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D-11, 24mm, 50mm, Ilford Delta 100
@허균 허난설헌 생가
김혜리 : 예전 인터뷰에서 “내 인생의 반은 회고”라고 표현했던 게 기억나네요.
김병욱 : 사람을 만나 즐거운 일이 있으면 이것도 추억이 되어 가슴이 아릴 거라는 생각에 슬퍼요. 심할 때는 기쁜 순간이 오기 전부터 추억이 될 걸 염려해요. (웃음) 그렇게 생각하니 어떤 순간도 온전히 즐겁지 않아요. 한 프로그램을 마칠 때도 비슷해요. 이것도 작은 우주이고 제 현실과 나란히 갔던 평행우주인데, 제 현실은 계속 달려가는 반면에 그쪽은 종영되는 순간부터 존재하지 않잖아요. 연기자가 없으니 그 이후로 그들이 어떻게 살았을지는 마음속에만 있어요. 추억과 비슷한 거죠. 예를 들어 과거에 갔던 장소에서도 저 없이 꾸준히 어떤 일이 일어날 텐데 나는 몰라요. 옛날에 크리스마스이브에 친구가 교회 가서 놀자고 했는데, 그게 설레고 좋았으면서도 결국 전 집에 그냥 누워 있었어요. 막연히 한곳에 속해 버리면 다른 걸 못 볼 거라는 생각이 있었어요. 웃기죠. 집에 누워 있어도 다른 걸 못 보는 건 마찬가지인데요. (웃음) 종교도 신앙은 좋지만 그로 인해 내가 다른 걸 못 볼까 두렵죠.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고 어떤 추억도 만들지 말고 가만히 있다가 종말을 맞는 편이 좋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어요.김혜리 : 어쩌면 드라마를 연출하는 행위는 아름답거나 기억할 만한 순간을 만드는 동시에 모니터를 통해서 관찰하는 것이니까, 현실에서 추억을 회고하는 일과 같다고 볼 수 있겠네요.김병욱 : 어떤 사건도 일어났을 때 즐기지 못하고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즐겨요. 고향에 가면 옛날에 거닐었던 곳을 다시 걷는 게 좋아요. 현실을 잘 못 살고 관념 속에서 사는 것이죠.씨네21 741호 (2010.02.09~02.23)
이번 설은 고향에서 스캔질이나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집에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