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는 미주를 포함해 우리가 본능적으로 스스로를 기만함으로써 자신을 지키려 하는 방식을 들춰낸다. 이 진실 앞에 산포되어 있었던 “그때로 돌아간다면”이라는 가정법 과거의 문장은 차갑고 단단하게 다시 부딪쳐온다. 그것은 자신이 진희를 지켜주지 못했다는 사실에 대한 미주의 유약한 회한이 아니라, 이 모든 파괴적인 상황을 자신이 야기했을 수도 있다는 잔인한 진실과 자기기만에 대한 참담한 응시다. 밝고 화사한 미래가 아니라 죄책감에 매인 채 자신을 상처 입히는 과거로 거듭 돌아가는 이 회상의 움직임을 윤리라 말하지 않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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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는 그렇게 떠남으로써 물질이 아닌 사람의 세계에 대해, 영원이 아닌 멈춤과 단절에 대해 알려준다. 그러나 소설은 사라진 존재에 대한 회한을 ‘나’가 성숙하는 계기로 삼지 않는다. 소설의 가장 마지막은 모래가 ‘나’를 만나기 위해 홍천까지 찾아왔던 어느 날, ‘나’의 무정하고 방어적인 태도 속에서 모래가 깊이 상처받던 순간을 부조해두었다. 되새기고 싶은 아름다운 추억이 아니라, 관계에 소리 없는 파열음을 남긴 서늘한 기억을 응축시켜 보여주는 방식은 최은영의 소설이 관계 속에서 지향하는 윤리를 투명하게 지시한다. 의도와 무관하게 자신이 누군가를 배반하고 그에게 상처 주었던 순간을 끝내 잊지 않겠다는 의연함은 이번 소설집의 한가운데 놓여 있는 것이다.

<내게 무해한 사람> 해설 「끝내 울음을 참는 자의 윤리」, 강지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