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세계, 세계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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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이 있으라.”
(창세기 1:3)
왜 그랬을까? <숭고론>의 저자 위(僞) 롱기누스는 이 문장을 숭고한 문체의 전범으로 꼽았다. 헬레니즘 문명에 속하는 저자가 왜 하필 머나먼 오리엔트 헤브라이즘 경전 속의 구절을 숭고의 탁월한 예로 선택한 것일까? 게다가 그 문장은 아무런 수식도, 그 어떤 미사여구도 없이 달랑 주어와 동사, 두 낱말로 이루어져 있지 않은가. 거기 어느 구석에 숭고함이 깃들일 여지가 있단 말인가? 2년 전 <숭고론>을 읽다 이 물음을 갖게 된 이후 오랫동안 이 문제를 놓고 머릿속으로 씨름을 해 왔다. 그러다가 최근에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그리고 이제 그 대답을 얻은 것 같다.
아마 ‘있다’라는 동사가 명령법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일 게다. 우리말과 달리 서구에서 존재를 표시하는 동사가 명령형으로 쓰이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가령 ‘여기에 있으라’고 하고 싶을 때, 그들은 ‘있다’ 대신에 ‘머물다’, ‘기다리다’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명령은 곧 ‘너’에게 내리는 것이므로 명령법에서는 보통 주어가 생략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 문장을 보라. 거기에는 주어가 들어 있다. 그것도 2인칭이 아니라 3인칭의 형태로. 기이하지 않은가? 그러고 보니, 보면 볼수록 기이한 문장이다. 일상적 언어규칙의 밖에 존재하는 문장이다.
“있으라.” 여기서 ‘있다’라는 동사는 이미 존재하는 사물이 3차원 공간 속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나타내는 데에 사용되고 있지 않다. 아직 존재하지 않았던 사물을 3차원의 좌표 속에 처음으로 들여놓기 위해 사용되고 있다. 하이덱거라면 이를 아마도 ‘존재자와 존재의 차이’라고 했을 게다. 호모 파브르가 제 아무리 제작의 명인을 자처해도, 무(無)에서 유(有)를 만들어낼 수는 없다. 그것은 인간의 제작능력의 한계를 벗어나는 일이다. 그리고 우리 언어의 문법 역시 바로 그 한계에 사로잡혀 있다. 그래서 저 문장은 인간의 언어규칙 밖으로 나가지 않을 수 없었으리라. 바로 그 때문에 숭고한 것이 아닐까?
“있으라.” 어느 민족의 신화도 유태의 신화만큼 급진적이지 못하다. 가령 그리스 신화에서는 땅과 하늘이 이미 있고 그 안에 신들이 산다. 하지만 유태의 신은 세계 밖에 있고 땅과 하늘을 비로소 “있”게 만든다. 그의 창조는 creatio ex nihilo, 즉 무(無)로부터의 창조다. 그가 세계를 창조하는 광경을 머리 속에 그려 보라. 그것은 이미지를 떠올리는 우리 표상능력을 배반한다. 왜? 그러려면 존재의 영점, 아직 시간이 없었던 시점(?), 아직 공간이 없었던 지점(?)으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상상이 되는가? 유태 신화의 이 가공할 형이상학적 스케일. 그 앞에서 헬레니즘의 저자 역시 ‘숭고’의 감정을 느껴야 했을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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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요한복음 1:1-3)
신은 말씀으로 세계를 지었다. 세계는 신의 말씀으로 된 거대한 책이고, 그 속에 존재하는 사물들은 신의 어휘다. 천지창조는 거대한 세계의 책을 쓰는 작업이었을 게다. 신은 먼저 어둠 속에서 붉을 켠다. “빛이 있으라.” (창 1:3) 이어 하늘과 땅과 물을 갈라 책을 펼친다. “물 가운데 궁창이 있어 물과 물로 나뉘게 하리라…”(1:6) 이 코발트 빛 종이 위에 신은 마침내 해와 달과 별, 꽃과 나무와 숲, 물고기와 들짐승과 날짐승을 적어 넣으신다. “물들은 생물로 번성케 하라, 땅 위 하늘의 궁창에는 새가 날으라 (….)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되 육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종류대로 내라.”(1:20,24)
이것으로 끝인가? 아니다. 그 책을 읽고 이해하고 경탄해줄 독자가 필요하다. 그리하여 신은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1:27)하시고, 그에게 책 읽는 법부터 가르치신다.
여호와 하나님이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어떻게 이름을 짓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이르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일컫는 바가 곧 그 이름이라. (2:19)
엄마가 아기에게 그림책을 보여주고 이름이 뭐냐고 묻듯이 신은 손가락으로 자기가 써넣은 어휘들을 하나 하나 짚어나간다. 그러면 최초의 독자는 하나씩, 하나씩 또박또박 그 이름을 말함으로써 신을 기쁘게 한다.
천사들은 천국을 우러러보거나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필요가 없다. 그 이유는 천사들이야말로 늘 하나님의 얼굴을 바라보며 시간의 단절 없이 하나님의 영원불변의 의지를 읽기 때문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의지를 읽고, 그것을 선택하고, 그것을 사랑한다. 그들은 항상 읽고 있고, 그들이 읽는 책은 결코 끝이 없다. 그들이 읽는 책은 절대로 덮이는 법이 없으며, 두루마리는 절대로 되감기는 일이 없을 것이다. 하나님이야말로 그들의 책이고 영원이기 때문이다. (아우구스티누스)
인간이 세계 속에서 거대한 성경책을 읽어야 했다면, 천사들은 성경을 읽을 필요가 없었다. 그들은 신(神)의 얼굴을 책으로 읽었기 때문이다.
iii
저자의 지혜와 섬세함을 그토록 정황하게 나타내는 글자들, 그렇게 아름답고 정교하게 만들어졌으면서도 서로 분명하게 구분되는 글자들 (…) 우주의 피조물을 통해서, 마치 살아있는 글자들을 통해서처럼 우리는 조물주의 위대하심을 읽도록 우주라는 경이로운 책 앞에 놓였도다. (후라이 루이스 데 그라나다 <신앙상징입문서>)
이렇게 우주와 자연을 거대한 책으로 보는 생각은 원래 카톨릭 교회의 수사법에서 시작하여 중세 초기의 신비주의 철학자들로 이어졌다가, 그 후에 마침내 보편적인 것이 되었다고 한다. 알랑 드 릴르라는 시인은 “이 지상의 모든 피조물은 그림이나 책과 같다”고 했다. 12세기의 후고라는 사람은 세계를 “신의 손가락에 의해 씌어진 책과 같은 것”으로 보았다.
눈에 뵈는 모든 사물들이 분명하게 우리에게 상징적으로 말할 때, 즉 비유적으로 해석될 때, 그것들은 눈에 뵈지 않는 의미와 말을 가리킬 수 있다.” (후고 <천상의 위계>, II)
눈에 뵈는 사물을 통해 눈에 뵈지 않는 의미를 나타내는 것. 이를 ‘알레고리’라 부른다. 가령 흰색, 붉은 색, 녹색은 ‘자비’, 검은 색과 노란 색은 ‘속죄’와 ‘슬픔’, 흰 색은 빛과 영원, 장미는 처녀성, 타조는 정의, 비둘기는 성령, 물고기는 그리스도…. 이 목록에는 원칙적으로 끝이 없었다.
움베르토 에코에 따르면 ‘세계를 알레고리로 읽는다’는 것은 곧 ‘세계를 성서처럼 해석한다’는 뜻이었다고 한다. 말하자면 그들은 세계를 연구하기 위해 책을 쓴 것이 아니라 성서를 입증하기 위해 세계를 읽었던 것이다. 세계를 읽으면 읽을 수록 알레고리의 체계는 날로 복잡해져만 갔다. 하지만 그것이 모든 이의 마음에 들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이 알레고리의 연구들은 할 일 없는 사람들이나 하는 짓이다. 여러분은 내가 아무 피조물에 대해서나 알레고리의 유희를 해대지 못하리라 생각하는가? 알레고리를 못할 만큼 재치 없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루터 )
교회의 권위가 땅에 떨어져 갈 때쯤, 유명한 종교 개혁가는 이렇게 짜증을 냈다. 종교개혁은 세계를 알레고리의 책으로 보는 스콜라 수사학의 개혁이기도 했던 것이다. 하지만 알레고리에 대한 루터의 저주에도 불구하고 ‘세계의 책’이라는 은유는 사라지지 않았다.
iv
하나님이 인간을 위해 창조하신 것이 숨겨져 있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어떤 사물을 숨겨놓으면서 어느 것에나 특별한 형식의 외적이며 가시적인 기호를 새겨놓으셨다. 마치 보물단지를 묻어놓은 사람이 다시 찾을 수 있도록 매립장소에 표시를 해놓는 것처럼. (파라켈수스 [물성론 9서])
중세의 신학자들이 ‘세계=책’이라고 했을 때, 그때의 ‘책’은 ‘성서’를 가리켰다. 유태의 랍비들에게 모세 5경에 담긴 진리를 모두 풀어쓰려면 온 바다의 물을 잉크로 쓴다 하더라도 모자랐다. 마찬가지로 중세의 서구인들에게 성경 속에는 세상의 모든 사물과 모든 사건에 대한 진리가 들어 있었다. 하지만 르네상스 시대에 들어오면 이와는 다른 새로운 독해법이 등장한다. 물론 이 시기에도 세계는 여전히 ‘책’이었다. 하지만 그 ‘책’은 더 이상 성경이 아니었다. 이 시절에도 세계 속의 사물은 여전히 글자처럼 그 의미를 읽을 수 있는 기호였다. 하지만 그 사물이 가진 의미는 더 이상 성경 속의 인물이나 사물이 아니었다. 세계를 신이 쓰신 텍스트로 보는 수사법은 여전히 남아 있었지만, 중요한 것은 더 이상 세계를 성경과 대응시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어떤 사물을 숨기면서 새겨놓으신 “외적이며 가시적인 기호”를 통해 그 사물의 비가시적 속성을 읽는 것이었다.
인간의 오성의 비밀스런 운동이 그의 음성에 의해 현시되는 것처럼, 풀도 자기의 외징을 통해 호기심 많은 의사에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때 풀은 (…) 자연의 침묵의 베일 속에 감추어진 자기의 내적 덕성을 드러내 준다. (크롤리우스 [징조론])
“이야기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 시기에 자연은 아직 언어적 본질을 갖고 있어 여전히 인간에게 말을 걸었다. 그리고 그 말을 통해 보이지 않는 자기의 내적 속성을 의사들에게 살짝 귀뜸해 주었다. 여기에서 풀의 외징, 즉 가시적 특성은 풀의 내적 성분, 즉 그것의 보이지 않는 성질의 기호가 된다. 말하자면 그들은 풀의 모양에서 그것의 약효를 읽었던 것이다. 중세에는 세계 속의 사물이나 사건을 성서 속의 사물과 사건으로 읽는 상징적 독해가 강조되었다면, 르네상스부터는 이렇게 사물들 사이의 인과적 연관, 발생적 연관을 찾아 읽는 경향이 강화된다. 중세의 알레고리적 독해 대신에 별들은 모든 초목들의 모태이다. 창공에 빛나는 하나 하나의 별들은 모두 어떤 한 식물의 영적인 모형이다. 별은 그런 식으로 그 식물을 표상한다. 각각의 풀 내지는 초목들이 하늘을 쳐다보는 지상의 별인 것처럼, 각각의 별들은 오직 질료에서만 지상의 초목들과 구별되는 영적인 형상을 지닌 천상의 초목이다. 이 천상의 초목들은 지상을 향하여 자기들이 산출한 지상의 초목들을 내려다 보면서 그들에게 어떤 특수한 덕목(=속성)을 불어넣는다. (크롤리우스 [징조론])
이렇게 사물들 사이의 유사성에 기초해 한 사물을 다른 사물의 기호로 읽는 은유적 독해나, 생장작용 면에서 볼 때 식물이 야수에 가까이 있듯이 인간은 야수에 가까이 있다. 하지만 인간은 지성이 있기에 별들에 가깝다. 이런 연쇄고리들은 엄격히 진행되기 때문에, 그것들은 마치 제1원인으로부터 가장 낮고 가장 미세한 사물들에게까지 늘어져 있는 하나의 밧줄 모양으로 나타난다.
사물들 사이의 인접성에 기초한 환유적 독해가 들어선다.
손의 엄지손가락과 같은 위치에 날개와 비례하여 달려 있는 날개 깃. 우리의 손가락들과 같은 날개 깃의 맨 끝 부분….
이렇게 유비로 읽는 독해법이 있는가 하면 식물들이 서로 간에 증오감을 갖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 올리브와 포도나무는 양배추를 싫어하며, 오이는 올리브로부터 도망간다고 한다.
사물들 사이에 공감과 반감을 보는 독해법도 있었다. 16세기에는 이렇게 모방, 인접, 유비, 공감/반감에 따라 자연을 읽었다. 푸코가 전하는 얘기다. 그 시절 빛을 보는 두 눈은 해와 달, 사랑의 키스를 전하는 입은 비너스(=금성), 코는 쥬피터(=목성)의 지팡이였고, 수사슴의 머리에는 나무가, 인간의 얼굴에서는 풀이 자랐고, 하늘에 일곱 개의 혹성이 있기에 인간의 얼굴에도 일곱 개의 구멍이 있었으며, 장례식에 사용된 장미의 냄새는 그 이력을 모르는 사람들까지 슬프게 해주었다.
‘수사슴의 머리에는 나무가 자란다.’ 우리는 여기서 ‘나무’가 사슴뿔의 은유라고 본다. 하지만 르네상스 시대의 사람들은 거기서 문학적 ‘은유’ 이상의 것을 보았다. 지금 보면 터무니없는 얘기에 불과하나 여기에도 지적 진보는 있었다. 중세의 자연신학이 자연물 속에서 상징적 의미를 읽었다면, 르네상스의 자연철학은 그보다는 과학적(?)이었다. 르네상스의 책(=자연) 속의 모든 것은 다른 모든 것을 가리키는 기호였다. 그것들은 다른 모든 것과 모방, 인접, 유비, 공감의 원리로 서로 연관을 맺고 있었다. 따라서 르네상스의 책읽기, 즉 자연 독해에는 적어도 사물들 사이의 발생적, 인과적 연관을 추적하려는 의지가 들어 있었다. 파라켈수스나 야콥 뵈메의 자연철학과 기호론이 점성술, 약학, 연금술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음을 생각해 보라. 르네상스적 책읽기는 점성술, 약학, 연금술이 현대의 천문학, 의학, 화학의 탄생에 기여할 만큼의 과학성을 갖고 있었다.
세계를 책으로 보는 은유는 이 시대에 의미변화를 겪게 된다. 세계는 여전히 사물로 된 기호로 가득 찬 책이었으되, 더 이상 성경책은 아니었다. 그 책은 여전히 신이 쓰신 책이었으되, 더 이상 신학적 텍스트는 아니었다. 자연은 성서가 아닌 뭔가 다른 책이었다. 바로 이 때부터 ‘세계=책’이라는 은유는 인간의 이성이 신학의 감시에서 벗어난 자연탐구를 가능케 해주는 근거로 소용된다. 진리는 오직 성경에만 들어 있는 것이 아니다. 진리는 신이 쓰신 또 다른 책 속에 들어 있다. 그 다른 책이란 바로 자연이다. 여기에서 서서히 진리의 근원은 성경에서 자연으로 바뀌어 간다.
v
인간 정신은 본래 자기가 실제로 보는 것보다 과장되게 사물의 질서와 사물의 상등성을 가정하기 쉽다. 자연 속에는 서로 다른 많은 사물들이 있는 데 반해, 정신은 존재하지도 않는 유사한 사물들과 일치하는 사물들과 서로 관계 있는 사물들을 상정한다. (베이컨 [신기관])
두 사물의 유사성을 그것들의 동일성의 증거로 읽는 독해는 얼마나 강력하고 끈질긴 버릇이었던가. 베이컨은 이를 ‘우상’이라 불렀다. ‘유사하다’는 것을 ‘동일하다’는 증거로 읽었던 은유적 독해는 점차 차가운 이성의 공격을 받기 시작한다. 고전주의적 이성은 엄격한 목소리로 외형적 유사성이 두 사물의 동일성을 의미하는 건 아니라고 단언한다. 사슴의 뿔은 사슴의 머리에 자라는 ‘나무’가 아니다. 수염은 얼굴에 자라는 ‘풀’이 아니다. 얼굴의 일곱 구멍은 인간의 안면에 박힌 ‘천공'(天空)이 아니다.
우리는 흔히 두 사물 사이에 몇 가지 유사성을 발견할 때, 현실적으로는 그 양자가 서로 다른 경우에도 그 둘 가운데 하나에만 옳은 것을 양자 모두에게 적용시키는 습관이 이 있다. (데카르트 [정신 계도의 규칙])
푸코에 따르면 세르반테스의 <동키호테>는 “르네상스적 세계에 대한 부정”이었다고 한다. 그 책에서는 “동일성과 차이라는 잔혹한 이성이 기호와 유사성을 쉴 새 없이 비웃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17세기부터 르네상스의 독해는 동키호테처럼 사정없이 비웃음을 당한다. 유사성은 더 이상 지식의 원천이 아니라 오류의 근원이다. 르네상스의 은유적 독해 대신 이제 동일성과 차이를 가르는 잔혹한 이성적 독해법이 등장한다. 도처에서 유사와 유사의 기호만 보고 ‘차이’를 보지 못하는 동키호테들은 이제 ‘광인’의 취급을 받게 된다. 베이컨에게는 아직 ‘종족의 우상’, 즉 인간의 보편적 습성이었던 것이 어느덧 소수 광인의 습성으로 여겨지게 된 것이다.
언어는 더 이상 세계의 형상들 가운에 하나도 아니요, 태초 이래로 사물에 각인된 외징도 아니다 (푸코 [말과 사물])
예전에는 말을 못하는 사물들도 인간에게 말을 걸었다. 외징을 통해 자기의 내적 본질을 귀뜸해주었다. 하지만 이제 사물들은 의미를 잃고 영원히 침묵하게 된다. 중세처럼 상징적인 의미든, 르네상스의 은유적인 의미든, 사물은 이제 일체의 의미를 잃고 글자 그대로 사물이 되어 버린다. 사물은 더 이상 의미를 가지고 인간에게 말을 건네는 주체가 아니다. 이성의 차가운 손은 이들을 한갓 계량의 대상으로 만들어 버린다.
그렇다면 세계는 여전히 책인가? ‘세계=책’이라는 것도 실은 한갓 은유에 불과하지 않은가. 게다가 은유는 더 이상 지식의 원천이 아니라 오류의 근원이 아닌가. 세계는 책이 아니다. 책은 세계가 아니다. 세계가 책이라 믿는 것은 종족의 우상이요 광인들의 버릇이다. 그렇다면 ‘세계의 책’이라는 은유는 이제 완전히 사라진 것인가? 그렇지 않다. 르네상스의 자연철학이 근대의 자연과학으로 대체가 되었어도 ‘세계=책’이라는 은유는 여전히 살아남았다. 가령 케플러와 갈릴레이에게 이 세계는 여전히 거대한 책이었다. 다만 과거처럼 낱말이 아니라 숫자로 쓰여졌다는 차이가 있었을 뿐이다. 이들에게 세계는 거대한 수학 책이었다.
이들의 책 속에 사물은 추상적인 숫자가 되었다. 사람들은 더 이상 사물의 본질을 묻지 않는다. 그저 그것의 크기와 양과 속도를 잴 뿐이다. 세계 속의 사물은 더 이상 신의 어휘가 아니다. 그것은 사물의 본질을 보여주지 않는다. 다만 추상적 기호일 뿐이다. 자연은 언어적 본질을 잃었고, 과거처럼 인간에게 말을 걸어 자신의 내적 본질을 알려주기를 그쳤다. 인간은 더 이상 자연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그를 대화의 상대로, 또 다른 주체로 보지 않고, 한갓 죽은 대상으로 간주할 뿐이다.
vi
그리하여 또 다른 형태의 침묵이 시작된다. 이를 우리는 자연의 가슴 아픈 애도라 부르자. 이는 형이상학적 진리다. 자연에 말을 부여한다면, 모든 자연은 소리 높여 탄식을 하리라 (…) 초목이 바스락 소리를 내기만 해도, 거기에서 한탄의 소리가 들린다. 말을 잃었기에 자연은 탄식한다. 자연의 슬픔은 그녀를 침묵하게 만든다. 그 모든 애도 속에서 자연은 말이 없으려고 한다. (발터 벤야민 [인간의 언어와 언어 일반에 관하여])
벤야민은 다시 자연에 말을 돌려주려고 한다. 어린 시절 우리는 자연과 대화를 할 능력을 갖고 있었다. 어린아이들을 보라. 꽃과 나무와 벌레와 말을 주고받는다. 어린아이들은 선생님과 장사꾼 뿐 아니라 기차와 풍차를 연기하기도 한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사물의 언어를 듣는 이 미메시스 능력을 잃어버렸다. 신은 세상을 말씀으로 만들었다. 세상의 모든 사물들은 신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다. 아담의 언어는 따로 배울 필요가 없었다. 사물의 언어적 본질을 그림처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그 말의 청각적 영상 속에 사물의 본질이 시각적 영상으로 담겨 있었다. 이렇게 사물의 본질을 그림처럼 보여주는 언어는 불가능한가?
이것은 단지 생태론적 관점에서 근대 자연과학에 밀려난 르네상스적 자연철학의 세계관의 부활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벤야민에게서 아담의 언어는 비평작업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림을 글자로 읽을 수 있듯이, 또한 글자를 그림으로 읽을 수 있다. 글자를 사물로 간주할 수 있듯이, 사물을 글자로 읽을 수 있다. 벤야민의 비평은 “결코 쓰여지지 않은 것”, 즉 사물의 언어적 본질을 텍스트로 옮겨놓으려는 시도였다. 세계는 책이 되어야 하고, 책은 사물의 본질을 보여주는 그림이어야 한다. 하지만 분열된 근대적 세계는 더 이상 변증법적 종합을 허용하지 않는다. 세계의 진리는 이제 철학적 체계로 포착되지 않는다. 그리하여 그의 텍스트 속에서 저자는 사라지고, 조각조각 분열된 현실의 파편들만이 나열될 뿐이다. 하지만 그 텍스트 조각들의 충돌 속에서, 그 단편들의 몽타주 속에서 불현듯 세계의 진리가 이미지가 되어 꽃불처럼 떠올랐다가 사라진다. 어떻게 하면 그런 책을 쓸 수 있을까?
vii
이 작업의 방법. 문학적 몽타주. 나는 말할 것이 없다. 그저 보여줄 뿐….
(벤야민, [파사주])
여기에 모은 글은 신문, 잡지 혹은 책에서 조우한 구절의 인용과 그에 대한 코멘트로 이루어졌다. 정치적, 학문적 텍스트가 어지럽게 섞여 있는 것은 당시 내 생활의 그림이다. 베를린에 있던 시절이었으므로 그때 한국의 상황에 대해 알려준 것은 어느 출판사에서 커다란 상자에 가득 담아 보내준 신문, 잡지, 책 등의 자료였다. 여기에 인용된 한글 텍스트는 대부분 그 상자에서 나왔다. 발송을 위해 무게를 줄이려고 신문, 잡지의 글은 가위로 오려낸 조각의 상태를 하고 있었다. 이렇게 조각으로 실려 온 우리 사회의 망탈리테는 나를 경악시켰다. 모든 시대는 다른 시대를 인용하기에, 한 시대를 바라보며 가끔 ‘데자뷔’의 경험을 하게 된다. 이런 글쓰기를 시작했을 당시 팩스나 상자 속에 실려온 우리 시대의 모습이 어디선가 이미 본 듯한 느낌을 주었다. 우리의 90년대는 파시즘이 대두하던 30년대의 인용이었을까?
그 글들을 여기에 다시 책으로 묶어놓은 것은 우리 사회의 망탈리테를 그리기 위함이다. 하지만 원래 그 글들은 체계적으로 우리 지성계의 지도를 작성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원래 의도는 다분히 정치적, 실천적 성격의 것, 즉 그때그때 발생하는 정치적, 사회적 아젠다에 즉각적인 코멘트로 대응을 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주제와 글감의 선택 역시 체계적 관점이라기보다는 상당 부분 상황의 결정에 내맡겨졌다. 바로 그 만큼 이 텍스트들은 우연의 산물인 셈이다. 그래서 어떤 면에서는 더 객관적이다. 우연의 산물 속에 우주의 진행이 인간의 가공을 거치지 않고 들어와 있듯이, 체계화하려는 주체의 의지가 없는 글 속에는 어쩌면 사회의 객관적 진행을 더 충실하게 보여 주는지도 모른다.
우연히 스크랩한 글 쪼가리들을 뒤적이다가 그 속에서 우리 사회를 이끌어 가는 이념의 그림이 떠오르는 것을 보았다. 우리 사회의 지배적 망탈리테가 정치적 국가주의, 경제적 자유지상주의, 문화적 보수주의의 세 축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은 이 작업을 통해 우연히 발견되었다. 그리고 소우주 속에 대우주가 반복된다고 본 르네상스의 독해법이 틀리지 않아, 마치 프랙털 구조처럼 이 거시적 이념의 좌표가 자디잔 미시적 구조들 속에 무수히 반복되며 사회의 모습을 제 형상대로 찍어낸다는 것을 나는 시각적으로 확인한 것 같다. 거시구조와 미시구조 사이의 이 유사성이 사물이 글자처럼 읽히는 존재론적 근거가 된다. 하나의 사물은 다른 사물을 거울처럼 비쳐주는 모나드, 그 때문에 ‘짝짓기’나 ‘왕따’와 같은 아이들의 하잖은 놀이 속에서도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거대한 구조가 반복되는 장엄함을 볼 수가 있다.
viii
전환이 있을 때마다 서술의 문제에 직면하는 것이 철학적 글쓰기에 고유한 특성이다.
(벤야민, [독일 비극의 근원])
벤야민은 철학자로서 아마 최초로 스타일의 문제를 의식한 사람일 게다. 현실의 문제들은 거기에 적절히 접근하기 위해 특정한 철학적 스타일을 요구한다. 여기서 ‘스타일’이란 그저 글의 바깥을 꾸미는 장식이 아니라 오로지 그것을 통해서만 드러나는 진리가 있다는 의미를 함축한다. 소크라테스가 결코 글을 쓰지 않은 것은 데리다의 말한 것처럼 글자가 인간의 기억력을 감퇴시킨다고 믿어서가 아니었을 게다. 그의 진리는 오직 장바닥의 사람들과의 대화 속에서 드러날 수 있었다. 디오게네스가 책을 쓰지 않은 것은 단지 강단철학에 대한 경멸 때문이 아니었다. 그의 진리는 오직 특유의 행위예술 속에서만 빛날 수 있었다. 이 글의 광대 스타일 역시 개인의 주관적 스타일이 아니다. 문제 자체의 요구와 필연성을 반영하는 객관적 스타일이다.
이 글의 운명은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다. 어느 시사주간지에 연재를 하던 중 “주관적 관념의 세계”라는 열화 같은 비난을 받아 도중하차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그 스타일이 사람들에게 불쾌감을 준다고도 했다. 내 글에 비난을 퍼부은 그 잡지의 독자들에게는 이 사건으로 인한 내 불쾌감이 해소될 때까지 하는 일마다 재수가 없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농담은 그것이 왜 우스운지 설명해야 하는 순간 더 이상 농담일 수 없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스타일에게 자신을 줄줄이 해명해야 할 의무를 부여하면, 그것은 더 이상 스타일일 수가 없다. 오늘날 ‘레토릭’이란 말은 한갓 경멸어로 전락했지만, 그 낱말은 원래 언어가 갖고 있던 ‘마법적’이라고 해야 할 어떤 힘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이 글들의 스타일은 그 힘의 발동조건과 관련이 있다.
ix
시모니데스에 따르면 그림은 “말없는 시”, 시는 “말하는 그림”이다. 물론 그림=시라는 이 은유의 바탕에는 화가들이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장인의 수준에서 예술가로 끌어올리기 위해 회화를 ‘자유교양’의 하나로 만들려는 의지가 깔려 있다. 가끔은 이것이 자유교양의 기득권을 누리던 시인들의 반발을 샀던 모양이다. 여기에 심기가 불편했던지 르네상스의 어느 유명한 화가는 이렇게 대꾸했다.
당신네 시인들이 그림을 말 못하는 시라고 한다면, 화가도 충분히 시를 눈 먼 그림이라 칭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 둘 중 어느 것이 더 큰 결함인가 생각해 보라. 눈이 먼 것이냐? 말을 못하는 것이냐? (레오나르도 다빈치)
여기서 문자로 된 텍스트와 이미지로 이루어진 그림은 서로 적대적으로 대립하는 듯이 보인다. 하지만 사실을 말하자면 다빈치는 여기서 시와 회화의 동등성을 말하고 있을 뿐이다. 회화도 장인의 수공업적 활동에 불과한 게 아니라 시 못지 않게 훌륭한 정신적 활동이라는 것이다. 알베르티는 “그림을 바라보면서 역사책을 읽는 것과 같은 기쁨”을 느낀다고 했다. 그것은 회화도 시 못지 않게 고상한 제재를 묘사하고, 시 못지 않게 고귀한 주제를 전달했기 때문일 게다. 실제로 오랫동안 회화는 신화, 성서, 역사 등 문자로 된 성스런 문서의 시각적 번역이었다.
내가 그림을 바라보면서 역사책을 읽는 것과 같은 기쁨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한 사람은 글로, 한 사람은 붓으로 그린다는 점에서 둘 다 화가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알베르티 [건축론])
역사가는 글로 그리고, 화가는 붓으로 그린다. 글씨로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 칼리그람을 말하는 게 아니다. 문제는 과연 ‘텍스트가 그림이 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벤야민은 텍스트를 그림으로 만들려고 했다. 그때 마침 예술은 외부 세계의 가상이기를 포기하기 시작했다. 근대라는 시대에 들어와 세계관의 총체성은 무너지고, 현실은 파편화되고, 대중은 원자화되고, 노동은 추상화되었다. 그래서일까? 회화에서는 대상성이 파괴되고, 음악에서는 조성이 무너지고, 문학에서는 의미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이런 상태에서 텍스트가 그림이 되어야 한다면, 대체 어떤 그림이 될 수 있을까? 아마 입체주의 그림처럼 캔버스에 신문 쪼가리와 같은 현실의 단편들을 오려 붙인 꼴라주가 될 것이다. 혹은 <전함 포템킨>의 오뎃사 계단 장면처럼 단편적인 이미지들의 충돌로 이루어진 몽타주일 것이다.
꼴라주 입체주의 그림이 보여주는 것이 캔버스에 접착된 세계를 쪼가리들 하나 하나가 아니라, 세계를 그렇게 바라보는 시각이다. 몽타주가 보여주는 것은 여러 개의 파편적 장면들이 아니라 그것들의 충돌 속에서 불꽃처럼 번득이다 사라지는 제3의 이미지이다. 변증법의 정과 반이 부딪혀 종합으로 상승하는 것이 새로운 억압으로 돌변할 수 있다면, 이제 진리는 비(非)종합의 형태를 취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타블로의 정적인 그림이 아니라 여러 개의 파편이 부딪혀 만들어내는 꽃불이 되어 번득여야 한다. 그리고 꽃불처럼 순간적으로 명멸하는 이 작은 이미지 속에 현실의 본질이 농축된다. 그런 세계의 본질의 그림을 매개하는 책은 어떤 형태일까? 고전적 의미의 책의 형식도 붕괴한다. 오로지 인용만으로 된 책, 그리하여 체계화하고 분류하고 분석하고 종합하는 저자의 역할이 사라진 책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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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한 권의 책이 되기 위해 존재한다 (말라르메)
정말 그럴까? 소비에트에서 기호학이 처음 시작되었을 때만 해도 세계가 언어구조를 갖고 있다는 생각은 작업가설에 불과했다. 말하자면 여러 문화현상의 분석에 언어학적 패러다임을 적용하려고 그것들을 일부러 언어로 간주했던 것이다. 기호학이 체코를 거쳐 프랑스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이 가설은 서서히 형이상학적 명제로 바뀌어 간다. 가령 구조주의자 레비 스트로스에게 미개인들의 친족 구조는 언어적으로 분절화되어 있었다. 인간을 인간으로 만들어주는 것이 언어의 사용이고, 인간의 생각 자체가 언어적으로 이루어지기에, 인간이 만들어낸 사회가 언어적 구조를 갖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리라. 게다가 자연에 질서를 부여하고, 자연의 사물을 분류하는 것도 언어를 통해서 이루어지지 않는가. 그리하여 세계는 다시 한번 언어로 쓰여진 텍스트가 된다. 정말로 세계는 한 권의 책이 되기 위해서 존재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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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스트 밖에는 아무 것도 없다. (자끄 데리다)
세계가 온통 책 속으로 빨려 들어간 후 세계는 더 이상 따로 존재하기를 그친다. 세계는 기호들의 무한 연쇄 속에 사라진다. 존재하는 것은 오직 텍스트로 분산된 세계의 흔적과 자취뿐이다. 이상한 나라에서 앨리스가 본 고양이처럼 세계는 사라지고 세계의 웃음만 남는다. 이것보다 더 큰 웃음은 없다. 이것은 우주론적 규모의 웃음이다. 모든 위계를 지워버리고 원초적 평등의 강림을 알리는 라블레의 웃음이다. 세계는 한번 크게 웃고….. 사라졌다.
xii
시뮬라크르는 그릇된 복사물이 아니라는 것, 그것은 복사물의 개념 그리고 모델의 개념 자체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는 것….. (질 들뢰즈 [의미의 논리])
과거에 텍스트는 세계의 복사물이었고, 그 안에 세계의 모습을 담고 있었다. 하지만 세계가 웃음 속에 사라진 이상 저 혼자 세계의 진리를 자임하는 텍스트는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하는 것은 오직 시뮬라크르들, 즉 세계에 대한 해석들뿐이다. 앤디 워홀의 연작 속의 마릴린 먼로. 이 연작 속의 개별 작품들이 실물과 닮았는지는 문제가 안 된다. 중요한 것은 모델(실물)도 아니고, 그것을 충실히 베낀 복사물(사진)도 아니고, 다만 색 분해가 되어 단색으로 인쇄된 시뮬라크르들의 놀이다. 이 놀이가 “복사물의 개념, 그리고 모델의 개념 자체에 문제를 제기”한다. 아직도 세계가 존재한다면, 그것은 오직 자취와 흔적으로만 존재할 뿐, 세계의 총체성은 시뮬라크르 파편들 속으로 사라진다.
xiii
초월적 시니피에의 부재, 이를 놀이의 무한계, 즉 존재론 신학과 현전의 형이상학을 뒤흔드는 놀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자끄 데리다 [그라마톨로지])
초월적 시니피에는 사라졌다. 이론으로 해석되지 않은 세계, 언어로 미리 분절되지 않은 세계, 텍스트 밖에서 맨 눈으로 본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세계로 아는 것은 실은 해석된 세계, 언어로 분절된 세계, 이미 ‘문자’로 씌여진 텍스트에 불과하다. 초월적 기의는 없다. 텍스트 밖의 세계는 없다. 따라서 텍스트가 닮아야 할 원본도 없다. 초월적 시니피에의 부재는 현전의 형이상학을 뒤흔드는 놀이, 이 놀이의 무한계 속에서 진리는 존재하며 동시에 부재한다. 텍스트는 다른 텍스트를 지시하고, 그 텍스트는 또 다른 텍스트를 지시하고… 하지만 텍스트는 결코 세계에 도달하지 못한다. 이 무한소급의 놀이에서 세계는 하나의 해석 속에 잠시 모습을 드러냈다가 사라지고, 다른 해석으로 자리를 옮겨 모습을 드러냈다가 다시 사라진다. 그리고 그렇게 무한히… 이 놀이는 세계의 ‘현전’을, 원본의 시각적 그림을 허락하지 않는다. 하지만…
존재했던 것이 현재와 순간적으로 만나 하나의 별자리를 이루는 것…. (발터 벤야민 [파사주])
그것이 “변증법적 그림”이다. 벤야민에게는 아직 현전이 있다. 그림이 있다. 이 그림은 세계의 자취나 흔적이 아니라 세계의 현전이다. 방향을 잃고 밤하늘을 헤멜 때, 불현듯 까만 하늘에 어지러이 널린 별들 틈에서 불현듯 형상이 떠오른다. 마치 그 사이에 끈이라도 달린 양 몇 개의 별이 모여 별자리를 이룬다. 데리다에게 진리란 파랑, 노랑 빨강으로 색 분해 된 시뮬라크르들의 시리즈였다면, 벤야민에게 진리란 몽타주의 충돌 속에 떠오르는 이미지다. 아직 현전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은 구원이다. 해방이 역사 ‘속’에서가 아니라 역사’로부터’ 이루어지는 것처럼, 이 변증법적 그림은 밖에서 이 죽은 세계의 안으로 계시되는 구원의 약속이다.
xiv
구원적 진리의 쇠퇴와 문학 문화의 발흥… (리차드 로티)
헤겔과 비슷한 어조로 그는 서구 문화의 역사를 요약한다. 신학에서 철학으로, 거기서 문학으로. 이제까지 스케치한 책읽기의 역사를 보라. 중세인들에게 세계는 성경책, 근대인들에게는 철학책, 그리고 이제 우리에게 세계는 문학 텍스트 되었다. 오늘날 탈근대 사상가들은 미학적 글쓰기를 한다. 원본과의 일치, 대응으로서의 진리는 사라지고, 그 자리에 ‘새로움’의 미적 가치가 들어선다. 과거 예술가들이 같은 그림을 여러 장 그릴 때, 그들은 거듭되는 실패를 통해 자연에 대해 가장 이상적이며 최종적인 복사물을 얻고자 했다. 하지만 오늘날 예술가들이 같은 그림을 여러 장 그릴 때, 그것은 더 이상 이상적인 복사물을 얻기 위함이 아니다. 연작을 이루는 그림들 사이에 위계질서는 없다. 원본이 사라졌기에 위계의 기준도 없다. 그것들은 시큘라크르, 하나의 시뮬라크르가 다른 것보다 더 참된 것이 아니다. 다만 새로울 뿐이다.
데리다와 들뢰즈를 따라서 그 역시 현전의 부재, 원본의 불가지의 우울함을 새로움을 창조하는 미적 기쁨으로 바꾸어 놓는다. 세계의 완전한 그림을 얻겠다던 이상이 붕괴했으므로 철학은 이제 자연의 거울이 아닌 다른 것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문학이 되기로 한다. 하지만 그것이 과연 유일한 길일까? 그것은 혹시 칸트 류의 형식미학이 아닐까? “새로운 것은 항상 더 좋은 것”이라는 아방가르드의 이념은 실패로 끝났다. 새로운 것이 항상 더 좋으리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로티는 문학 텍스트의 미학성의 공허함에 소통의 ‘유용성’이라는 실용주의 원리를 채워 넣을 줄 안다. 하지만 새로운 것이 항상 더 유용하리라는 보장이 어디에 있는가. 예술적 아방가르드의 좌절은 철학적 아방가르드의 좌초를 예고하는 것일까?
그림은 정지상태의 변증법. 현재의 과거에 대한 관계가 순수 시간적, 연속적이라면, 과거의 현재에 대한 의미는 변증법적이다. 그것은 시간의 흐름이 아니라 그림. 도약하는…. 오직 변증법적 그림만이 진정한 그림, 우리가 그것을 만나는 곳은 언어다. 깨어남. (벤야민 [파사주])
철학은 다른 길을 갈 수도 있다. 사적 유물론은 신학과 별자리를 이룰 수가 있다. ‘현전’은 과거에 있었던 일의 본질이 현재와 관련 속에서 갑작스레 파악되는 “인식가능성의 현재”다. 과거와 현재는 연속을 이루지 않는다. 과거와 현재의 시간적 연속이 몽타주의 공간적 병존 속에 들어갈 때, 변증법적 그림이 섬광처럼 떠오르고, 이 그림은 텍스트와 세계 사이에 벌어진 무한한 거리를 유지하면서도 불현듯 “사상 자체”를 보여준다. 해방이 역사 ‘속’에서가 아니라 역사’로부터’ 이루어지는 것처럼, 변증법적 그림은 텍스트의 바깥으로부터 이 가치를 잃은 잿빛 세계 안으로 섬광처럼 계시되는 구원의 약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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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들은 매끈매끈 기름칠이 잘 되어 있다. 그것들은 세계를 품고 있다. (기욤 아폴리네르)
세계가 온통 책 속으로 빨려 들어간 후 책이 세계가 되었다. 우리가 보는 것은 세계의 흔적이고, 우리가 아는 것은 세계의 사실이 아니라 해석의 세계다. 진리는 사라지고, 그 자리에 해석의 다양성과 그것의 창조성에 대한 미적 경탄만 남는다. 진리가 떠나면 세계는 아름답다. 우리는 그 아름다움의 세계에 갇혀 버렸다. 하지만 아무리 아름다워도 그것은 무수한 원으로 이루어진 원형감옥일지 모른다. 여기서 탈옥을 하려면? 책 속으로 사라질 때 세계가 크게 웃었듯이, 책이 웃을 때 세계가 다시 나타난다. 광대의 놀이를 보며 폭소를 터뜨릴 때 책은 그만 세계를 다시 뱉어내고 만다. 책을 폭파하는 폭소와 함께 다시 책 밖으로. 엑스 리브리스!
그러나 마지막 원은 텅 비어 있다. 그리고 광대는 삐딱하게 지나간다. (장 타르디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