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성의 회의주의와 의지의 낙관주의라는
그람시가 인용한 소렐의 말에 결코 찬성하지 않는다.
나는 역사에서 의지주의를 믿지 않는다.
그 대신 나는 지성의 명철함을 믿으며,
또 지성에 대한 대중운동들의 우위를 믿는다.
이러한 우위 덕분에 지성은 대중운동들과 함께하며,
나아가 무엇보다도 대중운동들이 지나간 과오들을  
다시 범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것이다.
어쨌든 대중운동들이
역사의 진행방향을 바꾸는 것을 지성이 돕는다는
약간의 희망을 품을 수 있다면,
그것은 이 점에서 그렇고 또 이 점에서 그럴 뿐이다.

– ‘미래는 오래 지속된다(L’Avenir dure longtemps suivi de Les Faits, The Future Lasts Forever : A Memoir)’ 루이 알튀세르(1985)

이 영화에서 가장 흥미로운 점은, 그의 다른 영화에서와 마찬가지로 대사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설사 대사가 있다 해도 그것은 영화의 전체 맥락과 큰 연관성을 갖지 않는다. “영화 초반부 젊은 남녀가 화학수학에 관해 진지하게 얘기하면서 사랑에 빠지는 장면이 나온다. 남자는 바로 키스를 하거나 더 나아가고 싶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남녀 서로가 관심이 없는 분야의 추상적인 대화를 나눠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것은 우리 삶의 자가당착을 암시한다. 말은 그들의 진정한 의도와는 다르게 존재한다. 또 나는 영화에 있어 대사라는 것은 음악이 차지하는 비중이나 큰 차이가 없다고 본다. 이 영화를 아프리카 원주민들에게 보여준 적 있는데, 그들은 무엇이 일어났는지 다 이해하더라. 결국 포용력을 갖고 있다면, 언어가 담고 있는 내용보다 훨씬 많은 것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 씨네21/ 베를린에서 발견한 보석 5편/ ‘월요일 아침’ 감독 오타르 요셀리아니에 관한 기사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