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영혼을 팔게 됐다.
진짜 하고 싶은 일은 그 쪽에서 내게 관심이 없거나 저평가됐다(고 생각한다).
아니, 공공기관의 조직적 관성 앞에 내가 무릎을 꿇었다고 해야 하나…
내 생의 업에 대해 완전히 포기한 것은 아니지만,
당분간은 다시 내 영혼을 팔아야 한다.
경제적으로 더 낫고 (긍정적, 부정적 모든 의미에서) 미래가 예측 가능한 기회가 생겼을 때 나는 마음을 비우고 지원했고 운 좋게 결국 돼 버렸다.
그리고 결국 그렇게 예전의 직딩으로 돌아가게 됐다.
앞으로 벌어질 일들이 눈에 선하다.
이게 내게 더 나은 선택은 아니겠지만, 그렇다고 올해 말까지 계약된 박봉의 미천한 신분으로 자료원에 계속 있는 것이 더 나은 것도 아니겠지…
…?
[년도:] 2008년
음…
이 글 어떻게 생각하는가?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01&articleId=1734456
나는 이 분 의견에 공감하는 쪽이다.
시민들이 외치는 ‘민주주의’를 좀더 구체적으로 다룰 필요가 있다고 본다.
나는 사실 지금 시민들이 외치는 ‘민주주의’가 이명박에 대한 적대감 이상, 이하도 아니라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이 상황이 이명박이 물러나거나 굴복하면, 한나라당이 몰락하면, 조중동이 폐간되면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오산이다. 요즘 노무현을 그리워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제 2의 노무현이 나타나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노무현 역시 경제적으로는 비민주적이었다. 오늘 있었던 재보궐선거에서 비겁한 무소속과 민주당이 휩쓴 것을 보면 시민들의 문제의식이 어디에 닿아있는지 아리송해진다. 물론 일반 시민의 눈에 합당한 대안이 없어 보이기는 하겠지만 말이다.)
이 민주주의라는 구호는 각자가 처한 비민주적인 상황에 대입되어야 한다.
사회 양극화, 비정규직 문제, 갑과 을의 노예관계, 세대간 불평등, 88만원 세대, 경쟁 일변도의 교육 등 각자가 처한 문제에 이 ‘민주주의’를 대입해야 한다.
그래서 각자의 민주주의에 관한 절박한 문제들을 이 해방구적 공간에 쏟아내야 한다.
이미 촛불집회는 광우병만의 문제가 아니게 됐다.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 총체에 대한 거부와 불복종 운동의 성격을 보이고 있다.
달리 말하면 각자가 처한 지금의 상황에 대한 불만의 폭발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불만을 더 구체화하고 동시다발적으로 쏟아내야 한다.
(그리고 점점 그럴 만한 타이밍이 되고 있다.)
이명박 정부와의 대치 그 이후, 만일 시민이 승리한다면 그 순간 쏟아놓은 문제들에 대한 전격적인 해결을 요구해야 한다.
그래서 10대는 대학 서열 폐지, 평준화를, 20대는 실업문제 해결과 비정규직 철폐를, 30대 이상은 양극화 해소와 갑과 을의 불평등 해소(대기업-중소기업 불균형 해소)를 성취하고…그래서 승자독식 사회로 폭주하는 기관차를 멈춰 세워야 한다.
프랑스 68혁명을 의식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 놀라운 해방구에서 한국사회의 절박한 문제들을 다루지 않고 넘어간다면 더 이상의 기회와 가능성은 없을지도 모른다.
촛불의 외침은 더 다양하고 구체화되어야 한다.
내용 보충 : 글 읽고 바로 드는 생각 갈겼더니 몇 개 빠뜨린 게 았다. 위 글을 쓴 사람은 지금 촛불을 든 시민들을 다중이라고 보고 있다. 다중은 자율적이지만 이질적이고, 이들을 지금 묶어 주고 있는 것은 ‘광우병’과 ‘이명박의 비민주적 독선’이다. 이 핫이슈로 묶여 있지만 사실 이들은 각기 절박한 이유로 거리에 나왔다. 과연 이들 각자의 불만이 이 촛불의 거리에서 다루어질 수 있을 것인가. 그래서 그들 각자의 절박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인가. 이 부분에 대한 회의가 든다는 말인 것 같다. (어쩌면 촛불을 든 시민들은 한국사회에서 다중의 역할과 의미를 묻는 가장 상징적인 사례가 될지도…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