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질되는 몸의 기획

나는 통통한 이영자를 좋아했다. 인형처럼 만들어진
이미지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모습이 당당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녀의 재능은 성형과 다이어트를 통해 조작되지 않은 몸 그
자체의 힘에 실려 빛나는 힘을 발휘했었다. 박철에 대해서도 나는 마찬가지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는 나이먹어 가고 있는 육체의 힘을 보여주는 몇
안 되는 연예인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자연스러운 삶의 힘이기도 했다. 거기에 인간적 성품에서 우러나오는 유머러스함이
덧붙여져서 그 시절의 박철은 아주 매력적이었다.

나는 통통한 이영자와 박철을 좋아했다

그런데 어느날인가 박철이 상상도 할 수 없는 마른 모습으로 브라운관에 나타났다. 살을 뺀 이후, 그의 재능은 억지로
허공으로 날려버린 그의 살만큼이나 어디론가 달아나버린 것 같다. 그는 전처럼 매력있게 느껴지지 않는다. 이제는 그가 하는 말에서 자연스러운
인품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대신, 억지로 만들어진 이미지 뒤에 웅크리고 있는 부자연스러운 주체가 느껴질 뿐이다.

이영자가
다이어트에 성공했다고 시중이 떠들썩했을 때, 나는 어쩐지 불안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왜 저렇게 무리하게 변신을 시도하는 것일까? 잠깐 사람들의
시선은 끌 수 있을지 몰라도 결국은 자신으로부터 소외돼버리고 말 텐데. 그런데 이번에는 그녀의 성공한 다이어트를 놓고 그 성공의 비결이 사실은
운동이 아니라 성형수술 덕이었다는 뒷말들이 불거지고 있다.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면, 그녀가 운동을 통해 ‘성공한 다이어트’를 주제로 비디오를
만들어 판매했기 때문에 이영자는 도덕적 책임을 피할 수 없다.

이영자의 문제로 다시 돌출되는 것은 이른바 ‘다이어트’로 대표되는
‘몸의 이미지 관리’의 문제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연간 2조원 정도의 돈이 다이어트에 쏟아부어지고 있다고 한다. 세계적으로도 여덟 번째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고 하니, 가히 다이어트에 관해서는 선진국 대열에 합류한 셈이다. 사람들은 너도나도 ‘욕망할 만한 몸’을 가지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노력한다. 특히 여성들의 경우 죽음조차 무릅쓴다. 약간의 말장난을 하자면, 다이어트가 아니라 다이이트라고 불러야 할 것 같다. “굶어라. 먹으면
죽는다”?

현대사회에서 몸이 삶의 전면에 부상하는 이유는 중요한 문화적 함의를 지니고 있다. 몸이 인간에게서 존재 발현의 매개체로
인지되기 시작한 것은 생각처럼 오래된 일이 아니다. 몸은 노동력을 제공하는 생산수단이므로 지배자들의 관리대상이었다. 그것을 아름답게 꾸며서
존재감을 만끽하는 것도 돈과 권력을 가진 자들의 몫이었다. 게다가, 몸은 늘 그 가변성으로 인해 정신에 비해 무력하고 비효율적인 것으로
여겨져왔다. 이것이 인간이 욕망을 효과적으로 다스려야만 좀더 나은 성취에 이를 수 있었던 근대까지 지속된 몸에 대한 전반적인 관점이었다. 인간은
몸보다 훨씬 더 항구적이라고 여겨지는 정신적 가치들에 기대어 자신의 삶을 영위해왔다.

그러나 이제 인간에게는 아무것도 없다.
신도, 형이상학도, 존재의 면면함에 대한 감각을 부여해주던 공동체도 없다. 남아 있는 것은 ‘욕망하는 기계’인 나, 특히 나의 육체뿐이다.
이러한 맥락 안에서 인간의 육체는 존재의 실감을 제공해주는 중요한 매개체로 다시 인간 풍경의 전면에 떠오른다. 따라서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나의
육체를 꾸미고 가꾸는 것, 그것이 늙음에 효과적으로 저항하도록 적절한 조치를 취해 주는 것, 그것을 비난해야 할 이유는 전혀 없다.

나는 육체를 기획의 수단으로 삼는 일체의 시도가 완전히 무의미하다고 보고 있지는 않다. 아름다운 몸은 주체의 자기 실현을
보장해주는 매우 구체적인 수단으로서 의미를 부여받는다. 불완전하기는 하지만, 몸의 기획은 존재에 관해 이렇다 할 수단을 가지고 있지 못한
대중으로 하여금 존재를 발현하게 만들어줄 수 있는 수단으로 여길 수 있다고 본다. 그런 점에서 다이어트는 문화적으로 수긍할 만한 요소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다시 정신을 채우지 않으면…

그러나 문제는 이처럼 주체의 발현을 위해
다시 심각한 고려의 대상이 되기 시작한 몸에 대한 기획이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다시 자본이 장사를 위해서
대량으로 퍼뜨리는 이미지에 예속돼가고 있다. 몸을 관리하는 시스템도 철저하게 자본의 논리에 따른다. 돈이 아름다운 이미지를 만든다. 대중은
접근도 해볼 수 없는 정보들, 대중은 사용할 수 없는 엄청난 금액이 몸의 이미지 뒤에서 음험한 미소를 흘리고 있다. 그것은 본래의 의미에서
벗어나 다시 몸을 예속시키고 있다. 몸은 주체가 아니라 다시 객체가 돼가고 있다. 몸은 좀비처럼 달성되지 않는 갈망의 실현을 향하여 텅 빈 채
달려간다. 그 육체의 주인은 당신이 아니다. 그 육체의 주인은 육체에 대한 이미지를 팔아 돈을 버는 자본가들이다.

현대사회는
치열한 자기 성찰성을 필요로 한다. 우리는 이 정신없는 상황 안에서 언제라도 유령의 처지로 떨어져버리고 만다. 다시 정신을 채우지 않으면,
이번에는 몸이 정신을 잡아먹을 것이다.

[ 한겨레논단 ]  2001년06월07일 제362호  

남영호님의 글

박정희 시대를 생각한다

스탈린 시대에 대한 책을 읽으면 거의 언제나 박정희 시대를 생각하게 된다. ‘국민’학교 시절의 손가락 때 검사, ‘용모단정’이라는 교실 벽의 표어, 선생님을 대신해 아이들을 벌주는 반장. 반공웅변대회, 반공포스터 그리기, 귀순용사 강연회, 추운 겨울 날 달달 떨면서 운동장에 서 있어야 했던 조회 시간, 충효일기 작성과 검사, 미니스커트와 장발 단속, 불량 퇴폐가요 금지, 유언비어 적발… 언제나 남침야욕에 불타는 북한 괴뢰 도당에 대항해 우리는 안보태세를 늦추지 말아야 함과 동시에, 서양의 무분별한 자유주의 개인주의 사상의 침투에도 경계해야 했다. 이 모든 일들은 1930년대의 스탈린 치하의 소련에서 일어난 일의 다른 버전으로 보인다.

1930년대 소련의 공산주의자는 자본주의 세계에 둘러싸인, 전세계에 하나밖에 없는 사회주의 조국을 수호하기 위해 항상 주위에 적이 있음을 (동지로 가장하고 있음을) 명심하고 감시를 게을리 하지 말아야 했다 (수상하면 신고하자. 간첩식별 요령!). 동시에 후진적인 국민을 문화적으로 끌어 올리기 위해, 청결, 복장, 화장, 음주, 아내 구타 등에 대해 공연, 집회, 영화, 방송, 소모임, 학교 수업, 강제 수용을 통해 체계적으로 교육했다. 그리고 이런 의무를 게을리 하는 사람에게 창피 (또는 벌을) 를 주었다 (두 달 전에 어떤 책을 읽으면서 나는 왜 러시아 여자들이 화장을 어릴 때부터 짙게 하고 다니는지 알았다. 화장은 1930년대 이래 문화적 진보의 상징이었다!) 국민을 교육하고 지도하며 상과 벌을 주는 정부. 그 정부의 지도자는 오직 한 사람 스탈린이었다. 당 정치국의 4인방조차도 자신들이 스탈린의 완전한 신뢰를 받고 있다는 확신을 가지지 못하고 전전긍긍했다. 이 대목에서 박정희는 항상 비슷한 힘을 가진 두 사람 또는 세 사람의 충성 경쟁을 유도하고 즐겼다는 일화가 생각난다. 이 두 독재자는 모두 공식적인 라인보다는 비공식적인 자리에서 주요 정책을 결정했다. 둘 다 서민적인 풍모를 지녔거나 또는 지닌 것으로 보여졌다는 공통점도 있다 (양주보다 막걸리가 좋다는 박정희, 인자한 웃음에 검소한 옷, 검소한 생활의 스탈린/ 지성적이고 날카로운 트로츠키)

박정희와 같이 스탈린도 사상 유례없이 빠른 공업화를 이룩했다. 실업자가 넘쳐나던 사회에서 일손이 부족한 사회로 만들었다 (그 내용은 차지하고). 나라의 위신을 높였다. 후르시초프 시대 때 영국의 수상은 “이대로 가면 소련이 우리 나라를 추월할 것이다”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외환위기 전의 한국인이 몰려온다는 뉴스위크의 표지기사!). 스탈린 시대 때의 바람직한 지도자는 사무실에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현장을 돌아다니고, 단호하며 실질적이고 사람들에게 필요하다면 호통을 치며 명령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켐페인이 끊임없이 조직되었고, 군대식의 구호로 대중을 동원했으며, “하면 된다”는 정신이 강조되었다. 사업체의 사장은 법규 따위는 무시하더라도 비공식적인 방식으로 계획 달성에 필요한 원료와 기계를 조달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했다. 목표의 초과달성은 일상적인 일이었다. 이런 점에서 나는 정주영이 스탈린의 공업화 시대 지도자상에 잘 들어맞는 본보기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게다가 정주영은 빈농 출신으로 출신성분도 좋다) 소련 시민들은 스탈린 체제의 거부는 결국 당시 대공황으로 시달리는 자본주의체제로 돌아가 더 심한 고생을 한다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한다. 마치 박정희 독재체제의 거부는 북한 공산집단에게 나라를 맡기는 것으로 인식시켰던 것처럼.

소련의 스탈린은 물론 더 잔인했다. 수천 만 명을 강제 수용소에 보내고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몇 달 수용된 뒤 풀려 났던 것으로 보인다), 무자비한 숙청과 학살로 체제에 도전하는 사람과 집단 뿐 아니라 무고한 사람까지도 공포에 잠겨 복종하도록 만들었다. 스탈린의 중공업, 군수산업 중심 정책은 대중들의 생활 수준을 향상시키지 않고 오히려 하락시켰다. 2차 대전후50년대부터 소련의 생활 소비수준은 많이 나아졌다. 스탈린 숭배는 박정희 대통령 각하에 대한 존경의 차원을 넘는 그 무엇이었다.

스탈린과의 이런 차이 때문일까? 조갑제를 비롯한 어떤 사람들은 부끄러움도 없이 죽은 독재자 박정희를 찬양한다. (나는 조갑제 같은 확신범은 잘 모르지만 그 추종자들은 대체로 그 체제로 돌아가서는 권력을 누리지 않는 한 정치적 성향에 관계없이 숨막혀 살기 힘들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미 그들도 어느 정도 민주화의 혜택을 누려왔고 익숙해져 있다. 민주화는 정치뿐만 아니라 생활양식의 문제이다) 건전한 ‘상식’을 가진 어떤 사람들은 박정희 때문에 산업화가 단기일에 된 것은 아니라며 그 독재체제를 공격한다. 나는 박정희로 상징되는 파시스트 집단에 대한 비판이 현재 한국 사회에서 의미있는 활동이라고 인정한다. 특히 “지도자주의”에 대한 비판은 꼭 필요하다. 하지만 동시에 대중의 생활과 사회의 분위기라는 점에서 스탈린 체제와 박정희 체제의 유사성에 자꾸 관심이 간다. 어제 만난, 에딘버러 대학에서 교수를 하는 선배는 아마도 그런 유사성을 냉전 체제라는 틀을 통해 보려고 하는 것 같다. 대중의 나날의 생활이 어떻게 생산, 재생산되는가 하는 문제를 파악하기에 독재체제라는 말은 분명 한계가 있다. 하지만 냉전체제라는 말도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바닥을 드러내기에는 부족한 용어가 아닐까? (트로츠키나 부하린도 노동규율과 상호감시를 강조한 점에서는 스탈린과 다를 바 없었다. 물론 그들이 정권을 잡았다면 좀더 ‘부드러울’ 수도 있었겠지. 마찬가지로 박정희 이외의 정권 이었다면 좀더 ‘부드러운’ 시대이었을 수는 있겠지. 하지만 “부드러움”은 급속한 성장과 함께 가기에는 어떤 한계가 있는 것은 아닐까)

왜 압축성장을 하는 나라들은 비슷한 모양을 보이는가. 푸코가 이야기하듯이, 서양에서도 학교에 나오는 어린아이를 시켜 부모의 나쁜 행실을 보고하게 했고 (‘감시와 처벌’), 17세기 파리 거주자 100명 가운데 한 명 꼴로 강제 수용소에 수용당하기도 했다 (‘광기의 역사’). 우리가 지금 인도네시아에서 보고 있는 것은 지난 몇 백년 간 근대를 통해 일어났던 일의 압축판이기도 하다는 고진의 언급은 어떤 시사를 준다. 물론 이 두 독재 체제의 잔혹성과 비인간성이 이렇게만 설명되어 넘어 갈 수는 없다. 하지만 이 잔혹성과 비인간성에 대한 비판은 좀더 근본적인 비판을 함축하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나의 경우 여기서 공부는 시작된다.

시민 길들이기

우리는 ‘국가’의 존재를 의식하지 못한다. 국가가 직접적, 간접적으로 행하는 감시와 통제는 어느새 우리 몸 속에 기입되어 자동화 메카니즘을 이룬다. 그리하여 우리는 국가가 행하는 간섭을 미처 깨닫지 못하고, 그것이 마치 자기 스스로 알아서 자율적으로 행하는 자기규율이라고 착각한다. 외국에 나가기 전만 해도 주민등록증은 ‘국민’이면 누구나 갖고 다녀야 하는 것으로 알았다. 또 그 ‘증’을 얻기 위해 파출소에서 지문을 찍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기에, 일본에서 재일동포들이 지문날인을 민족차별이라 반대한다는 보도를 접하면 매우 이상하게 들리기까지 했다. 그 이상함이 우리에게 별로 이상하지 않게 느껴지는 것은 아마 유달리 강한 반일감정의 덕일 게다. 국가의 간섭은 보이지 않는다. 국가는 투명인간이다.

유학을 갔다가 돌아오니 그 투명했던 국가가 비로소 육화하여 내 앞에 수시로 모습을 드러낸다. 국가는 휴가를 떠났던 병사가 탈영하지 않고 무사히 귀대했다고 보고하기를 요구했다. 돌아와서 한 동안은 동장님 방문을 받곤 햇다. 새 주민증을 만들라고 한다. 열 손가락에 지문을 채취당하는 게 기분 나쁘기도 하고, 주민증 덕을 볼 일이 그다지 많지 않은지라 귀찮기도 해서 차일피일 미루고 아직까지 안 하고 있다. 주민증이 없으면 의료보험 가입도 안 되고, 여러 가지 불이익을 받게 될 것이라는 협박도 귓전으로 흘릴 수 있었지만, "새 주민증을 안 만든 집은 아파트 단지에서 이 집뿐"이라는 동장님 말씀에 괜히 불안감이 느껴진다. 다행히 여권이 있어 그것으로 의료보험에도 가입할 수 있었고, 그 밖의 경우에도 신분을 증명하는 데에 아무 무리가 없었다. 끝까지 버텨볼 생각이다.

외국인인 아내 역시 국가로부터 허락을 받아야 한단다. 도대체 ‘내가 내 아내와 살겠다는데 도대체 국가가 왜 건방지게 자기한테 허락을 받으라"고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어, 신고도 안 하고 버텼다. 그러다가 아내가 친정을 가던 날 공항에서 관리한테 "자진신고기간이라 용서해주지만, 다음에 한번만 더 신고를 안 하면 벌금을 때리겠다"는 말을 들었다. 이 더러운 꼴을 당한 후 아내가 돌아오자마자 근처의 출입국 관리소를 찾아갔다. 그랬더니 국가가 나눠놓은 행정구역을 따라 우리는 인천으로 가야 한단다. 물어, 물어 어렵게 찾아간 출입국 관리사무소에서 아내는 자기의 사적 정보가 담긴 온갖 서류를 제출하고 기어이 그 열 손가락에 검은 잉크를 묻힌 후에야 비로소 그 잘난 ‘외국인 등록증’이란 걸 손에 넣었다. 이렇게 나의 귀국은 내외가 열 손가락에 잉크를 묻히라는 국가의 신고식으로 시작했다.

아이는 또 어떤가? 출생신고를 해야 한단다. 이 아이는 내 아이인데, 국가가 무슨 권리로 자기한테 "신고하라, 마라" 명령을 하는가? 병원에서 받은 출산증명서를 내고, 서식을 작성하여 드디어 이 땅에 살 권리를 받아냈다. 그걸로 끝난 줄 알았더니 그렇지가 않았다. 일본에서 태어나 일본여권으로 귀국한 우리 아이 역시 출입국 관리소에 신고를 해야 한단다. 사진을 찍고, 서류를 챙겨들고 부랴부랴 인천까지 행정구역 맞춰 찾아가서 "내국인 처우"라는 것을 받았다. 아이가 자라 열 여덟 살이 되면 두 개의 국가는 아이에게 "둘 중의 하나를 택하라"고 명령할 예정이라 한다. 아니, 그 이전에 어느 국가에서 자라든 아이는 "네 정체성은 나와 동일시하는 데에 있다"는 국가의 거룩한 가르침을 받으며 자랄 것이다. 어쨌든 이렇게 수많은 발 품을 팔아서 우리 가족은 게오르규의 <25시>에 나오는 가족처럼 국가라는 군대에 입대신고를 마쳤다.

길들여진 인간

도대체 언제부터 국가가 인간들을 관리하고 길들이기 시작했을까? 엘리아스의 저서 <문명화과정>에 따르면 서구에서는 이 과정이 중세의 궁정사회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잔인하고 난폭한 전사였던 봉건 영주와 기사계급이 도시의 궁정사회에 편입되어 왕의 가신이 되면서, 원시적 활력이 차고 넘치던 다혈질의 기사들이 칼과 창 대신에 섬세하고 세련된 교양과 매너로 무장한 궁정인으로 길들여졌다는 것이다. 후에 경제력을 바탕으로 궁정에 편입된 시민계급이 이를 받아들여 자기들의 가치관에 맞게 변형시키고, 그것을 계몽과 교양이라는 이름으로 사회일반에 퍼뜨림으로써 오늘날 서구 문명의 정체성을 이루는 그 ‘문명화’라는 것이 완성된 것이다.

이 문명화의 과정을 엘리아스는 근대국가, 즉 중앙집권적 절대왕정의 성립과 연관하여 설명한다. 과거에 봉건 영주와 기사계급 사이의 갈등 해결 방식이 물리력을 동원한 전쟁이었다면, 궁정화가 진행되면서 이 갈등이 점차 왕의 중재에 의해 해결된다. 이렇게 왕권이 점점 강해지면서 과거에 봉건 영주들의 손에 있었던 사형(私刑)의 권리도 국가권력에 의한 사법권으로 이양된다. 말하자면 사적 폭력의 권리가 국가에 이양되어, 국가폭력으로 집중되는 과정 속에서 인간들의 습속과 인성 역시 변화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한 마디로 국가의성립과정 속에서 중세의 난폭한 인간이 얌전한 근대인으로 길들여졌다는 것이다.

이 길들여진 근대인의 인성구조를 엘리아스는 ‘내면화’와 ‘합리화’로 특징짓는다. ‘내면화’란 한 마디로 사회적 초자아를 내면화하는 것, 즉 과거의 외적, 타율적 강제를 자기 안의 내적, 자율적 강제로 바꾸어 놓는 기제를 의미한다. 한편 ‘합리화’란 정념을 극복하고 현실의 진행과정의 인과관계를 냉정하게 따져보는 습속을 말하는데, 엘리아스에 따르면 그것은 먼저 격정적인 기사들의 전쟁이나 결투를 차가운 음모와 계략으로 바꾸어놓았던 봉건 귀족 계급의 궁정적 합리성으로 출발하여, 시간이 흐르면 시민계급의 등장과 함께 냉정하게 손익(=interest)를 따지는 호모 에코노미쿠스의 상인적 합리성으로 변모하게 된다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합리주의 철학은 데카르트의 발명품이 아니라 사회에서 이루어진 문명화 과정의 이론적 반영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 시기의 철학자들이 ‘정념론’을 쓴 것 역시 이 ‘인간 만들기 프로젝트’의 일환이었다.

원형감옥

엘리아스의 ‘문명화’ 이론과 미셸 푸코의 권력비판 사이에서 우리는 어떤 논리적 연관을 볼 수가 있다. 푸코의 사상이 전복적 의미를 갖는 것은 바로 이 ‘내면화’에 대한 급진적인 비판이기 때문이다. 근대철학은 의식철학 혹은 반성철학이었다. 이렇게 내면성의 철학이라는 형태로 발달한 서구의 근대철학은 외적 강제가 아닌 내적 규율에 의해 사유하고 행동하는 ‘자율적 주체’를 인간의 이상으로 내세웠다. 하지만 푸코는 이 자율적 인간이라는 관념의 역사를 쓰기 위해 국가권력이 현실 속에서 얼마나 인간들의 몸에 철저한 강제를 가했는지 충격적으로 보여준다. 관념의 자율성이라는 근대적 이상의 이면에는 엄청난 물리적 폭력을 동원한 신체의 타율이라는 현실이 새겨져 있다는 것이다. 푸코는 ‘내면화’라는 문명화 과정이 얼마나 야만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보여줌으로써, 근대철학의 환상에 사로잡힌 우리의 존재망각을 일깨워준다. 자율적 주체란 어떤 의미에서는 ‘알아서 기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근대적 ‘합리성’에 대한 비판 역시 푸코의 테마 중의 하나다. 근대국가는 자기를 ‘이성’으로 규정하기 위해 광인, 부랑자, 성도착자들을 폭력적으로 배제해야 했다. 기호가 다른 기호와의 차이 속에서 비로소 의미를 갖듯이 이성도 이성의 타자인 광인, 부랑자, 성도착자라는 소수자들과의 대비 속에서, 그들을 법적, 제도적으로 차별함으로써 비로소 제 정체성을 획득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타자들의 존재를 통해 얻어진 이성의 왕국의 차안은 하나의 눈으로 질서정연하게 구획지워진 감방들을 감시하는 거대한 원형감옥으로 상징된다. 어느 국가나 자기 영토 안에 자기가 볼 수도, 파악할 수 없는 영역이 존재한다는 것을 못 참아하는 법이다. 그리하여 데카르트가 말한 명석·판명이라는 인식의 이상은 현실 속에서는 철저하게 감시되고 관리되는 사회구조로 실현되어야 했다. 물론 이 역시 한갓 관념의 역사가 아니라 우리의 몸에 배제, 구금, 훈육, 강제노동과 같은 육체의 언어가 기입되는 유물론적 과정이었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기술적 접근과 규범적 접근

엘리아스는 문명화 과정에 대해 중립적인 태도를 취한다. 그것은 절대적 가치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회피해야 할 부정적 가치도 아니라는 것이다. ‘국가’라는 ‘하나’의 공적 폭력이 없었던 시절엔 자의적인 ‘사형'(私刑)과 ‘전쟁’이라는 다수의 사적 폭력들이 존재했었기 때문이다. 엘리아스의 분석 속에서 문명화 과정은 다분히 무질서에서 질서로 이행하는 평화적인 모습으로 묘사된다. 반면 푸코의 분석 속에서 그 과정은 아이들의 머리에 예법서를 주입하는 과정이 아니라 국가폭력을 빌어 행사되는 거대한 생체권력의 메카니즘으로 묘사된다. 엘리아스가 국가를 ‘이해의 조정자’로 보며 국가 자체의 정당성을 의문시하지 않는다면, 푸코의 분석에는 암암리에 국가 자체의 정당성에 대한 물음, 그것에 대한 급진적 비판이 내재되어 있다. 국가는 거대한 잠재적, 현재적 폭력의 현재화이며, 이를 그는 아르토의 잔혹극을 연상시키는, 17/18세기 잔혹한 처형장면의 묘사를 통해 충격적으로 드러낸다.

여기에서 ‘국가’의 문제를 바라보는 두 개의 시각이 충돌한다. 푸코의 계보학적 방법은 냉철한 기술의(=descriptive)의 형태를 띤다. 여기에서는 모든 도덕과 윤리와 제도와 법의 탄생의 비밀이 가차없이 폭로된다. 이 세속적인 비밀을 폭로함으로써 자기의 근원을 ‘신의 계율’ 혹은 ‘이성의 법칙’과 같은 말속에 감추는 신성한 권력의 절대성은 간단히 상대화한다. 이것이 푸코의 기술의 전복적 기능이다. 한편 국가권력에 대해 규범적(=normative) 접근을 하게 되면, 우리 그것에 대한 또 다른 이미지를 얻게 된다. 이 경우 우리는 국가의 탄생 및 유지의 비밀이 아니라 그것의 현실적합성을 묻게 된다. 국가가 아무리 폭력적인 근원과 본질을 가졌음을 폭로한다 하더라도, 그 폭로를 국가의 현실적합성, 즉 현실적 필요성을 논박하는 근거로 사용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렇게 할 경우, 그것은 ‘발생론적 오류’가 된다.

국가론의 스펙트럼

시민을 길들이는 국가권력을 주제화하면서도 그 비판의 준거에 대한 논리적 검토는 종종 생략되곤 한다. 이 경우 국가는 오로지 시민들을 감시하고 관리하고 강제하는 억압의 메커니즘으로만 표상되고, 그것을 극복하는 방법으로는 ‘탈주’나 ‘노마드’와 같은 아르스 비벤디로 상정된다. 이는 사태를 너무나 단순화하는 것이다. 푸코의 무정부주의적인 비판은 권력의 감시를 느끼는 우리의 감수성을 민감하게 해주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실천적 방안을 찾는 상상력을 자극하지만, 거기에서 기계적으로 어떤 대안을 끌어낼 경우 종종 다분히 허구적인, 현실성 없는 얘기를 하게 되기 쉽다. 국가가 존속하는 것은 그 폭력적 근원의 계보학적 비밀이 여전히 베일에 가려 폭로되고 있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것이 여전히 현실적합성을 잃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가권력에 대한 비판의 준거는 기술적, 규범적 관점을 통합한 좀 더 섬세한 관점이 되어야 한다.

국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관점이 있을 수 있다. 보수주의자들에게 국가는 "인륜의 실현", 곧 그 안에서만 인간이 진정한 의미의 인간이 될 수 있는 존재론적 전제다. 사민주의자들에게 국가는 시장경제에서 비롯되는 빈부격차를 해소하고 평등의 이념을 실현하기 위한 정치적 개입의 도구로 파악된다. 우익이든 좌익이든 국가의 중요성을 인정한다는 점에서는 일치하나, 보수주의자들이 국가를 인간의 ‘목적’으로 파악하는 반면, 사민주의자들은 국가를 다분히 ‘수단’으로 바라본다. 한편 자유주의자들에게 국가는 개인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는 잠재적인 위협이다. 이 국가의 간섭으로부터 개인의 경제적, 정치적 자유를 확보하는 것이 이들의 목표이나, 이들 역시 사적 소유를 보호해 줄 합법적 폭력(=국가)의 필요성을 부인하지는 않는다. 반면 무정부주의자들은 원칙적으로 국가 자체를 거부한다.

이렇게 볼 때 국가의 간섭으로부터 시민의 자유를 보호하고 국가의 시민 길들이기에 저항하는 투쟁은 두 개의 근원, 즉 자유주의와 무정부주의적 근원을 가진 셈이다. 이중 자유주의적 저항은 이미 오랜 역사를 가진 것이고, 반면 무정부주의적 실천은 비교적 역사도 짧고 그 동안 까맣게 잊혀졌다가 최근에 다시 르네상스를 맞고 있다. 가령 전자주민증 반대, 지문날인 거부, 통신검열 반대와 같은 실천 등이 국가의 간섭으로부터 사적 영역을 보호하려는 자유주의적 저항이라면, 노동거부와 같은 노마드적 생활의 실천은 자본주의 체제 자체를 건드리는 무정부주의적 실천이다. 하지만 무정부주의가 반드시 반체제적일 필요는 없다. 극단적인 시장주의자들 역시 시장의 자율적 기능을 위해 아예 국가 자체가 없어져야 한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이 경우 무정부주의의 무권력 상태는 자본가의 파라다이스가 될 것이다. 때문에 국가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곧 평등주의 이념의 실현이 되는 것은 아니다.

접근방법(기술적/규범적)과 이념(좌/우/리버럴/아나키)이라는 두 가지 변수의 조합에 따라 국가권력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이 가능할 수가 있다. 더욱 더 문제를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우리의 역사는 서구와는 전혀 다른 시계에 따라 발전해왔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국가의 합법적 폭력을 바라보는 관점은 서구의 그것을 기계적으로 도입한 것이어서는 안 되고, 그것을 우리의 상황에 맞추어 특수화한 것이어야 한다. 우리 사회에는 근대적 과제와 탈근대적인 과제가 어지럽게 중첩되어 있다. 이를 무시하고 단 하나의 분석틀로 국가권력의 문제에 접근했다가는 실천적으로 원하지 않은 결과를 낳기 쉽다. 실제로 90년대에 우리 사회를 풍미한 포스트 담론들은 그런 단순화의 오류에 빠져 수사만 급진적일 뿐 실천적으로는 보수주의만 강화한 느낌이다.

근대적 과제

한국에서 근대적인 의미에서 ‘시민 길들이기’는 멀리는 구한말에 시작하여, 일제시대를 거친 후 해방 후에는 박정희 정권 하에서 본격적으로 이루어졌다. 박정희의 초기 연설에는 종종 "인간 개조"라는 섬뜩한 어휘가 사용된다. 재미있게도 비슷한 시기에 북한의 김일성 역시 글자 하나 안 틀리게 "인간개조"라는 말을 사용했다. 그리고 이 개조사업은 불행히도 남과 북에서 모두 성공을 거두었다. 그런 의미에서 남과 북을 가리지 않고 한국인은 어쩌면 닥터 박정희와 닥터 김일성이 만들어낸 프랑켄슈타인인지도 모른다. 북에서는 김일성 유일체제의 필요에 맞게끔 인간을 개조하는 작업이 수행되었고, 남에서는 반공과 산업화라는 국가적 과제의 맞추어 인간을 "싸우면서 일하는 보람에" 사는 반공전사, 산업전사로 뜯어고치는 작업이 대대적으로 이루어졌다.

이는 단지 인간의 머릿속을 조작하는 관념론적 과정만이 아니었다. 그것은 동시에 인간의 몸 자체를 뜯어고치는 유물론적 과정이었다. 그것은 자연의 리듬에 익숙한 전근대적인 농민을 공장의 기계리듬에 적응된 근대적 ‘산업전사’로 길들이는 과정이자, 민간인을 분단 상황 속에서 언제라도 전투력으로 전화할 수 있는 병사로 길들이는 과정이자, 동시에 자율적이어야 할 시민들을 국가와 권력자의 명령에 절대적으로 복종하는 ‘국민’으로 뜯어고치는 과정이기도 했다. 박정희 정권이 "충효"라는 봉건적 덕목을 정치 이데올로기로 활용했다면, 북의 김일성 정권은 사회주의 인민들을 "효자동이, 충성동이"로 만들어냈다. 남북에서 동시에 이루어진 이 인간개조 사업의 최종산물은 ‘충효’라는 전근대적인 덕목의 세례를 받고 군대식 행진과 공장의 기계의 리듬에 익숙해진 호전적인 산업전사였다.

"체력은 국력이다"라는 말속에 잘 드러나듯이 과거에는 개인의 체력관리조차 국가의 힘, 전투력 강화를 위한 것이었다. 국가안보라는 것을 위해 주민증을 만들어 자기의 존재를 신고하고, 이를 위해 지문까지 찍어 국가에 갖다 바쳐야 했다. 이것은 단지 과거의 문제만이 아니다. 생각을 해 보라. 재일동포들에게 지문날인을 시킨다고 일본 정부를 요란히 비난하는 그 사람들이 정작 자기 땅에서 행해지는 주민증과 지문날인의 관행의 문제점은 전혀 의식을 하지 못하지 않는가. (나 역시 외국에 나가서 그곳엔 주민증이란 게 없다는 사실을 알고는 큰 충격을 받았었다.) 그 동안 민주화의 과정 속에서 국가권력은 연성화했어도, 회사, 공장, 학교, 군대 등 미시적인 차원에서는 여전히 이 낡은 국가주의 습속이 힘을 발휘하고 있다. 개인을 곧바로 국가적 목표에 종속시켜 버리는 이 국가주의 생체권력의 집요한 관성에서 벗어나는 것. 이것이 우리 사회가 아직 완수하지 못한 자유주의적 과제다.

탈근대적 과제

시민을 길들이는 주체는 국가만이 아니다. 자본주의 경제를 요체로 한 시민사회도 인간을 길들인다. 국가권력이 연성화한 지금, 인간 길들이기의 주체는 점점 더 시민사회의 몫으로 옮아가고 있다. 가령 오로지 입시공부만 하다가, 대학에 들어가 학점을 챙겨가며 컴퓨터와 영어회화만 배운 후, 그렇게 일자리를 얻은 다음에는 오로지 자본의 이윤추구를 위해 자기의 삶 자체를 포기하고 살아가는 남자들. 혼인을 통한 신분상승을 위해 다이어트를 하고, 에어로빅을 하고, 몸에 칼을 대는 여자들. 이것은 대단히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평균적인 인간상이다. 굳이 국가가 강요하지 않아도 이렇게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길들여질 수도 있다. 그리고 이 길들여지기는 자발적 성격의 것이기에 결코 외적 강제나 강요로 느껴지지가 않는다.

이렇게 시민사회 역시 인간들을 그냥 내버려두지 않고 알아서 기게 만든다. 아도르노의 말대로 현대사회는 "합리적으로 관리되는 사회"이고, 이 사회 속에서 인간들은 자율적으로, 합리적으로 길들여진다. 합리화 자체가 인간을 해방시키는 것은 아니다. 거기에는 새로운 종류의 억압의 가능성이 내재되어 있다. 가령 과거에는 동네에서 구걸을 하는 나병환자를 볼 수 있었고, 입을 헤 벌리고 웃고 다니는 광인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동네마다 소위 ‘바보’라 불리는 천덕꾸러기들이 있었다. 물론 그 시절에도 이들은 천대를 받았지만 적어도 우리 삶의 한 부분으로 존재했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이들의 모습이 우리 삶의 정경에서 사라져버렸다. 푸코의 견해를 빌면 사회가 ‘정상화’하는 과정에서 소위 합리성에 부합되지 않는 이 소수자들은 사회로부터 소리 없이 격리된 것이리라.

주체의 자기구성

서구에서 수백 년에 걸쳐 이루어진 과정을 단 몇십 년 안에 압축적으로 체험했던 우리 사회는 여러 가지 시간 층이 중첩되어 있어, 그 구조를 단 하나의 개념 틀로 도식화하기에는 그 구성이 매우 복잡하다. 가령 ‘광인에 대한 국가적 관리의 잔인성’이라는 탈근대적 테제가 있다고 하자. 이것을 한국 사회에 기계적으로 적용하면 황당무계한 실천적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왜냐하면 한국 사회에서 광인의 인권침해가 가장 극악한 형태로 일어나는 곳은 국가관리 사각지대인 사설 정신병원이나 사설 기도원의 감금시설이기 때문이다. 또 부랑자의 재사회화라는 근대적 프로그램을 비판하는 탈근대적 테제가 있다고 하자. 그것은 노숙생활이 6개월 이상 들면 소위 ‘방랑끼’가 들어 사회로 귀환하는 것이 불가능해지며, 그 생활은 대개 몸을 망가뜨리는 알콜중독과 치명적인 질병으로 끝난다는 사실을 망각한 것이다.

따라서 ‘길들이기’에 대항하는 싸움은 우리 사회의 복잡성을 고려하여, 근대적 과제와 탈근대적 과제를 섬세하게 결합하여 배치하는 전략을 취해야 한다. 근대와 합리성 자체를 비난하는 기계적인 도식은 이 문제에 접근하는 데에 적합하지 못하다. 왜냐하면 시민 길들이기는 합리적인 방식으로도 행해질 수도 있고, 비합리적인 방식으로 행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길들이기’에 대항하는 싸움은 정체성(=동일성) 자체를 거부하고 주체성 자체를 거부하는 소극적인 방향이 아니라, 후기 푸코가 지적한 대로 주체의 윤리적인 자기 구성이라는 적극적인 관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이는 단순한 계보학적 폭로에서 벗어나, 자기 내면의 권력의지를 활용하여 자신을 적극적으로 주체로 만들어나가는 존재미학의 실천으로 문제의식을 전환할 것을 요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