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학기 교양과목으로 신청한 과목명이다. 이 강의를 맡은 김승렬 선생님은 자본주의의 역사와 사회주의의 역사라고 볼 수도 있지만 자본주의와 이에 반한 사회주의의 역사로 파악해 달라고 첫 수업에서 얘기한 바 있었다.
수업은 서구 근대사를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라는 두 정치경제적 입장을 축으로 매우 광범위하게 다루었다.
개인적으로는 장황하고 지나치게 많은 정보량에 일찌감치 수업에서 손을 놓아 버렸지만(하…나의 게으름 탓이라고 치부하는 것이 더 나을 것 같다. 선생님은 어디까지나 성의 있게 가르치려 노력했당), 선생님이 일일이 정리하여 인터넷에 올려 둔 강의 노트는 비록 버겁더라도 참고할 만한 부분이 있을 듯하여 여기다 올려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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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신문/6/11/ 문화비평] 구보씨의 서울 세태 읽기

‘새’ 되어 버린 엽기 사회

김민수/전 서울대 교수,
디자인문화비평 편집인

30년대 박태원의 소설 ‘소설가 구보씨의 一日’에는 주인공 구보의 눈에 비친 당시 서울의 세태가 매우 세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그의 눈썰미는 문학의 차원을 넘어서 도시사회학 혹은 도시생태학의 관점에서도 흥미로운 주제가 아닐 수 없다. ‘디자인문화비평’을 하는 나 또한 섬세한 구보의 시선을 따라 ‘세상 속으로’ 들어가곤 한다. 왜냐하면 건축에서부터 자동차, 광고, 옷, 혹은 시시콜콜한 사람들의 행동양식에 이르기까지 일상 삶 자체가 디자인이요 살아있는 학문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만일 누군가 구보에게 “5월, 요즘 우리의 세태를 어떻게 보시는가?”하고 물으면 그는 말할 것이다. ‘엽기적’이라고. 아닌게 아니라 멋 부린다고 한강 올림픽대교 중앙탑에 불꽃 조형물을 얹어 놓다가 불꽃처럼 추락한 헬기 참사에서부터, TV에서 ‘새 됐어’라는 유행어로 ‘3류 미친 세상’을 조롱하는 엽기가수 ‘싸이’에 이르기까지 세상은 온통 엽기로 뒤덮여 있지 않은가.

구보는 식당에서 부대찌개를 먹으며 아무 생각 없이 TV 뉴스를 본다. 갑자기 올림픽대교에서 대형조형물 설치작업을 하던 헬기가 추락하는 장면이 나오고, 그만 씹던 소시지가 목에 걸리고 말았다. 저런! 기체가 대파되고 탑승인원 전원이 사망했다. 돈 많은 이 나라에서 값비싼 치쿠크 헬기가 산산조각 난 것은 큰 일이 아니다. 구보는 이상한 명분과 목적을 위해 아까운 승무원들이 저 세상 사람 된 데 분개할 따름이다. 사고 당시, 헬기는 올림픽대교 중앙탑에 서울올림픽 성화를 상징한다는 10억원 짜리 대형조형물을 얹어 놓으려 바둥거리다 줄을 풀지 못해 추락해버렸다. 스테인리스 강철로 된 조형물은 높이가 13m. 불꽃 모양과 접시형 받침을 모두 합친 무게가 무려 10.8톤이나 된단다.

구보가 탄식하며 중얼거렸다.

“아, 대체 뭐하는 짓거리여?”“얼마 전 서울시가 200억원의 예산 쳐들여 18개 한강다리를 아름다운 관광명물로 만든다고 추진하던 사업 중 하나라오. 돈이 너무 많은 것도 화가 되나 보오.”옆에서 칼국수를 먹던 신사가 면발을 빨아올리며 말하자 구보가 다시 말한다.

“이 나라 문화예술은 죄다 전봇대에 뺑끼 칠하는 환경미화 수준에서 이뤄지나 보구려. 장식물을 덧붙여야 다리가 예술이 되고, 관광명물이 된다는 발상이 가히 엽기적이외다. 가뜩이나 성수대교 무너뜨려 겁나는 판에 그 무게를 다리가 견디겠소? 관광명물로 손꼽히는 세상의 유명다리들은 원래 그렇게 디자인된 것들이지 않소. 그 돈으로 애꿎은 사람잡지 말고 처음부터 제대로 디자인할 것이지. 앞으로 저놈의 불꽃 상징물은 요절난 헬기를 상징할텐데 이 노릇을 어떡허나.”

구보의 위가 부대찌개 내용물로 뒤섞여 차 올랐을 때, 그는 수저통 옆에 구겨진 스포츠신문을 끌어당겼다. 대문짝 만한 사진과 기사가 시야에 펼쳐졌다. “엽기가수 ‘싸이’ 신드롬!” 제목과 함께 요즘 세간에 ‘완전히 새 됐어’라는 노랫말이 유행한다는 기사였다. 구보가 싸이의 사진을 살피니, 바싹 달라붙는 ‘쫄티’를 입은 몸매하며 뒷주머니에 도끼빗만 꽂으면 영락없이 술집 삐끼의 몰골이라! 이 멍청하고 촌스런 표정에 학벌은 높고 3류 양아치 춤을 추는 젊은이를 세상은 스타라고 하는가.

구보는 처음에 ‘새 됐어’라는 말이 새처럼 자유로운 자유인을 뜻하는 좋은 말로만 알았다. 한데 그게 아니었다. ‘우스운 꼴된 처지’를 빗댄 말이란다. 아하! 그제서야 구보는 왜 싸이가 ‘싸이코’의 준말이고, 그가 왜 자신을 서슴없이 ‘3류 또라이’라고 자처하는지 비로소 알았다. 싸이는 위선, 가식, 몰상식으로 치닫는 정신병 환자들의 나라, 3류 한국사회의 상징인 것이다. 젊은 놈이 기성세대들에게 얼마나 염증을 냈으면 그리했을까!

구보는 기사를 읽다가, 얼마전 대통령이 자다가 가위눌렸는지 무심결에 교육부 장관에게 해댄 말이 문득 생각났다. “실력 없는 교수는 퇴출시켜라!” 그는 이 말이 얼마나 ‘새 될’ 말인지 실소를 금할 수 없다. 대학교수를 화장실 휴지쯤으로 여겨 밑 닦다가 껄끄러우면 내버리는 대학. 실력 없다고 쫓겨났지만 한국사상사학회에서 올해의 논문상을 받은 덕성여대 남동신 교수, 해괴하게도 인성능력 부족으로 재임용에서 탈락한 동국대 법학과 심희기 교수 등 그동안 부당하게 해직 당하고 외롭게 투쟁하는 수많은 교수들. 정작 퇴출시켜야 할 엽기적 인간들은 멀쩡하고, 멀쩡한 교수들이 퇴출되는 현실에 눈감고 있는 대통령, 장관, 국회의원, 고상한 척 헛기침만 하는 대학사회. 구보는 부대찌개처럼 뒤섞인 이 모든 엽기적 현실에 심한 구토증세를 느낀다.

아…시험공부 접었다…공부가 너무 안된다…특히
머릿속에다 강제로 마구 구겨 쑤셔집어넣는 거…

아무튼…이곳은 아직도 움직인다

누군가 그랬다.
당신의 나체는 사진이지만,
다빈치의 나체는
그림이라고,
그래서 나의 사진은 음란물이지만,
다빈치의 그림은 예술이라고…..

그거 맞는 말이야? 다빈치?

다빈치가 그랬다.

나는 거울과 같이 정확하게 자연을 그린다.
(당시에는 카메라가
없었다.)

나는 수업을 할 때 이 그림을 아이들에게 감상시키기를 좋아한다.
이것은 서구사회에
근대를 가져다 준 근본정신을 아이들에게 설명하기 가장 좋은 그림이기 때문이다. 이 엄밀함을 보라. 그는 인간의 신체마저 주관으로부터 철저히
분리시켜 객관적인 대상으로 환원시켰다. 바로 그때 반성이 가능해진다. 평가도 가능해진다. 탐구도 가능해진다.
우리가 주관으로부터 인간을
분리하여 바라보지 못하면 한발자국도 나아갈 수 없다. 진보는 불가능해진다.
사람들은 나의 사진을 보고 아직도 나로부터 그것을
구분해서 보지 못한다.

참 답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