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몇몇 ‘좌파’들의 얘기를 들으며 그 논증 방식이 매우 ‘신학적’이라 느낀다. 사회주의라는 유토피아의 이상에서 직접 논거를 끄집어내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편적 이상에서 연역을 하기에, 그들은 세상의 모든 문제에 대해 이미 준비된 대답을 갖고 있다. 물론 그 대답은 늘 동일하다. 그 대답은 현실이라는 질료의 저항과 싸운 흔적이 없이 너무나 매끈하다. 저항 없는 표면을 운행하는 자기부상열차, 물론 그 열차는 결코 현실이라는 지면과 접촉할 일이 없다. 그런데 이런 태도로 과연 구체적인 정책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장기 게임에서 다른 정치 세력들에게 이길 수 있을까?”(진중권, 『폭력과 상스러움: 진중권의 엑스 리브리스』(푸른숲, 2002), 279-280쪽)
“강준만은 도덕적으로 행동하는 사람은 마치 현실을 모르는 유토피아의 거주자인 양 말을 한다. 생각해 보라. 민정당의 품으로 투항한 김영삼 일당이라고 어디 할 말이 없겠는가? 어찌 됐든 군부독재를 종식하고 ‘문민정부’를 세우고, 전두환, 노태우를 감옥에 보내지 않았던가. 이 역시 역사의 발전 아닌가? 그런데 노무현은 왜 이 역사의 발전에 동참하지 않았던 것일까? 민정당에 따라 들어가지 않은 노무현은 그 맹목적인 이상주의 도덕 때문에 결과적으로 역사의 발전을 거스른 역사의 반동이란 말인가?
도덕성을 현실성에 대립시키지 말라. 인간이 도덕적이기 위해 현실을 떠나 유토피아로 비상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도덕은 현실 속에 사는 인간에게 필요한 것이다. 이상의 세계에서 사는 인간들에게는 굳이 도덕성이 필요하지 않다. 천국에는 도덕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