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사이트에서 내 닉네임과 내 이름으로 검색해 봤다.
내 닉네임은 이제 흔한 것이 되어, 인터넷에서도 동명이인들이 범람하고 있었다.
내 이름으로는 동명이인들이 페이지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그러나 가끔 내 흔적들이 보일 때면, 어쩐지 그것들을 지우고 싶었다.
공적으로 나를 드러내는 것이 나는 싫다.
아니 두렵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사회적으로 드러나는 위치가 나는 두려운 것 같다.
사람들은 사회적으로 연기하고 있다고 하는 어떤 이론이 옳다면, 나는 그 연기가 싫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문제는, 그 연기를 빼고도 ‘나’로 묶을 수 있는 나머지가 있을까 하는 것이다.
나는 진심이라고 하는 것을 지지하는 편이지만, 궁극적으로는 진심이란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군에서 나는 나 자신을 속이지 말아야 한다고 아프게 느꼇고 그것은 아직도 유효하지만, 속이지 말아야 하는 것이 ‘나’는 아니라고 얼마 전에야 느끼기 시작했다.
p.s. 기독교 신자인 친구와 노가리를 까다가 기독교에 대한 얘기가 튀어 나왔다. 그 친구는 기독교를 믿는다면 보수적이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고 나는 아니라고 했다. 그 친구는 장로교와 같이 어느 사회화된(?) 구체적인 기독교만 생각했고 나는 이에 맞서 기독교 일반을 상정했다. 내가 반론의 근거로 구원의 서사를 거론했을 때, 그 친구는 그것이야말로 보수성의 근거라고 말했다. 기독교는 구원의 구체적인 방법까지 포함하지 않고는 생각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할 때 격론이 벌어졌다. 개념적으로 추출해 낸 형식틀을 그 친구와 공유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기독교는 너무나 고유해서 다른 보편으로 묶일 수 없기 때문에. 그러나 그것은 너무나 구체적인 체제로서의 기독교에 묶여 있기 때문이 아닐까. 종교에서 독단은 신에게만 허용되는 것인데, 나는 인간이 자신의 독단을 쉽게 신에게 귀의시킨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사회에서 진보적인 기능을 하고 있는 일부 기독교 단체를 예로 들었을 때, 그들도 교리에 대해서는 배타적이고 언제든지 보수적일 수 있다는 반론을 들었다. 그러고 보니 종교는 현실에 대한 입장에 따라 얼마든지 얼굴을 달리할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시대에 종교는 어디까지나 종교적 상상력으로 인해 유의미하다. 신은 규정할 수 없는 것인데 기독교적인 신과 카톨릭적인 신, 또는 유대교적인 신 사이의 차별성에만 민감하고 신의 세계에 대해 상상하는 일을 그친다면 시대와 불화하는 철지난 이데올로기에 지나지 않다는 생각까지 하게 됐다. 그 친구에게 실례를 저지르고 있는데, 어쨌든 참 소모적인 논쟁이 되고 말았다. 사실 그 친구의 말이 현실 기독교를 더 잘 설명하고 있지 않은가. 조금만 차분히 생각했다면, 이런 얘기를 진행시키지도 않았을텐데…
* CARLITO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6-04-24 2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