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에세이를 제목처럼 읽고 있다.
죽음에 대해 좀더 말해보려 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죽음’이 아니라 ‘상喪’에 대하여.
정신과 의사인 노다 마사아키 씨의 책 가운데 『상중에』라는, 일본항공 123편 추락사고 유족들의 정신적 치료에 대한 논픽션이 있다. 벌써 20년 전에 출판된 책이다. 사고 유족이 가족의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를 극복해가는가. 그 과정을 상세히 추적한, 감동적이면서도 인간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그 책에 “사람은 상중에도 창조적일 수 있다”라는 구절이 있다. 애도 과정 grief work은 슬프고 괴로워하는 데서 그치지 않으며, 그 과정에서 사람은 성장하기도 한다고, 나는 그 뜻을 그렇게 이해했다.
이 책이 특별히 마음을 울린 데는 이유가 있다. 책이 출간되기 반년 전쯤, 교과서를 사용하지 않고 ‘종합학습’을 하던 나가노 현의 한 초등학교를 3년에 걸쳐 취재했었다. 이나 초등학교 봄반. 이 학급의 아이들은 목장에서 빌린 송아지 한 마리를 키워 교배를 시키고 젖을 짠다는 목표를 세우고 3학년 때부터 계속해서 송아지를 돌봐왔다. 그러나 5학년 3학기가 시작되기 조금 전, 예정일보다 한 달 빨리 어미소가 조산해버렸고, 선생님들이 이를 발견했을 때 송아지는 이미 차가워져 있었다. 울면서 송아지의 장례식을 마친 학생들을 기다리고 있던 일은, 염원했던 젖 짜기였다. 사산을 했어도 어미소의 젖은 매일 짜 줘야만 했다. 학생들은 짠 젖을 급식 시간에 데워 마셨다. 즐거웠어야 할 이 젖 짜기와 급식은 본래 기대했던 바와는 달랐다. 그것은 이들이 이 ‘상’중에 쓴 시와 글에 여실히 나타났다.
쟈쟈쟈
기분좋은 소릴 내며
오늘도 젖을 짠다
슬프지만 젖을 짠다
기분은 좋지만 슬프다는, 슬프지만 우유는 맛있다는, 이 복잡한 감정을 알게 된 걸 성장이 아니면 무어라 부를 수 있을까.
내가 창작을 하며 ‘죽음’ 그 자체가 아니라 이 ‘상’에 집착하며 홀리게 된 출발점은 틀림없이 여기라 하겠다.
– ‘상에 대하여’, <걷는 듯 천천히>, 고레에다 히로카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