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6-15 김상봉 ‘학벌없는 사회를 위한 모임’

서울대 비판은 이 시대 가장 진보적 의제

글 김상봉 ‘학벌없는 사회를 위한 모임’ 사무처장·철학박사

사람들이 서울대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물론 말 그 자체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수십 년 동안 이 땅의 중·고등학교 교실에서는 끊임없이 서울대가 거론돼 왔다. 학생들에게 서울대는 마치 아리스토텔레스적 의미의 ‘최고선’과도 같다. 그것은 모든 좋은 것들 가운데서 가장 좋은 것, 그리하여 삶의 궁극적 목적과도 같은 것이다.

비단 학교에서만 그런 것은 아니다. 서울대는 가정에서도 마찬가지다. 산업화된 사회, 핵가족화된 가정에서도 여전히 가족의 첫 번째 존재이유는 자녀교육이다. 아이들을 잘 키우는 것은 가족 내에서 다른 모든 요구에 앞선다. 그런데 이 땅에서 자녀교육의 궁극적 희망은 단 하나, 아이를 서울대에 입학시키는 일이다. 서울대가 아니라면 대학서열에서 조금이라도 서울대에 가까운 학교에 입학시키는 것이야말로 자녀교육의 최대목표다.

오랫동안 우리의 가정과 학교에서 서울대는 그렇게 최고의 선망 대상이었다. 그것은 사람들이 추구해야만 하는 마땅한
가치로서 존중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근래 들어 사람들이 서울대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자명한 가치로서의 서울대가 아니라 하나의 문제로서 서울대를 지목한다. 그것은 또한 사람들이 서울대를 맹목적인 선망의 대상이 아니라 객관적 규정과 평가, 비판의 대상으로서 생각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이제야 비로소 서울대에 대해 온전히 말하고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참된 사유란 사람들이 신화와 마법적 주술에서 벗어나 사물을 객관적으로 규정할 수 있을 때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 이 땅의 최고선, 서울대 ◆

그렇다면 서울대는 과연 무엇인가? 오랫동안 현실에 대한 객관적 인식이 아니라 날조된 신화가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을 대신해 왔다. 그에 따르면 서울대는 우리 사회에서 가장 탁월한 사람들이 배우고 가르치는 고등교육기관이다. 지식과 교육은 모든 것이 세속화된 현대에도 어떤 신성함의 후광을 두르고 있다. 인간의 속성 중에서도 생각하고 탐구하는 이성만큼 신적인 것이 또 어디 있겠는가? 그리하여 사람들은 스스로 학문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학문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대학에 대하여 거짓 없는 존경을 표시하는 것이다. 서울대의 신화는 여기서 시작된다. ‘서울대는 대학이며 그것도 가장 우수한 학생과 교수들이 배우고 가르치는 대학이다. 그런 한에서 서울대는 사회적으로 존중되고 보호되어야만 할 가치를 갖는다.’

만약 학문 그 자체의 가치가 문제라면, 학문을 가르치고 연구하는 대학이 아무리 존중받고 신성시된다 하더라도 그것을 탓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서울대가 더 이상 순수한 의미의 교육기관이 아니라는 데 있다. 비단 서울대뿐만 아니라 이 땅에서 대학은 더 이상 순수한 교육과 학문의 기관이 아니다. 그것은 도리어 우리 사회의 계급적 불평등을 유지하고 재생산하는 장치다. 간단히 말해 서울대 출신은 우리 사회의 왕족이며, 소수 명문대 출신은 귀족이다. 그리고 대학 문 앞에도 가보지 못한 사람은 이 땅의 천민이다.

이것은 몇 가지 통계를 살펴보기만 해도 명백히 드러난다. 16대 국회의원 273명 가운데 순수 학부기준으로 서울대 출신은 무려 104명, 전체의 38%를 차지한다. 고려대는 35명, 연세대는 17명이다. 2000년 7월 현재 검사 1,191명 가운데 서울대 출신은 689명으로 49%, 고려대가 233명으로 20%, 그리고 연세대는 84명으로 7%를 차지한다. 행정부를 보면 1999년 1월 현재 3급 이상 공무원 561명 중 서울대가 202명으로 36%, 연세대가 47명으로 8.4% 그리고 고려대가 43명으로 7.7%를 차지한다. 경제계의 경우 2000년 현재 100대 기업 대표이사는 서울대가 50%, 연세대가 10.6%, 그리고 고려대가 9.1%이다. 이런 사정은 학계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대학교수 사회 역시 압도적 다수가 서울대 출신이며, 연세대와 고려대 출신이 겨우 그 뒤를 잇는다.

이렇듯 서울대는 거의 모든 영역에서 압도적인 수적 우위를 차지한다. 이런 의미에서 그것은 우리 사회의 가장 중요한 권력기관이다. 정치권력, 경제권력, 언론권력, 그리고 학문적, 문화적 권력에 이르기까지 이 사회를 지배하는 모든 주요권력은 서울대 출신에 의해 장악되어 있다. 여기서 권력이란 지배하는 힘이다. 그리하여 서울대는 정치, 경제, 언론, 학문과 교육, 그리고 문화를 지배하는 이 나라 지배계급의 모태인 것이다.

더러 사람들은 학벌에 의한 불평등을 은폐하기 위해, 학벌이 좋지 않아도 성공할 수 있는 길은 얼마든지 있다고 강변한다. 옳은 말이다. 고등학교를 나오고도 돈을 벌 수는 있다. 그러나 조선시대의 상인처럼, 오늘날 학벌이 나쁜 사람들도 많은 돈을 벌 수 있겠지만 권력을 얻는 것은 오직 예외적으로만 가능하다. 왜냐하면 재산은 사적으로 소유되는 것이지만, 권력은 본질적으로 오직 집단적으로만 유지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강력한 전제군주라 할지라도 혼자서 자신의 권력을 지킬 수는 없다. 그에게 자기를 지켜줄 군대가 없다면 그가 누구를 지배할 수 있으며, 어떻게 자기의 권력을 지킬 수 있겠는가? 그리고 군대를 통솔하는 귀족들이 왕의 뜻을 따르지 않는다면 그가 어떻게 자신의 권력을 유지할 수 있겠는가? 따라서 재산은 예금통장을 통해 확보될 수 있지만, 권력은 어떤 경우에도 사적인 방식으로 발생할 수 없다. 그것은 언제나 집단적 형식으로 존립한다.

물론 고졸 출신의 대통령이나 장관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의 권력은 언제나 자기를 보좌하는 관료들을 통해서만 관철될 수 있다. 그런데 그 관료들 가운데 가장 많은 수가 서울대 출신이라면 대통령과 장관의 권력은 이들의 동의와 묵인 하에서만 행사될 수밖에 없다.

이것이 어떻게 정치권력의 경우에만 국한되는 일이겠는가? 문학, 예술은 본질적으로는 가장 사적인 방식으로 발생한다. 한 편의 시를 여럿이 공동으로 창작할 수는 없다. 그런 점에서 문학, 예술은 그 자체로서는 권력과 아무런 상관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어떤 작가가 아무리 뛰어난 문학적 역량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만약 그가 서울대 출신이 지배하는 언론에서 그의 작품을 전혀 소개해 주지도 않고, 서울대 출신이 지배하는 국문학계와 비평계에서 주목해 주지도 않는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냥 잊혀지는 것이다. 그러니까 가장 사적인 방식으로 발생하는 예술의 세계조차 권력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 조선시대 사대부
지배의 현대적 계승 ◆

이렇게 해서 우리는 다시 조선시대로 돌아왔다. 우리 역사에서 오랫동안 배움은 권력을 얻기 위한 수단이었다. 조선시대에 사서삼경을 읽는 것이 단순히 학문을 연구하기 위함이 아니라 과거시험을 통해 권력을 얻기 위한 수단이었다. 오늘날 이 전통은 학벌에 의한 권력배분을 통해 이어진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권력의 양상이 다양해졌다는 것과 더 이상 사서삼경이 아니라 영어·수학 같은 현대적 과목들이 배움의 내용이 되었다는 것뿐이다. 어쨌든 배움이 권력을 위한 수단이 된다는 점에서 우리는 아직도 조선시대와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지식이 권력을 위한 수단이 된다는 것은 뒤집어 보면 권력이 자신의 권위를 지식에 기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권력은 사사로운 방식으로 발생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또한 맹목적으로 발생할 수도 없다. 권력은 정당성의 근거를 필요로 한다. 그리고 이것은 한 사회에서 어떤 사람이 다스리고 어떤 사람이 다스림을 받아야 하는가에 대한 합의를 구성하는 기초가 된다. 그리고 권력은 이 합의가 굳건한 만큼 굳건하게 지켜질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어떤 사람이 다스리고 어떤 사람이 다스림을 받아야 하는 것일까? 옛날 로마에서 최고의 권력이었던 집정관(콘술) 선거가 있을 때면, 선거에 출마한 사람들은 속이 훤히 비치는 웃옷을 입고 거리를 누볐다고 한다. 그 까닭은 전쟁터에서 입은 상처를 남들에게 과시하기 위해서였다. 그들은 오직 나라를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울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사람만이 권력을 얻기에 합당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들은 배움이 아니라 용기가 권력의 정당성을 부여한다고 믿었던 까닭이다. 이런 사정은 비단 로마시대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서양 역사를 보면 거기서는 그리스의 도시국가와 로마공화정이 확립된 이래 학문과 권력이 동심원을 그린 적이 한 번도 없었다.

황제인 동시에 철학자였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같은 예외가 있기는 했으나 그것은 개인적인 우연이었을 뿐, 학자가
동시에 정치적 권력의 주체로서 나라를 지배하는 것이 제도적으로 확립되었던 적은 없었다. 도리어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의 제자가 되기 위해 정치의 꿈을 접어야만 했다. 중세에 학문은 세상을 등진 수도승들의 몫이었다. 이런 전통은 그 이후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권력은 원칙적으로 학문이나 지식이 아니라 물리적 힘에 기초하고 있었으며, 지식과 학문은 그 권력을 보조하는 전문적 수단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 까닭에 서양에서는 지식계급이 권력계급과 일정한 긴장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다시 말해 거기서 지식인은 권력에 대해 비판적 거리를 유지할 수 있었고, 권력 또한 자기의 정당성을 지식에서 구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이 땅에서 유교적 지배체제가 확립된 이래 권력은 본질적으로 지식과 같은 뿌리였다. 사대부가 지배하는 나라에서 권력을 쥔 귀족은 동시에 학자요 선비였던 것이다. 정치는 다른 무엇보다 백성을 가르치고 교화하는 것이라 여겨졌으며, 권력의 정당성과 권위는 선생의 권위와 다르지 않았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이 땅의 권력계급에 지배의 정당성을 부여해 주었던 기초이기도 했다.

오늘날 서울대 학벌의 지배는 조선시대 사대부 지배의 전통이 현대적 방식으로 계승한 것에 다름 아니다. 선비가 지배해야 한다는 전통은 공부 잘하고 머리 좋은 사람이 지배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으로 이어진다. 입시나 고시는 지배계급의 지적 탁월함을 검증하는 장치로서 작동한다. 그러나 500년 조선시대 사대부의 지배가 나라 상실로 끝날 수밖에 없었듯이, 50년 현대판 사대부의 지배가 불러온 것은 이른바 IMF 신탁통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나라 지배계급이 소유한 권력의 정당성에 대해 근본적인 비판을 가하지 못하고 있다.

◆ 현대판 씨족이요, 문중인 학벌 ◆

서울대에 대해 말한다는 것은 현대 한국사회의 지배계급에 대해 말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여기서 학벌은 불평등의 기제라는 점에서 넓은 의미의 계급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계급 이상의 것 또는 계급 이하의 것이다. 왜냐하면 학벌은 개인에게 사사로이 귀속하는 영속적인 신분과도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학벌이 나면서부터 정해지는 것은 아니기에, 봉건적 신분과 다르지만, 일단 정해지고 나면 그 자체로서는 변경할 수 없는 개인적 속성이라는 점에서 근대적 의미의 계급이라기보다 봉건적 신분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과거에 신분이 혈통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던 것처럼, 오늘날 학벌도 유사 가족구실을 한다.

한마디로 말해 학벌은 우리 사회에서 현대판 씨족이요, 문중인 것이다. 대학은 모교, 즉 사회적 가족의 품 안이다. 거기서 스승은 부모이고, 선·후배는 형제가 된다. 우리 사회의 사회적 불평등은 바로 이런 현대판 문중의 서열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서울대는 최고의 권문세가로서 모든 분야에서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지배계급인 것이다.

서울대에 대해 말하는 것은 이런 반(半)봉건적 지배질서의 최고 권력집단을 비판하는 것이다. 오랫동안 우리의 지식인들은 서양적 계급이론을 그대로 우리나라에 적용함으로써 도리어 우리 사회의 계급적 불평등의 참모습을 은폐해 왔다. 그러나 미국사회를 움직이는 것이 군산복합체의 이익이라면, 한국사회를 움직이는 것은 권문복합체인 학벌이다. 따라서 만약 우리가 한국사회에서 부당한 차별과 불평등을 없애기를 원한다면, 이제 우리는 한국사회의 지배계급인 서울대와 사회적 불평등의 재생산 장치인 학벌체제, 그 자체에 대해 비판의 칼날을 들이대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런 의미에서 서울대에 대해 말하는 것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이 시대의 가장 진보적인 의제다.

1996년, 이탈리아 폼페이를 여행하면서 죽음을 명상했다. AD 79년 베수비우스 화산이 폭발하던 날 번성했던 고대 로마의 두 도시, 폼페이와 헤라큘레니움이 묻혔다. 18세기에 처음 발굴되었을 때 그 속에서 화산재를 뒤집어쓰고 죽어간 주검들이 생화석으로 발견되었다. 내가 본 폼페이 생화석들 중에는 한 남자가 화산재를 막아주려 사랑하는 여인을 부둥켜안고 죽어간 주검도 있었다. 그 처절한 비극적 절망의 현장은 아직도 눈에 선하다.

누군가의 고통스런 마지막 순간을 1,900여년이 지난 후에 다시 본다는 것, 그것은 내게도 큰 고통이었다. 뜨거운 화산재가 살갗을 파고드는 아픔, 앞을 볼 수 없는 아수라의 현장, 모든 것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역사란 이런 것이다.

흐르는 시간은 마치 화산재처럼 우리의 삶을 덮치고,훗날 누군가 이 화산재를 벗겨냈을 때 당대의 삶은 고스란히 드러나리니. 그러나 사람들은 죽음을 전제하고 살지 않는다.

우리의 삶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전근대적 모순과 부조리, 기득권 수구세력의 개혁을 방해하는 각종 기만술에 휩싸여있다. 예컨대 국회에 안건조차 상정되지 못하고 물 건너간 부패사학 척결과 대학의 공공성 확보를 위한‘사립학교법 개정안’. 상상을 초월한 언론사 불법탈세 및 불공정거래 내역발표와 이를‘언론탄압’이라 우기는 일부 언론사와 정당 등등.

이 모두는 우리가 이 땅에 둥지 틀고 산다는 데 대해 심각한 절망감을 안겨준다. 하지만 과거엔 꿈도 꾸지 못했던 일들이 논의되고 있는 현실 그 자체가 어쩌면 희망일런지도. 이런 절망의 극한은 과거에도 있었다.

20세기 초, 중국의 문학가이자 사상가였던 루쉰(魯迅)이 보았던 사회적 모순도 그랬다. 그는 소설‘아Q정전’에서 힘없는 민초로 표상된‘아큐’와 그를 위협하고 끝내 처형시킨 전근대적 중국사회의 상황을 블랙코미디처럼 그려냈다. 루쉰의 위대함은 그가 비록 절망의 극한에 있었지만 현실에 대한 치열한 관찰과 외침으로 진실된 인간 상황을 드러냈다는 데 있다.

그는“망국병의 뿌리를 칭찬하는 자들을 경계”하고,“남에게 해를 끼치면서도 복수에 반대하고 관용을 주장하는 인간은 절대로 가까이하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다. 이는 훗날 생화석으로 발굴될 현재의 우리가 부조리에 대항하는 시민정신으로 무장한 채 죽음을 전제한 치열한 삶을 살아야함 을 일깨운다. 나는 바로 이것이 희망이라고, 그동안 집필해온 칼럼의 유언을 남기는 바이다.

드디어 기말고사 후부터 나를 옥죄던
레포트를 다 해결했다. 그런데 이 마지막 레포트는 영 쓰레기다.
아니, 내가 쓴 글들이 다 쓰레기지.
하지만 요즘은 특히나 글을 더 못 쓰겠다.
글이 안 써지는 것도 상당히 괴로운 일이란 걸 이제사 좀 알겠군…
그런데 왜 올리냐고?
여긴 난지도라니까…

야생의 사고에 대한 편견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명제로 대표되는 합리주의적 전통은 근대 서구 문명의 중요한 토대가 되었다. 이 명제 하나만으로 근대 서구 문명 전체를 총괄할 수는 없겠으나 자기의식적 이성에 기반한 객관성과 합리성이 근대 서구 문화를 특징짓는 핵심 단어라는 점에서 그러하다. 오랜 시간에 걸쳐 이루어진 탐구와 논의 속에서 굳건하게 다져진 이 이성적인 문명은 어느 정도 자기 우월감에 도취될 만했다. 세계를 명확하고 분명한 언어로 구축하는 데에 있어 다른 문명권보다 더 빛나는 성과를 이루었다고 보였기 때문이다. 이 우월감 안에서 가장 무시되던 문명이 바로 원시사회였다. 원시라는 단어 자체가 사고의 발전 단계에 있어 초기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모욕적 의미가 담겨 있다. 근대 서구인들은 원시인 또는 야만인이라 불리는 이들 사회의 인간들을 논리적이고 객관적인 판단이란 찾아볼 수 없으며 사고가 무질서한 체계에 함몰되어 있고 단순하며 자연과 인간 사이의 구분이 없거나 양자의 관계를 신비적이고 주술적인 관념 안에 묶어버리는 것으로 파악한다. 이러한 편견은 과학과 신화적·토템적 사고 사이에 근본적인 차이점이 있다는 것을 상정하고 후자를 비과학 또는 전과학으로 규정하는 것에서 출발한다고 볼 수 있다.

레비-스트로스는 이처럼 양자를 구분하는 도식을 회의한다. 그가 볼 때 후자, 즉 그의 표현대로 야생의 사고를 우리가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들의 사고 방식과 엄격하게 대비시키는 것은 부당한 대우이다. 그래서 이 책에서 레비-스트로스는 그러한 편견의 안경을 벗고 야생의 사고를 좀더 공정한 시각에서 이해해 보기를 시도한다.

인식의 기본적인 특징 1)

야생의 사고는 단순하고 무질서하며 체계적이지 못하다라는 근대 서구인들의 편견에 대해 레비-스트로스는 절대 그렇지 않다고 웅변한다. 서구인들이 보기에 원시사회에서 사물들을 분류하는 체계들은 그 기준이 모호하며 자연계와 인간을 동일시함으로써 비과학적인 신앙을 지니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야생의 사고도 나름의 논리적 체계에 입각해서 이루어지는 것으로 밝혀진다. 다만 우리는 그들의 체계와 다른 입장에 서 있기 때문에 그들의 일관된 체계를 쉽게 이해하지 못할 뿐이다. 체계적으로 사물들을 분류하고 사고하는 것은 인간 사유 행위의 본질적 측면이라고 그는 말한다.

예를 들어 스펙트럼을 지나는 빛을 우리는 빨·주·노·초·파·남·보의 일곱가지 색으로 분류하여 인식한다. 거기서 갈라져 나온 빛은 경계가 모호하고 다만 다양한 색상들이 연속적으로 이어져 있을 뿐이다. 그런데 그것 그대로는 색상을 분별할 수가 없다. 우리가 색을 띤 빛의 그 연속적인 꾸러미들을 ‘개별적으로 인식’하기 위해서는 경계를 그을 필요를 느낀다. 그러나 어떤 기준으로 경계를 그을 것인가.

이에 대해 엄격하게 참으로 미리 주어진 공준은 없다. 다만 우리는 우리 문화권에서 이루어져 온 분류의 관습에 의해, 만일 선례에서 그 대상을 분류하는 데에 참고할 만한 방법이 없다면 기존의 분류에 대한 법칙 안에서 적절히 합당한 색의 분류를 위한 경계선을 고안할 것이다. – ‘어떠한 분류도 혼돈보다는 낫기 때문이다’2) – 그렇게 해서 우리는 그 무한한 색의 연속체를 경계들 사이의 여백에 있었던 다른 색들은 생략하고 다만 위의 일곱가지 색으로 파악하는 것이다. 이것은 어떤 실용적인 필요성에 의해서가 아니라 단지 우리의 지적 관심이 인도하는 필요성에 의해 수행된다.

원시사회의 분류체계

원시사회에서의 사물에 대한 분류도 기본적으로 이러한 원칙에 입각하고 있다. 미국 동북부 인디언이나 시베리아 여러 부족, 오이로트족 등 세계 각지의 여러 원시 부족들에서 나타나는 각종 동식물에 대한 치밀한 분류와 그것의 사용의 예를 레비-스트로스는 동식물의 유용성에 따라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먼저 그 지식이 있고 거기서 유용성을 창출해 낸다는 것을 시사하는 것으로 파악한다. 다시말해 인간의 필요 이전에 지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수준에서 그들은 동식물들을 분류하는 것이다.3) 또한 그러한 지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분류의 체계에 있어 가장 기본적인 원칙은 이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예컨대 인간을 성에 따라 구분하고 방위를 구분하며 심지어 구체적인 장소들마저 분절화시켜 개체화시킨다. 그들과 우리의 사유가 지니는 교차점은 바로 여기서 발견된다. 사물의 질서있는 분류에 대한 욕구.
야생의 사고도, 과학적 사고도 분절화에 입각한 분류를 통해 인식을 성립시킴으로써 무질서한 외부 세계를 질서있는 체계로서 구성하려는 기본적인 관심을 동일하게 지니고 있는 것이다. 또한 그러한 관심은 특정한 사고의 구조적 형태를 구축하면서 향후의 분류에 대해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원시사회도 사물을 분류하는 체계는 생각보다 엄밀하며 정확한 관찰력에 입각해서 이루어진다. 원시인들도 대상과 대상 사이에 나타나는 차이점을 정확하게 판단할 줄 안다. 때로는 대상에 따라 우리보다도 더 세밀한 부분에서의 차이점까지 파악한다. 그리고 그 차이점을 통해 양자를 대립시킴으로써 분류를 시작한다. 이렇게 이원 체계에서 시작하는 분류는 대립을 만들 수 없을 때까지 지속되며 그것은 일차원적이기보다는 다층적인 이원 체계의 결합에 의해 복잡하게 이루어진다. 예컨대 볼리비아의 고원에 사는 아이마라 인디언은 농식물을 단순히 익혀서 먹는 것과 각각 얼리거나 발효시켜 먹는 것으로 구분하고 동시에 평평한 것, 두꺼운 것, 나선형인 것 등의 형태를 기준으로 이항 대립을 적용하여 약 250종 정도의 변종들을 분류해 낸다.4) 이처럼 그들의 분류 방식도 이원 체계의 결합에 있어 엄밀함을 유지하고 있고 다층적인 결합도 치밀하게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그들의 분류도 나름의 체계 안에서 논리적임을 밝힌다.

사물들에 구체적인 이름을 부여하는 것이 엄밀하다 함은 그러한 분류 방식의 체계에 그 구체적 사물들의 명칭들이 부합되는 정도가 엄밀하다는 것을 뜻한다. 다시 말하면 레비-스트로스의 표현대로 범주와 개체라는 분류 형식의 양극이 엄밀하게 상응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런데 신화적·토템적 사고에서 나타나는 자연계와 인간의 동일시는 이같이 분류 형식의 양극이 엄밀하게 상응하는 과정에서 그 양자 사이에 상호 침투가 일어나면서 형성된다. 신화적 사고와 과학적 사고의 중요한 차이점은 여기서 나타난다. 전자는 개별 사물, 레비-스트로스의 표현에 의하면 우연이나 사건과 구조 사이의 구분을 애써 하지 않는다. 오히려 둘 사이의 대립의 초월 또는 통합을 시도한다. 반면에 과학적 사고는 ‘우연과 필연의 구분 위에 기초하고 있다. 그것이 또한 사건과 구조를 구별짓는 것이다.’5) 야생의 사고가 지니는 특징을 가장 잘 설명해 주는 것은 브리콜뢰르, 즉 손재주꾼의 예이다. 손재주꾼은 주변에 주어져 있는 재료들을 이용해, 엄밀한 작업 절차를 숙지하지 않고서도 무의식적인 구조의 질서에 이끌려 필요로 하는 물건을 능히 만들어 낸다. 특정 공정과 도구나 시설이 구축되어 있어야 생산을 할 수 있는 엔지니어와는 달리 그는 주어진 여건 안에서 거뜬히 자신의 필요를 해결한다. 새로운 개념 수준의 체계를 생성하고 그 기반에서만 세계를 구성하는 과학과는 달리, 야생의 사고는 손재주꾼과 같이 주어진 질료들로서의 자연 사물들을 이용해 자신들의 문화와 세계에 대한 인식 체계를 멋지게 수립해 낸다.

야생의 사고는 사물을 개별 속성의 차이에 따라 분류한다. 이 속성은 어느정도 균일하게 범주화되어 있는데 이 범주에는 자연계의 동식물이나 인간 자신에게도 동일하게 대응된다. 일대다대응과 같은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범주와 개체들 사이의 상응 방식으로 인해 동식물들이 때로는 개념 수준의 이차적 의미를 획득하기도 한다. 이 이차적 의미는 인간의 문화 속에서 하나의 ‘부호’로서 개별적인 의미를 지니면서 인간의 행위나 의례, 복식, 작명 등에 직접적인 표상이 된다. 다시말해 주어진 자연계의 사물들을 질료로 사용하여 자신들의 문화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동식물의 이차적 의미는 본래의 일차적 의미와 융화되면서 토템적 신앙 체계를 만들어 낸다. 성과 속, 또는 숭배되는 것과 금기시되는 것들의 체계가 자연물에 투영된다. 즉 한 개별 사물들의 의미의 체계가 다른 영역의 체계에 이전 또는 변환된다. 여기서 구체와 추상 사이에 일종의 초월적인 종합이 이루어진다. 이러한 의미에서 그들의 사고는 사물들을 구체화시키면서 동시에 추상화라는 또하나의 극단으로 치닫는 분류의 지속이다.

야생의 사고와 과학의 최종적 교차점

이러한 분류 체계는 근대 사회에서도 예술이나 기타 통속적인 관념 속에서 그대로 나타난다. 그러나 이성적·과학적 사고는 자연의 분류와 인간의 분류 사이에서 의미들의 결합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자연과 인간 사이에는 명확한 경계선이 그어져 있고 그 둘은 서로 다른 분류 방식을 따른다. 자연 사물들 간의 구분도 명확하고 마찬가지로 분류 방식도 각기 다르다. 분류의 방식이나 체계는 각 부분들 안에서만 이루어지며 그 안에서만 완전하다. 이처럼 철저히 사물들을 분절된 각각의 체계 안에서만 파악하는 것, 또는 자연계와 인간 사이에 엄밀한 구분선을 상정하는 것을 레비-스트로스는 양적 방식으로 파악하고 사물들을 동일하거나 유사한 체계 내에서 종합적·동시적으로 파악하거나 자연에 인간을 귀속 또는 동일시하는 야생의 사고를 질적 방식으로 파악한다. 양자는 상이한 방법으로 사고를 구체화해 나간다. 전자는 세계를 끊임없이 객관화해 나가고 후자는 세계를 주관화해 나간다. 전자는 분리된 체계 안에서만 끊임없이 분석해 들어가지만 후자는 분석적이면서 동시에 종합적이고자 하며 또 양 방향의 극한까지 진행되는 것을 목표로 하고 동시에 그 양극 간의 조종 능력을 보유하려고 한다.6)

전자는 분석을 개별 영역에서 독자적으로 수행하지만 그 작업이 한계에 이르면 종합의 작업을 수행하지 않을 수 없다. 다시말해 신화적 사고가 수행하는 분석과 종합의 동시적 수행이 일정 단계에서는 과학의 영역에서도 수반된다. 자연에 대한 객관적 지식이 확보되었다면 그것을 인간적 의미 체계 안에서 융화해야 할 필요가 생기는 것이다. 이 지점은 양자가 세계를 인식하는 방식상의, 또는 구조상의 차이점으로 인해 애둘러 왔던 길이 다시한번 엇갈리며 만나는 교차점인 것으로 생각된다. 따라서 레비-스트로스는 양자의 상이한 사고 유형은 다른 구조라는 입지적 여건으로 인해 나타나는 것이며 결국은 인간이 세계를 인식하기 위한 나름의 형태들일 뿐 신화적 사고가 사고 발달 단계에서 뒤쳐진 형태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는 것을 역설한다. 이러한 신화적 사고, 야생의 사고는 여전히 우리의 주변에서 종종 목격할 수 있는 사고 유형이며 과학적 사고와 상호침투하면서 우리의 사고 저변에서 활동적으로 움직히고 있다. 그들과 우리의 사고 사이에 나타나는 표면적인 차이점으로 인해 형성된 편견에 의해 화석화된 야생의 사고는 이렇게 자신의 정당한 자리를 회복한다. 레비-스트로스는 인간의 사고 저변에서 역동적으로 제한하는 구조를 밝혀내는 작업을 통해 우리 사고의 원형질이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아준 것이다.

보편성을 통한 타자의 인정

레비-스트로스가 관심을 지니는 부분은 상이하게 나타나는 문화적 현상들 사이의 공통점을 찾는 것이다. 그는 구조를 빌어 지극히 상이한 원시사회와 과학적 사고 사이의 차이를 극복한다. 사고가 인간의 인식 구조의 본질적 특성에 의해 작동한다는 점에서 상이한 두 문화는 공통점을 지닌다. 여기서 나타나는 논리적 도식은 문화는 개별적인 현상이며 그 이면에는 하나의 본질로서의 구조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그의 기본적인 관심은 무질서한 현상 이면의 질서정연한 본질을 밝힘으로써 진리를 찾아내려는 기존의 서구 사상사의 주요 맥락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 것 같다. 따라서 사고 이면의 구조에 대한 그의 발견은 다양성 사이에서 보편성을 밝혀내기 위한 작업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볼 때 레비-스트로스는 근대 서구인의 관점에서 타자로 분류되는 원시사회에 대한 인정을 보편성의 차원에서 이끌어내는 것이다. 그의 구조주의 인류학의 체계 안에서는 자아와 타자의 대립을 극복할 수 있는 근거는 그들을 공통적으로 묶을 수 있는 보편적 범주가 존재함을 보이는 것이다. 따라서 그는 사르트르를 맹공격하면서 근대 서구 사회의 울타리를 벗어나려 하였지만 종국에는 그가 이해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만, 그가 교집합을 발견할 수 있는 수준에서만 타자는 인정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든다. 만약 푸코의 ‘광기의 역사’에서 보이는 광인, 즉 완벽한 타자의 경우에 레비-스트로스는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해진다. 표면적으로 보이는 확연한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 참여적인 관찰과 대화를 통해 그들의 체계를 이해하려는 시도를 해야 할 것이나 대화 자체가 – 적어도 지금까지는 – 불가능한 광인은 실로 레비-스트로스에게는 난공불락의 요새일 것 같다.

그러나 나의 이 어리석은 의문은 이 정도 수준에서 멈추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완벽한 타자는 우리의 인지 영역 바깥의 문제이며 여기에 대해서 우리는 그 어느 것도 할 수 있는 말이 없기 때문이다. 실로 중요한 것은 면밀한 접근을 통해 얼마든지 이해 가능한 영역 안에서의 타자에 대한 관심일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레비-스트로스는 가장 성실하고 진지한 자세로 타자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학자들 중의 한 사람일 것이다.

1)이 부분은 전공 수업인 지식사회학 강의 중에 언급된 부분을 참고하여 레비-스트로스가 보는 인식의 기본적인 특징을 나름대로 정리해 본 것이다.

2)’야생의 사고'(한길사) p68.

3)같은 책 p60∼61.

4)같은 책 p104.

5)같은 책 p76.

6)같은 책 p3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