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나는 침체기다. 심신이 모두 피로하고 생활에 대한 회의가 밀려온다. 멀리 떠나거나 취하고 싶다는 충동이 밀려온다. 내가 원하는 변화를 맞고 싶지만 그러지 못함에 답답하다. 이 상황에서 별 위로도 없는 토요일을 타이드랜드와 마무리한다. 테리 길리엄은 여전한 망상의 감독이다. 타이드랜드에 대해 잔혹한 어른들의 세계에 빠진 소녀의 망상 같이 설명하는 것은 진부해 보인다. 테리 길리엄의 망상은 어른들의 세계에 대한 반응으로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마약중독 부모에게 방치된 소녀가 고립과 기아 사이에서 허덕이다 정상적인 보살핌의 기회를 얻게 되는 이야기로만 보기에는 마지막 전환이 느닷없는 수습처럼 보일 뿐더러 영화가 끝난 후에는 질라이자 로즈의 망상만이 아련하다. 테리 길리엄의 주체할 수 없는 망상과 환영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그는 근본적으로 인간 질서에 대해 불신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테리 길리엄의 영화에 나오는 광기들은 그 영화가 제시하는 구체적 현실에 대한 도피나 풍자 그 이상이다. 브라질의 망상은 빅 브라더 사회에 대한 도피 이상이고 피셔 킹의 그것은 사랑하는 사람의 상실을 잊기 위한 것 이상, 12 몽키즈의 그것은 아버지에 대한 공포 이상이었다. 길리엄의 광기 내지 망상은 현실이 원인이 될지언정 그것의 결과에 머물지 않고 압도한다. 상처의 치유와 구원의 여지는 남겨둘 지언정 망상과 광기는 선명하다. 그래서 길리엄의 망상은 팀 버튼의 경쾌한 흑마술의 망상과 구분된다. 질라이자 로즈의 슬프고 숭고한 망상을 위해 건배.
[년도:] 2009년
멋진 하루
내가 본 몇 되지 않는 2008년 한국 영화 중 ‘멋진 하루’는 가장 나았다.
팍팍한 사회적 상황에 대해 거의 언급을 하지 않지만 몇 안 되는 대사와 인물의 개인사에서 그 상처를 느낄 수 있었고 ‘여자 정혜’처럼 그 상처를 오롯이 꺼내 놓지 않으면서 관객으로 하여금 유추하여 인물을 이해하게 하는 방식도 마음에 들었고 카메라와 연기의 디테일도 훌륭했다.
마지막 장면은 ‘마이클 클레이튼’의 느낌을 상기시키기도 했지만 인물과 서사에 대한 어떤 미련도 없이 돌아서는 카메라가 이 영화를 더 빛나게 했다.
더 말하기에는 요즘 생각의 여유가 없다…
유하 영화의 거친 스타일
심야에 동네 극장에서 쌍화점을 봤는데 뒤늦게 알게 됐지만 상당한 예산이 들어간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어떤 투박함이 느껴졌다.
생각해 보면 다른 유하 감독의 영화들도 비슷한 느낌이 있었다.
내가 왜 그렇게 느끼는지 곰곰히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내가 그런 투박함을 느끼는 지점이 대개 한 신에서 다른 신으로 넘어가는 때라는 걸 알게 됐다.
유하의 영화는 너무 느닷없다 싶을 정도로 단도직입적으로 신이 전환된다.
대사와 상황과 이야기가 건너 뛸 때 객관적인 쇼트나 상황을 미리 또는 사후에 설명하는 인서트 컷을 쓰는 데 인색해서 드라마가 쉴 틈을 마련하지 않고 맹목적으로 치닫는 느낌이다.
담아 뒀던 이야기를 다듬지 않고 쏟아내는 것 같은 느낌에 동의하기 힘들면서도 한편으로는 계속 궁금해지는 걸 보면 이런 편집 스타일에도 어떤 마력 같은 것이 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