 재미있다기보다는 좀 불행한 건데…, 내가 「아웃사이더」를 구상하고 진행하는 데 몇 달이 걸렸는데 그 동안에는 자유주의적인 좌파 혹은 좌파적인 자유주의에 가까웠다가 「아웃사이더」가 실제로 나오고 몇 달 지나고 그러면서 분명한 좌파로 스스로를 잡아가기 시작했다는 거지. 그렇게 되면서, 그 전하고 달리 그분들하고 한 조직 안에서 연대하기가 조금씩 어려워진 거지. 하지만. 그런 차이가 그렇게 중요한 건 아니야. 「아웃사이더」는 원래 내걸은 구호 자체가 ‘차이를 무릅쓴 연대’였다구. 「아웃사이더」의 실제적인 적대 대상은 창간호에서도 적시했듯이 조선일보와 같은 한국사회의 ‘극우’였고, 그것을 해결하는 데에 있어서 자유주의자와 좌파의 구분은 없다는 거였지. 그것이 둘 다에게 공통된 과제였던 거야. 내가 처음에 한참 조선일보에 대해서 공개적으로 욕을 하고 그럴 때에는, 나와 마찬가지로 조선일보에 대한 반대의사를 표명하는 지식인은 한국을 통틀어서 대여섯 명 이내였어. 그런데 지금은 수도 없이 많지. 지금은 조선일보를 옹호하는 게 더 어렵잖아. 오히려 마이너야.

그랬다간 인간 취급을 못 받게 되지. 아무튼 작년 말쯤부터 그런 세가 상당히 커졌고, 내가 가장 우선시 해서 열정을 바칠 운동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 나는 ‘내가 무엇을 하는가’가 중요한 게 아니라, ‘내가 나를 어떻게 가장 효과적으로 사용하는가’가 중요하다고 생각해. 그것이 진보주의자의 자세니까. 그런 차원에서 봤을 때…, 안티조선 운동은, 이제 ‘운동’이 아니잖아? 거기에 무슨 실존적인 결단이 필요한가? 그건 이제 대통령도 하고 있는 거고, 공익 캠페인에 가까운 거지. 나는 작년 말쯤에 그런 징후에 대해 확신했던 거지. 물론 조선일보에 대해 분명한 의사표시를 하는 지식인이 대여섯 명밖에 안될 때에는, 사회주의고 뭐고 내가 거기에 전념할 수 있었어. … 하지만 이제 그것이 이렇게 확대되고 어느 정도 기반이 생긴 다음에는 굳이 내가 그렇게 앞장서서 전념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거지. 그리고, ‘그렇다면 지금 현재 내가 열정을 바쳐야 할 문제는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됐고. 이런 것이 바로 좌파적인 모색을 분명히 하는 것이기도 하고. 그러니까… 선택은 두 가지였던 거야. 「아웃사이더」를 내가 구상했고, 내가 주도했다는 걸 니가(이상윤 편집장) 옆에서 봐서 알지만… 「아웃사이더」자체를 변화시키는 방법과, 내가 나가는 방법이 있었어. … 나는 후자를 선택했지.

내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게 전부는 아니야. 나한테 중요한 것일 뿐이지. 나를 뺀 지금 현재 나머지 세 사람은, 비슷하게 연합할 수 있는 사람들이야. 그건 중요한 거야. 극우와의 싸움은 아직 끝난 게 아니거든. 그렇지? 매스컴 영역, 지식인 영역, 청년 영역에서는 이미 세가 우세해졌다고 볼 수 있지만, 실제 걔들(극우)의 권력이나 자금력을 보면 여전히 그쪽이 우세하다고. 아직 바뀐 게 아니야. 겉으로만 바뀐 거지. 그래서 나는 후자를 선택한 거고. 조선일보하고 싸우는 「아웃사이더」는 여전히 중요하니까….

그런데, 하지만, 내가 하고싶은 다른 것도 내겐 중요하니까, 내가 생각하는 ‘가장 좋은것’을 따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 거야. 두 개가 있으면 더 좋으니까. … 어떤 후배들은 ‘처음부터 거의 혼자 살림하듯이 해놓고 왜 남 주듯이그러느냐’고 하기도 하는데, 그것은… 진보주의자로서는 가질 수 없는 생각이야. 그건 자기 재산이 아니거든. 이 : 근데 말이죠…, 극우라는 것도사실은 다양한 분야에 있어서 각기 다른 모습으로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에, 형이 지금 말씀하시는 극우의 개념 그 반대쪽에 놓여 있는 사람들도 어떤 다른 면에선 상당히 극우적인 성향을 보이기도 하거든요. 김 : 그렇지.(웃음) 이를테면, 밖에서 정치·사회적으로는 상당히 진보적인 사람인데 집에들어가면 부인한테 ‘이년아 물 가져와’ 그러고.(모두 웃음) ‘남편 들어왔는데 밥도 안 해놨냐’, ‘이 아버지는 민족과 역사를 위해서 이렇게고생을 하는데 니들은 공부도 안하고…’ 이러면서 막 애들 때리고 그러는 놈들. 이거… 미친놈들 아니야? 정치적으로는 진보적일지 모르지만 다른일체의 부분에서 완전히 파시스트인 거지.

: 그렇다면, 자신을 ‘늘’ 좌파적이고 진보적인 상태에 놓여 있게 하려면 항상 스스로를 긴장시키는노력이 필요할 것 같은데요… 그런 것은 어떻게 가능할까요?

: … 그러니까 그것은 상당히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해. 이건 아주 의미심장한질문인데, … 나는 주 활동이 글을 쓰거나 말을 하는 거잖아. 그렇다면 나에게 있어서 그런 긴장은, 내가 하는 활동과 내 지향이 드러나는 글과 나의 실제 삶이 일치하도록 하는 노력인데… 다행히도 내 글을 보면 정치·사회의 영역만 얘기하는 것이 아니고 별 얘기를 다 한다고. 심지어 나중에 읽어보면, 낯뜨거워서 볼 수 가 없는 경우가 있어. 도대체 이런 얘길 왜 썼을까 하는 생각까지 한다고. 그런데, 그러니까… 그런 과정을 통해서 비교적 폭넓게 나 스스로를 긴장시키는 거야. … 예를 들어, 누군가 낯도 모르는 대중들을 대상으로 어떤 글을 썼다고 해보자. 나름대로 옳고 좋다는 얘길 했을 거 아니냐? 근데 그렇게 해놓고 지는 그렇게 안 살아. 그건 미친놈이지.(웃음) 이건 이념의 문제가 아니야, 인간성의 문제지.

그냥 못된 놈이야. 거짓말쟁이고.(모두 웃음) 나는 진보고 좌파고 다 필요 없고, 그런 거를 다떠나서 낯모르는 남들한테 어떤 얘기를 해놓고 지는 엉뚱하게 산다면 그건 미친놈이나 할 수 있는 짓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게 살 수가 없는 거야. 그런데, 너무나 당연한 이 이치를 지키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것이 참 안타깝지. 특히 한국 지식인들이 그런 경우가 많지. 글과 학적(學的)인 것과 자기 생활의 철저한 분리! 그런 거 보면 아주 돌아버리겠다.

: 사람들이 김규항 선배님의 특이사항으로 꼽는 것 중에 하나가, 98년 이전까지는 그저 출판인으로서 있다가 갑자기 글을 쓰기 시작하셨다는 건데, 저는 그 얘길 듣고서 ‘왜 그 전까지는 글 쓸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라는 의문이 들었거든요. 글을 쓰게 된 구체적인 이유랄 것이 있을까요? 그리고, 그때까지는 글 쓸 생각을 아예 하지 않으셨나요, 아니면 그 동안 꾸준히 연마하고 계셨던 건가요?

: 나는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한 건 없고 그냥 우연히 쓰게 된 거죠. 글을 쓰고 싶다거나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 적도 없어요. 음… 답변이 너무 간단해서 미안하네.(웃음) (잠시 생각을 하다) 어쨌든 나는… 인간관계를 통하지 않는 세상과의 소통방법으로 글쓰기를 생각한 건 사실인데, 그렇게 처음부터 그런 지면에 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어요. 씨네 21의 유토피아디스토피아 지면은 그렇게 싸구려 지면은 아니라구. 그건 씨네21 중에서도 약간… 무인도 같은 지면이니까…. 무슨 글쓰기 이력이 있는 사람도 아니었고. 씨네 21 입장에서도 아마 그건 모험이었을 거야. 암튼 글을 쓰기 위한 무슨 연마 같은 걸 하거나 그러진 않았어요.

: (의아한 듯)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글을 잘 쓰시죠?(모두 웃음)

: (장난스럽게) 그러게 말이야.(모두 웃으면서, 동시에, 너무 한다는 표정) (상황을 수습하려는 듯, 편집장에게) 이 말은 빼줘.
: (단호하게) 아∼ 이거 절대 못 빼요.(모두 웃음)

: (잠시 생각후) 그러면, ‘이 말은 빼줘’까지 넣어 줘. … 아∼ 완전히 좆됐구만.(모두 웃음)

: 그러니까 앞으로는, 글을 쓰기 위해서 무던한 노력을 했다고 얘기하세요. 그래야 시기를 안 당한다니까…(모두 웃음). (잔을 내밀며) 한 잔 하시죠.

최하영(기자. 이하 최) : 선배님께서 가장 인상깊게 읽은 책은 어떤 거죠?

: 음… 딱히 그런 건 없고, 대학 때 읽었던 김수영 산문집은 내가 솔직한 글쓰기를 하는 데에 영향을 줬지. 크∼ 오늘 쏘주가 맛있다.

: 김규항 선배님이 처음 글쓰기를 시작할 때, ‘솔직하게 써야겠다. 그리고, 익명의 사람들에게 영양가 있고 유익함을 줄 수 있어야겠다’는 두 가지 다짐을 하셨다고 들었거든요. 제가 보기엔 그 두 가지 다짐이 어느 정도 잘 지켜지고 있는 것 같은데, 선배님 스스로는 그러한 점에 대해서 개인적으로 만족을 하고 계시나요? 김 : 아∼ 이건 정말 중요한 질문이야. 음… 그것은, 한때는 상당한 회의를 갖게 하는 부분이었어요. 내가 작년 말쯤에 씨네 21에 쓰던 글을 한 석 달 정도 쉬었어요. 원래 두 명이 번갈아 가면서 썼기 때문에 쉴 수가 없었는데, 도정일 선생이 필자로 참여해서 세 명으로 늘어나는 바람에 쉴 수가 있게 됐지. 근데… 쉰 이유가 바로 그런 문제 때문이었어요. 그러니까… 참 부끄러운 일인데, 글을 쓰다보니까 슬슬 같잖은 권위 같은 것이 생기더라구. 내가 언제부터 지식인이었다고…. 글을 쓸 때도, 이 얘기는 좀 창피하다 싶으면 그걸 빼는 거야. 그러니까 처음처럼 그냥 완전히 빤쓰를 홀딱 벗는 것도 아니고, 내가 내세울 건 솔직함뿐이라는 생각도 없어지기 시작하는 거지. 근데 스스로 그걸 발견하게 됐어요. 나는 이런 걸, 소위 정신노동 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가장 치명적인 쥐약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거든요. … 사람은 칭찬을 많이 받고, 알아주는 사람이 많이 생기면 그런 게 생겨요. 어디 가서도 자꾸 자기가 이런 사람이라는 걸 내세우려고 하고, 겸손함을 잃어 가는 거죠. 음… 정말 창피한 일이지만 나한테서도 그런 징후가 보인 거예요. 정말 창피한 일이지만, 질문을 그렇게 정곡 을 찔러서 하니까 내가 얘기를 안 할 수가 없네. 암튼 그래서 또 선택은 두 가지다라고 생각했죠. 딱 그만두던지, 아니면 조금 쉬었다가 다시 하던지…. 나는 글쓰는 걸 그만둔다고 해도 상관없는 사람이에요. 내가 원래 지식인이었던 것도 아니고… 그냥 건달이었거든. 당신들처럼 말이지. 나한테 글쓰기라는 것은 그저 딱 삼 년 동안의 에피소드인 것이거든. 그러니까 그만두게 되면 그냥 그전처럼 살면 되는 거야. 그때도 굶어죽지 않고 살았다고. … 그런데도 미련이 좀 생겨서 좀 쉬는 방법을 택한 거지. 그래서 일단 석 달 정도를 쉬기로 했고, 그 동안 내 마음이 좀 추슬러지면, 초기의 겸손함이나 빈 마음 같은 게 다시 회복이 되면, 다시 쓸 것이고 아니면 그만둔다고 생각한 거지. 근데 이제 그게 회복이 된 건지, 그냥 계속 하고 싶어서 회복됐다고 내가 합리화하는 건지… 사실 잘 모르겠어요. … 솔직히 말하면, 나는 회복됐다고 생각을 하는데, 인간은 잠재적으로 자신을 합리화하니까… 그걸 객관적으로 확정할 순 없겠죠. 다만 앞으로 그것은, 글에서 드러나겠죠.

: 선배님의 글은, 아무리 딱딱한 얘기를 하더라도 늘 소소한 일상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예를 들거나 하시니까 참 재미가 있거든요. 문화비평가 고종석씨는 선배님의 글을 보고 “자신의 다채로운 인생체험을 에피소드로 박아 글쓰기의 효과를 최대화시키는 고도의 전술가”라고도 하셨잖아요. 이런 독자의 반응에 대해서…, 그러니까, 본인 스스로도 자신의 글이 재미있다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해요.

: 재미있다기보다는… 일상의 체험이나 에피소드가 많이 도입되니까, 좀더 쉽게 다가가는 것은 있겠죠. … 어떤 사람들은 그런 걸 보고, 상당히 전략적인 글이라고 하기도 하죠. 글의 설득력을 높이기 위해서 일부러 사적인 에피소드를 많이 집어넣는다는 거죠. 그게 칭찬일 수도 있는데…, 사실 그런 건 아니고, 그냥 생각나는 대로 쓰는 거예요. 나는 어떤 학적 이론 같은 것을 들이밀면서 글을 쓰거나 하는 일에는 익숙지가 않아서…. 오히려 딸하고 얘기했던 것이 쉽게 떠오르고 그러니까. 그리고 내 글을 읽는 사람들의 대다수는 사실 그런 생활 속에서 살잖아요. 보통 사람들이 늘 학술적인 토론이나 세미나를 하면서 살진 않잖아.

: 단이(김규항의 딸 김단)도 선배님의 글을 읽곤 하나요?

: (웃으며) 아직 못 읽지. 걔가 재밌어 하는 글은 또 따로 있지. 지 나이에 맞는…. 다만 나는, 나중에 단이가 고등학생이나 대학생이 됐을 때, 그땐 이미 오래된 책이겠지만, 내 글을 읽으면서 ‘이게 우리 아버지 글이네’ 이럴 것을 생각하면 좀 재미있지. 음… 이런 경우가 있어요. 사회적으로는 저명하고 칭찬을 받는 사람인데 자기 자식한테는 존경을 못 받는 사람들이 많다고. … 나는 내 인생의 목표는 없는데, … 나는 원래 목표가 없거든. 그냥 하루 하루를 사는 사람이야. 하루하루를 똑바로 살기도 어렵다는 게 내 생각이야. … 근데 한 가지 놓치고 싶지 않은 것이 있다면, 내 딸아이가 머리가 굵어졌을 때 나랑 딸아이가 인간대 인간으로서 서로 존경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그런데, 그렇게 되기 위해선… 아무 리 내가 세상 사람들을 좋은 글로 다 속일 수 있다고 하더라도 딸은 속일 수 없어요. 가정 생활에서는… 엄마한테 하는 모습도 매일 보고 그러니까. 딸아이가 나를 존경할 수 있으려면, 최소한 내가 인간적으로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어야 하거든. 나중에 자기 친구들이 내 글을 읽으면서 ‘야 이거 참 좋지 않냐’ 그러는 걸 보면서도, 자기 자신 은 그게 아버지 글이라는 사실이 쪽팔려서 얘기도 못하고 아버지를 경멸하고 그러면, 그건 정말 끔찍한 거지. … 내가 아무리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좌파가 된다고 하더라도, 심지어 내가 맑스가 된다고 하더라도, 나를 일상에서 매일 보는 딸아이가 ‘거짓말’ 이라고 한다면, 그건 인생 완전히 실패한 거죠.

: 그렇네요. 한 잔 하시죠.

: 그래. (웃으며) 내 얘기 괜찮았어?(모두 웃음)

: 네. 상당히 좋은 얘기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하신 얘기는…, (야비한 표정으로) 단이 뿐만 아니라 평소에 알고 지내시는 주변 사람들에게도… 예를 들어 저 같은 사람들에게 늘 최선을 다 하셔야 하는 이유가 되기도 하겠네요. 앞으로 두고 보겠습니다.

: (마구 웃음) 지금 최선을 다 하고 있잖아.(모두 웃음)

: 지식인으로서의 글쓰기라는 것이 스스로에게 주는 가장 큰 책임감은 어떤 거죠?

: 그것은 나의 도리인 것이고, 가장 중요한 것은… 내 글의 효용성에 대한 문제지. 세상에 어떻게 작용하는가 하는 문제. 이 세상을 보존하는 데 기여하는가, 아니면 별 생각 없이 사는 사람들을 자극해서 다시금 되돌아보게끔 하는데 기여하는가 하는 것. 나는 후자 쪽에 기여하길 바라지.

: 어느 글에서, 지식인이란, ‘내가 지향하는 바’와 ‘실제의 나’ 사이에 숙명적인 거리를 갖고 사는 ‘삶의 코미디언’이라고 언급하셨는데, 지향하는 자신과 실제의 자신의 모습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세요.

: 음… 어떻게 들을지 모르겠지만, 내가 좀 안이하게 생각하는 건지도 모르지만, 비교적 최선을 다 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지향하는 나와 실제의 나 사이의 간격을 좁히기 위해 최대한 노력하는 거죠. 나는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것 이상의 구호를 외치진 않아요. 그것도 중요한 문제인 것 같아. 지향하는 바라는 것도, 내가 내심 지향하는 것이 있고 공식적으로 지향한다고 표명하는 것이 있지. 근데 후자에 대해선 책임을 져야죠. 나는 후자에 대해 책임을 지려고 노력을 해요. 물론 그 책임의 수준을 전진시키기 위해서 더 노력해야겠지만. 외람 되지만 그렇게 최선을 다하고 있는 거죠

 

: 혹시 형의 그 말씀(지식인이란 ‘내가 지향하는 바’와 ‘실제의 나’사이에 숙명적인 거리를 갖고 사는 ‘삶의 코미디언’이다)이나 그 말로써 대변되고 있는 형의 입장과 생각이, 좌파 지식인을 지향하는 형에게 있어서 ‘어쩔 수 없음’을 인정하는 일종의 ‘융통성’으로 작용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으세요?

: 그렇게 듣고 보니까… 그렇게 사용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렇게 사용하는 건 아니야. 지식인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이란 그 숙명적인 간격을 좁히려고 하는 것이란 말이지. 이 말은, 일치하지 않아도 좋다는 뜻은 분명 아니거든. 오히려, 아무리 노력을 해도 일치하기가 어려우니까 최대한 끊임없이 노력을 해야하겠다는 뜻이지. … 좀 좋게 해석해주지 자식∼(모두 웃음)

: 연달아 죄송하지만, 형은 또 ‘서준식 선생은 자신의 이상을 활동가로서 펼치는 분이라면, 자신은 글과 말로 자신의 생각과 이상을 펼치는 지식인이라고 할 수 있다. 그 활동가에 반응하여 자괴감을 갖는다’고 하셨는데, 그런 솔직한 토로 역시 오히려 형의 입장의 방패막이가 되어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봤는데요. 물론 이런 질문은 형의 입장에서 본다면, 상당히 악의적인 질문일 수 있겠죠.

: 글쎄… 들어보니까 그것도 마찬가지로, 그렇게 사용될 수 있는 말이긴 하네. 그렇게 되지 않도록 노력을 할께. 나는 워낙 그저 그 간격을 좁히는데 갈급하니까…(웃음)

: 김규항 선배님 글에 자주 등장하는 말 가운데 몇 가지가 지식인, 진보, 좌파, 파시즘인데요, 과연 우리 나라에 진정한 진보, 진정한 지식인, 진정한 좌파가 있을까요?

: 다 알면서 왜 물어보지?(웃음) 날 또 사람들 욕을 하게 만드네.(웃음) … 별로 없는 거 같아요. 밥값을 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은 거 같지가 않다는 말이지. 그렇다고 또… 별로 없는 와중에 나만 진정한 지식인이나 좌파란 얘기는 아니고…. 나는… 내가 아직도 지식인들 사이의 일원이라는 생각은 별로 안 하는 거 같아. 그저 좋게 말하면, 주먹대신 글을 사용하는 건달. 이런 생각을 해요. 이런 것이 때론 나의 특성이 되기도 하지. 그래서 말도 망설이지 않고 하고….

: 제 주위의 한 친구는 스스로 좌파들을 싫어한다고 그러거든요. 그 이유는, 좌파라고 하는 자들과 그렇지 않은 자들을 보면 혀가 아닌 생활 면에서는 다를 것이 아무 것도 없기 때문이라고 하더라구요. 이건 현재의 좌파들이 끊임없이 받는 비판들 중에 하나이기도 할텐데, 이 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하네요.

: 그것은… 좀 간접적으로 설명을 해보자면, 교회가 싫다고 해서 예수 자체를 그런 식으로 재단할 수는 없잖아요? 이건 무슨 얘기냐면, 교회라고 이름이 붙어 있고 교회라고 주장한다고 다 교회는 아니라는 거지. 마찬가지로 좌파도… 좌파라고 칭해진다고 다 좌파는 아닌 거예요. 제대로 된 좌파, 그러니까… 좌파 그 자체를 함부로 재단하고 판단하는 것은 좀 무리죠.

: 굉장히 솔직하고 직설적인 글을 발표하시기 때문에 지지와 칭찬만큼이나 비판과 비난을 받을 때도 있을 텐데요, 그럴 때는 어떤 생각을 하시는지 궁금해요. 또, 익명을 전제로 아무런 논리 없이 감정적으로 인격적 모욕을 주는 사람들도 있잖아요, 그런 경우엔 어떤 감정으로, 어떻게 대처를 하시죠?

: 나는… 인터넷 게시판에서의 그런 류의 일들은 한국 사회의 특별한 현상이라고 보는데, 어쨌든 인터넷이든 오프라인이든 익명으로 다른 사람을 비판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나는 그 자체를 인정할 수가 없어. 익명으로 다른 사람을 비판할 때에는 함부로 말을 하게 되어 있어요. 그 비판에 대한 책임을 지지도 않는다고. 예전에 나에 대해서 아무런 근거도 없이 그냥 막 욕을 해대는 사람이 있었어요. 그래서 내가 개인적으로 그 사람한테 메일을 보냈지. 뭐라 그랬냐면, ‘또 그러면 목을 따버리겠다’고 그랬다고.(웃음) 그랬더니 답장이 왔어. ‘정말 잘못했다. 그 글 다 지웠다. 앞으로 주의하겠다.’ 나는 그게 더 싫더라구. 얼마나 근거 없이 함부로 씹어댔으면 자기 말을 그렇게 쉽게 취소할 수 있었겠어요. … 남에 대한 비판은, 아무리 싫어하는 사람이더라도 정말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해야하는 거라구. 그리고 아주 정당하게 해야하고. 예를 들어서 이런 말들… ‘김규항은 신촌 밤거리의 토사물과 같다.'(모두 웃음) 좋다 이거야. 토사물이든 뭐든. 그런데 그렇다면 왜 그렇다는 건지 근거를 대야 할 꺼 아니야. 이런 말들은 토론이 불가능한 얘기라구. 그건 그냥 순간적인 자기 느낌일 뿐이지. 익명이 아니면 그렇게 얘기할 수 있을까? … 예를 들어, 내가 만약 ‘진중권은 신촌 밤거리의 토사물이다.’ 이렇게 말한다면 나는 완전히 끝장날 거라구.(모두 웃음) … 암튼 그런 경우를 만나게 되면 정말 기분이 안 좋아.

: 형이 또 원래 기분 나쁜 건 절대 못 참으시잖아요.(웃음) 터프가이∼(모두 웃음)

: 터프가이? 나는 아주 섬세한 남자지.(모두 웃음) … 상윤아! 내가 재밌는 얘기 하나 해줄까?

: (반갑게) 네∼

: (미리부터 혼자 웃으며) ‘GQ’라는 세계적인 남성잡지 한국판 창간호가 올 봄에 나왔는데, 거기서 뭘 하자고 그랬는지 아니? (계속 웃으며) 최민수하고 나하고 대담을 하자는 거야.(모두 뒤집어짐) 주제가 ‘남자란 무엇인가?’였어.(탁자를 주먹으로 내리치며 웃음)

: 그래서 그걸 하셨어요?

: 아니 안 했지. 전화 오면, ‘아 여기 지리산인데요. 잘 안 들려요∼’ 하면서 끊고 그랬다고.(웃음)

: 아∼ 이거 너무 웃어서 안되겠다. 분위기를 좀 추스를 수 있는 질문을 빨리 합시다.

: 제가 할께요. … 사람들이 살다보면 여러 가지 원인에 의해서 변화를 겪게 되잖아요. 예를 들어, 학생시절 진보적인 학생운동을 하던 사람이 나이가 들어 보수적으로 변할 수도 있는 거구… 암튼 자신의 신념을 평생에 걸쳐 유지하기란 너무 힘든 일인 것 같거든요. 선배님은 생각이 분명하고 강한 분으로 보이는데, 심경에 변화가 와서 자신이 고수하던 신념이 변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세요? 만약 그런 경우가 생긴다면 자의식 때문에 쉽게 받아들일 수 없을 것 같은데…

: 일단, 누구나 그럴 가능성이 있지. 음… 자기의 신념을 자기의 힘으로 지킬 수 있는 사람은 없어요. 무슨 얘기냐 하면, 자기의 신념을 지킬 수 있는 자리에 자기를 계속 두는 것이 힘들다는 거지. 예를 들어서, 예전에는 운동하다가 현재는 한나라당에 들어가서 여당 속에서 진보적 모색을 하겠다거나 그러는 거. 그건 초인적인 목표이기 때문에 있을 수가 없는 일이라구. 근데 그런 게 되는 사람이 있긴 있어요. 자기의 신념을 어떤 경우에도 지킬 수 있는 사람. 이를테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게바라 같은 사람. 하지만 그런 사람은 알다시피 한 세기에 한 두 명 있겠지. 신념을 지키기 위한 방법은 신념을 지킬 수 있는 상황에 자신을 위치시키는 거예요. 자의식 때문에 신념을 쉽게 바꾸기 힘들지 않겠느냐고 했지만, 아까도 얘기했듯이 사람은 일초 일순간 늘 자신을 합리화하기 때문에 그렇지가 않아요. 이미 순간 순간의 합리화에 의해서 자연스러워졌을 테니까.

: 그런데… 그렇게 신념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이 정치를 해야 세상이 변할 수 있는 거 아닐까요?

: 그렇진 않지. 그런 사람은 워낙 적기 때문에 정치를 감당할 만큼 많지가 않다구.(웃음)

: 오늘… 음주인터뷴데 음주가 좀 부진하네요. 한 잔 하시죠들.

: 어, 그래. 말을 많이 하다보니까.(웃음) 암튼 참… 재밌네. 원래 ‘짬’ 인터뷰가 제일 재밌어.

: (불만스럽게) 형! ‘짬’은 이제 없어졌거든요.

: 아∼ 그렇지. 새파란이지! 허허허.

: 말 나온 김에, ‘새파란’이란 이름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세요?

: 음… 그러니까… 뭐 가장 좋은 건 ‘좆만한’… 이런 거지만(모두웃음), 그런 걸 사용할 순 없으니까…(웃음) 암튼 상당히 좋은 거 같아.

: 아무 것도 정해져 있지 않은 젊은 시기에는 각각 가슴속에 열정을 품고 사는 젊은이들이 많지만, 정작 삶에 있어서 선택의 갈림길에 서게 되면, 용기가 부족하거나 세상이 두렵거나… 쉽게 떨쳐낼 수 없는 고정관념 같은 것들의 영향 때문에 자신의 열정을 터뜨리지 못하고 세상의 주류적인 방향으로의 편입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요. 지금도 고민하고 방황하고 있을지 모르는 ‘새파란’의 젊은 독자들을 위해서 한 마디 해주실래요?

: 그런 건 마지막 질문으로 나와야 되는 거 아닌가?

: 에이 새파란 인터뷰에 그런 순서가 어디 있겠습니까.

: 그렇군. 그건… 어느 것이 진정 가치 있느냐 하는 건데… 사람은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 즉 ‘신념’을 자기 삶과 일치시키는 것이 가장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거죠. 근데 사람이 좀 이상해지기 시작하면 그런 건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게 되어버리지. 이른바 세속적인 것에 매달리게 되고. 하지만 본인의 내심 한 구석에는 분명 행복하지 않다는 생각이 남겠지. 자기가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정신을 유지하는 것은 상당히 중요한 거예요.

: 선배님은 젊었을 때 그런 고민 안 하셨나요?

: 고민 안 했어요. 나는 그런 걸 걱정해본 적이 없어. 내가 좋다고 생각되는 것이 있으면 그냥 그걸 하는 거야. 상당히 이분법적인 사고를 하는 거지. 이것이 또 나한테는 상당히 중요한 일이고…. 나는 어떤 선택의 문제에 있어서 나 자신을 속이거나 양보하거나 타협한 적은 없어요. 물론 그 선택에 오류는 있었을 수도 있었겠지만….
어떻게 보면 나는 세상에서 제일 마음이 편한 사람이라고 할 수도 있지. 그래서 대단히 무대책하기도 하고. 생활은 늘 위기의 상황이고.

: 선배님은 자신과 생각을 달리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 그 사람의 생각을 변화시키려는 쪽이신가요? 아니면 그 사람의 생각을 인정하는 쪽이신가요?

: 나는, 자기 주장만을 되풀이하는 것은 어떤 설득력도 없다고 봐요. 내 글에 사적 에피소드 같은 것이 자주 등장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지식인이라고 분류될 수 있는 사람치고는, 입장이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해도 상당히 유연한 대화가 가능한 편이라고 자부를 해요. …사람은 누구나 자기 생각이 옳다고 생각을 해. 그래서 주장을 하고. 그렇지만 그 이면에 자기 생각에 틀린 부분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겸손함이 있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대화가 있을 수가 없다구. … 나는 맑스에서 출발한 사람이 아니고 예수에서 출발한 사람이기 때문에, 인격 자체에 대한 존중, 존엄에 대한 인정 같은 건 좀 철저한 편이지.

: ‘세상에 의심을 품기 시작한 것은 고등학교 시절이었던 것 같다’ 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고등학교 시절에 어떤 학생이셨나요?

: 고등학교 초기에는 모범적이고 평범했지. 근데… 내가 내신 첫 세대거든. 그때 내신이 15등급까지 있었는데, 내가 13등급이야. 말 다했지.(웃음) 고등학교 2학년 이후로는 거의 학교도 잘 안 나갔고…. 내 글 ‘영감과 빠가사리’를 봤으면 알겠지만, 수업시간에 교실 문 걷어차고 죽도록 두들겨 맞으면서도 끝까지 잘못했다는 말을 안 해서 계속 죽도록 더 두들겨 맞은 그날… 그 즈음에서 내가 급변했지. 보통 애들이 탈선하는 데에는 어떤 경로가 있게 마련인데, 나는 그걸 그날 하루에 그냥 끝낸 거야. 내 입장에서 지금 보면, 그때 이후로 내가 사람이 됐고 아무 것도 모르던 아이 하나가 인생에 대해서 알기 시작하게 된 거지. 물론 어른들이나 선생의 입장에서 보면 애 하나가 갑자기 완전히 망가진 거겠지만.(웃음) … 암튼 그날의 일하고 나중에 우연히 한신대에 들어가게 된 일 두 가지가 나를 만들었다고 생각해.

: 선배님, 어렸을 때 꿈은요?

: 없어요. 나는 어렸을 때고 지금이고 꿈이 없어. 오늘 하루를 똑바로 살기도 힘든 판에 무슨 꿈을 꾸겠어. 잘 때 꾸는 그런 꿈도 잘 안 꾸고….

인간은 세계의 모든 사물과 현상들을 기호의 체계로 파악한다. 인간의 인식이 성립하는 것은 대상이 하나의 기호로서 판독되는 순간부터이다. 그런 면에서 언어는 인간에게 가장 필수적인 도구이다.

말이 사물이나 현상들이 이루는 기호체계를 소리로서 드러내 준다면 문자는 형상으로 드러내 주는 역할을 한다. 세계의 모습들이 언어의 의미체계를 통해 고정된다는 의미에서 문자는 사물을 고정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그 시도는 위태롭기만 하다.

우리는 언어를 통해서만 세계를 인식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언어라는 것이 얼마나 임의적인가. 언어는 사물들을 인간의 지각 체계로 마름질하는 데 더없이 유용하지만 그만큼 사물의 진면목을 생략시키는 데에 충실하다. 언어로 구획지워진 사물들의 자리매김 속에서 사물을 지칭하는 언어가 대상과 일치하리라는 기본적인 가정은 다만 인간만의 착각일 뿐이다. 언어가 사물을 온전히 대신할 수 없다는 사실을, 즉 인간 인식의 한계성을 깨닫게 된 포스트 모더니즘적인 상황에서 언어는 더 이상 우리에게 사물들을 현현해 주지 않으며 더 이상 세계에 대한 진리를 말해주지 않는다고 한다. 아무리 가 닿으려 해도 닿을 수 없는 원본으로서의 사물에 대해 언어는 부질없는 대리인의 노릇을 회의할 수도 있다. 때로는 자신이 원본과 동일해지려는가 하면, 때로는 고정된 의미망이 주는 부담감을 벗어던지고 언어들만의 놀이가 일어날 수도 있다. 궁극적으로 기의에 가 닿을 수 없는 기표들이 스스로의 정체성과 가능성에 대해 질문하는, 인간의 헛된 인력으로부터 벗어나 벌어지는 기표들간의 유희.

현재 예술의 전당 디자인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타이포 그라피 전시회’에서는 이러한 기표로서의 문자에 대한 다양한 사고를 확인할 수 있다. 그곳에서 문자들은 애초에 지칭해야만 했던 대상들에서 느끼는 부담을 떨쳐낸다 – 또는 극대화한다. 언어의 가시적 표현 도구로서 인간에게 기능하던 문자들은 인간의 인식이라는 그늘에서 벗어나 – 또는 그늘 안에서 – 각자 나름의 의미들을 생성해 낸다. 작품들에서는 이렇게 크게 두 범주로 나눌 수 있는 경향들이 보인다.

언어가 세계를 고스란히 말해주지 않는다 해도 인간은 언어 없이는 세계를 인식할 수 없다. 그 상이 굴절된 모습이라 할지라도. 그래서 우리는 언어 바깥의 세계를 알 수 없으며 우리에게 세계는 언어 안의 세계이다. 그런데 문자들이 언어 안의 극단과 언어 바깥의 극단에서, 동일자의 세계가 아니라 타자의 세계를 열어 보이려 하는 것이다. 몇몇은 자신이 지칭해야 하는 대상의 모습과 거의 닮아져 버린 원시 상형 문자의 형태를 띄거나(신타로 아지오카의 ‘Cloud’/’Mother·s Day’) 아예 그 대상 자체가 되어 버리고(조선 민화 도과도원도, Viktor Kaltala의 작품), 몇몇은 지칭하는 사물을 닮은 새로운 문자를 스스로 만들어 내며(Sato Koich), 몇몇은 그 의미 틀을 벗고 자신의 외양이 지니는 조형성을 극단으로 밀어붙여 기하학적인 도형을 만들며(FontShop Freedom Fuse 연작) 몇몇은 문자라는 이름의 본성 자체가 사라진 채 책에서 바람과 같이 날아가 버리기도 한다(서기흔의 ‘행간풍경’ 연작). 또 몇몇은 선으로 이루어지는 구성 원리에서 벗어나 사물의 단편들을 자신의 외피로 삼기도 한다(김두섭의 광주 비엔날레 출품 작품, 키보드나 모니터 버튼 등으로 처리된 폰트체 등). 한편으로는 문자가 원래 지칭해야 할 사물을 그대로 닮으려는 시도가 있고 한편으로는 대상성을 잃어버린 독립적 개체로서의 문자들이 독립적인 사물 자체가 되려는 시도가 있는 것이다. 이는 문자 자체의 사물화, 즉 기의 자체 또는 기호 자체가 되어 버리는 경향을 암시한다는 점에서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공통된 테마로 묶을 수도 있다.

‘문자가 자신의 지시성에 대해 던지는 질문.’

문자와 그 지시 대상으로서의 사물 사이의 관계망 속에서 양자가 지니는 우열의 시소 게임을 목격하면서 우리는 쉽게 자명하다 여겨 버리는 문자의 본성과, 현대 예술의 탈근대적 정신에 대해 숙고해 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욕망의 해석학에서 존재미학으로

엄밀히 말해 푸코는 조형예술에 관해 그리 많은 글을 쓰지 않았다. 그는 주로 문학에서 영감의 원천을 얻는다. 그가 조형예술에 관해 남긴 글들은 본격적인 미학적 분석이라기보다는 그의 글의 서두를 장식하기 위한 미적 엠블렘에 가깝다. 가령 < 광기의 역사>에 나오는 브뤼겔의 < 바보들의 배>는 이성의 타자인 ‘광우'(狂愚)라는 개념의 상징, 같은 곳에 나오는 고야의 < 잠자는 이성>은 근대적 이성주의에 대한 비판의 상징, < 말과 사물>의 서문에 나온 벨라스케즈의 < 라스 메니나스>는 아직 ‘주체’라는 개념이 없었던 고전주의 시대의 에피스테메였던 ‘순수 표상의 표상’이다. 마그리트의 그림에 바쳐진 <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역시 < 말과 사물>에서 제기된 ‘유사성'(ressemblance)과 ‘상사성'(similitude)의 차이라는 도식을 들뢰즈의 시뮬라크르의 개념에 맞추어 전개한 것으로 보인다.

자기의 테크놀로지

미학에 대한 푸코의 기여는 정작 다른 방향에서 이루어진다. 사후에 미완으로 발간된 < 자기의 테크놀로지>에서 푸코는 놀랄만한 사유의 전환을 보여주고 있다.

“어쩌면 나는 지배와 권력의 테크놀로지에 지나치게 역점을 두어왔는지도 모른다. 요즘 나의 관심은 점차 자기 자신과 타자의 상호작용, 그리고 개인이 행사하는 지배의 테크놀로지에서 얼마나 개인이 자기자신에게 작용하는가에 대한 역사, 즉 자기의 테크놀로지로 기울어졌다.”

말하자면 ‘주체’라는 개념을 지식권력의 함수로 보았던 그가 이제 ‘주체’가 단순한 담론의 효과 이상이라고 말하게 된 것이다. 즉 이제까지 그가 주체형성 과정을 계보학적으로 추적함으로써 주체를 객체화하는 데에 치중했다면, 이제는 그런 지식권력과 담론의 망 속에서 객체화된 ‘주체가 어떻게 자신을 다시 미적-도덕적 주체로 세울 수 있느냐’ 하는 윤리학적 물음으로 관심을 옮긴 것이다. 계보학이 도덕의 근원을 파헤치는 냉철한 유물론적 기술(description)이라면, 주체의 윤리적 자기구성이라는 새로운 문제의식은 본질적으로 규범적(normative) 성격을 갖는다.  

위에 언급한 책에서 푸코는 그는 < 네 자신을 배려하라>는 고대 그리이스의 존재의 원리가 어떻게 후에 < 네 자신을 알라>는 인식의 원리로 전도되는지 분석한다. 애초에 그리이스에서 ‘네 자신을 알라’라는 격률은 ‘네 자신을 배려하라’라는 격률을 실천하는 여러 가지 방식 중의 하나로서 정식화된 것이었다. 그런데 어느 새에 ‘네 자신을 알라’는 인식의 격률이 존재의 목적으로 격상하고, 인식을 절대화하는 이 사고방식의 우위 속에서 ‘네 자신을 배려하라’라는 애초의 격률은 잊혀져 갔다는 것이다.

“< 네 자신을 배려하라>와 < 네 자신을 인식하라>라는 고대의 두 원리의 위계질서가 그간 전도되어 왔다. 그리스-로마 문화에서 자기 인식은 자기배려의 결과로서 나타났다. 근대 사회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자기 인식은 기본원리로 구성된 것이다.” (미셸 푸코 외, [자기의 테크놀로지], 이희원 옮김, 문예출판사 p.43)

푸코는 이런 변화가 일어난 원인으로 “자기 포기를 구원의 조건으로 설정한 그리스도교적 도덕률의 전통”을 든다. 이 전통에 따르면 “자기란 우리가 거절할 수 있는 바로 그것”으로 규정된다. 또 하나의 원인은 좀더 세속적인 것으로 “데카르트에서 후설에 이르는 순이론적 철학”, 즉 근대의 반성철학을 든다. 여기서 자기(cogito)의 인식은 인식론의 첫걸음으로 여겨진다. 말하자면 초기 기독교의 ‘자기포기’의 도덕에 근대의 ‘반성철학’이 합쳐져, 자기를 버리기 위해 자기인식을 하는 ‘욕망의 해석학’이 탄생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자기에의 배려’라는 존재미학에서 ‘자기포기로서의 자기인식’이라는 욕망의 해석학으로의 변화는 이미 기독교가 공인되기 전인 AD 1, 2세기에 그리스 문명 자체 내에서 시작된다고 한다.

‘자기를 배려하라’와 ‘너 자신을 알라’ 사이에 일어난 이 전도된 위계질서를 다시 뒤집고, 자기를 배려할 줄 알았던 고대문화의 가능성을 이 시대에 새로운 미적 에토스로 구성할 가능성을 타진하는 것, 그것이 바로 < 자기의 테크놀로지>를 쓰면서 푸코가 가졌던 미완의 프로젝트다. 여기서 ‘테크놀로지’란 말은 오늘날과 같은 ‘과학기술’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그리이스어의 ‘테크네’라는 말은 무엇보다도 실천적 지식, 즉 미적, 윤리적 실천의 능력 혹은 수완을 가리켰다. 그 그리이스인들이 예술 또한 ‘테크네’로 규정했던 것은 널리 알려진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푸코가 말하는 ‘자기의 테크놀로지’는 주체가 담론의 효과, 권력/지식의 함수로 객체화하는 데에서 벗어나 적극적으로 자신을 미적, 윤리적 주체로 세우는 능력, 말하자면 자기에의 배려를 통해 제 삶을 예술작품을 끌어올리는 존재미학적 기술을 말한다.

주체를 권력지식의 함수, 담론의 효과로 바라보며 ‘주체의 죽음’을 선언하는 것으로부터 (과거의 금욕적인 반성적 주체와는 다른) 쾌락을 긍정하는 새로운 주체를 형성하는 원리로서의 존재미학으로. 이 전회는 갑자기 나타난 것이 아니라 이미 < 성의 역사>를 쓰던 시절에 예고된 것이었다. 가령 성에 관한 3부작 중의 하나인 < 쾌락의 활용>에서 이미 그는 그리스인들의 삶의 방식이 가진 ‘주인의 도덕’이라는 측면을 부각시킨 바 있다. 푸코에 따르면 그리이스인들은 자신을 영적으로 정화하기 위해 쾌락에서 도피하는 (순결성을 모델로 한) “처녀의 도덕”을 갖고 있지 않았다고 한다. 그들이 비도적으로 본 것은 쾌락 자체가 아니라 쾌락의 노예가 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쾌락의 노예가 되지 않고, 그것의 주인이 되어 그것을 적절히 부리며 살아가는 ‘아르스 비벤디’로 갖고 있었다.

이 강의에서는 푸코가 부각시킨 ‘존재미학’이 현대미학에 대해 갖는 의미를 구체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그가 제공한 시각에 따라 플라톤의 < 향연>에 대한 새로운 독해를 시도하려 한다. 푸코의 분석의 바탕에는 니이체의 시각이 깔려 있다. (사실 수백년에 걸친 근대의 미학사에서 진정으로 새로운 요소가 있었다면, 그것은 바로 관조자가 아닌 창조자의 입장에서 “제 삶을 작품으로 만들라”고 요청하는 니이체의 창조미학일 것이다.) 서구미학의 최초의 문헌으로 꼽히는 < 향연>은 근대미학의 시각에서 읽혀지는 바람에 ‘미의 이데아를 향한 영혼의 상승’이라는 인식론적 관점만 부각되어 왔다. 플라톤을 이데아의 형이상학자로 간주하는 가운데, 그 역시 제 삶을 미적으로 조직화하려 했던 그리이스인이었다는 사실을 망각한 것이다. 푸코는 이렇게 말한다.

“플라톤의 경우 자기의 관조와 자기에의 배려, 이 두 주제가 대화를 통해 변증법적 관계를 이루었다.” (p.60)

기존의 해석은 < 향연>에서 이 변증법적 관계의 한 짝을 이루는 ‘자기에의 배려’를 지워버린 듯하다. 다음에서는 이 근대의 인식론주의적 해석에 의해 사라진, < 향연>의 또 다른 측면을 부각시키며, 그것이 현대미학에 대해 갖는 의미를 살펴보게 될 것이다

미의 이데아

< 향연>에서 가장 부각되는 대목은 역시 구체적인 사물의 아름다움에서 점차 천상의 미의 이데아를 향해 ‘계단식으로’ 상승하는 과정의 기술이다. ‘미의 이데아’란 다른 말로 표현하면 그리이스인들이 가졌던 ‘미적 이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근대 미학의 관점에서 이 상승운동은 상대적인 미가 아닌 절대적인 미, 말하자면 미적 평가의 절대적 기준을 획득하는 인식론적 과정으로만 이해되어 왔다. 물론 이 인식론적 요소 역시 플라톤의 미론의 중요한 요소에 속함에 틀림없으나, 이 견해 속에서 ‘미의 이데아’가 < 향연>에서 차지하는 위상은 현저하게 왜곡되고 만다.

말하자면 ‘미의 이데아’는 단순히 인식론적 이상, 즉 관조자의 입장에서 사물의 미적 가치를 판별할 수 있게 해주는 절대적 기준에 불과한 게 아니라, 무엇보다도 인간이 ‘자기에의 배려’를 통해 제 삶을 아름답게 가꾸어 나가도록 이끄는 미적, 윤리적 실천의 원리였다. 즉 ‘미의 이데아’는 미적 관조의 원리라기보다는 무엇보다도 제 존재를 작품으로 완성하기 위한 창조의 원리, 다시 말하면 인식론적 이상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존재론적 이상이었다. 플라톤에게 ‘미의 이데아’를 본다는 것은 자기목적이 아니었다. 제 존재를 이상적 아름다움으로 끌어올리기 위한 인식론적 준비에 불과했던 것이다.

미와 에로스

‘미’에 관해 씌여진 서양미학 최초의 문헌에 속하는 이 텍스트에서 미가 ‘에로스’와 관련하여 논의된다는 사실에 먼저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 향연>에서 미는 에로스의 상관자다. 그리고 이는 늘 아프로디테를 따라 다니는 에로스의 형상으로 상징된다. 말하자면 그들은 ‘미’를 늘 ‘사랑’과의 관계 속에 집어넣어 생각했다는 것이다. 근대 미학에서 ‘미’는 주로 ‘정신’, 그러니까 인간의 인식능력과의 관계 속에서 정의된다. ‘미’란 대상과 인식능력 사이의 조화 혹은 인식능력들 사이의 조화로 규정된다. 그러나 플라톤은 ‘미’를 ‘에로스’의 상관자로 만듦으로써 그것을 무엇보다도 ‘몸’과 연결시키고 있다.

실제로 인간이 사물을 아름다움이라는 미적 기준으로 평가하는 눈은 애초에 성애에서 비롯된 것이지도 모른다. 다시 말해 최초의 미적 지각의 대상은 어쩌면 사랑하는 이성 혹은 동성의 몸이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 향연>에서 천상의 아름다움에 도달하는 여정은 우선 ‘신체의 아름다움’, 소년의 아름다운 육체를 보는 데에서 출발한다. 플라톤에 따르면 미는 ‘정신의 대상’이 아니라 우선은 “욕망의 대상”이다. 하지만 근대에 들어오면 미와 성애를 이어주던 이 원초적인 연결의 고리는  끊어지고, 미는 ‘대상과 인식 능력의 조화’, 말하자면 순수한 정신적 현상이 되어 버린다.

창조미학

근대 미학에서 ‘미’란 단순한 향유의 대상일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근대 미학은 본질적으로 수용자 중심의 미학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플라톤에게서 에로스는 ‘미’를 매개로 인간을 정신적, 육체적 생식으로 이끄는 창조의 능력으로 규정된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미학은 본질적으로 정신적, 육체적 생식을 통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나가며 사는 창조자의 미학이라 할 수 있다. 그리이스인들의 삶이 미적으로 조직되어 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들은 칼로카가티아의 이상 아래 제 삶을 미적으로 조직화하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삼았다. 말하자면 ‘자기에의 배려’란 곧 자신의 삶을 예술작품으로 만들어나가는 세심한 미적, 윤리적 배려이고, 또 그 작품을 완성시키는 것이 그들의 삶의 목적이었다.

이것이 플라톤의 관념론 아래로 여전히 숨쉬고 있는 그리스인들의 아르스 비벤디다. 다시 말하면 근대의 미학이 미적 대상과 예술작품을 향유하는 관찰자의 입장에 선 < 인식론적 미학>이라면, 그리스인으로서의 플라톤의 미학은 이와는 전혀 다른 < 존재미학>을 함축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존재미학은 인간이 신이 되는 길, 말하자면 유한자가 무한과 영원에 도달하는 길이었다. 인간은 육체적 생식을 통해 제 존재를 무한으로 연장하고, 정신적 생식을 통해서는 불후의 명성, 즉 영원성에 도달한다. 그리스인들에게 ‘에로틱’은 이렇게 인간이 그 유한성을 극복하고 신의 경지에 접근하는 방법이었다.

포에틱과 에로틱

플라톤의 예술론은 제작술(poetik)이 아니라 성애론(erotik)의 형태로 제시되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 역시 테크네, 즉 합리적인 규칙에 따른 제작활동으로 이해했다. 이것이 그가 ‘시’를 비합리적인 영감의 영역에서 끄집어내어 합리주의적으로 구원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플라톤에게서는 아직 이런 급진적인 합리화는 찾아볼 수 없다. 그에게 예술은 제작술의 문제가 아니라 무엇보다도 성애의 문제다. 말하자면 인위적인 제작활동마저 그는 physis의 자연적 생식력의 연장선상에서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플라톤이 말하는 ‘예술’이란 좁은 의미의 예술만이 아니라 철학과 통치술을 포함하여 인간의 거의 모든 창조활동을 가리킨다. (물론 당시 고대노예제 사회에서 노예들이 담당한 수공업적 제작의 활동은 이 ‘창조활동’에서 제외된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이 모든 활동은 ‘제작술’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플라톤은 이를 ‘생식’으로 규정한다. 그에게서는 physis의 생식력과 nomos를 이루는 제작술 사이의 현격한 이분법적 대립이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다. 플라톤에서 아리스토텔레스에 이르는 그 짧은 시기에 그리스인들의 정신에는 급격한 패러다임의 변화가 있었던 것이다.

데몬

근대 이후 철학은 금욕주의적 수도승의 모습을 닮게 되었다. 하지만 그 이전에 철학과 섹스는 에로스(=생식력) 속에서 하나였다. 전지한 신과 무지한 자들의 중간자인 에로스는 자기에게 결핍된 지를 사랑한다. 에로스는 지의 사랑(philos+sophia), 곧 철학의 정신이었다. 여기서 푸코는 도덕과 비도덕을 나누는 근대적 이분법을 뛰어넘는 새로운 니이체적 도덕의 가능성을 암시한다. 자기 앞에 미리 주어진 도덕률에 얽매여 사는 노예의 도덕이 아니라 스스로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며 살아가는 주인의 도덕. 자기 가치를 스스로 만들어 나가는 예술가형 인간의 가능성. 근대의 합리주의적 해석의 지배 아래 오랫동안 잊혀졌던 < 향연>의 또 다른 측면은 바로 이 예술가형 인간의 미학, 즉 새로운 ‘존재미학’의 가능성이다.

“신들이 더 인간적이었을 때, 인간들은 더 신적이었다.” 쉴러의 말이다. 기독교 문명에서는 신과  인간 사이에 뛰어넘을 수 없는 심연을 설정한다. 여기에서 인간이 신에 다가가는 것은 인간 자신의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하며 신의 ‘은총’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그리스에서 신들은 기독교의 신보다 더 인간적이고, 인간들은 기독교의 신자들보다 더 신적이었다. 가령 신과 인간의 사이에서 태어난 에로스는 신과 인간의 중간자 ‘데몬’이다. 선악 이분법에 따라 중세의 신학은 데몬을 ‘마귀’로 해석을 했지만, 원래 ‘데몬’이란  끊임없이 신적 존재에 가까워지기 위하여 자신을 초월하는 인간, 즉 니체가 말하는 ‘초인’의 신화적 표현이었다.

근대의 미학은 인간의 창조성을 ‘예술’이라는 영역에 가두어놓고, 대중들에게는 그 천재들의 작품을 바라보는 능력, 즉 ‘관조의 미학’을 제시해 왔다. 플라톤의 < 향연>은 이 좁은 속박을 벗고 인간의 모든 활동을 창작으로 바라본다. 그리고 인간이 제 삶을 예술작품처럼 만들어나가야 한다는 ‘존재미학’을 요청하고 있다. 이것은 곧 미적 왕국을 삶으로부터 유리시키는 근대미학을 대체할 새로운 미학의 가능성을 암시한다. 이것이 수 천년 전에 씌여진 < 향연>이 오늘날 현대미학에 주는 의미이다.

미적 에토스

푸코가 여기서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근대적 방식과는 다른 또 다른 형태의 윤리적 자기 구성이다. 푸코가 보기에 근대적 ‘주체’의 윤리적 자기 구성은 개별자를 보편자 속에 일방적으로 포섭시키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계보학적 관점에서 씌여진 푸코의 모든 저서는 이 근대적 주체 구성의 방식의 폭력성을 아르토의 잔혹극을 연상시키는 정도의 생생함을 가지고 묘사하고 있다. 여기서 푸코는 폭력성을 철회한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윤리적 자기구성의 가능성을 모색하게 된다. 그리고 ‘자아에의 배려’ 혹은 ‘자기의 테크놀로지’라는 그리스인들의 미적 윤리에 그 해답의 실마리가 있다는 생각에 도달한다. 미적 원리를 윤리적 자기 구성에 도입하면 폭력성이 없어도 강력한 윤리적 자기 구성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푸코가 주장하는 미적 윤리학은 최근에 대두하고 있는 탈근대 사상가들의 유미화, 미학화의 경향을 보여주는 예이다. 실제로 요즘 푸코 외에도 여러 사람에 의해 서서히 ‘존재미학’이라 불릴 만한 작업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가령 리차드 로티가 말하는 신실용주의적 ‘아이러니’는 인식론적 회의주의에서 적극적인 미적 윤리로 나아가는 전략이며, 아울러 누스바움의 신아리스토텔레스주의 역시 고대의 미적/윤리적 원리를 오늘날에 되살리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그리스인들은 삶(bios)에 형상(eidos)을 줄 때에 비로소 존재자는 존재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들에게 존재한다는 것은 곧 자기 삶에 미적 형식을 주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미적 형식은 윤리적 강제와 윤리적 방종이라는 근대적 이분법을 뛰어넘는 삶의 가능성을 암시한다.

우리 사회는 전근대적인 슈퍼에고의 폭력과 여기에 반발하는 몰취향한 성적 퇴폐가 묘하게 공존하는 괴상한 아노미 상태를 보이고 있다. 전근대적인 슈퍼에고는 자기 포기, 내지 쾌락으로부터 도피를 본질적 내용으로 하는 “처녀성의 도덕”을 사회에 강요한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이 초도덕적인 사회가 그 이면에 엄청난 성적 타락과 방종을 조장하고 있다. 쾌락을 겁내어 그 앞에서 도주를 하는 도덕주의와 쾌락에 함몰되어 그 지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향락주의는 어쩌면 ‘노예의 도덕’의 두 얼굴이다. 그런 의미에서 < 향연>이 제시하는 존재미학의 가능성은 우리 사회의 새로운 에토스의 형성을 위한 원리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맑스는 “미래의 윤리학은 미학”이라고 말했다. 새로운 시대의 에토스는 미학적인 성격의 것, 즉 미적 에토스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푸코의 < 향연> 독해

우리에게 윤리란 오직 “국민윤리”뿐이고, 우리가 배운 유일한 도덕은 “반공도덕”뿐이다. 학교든 사회든 개인을 배려하는 윤리나 도덕을 가르쳐준 적이 없다. 윤리성을 갖는 것은 충실한 “국민”이 되는 데에 있고, 인간이 지켜야 할 최고의 덕목은 “반공”이라고 배웠을 뿐이다. 물론 이는 국가주의 파시즘의 통치를 받은 우리의 역사적 경험을 반영하는 극단적인 예이나, 서구의 근대 역시 비록 이렇게 극단적이지는 않다 해도 어떤 보편적인 정치적, 종교적, 도덕적 규범을 제시하면서 사회성원들에게 자기 자신을 포기하고 사회가 설정한 규범에 자신을 뜯어맞추는 것이 곧 윤리요, 도덕이라 가르쳐왔다. 하지만 그리스인들은 달랐다. 그들은 자기를 포기하라고 가르치는 도덕을 갖고 있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자기를 배려하는 윤리가 있었다.

푸코에 따르면 이 자기 배려의 윤리는 크게 세 가지 축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먼저 자기의 몸을 배려하는 양생술, 이어서 자기 가정을 배려하는 가정관리술,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랑하는 이와의 관계를 배려하는 연애술이 그것이다. 여기서 양생술은 적절한 운동을 하거나 히포크라테스가 제시한 다이어트 목록에 따라 섭생을 함으로써 몸을 늘 건강하게 유지하는 수완(=테크네)를 말한다. 오늘날 ‘경제’라는 낱말의 어원이 된 가정관리술은 남성이 배우자와 함께 농장을 관리하고 후사를 잇는 데에 필요한 수완이었다. 그리스인들에게 부부 사이는 연인이라기보다는 가정관리를 위한 조력자라는 의미가 강했기에, ‘에로틱’은 부부 사이의 사랑이 아니라 성인 남성과 어린 소년 사이의 동성애의 관계를 배려하는 수완이었다.

고대 그리스인들에게는 세 가지의 성애가 사이좋게 공존하고 있었다. 이성애, 게이, 레즈비언. 이중에서 어느 특정한 성애를 보편적 규범, 신이 부여하신 자연의 질서로 모든 이에게 강요하는 문화란 그리스인들에게는 아직 낯선 것이었다. 그들이 모든 성애를 허용했다고, 성을 전혀 규제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다만 규제하는 방식이 전혀 달랐을 뿐이다. 가령 그리스인들이 성을 규제하는 원리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었다. 먼적 양적인 기준으로 ‘과도하냐, 적절하냐’는 것이다. 말하자면 그들은 특정한 성애의 형태를 금지한 것이 아니라, 어떤 성애든 과도한 성교로 방종에 빠지는 것만을 규제했던 것이다. 다른 하나의 기준은 질적인 것, 즉 ‘성행위 속에서 역할이 능동적이냐, 수동적이냐’ 하는 것이었다. 그리스인들은 남성이란 성행위 속에서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믿었다. 이 두 가지 원리를 가만히 보면, 그리스인들이 성을 규제하는 원리는 ‘도덕적 금지’가 아니라 ‘미학적 절제’였음을 알 수 있다. 한 마디로 그리스인들은 성 윤리를 미적으로 조직했던 것이다.

플라톤의 < 향연>에 따르면 에로틱은 양생술로도 막을 수 없는 육체의 유한성을 극복하는 수완이다. 즉 육체적 영원성에 도달하려면 여자에게 가서 후손을 얻으면 되고, 정신의 영원성을 얻으려면 미소년에게 가서 그의 머리 속에 자기 생각의 씨를 심어주면 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그리스인들은 동성애에 그 어떤 성애보다 커다란 의미를 부여했다. 그들에게 동성애, 즉 성인 남성과 미소년 사이의 성애는 그저 개인적 차원의 사적 관계에 불과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동시에 기성세대가 폴리스의 미래를 담당할 2세들을 교육하는 공적 성격을 띠고 있었다. 말하자면 성인 남성은 소년과 달랑 성 관계만 맺는 게 아니라, 그 과정에서 소년과 함께 운동을 하고 그에게 지혜의 말을 들려줌으로서 그의 몸과 영혼을 성숙하게 만드는 폴리스의 임무를 수행했던 것이다. 이렇게 동성애 속에는 사적 애정의 충족과 공적 의무의 수행이 행복하게 통일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바로 이 때문에 동성애가, 그것도 성인 남성과 미소년 사이의 동성애가 그리스인들의 성담론의 중심을 이루었던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성인 남자와 미소년의 관계에는 사적 애정과 공적 임무의 이 행복한 결합을 교란하는 요인이 내재되어 있었다. 즉 사적인 애정의 측면에서 보자면 이 관계 속에서 능동적(=남성적) 역할은 자연스레 성인 남자에게 돌아가고, 구애를 받는 수동적(=여성적) 역할은 소년에게 돌아간다. 반면 공적 임무의 측면에서 보면 성인은 소년을 무엇보다도 ‘남자’로 키워야 했다. 말하자면 성관계 속에서 여성적 역할을 하는 소년을 동시에 남성으로 키워야만 한다는 모순. 이것이 그리스인들로 하여금 이런 류의 동성애를 끊임없이 문제삼지 않을 수 없게 했던 것이다. 이 모순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유일한 방법은 소년이 자라남에 따라 점차 그 관계의 성격을 사랑(=아프로디지아)에서 우애(=필리아)로 전환시키는 것이었다.

아무리 동성애를 허용했던 그리스인들이라도 다 자란 성인 남자 사이의 동성애는 우스꽝스러운 것으로 보았다. 즉 사랑을 우애로 전화시키지 못하고, 다 자란 성인이 되어서도 과거와 똑같은 형태의 애정관계에 빠져 헤매는 것은 아름답지 못하다고 보았던 것이다. 왜? 다 자란 성인 남자 둘이 관계를 맺을 때, 그 관계 속의 한 사내는 남자가 아니라 여성의 역할을 하고 있을 터이고, 이렇게 적극적이고 능동적이어야 할 남성이 성인이 되어서도 수동적이고 소극적인 여성의 역할을 한다는 것은 그들이 가진 ‘주인의 도덕’에 위배되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성인 남자와 소년의 동성애는 소년에게 2차 성징이 나타날 때쯤에는 서서히 남성적/여성적이라는 ‘불평등한’ 아프로디지아의 관계에서, 둘 다 능동적인 남성의 역을 하는 ‘평등한’  필리아의 관계로 발전해야 했다.

이렇게 보면 이제 플라톤의 < 향연>이라는 텍스트가 가진 의미가 드러난다. 푸코가 보기에 < 향연>은 구애의 ‘주체’인 성인 남자와 구애의 ‘대상’인 소년 사이의 불평등한 아프로디지아의 관계를 두 ‘주체’ 사이의 평등한 필리아의 관계로 전환하는 전략과 관련이 있다. 가령 성인 남자와 소년의 관계를 보자. 성인 남자는 자기가 가진 ‘지혜’로써 소년에게 구애를 하고,구애를 받는 소년은 아름다움 ‘몸’을 갖고 있다. 여기에서 지혜는 성인 남자의 머리에서 소년의 머리로 옮겨지고, 소년은 그 대가로 자기의 몸을 허락한다. 지혜가 한 쪽에서 다른 한 쪽으로 흐르는 일방적 관계를, < 향연>은 두 주체가 함께 지혜를 찾아 나서는 평등한 필리아의 관계로 바꾸어놓으려 한다. 이제 지혜는 성인의 머리가 아니라 저 천상의 이데아의 세계에 존재하고, 남자와 소년은 함께 그 지혜를 지향하는 도정 속에서 평등한 동반자가 된다.

가령 소크라테스를 생각해 보자. 지금 남아있는 조상으로 보아 그는 결코 잘 생긴 얼굴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수많은 소년들의 사랑을 받았다. 정신의 ‘지혜’와 몸의 ‘절제’로써 그는 이렇게 구애의 주체인 동시에 소년들의 사랑을 받는 구애의 대상이 될 수가 있었다. 그리고 그는 말하기를, “나는 지혜를 갖고 있지 못하나 그것을 낳게 할 수는 있다”고 했다. 이것이 바로 소위 ‘산파술’이라는 것이다. 여기에서 지혜는 소크라테스의 머릿 속에 들어있는 것이 아니다. 그는 “지혜를 갖고 있지 못하”다. 따라서 그것을 소년의 머리 속에 옮겨줄 수도 없다. 하지만 그는 “지혜를 낳게 할 수는 있다.” 말하자면 소년과의 대화를 나누는 가운데, 그 대화 속에서 진리를 산출할 수는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소크라테스와 소년은 더 이상 일방적으로 지혜를 주고 받는 관계가 아니라 함께 지혜를 생산하는 주체가 된다. 바로 이렇게 일방적인 아프로디지아를 평등한 필리아로 바꾸어 놓는 수완을 갖추었다는 점에서 소크라테스는 에로틱의 대가였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수많은 소년들의 구애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 향연>에 나오는 ‘계단론’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드러난다. 거기에서 디오티마라는 무녀는 하나의 몸의 아름다움에서, 여러 개의 몸의 아름다움으로, 거기서 영혼의 아름다움으로, 거기서 법과 제도의 아름다움으로, 나아가 미 그 자체, 저 천상의 미의 이데아로 상승해야 한다고 말한다. 한 마디로 이는 육체적 아프로디지아에 매몰되지 말고, 그 관계를 발전시켜 인간의 영혼과 지적 산물과 지혜에 대한 사랑으로 상승해야 한다는 얘기가 된다. 그리고 육체적 사랑에 머물지 않고 대등한 주체가 되어 함께 저 지혜의 세계, 저 천상의 이데아를 향해 올라가는 연인의 등에는 깃털이 돋아나, 두 사람의 영혼은 날개를 달고 저 천상으로 상승하게 된다. 이 두 연인의 필리아(philia)는 지혜(sophia) 대한 사랑이기도 하다. 그의 지의 사랑을 우리는 필로소피아(philosophia), 즉 철학이라고 부른다. 결국 그리스의 철학은 본디 에로틱에서 나왔다는 얘기가 된다. 이렇게 철학은 애초에 몸에서, 즉 섹스에서 출발했던 것이다.

흔히 말하는 ‘플라토닉 러브’란 실은 플라톤과는 별 관계가 없는 말이다. 플라톤은 결코 육체적 사랑을 배제하지 않았다. 외려 그에게 육체적 사랑은 이데아를 향한 영혼의 비상이 시작되는 전제조건이었다. 그가 경계한 것은, 아프로디지아의 관계에 매몰되어 거기에만 머물면서 더 고차적인 단계로 사랑을 발전시키지 못하는, 에로틱에서의 무능력이었다. 동침을 하더라도 성교를 절제한 소크라테스의 금욕은 결코 자기의 쾌락을 포기한 처녀성의 도덕이 아니었다. 그는 심히 목이 마를 때까지 기다린 다음에야 물을 마심으로써 물을 마실 때마다 쾌감을 느낄 수 있었다고 한다. 심히 목이 마를 때까지 참는 그의 금욕이 결코 쾌락의 포기가 아니라 더 큰 쾌락을 위한 것이었듯이, 성에 관한 그의 금욕과 절제 역시 실은 더 큰 쾌락을 위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것이 고대 말에 이르러 서서히 그 의미가 변화하여 중세의 기독교 문명이 시작되면서, 영혼을 위해 육을 경멸하고 쾌락 자체를 죄악시하는 도덕적 코드로 변질되고 말았던 것이다.

한 가지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여기서 푸코는 고대 그리스의 성도덕을 오늘에 되살리자고 주장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그가 그리스에서 주목하는 것은 오늘날의 상황과 맞지 않는 당시의 구체적인 성도덕이 아니다. 그리스인들이 자신을 윤리적 주체로 구성하는 그 미학적 방식, 푸코의 관심은 바로 거기에 가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굳이 윤리적 규준이나 도덕적 규범을 개인들에게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이렇다할 금지 없이도 성생활이 방종에 흐르지 않게 형식과 스타일을 부여하는 그리스인들의 미학적 자기 구성의 방식. 바로 그것을 오늘날에 되살리고 싶은 것이다. 나쁜 일을 하는 것보다 촌스러운 일을 하는 것을 더 꺼리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때로는 미적 원리가 딱딱한 도덕규범보다 더 큰 윤리적 구성력을 가질 수가 있다. 한 마디로 개별 인간들을 어떤 보편적 규범 하에 종속시키는 강압적 방식이 아니라 자유로운 미적 윤리에 따라 자아를 구성할 가능성을 그리스인들에게서 보았던 것이다.

흔히들 < 성의 역사> 1권과 2권 사이에 푸코의 사유에 ‘단절’이 일어났다고 말한다. 말하자면 2권을 쓰는 시점에서 전기 푸코와 후기 푸코의 문제의식에 전환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들뢰즈는 이 ‘단절’을 ‘연속’으로 파악하지만, ‘단절’이든 ‘연속’이든 이 책에서 푸코의 관점은 180도로 달라지는 것이 사실이다. 과거에는 주체를 담론이나 권력의 효과로 간주함으로써 주체를 객체화했다면, 이 책에서부터 그는 주체의 자기 구성이라는 관점에서 담론과 권력의 망을 바라보기 시작한다. 물론 이 관점의 전환이 푸코의 앞의 저작들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외려 푸코의 이러한 전환은 전기의 저작들이 가진 논리적 필연성 위에서 비로소 가능했던 것이다. 푸코에게서 “주체”는 죽지 않았다. 죽은 것이 있다면 신민(=subjet)이라는 의미도 가진 근대적 주체(=subjet)이고, 그 낡은 주체의 주검에서 새로운 주체, 즉 ‘자아’라는 이름의 주체가 등장한 것이다. ‘자아’란 자기배려의 윤리로 자기를 능동적으로 구성하는 미적 주체, 자기 삶을 작품으로 만들어나가는 예술적 주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