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경세력척결론과 인권적 관점

곽노현 교수(방통대, 법학)


한국에 사는 외국인들은 한국에서 ‘좌파, 좌경, 좌익’이 매우 부정적인 함의를 담고 있는 것을 알고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다. 자기네 나라에서는 우파, 우경, 우익과 번갈아 혹은 연립하여 정권을 잡기까지 하는 좌파, 좌경, 좌익이 한국에서는 오직 경계와 감시, 배제 척결의 대상으로만 인식되는 현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다. 실제로 민주국가에서는 우익, 우파, 우경이 죄가 되지 않는 것처럼 좌익, 좌파, 좌경 역시 죄가 될 수 없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는 여전히 ‘좌’가 곧 죄라는 잘못된 인식이 널리 퍼져있다. 안기부와 검검찰은 툭하면 ‘좌경세력 척결’을 다짐한다. 간첩신고안내문에는 ‘좌익’이 신고대상으로 올라있다.

언론이나 정치권도 ‘우리 사회의 좌경세력이 몇만 명이라는 데 무슨 대책이 없느냐’는 식으로 이러한 인식을 부추긴다. 이렇듯 국가기관의 발언과 문건으로 좌익, 좌파, 좌경을 공식 단죄하는 경향은 이른바 공안정국이 오면 보다 기승을 부린다.

한 예로 작년 여름의 한총련 사태 직후 거리에는 “아름다운 민주사회 파괴하는 좌익분자”라는 글귀에 벌레가 갉아먹은 장미꽃을 그려놓은 포스터가 서울지방경찰청 명의로 나붙였다. 메시지는 물론 좌익, 좌경, 좌파는 해충에 불과하니 모름지기 박멸과 척결에 힘쓸 뿐 행여라도 동조하지 말라는 것. 하지만 똑같이 치우친 것인데 어째서 좌로 치우친 좌파, 좌익, 좌경은 안되고 우로 치우친 우파, 우익, 우경은 좋다는 것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이쯤에서 우리 정부가 무분별하게 싸잡아 매도하는 좌파, 좌경, 좌익이 무엇인지 간략히 따져보자. 이념적으로 좌파는 자유, 평등, 연대라는 근대의 대표적 정치이념중 평등과 연대를 정치적으로 좌파는 보통사람이나 민중의 권익을 옹호하며 이를 위해 특권화한 기득권과 싸운다.

언제나 힘들고 고단할 수밖에 없는 이 싸움을 좌파는 인간의 이성에 대한 신뢰와 역사의 진보에 대한 믿음으로 견딘다. 현실적으로 좌파는 성별, 인종, 국적, 종교등 수다한 명목으로 행해지는 어떠한 반인간적 차별에도 반대하며 이를 철폐하기 위한 사회운동에 열심이다. 그 결과 노동운동, 복지운동, 여성운동, 평화운동, 환경운동 등은 모두 좌파의 산물이다. 한마디로 좌파는 이성과 평등, 그리고 실천을 중시하며 진보적이다. 반면 우파는 전통과 자유, 그리고 실용을 중시하며 보수적이다. 그렇다면 좌파와 우파는 서로 보완적인 관계일 수밖에 없다. 어느 한편에 경도될 경우 사회는 균형과 조화를 상실하게 된다. 이는 새가 양날개가 있어야 제대로 날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래서 선진국에서는 진보와 보수, 좌파와 우파가 공존하며 경쟁하고 보완한다. 특히 우리의 부러움을 사는 선진민주국가들의 제도들은 대부분 좌파의 이론과 실천에 크게 힘입은 것으로 보아 무방하다.

이렇게 볼 때 좌파의 존재는 우파의 존재만큼이나 지극히 자연스럽고 인간적인 현상이다. 다만 좌파건 우파건 다양하기 짝이 없는 인간성의 구성요소중 어느 한 부분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부분적이고 치우친 것이기 쉽다. 그러나 어쩌랴. 인간은 치우칠 수밖에 없는 존재인 것을! 아무튼 좌파를 싸잡아 타도와 척결의 대상으로 설정하는 국가와 관변의 언론행위는 확립된 용어례에 반한다는 점에서 반이성적이고 좌파를 인간 이하로 취급한다는 점에서 반인간적이기 그지없다.

이러한 평가에 대해 유관 국가기구들은 척결대상으로 삼고 있는 “좌익, 좌파, 좌경”은 실제로 폭력 혁명세력을 한정해서 가리키는 용어라고 변명할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어째서 ‘극우, 극좌세력을 경계하자’든가 ‘폭력세력을 척결하자’는 정도로 그치지 않고 ‘좌경세력을 척결하자’고 할까? 공안당국이 무식해서 그럴 리는 없다. 오히려 이렇게 해야만 선진국형 좌파의 형성과 득세를 방지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개혁과 진보를 주창하는 좌파를 무조건 폭력혁명세력으로 매도하는 잘못된 언어관행의 최대 수혜자는 공안세력 기타 기득권세력인 셈이다.

진보적 개혁마저 냉각시키는 좌경세력 척결론현실의 ‘좌경세력 척결론’은 실제로 폭력혁명세력의 활동을 차단하는 효과를 넘어 진보적 개혁 요구마저 냉각시키는 효과를 낸다. 뿐만 아니다. ‘좌경세력 척결론’은 우리 사회를 극한적인 분열과 대립의 장으로 만든다. 사상과 이념이라는 지극히 부분적 잣대로 모든 사람을 분류한 후 ‘좌’의 판정을 받은 사람에 대해서는 사람으로 대접하기를 거부하고 무조건적인 증오와 적개심을 교사하는 것이 바로 ‘좌경세력 척결론’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반이성적이고 반인권적인 ‘좌경세력 척결론’에 대해서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까. 필자는 하나의 방안으로 ‘좌경 척결!’과 같이 무분별한 국가기관들의 언론관행에 대해 일련의 소송을 제기할 것을 제안하고 싶다. 즉, 좌파, 좌경, 좌익을 폭력세력과 등치하여 매도하는 국가기관의 발언이나 문건에 대해 표현 정정, 배포 중지등을 구하는 소송을 제기하자는 것이다. 이 일에 대한 인권단체들의 관심과 행동을 기대한다. (1997년 7월 22일 화요일 인권하루소식 제929호)

[절규] 예비역이여 그대 어디에 서 있는가

2001.6.06.수요일
딴지 군기교육대

명랑사회 구현되는 현장이라면 밤을 가로질러 서핑하며 격려하는 본지, 4월말 더디어 부산 어드메에서 본지 몰래 벌어진 예비역 대학 개그제를 적발하고 구경하기를 어언 한 달. 개그제 와중에 본지의 이름도 적잖이 거론되었으므로, 비공인 명랑심사단 자청하는 본지가 최종 심사결과를 올려주도록 하겠다.

조갑제 같은 썰렁불쾌저질의 3류 뽀르노 개그에는 사정없이 똥꼬를 쑤셔박아 비비꼬인 오장육부를 풀어헤쳐 버리는, 명랑사회를 향한 진정한 배달의 기수가 본지 아니더냐. 그러나 한 달여간의 장기레이스로 펼쳐진 예비역 대학 개그제에 심히 우려되는 바 있어 드디어 본지가 나섰다.

개구리 마크에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이, 엄마가 빨아주신 예비군복 챙겨 입고, 수통에 물 이빠이 채우고 탄환 20발 장전한 채, 전투준비태세를 완료했다. 본지, 부식만 제때 나온다면 끝까지 싸워주마. 예비역 명예에 먹칠 하는 넘들, 군장 꾸려서 딴지 군기 교육대 입소를 제안하는 바이다.

 부산대에서 무슨 일이?

지난 4월 25일, 부산대 홈페이지 서버 내에 부산대 내의 여성공동체 소속 4명의 여전사들이 < 부산대 여성주의 웹진 – ‘월장’>이라는 싸이트를 오픈했다. 이 싸이트는 < 도마 위의 예비역>이라는 창간호 기획특집을 통해

 INTRO – 예비역이 싫은 다섯 가지 이유
KBS ‘신고합니다’를 신고합니다
인터뷰 – 예비역이 본 군대와 예비역 문화
OUTRO – 당신은 진정 군인이 아닌가

로 이어지는 네 꼭지의 글을 구성했다. ‘월장’은 즉시 부산대 자유게시판에 가벼운 마음으로 웹진의 창간을 홍보하는 글을 실었는데, 아뿔싸, 작년 군가산점 전투에서 딱총을 난사하던 불패의 남근대오, 예비역 사단에 총동원령이 떨어지면서 즉시 인해전술 시스템을 구축, ‘월장’ 싸이트의 자유게시판에 벌집을 수놓기 시작하며 불과 5일 사이에 ‘월장’ 싸이트의 조회수는 3000건을 돌파했으며 부산대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는 ‘월장’의 기사를 성토하는 예비역들의 융단폭격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무차별적인 폭격 중에서도 급수의 차이가 있는 바, 그 중 가장 하수들은 “네 이년들, 보지를 찢어버리겠다”와 같은 글을 올리며 썰렁하게 자폭하는 가미가제식 삽질을 연발했다.

개중에서도 덜떨어진 몇몇 고문관들은 ‘월장’ 편집진의 주소와 연락처를 해킹해내는 전가를 올리며 고뇌에 찬 수류탄을 던지는 반격을 감행했으나 결국 아군지역으로 떨어지는 뻘짓거리가 되어 싸이버의 이슬로 사라지기도 했다.

 예비역 헌병대장 전격 투입

예비역 부대 전령이 여기저기 졸라 퍼다 나른 월장의 기사를 보고 전국 각지에서 예비역 의용군이 속속 지원하기 시작하며 급기야 광기어린 예비역 남근이 집단발기를 시작하였고 월장 사태는 국지전에서 전면전으로 급전환되었다. 예비역 남근연대는 월장 싸이트를 씹창낸 후, 프리첼에 안티월장이라는 지휘통제실을 구축하였고 부산대 홈페이지 자유게시판과 프리첼의 월장 커뮤니티를 융단폭격하기 시작한다. 아래에 그 처절한 몇몇 불발탄을 공개한다.

“씨발년들 전쟁 나면 너그 년들부터 쥑이고 봐야 쓰겄다. 썩을 것들”

“씨발 년아 옷벗어라. 안 벗나 개년아 그래 얌전히 벗어야지…. 니 걸레재? 예벽한테 졸라 따잇는갑네. 개년들 못 하는 말이 없네. 세상 참 조아져따. 씨발년들 담배도 피네…개씨발년. 오늘 주거”

씨박년들… 떼씹을 확…
니기미 벌렁벌렁…

“내 면상앞에서 이딴소리 한번 해봐라 씨벨 년아..아가리와 함께 보지를 확 찢어버린다..생리할때 피묻은 살덩이 팍팍 쏟아지게 해주마..똥구녕도 같이 찢어주지..니년 좋아하는 애널색스 못하게 해주마..내 면상앞에서 이딴소리 씨부리면 니 아가리에 내 좆 박아주마.. 망할년..넣기전엔.. 못 깨물게 강냉이 싸그리 뽑고 아가리에 꽃아주마..”

“야 하얀자두 너 아직 안죽었냐…. 부산대 예비역들 되게 인간성 좋은가 보군…아직 안죽은거 보니깐. 야 너 무슨동네 사냐.. 부디 하얀자두 전화번호랑..집주소좀 밝혀라..쪼사버리게…아예 학교다닐수 없을정도로 다리를 뽀사버리마…..너 죽었어..각오해.”

썅넘들, 강하다. -.-;

한편 예비역 싸이버 연대의 집단사정은, 월장 커뮤니티에 올라와 있는 회원들의 개인정보를 해킹한 후 포르노 싸이트에 등록하여 4명의 여학생들에게 폰섹스를 의뢰하는 전화가 걸려 오면서 절정의 오르가즘을 만끽한다. 공포에 질린 월장의 여학생들은 (실제로) 밤길을 걸어다니며 불안해했고 수업시간엔 혹시 모를 폭력에 대비해 몇몇이 함께 수업에 들어가 주는 등 공포에 질린 나날을 보내야 했다. 오오, 예비역은 정말 미션 임파서블들이었는가.

비록 본인이 5대양 6대주 뽀르노를 두루 섭렵했음에도, 이번처럼 찐한 뽀르노는 난생 처음이다. 역시 포르노는 국산이 최고다. 사정없이 내뿜어 지는 비감어린 체액들~ 오우, 본인, 좋다. 그 치열한 뽀르노 정신에는 진심으로 감복하는 바이다.

한편, 월장이 오픈하고 보름가량이 지나, 싸이버 전쟁이 장기화될 무렵 사태는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집단의 광기가 월장의 여학생 4명을 무차별적으로 사지절단한 후 월장의 여학생이, 평소 존경하던 학과교수인 노혜경씨의 홈페이지에 작금의 괴로움을 토로하는 글을 올렸다는 ‘껀수’가 잡히자, 예비역 싸이버 연대는 순식간에 노교수 홈페이지로의 부대이동을 통해 게시판을 박살내고 노교수를 단죄하며 승리의 남근을 발딱발딱 꼬추 세웠다.

감히 예비역과 맞짱을 뜨려는 자 누구냐!! 쿠오오~

아, 하지만 이것이 모래성 같은 예비역 부대가 허물어지는 자충수였을 줄이야. 우연히 노교수의 홈페이지에서 벌어진 국방색 광란을 지켜본, 평소 국내외 수준낮은 군사개그를 조롱하던 우리 시대의 유머 스타일리스트 육군벙장 진벙장, 국가대표 예비역 진중권의 분노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진벙장은 곧 이 무소불위의 짬안되는 후배 예비역들과 전면전을 선포했으며 부산대 자유게시판과 프리첼의 월장, 안티월장 싸이트를 횡단하며 “논리는 전투다, 각개전투”를 선창하며 개싸움을 시작한다. 진벙장의 게릴라전은 전투개시 얼마 이후 얼떨결에 소집된 예비역 의용군들과 논리보다 감성이 먼저다,라는 듣도보도못한 ‘논리’를 펴는 예비역 논객들을 즉시 소집해제 시켜 집으로 돌려보내는 가시적인 성과를 거둔다. 그러자 예비역 싸이버 연대는 “적은 최대한 좁혀야 한다”라는 저 옛날 러시아 예비역 선현의 말씀에 충실하고저 전략을 수정, 진벙장을 물어뜯기 시작했으나 안면몰수한 철면피 국가대표 예비역 진벙장의 살가죽은 참으로 질기디 질긴 것이어서 예비역 싸이버 연대의 국방색 내공으로 물어 뜯기는 재질이 아니었어라.

각종 언론매체에 예비역들의 광분을 비판하는 글들이 개재되고 부산 MBC 다큐 프로그램에 월장사태가 소개되기에 이르자, 감정의 광기가 걷히고 일말의 이성이 분위기를 역전시키며 ‘월장’ 관련 논의는

(1) 텍스트 자체의 문제
(2) 싸이버 테러의 문제
(3) 대학내 군사문화의 문제

로 총화되었고 마침내 월장 공개토론회 예정까지 이끌어내는 혁혁한 전과를 거두었다. 장하다 진벙장. 역시 군대는 짬이야. 짬.

이제 월장에 대해서는 보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토론이 이루어질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이것은 수많은 싸이버 개쌈박질 뒤끝에 우리가 얻어낸 소중한 결과라 할 수 있겠다. 문제는 이것이다. 그냥 개싸움으로 물어뜯고 끝낼 것인가, 아니면 더 깊은 논의의 시발점으로 승화시킬 수 있을 것인가.

 무엇이 문제인가

사실 월장사태와 관련한 각종 논의들은 이미 여러 매체에서 다루어진 바 있고 그 논점과 문제의 핵심에 대해서도 수많은 싸이버 개싸움들 속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또한 본인이 위에 열거한 싸이버 테러의 문제는 논쟁에 참가한 예비역 싸이버 연대중에서도 극소수의 복무 부적응 상태의 탈영병이 저지른 민폐일뿐이며 많은 예비역들은 월장에 대해 (심정적 분노를 기초로한) 나름대로의 반박논리를 풀어 놓았다.

본인은 예비역 전체를 테러범으로 몰아가고 싶은 생각 추호도 없고, 그것은 사실도 아니다. 본인, 오랜 관찰기간을 통해, 월장에 찬성하든, 반대하든, 많은 예비역들이 진심으로 이 논쟁에 임하고 있다는 사실만은 알 수 있었다. 또한 본인은 월장의 기사가 잘 쓴 기사인지, 혹은 못 쓴 기사인지를 가지고 왈가왈부할 생각도 없다. 우리는 신문기사를 가지고 올림픽을 하려거나 서열을 매기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예비역들이 수없이 제기한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라는 중학교 수준의 비판은 애교로 넘어간다. 대학생 정도 됐으면, 모든 비판은 일반화일 수 밖에 없다는 사실도 좀 알아두자. 일반화 뒤에 숨겨진 ‘비일반적’ 여백들은 스스로 소화시켜내야 하는 독자의 몫이다,라는 것 까지 알면 포상휴가증도 줄 용의가 있다.

사실 예비역이라는 집단의 감성이란 무척이나 모호하고 그만큼 유동적인 것이다. 학생회 시위시, 학내로 전경부대가 침탈했을 때, 도서관에서 뛰쳐나와 메이저리그급 광속구와 칼같은 제구력으로 전경을 향해 돌던지며 싸울 수 있는 정의의 오빠들이 예비역인가 하면, 금번 월장사태처럼 자신이 모욕당했다고 생각될 시, 사정없이 달려들며 윽박지르는 자기보호적인 소심한 오빠들이 또 예비역이다. 그런 의미에서라면 < 예비역이 싫은 다섯가지 이유>라는 월장의 글은 다분히 오독되어 핵분열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 기사라 하겠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보자. 만약 월장이 이 기사를 ‘점잖고 애교있게’ 썼다면 과연 이 예비역 문제가 이렇게나 공론화될 수 있었을까. 서로 웃고 넘어갈 수 있는 글은 어떤 것도 자극할 수 없는 법이다. 그런 의미에서라면 월장의 기사는 다분히 긍정적인 싸움을 불러 일으키는 정의의 불씨였다고도 할 수 있겠다. 좋은 본보기가 우리 시대의 투견, 강준만 선생 아니겠나.

한번 붙어보자니께로…

본인이 금번 사태에서 정말로 통탄하는 것은, 우리 시대 청년제위들의 몰락한 논쟁문화와 자기보신주의이다. 본인도 예비역들이 남은 돈 탈탈 털어 후배 택시 태워 보내고 자신은 걸어서 집으로 돌아가는 로맨티스트들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이 로맨티스트들이 유독 월장에게만은 그런 여유와 낭만을 베풀어 줄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은 무슨 연유인가. 제 입맛에 맞고 알아서 기는 귀여운 후배(후임병)들만이 사랑스럽고 월장처럼 ‘개기는’ 똑똑한 후임병들은 일치감치 갈구고 각잡으려 덤벼드는 건 혹 군바리의 습속은 아닌가. 자기모순에 빠져버린 논리를 욕설로 충당하려는 것도 그렇다. 뿔따구는 나지요, 말은 생각 안나지요, 그러니 욕으로 조지고 힘으로 윽박지르는 거다. 쪽팔리게 뭘 사과하라고 아닥바닥 대냐. 누구한테 사과하라는 말이냐. 정말 ‘사과’가 중요한 것이었다면 본지는 일년내내 사과만 하다가 볼장 다 보겠다. 하지만 본지, 씩씩하게 개기지 않느냐. 핫핫.

고생했다. 진벙장!!

또 진벙장은 금번 논쟁에 지식인으로 참가한게 아니라 예비역 네티즌으로 참가한 거다. 괜히 진벙장이냐. 그런데 예비역 사오정 논객들은 끝내 진벙장을 잘나가는 지식인으로 다루려고 한다. 그래야 지들의 수준낮은 논리에 도덕적 면죄부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들 맘대로다. 본인, 딴건 차치하고서라도 진벙장의 그 고결한 각개전투만은 대한민국 예비역 참전사에 길이길이 남을 진군의 역사라 칭송한다. 본시 한국의 지식인들은 저 국회 유치원을 비롯한 절대권력들에게는 욕 잘한다. 대중들에게는 당당해 보이니 칭찬받고, 절대권력들은 뭐라 하든 신경도 안 쓰니 후환도 없다. 실속있는 장사인거다. 하지만 진중권은 완전히 반대로 싸운다. 뒤틀린 민중과 왜곡된 민심에 맞서 그 한가운데로 뛰어 들어가 현장에서 맞짱 뜨는 거다. 이게 진정한 임전무퇴의 군바리 마인드 아니겠더냐.

 본인이 왜 모르겠느냐

자, 이제 예비역, 우리의 얘기를 해보자. 본인은 작년 가을, 육군 백마부대를 만기제대했다. 물론 유격훈련 2번 꼬박 받았고, 재수 없게도 R.C.T.(속칭, 람보,코만도,터미네이터)라 불리우는 연대전투단 훈련도 2번을 뛰었으며 그 외 자질구레한 훈련들은 셀 수도 없다. 본인에게도 그것은 대단한 자랑꺼리이고 일종의 성취이다. 하지만, 그것은 ‘남자’로 다시 태어났다는 성취감이 아니라 입대전 본인의 군생활에 대해 ‘탈영 아니면 자살’이라던 많은 이들의 추측을 뒤엎어버린, 내 인내의 승리에 대한 자신감이었다.

이거 중요하다. 군생활의 경험은 타인에게 ‘자랑’하는게 아니라 스스로 ‘자신’하는 것이다. 여기까지만 하면 딱 그만이라는 거다. 그 무논리와 비합리와 폭력과 서열이 지배하던 세계. 그 지옥을 통과해 냈다는 것만으로 본인에게는 작은 것에도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이 생겨 버렸다. 세상에 그런 곳도 있는데, 라 생각하면 오늘 나의 작은 불만들은 얼마나 행복한가.

본인이 제대 무렵 한창 조성모 뮤직비디오 사건이 터져 부대가 시끄러웠다, 백마부대 전우회 사오정들이 법정 소송을 제기했으나 (당연히) 기각되었고 그러자 부대에서는 현역 사병들의 군기를 세운다는 뜻에서 그나마 인간적이었던 머리털을 싸그리 밀어버렸다. 제대 10여일 앞두고 있던 본인, 입대할때보다 더 짧게 밀린 머리를 보며 늦은 밤 화장실에서 좆잡고 얼마나 울었던가. 뮤직비디오라는 가상현실을 극복하려고 피와 살을 가진 현실의 군바리들 머리를 밀어버리는 곳. 그게 군바리들의 논리다. 그 곳은 그렇게 멍청한 곳이다.

씨바, 우리가 뭔 잘못이냐고요…

물론 본인도, 군에서 힘들 때 더욱 힘이 되어주는 더 할나위 없이 좋은 친구들을 알게 되었고 그들과는 전역 후 아직까지도 연락을 주고 받으며 인생의 친구가 되었다. 하지만 그 모든 좋은 기억들을 차치하고서라도, 기상부터 취침까지 온갖 생활의 동선을 통제받아야 했던 그 곳은 아무리 좋게 생각하려 해도 도무지 즐겁게 추억할 수 없는 곳이다.

제대하던 날, 위병소를 나서며 땅바닥에 키스를 하고 위병조장이었던 악질 선임하사에게 뻑큐를 날리며 “씨방새야, 나는 집에 간다”라고 소리치며 달리고 또 달리던 그 날. 나는 바깥 세상에서는 정말로 이성적이고 논리적이며 합리적인 상식이 지배하는 삶을 살 수 있으리라, 얼마나 들떠 있었더냐. 하지만 본인, 이번 월장 사태를 계기로 예비역들의 그 지루한 국방색 논리들을 다시 접하며 밤마다 군번줄 짤랑거리는 환청에 시달리게 되었다. 대한민국 남자들에게는 입대만 있고 제대는 없다. 사회는 확장된 병영이었던 것이다. 가장 되살리고 싶은 역사적 인물로 박정희라는 파시스트를 호출하는 젊은이들이 살아가는 나라 아니던가. 그리하여 더 좋은 나라로 토끼고 싶지만 돈이 없는 본인, 달아나느니 싸우겠다. 씨바.

허나, 싸울려고 생각해보니, 사실 너나 할 것 없이 한국의 예비역들은 불쌍한 인간들이라는 자조가 튀어 나온다. 한국남자들은 대체로 경험하고 추억할만한 개인적인 기억들이 없다. 먹고 살아가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삶의 경우의 수가 극히 드물기 때문에 모두가 상식적인 수준에서, 남성의 사회적 역할에 자신을 맞추어 가려 허둥대는 것이다. 그런 자아들에게 군대라는 살인적인 경험은 개인적으로는 뼈에 사무치는 아픈 추억인가 하면, 집단이 함께 공유할 수 있는 몇 안되는 기억들의 하나이다. 한국인들은 추억을 먹고 살아가는 유별난 인류들 아니던가. 그런 몇 안되는 열렬한 추억중의 하나가 공격을 받으니 그렇게 민감해지는 거다. 필연적으로 한국 남성들에게 만기제대병이라는 자아도취는 과잉된 도덕성과, 과잉된 자신감, 과잉된 윤리적 정당성을 부여해 준다(고 착각한다). 근데, 언제나 그 ‘과잉’이 문제다. 그게 엄살이 되고 응석이 되는 것이다. 나는 씨바, 곱게 나라에서 하라는 거 꼬박꼬박하며 사는 착한 넘인데 왜 시비냐? 이거란 말이다. 그런데 씨바, 세상이 짬으로 해결되고 국민윤리로 설명되는 곳이더냐.

말년병장의 여유.. 이 자세말이다. 기억덜 나냐?

군대 간게 죄냐고? 울지마라. 죄 아니다. 하지만 제대후에도 ‘군생활’이라는 것을 모든 판단의 감성적 기준으로 삼는 것은 죄다. 역사와 건강한 상식에 대한 죄라는 거다. 거기가 인간이 살 곳이더냐. 군대 가봐야 안다고? 나는 씨바 군대 갔다가 아는 것도 다 까먹었다. ‘안다’고 하는건 군대 가봐야 아는게 아니라 그 정도 나이쯤 되면 으레히 알게 되는 거다. 그러니 월장의 기사는 우리들의 아픈 기억에 함께 분노해 주는 긍정적인 텍스트라고 이해해버리면 만고 땡이다. 그 기사를 이해하는데 무엇보다 필요한건 말년병장의 그 넉넉한 여유이다. 그런데 씨바, 제대한지 얼마 됐다고 그런 여유를 까먹었느냐.

본인, ‘월장’ 문제로 한참 시끄럽던 중에 학교 안에서 기가 찬 일을 목도했다. ROTC 제복을 입은 넘들이 아침부터 학교 정문앞에서 뒤에 여자친구들 좌르륵 줄 세워놓고 고함지르며 신입학사장교들에게 얼차려 주고/받고 있더라. 듣자하니 그게 ROTC 신고식의 일종인데 연례 행사란다. 더 가관인 것은 남자 새끼들 가랑이에 빠나나 끼워놓고 그걸 여자친구들에게 먹으라더라. 아아, 본인, < 다찌마와 리>의 명대사가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벌건 대낮에, 아이들이 보아서는 안되는 몹쓸 짓을 하는 악당들아!”

그 벌건 대낮에, 대학교 정문 앞에서 그게 뭔 지랄이냐. 그래 그 쉑들은 예비 군인이니까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자. 그런데 그 주변에서 그거 구경하면서 재미있다고 깔깔거리던 일반학우 넘들은 도대체 뭐하는 거냐. 그게 도대체 웃음이 나오는 일이냐. 그게 낭만이라고 웃고 넘어가는게 요즘 대학의 시대정신이다. ROTC 씹쉑들이 그런 행사를 끔찍하게도 공개적으로 하는 건 그 정도는 대학사회가 웃어 넘기며 학우대중이 동의해 줄 것이라는 싸가지 없는 암묵적 합의가 있기 때문이다. 슬프지 않나? 나는 슬프다. 씨바.

 월장 사태의 전리품. 무엇을 건져야 할까.

기형도라는 예비역 시인이 “과장을 즐기는 것은 얼마나 지루한 일인가”라고 그랬다. 솔직히 본인, 군대 얘기 하는거 지겹다. 많이 들어서 그런게 아니라 이넘저넘 할 것 없이 전부 과장하고 있는게 지겹다는 거다. 니들 군대 얘기 듣다보면 내가 있던 백마부대는 군대도 아니었던 것 같다.

땅개출신 본인, 누구보다 그 서러움 다 알고 있다. 이등병때 변소에 숨어 병장넘들이 수북이 싸놓은 똥덩어리위에서 초코파이 먹으며 울어봤다. 본인이 왜 그 마음을 모르겠능가. 그런거 씨바, 우리끼리 있을때만, 쌔주 한잔 빨아올리며 노가리 까면 안되나. 거기서 뭔 지랄 하는지도 모르는 사람들한테 자랑해봐야 뭐하겠넝가.

그라고 이거 우리 끼리만 하는 얘긴데, 솔직히 대답해봐라. 늬들 그 군대 얘기하는거 진짠가? 쪼매라도 없는 얘기 억지로 만들어 넣는거 없는가? 에이 왜 이래 김병장, 우리 다 암씨롱. 그래도 살만하니 26개월 참고 나왔잖아. 자꾸 과장하고 거짓말하다보면, 우리 진짜로 고생한거 까지도 몰라주는게 야박한 세상이다. 괜히 흥분하며 자멸하지 말자. 박노항이도 웃겠다.

자, 우리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자. 솔직히 우리들 너무 오바 한 거다. 사실 ‘월장’의 기사는 이렇게까지 중요한 이슈가 되어야 할 이유가 없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라. 모욕이라고는 하지만 그 기사가 누구를 얼마나 모욕할 수 있을 것이며, 그 기사를 그렇게 기를 써서 수정하고 막아내지 않으면 바로 그 다음날부터 학교에서 후배들이 늬들을 벌레보듯 하는 일이 발생하리라 보느냐? 오히려 예비역들이, ‘월장사태’라는게 터진 김에, 그간 군생활 자랑하고 싶어 근질근질하던 차에, “찬스는 기회다” 정신으로 한꺼번에 집단의 광기를 뿜어내며 성토장을 만든게 아니겠느냐 말이다. 그렇게 말많던 부산대 자유게시판도 시험기간이 되고 수강신청 기간이 되니까 월장 얘기 쏙 들어가 버리지 않더냐. 그게 정말 인생이 걸린 문제이고 자신의 정체성이 걸린 문제라면 그렇게 쉽게 조용해질 수가 있었을까? 그런데 한꺼번에 냄비처럼 달아오르다가 갑자기 풀이 죽어 식어버리지 않더냐. 이런걸 우리 유머학계에서는 ‘엄살’이라고 부른다.

정리해야 겠다. 본인, ‘월장’ 기사 반대하는 전우들 중에도 이성적이고 진지한 넘들 많은 거 충분히 봤다. 곧 토론회도 열린다니, 거기서 남아의 기개를 떨치기 바란다. 이런 문제를 공론화시켜서 토론회라는 구체적인 모습으로 승화시켜 내는 모습, 아름답다. 하지만 이제 우리에게 중요한 건 ‘월장’이 아니다. ‘월장사태’는 작년 군가산점 논쟁이 2001년 버전으로 변종된 것일 뿐이고, 월장사태 이후에도 이와 같은 논쟁은 얼마든지 또 다른 좀비가 되어 부활할 수 있다. 그때부터는 제발 오바하지 말자. 그리고 군대 그거 너무 좋아하지 말자. 거기서 뺐겼던 우리 인생을 되찾는 방법은 엄한 데다가 화풀이하는 게 아니다. 어떤 넘들이 군사문화 비판하면 같이 비판하는게 빼앗긴 청춘을 되돌려 받는 방법이다. 군대경험은 지켜내고 포장해야할 추억이 아니라 물리치고 극복해야할 신경증이다. 좀 너그러워 지자. 여성에, 후배에, 그리고 세상에.

마지막으로 군가 하나 하고 정리하겠다. 반동은 좌우반동, 하나,둘,셋,넷.

오 나의 전우여 오 나의 전우여
이 전쟁이 끝나고 평화가 오면 내 너를 찾으리. 졸라~

자, 취침!

딴지 당직하사
압권(kkj_boom@hotmail.com)

대한매일 6.8일

미켈란젤로도 체포하라

가정의 달을 맞아 지난 5월말부터 이달 18일까지 서울 시립미술관에서는‘가족’을 주제로 특별기획전이 열리고 있다. 이 전시는 현대사회에서 가족의 향수, 위기, 대안이란 3가지 소주제로 다양한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무료로 그냥 관람하기엔 좀 미안한 ‘괜찮은’ 전시회다. 아직 보지못한 분들은 서둘러 가족과 함께 가보시라. 전시장 동선을 따라 가다보면 한 구석에서 흥미로운 비디오 설치작품을 하나 발견할 것이다.

김기라의 ‘수퍼(맨) 아빠ㆍ원더(우먼) 엄마’라는 이 작품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아버지와 어머지가 옷을 홀랑 벗은 나체로 자식의 예술을 위해 몸을 바쳤다. 작품은 집에서 어머니의 나체가 ‘원더 우먼’처럼 온갖 가사 일에 힘을 쓰는 역도선수의 모습으로 늙어갔음을 보여준다. 그녀의 몸은 미스코리아 선발대회에서 침 삼키며 여성을 상품화해 온 남근들의 눈에 비친 몸도 아니요, 포르노 배우의 몸뚱이는 더욱 아니었다.

나는 그녀의 몸과 빠른 움직임을 ‘가족의 삶’을 위한 ‘생명의 분투극’으로 외경스럽게 바라봤다. 아버지의 나체 역시 집밖에선 ‘수퍼맨’처럼 험한 세파와 싸우는 권투선수의 이미지로 묘사되어 빠른 속도로 움직였다. 나는 자식의 예술을 위해 기꺼이 나체가 된 이 부모의 열정과 그들의 표정이 프로 누드모델 뺨치게 당당한데 놀랍고 숙연해졌다. 자, 성기ㆍ음모ㆍ유방 노출도 아랑곳하지 않은 부모와 이들을 예술로 소재화한 자식을 ‘음란물 유포 및 청소년 성보호에 관한 법률위반’으로 체포해야 한다고 주장할 정신병자가 세상천지에 어디있는가?

최근 한 시골 중학교 미술교사가 자신과 임신 중인 부인의 나체사진을 개인 홈페이지에 올렸다고 체포되었다가 풀려난 일이 벌어졌다. 학부모들과 학교운영위원회는 "교사의 신분으로서 신체주요부위가 드러난 사진을 올린다는 것이 학생들에게 악영향을 준다"고 고발했던 것이다. 음란 유해환경에서 자녀 보호를 위한 그 심정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예술가가 음란성과 교육적 목적과는 무관하게 자신의 예술적 견해를 생산하고 매체를 활용해 발표한 것이 죄가 되는가. 이 죄가 성립되려면 미술관련 서적에 수없이 등장하는 성기노출 그림은 모두 음란물로 간주되어야 한다. 예컨대 성기가 적나라하게 묘사된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까지도. 죽은 그도 긴급 체포하라!

<김민수, 디자인문화비평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