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종 본론을 보충키 위한 곁얘기에서 본론에서 다하지 못한 그 사람의 진심을 볼 수 있다. – 본론은 내용을 진행시키기 위한 그만의 욕망으로 움직이고 있으므로. – 이 글을 다 읽기가 곤란하다면 최소한 두 부분이라도 건져낼 수 있으면 좋겠다.

“지금 모두들 영화비평의 위기를 말한다. 지금 다시 떠올려 볼만한 다네의 유명한 제안, 영화에 관한 평이란 완전하게 불필요하다. 대중은 평 없이도 영화를 보고, 극장은 글 없이도 가득 채울수 있다. 말하자면 영화평이란 잉여이다. 그런데 그게 필요하다면 왜 필요한가? 그건 단 한 가지 목적 때문이다. 영화를 본 다음 생각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므로 영화에 관한 평을 읽는 것은 영화를 보는 경험의 연장이며, 보충이며, 대리이다. 그러기 위해서 영화평은 영화에 더 가까이 다가가야 한다. 할 수만 있다면 겹쳐놓을 수 있어야 한다. 세르주 다네는 영화를 본 다음 정리하지 말라고 충고한다. 핵심은 그 인상을 보존하고, 그것만으로 버티는 것이다.  영화와 세상 사이의 중재. 그냥 영화를 본 다음 인상적으로 떠오른 생각들. 수첩을 가득 채운 두서없는 메모. 이 글은 그렇게 쓰여졌다.”


“나는 영화가 지나치게 자기를 뽐내거나(실험영화들), 반대로 너무 겸손해할 때(미디어로서의 영화들) 흥미를 잃는다. 물론 그걸 더 좋아할 수도 있다. 나는 지금 취향을 말하는 중이다. 영화는 세상과의 긴장을 유지할 때, 그래서 그 둘사이의 관계에 내가 개입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내 생각이 활동할 수 있는 거리를 확보한다. 결국 영화는 어떤 자세로 세상을 보느냐의 문제이다. 그래서 어떤 자세를 선택할 때 거기서 진실을 볼 수 있느냐는 선택의 내기이다. 영화와 세상 사이를 중재하는 자세와 거리.”

 

정성일의 가을 영화 산책 [1]
2006.10.11 08:00

약간의 사연. 나는 간절하게 하소연하고 있었다. (후렴) 지금은 가을이니까. 영화는 내게 연애를 하자고조르고 있었다. 그래서 책상에서 일어나 거리로 나오라고 속삭이고 있었다. 그렇다. 나는 너무 오래 책상에 앉아 있었다.텔레비전이 보는 사람을 안방의 정주민으로 만든다면 영화는 우리로 하여금 거리를 쏘다니는 유목민으로 만든다. (들뢰즈가 아니라)레지스 드브레가 한 말이다. 영화를 보러 달려가는 두근거리는 마음 혹은 보고 난 다음 지금 막 보고 나온 영화를 생각하고 또생각하면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 영화는 오가는 길이라는 사유의 시간 속에 있는 것이다. 나는 대부분 영화를 길에서 깨달았다.나는 교실에서 영화를 배운 적이 없다. 또다시 하염없이 긴 글을 쓸까 지레 겁을 먹은 김혜리 기자는 일단 홍상수의 <해변의여인>을 쓰지 않겠다는 약속에 안심을 했음이 분명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가까스로 허락받은 산책. 나는 인터넷을 종료하고영화를 보기 위해 거리로 나갔다. (후렴) 지금은 가을이니까.

 

영화평은 영화 보는 경험의 연장

(그저 떠오르는 대로 열거하는) 산책의 대가들의 명단. 보들레르의 산책. 지가 베르토프의 산책. 모네의산책. 알베르틴의 산책. 다이스케의 산책. 벤야민의 산책. 로셀리니의 산책. 도미오카와 유키코의 산책. 솔레르의 산책. 차이밍량의 산책. 홍상수의 산책. (고작해야) 그들을 흉내내고 있는 나의 산책. 더 솔직히 말하면 영화에 대한 메모만으로 가득찬 산책-글쓰기는 내 오랜 꿈이었다. 나는 이러한 글쓰기를 세르주 다네의 (신문 <리베라시옹>에 1981년 7월18일프리츠 랑으로 시작해서 1986년 1월24일 펠리니의 <진저와 프레드>로 연재를 마친)‘영화-일지’(Cine-Journal)를 읽으면서 배웠다. 물론 나도 안다. 내가 아무리 해봐야 다네만큼 높이 상공 비행한 다음 내려다보지 못한다는 것을. 다네가 보여준 더 많이 보려는 욕망. 그는 어떤 영화는 슬로모션처럼 보아야 하며, 어떤 영화는 디졸브하듯이 보아야 한다고 가르친다. 영화를 보는 내가 영화-되기. 지금 모두들 영화비평의 위기를 말한다. 지금 다시 떠올려 볼만한 다네의 유명한 제안, 영화에 관한 평이란 완전하게 불필요하다. 대중은 평 없이도 영화를 보고, 극장은 글 없이도 가득 채울수 있다. 말하자면 영화평이란 잉여이다. 그런데 그게 필요하다면 왜 필요한가? 그건 단 한 가지 목적 때문이다. 영화를 본 다음 생각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므로 영화에 관한 평을 읽는 것은 영화를 보는 경험의 연장이며, 보충이며, 대리이다. 그러기 위해서 영화평은 영화에 더 가까이 다가가야 한다. 할 수만 있다면 겹쳐놓을 수 있어야 한다. 세르주 다네는 영화를 본 다음 정리하지말라고 충고한다. 핵심은 그 인상을 보존하고, 그것만으로 버티는 것이다. 영화와 세상 사이의 중재. 그냥 영화를 본 다음인상적으로 떠오른 생각들. 수첩을 가득 채운 두서없는 메모. 이 글은 그렇게 쓰여졌다. (후렴) 지금은 가을이니까.

하지만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나는 그런 척하다가 정말 바람이 나고 말았다. 그래서 바람난아저씨가 카바레를 떠돌듯이 영화관을 여기저기 기웃거렸다. 아아, 바람난 영화야, 여기 아저씨가 왔다. (후렴) 지금은가을이니까. 그래서 급기야 마감일에 다시 한번 전화를 하고 말았다. 내 말도 안 되는 푸념을 들은 김혜리 기자는 한주 미루는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한 다음 가볍게 한숨을 쉬더니 “그런데 몇매를 쓰고 있어요?”라고 물었다. 우물거리면서 대답하자잠시 기다리라고 한 다음 누군가에게 분량을 의논하였다. 그러자 저 멀리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들렸다. “진짜 그것만쓴대?” 그 말이 들리는 수화기를 든 나는 저 멀리 끝나가고 있는 늦여름의 한강을 무심코 보고 있었다. 지난여름에 골뱅이가나타나서 현서를 잡아먹었던 그 한 많은 강. 또 누군가가 뛰어들 강.

 

2006년 여름, 정치적 계절의 도래

<괴물>

물론 <괴물>은 아직도 상영 중이다. 나는 ‘(하지만…)’으로 글을맺었고(<씨네21> 제 565호, ‘노골적이고 단호한 정치적 커밍아웃’), 그리고 허문영이 그 다음을 이어 썼다. 그글은 내가 놓친 부분을 정확하게 찾아서 다시 쓰고 있다(<씨네21> 제566호, ‘끝까지 둔해빠진 새끼들은누구인가’). 하지만 나의 ‘하지만’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좀더 정확하게 나는 서문을 쓴 것이고, <괴물>은이제부터 더 이야기되어야 한다. <괴물>이 내게 가장 새로운 것은 이야기 구조에 있다. 봉준호는 이야기가 진행되면될수록 점점 인물들을 흩어놓는다. 혹은 일부를 빼낸다. (박희봉) 말하자면 여기에는 고전적인 이야기 구조에 역행하는 배치의분산화가 있다. 아니, 차라리 반대의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말하고 싶을 정도다. 그러면서 편집은 점점 산만해지고 있는데, 그걸이용해서 무언가를 회피하고 있다는, 이렇게 무책임하게 인상적으로 말하는 것이 허락된다면, 그걸 말하지 않기 위해 각자의 인물이자기 차례가 왔을 때 책임을 떠넘기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걸 말해야 하는 숏이 다음에 나와야 할 때 갑자기 영화는 다른장소에 있는 다른 인물 신으로 달아나버리고 만다. 물론 술래는 괴물이다. 더 미룰 수 없을 때 그 자리에는 아무 말도 못하는괴물의 차례가 돌아온다. 중심의 결여라고 할까, 주변의 점으로 이루어진 가운데가 빈 원형이라고 할까, 이 이상한 이야기의 진행안에서 종종 이야기를 구경하는 것 같은 수평 트래킹 카메라는 분산되는 인물과 그걸 붙이려는 편집 사이의 무심한 매듭이다.이를테면 괴물이 한강에서 뛰쳐 올라와 사람들을 잡아먹고 있는데 그냥 무심하게 원효대교를 지나가는 버스 안에서 그걸 쳐다보는승객의 수평운동의 시선. 나는 <괴물>에 대해 여기서부터 다시 시작해서 쓰고 싶은 유혹을 느낀다.
한 가지 더 지적할 점. <괴물>의 날씨는 박강두와 그의 가족이 병원에서 탈출한 다음부터종잡을 수 없다. 심지어 한강 둔치로 들어가는 굴레방 다리를 지나기 전에 그렇게 내리던 비가 거길 지나가자마자 개어 있다.그런데 여길 지나가 본 사람은 알겠지만 걸어서도 1분이면 충분하다. 이 비현실성 혹은 초현실주의적인 날씨. 겨우 50m 이쪽과저쪽이 마치 다른 도시처럼 보이는 거리. 나는 한강에 나타난 괴물보다 이쪽이 훨씬 신기해 보인다. 그런데 봉준호는 그게상관없다고 생각한다. <괴물>에는 무언가에 고착된 채 그걸 집행하기 위해 비합리적인 요소를 끌어안고 거기서 눈에보이는 광경만을 펼친다. 혹은 무언가 상상을 덧쓰려는 현실효과를 뿌리치려는 완강한 저항이 있다. 대중 안에 이데올로기의 폭탄을던지는 것은 오늘날 그렇게 점점 상상이 환상을 덮어쓰는 방식으로만 진행될 수밖에 없는 것일까? 나는 <괴물>이 좀더많은 질문을 견뎌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질문을 온통 돈문제로 환원시키는 것은 대한민국 영화담론의 빈곤함이다. 아무래도<괴물>을 말하기 위해서는 더 기다려야 할 것 같다.

 

질문하지 않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다세포 소녀>

<다세포 소녀>

하지만 여기 나는 한편을 더 추가하고 싶다. ‘B급 달궁’(이라는 예명을 쓰는 채정택 작가)의, 얼짱김옥빈의, 혹은 이재용의 <다세포 소녀>는 건드리기도 전에 끝났다. 이 영화를 말할 때 성 정치학이나 장르의 혼합,혹은 패러디를 말한다. 하지만 ‘가난을 등에 업은 소녀’에 대해서는 애써 질문을 피한다. 그 반대로 나는 이 소녀가 가장궁금하다. ‘B급 달궁’의 원작에서는 주변 인물에 지나지 않는 이 소녀가 갑자기 이야기의 중심에 왔을 때, 그래서 계급모순이중심에 올 때 성 정치학은 왜 창백해지는가? 왜 이 영화에는 도착은 있는데 전복이 없는가? 혹은 성에 대한 애착만큼프롤레타리아를 사랑하는 것은 왜 불가능한가, 라는 질문과 마주하게 만든다. 그걸 이재용이 질문하기 때문에 문제가 된 것이 아니라그 반대로 질문하지 않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이성애자 앞에서 트랜스젠더는 ‘사랑하지 않으면서도 사랑받는’ 타자이지만, 부자앞에서 ‘가난을 등에 업은 소녀’는 ‘사랑하는데도 불구하고 사랑받는’ 타자가 될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 나는<괴물>을 본 다음 <다세포 소녀>를 보았다. 그리고 중얼거렸다. 올 여름, 마침내 다시 정치의 계절이도래하였다. 혹은 <괴물>은, <다세포 소녀>는 2006년, (평화로운 국면인 척하는) 대한민국을(계급모순과 반식민지 분단체제 국가독점자본주의의 위기 아래 놓인) 대한민국답게 만들어주고 있다. 내년에는 대통령 선거를 한다고한다. 다가올 미래 앞의 기기묘묘한 예고편. 내년 대통령 선거는 괴수와 싸우는 영화가 될까, 아니면 정치적 복장도착의 뮤지컬이될까?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이야기 <연애,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

지난 여름이 끝나기 전 몇편의 영화를 더 보았다. 먼저 <연애,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과<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이 두편을 모두 본 것은 <파이란> 때문이다. 나는 <파이란>이 지닌통속성에의 향수를 놓치고 싶지 않다. 그해에 <순애보> <봄날은 간다> <번지점프를 하다><소름> <와이키키 브라더스>가 나왔다는 사실을 환기해 주기 바란다. 나는 지금 멜로드라마만 열거한것이다(그해에 가장 대중적인 영화는 <친구>였다). 이 명단은 예외없이 사랑을 포기함으로써 사랑을 잃지 않는 행위를선택한다. 그것을 우리 시대의 쿨한 사랑법이라고 믿는다. 그런데 <파이란>은 갑자기 낭만적 사랑의 제스처를 택한다.거의 복고취향이라고 부르고 싶을 정도의 통속성. 나는 이 반시대적 연애영화의 행위가 너무도 용기있어 보여서 그걸 방어해야 한다는어떤 만족을 얻었다. 그러나 그 만족은 어떤 망설임을 불러일으켰다. 나는 <파이란>을 본 다음 이 영화의 장점이(김해곤의) 시나리오에서 온 것인지, 아니면 (송해성의) 연출 몫인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송해성이<카라>로 데뷔한 것은 (적어도 내게) 악재로 작용하였다. 세 번째 영화 <역도산>은 송해성보다는 어딘가(이 영화를 제작한) 차승재의 영화처럼 보였다. 그런 다음 <우리들의…>를 만든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연애…>을 먼저 보고 난 다음 보게 되었다. 결과는 좀 이상한 방식으로 대답하였다. 이 두편의 영화는<파이란>을 둘로 나눈 것 같았다. 둘 다 거의 벼랑까지 밀고 간 다음 눈물을 요구했고, 둘 다 지지리 궁상을 떨면서바닥을 치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둘 다 사랑에 빠진 커플에서 남자쪽에 기대 이야기를 진행하였다. 그러나 신파조 이야기 안에서조차그래도 산다는 문제를 붙들고 늘어지는 끈덕진 장점은 김해곤의 것이었고, 강재라는 남자에게 부여한 피와 살은 송해성의 것이었다.

<연애,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

먼저 <연애…>. 영운은 비루하지만 그만큼 흥미있는 등장인물이다. 그러나 <해변의여인>의 김승우를 ‘직전에’ 먼저 본 것은 김해곤에게 좋은 일이 아니었다. 홍상수는 일단 자기 영화 안에 배우가 들어오면거의 일그러뜨리다시피 한 다음 자기 이야기 안에서 반쯤 자백을 하듯이 연기하게 만든다. 그의 영화는 배우에게 일종의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이다. 그리고 그걸 점점 더 잘한다. 문제는 그게 너무 인상적이어서 다른 영화에 그 배우가 나올 때 그렇게홍상수 마음대로 구겨지고 이리저리 잘라낸 이미지가 남아서 (혹은 복원되지 않아서) 남의 영화 안에서 홍상수 영화 속의 인물의이미지와 싸움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김승우는 이상하게 이야기의 시선이 잘 투영되지 않는다. 홍상수는 그걸 안 다음,이를테면 세 그루의 나무 앞에서 이유를 알 수 없는 울음을 터트려도 김승우는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같은 자리에 김태우는갈 수 없을 것이다. 그건 연기의 문제가 아니라 모델의 문제이다. 그런 다음 홍상수는 재빨리 고현정과 송선미에게 응시의 자리를돌려서 문숙과 선희를 번갈아 그 곁에 앉혀놓고 그 앞에서 김승우에게 말하게 만든다. 그때 김승우는 항상 보는 대신 보인다.그러나 <연애…>에는 그럴 수 없는 문제가 있다. 술집 여자 연아(장진영)는 보는 사람을 설득시키기 매우 힘든등장인물이다. 그러므로 이 인물을 믿을 수 있게 만들기 위해서 영운이 동원되는 구조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혹은 연아라는 인물의가능성을 절대적으로 믿는 사람은 영운뿐이다.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연아는 영운의 환상의 대상이다. 그런데 연아쪽에서 영운을보게 되면 이 주관적인 감정선을 객관적으로 노출시킬 위험과 만날 수밖에 없게 된다. 왜냐하면 납득할 수 없는 연아쪽에서 영운을볼 때 이 상황을 이해해야 한다는 (사이비) 브레히트적 조건에 떨어지기 때문이다. 인물을 믿을 수 없을 때 이야기는 앞으로나아가지 못한다. <연애…>는 그 상황이 가슴 아프게 우습지만, 그 안의 인물들이 그 상황을 구경하는 듯한 느낌을끝내 떨치지 못한다. 그러면 그걸 보는 나는 무엇을 구경해야 할까?

 

연민으로 끝나고 마는 눈물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우리들의…>는 비슷하면서 다른 문제에 부딪힌다. 누구나 하는 말이지만 강동원은‘완전소중’이다. 얼마나 멋있는지 죄수복을 입어도 빛이 난다. 곁에 선 이나영이 눈물을 흘리는 것보다 강동원이 그저 슬쩍 슬픈표정을 짓는 게 더 안쓰럽다. 게다가 이 형무소는 차라리 기숙사처럼 보인다. 지난해 추석에는 하지원이 그 곁에서울었고(<형사 Duelist>), 올 추석에는 이나영이 옆에서 울고 있다. 내년에는 누가 그 옆에서 또 울까? 그러나영화 속에서 누군가가 우는 것과 그걸 보는 내가 우는 것은 다른 문제다. 나는 영화를 볼 때 눈물이 많은 사람이다. 하지만송해성은 잘 울리지 못한다. 그의 재능은 울리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우는 것을 보는 데 있다. 그는 남자가 우는 걸 가장 잘보는 감독이다. <파이란>은 그 순간과 만날 때 보는 사람을 움직인다. 최민식도 강재에게 공감을 가졌던 것 같다.그런데 최민식은 전형적인 메소드 액터이다. 그는 지나치게 강재 안까지 들어갔다. 그런 다음 최민식은 강재에게서 나오기 위해서거의 몸부림을 쳤다. 오대수라는 인물을 선택한 것은 배우로서 일종의 자살이다(<올드보이>). 그렇게 해서라도 강재를죽이고 내가 살아야 한다는 절박함이 거기에 있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그런데 반대로 강동원은 사형수 정윤수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다. 세상은 공평하다. 지나치게 멋있는 남자들은 모델은 잘할 수 있지만 배우는 힘들게 한다. 강동원은 좀더 부서져야 배우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그가 연기를 못하는 것이아니라 너무 근사해서 문제다. 그렇다고 모델로서 그 인물을 흉내내기에는 정윤수가 던져진 상황이 너무 드라마틱하다. 마지막 선택.그렇다면 강동원은 정윤수 그 자신이 될 수 있을까? 아마도 공지영은 소설을 쓰면서 정윤수를 그려낼 때 단 한번도 강동원을떠올리지 않았을 것이다. 맹세를 해도 좋다. 강동원과 정윤수는 인생에서 거의 공집합이 없는 삶을 살아오다가 여기서 처음 마주쳤을것이다. 브레송의 유명한 말. 영화에는 두 가지 인물이 있다. 하나는 인물을 배우가 흉내내는 것, 또 하나는 인물이 모델을 닮는것. 잡으러 가기와 잡아당기기. 모델이 강동원일 때 정태성은 그를 잡으러 왔다(<늑대의 유혹>). 하지만 모델이정윤수일 때 강동원은 그를 자기 안으로 잡아당겨야 한다. 송해성은 정윤수의 눈물을 볼 수 있는 가장 좋은 자리에서 보려고노력한다. 그러나 거기서 눈물을 흘리는 사람은 정윤수가 아니라 강동원이다. 그때 눈물은 오로지 가련한 연민으로 끝난다. 하지만<우리들의…>는 사랑이 아니라 죽음을 건드리고 있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죽음의 두 가지 측면, 자살과 사형은 이나영과 강동원의 눈물을 경유하여 삶의 상실이라는 슬픈 깨달음에 이르지 못한다. 사랑의 상실은 삶의 상실과 맞바꿀 만한 가치가있는 것일까? 물론 그런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눈물은 이미 주어진 현실을 얼룩진 왜상으로 만들어 진실을 보도록도와주지도 않는다. 눈에 머물지 못하고 그저 흘러내리는 눈물. 세상을 보는 대신 이야기에 내던져진 슬픈 눈물. ‘안습’ 내기.눈물은 영혼을 비쳐 보이거나 그 반대로 감정을 증발시켜버린다. 매우 미안한 이야기지만 나는 그 둘이 함께 만든<파이란>이 그 두편의 영화 어느 쪽보다 좋다. 그러나 <우리들의…>에 대해 쓰는 것을 포기하는 것은 내게<연애…>를 쓰는 것도 그만둔다는 것을 의미한다.

 

재미있지만 너무 많은 영화가 어른거린 <천하장사 마돈나>

<천하장사 마돈나>

이해영과 이해준의 첫 번째 영화 <천하장사 마돈나>는 재미있었다. 그리고 그들이시나리오작가에서 시작한 사람들답게 보는 내내 이미 정해진 결론까지 가면서도 작은 반전의 대목들을 기습적으로 배치해두고 있었다.하지만 이 영화를 보는 동안 너무 많은 영화들이 어른거린다. 이를테면 어쩔 수 없이 수오 마사유키의 <으랏차차스모부>. 게다가 트랜스젠더 ‘이전’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도 ‘이후’에 대해서 어떤 작은 대답조차 할 생각이 없는 이영화의 태도는 자기 이야기의 주인공을 결국 구경거리로 만들고 말았다(그들은 그 후일담을 만들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무언가 말하고 싶었지만 내가 트랜스젠더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닫고 곧 그만두었다. 어쩌면 그것이 이 영화의 윤리적태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박철희의 <예의없는 것들>은 왕가위의 <타락천사>의 두이야기를 샘플 리믹스한 것 같다. 말을 못하는(금성무) ‘킬라’(여명). ‘그녀’(윤지혜)는 막문위를 흉내내고 있는 중이다.그래도 다행히 ‘망기타’는 흐르지 않는다. 조범구의 <양아치어조>는 좋지는 않지만 그의 다음 영화를 기다리게만들었다. 이 영화에는 날을 세운 감정의 칼과 그것에 찔린 다음에도 그걸 참아내는 포옹이 함께 있었다. 나는 그가 멀리 갈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두 번째 영화 <뚝방전설>은 좀 어리둥절했다. 내가 그의 첫 번째 영화를 잘못 보았든지아니면 영화에 대한 그의 생각이 바뀌었든지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어느새 도망친 여름.

 

스튜디오로 귀환한 타르코프스키의 세계 <리턴>

가을이라고 느꼈을 때 처음 본 영화는 안드레이 즈비야긴체프의 <리턴>이다. 이 영화는 임상수의<바람난 가족>이 베니스영화제에 간 해에 황금사자상을 받은 데뷔작이다. 좀 이상한 표현이지만 이 영화는 ECM영화다.집 떠나간 아버지가 어느 날 갑자기 아들 앞에 나타난다는 이야기는 레닌 ‘이후’ 러시아영화에서 줄기차게 반복해서 다루어온억압에의 귀환이다. 말하자면 서방세계의 아버지와 달리 러시아영화에서 돌아온 아버지는 정신분석적이라기보다는 역사적 무게가 더크다. 이미 많은 영화들이 그러한 화법을 택했고, <리턴>은 그러한 전통에 기대어 진행된다. 그러나 즈비야긴체프가새로운 것은 그 앰비언트 사운드의 디자인이다. 돌아온 아버지가 두 아들과 집을 떠난 다음 모든 장면은 야외에서 진행된다. 그런데사운드는 거의 밀폐된 것처럼 완전하게 통제된 스튜디오 안에서 작은 소리들을 일일이 만들어서 장면 안에 배치하였다. 그때 이사운드의 느낌은 ECM 음반을 들을 때의 그 차가운 명징함과 소곤거림, 어떤 노이즈도 없는 제로 상태, 허락되지 않는 잔향효과,모자이크에 가깝게 편집된 선율의 카탈로그, 어떤 작은 팬 홈도 남겨두지 않은 채 매끈하게 다듬어진 방음효과 안의 공간에 초대받은것 같은 인상을 준다. 즈비야긴체프는 그렇게 아버지의 대지를 스튜디오의 영토로 만들고 있다. 여기서 시간은 음향 안에 있다. 그안으로 돌아온 리듬적 인물과 그 속으로 떠나는 선율적 풍경. 그때 세상은 하나의 음향-기계처럼 느껴진다. <리턴>은타르코프스키 영화의 귀환의 실패이다. 물론 미학적 실패가 아니라 그 목적론의 실패라는 의미에서이다. 여기에는 타르코프스키가소망하는 지나간 시간(의 흔적)을 지나가는 시간(의 경험) 안에서 되찾을 수 있다는 낭만주의적 희망이란 없다. 아버지가돌아오지만 그는 상자를 되찾은 다음 미처 열지 못하고 예상치 않은 죽음을 맞이한다. 그러므로 그 상자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를추론하기 위해서는 이야기를 버리고 영화의 기호들에 우리의 감각을 열고 예민하게 반응해야 한다.

<리턴>

그때 타르코프스키와 즈비야긴체프는 둘 다 바람에 관심이 많다. 타르코프스키는 심지어 헬리콥터를 동원해서바람을 만들어 들판의 나무를 뒤흔든다. 하지만 즈비야긴체프는 여기서 바람에 움직이는 나무를 찍지 않는다. 그 대신 그는스튜디오에서 녹음된 바람 소리를 들려준다. 혹은 자연 속에서 찍은 이미지를 일일이 DI 작업을 해서 디지털 풍경으로 만든다.그때 타르코프스키를 연상케 하는 이 여행은 정반대로 기계적인 녹음으로 배열된 음향과 이미지로 자연을 인공의 영토로 코드화한다.흐루시초프 혹은 브레즈네프 시대를 산 타르코프스키는 스탈린 시대의 아버지가 돌아오는 것을 막기 위해 기도하고 또 기도한다.타르코프스키의 아버지들이 이미 죽었거나, 유령이거나, 끝내 돌아오지 않거나, 바보이거나, 미쳐버리는 것은 이유가 있다. 푸틴시대의 즈비야긴체프는 고르바초프 시대의 아버지를 우스꽝스럽게 기다린다. <리턴>의 질문은 아버지가 왜 돌아왔느냐가아니라 왜 떠나갔느냐, 에 있다. 하지만 판도라의 상자는 열리지 않는다. <리턴>은 페레스트로이카에 대한 음울한유머이다.

 

가장 초현실주의적인 홍상수 영화 <해변의 여인>

그 다음. 안 쓰겠다고 했지만 그래도 그냥 몇 가지 메모. 홍상수의 일곱 번째 영화는 장 르누아르가 미국에 가서 1946년에 찍은 첫 번째 영화와 제목이 같다. 그것이 우연인지, 아니면 의도인지를 나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이영화에서 홍상수는 해변가 빌라 이층에 빌린 중래의 방을 중심에 놓고 복잡한 동선을 그은 다음 그 사이를 넘나들거나 되돌아오거나혹은 쳐다보는 과정을 되풀이한다. 그때 불투명한 문과 커튼 사이로 (반)투명한 창문은 프레임의 숨바꼭질을 위한 알리바이가 된다.갑자기 프레임의 일부가 안 보이거나(저 문 너머에서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혹은 프레임의 일부가 구멍이 난것처럼 뚫려서(창문 너머에 있는 저 여자는 누구일까) 프레임 안에 프레임이 보인다. 말하자면 건축이라는 질료성을 영화적투시도법의 미장센으로 다시 구성한 장 르누아르의 화면과 동선. 문과 창문. 사실 그 둘은 모두 구멍이다. 프레임의 막힌 구멍과뚫린 구멍. 여기서 막힌 문은 분리에 실패한 소외이며 그 창문은 소외당한 욕망의 블랙홀이다. 그때 그 방문과 창문에서 내가떠올린 것은 루이스 브뉘엘의 <안달루시아의 개>에서 미처 닫히지 않은 문 사이로 개미들이 기어나오는 구멍 뚫린손이다. <안달루시아의 개>의 마지막 장면에서 해변가에 부서진 상자가 보이고 난 다음 모래에 파묻힌 두 남녀가 보이자거기 “봄날에”(au printemps)라는 자막이 떠오르면서 끝났다는 사실을 떠올리시길. <해변의 여인>은 이제까지그가 만든 영화 중에서 가장 가까이 초현실주의에 기대고 있다. 심지어 그게 좀 아슬아슬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러나 그가 비유에기대지 않기 때문에 그것을 알아차리기란 쉽지 않다.

<해변의 여인>

(이미 당신께서 읽었을) 두개의 글을 읽고 나는 홍상수를 배운다. 김소영은 두명의 중래를 놓고 그사이에서 벌어지는 표면 위의 기호의 싸움을 본다(<씨네21> 제569호, ‘영화적 재미의 새로운 경지’). 이를테면“(중략)… 우연성을 필연으로 엮어내는 서사가 영화감독 중래의 강박관념인 셈이다. 그래서 그는 문숙과 선희가 닮았다고 말하게된다. 그리고 이 진술은 둘을 함께 목격한 식당주인, 그리고 선희에 의해 반복된다. 그러나 이 반복으로 가는 대한(??)의미화로 가는 대신 영화의 서사적 추동성은 문숙이 이것을 잘라내는 중단, 정지로 간다. 그녀는 중래를 놀리듯 말한다. 나는 반복같은 것은 하지 않는다고.” 나는 이 대목을 읽다가 잠시 멈춘 다음 다시 읽었다. 기호의 반복과 서사(-운동의) 중단. 혹은정지. 반복 안의 중단. 사유하도록 강요한 다음 다시 이야기 안으로 끌어(attractive)들이기. 홍상수의 내밀한 몽타주.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점. 나는 항상 남의 글을 읽고 배운다. 그때 배움은 여전히 나의 행복함이다. 그런 다음 허문영은 오랜친구에게 보내는 듯한 더할 나위 없이 예를 갖춘 사랑이 그윽한 향처럼 번져나오는 글을 썼다(<씨네21> 제 560호,‘남자와 여자와 개의 시간’). 허문영은 여기서 이상하게 아무도 지적하지 않은 ‘해변의 개’를 끌어안고 개의 자리를 둘러싼인간의 형상에 대해서 <해변의 여인>을 거의 다시 쓰다시피 했다. 나는 이 개가, 그러니까 ‘돌이’, 혹은 ‘똘이’,또는 ‘바다’가 <해변의 여인>의 가장 중요한 등장인물이라고 믿는다. 나는 두개의 글을 읽은 다음 그 ‘이후’에 또쓰는 건 중언부언이야, 라고 중얼거리고 말았다. 나는 <해변의 여인>에 대한 그들의 견해를 훔치면서 배운다. 이것이8월 말, 9월 초의 나의 첫 번째 배움이다.

글: 정성일 영화평론가

 

정성일의 가을 영화 산책 [2]
2006.10.11 08:00

 

동해로 향하는 서해안의 여인

다만 한 가지 덧붙이고 싶은 생각. 서해안에 가서 찍은 이 영화는 서울을 꼭짓점으로 한 다음 지정학적으로 남서쪽에 가서 진행되는 이야기인데도 그 세 사람이 도착해서 바다를 바라볼 때 이상하게 자꾸만 동해안에 가서 진행되는 것처럼 90도 상상선을 그은 다음 그들을 바라보고 왼쪽 45도에 카메라를 세운다. 그런데 <강원도의 힘>에서는 강원도의바닷가에 가서 반대로 진행하였다. 지숙은 그녀의 두 친구와 함께 강원도 해변가에 간다. 짧은 신이지만 여기서 <해변의여인>과 거의 동일한 장면이 나온다. 그녀들은 해변에 도착해서 바다를 본 다음 돌아서 모텔을 보는데 그 앞에 웬 말이 서있다. 주인은 이 말 이름을 ‘주필이’라고 가르쳐주는데 지숙의 친구는 그 이름을 듣고 “주피야, 주피야, 넌 어쩌다 여기까지왔니”라고 묻는다. 그런 다음 다시 그 세 사람은 해변가에 앉는다. 그런데 카메라는 구태여 그녀들을 마치 서해안에 온 것처럼,그러니까 이번에는 상상선의 오른쪽에 가서 보여준다. 바다는 건물이나 길과 달리 고정된 것이기 때문에 마스터 숏으로 방향을 정하면그걸 반대로 틀어놓기 매우 힘들어진다. 나는 <강원도의 힘>을 보았을 때 이 신이 너무 이상해서 무척 인상적이었다.사실 난 이런 장면을 만나서 설명이 안 되면 거의 못 견디는 쪽이다. 이 장면에서 둘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홍상수는 아직영화에 서투른 예술가이거나(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원도의 힘>은 에릭 로메르 ‘이후’에도 새로웠다) 아니면 그 스스로의이미 완성된 세계 안에서 결론을 갖고 영화를 시작한 셈이다. 그러니까 그에게 시행착오란 없다. 이미 그는 영화에 대해 결론을내렸고, 다만 그 안에서 반복의 역설 아래 차이로서의 반복과 반복 안의 차이 사이를 오갈 뿐일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끈질기게 내기를 미루었다. 그런데 꼭 10년 만에 <해변의 여인>으로 서해안에 간 홍상수가 마치 거울에 비친 것처럼바다 앞에서 반대로 진행할 때 어떤 쇼크를 받았다. 홍상수는 <강원도의 힘>에서 해변가를 ‘서해안의 힘’처럼보여준다. 그런데 <해변의 여인>은 내게 <동해안의 여인>으로 보인다. 나는 문숙의 차가 마지막 마지막신에서 지정학적으로 서해안이라는 사실을 확인시키면서 가다가 갑자기 수렁에 빠진 다음 두 남자의 도움을 받아 거기서 빠져나오자마자갑자기 유턴을 할 때 아니, 여기서 유턴을 할 거면 뭐 하러 여기까지 왔을까, 라는 생각을 안 할 수 없었다. 여기는 길도아니고 모래사장 한복판이다. 나는 거기서 차를 수렁에서 건져주는 두 남자 대신 그녀 스스로 ‘똥차’라고 부른 하늘색(푸른바다색?) 마티즈의 유턴을 보았다. 그때 서해안을 가던 차는 유턴을 해서 천연덕스럽게 동해안처럼 되돌아간다. 이때 나는 가까스로되찾은 긍정된 세계로부터 재빨리 다시 물러나는 홍상수를 본다. 똥차 혹은 버림받은 개. 개의 예와 아니오와 문숙의 예와 아니오.그것은 되돌아오는 것일까, 나아가는 것일까. 푸른 하늘과 푸른 바다. 변덕스러운 봄날의 뿌연 공기.

 

김기덕에 대한 작은 연대

<시간>

나는 <해변의 여인>을 본 다음 막 개봉한 김기덕의 <시간>을 다시 보러 갔다.그러는 동안 김기덕은 소란의 한복판에 외롭게 던져져 있었다. 나는 그가 하는 말에 거의 개의치 않는 편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그의 영화이지 그의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시사회가 끝난 다음 이루어진 기자회견을 거의 소설로 각색한 기사에 항의하는 배급사의회견 전문을 다운받았고, 심야에 생방송으로 중계된 <100분 토론>을 산만하게 보았고, 그 방송이 끝난 다음 김기덕이연합통신에 보낸 메일 전문을 읽었다. 김기덕은 네이버 조회 인기검색어에도 올라왔다. 김기덕의 메일에 달린 글은 그의 영화에 대한글보다 더 많았다. 심지어 그 메일에 수능시험 논술고사 채점하듯이 문장 단위로 일일이 토를 단 기사마저 있었다. 김기덕은텔레비전 인터뷰에 응한 다음 “나는 언론을 실험용 쥐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제 누가 누구를 조롱하고 있는 건지 알 수 없는지경까지 가고 있었다. 그런 다음에 다시 보는 <시간>은 나를 매우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텅 빈 영화관에는 나를 포함해서 8명이 쓸쓸하게 앉아 있었다. 조롱의 게임은 누가 바보인지를 놓고 벌이는 내기였다. 대답은 둘 다이다. 그것을 그자리에 앉아 있는 관객 수가 무심하게 대답하고 있었다. 나는 <시간>의 개봉을 촉구하기 위한 격문의 형식을 빌려 단지줄거리 소개만 했기 때문에(<씨네21> 제549호, ‘반복 안에서 찾은 새로움: 김기덕 감독의 신작<시간>을 최초로 보고 쓰다’), 좀더 안을 들여다보는 글을 쓰고 싶었다. 이 영화에 가장 따뜻한 글을 쓴 사람은 남다은이다(<씨네21> 제566호, ‘죽음만 남을 때까지 계속되는 반복’). 하지만 <시간>이 한국에서 개봉한 것이 김기덕에게 좋은 일인지 아닌지에 대해 이제는 솔직하게 판단하지 못하겠다. 꼭 내가 쓴 글 때문에 개봉한 것은 아니겠지만 그러나 그 과정에 일정 정도 개입한 글을 쓴 나는 이 황량하기 짝이 없는 상황을 그저 쳐다보았다.<시간>에 대한 담론은 정작 빈곤하기 짝이 없었고 모두들 김기덕의 말에 대한 주석에 매달려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걸 보는 내 느낌은 허연 이빨을 드러내고 침을 흘려가면서 물어뜯듯이 매달린다는 인상을 불러일으켰다. 그렇다고 그 주석에 어떤 집요한 성찰이 있거나 혹은 그 말을 경유하여 영화 안으로 들어간 것도 아니었다. 물론 김기덕의 영화를 싫어할 수 있다. 그러나 싫어하는 것이 김기덕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걸 혼동하면 안 된다. 나는 할 수 없이 김기덕의 열네 번째 영화를 보기 위해서 칸이나 베니스 혹은 뉴욕, 어쩌면 도쿄까지 가야 할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난 갈 것이다. 그러나 그의 영화가 서울에서 다시 ‘개봉’할 때까지 나는 더이상 그의 ‘새로운’ 영화에 대해 쓰지 않을 생각이다. 이것이 김기덕에 대한 나의 작은 연대이다.

 

오즈의 계절에 듣는 밥 딜런의 음악

그런 다음 잠시 망연자실하게 돌아보았다. 이제 막 여름이 끝나고 가을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그 사이.늦은 여름 혹은 이른 가을. 말하자면 오즈의 계절. 지금 내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영화가 아니라 노래다. 밥 딜런의 (‘공식해적음반’ 연작을 제외하고, 그러나 5장의 라이브와 그레이트풀 데드와의 라이브와 한장의 사운드트랙을 포함해서) 39번째 앨범<모던 타임스>는 그냥 한마디로 심금을 울린다. 이 앨범은 누구나 연상하듯이 채플린의 그 유명한 마지막 무성영화와같은 제목이다. 하지만 밥 딜런이 여기서 채플린에게 오마주를 바치거나 패러디를 하는 것은 아니다. 구태여 떠올리자면 채플린이토키시대에 끝까지 무성영화로 저항한 것처럼 밥 딜런은 여기서 ‘옛것이지만 근사한’ 재즈 블루스 백 밴드에 기대어 중얼거리면서노래한다. 그는 이번에는 엘모어 제임스와 윌리 브라운, 머디 워터스, 로버트 팻웨이 혹은 토미 존슨 사이 그 어딘가에서,말하자면 미시시피 델타 블루스의 탁류에 몸을 내맡기고 세션 맨들과 어울려 흘러가듯이 노래한다. 그런데 비평가들은 로니 존슨의영향 아래 놓여 있다고 설명한다. 그래도 세 번째 트랙에서 느닷없이 머디 워터스처럼 <롤링 앤 텀블링>을 노래할 때는이상하게 걷잡을 수 없는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밥 딜런의 모든 앨범이 훌륭하지는 않지만 거의 동시에 데뷔한 폴 매카트니의 행보와비교하고 있으면 고마운 마음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역사의 실패를 노래하는 고다르 <사랑의 찬가>와 <아워뮤직>

<사랑의 찬가>

나는 똑같은 마음을 고다르에게서 느낀다. 광화문에서 <사랑의 찬가>와 <아워뮤직>을막 보고 나오면서 고마워, 고다르, 라고 스스로에게 중얼거렸다. 두 영화를 마치 동시상영처럼 보여주지만, 두 영화는 전혀 다른자리에 있다. <사랑의 찬가>는 일상의 물건들이 이미지가 될 때 우리로 하여금 지금 우리가 우주의 질서 안에 살고있다는 숭고함을 불러일으킨다. 그때 고다르는 단지 숭고함의 물신주의에 매달리는 대신 이미지가 덧없이 영화라는 시간 속에서사라져가는 것을 다루면서 이미지를 다루는 영화의 운명과 임무에 대해서 계속 질문한다. 고다르의 영화를 보려면 무엇보다도 질문을견뎌야 한다. 질문은 고다르에게 영화의 존재 이유이다. 아니, 차라리 고다르의 카메라가 사물의 이미지를 건드릴 때 세계가 질문을던진다, 라고 말하는 편이 맞다. 반대로 <아워뮤직>은 이미지의 교육학이라고 부르게 만든다. 그건 반드시‘연옥’편에서 고다르가 하워드 혹스의 <그의 여자 프라이데이>를 텍스트 삼아 숏과 상대 숏의 관계에 관한 긴 강연을하기 때문은 아니다. 이미 이 토픽은 1963년 장 피에르 우다르가 로베르 브레송의 <잔다르크의 재판>을 본 다음(라캉의 ‘봉합’(suture) 개념을 빌려) 문제제기를 하였고, 그때 고다르는 이미 나나가 드레이어의 <잔다르크의수난>을 보다 말고 갑자기 카메라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비브르 사비>를 찍은 다음이다. 핵심은 왜 그걸 지금다시 끌어들이고 있느냐는 것이다. 여기서 이 이야기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의 역사적 관계, 그에 영화가 대응하는 판타지와다큐멘터리, 그런 다음 숏과 상대 숏의 비대칭성이라는 삼항 관계로 놓고 진행된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그리고 이 영화는 단테의<신곡>을 빌려 지옥, 연옥, 천국이라는 삼부로 구성되어 있다). 오늘날 고다르를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는 것은 진행중인 역사가 변증법을 방해한다는 것이다. 고다르는 실패한 것이 역사이지 변증법이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때 진행이 중단된모순으로서의 상대 숏, 좀더 정확하게 팔레스타인의 문제를 물어본다. 상대 숏으로서의 팔레스타인. 안티테제가 위기에 빠져 있을 때변증법은 잘못된 종합명제로서의 천국이라는 괴물을 만들어낸다. <아워뮤직>의 ‘천국’은 불길하다. 말하자면 주한미군에게  ‘작통권’을 갖게 해달라고 하소연하는 우파들이 날뛰는 대한민국은 고다르에게 21세기의 천국이다. 제국의 천국. 역사 속의이미지들은 지옥의 피에 젖어들고, 현재 진행 중인 연옥의 이미지들이 모순의 불평등에 시달릴 때, 미래의 천국은 미군의 이미지들이점령할 것이다. 그것이 고다르가 부르는 ‘우리의 음악’(notre musique)이다. 음악은 아직 (혹은 영원히) 도래하지않은 이미지를 부르는 호명이다.
그렇게 노래하는 고다르와 밥 딜런. 나는 이 두 사람을 같은 해에 ‘발견’했다. 그런 다음 그들의 새로운영화 혹은 노래를 기다리면서 살았다. 때로는 실망했고, 때로는 의심했다. 하지만 그들은 나를 배신하지 않았다. 아니,그러기는커녕 항상 나보다 훨씬 멀리 나아갔다. 그걸 뒤쫓아가면서 나는 배우고 또 배웠다. 그 안에 있는 앎의 비밀. 아니 차라리 세계라는 비밀이라고 부르고 싶어지는 기호. 지치지 않는 사랑. 앎과 사랑 사이를 연결하는 긍정. 그 사이(entre). 그 둘이연결될 때 배움의 느낌이 불러일으키는 상위형식의 비밀에 대한 간절한 궁금증. 그 형식 안에서 활동하는 나의 능력의 한계가안겨주는 슬픔. 그러므로 그 슬픔을 이겨내기 위해 <사랑의 찬가>와 <아워뮤직>을 보면서, 혹은 밥 딜런의<모던 타임스>를 들으면서 또 배운다. 이것이 이번 이른 가을의 두 번째 배움이다.

 

디지털카메라의 놀라운 클로즈업 <퍼펙트 커플>

그리고 종로에서 짧은 축제가 있었다(당신이 이 글을 읽을 때는 이미 끝났다. 멀어서 오지 못한 것은유감이지만, 게을러서 보지 못한 것은 내 잘못이 아니다). 일곱 번째를 맞는 서울영화제는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겠지만 나는 올해가 가장 재미있었다. 나는 영화가 지나치게 자기를 뽐내거나(실험영화들), 반대로 너무 겸손해할 때(미디어로서의 영화들) 흥미를 잃는다. 물론 그걸 더 좋아할 수도 있다. 나는 지금 취향을 말하는 중이다. 영화는 세상과의 긴장을 유지할 때, 그래서 그 둘사이의 관계에 내가 개입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내 생각이 활동할 수 있는 거리를 확보한다. 결국 영화는 어떤 자세로 세상을 보느냐의 문제이다. 그래서 어떤 자세를 선택할 때 거기서 진실을 볼 수 있느냐는 선택의 내기이다. 영화와 세상 사이를 중재하는자세와 거리.

스와 노부히로의 <퍼펙트 커플>과 알렉산더 소쿠로프의 <더 선>은 동시상영처럼 볼필요가 있다. 할 수만 있다면 여기에 마이클 만의 <마이애미 바이스>를 더하고 싶다. 본 것은 내게 매우 큰 의미가있었다. 스와와 소쿠로프는 자기들이 가고자 하는 방향이 전혀 다른 영화를 만든다. 스와 노부히로는 지금 막 이혼을 결심한 부부의이틀간의 감정적인 위기를 다룬다. 소쿠로프는 1945년 8월15일, 일본이 무조건 항복을 한 다음 유폐되어 살고 있는 천황히로히토를 다룬다(그리고 마이클 만은 마이애미의 두 형사를 다룬다). 이 세개의 인물 다루기 사이에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셋다 디지털카메라로 인물에게 다가간다. 그래서 필름 카메라로 다가갈 수 없는 거리까지 바짝 다가간다. 그 놀라운 클로즈업이 전혀다른 내용, 전혀 다른 스타일, 전혀 다른 인물에게서 동시에 벌어진다. 이때 클로즈업은 카메라와 얼굴 사이에서 그 이전에 한번도본 적 없는 거리를 창조한다.

<퍼펙트 커플>

나는 이미 마이클 만에 대해서는 말했다(<씨네21> 제568호, ‘눈물과 매직 아워’).그러므로 그 뒤를 이어 스와 노부히로, 그냥 간단하게 말하면 <퍼펙트 커플>은 로셀리니의 <이탈리아여행>을 파리 버전으로 리메이크한 영화다. 스와 노부히로는 계속해서 그런 식으로 영화를 만들 생각인 것 같다. 세 번째영화 <H 이야기>에서는 알랭 레네의 <히로시마, 내 사랑>을 자기 방식으로 리메이크했다. 그런데 이영화를 알랭 레네에게 보내자 레네는 “편집이 되지 않은 영화를 왜 내게 보냈는가?”라고 반문했다. 이 우스꽝스럽게 들리는 일화는스와 노부히로 스타일을 간단하게 설명해준다. 스와 노부히로는 영화에서 데드 타임을 그냥 내버려둔다. 그는 로셀리니보다는 존카사베츠에 더 가깝다. 그래서 장면은 때로 배우에게 맡겨지고 종종 한없이 이어지기도 한다. 영화는 1시간44분 동안 고작44숏이다(중간에 나오는 검은 자막은 셈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이게 한신을 한숏으로 찍은 것은 아니다. 대부분 그렇게 찍기는했지만 그러나 갑자기 장면을 나누기도 한다. 그리고 마지막에 같은 방을 쓰다가 다른 방으로 옮긴 아내 마리를 찾아 남편니콜라스가 찾아간 장면에서 갑자기 숏을 나누기 시작한다. 말하자면 스와 노부히로는 고정된 카메라로 롱테이크로 찍을 때는 소통의단절을 보여주다가 그들의 대화가 소통될 때 갑자기 나누기 시작한다. 하지만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이 영화의 비밀은 롱테이크나멈춘 카메라에 있지 않다. <퍼펙트 커플>에서 이 두 사람의 감정을 따라가는 것은 카롤린 샹페티에의 카메라와 그카메라와 거의 혼연일체가 된 동시녹음 기사 장 클로드 로뢰가 들려주는 미세한 소음들이다. 카메라는 멈춰 서 있는데 사운드의붐마이크는 이리저리 옮겨다니고 있다. 그래서 어떤 장면은 마치 후시녹음을 한 다음 폴리를 한 것처럼 제한적이고, 어떤 장면은 카메라는 이쪽에 와 있는데 붐마이크는 저쪽에 있어 카메라와 붐마이크가 숏과 상대 숏의 역할을 한다. 가장 놀라운 장면은 마리가로댕의 조각이 있는 미술관에 들를 때다. 그때 장면은 모두 실내에서 진행된다. 그런데 이 실내를 두개의 전시 공간으로 나누고있는데, 그때 카메라와 붐마이크는 공간이 오픈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프레임 안에 누군가가 들어와야만 그 존재를 인정한다.말하자면 장소가 지닌 물질성과 붐마이크가 갖는 질료성 사이에서 카메라가 그것을 중재한다. 그 안에서 스와 노부히로는 이혼을 앞둔불안한 마리가 불멸의 예술품으로 남아 있는 로댕의 조각상이 주는 영원성과 우연히 어린 아들과 함께 거기를 찾아온 옛날 고등학교동창이 자신의 아내가 이미 죽었다는 것을 알려주는 삶의 소멸 사이에서 겪는 심리적 동요를 끌어낸다. 영화는 두번 아내 마리와남편 니콜라스의 얼굴을 아주 가까이까지 다가간다. 그런데 카메라가 너무 가까이 가서 표정을 알 수가 없는 얼굴을 보여준다. 그때이 얼굴은 말 그대로 풍경처럼 보인다.

 

일본 천황 히로히토를 다룬 <더 선>

세 번째. 알렉산더 소쿠로프는 매우 난처한 세명의 인물의 연작을 찍었다(아마도 이 연작은 계속 이어질지도 모른다). 그 하나는 레닌을 다룬 <몰로크>이고, 그 다음은 히틀러를 다룬 <타우르스>이고, 그리고<더 선>은 일본 천황 히로히토를 다룬다. 세 사람의 공통점은 그들의 결정이 정말 많은 사람을 죽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을 다루면서 소쿠로프는 그런 역사적 책임에 대해서 아무런 관심이 없다. 이미 전쟁은 끝났고, 히로히토는 작은 도서관에 유폐된 채 지낸다. 마치 채플린처럼 우스꽝스러운 그의 뒤뚱거리면서 걷는 모습은 미군 점령관 맥아더의 웃음거리가 되기도 하지만(그는 중얼거린다. “내가 저런 인물을 또 어디서 보았을까?”), 여전히 히로히토를 모시는 가신들은 그를 ‘태양의 신’으로생각한다. 전쟁에 진 것은 인간인 신하들의 책임이며, 여전히 신인 동시에 일본 그 자체인 히로히토에게 누가 될까 인의 장벽을친다. 그래서 히로히토가 국민들에게 알리는 담화문으로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전쟁에 책임을 진다”는 녹음을 한 젊은 남자는 그녹음과 함께 할복자살한다. 그때 소쿠로프는 시종일관 이 영화를 거의 꺼져버릴 듯한 어둠 속에서 진행한다. 그래서 이미지들은‘일본의 태양’인 히로히토가 마치 금방이라도 꺼져서 어둠이 세상을 삼켜버릴 것처럼 희미한 빛과 거의 화면 전체를 지워가는그림자로 가득 차 있다. 사실 그 태양은 꺼져야 한다. 그러나 히로히토는 희미하지만 여전히 그의 얼굴을 온전히 드러내는 유일한빛이다. 이 영화에서 다른 등장인물들은 얼굴의 일부가 그림자들이 갉아먹은 것처럼 지워져 있지만 히로히토의 얼굴은 항상 온전하게보인다. 신과 인간의 경계에 서 있는 이 인물을 소쿠로프는 자신이 직접 카메라를 들고 따라간다. 그때 소쿠로프는 ‘감히’히로히토의 얼굴을 아주 가까이 다가가서 신이 가질 수 없는 삐죽대는 뻐드렁니와 주름 잡힌 피부를 거의 만질 것처럼 본다. 거기엔어떤 신화도 없다. 그러나 그렇게 다가가서 인간의 얼굴을 드러낼 때, 그래서 그가 괴물이 아니라는 것을 볼 때조차, 그를 신으로 남겨놓기 위해 그 주변의 인물들이 기꺼이 복종하고 심지어 할복자살을 할 때 히로히토는 그가 염원하는 인간의 자리에 내려오지못한다. 소쿠로프는 종종 히로히토의 얼굴을 바짝 다가가서 찍지만 <더 선>은 소쿠로프가 쓰고, 연출하고, 찍었다.거의 폐소 공포증에 가까운 이 영화에서 이따금 히로히토의 상상을 따라 도쿄가 폭격당하는 장면이 꿈결처럼 펼쳐진다. 그때 불바다가된 도쿄거리를 날아다니는 것은 마치 헤엄을 치는 듯한 물고기들이다. 그 기괴한 장면들은 이 태양의 신이 바다에서 온 것은아닐까, 라는 환상에 빠질 만큼 소름 끼친다. 한 가지 더. 영화 중간에 나오는 바흐의 <무반주 첼로조곡 5번>은로스트로포비치의 연주이다. 내가 이 위대한 대가의 연주를 평가할 자리에 있지는 않지만 나는 이 연주를 좋아하지 않는다.

 

하루 종일 봐야 하는 10시간30분짜리 영화 <필리핀 가족의 진화>

올해 서울영화제에서 백지수표를 위임받고 거기에 다섯편의 추천작을 써넣었다. 그중 한편이 라브 디아즈의<필리핀 가족의 진화>이다. 우선 이 영화를 보려면 그날 하루를 포기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 영화의 상영시간이10시간30분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반문할 것이다.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가? 그건 그날 하루 당신이 무엇을 하느냐에 달려있다. 하지만 나는 이 영화를 로테르담에서 처음 보았을 때 그 다음날 아무 영화도 보지 않았다. 그냥 하루 종일 이 영화를 다시생각했다. 간단한 줄거리. 할머니와 그녀가 낳은 남매가 있다. 오빠는 세딸을 남겨두고 아내가 도망갔으며, 여동생은 돈 벌러마닐라에 갔다가 강간을 당한 다음 미쳐서 쓰레기장에서 자기의 아들이라고 믿는 아이를 주워서 고향에 돌아온다. 마르코스 대통령독재치하의 필리핀은 이 작은 시골에서도 혁명군과 정부군의 크고 작은 전투가 이어진다. 오빠는 골치 아픈 문제를 피하기 위해서혁명군 편을 들면서도 빨치산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일이 문제가 되어서 매를 맞은 그는 한쪽 다리를 못 쓰게 된다. 오빠가돌아왔을 때 여동생이 동네 남자들에게 납치되어서 강간을 당한 다음 매장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녀가 주워온 소년은 총을 구한다음 그들을 쏘아 죽이고 고향을 떠난다. 그런 다음 이야기는 이제 오빠의 집과 소년이 떠돌다가 흘러들어간 집을 오가면서진행된다. 오빠는 소년을 대신해서 감옥에 갔다 온 다음 소년을 찾아서 필리핀을 떠돌다가 도둑이 된다. 오빠는 그러면서 마닐라의범죄조직에 연루된다. 그러는 동안 고향에서 오빠의 어린 딸을 노리는 시장은 계속 할머니를 찾아와 어린 그녀를 첩으로 달라고조른다. 한편 소년이 머무는 집에서 그를 양아들로 받아들인 아버지는 금맥을 발견하겠다고 세 아들과 함께 정글을 헤매다가 그의아들 중 한명이 금을 둘러싼 갈등 끝에 옛 친구의 부하들에게 맞아 죽고 실종된다. 아버지는 복수를 맹세한다. 그러는 동안독재정권에 저항하기 위해 마닐라로 돌아온 민주인사 베그니노 아키노는 공항에서 총에 맞아죽고, 그의 아내 코라손 아키노가 투쟁을계속한다. 마르코스는 실각하지만 군부가 재집권을 하고, 민중의 삶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는다. 필리핀 가족들은 아직도 투쟁중이다.

좀더 놀라운 이야기는 <필리핀 가족의 진화>가 5시간30분의 <남부, 바탕>,그리고 9시간의 <예레미아>와 함께 3부작으로 이루어진 영화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하루 종일 쉬지 않고 보아도 다보지 못한다. 나는 두 번째 이야기만을 보았을 뿐이다. 라즈 디아브는 필리핀 근대사라고 할 이 거대한 서사를 8년에 걸쳐찍었다. 문제는 영화 속의 인물들은 정말 나이를 먹고, 한편으로 베타 캠으로 시작한 촬영은 DV로 바뀌면서 영화의 화질이바뀐다! 게다가 필리핀 근대사의 사건들을 발췌한 텔레비전 화면들도 그냥 사용하였다. 말하자면 기술적인 완성도로 본다면 일부는마치 아마추어가 찍은 것처럼 약점이 많고, 무엇보다도 사운드의 문제는 부분적으로 너무 손실이 커서 일정 수준에 맞춰놓고 상영하면중간에 안 들리다가 갑자기 큰소리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흑백으로 촬영된 이 영화는 보는 사람을 움직인다. 단지 그것이 정치적인문제를 다루거나 혹은 역사를 건드려서가 아니라 여기에는 새로운 화법이 있다. 라즈 디아브는 역사와 가족사를 단순하게 도식적으로병렬시키지 않는다. 그러기는커녕 필리핀의 근대사는 숨 가쁘게 바뀌고 있는데도 거의 나라 끝에 위치한 것 같은 이 두 가족은자본주의와 봉건적 관료제, 반근대적인 인습과 이기적이고 야만적인 개인들의 욕심, 정치를 내세운 교활한 잇속, 민중투쟁을 하다가독재 권력을 타도하는 순간 권력으로 변모하는 해방전선의 동지들, 그 속에서 부서져가는 여자들, 여자들 사이의 착취, 그 악순환의고리들이 어떻게 필리핀이라는 나라를 구성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때로 이것은 마치 현장에 취재나온 기자의 생방송 중계처럼진행되기도 하고, 때로는 거의 시적인 실험영화처럼 DV를 이용한 무한정한 롱테이크로 진행되다가, 마닐라의 범죄 소굴에서는장르영화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들이 산만하기보다는 인물들의 사건 안에서 피와 살을 부여하는 것은 이것이 누가 보아도전투적으로 연출되었다는 것을 알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앙드레 바쟁은 영화를 보지 말고 영화를 만든 과정을 보라고 충고했다.만일 라즈 디아브의 <필리핀 가족의 진화>를 영화사의 계보에 놓아야 한다면 오페라풍의 네오리얼리즘 영화를 만든 루키노비스콘티의 <대지는 흔들린다>로부터 이어지는 긴 미학적-사회적-정치적-여정의 21세기 버전일 것이다.

사적인 고백. 그런데 이 영화를 추천한 다음 의기양양해하다가(*^^*) 갑자기 그날 아침 아, 어쩌면 그상영시간에 질려서 아무도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래서 벌떡 일어나 달려나갔다. 그리고 영화관에도착했다. 나를 놀라게 만든 것은 그 자리에 28명의 관객이 각오라도 단단히 한 것 같은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나도 그 곁에앉았다. 이걸 처음부터 다시 본다는 것이 심리적으로 힘들었지만 나는 그들 곁에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사람이 중간에가고, (중간에 세번의 휴식이 있었다) 신기한 건 중간부터 보기 시작한 몇 사람이 있었다. <필리핀 가족의 진화>를본다는 것은 영화가 주는 관습과 싸우면서 투쟁적으로 획득하는 자유로운 리듬의 쟁취의 일부이다. 오늘날 대부분의 영화는2시간이라는 상영시간에 굴복해 있다. 그렇게 되면 어떤 이야기를 하건 그 시간 안에 풀어내야 하는 시간의 물리적 경제성 앞에굴복할 수밖에 없다. 어떻게 모든 이야기가 2시간 안에 해결될 수 있는가? 그런데 그럴 필요가 없다고 결정하는 순간 영화의시간적 경제성이란 무효가 되는 것이다. 나는 이 28명의 투쟁적인 관객에게 동지들, 이라고 외치고 싶어진다. 단 한번의 상영.우리는 2006년 9월11일 월요일, 하루 종일 함께 있었다. 나에게 영화 친구란 말하자면 바로 그 자리에 있었던 분들이다.

 

지아장커에게 배우다

<스틸 라이프>

마지막 수다. 내가 가을이 막 시작되려는 9월의 첫 번째 주말에 들은 기쁜 소식은 지아장커가베니스영화제에서 <스틸 라이프>(三峽好人)로 황금사자상을 받았다는 뉴스였다. 물론 나는 아직 보지 못했다. 그걸읽으면서 문득 구정이 쓴 글의 마지막 문장이 떠올랐다. 구정은 베이징전영학원에서 문학과 영화이론으로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그런다음 지아장커 영화의 시나리오를 함께 쓰고 그의 조연출이 되었다. 그는 지아장커를 처음 만났을 때를 회고하는 글을 쓴 적이있다. “1997년, 우리는 졸업할 때가 되었다. 친구들은 각자 앞길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나는 대학원 진학을 준비하고 있었다.지아장커는 여전히 영화를 찍고 싶어했으나, 아무런 대책없이 그와 함께할 친구는 없었으며, 모임은 자연스레 해체되었다. 조금도슬프지 않았고, 조금도 기쁘지 않았다. 시간은 벌써 이렇게 흘렀고, 우리는 생계의 부담을 지게 된 것이다. 우리는 서로 바라볼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도 몰랐다. 졸업하기 4개월 전, 지아장커가 돈을 구해왔다. (중략) 지아장커가 나와왕홍웨이(<소무>의 주연)를 찾아왔다. 우리 같이 영화를 찍자. 구정, 네가 조감독을 맡아주고, 왕홍웨이, 네가주연을 맡아줘. 역시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야. 우린 거절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영화를 찍으러가니까.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를 찍는거였으니까. 우리는 결코 거절할 수 없었다.”(구정, ‘우리 같이 영화 찍자’, <지아장커, 중국영화의 미래>) 그영화가 <소무>이다.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 그런 다음 1980년대 중국을 통과하는 가무단 이야기<플랫폼>을 찍었고, 다퉁에 사는 두 소년의 이야기를 다룬 <임소요>를 그렸고, 베이징 테마파크에서 일하는청춘을 그린 <세계>를 찍었다. 그리고 10년이 지났다. 지아장커는 여전히 중국 사회주의 안에서 살아가야 하는 보통사람들의 이야기를 찍고 있다. 그는 아주 멀리 왔지만, 그러나 항상 그 자리에 있다. 나는 그것을 지아장커에게 배운다. 이것이막 시작하는 가을에 세 번째 배움이다. 오늘 밤에는 그에게 축하 메일을 쓸 생각이다. 그렇게 이 수다스러운 일개 영화평론가의가을밤이 깊어가고 있다. 당신은 오늘 밤 누구에게 메일을 쓰실 생각이십니까? (후렴) 지금은 가을이니까.

글: 정성일 영화평론가

– 씨네21 2006.09.01 ‘편집장이 독자에게’ 김기덕의 퍼포먼스

 

[편집장이 독자에게] 김기덕의 퍼포먼스

2006.09.01 08:00

 

김기덕 감독의 몇 차례 발언 때문에 세상이 시끄럽다. <시간> 시사회 뒤에 열린 기자회견에서 시작해서 <100분토론>을 거쳐 사죄문 소동까지,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김기덕 감독이 <연합뉴스>에 보낸 사죄문의전문을 보지 못해 그의 진의를 파악하기는 어렵지만 보도된 내용이 맞다면 그걸 사죄문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일종의 코미디라는 생각이든다. 그래, 당신들이 맞고 내가 틀렸다, 당신들을 우롱해서 죄송하다, 는 말이긴 하지만 그 안에 담긴 자학과 자책은 김기덕의진심이라고 믿기 어렵다. 정말 김기덕 감독은 자신을 “열등감이 낳은 괴물”이라고, 자신의 작품을 “모두 쓰레기”라고 생각할까?역설에 관한 약간의 상식을 동원한다면 그렇지 않다는 걸 짐작할 수 있다. 나는 그의 글을 사죄문이 아니라 차라리 격문이라고생각한다. 자신을 쓰레기로, 괴물로 이름 붙인 사회를 비판하는 격문.

김기덕 감독

“쓰레기통을 뒤지면 향기가 난다.” 언젠가 김기덕은 자신의 영화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실제로 그는<악어>에서 <나쁜 남자>에 이르는 영화들에서 사회의 쓰레기로 취급될 만한 인물들을 주인공으로 등장시켰다.그런 밑바닥 인생에서 숭고함을 발견하는 것이 김기덕 영화의 특징 가운데 하나였다. 따라서 자신의 영화를 쓰레기라 부르는 것은김기덕의 자기 부정처럼 들리지 않는다. 쓰레기에서 예술을 만드는 감독에게 쓰레기와 예술의 이분법은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김기덕은 우리 안에 존재하는 보이지 않는 괴물을 끄집어내는 감독이기도 하다. <사마리아> 개봉 때 했던 인터뷰에서그는 이렇게 말했다. “사회가 어떤 그물망을 던져서 그물에 걸리는 사람은 악이고 빠져나가는 사람은 선으로 정리될 뿐이다.그물코에 따라서 다 걸린다. 이 사회의 법과 제도는 그물코다. 그물코가 좁으면 걸리고 넓으면 빠져나오는 것뿐이다.” 단순히말하면 김기덕 영화는 그물에 걸려든 괴물로 시작해서 실은 그물 자체가 괴물이라는 것을 폭로하는 방향으로 진행되는 영화다. 따라서그가 스스로를 괴물로 명명한 것은 김기덕을 괴물로 만드는 사회의 그물망을 고발하려는 의도처럼 보인다. 당시 인터뷰에서 그는이렇게 덧붙였다. “그렇다고 이렇게 살지 말아야 한다고 말하는 건 아니다. 내 영화는 한번도 그런 주장을 한 적이 없다. 이게우리 모습이 아니냐. 극장에서 우리 모습을 한번 확인하고 살아가자는 거다.” 그때랑 달라진 게 있다면 이번엔 극장이 아니라인터넷과 언론을 통해 그걸 확인했다는 것일 뿐이다. 어쩐지 나는 이번 사태가 김기덕의 행위예술처럼 보인다. 그의 영화보다 몇십배많은 관객이 찾아와 관람평을 남긴 퍼포먼스.

그의 신작 <시간>은 남자의 사랑을 회복하고 싶다는 욕망에 사로잡힌 여자의 이야기를 다루고있다. 만날 똑같은 얼굴 지겹지 않아, 라고 묻는 이 여자가 사랑을 되찾기 위해 선택한 방법은 자기 얼굴을 고치는 것이다.새로운 얼굴로 나타난 여자는 남자를 다시 차지한 뒤 울먹이며 관객을 향해 말한다. “제 뜻대로 됐네요. 그런데 제가 행복해보이나요?” 김기덕의 사죄문이라는 걸 접하면서 나는 <시간>의 이 장면을 떠올렸다. 김기덕의 글을 이 장면의 대사로바꾸면 이렇게 될 것이다. “당신들 뜻대로 제가 괴물이 되고 쓰레기가 됐네요. 그래서 당신은 행복해졌나요?” 대중의 사랑에목말랐던 그가 이제 더이상 구애를 포기하고 절망적 제스처로 그렇게 말하는 것 같다. 이게 나만의 착각이고 오해일까? 그래도상관없다. 나는 그의 글이 사죄문도, 은퇴선언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니, 사죄문이나 은퇴선언으로 읽어선 안 된다고 믿는다.제발 아직 죽지 않은 사람을 서둘러 묻고 제사 지내려 들지 말자. 그의 진심이 무엇이든 나는 그의 글을 오직 김기덕의 퍼포먼스로받아들인다. 그래야만, 그가 돌아올 수 있다.

글: 남동철

원문 : http://www.cine21.com/Magazine/mag_pub_view.php?mm=005003005&pageNo=1&mag_id=41176

– 프리미어 2006.09.01 객소리

객소리

2006-09-01

정기영 okbari@premiere.co.kr

예전에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만일 영화가 없어진다면?’ 당시만 해도 영화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던 시절이었다. 영화는 철저히 세상을 반영해야 한다고믿었다. 현실과 자신을 반성하는 매력적이고 유용한 도구라고 믿었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그래서 세상을 변화시키는 무기라고믿었다. 거창하게 비유하자면, 영화는 내게, 브라질의 교육사상가 파울로 프레이리의 ‘페다고지’ 같은 거였다. 페다고지 교육의궁극적인 목표는 인간해방이다. 페다고지는 교육자가 피교육자에게 지식을 떠먹여주는 이분법적 교육을 거부한다. 아는 사람과 모르는사람의 전 인격적인 소통을 추구한다. 교육은 피교육자가 자신과 현실을 반성적으로 인식하는 데서 출발한다는 것이다. 나는 영화도그렇다고 믿었다. 수용자로 하여금 자신과 현실을 반성적으로 사고하게 하고 그래서 변화시키는 것이라고 믿었다. 지금 생각하면‘오버’였다. 지나친 오버였다. 요즘의 영상세대들이 들으면 코방귀를 뀔 일이다. 이를테면 이렇다. 프리미어의 막내 동현이와민경이는 <천하장사 마돈나>를 보고 동구(류덕환)에게 빠져버렸다. 그들에겐 동구의 춤만으로도 ‘짱’이다. 동구의 뚱보친구들이, 그들의 퍼포먼스가 마냥 귀엽다. 동구의 판타지(마돈나)에 자연스럽게 자신을 이입시킨다. 나는 다르다. 내 마음은 자꾸동구의 지리멸렬한 가족사로 향한다. 폭력적 권위와 무능으로 상징되는 동구의 아버지가 자꾸 눈에 거슬린다. 그 징글징글한 현실이동구의 판타지로 향하는 길목을 막고 서 있다. 민경이는 <천하장사 마돈나>의 ‘동구’에게 아낌없이 별 4개를던졌지만, 나는 동구의 그 지리멸렬한 가족사 때문에 민경이의 별에서 2개를 덜어내고 싶다. 우리 시대의 아버지를 너무 전형적이고위악적으로 그렸기 때문이다. 만일 어떤 영화를 두고 동현과 더 이상 소통하기 어려운 때가 오면, 영화잡지 편집장을 그만둘 것이다.

요즘 나는 영화에 시들해졌다.

영화는 영화일 뿐이다. 현실을 바꾸지도 못한다. 예전엔 때로 위로라도 됐지만 지금은 그도 아니다. 요즘 내게 영화는 다른 의미로다가온다. 이를테면 이렇다. <괴물>보다는 <괴물>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현실이 영화보다 훨씬 흥미롭다.영화 ‘안’ 보다는 영화 ‘밖’에 더 마음이 가는 것이다. <괴물>이 ‘괴물’인지에 대한 논란이 한창이다. 한방송사는 <괴물>을 우려내 온갖 육수를 짜내더니, 마침내 ‘100분 토론’이라는 진국을 만들어냈다.<괴물> 신드롬에 한창 열을 올리더니, ‘<괴물> 싹쓸이’를 주제로 토론마당을 벌인 것이다. 이 프로그램은의제부터 잘못 설정했다. 제목의 선정적인 속성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 토론의 전선(戰線)은 <괴물>이아니었다. 핵심은 한국 영화산업의 독과점 구조였다. <괴물>은 독과점의 ‘원인’이 아니라 독과점의 ‘결과’일 뿐이다.더욱 흥미로운 사건은 토론 이후에 터져 나왔다. <괴물> 관계자들에 대한 사과 끝에, “내 영화는 쓰레기”라고 김기덕감독이 선언한 것이다. 당혹스러웠다. 다시 여론은 들끓고 있다. 심지어 김기덕의 돌출발언은 <시간>의 개봉을 앞둔그의 노림수라고 얘기하는 사람도 있다. 적어도 내가 아는 김기덕은 그럴 사람이 아니다. 자신의 모든 영화가 쓰레기라는 그의고백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일단 세상에 나와 관객들과 소통한 영화는 감독만의 것이 아니다. 그건 관객의 것이기도 하다.

김기덕 감독. 나는 그가 다시 관객들과 소통하기를 바란다.

원문 : http://www.premiere.co.kr/magazine/magazine_think_datail.asp?OidThread=34&page=1

– 프리미어 2006.09.04 객소리

<괴물>은 괴물이야

2006-09-04

글 _ 강한섭(서울예대 영화과 교수)

<괴물>이 난리다. 한국영화 흥행 기록을 모조리 갈아치우고 있다. 그러자 반대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누구는 관객이 선택한영화라 하고, 한편에선 관객을 독점한 영화라고 한다. <괴물>을 독과점의 산물이라고 주장하는 강한섭 교수의 주장을소개한다. 동의하는가? – 편집자

<괴물>이 전국 620개의 스크린에서 개봉되었다. 지금 대한민국에는 1600여 개의 스크린이 있다지만 지방 소도시의군소 극장이나 영업이 사실상 중단된 극장을 빼면 1300여 개의 스크린이 정상적으로 영업 중이다. <괴물>은 전체스크린의 거의 45%, 즉 절반에 가까운 스크린을 점령한 것이다. 좌석수를 기준으로 따지면 68%의 독과점을 기록했다. 실로경악을 금치 못할 정도로 어리석은 시장 독과점이 자행된 것이다. 전체 좌석수의 68%, 거의 70%를 독과점 했다는 것은 하나의스캔들이다.70%의 독과점! 아직도 이 수치에 놀라지 않는 강심장들이 많다. 70%의 독과점을 한국 영화산업의 역동성으로 평가하는 참으로 대범한심성을 가진 영화 전문가들도 있고, 영화가 너무너무 재미있어 관객들이 열광하니 스크린 수를 많이 차지하는 것이 자본주의 사회에서당연한 것 아니냐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그러나 이 수치를 극장이 아니라 도서 유통 시장으로 옮겨놓아 보자.

도시의 중심가에 위치한 한 대형서점은 그 넓은 매장에 총 10만 권의 도서를 진열할 수 있는데 그중 7만 권을 모두 하나의 책‘괴물’로 채워 넣었다. 책의 저자는 소위 베스트셀러 작가이고 출판 전에 세계적으로 유수한 도서 전시회에 출품되어 해외언론으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그래서 책의 출간 이전부터 예약 주문이 밀려들었고 상업적 성공이 예견되었다. 그래서 종교 등등의모든 서가에 꽂혀 있던 수많은 고전과 전문서적들을 뽑아내고 그 빈자리를 베스트셀러 ‘괴물’로 대체했다. 신간들을 서점의 후미진어두운 구석에 구색용으로 배치했다. 다음 날 아침, 서점의 문이 열리고 책을 사랑하는 독서인들이 매장으로 들어갔다. 과연손님들의 반응이 ‘와! 신난다’였을까, 아니면 ‘악! 짜증나’였을까?

필자는 <괴물>을 재미있게 보거나 좋은 영화로 생각하는 사람들의 의견을 존중한다. 그러나 나는 이 영화의 드라마와 영상을 즐기지 못했다. 탐욕스러운 스크린 독과점에 더욱 공포감을 느꼈다.

대박의 제1원인은 스크린 독과점이다

<괴물>의 흥행 대박 원인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다. 영화의 재미, 메시지, 기술적 완성도, 맨 파워 등등 영화 전문가들은물론이고 일반 관객들까지 저마다 흥행의 이유들을 제시하고 있다. 흥행 성공 정도가 아니라 <괴물>과 같이 1000만아니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우려면 위에 열거한 여러 이유들이 중층적으로 작용하는 즉 자본-작품-시대상황이 서로 상승작용을 하는시너지 효과를 내야 한다. 영화가 문화면을 넘어 경제면을 거쳐 사회면으로 진출하려면 즉 사회적 현상이 되려면 시대정신과 만나야한다. 사람들이 현실에서 맹렬하게 요구하는 그러나 충족되지 않아 폭발 직전인 무의식 속에 응축된 에너지와 만나야 한다. 바로 이욕구불만의 에너지가 어두운 극장 속 영사기로부터 분출하는 일종의 빛의 제사를 통해 주술적으로 충족될 때 1000만 영화가 탄생할수 있다. <괴물>이 이런 집단적 무의식과 만나 역사에 기록될 영화가 된 점에 대해 봉준호 감독이나 최용배 제작자에게진심으로 축하를 보낸다.

<괴물>은 대박영화가 갖추어야 할 몇 가지 필수 조건을 가지고 있다. 최고의제작비, 상대적으로 새로운 기획과 완성도, 노무현 정권의 정치, 경제, 사회 실패가 야기한 국가권력의 공동화 현상, 그리고시민들의 불만과 불안감. 그러나 현 단계 한국영화 시장의 흥행 변수에게 가장 중요하고 결정적인 변수는 배급력과 그것을 지지해주는자본의 힘이다.

즉 <괴물>이 성공한 가장 중요한 이유는 스크린 독과점이다. 필자는 <괴물>의흥행이 한국영화와 문화의 다양성을 저해하는 것은 물론이고 한국 영화시장의 확대와 산업의 발전에도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올것이라고 생각한다. 얼마 전에 김기독 감독이 <괴물>의 흥행에 대해 언급한 내용이 세간에 화제가 되었는데, 필자는이렇게 말하고 싶다. “내 안의 어린이는 신나지만, 내 속의 어른은 화가 나고 슬프다.”

스크린 독과점은 독약이다

스크린 독과점에 의존하여 대박을 터트리는 영화가 한국 영화시장의 확대와 산업의 발전에 도움을 준다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경제학원론의 목차라도 일별한 사람이라면 시장 독과점이 시장을 확대하기는커녕 중장기적으로는 시장을 축소시킨다는 사실을 증명이 필요 없는경제학 원리로 생각한다.

한국 영화산업의 통계도 이러한 사실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즉 영화 독과점이 점차 강도를더해가면서 극성을 부리기 시작한 1999년 이후 오늘 이 시간까지 한국 영화산업에는 정부와 영상투자조합 그리고 투자 리스크를두려워하지 않는 다양한 민간자금들이 6000억 원 이상 투자되었지만, 한국 영화산업의 규모는 확대되지 못하고 정체상태를 보이거나심지어 축소되고 있다.

영화시장은 크게 극장의 박스오피스와 비디오의 도소매 시장으로 구성된다. 요즘과 같은 시장독과점을 통한 소위 한국영화 붐이 시작되기 전인 1990년대 중반의 한국 영화시장의 규모는 극장 박스오피스 2500억 원과비디오 시장 1조 2000억 원(도매 2000억 원 + 소매 1조 원)을 합해 약 1조 4500억 원이었다. 이러한 거대한시장이 붐의 기간 중 최대의 극장 관객을 기록한 2004년에는 오히려 1조 4000억 원으로 축소되었다. 극장관객이 5000만명에서 1억5000만 명으로 3배 증가하여 9000억 원의 연매상을 기록했지만 비디오-DVD 시장이 그만 5000억 원(도매2000억 원 + 소매 3000억 원)으로 쪼그라들었기 때문이다. 필자가 전에도 이러한 사실을 지적하자 증거를 제시하라느니,1990년대 중반의 비디오 시장은 이상과열로 정상적이지 않았느니, 비디오 시장의 규모를 측정할 때 소매시장은 제외해야 하느니말이 많았다. 통계 증거는 문화관광부의 웹 사이트에도 있고 비디오 사업자들의 단체인 한국영상협회의 자료에도 있다. 그리고한국영화 제작가협회와 재벌 영화메이저회사의 자체 자료에서도 이러한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한 가지만 덧붙이면 위의 수치는필자가 여러 자료와 통계들을 종합하여 그 중간치를 잡은 것이다.

박스오피스보다 4배 이상 컸던 비디오 시장이절반으로 축소되는 상황에서 박스오피스만 2배 이상 커지면 전체 시장은 확대될까, 축소될까? 변수가 하나인 1차 함수는 보인다.그래서 사람들의 감정을 뜨겁게 만든다. 그러나 변수가 2개 이상인 다함수 방정식은 눈이 아니라 머리로 계산해야 한다. 골치아프다. 게다가 이 통계에 1995년과 2005년 사이 10년간의 물가상승률 41.4%를 추가한다면 최근 몇 년 동안 한국영화산업은 붐이 아니라 심각한 불황을 겪고 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소위 한국영화 붐 , 전성시대는 단순한 시지각의 착시현상일수도 있다. 그러면 왜 전체 영상시장의 크기는 축소되었을까? 바로 한국 영화산업을 선도하는 재벌 메이저 회사들의 어리석고근시안적인 무차별 시장 독과점 행위 때문이다. 생각해보라. 선진국들이 그냥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가치 때문에 시장 독과점을 규제,통제하고 이를 위반하는 기업에게는 엄한 법적 처벌을 하는 것이 아니다.

시장 독과점은 윤리적인 가치에도 반하지만그와 함께 시장의 발전에 ‘10의 이익’을 준다면 ‘90의 손해’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조금 난해한 경제학 이론을 통하지않고서도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아도 시장 독과점이 시장 축소로 이어진다는 판단을 쉽게 내릴 수 있다. 시장 독과점은 한마디로 말하면“내가 돈을 벌기 위해 다른 사람의 시장 진입을 막겠다”는 경쟁자 추방과 경쟁자 제한 행위다. 그래서 시장 독과점은 시장참여자의 수를 가능한 최소로 유지하면서 생산품의 질보다는 양, 소비자 복지보다는 소비자 최면에 더 시간과 돈을 투자하게 된다.영화시장 독과점 상황에서는 영화 작품의 창의성을 높이려는 노력보다는 그냥 규모를 확대하는 블록버스터 전략과 스크린 수를 확대하는독과점 전략, 그리고 소위 융단폭격이라고 불리는 대박 마케팅에 의존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한국영화의 창의성은 점점 떨어지게되고 결국 한국 영화시장은 성장하지 못하고 위축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독과점이 시장 축소로 이어지는 과정은이렇다. 그러나 한국 영화산업의 양상은 좀 다르다. 박스오피스는 엄청 커지고 여기에 한국영화의 시장 점유율은 최하 15%에서거의 50% 이상으로 성장했는데 왜 전체 영상시장의 크기는 쪼그라들었을까? 비디오 시장의 몰락 때문이다. 박스오피스보다 4배나컸던 비디오 시장이 절반으로 위축된 것이다. 그 이유에 대해 일반적으로 네티즌들의 불법 다운로드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외국은다 비디오 시장이 급격하게 증가했는데 우리나라만 축소되었다. 미국, 유럽, 일본이라고 인터넷망이 깔려 있지 않은 걸까? 또는외국사람들은 다 저작권법을 잘 지키는 훌륭한 민주시민일까? 아니다. 비디오 시장이 축소된 진짜 원인은 극장 티켓의 덤핑때문이다. 한동안 7000원의 입장권을 이동통신사와 신용카드사들이 멤버십 서비스란 명목으로 경쟁적으로 대납해주었다. 영화산업은판매요금과 시간이라는 두 개의 변수를 축으로 소위 배급 윈도우를 확대하여 매출의 극대화를 꾀하는 비즈니스 모델에 기초하고 있다.그런데 극장 가격 덤핑은 이 비즈니스 모델을 허물어버린 것이다. 비디오 시장의 위축은 당연하고 결국 전체 영상시장이 성장하지못한 것이다.

‘공룡의 긴 꼬리’ 법칙

1948년 미국 대법원은 ‘파라마운드 판결’이라고 알려진 아주 중요한 판결을 내린다. 즉 그때까지 메이저 할리우드 영화사들의 관행이었던제작-배급-상영의 3개 부문 수직통합 행위가 미국의 자유시장과 공정거래의 원칙을 위반했다는 결정이었다. 이 판결로 메이저영화사들은 제작-배급이나 상영 중의 하나만 소유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현재 한국의 메이저 영화사들은 제작-배급 -상영은물론 여기에 투자와 매니지먼트업까지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정말 지독한 독과점 행위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한국 영화 문화의 다양성은 파괴되고 중장기적으로는 영화산업과 시장도 축소되고 있는 것이다. 현재의 상황은 정말 참을 수 없을정도로 불공정하고 미련하다. 공멸의 시스템이 그 종말을 향해 한국 영화인과 관객을 태우고 질주하고 있다.

그리고요즘 각광을 받고 있는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경제학 이론으로 보더라도 스크린 독과점은 산업을 위축시키는 아주 미련한 정책임이다시 증명되고 있다. 그 이론이 바로 ‘롱 테일 법칙(Rule of Long Tail)’이다. 한국어로 번역하면 ”공룡의 긴꼬리 법칙”이다. 판매 상품과 판매량을 그래프로 그리면 공룡의 긴 꼬리 즉 롱 테일처럼 가파른 ‘L자 곡선’을 나타내게 된다.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일반적인 상식과는 다르게 긴 꼬리에 해당하는 매출이 몸통을 능가한다는 이론이다. 이러한 사실을 증거로온라인 서점으로 유명한 ‘아마존 닷컴’의 매출량이 동원된다. 즉 아마존사 수익의 절반 이상이 1년에 겨우 한두 권을 사는 80%고객에게서 나온다는 것이다. 인터넷의 발달로 80% 고객 관리에 들어가는 비용이 거의 제로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롱테일 법칙이 아날로그 경제 시대를 지배했던 소위 파레토 법칙을 대체할 이론으로 떠오른 것이다.

이 파레토 법칙은‘생산량의 80%는 20%의 우수 사원이 만든다. 그러므로 20%의 우수사원에게는 연봉 인상과 승진을, 80% 보통 사원은 연봉삭감과 구조조정 리스트에 올린다’는 마치 동물의 왕국을 지배하는 것과 같은 아날로그 세계의 법칙이다. 그러나 디지털 시대에는그리고 이 시대의 대표 상품인 문화상품의 시장에는 소수 20% 보다는 다수 80%가 더 중요하다.매출과 이익이 그 80%에서나오기 때문이다. 공룡의 긴 꼬리 법칙의 슬로건은 <괴물>과 같은 ‘싹쓸이-주자일소-끝내기 만루홈런’의 초대박‘소품종 대량판매(Selling More of Less)’가 아니라 ‘팀플레이-주자 더하기-내야안타’의 공동체주의적인‘다품종-소량판매(Selling Less of More)’다. <괴물>은 한국 영화산업이라는 생태계를 초토화하고 있다.

해결책은 무엇인가?

한국 영화진흥위원회의 정책은 한국영화의 산업화를 통한 ‘규모의 경제’와 예술영화, 독립영화의 진흥을 통한 ‘문화다양성의 확대’라는2가지 정책 목표의 동시 추진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두 가지 정책 목표가 다 실패하고 있다. 시장은 확대되지 않고축소되면서 잔뜩 거품만 끼여 있으며, 문화 다양성을 위해 예술극장을 만들고 국제영화제를 지원하고 다양한 작가, 독립영화를제작지원하고 있지만 많은 독립영화인들이 숨도 쉴 수 없다고 비명을 지르고 있다. 도대체 선의로 시작하고 야심 차게 추진된영화진흥위원회의 정책에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일까?

우선 한국영화 산업화 정책을 생각해보자. 산업화는 다른 말로 하면영화산업 메이저들의 ‘독과점 욕망 키우기 정책’이다. 산업화는 이렇게 선과 악의 두 가지 얼굴을 가지고 있다. 조심해야 한다.산업화와 함께 독과점 금지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지고 효과적인 정책이 집행되어야 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못했다. 다음 영진위는‘영화 문화 다양성 확대’를 위해 독립, 예술영화 제작과 예술극장의 지원에 나섰다. 이 정책이 충분했는지는 또 다른 지면에서따져야 한다(나는 이 문제에 대해 ”예술영화와 냉면”이라는 제목의 글을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단순한 제작 지원은 요즘과같이 거의 무한의 콘텐츠들이 시장에서 경쟁하는 시대에는 아주 불충분한 소극적 정책이다. 제작 지원해보아야 상영할 극장이 없다.따로 예술극장을 만들어보아야 몇 십억씩 마케팅비를 쓰는 블록버스터 영화에 당해낼 재간이 없다.

그래서 이제 영화정책이 바뀌어야 한다. 우선 독과점 금지 조항을 영상진흥법에 추가하고 이것을 철저하게 시행하고 감시해야 한다. 그 다음으로는문화 다양성을 위해 현재 영화계의 많은 분들이 아이디어를 내고 있는 다양한 영화 정책 대안들을 충분히 검토하고 빠른 시간 안에실시하여야 한다. 여러 아이디어 중에 1) 마이너쿼터제 2) 프린트 벌수 제한 3) 전용 상영관 설립 그리고 4) 스크린 수제한 5) 상영영화 쿼터제 등이 주로 제기되고 있다. 나는 마이너쿼터와 프린트 벌수 제한, 100개까지 구체적으로 제기되고 있는전용 상영관 설립은 모두 선의에도 불구하고 시장에서 부작용을 일으킬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제도들은 모두 현실적으로실효성도 없고 국민의 세금이 낭비되는 결과를 가져올 위험성이 크다. 상영영화 쿼터제도 그렇다. 가령 쿼터 70%로 한다면10개의 스크린을 가진 멀티플렉스에서는 항상 7개 이상의 영화를 상영해야 한다는 제도다. 이게 과연 제대로 지켜질까? 그리고다양성은 확보될지 몰라도 시장의 확대 발전에 도움이 될까? 그리고 극장이라는 사적 재산의 운영에 지나친 법률적 제한을 가해위헌의 소지도 보인다.

그래서 나는 ‘스크린 수(좌석수) 제한’이 가장 좋은 시장의 확대와 문화 다양성을 공히 살릴수 있는 제도라고 생각한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몇 개의 스크린으로 제한할 것인가, 몇 %의 좌석수로 제한할 것인가도 별로 어려운일이 아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기업결합 심사시 기준으로 삼고 있는 1) 하나의 사업자가 시장 점유율 50% 이상 2) 상위 3개업체가 점유율 합계70% 이상의 기준을 근거로 삼으면 된다. 그러면 대개 1600 곱하기 0.7해서 1020이니까 350개스크린 정도가 나올 것이다. 여기에 극장 산업의 특수성을 감안해 요즘과 같은 극장 성수기에는 20% 정도 더할 수 있다는예외조항을 추가하면 된다. 그래서 최고 스크린 수를 400개 정도로 제한해야 한다. 물론 여기에 좌석수도 고려해야 한다.

자본은 눈물을 믿지 않는다.

최근 몇 년 동안 대한민국 국민들은 거대 군집을 이루며 몰려다니는 ‘쏠림 현상’을 보이고 있다. 금년만 하더라도 5.31지방선거의 한나라당 싹쓸이 현상, 6월 월드컵의 붉은 깃발 현상 그리고 <괴물>의 초대박 현상 등등. 쏠림 현상은 그자체로는 나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것이 인위적으로 그것도 시장의 자유경쟁 원칙을 위반하고 만들어진다면, 그런 영화가 좋지않은 가치를 선전하고 있다면 문제는 매우 심각해진다. 게다가 이런 독과점 시장의 가장 무서운 점은 자본이 그 가공할 권력으로사회 여론도 대박 마인드로 길들이게 된다는 점이다. 이러한 현상을 영미권에서는 ‘Hit Mind Society’라고 하는데시장에서 흥행에 성공하는 사람이 멋지고 세련되었으며 시대를 선도하는 사람으로 보일 뿐만 아니라 종국에는 옳은(right)사람으로 평가되는 현상이다. 그래서 김기덕 감독같이 예술성에선 세계적으로 인정받았지만 국내 흥행에서는 실패하는 사람은 독선적이고재미없으며 결국 그릇된(wrong) 사람이라는 가치의 전도현상이 일반화될 수도 있다. 스크린 독과점을 이대로 방치한다면 하나의블록버스터 영화가 모든 스크린을 완전 독점할 때까지 즉 시장을 붕괴시키고 문화 다양성을 질식사시킬 때까지 독과점 현상이 심해질것이다. 월드컵 중계 때 4개의 공중파 채널 중에 3개가 같은 게임을 중계하는 것을 방치한 나라가 한국이다. 독과점은 시장과다양성을 위축시킬 뿐만 아니라 결국 그 독과점을 행하는 당사자들도 불행하게 만든다. 자본은 오직 매출의 극대화를 통한 초과이윤의 획득 이외에는 그 무엇에도 관심이 없고 그 누구도 동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시장의 리더들이 한국 영화산업을 위해 그리고무엇보다도 자신들의 궁극적인 행복을 위해 시장 정상화에 나서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시민들이 나설 것이다. 그래서 정부가문화산업에도 독과점 금지법을 만들도록 촛불을 들게 될 것이다.

원문 : http://www.premiere.co.kr/magazine/magazine_story_detail.asp?OidThread=26&page=1

 

 

– 프리미어 2006.09.04 김기덕은 왜 싸웠는가

김기덕은 왜 싸웠는가
2006-09-04

글_신기주 기자

김기덕 감독에게 2004년은 가장 행복한 해였다. 베를린과 베니스가 그를 환대했다. 미국 관객들은 <봄 여름 가을 겨울그리고 봄>에 열광했다. 세상이 그에게 웃어주는 것 같았다. 그도 자주 웃었다. 하지만 그 뒤로 김기덕 감독은 줄곧세상한테 배신을 당했다. 그의 방식으로 헤쳐나가기엔 대한민국은 너무 척박했다. 끝내 김기덕 감독은 검은 선글라스를 쓴 채 토론프로그램에 등장해서 마지막 싸움을 벌였다.

김기덕 감독은 말했다. “가위 바위 보를 합시다. 지는 사람이 저기 가서 말을 걸고 오는 거야.” 저쪽 너머에는 김태희가 앉아있었다. 프랑스 드골 공항이었다. 이탈리아 베니스에서 한국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파리를 거쳐가야 했다. 공항에서 몇 시간을기다려야 했다. 김기덕 감독은 몇몇 기자들과 함께 움직였다. 무료했다. 그런데 저쪽에서 김태희가 나타났다. 우연이었다. 심심하던차였다. 김기덕 감독은 기자들과 장난을 치자고 했다. 지는 사람이 가서 말을 걸고 오자는 내기였다. 소심한 기자들은 쭈뼛했다.그런데 김기덕 감독이 졌다. 그는 너털웃음을 터뜨리더니 김태희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가선 말했다. “저, 김기덕이란 사람입니다.영화감독입니다.” 무리로 돌아온 김기덕 감독은 말했다. “영화감독이라니까 알아보는 거 같긴 했는데 잘 모르겠네. 스페인에서 광고찍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길이라네. 같은 비행기래.” 김기덕 감독은 웃었다. 모두가 웃었다. 그의 트렁크 안엔 어제 저녁베니스영화제 폐막식에서 탄 은사자상 트로피가 들어 있었다.

행복

김기덕 감독에겐 이제 좋은 일만 있을 거 같았다. 2004년은 그에게 최고의 해였다. <사마리아>로 베를린영화제에서은곰상을 수상했고 <빈집>으로 베니스영화제에서 감독상인 은사자상을 가져갔다. 베니스 관객들은 <빈집>에열광했다. 첫 상영이 끝난 다음 기립 박수를 치지 않은 사람은 한국에서 온 기자들뿐이었다. 김기덕 감독이 큰 상을 수상할 거란건 모두가 알고 있었다. 김기덕 감독은 수상을 위해 무대에 오르기 전에 객석에 앉아 있는 임권택 감독에게 큰 인사를 했다. 주류영화계와는 담을 쌓은 것처럼 행동해온 김기덕 감독으로서는 의외의 모습이었다. 한국에서 온 기자들은 웅성거렸다. “이상하다.김기덕 감독답지 않다. 이제 세상과 손을 잡겠다는 이야기인가?” 안 그래도 <섬>이나 <나쁜 남자> 때와달리 그의 영화가 세상을 향해 손짓을 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었다.

그 무렵 그의 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그리고 봄>은 미국에서 100만 명 가까운 관객을 모으고 있었다. 북미 최대 영화제인 토론토영화제의 홍보이사인 가브리엘겝은 그해 토론토영화제에 초청된 영화들 중에서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을 최고로 쳤다. 김기덕 감독에겐 정말좋은 일만 일어나고 있었다. 이제 한국에서도 정말 좋은 일만 기다리고 있을 터였다. 모두가 그렇게 생각했다. 김기덕 감독은돌아오는 길에 기자들과 장난을 쳤다.

실망

그때가 김기덕 감독이 소탈하게 웃을 수 있는거의 마지막 순간이었다. <빈집>은 베니스영화제가 끝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2004년 10월 15일 한국에서개봉했다. <빈집>은 베를린과 베니스 영화제를 모두 석권한 감독의 영화였다. 지금은 <괴물>을 제작한영화사로 더 잘 알려져 있는 청어람은 당시만 해도 중견 배급사였다. 청어람은 <빈집>을 100개가 넘는 스크린에서개봉시켰다. 스크린을 벌리면 관객이 들 것도 같았다.

김기덕 감독은 주연배우 이승연과 개봉 첫날 상영관을 돌며 무대 인사를했다. <빈집>으로 그는 관객을 만나고 싶어했다. 하지만 개봉 첫날 객석은 절반도 안 차 있었다. 그나마도 김기덕감독을 반기는 눈치도 아니었다. 김기덕 감독이 이승연을 캐스팅한 건 노이즈 마케팅을 노린 고도의 전술이라는 시각도 있었다. 그무렵 이승연은 위안부 뮤직 비디오 파문에 휩싸여 연예인 생명이 위태로웠다. 사실 이승연보다 먼저 캐스팅 물망에 올랐던 건이미연이었다. 하지만 이미연의 소속사인 싸이더스HQ는 노출 때문에 마다했다. 사실 이승연 역시 처음엔 출연을 거절했다. 이승연은전략이 아니라 막다른 선택이었다. 하지만 사실과 상관 없이 여론이 김기덕 감독을 심판했다. 베니스에서 김기덕 감독과 이승연은여유로웠다. 하지만 한국에선 상황이 달랐다. 이승연은 고개를 숙이고 다녀야 했다. 김기덕 감독은 <빈집>이 처참하게외면 받는 걸 지켜봐야 했다. 결과는 처참했다. 100개 스크린에서 고작 2주 동안 상영한 끝에 9만 명을 모으는 데 그쳤다.<빈집>의 강영구 PD는 말한다. “<사마리아> 때도 그랬다. 그 무렵 배급사 쇼이스트는 100개쯤 펼치면설마 20만 명 안 들겠냐고 그랬다. 그런데 정말 안 들었다. <빈집>때도 우리는 설마했다. 상처를 받을 수밖에없었다. 관객들에게 상처를 받았다. 배급사를 중심으로 한 한국영화 시스템에 대해서도 상처를 받았다.” 김기덕 감독쪽 입장에서보면 배급사들은 영화를 가져다가 성의 없이 풀어버렸다. 별반 고민 없이 100개 스크린을 벌렸다가 안 되면 순식간에 내려버려서남는 건 넝마가 된 영화뿐이었다. 강영구 PD는 말한다. “김기덕 감독이 영화를 만들면 배급하겠다는 곳은 많다. 돈을 크게 안들여도 어디 가서 회사의 필모그래피는 되니까. 세계적으로 유명한 김기덕 감독 영화를 배급한 영화사라고 하면 알아주니까.”<빈집>은 결국 텅 빈 집이 됐다. 김기덕 감독은 더 이상 웃을 수가 없었다.

배신

세상은 김기덕 감독을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았다. 2004년 말 김기덕 감독은 영화진흥위원회로부터 반가운 소식을 접한다. 강영구PD는 말한다. “일산에 있는 김기덕 필름으로 연락이 왔다. <빈집>이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후보로 선정될 거라는소식이었다. 그런 줄 알고 있었다. 마침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이 미국에서 좋은 반응을 이끌어내고 있었다.좋은 기회라고 여겼다. 어차피 김기덕 감독은 해외에서 제작비를 끌어와야 하는 처지였다. 그때까진 유럽이나 일본 제작사에서 도움을받았다. 혹시나 미국과도 인연이 닿지 않을까 싶었다.” 김기덕은 세계적으로 알려진 이름이었다. 하지만 제작비를 확보하는 게 늘어려웠다.

제작비를 벌어들이려면 국내 시장 환경에 적응해야 했다. 그러나 국내 시장 환경은 너무 척박했다. 시장에 맞춰진영화가 아니면 한국 관객들은 철저하게 외면했다. 1000만 관객이라는 숫자는 그런 천편일률을 더욱 가속화시켰다. 그 안에서빈틈을 찾는다는 건 어려웠다. 그래서 아카데미 영화상이라는 건 또 다른 기회일지도 몰랐다. 베니스나 베를린 영화제는 예술영화상이다. 아카데미라면 다르다. 그런데 얼마 뒤 영화진흥위원회로부터 다른 소식이 전해져 왔다. 강영구 PD는 말한다.“그러니까 결과가 다르다는 내용이었다. <빈집> 대신 <태극기 휘날리며>가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후보로추천됐다는 얘기였다.” 아카데미가 상업적인 영화상인 탓에 <태극기 휘날리며>가 훨씬 더 수상 확률이 높다는설명이었다. 하지만 강영구 PD는 다르게 해석했다. <태극기 휘날리며>는 미국 수출과 개봉을 준비 중이었다. 강제규감독도 미국 진출을 노리고 있었다. 아카데미라는 날개를 달면 유리했다. <빈집>은 이미 상업적으로 거덜난 상태였다.<태극기 휘날리며>에 힘을 실어주자는 얘기였다. 김기덕 감독은 강영구 PD에게 이런 요지의 이야기를 했다. “주류영화계가 나를 배척한다. 그들끼리 모든 걸 짜고 친다. 공고한 시스템이 그들의 필요에 의해서 나를 들었다 놓았다 한다. 이런 게어디 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김기덕 감독은 한국영화계의 바깥에서 영화를 만들어왔다. 주류가 아니었다. 주류 영화계를둘러싼 벽은 점점 두터워지고 있었다. 상업적인, 전략적인 이유를 들어 팔이 안으로 굽고 있었다. <빈집>이 흥행에서침몰하는 걸 보며 김기덕 감독은 이미 충분히 상처를 입었다. 2004년만큼 김기덕 감독이 뉴스메이커였던 시기는 없었다. 하지만칸에서 수상한 다음 스타가 된 박찬욱 감독과 달리 김기덕 감독에게는 여전히 차가운 시선뿐이었다. 김기덕 감독은 스스로 스타가 된경우였다. 박찬욱이나 봉준호, 강제규 감독은 시스템이 낳은 스타였다. 그건 시스템과 그들이 어울린다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김기덕감독은 아니었다. 그건 결국 타협이 불가능하단 얘기였다.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논쟁이 그런 경우였다.

좌절

김기덕 감독은 <활>을 만들면서 앞으로는 시스템과 타협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어차피 한국영화의 주류는 그의 명성을이용하려들 뿐 그를 품에 안으려고 하지 않았다. 스스로 자기 길을 걸어야 했다. <활>은 일본 자본을 벌어서만들어졌다. 어차피 한국의 어떤 영화사한테도 빚이 없었다. 어차피 김기덕 감독은 한국영화계의 변방에서 혼자 힘으로 영화를 만들고있다. 그런데 극장과 배급 시스템은 중심의 사람들이 장악하고 있다. 그동안은 그들과 손을 잡아서 중심으로 들어가려고 했다.하지만 이젠 아니었다. 김기덕 감독이 직접 극장에서 영화를 개봉하기로 했다. 사실 김기덕 감독이 <활>을 만들었을때도 극장 개봉을 주선하겠다는 배급사는 많았다. 하지만 김기덕 감독은 그들이 노력을 하지 않는다고 봤다. 주류 영화에 길들여진관객들은 1000만 영화를 만들 수는 있을 지언정 20만 영화를 만들 수는 없었다. 김기덕 감독은 <활>을 들고 직접극장을 찾아다녔다. 다른 사람 손을 빌리느니 직접 극장을 만나서 진정 원하는 극장에만 영화를 풀겠다는 얘기였다.

김기덕감독은 비교적 소규모인 시너스 극장과 계약을 맺는다. 시너스 극장은 김기덕 감독의 영화를 자기 영화의 체인 안에서만 개봉하되분명하게 보호해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그 말은 지켜지지 못했다. 김기덕 감독은 대형 멀티플렉스들보다는 작은 극장들이 오히려영화를 보호해줄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틀렸다. 하루도 제대로 틀지 않고 영화를 내려버렸다. 극장이 작은 탓에 홍보도 제대로되지 않았다. 김기덕 감독은 불가능한 한계를 넘으려고 했었다. 하지만 대세는 넘어가버린 상황이었다. <활>은 고작1100 명이 들었다.

진실

그무렵 김기덕 감독은 대형 투자사나 제작사, 배급사들로부터 러브콜을 받고 있었다. CJ엔터테인먼트는 김기덕 감독에게 대형 영화의연출을 맡아볼 것을 권했다. 김기덕은 어떤 식으로든 상업적으로 이어질 수 있는 이름이었다. CJ엔터테인먼트도 김기덕 감독과영화를 찍고 싶어했지만 그에게 전권을 주지는 않았다. 사실 수십억 원짜리 영화를 김기덕 감독 스타일대로만 찍을 수도 없는노릇이었다. 결국 그런 기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그가 상업적으로 돌아선다면 화젯거리가 될 터였다. 김기덕 감독은 마다했다. 이미겪은 게 있었다. 시스템에선 개인은 이용만 당할 뿐이었다. 결국 한국에서 영화를 만든다는 건 늘 주류와의 마찰을 뜻했다. 영화를만들기 위해 돈을 모으는 것도, 영화를 개봉시키는 것도 늘 한계였다. 김기덕 영화의 내용부터가 그랬다. 강영구 PD는 말한다.“김기덕 감독의 영화는 제작하는 과정만큼은 너무나 행복하다. 하지만 문제는 늘 영화를 다 찍은 다음에 생긴다. 그걸 돌파하는 게가장 힘들다.”

<활>의 처참한 실패는 김기덕 감독에게는 큰 교훈을 줬다. 영화는 내 마음대로 만들 수있어도 주류가 점령한 지금의 시스템을 혼자 힘으로 돌파하는 건 불가능했다. 누구도 믿을 수 없었다. 관객들은 이미 멀리가버렸다. 1000만 관객이 나오긴 쉬워도 작은 영화의 흥행이 힘든 곳에서 영화를 하기란 버거웠다. 그렇다고 주류 영화권과 손을잡을 수는 없었다. 그들은 김기덕이라는 브랜드를 언제든지 폐기처분할 사람이었다. 한국은 영화 하기엔 참 나쁜 곳이었다.

고집

<시간>을 시작하면서 김기덕 감독은 강영구 PD에게 말했다. “이 영화는 국내 개봉을 안 시킬 수도 있다.” 강영구 PD는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김기덕 감독의 뜻대로만 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강영구 PD는 나름대로 여러 배급사들을만났다. <시간> 제작은 늘 그랬듯 순조로웠다. 5억 원 남짓한 예산으로 한 달 동안 준비하고 한 달 동안 촬영하고두 달 동안 후반작업을 해서 영화를 만들었다. 하지만 배급사들과의 이야기는 그렇게 순조롭지가 않았다. 배급사들은 영화를 본 다음결정하겠다거나, 1억 원 정도 판권료를 주고 배급 수수료까지 주면 대행을 해주겠다는 식이었다. 사실 1억 원이면 비디오나DVD만 팔아도 남는 돈이었다. 결국 극장 개봉은 대충 시키겠다는 속셈이었다. 그런데 그러다가 시장에선 나쁜 소문이 돌기시작했다. 김기덕 감독이 판권료를 두둑하게 챙기려고 배짱을 튕기고 있다는 소리였다. 역시나 김기덕 감독의 영화는 개봉이문제였다. 촬영을 준비하는 동안 김기덕 감독은 일산에 있는 김기덕 필름 사무실 구석에 앉아서 자주 생각에 잠기곤 했다. 김기덕필름이라곤 하지만 그곳은 다락방 정도였다. 김기덕 감독의 자리는 4층 건물 꼭대기 다락방에서도 구석 한편이었다. 그곳에서쭈그리고 앉아서 시나리오도 수정하고 이야기도 하고 담배도 피우고 심지어 편집까지 했다. 스태프들은 방바닥에 누워서 잠을 자고다시 일어나서 일을 했다. 하지만 <시간>이 과연 개봉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알 수 없었다. 카를로비 바리에<시간>이 개막작으로 선정됐을 때도 개봉은 불투명했다. 그는 더 이상 미련이 없었다. 김기덕 감독은 미련 때문에영화를 억지로 시장에 내놓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1000만 명

2000년 무렵 김기덕감독은 <섬>과 <나쁜 남자>를 만들면서 좌충우돌하고 있었다. 그는 베니스영화제에서는 축복을 받았지만한국에 돌아오면 그를 기다리는 건 싸늘한 평단의 시선이었다. 그런 가운데에서 <나쁜 남자>는 뜻밖에도 흥행에서성공한다. 그건 <나쁜 남자>를 마초적이고 에로틱한 마케팅으로 포장한 덕이었다. 김기덕 감독의 영화 중에선 가장 많은70만 명을 모았다. 김기덕 감독과 오래 알고 지낸 저예산 영화 배급사 스폰지의 조성규 대표는 말한다. “<나쁜남자>의 흥행 성공이 대중에게 김기덕이라는 브랜드를 각인시킨 꼴이 됐다. 비호감 감독으로 말이다. 오히려 흥행이 안 됐으면좋았을 텐데 말이다. 차라리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이 흥행했다면 인식이 달라졌겠지.”

김기덕 감독은세상과 맞서는 과정에서 결국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었다. 그는 마초 감독이었고 영화계에서도 많은 여성들이 그를 터부시했다.김기덕 감독도 그걸 느끼고 있었다. 소통하려고 해도 다들 도망가버렸다. 무슨 일을 해도 관심을 끌려는 행동처럼 보였다. 그러더니김기덕 감독은 어느 순간부턴 장사 안 되는 예술영화 감독의 대명사처럼 돼버렸다. 언론들은 저예산 영화, 작은 영화의 흥행 실패에대한 천편일률적인 기사를 생산할 때면 늘 김기덕 감독을 팔았다. 김기덕 감독은 지긋지긋해 했다. 관객을 구걸하는 감독처럼비쳐졌기 때문이다. 무슨 앙탈을 부리는 것처럼 보였던 거다. 그런 김기덕 감독에 대한 인식은 시간이 지나도 달라지질 않았다.1000만 명이 보는 영화라면 따라 봤고 다들 싫어하는 감독이라면 눈길도 주지 않았다. 김기덕 감독은 그런 편견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다. 김기덕 감독은 강영구 PD와 술을 마시면서 이런 이야기를 했다. “1000만 시대가 우리한테는 더 나쁜 환경을만들어줄 거다.” 그 말이 맞았다.

자존심

스폰지의 조성규 대표가 김기덕 감독을 설득할 수 있었던 건 인연 때문이었다. 김기덕 감독은 평소에도 늘 스폰지에서 개봉하는 작은영화를 보러 다녔다. <메종 드 히미코> 같은 영화를 롱런시키는 스폰지의 경험은 시너스처럼 김기덕 감독의 영화를포기하지 않을 거라는 증거가 될 수도 있었다. 조성규 대표는 말한다. “감독님한테 그랬다. 많이 들게는 못해도 볼 사람은 보게만들 수 있다.” 조성규 대표는 헤이리에 있는 김기덕 감독의 집에 찾아가서 설득했다. 작지만 세련되게 개봉할 생각이었다. 사실김기덕 감독은 국내 시장을 돌파하기 위한 거의 모든 방법을 다 동원했다. 장동건이 김기덕 감독의 영화에 나온 것도 그런맥락이었다. 하지만 통하지 않았다. 한국은 그에겐 고향이지만 무덤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현상이 벌어졌다.<씨네21>에서 <시간>을 보기 위한 캠페인을 벌이기 시작했다. 조성규 대표는 말한다. “마음은 고마웠다.그런데 그게 김기덕 감독이 정작 원하던 게 아니었다. 또다시 저예산 영화의 상징처럼, 시장에서는 안 통하는 불구의 감독처럼그려지기 시작했던 거다. 그게 싫어서, 관객한테 구걸하는 것처럼 보이는 게 싫어서 국내 개봉을 안 하겠다고 한 건데 결국 또그렇게 포장되고 있었다.” 관객 운동이 일어났다. <시간>을 보기 위한 모임이 결성됐다. 하지만 정작 영화 관계자들은씁쓸했다. 이미 한국 영화시장은 괴물처럼 커져버렸다. 1999년 <박하사탕>이 관객 운동을 끌어냈을 때만 해도 한국영화시장은 작고 야무졌다. 적은 관객들이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 관객 운동은 시장에 아무런 변화도 불러일으키지못하게 돼버렸다. 다시 보기 운동은 결국 시장에서 패배한 불쌍한 영화들에 대한 동정처럼 여겨질 뿐이었다. 조성규 대표는 말한다.“감독님의 마음을 돌리려면 그의 영화가 동정을 받고 있는 게 아니라 지금 고착화된 시스템에서 돌파구를 찾을 수 있다는 믿음을줘야 했다. 그건 패배주의나 동정주의를 벗어나 당당하게 관객과 만난다는 의미였다.”

싸움

김기덕 감독은 한사코 인터뷰를 거부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기자들의 질문이 천편일률적이란 거였다. 기자들은 늘 같은 것만 물었다.저예산 영화, 한국 시장에서 살아남기, 이런 말들이었다. 하지만 국내 개봉을 결심한 이상 영화를 알려야 하긴 했다. 조성규대표는 김기덕 감독에게 몇몇 매체와의 인터뷰를 제안했다. 하지만 김기덕 감독은 기자회견을 하겠다고 했다. 그냥 한 번에끝내버리겠다는 심사였다. <시간>의 기자 간담회는 평지풍파의 시작이었다. 언론은 김기덕 감독을 이용하려고 들었다.마침 <괴물>이 흥행하고 있었다. 다들 <괴물>이 만들어내는 이런 저런 현상들을 쫓느라 혈안이 돼 있었다.하지만 별다른 게 없었다. 결국 언론이 잡은 건 <괴물>이 너무 많은 스크린을 잡은 게 아니냐는 이야기였다.

먼저이문식이 도마 위에 올랐다. <플라이 대디>가 <괴물>에 묻혀버리자 그는 “<괴물>이 너무 많은스크린을 잡은 거 같다”고 말했다. 그 말은 당장 언론에게 좋은 구실을 제공했다. 그러자 이문식은 두문불출해버렸다. 김기덕감독에게도 역시 <괴물>에 관련된 질문이 들어왔다. 그러자 김기덕 감독은 예상했다면서 이렇게 대답했다.“<괴물>의 수준과 관객의 수준이 만난 결과다.” 기자들은 일제히 그 부분을 대서특필했다. 조성규 대표는 말한다.“그래서 일찍 기자 간담회를 끝내려고 했다. 그런데 끝이 나질 않았다.”

논란은 끝나지를 않았다. 그건 기자들 때문이었다.<괴물>은 여전히 가파르게 흥행하고 있었다. 기사 거리가 필요했다. 하지만 관객 스코어 중계방송은 식상했다. 배우들인터뷰, 관계자들 인터뷰도 다 했다. 이제 할말이 없었다. 김기덕 감독을 자꾸 물고 늘어졌다. 다시 김기덕 감독은 언론에 의해저예산 영화의 독립군이자 피해자이자 동정의 대상이자 독불장군으로 변해갔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서 김기덕 감독을인터뷰하고 싶다는 뜻을 전해왔다. 하지만 김기덕 감독은 거절했다. 사실 몇 달 전부턴 아예 핸드폰을 없애버린 터였다.

지난 8월 16일 아침 강영구 PD는 김기덕 감독한테서 메일을 한 통 받았다. “너무 걱정하지 마. 뉴스에 내가 100분 토론에나간다는 얘기 들었지? 그냥 할말만 하고 올게.” 강영구 PD는 안 그래도 조바심을 내고 있었다. 전화가 없는 그에게 연락할방도가 없었다. 김기덕 감독은 결국 손석희 아나운서가 진행하는 또 다른 프로그램인 에는 출연할작정이었다. 그런데 주제는 김기덕 감독이 아니라 <괴물>이었다. 결국 <괴물>에 대한 김기덕 감독의 발언이그를 그 자리에까지 밀어올린 셈이었다. <괴물> 논란에 김기덕 감독마저 휩쓸리고 있었다.

하지만 사실 그건표면적인 이유였다. 김기덕 감독을 토론 자리에 서게 만든 건 <빈집> 이후 김기덕 감독이 통과해온 시간들 때문이었다.<빈집> 이후 김기덕 감독은 부단하게도 한국을 통과하고자 애써왔다. 그러나 김기덕 감독이 그럴수록 상황은 꼬여갔다.주류는 그를 배척했고 관객은 그를 외면했다. 그럴 거면 상업영화를 만들라는 핀잔을 들었다. <괴물>에 대한 김기덕감독의 발언은 그 나름의 사연이 있었다. 그리고 결국 그는 토론 자리에까지 나서게 됐다. 강영구 PD는 말한다. “아마 이게마지막일 거다. 이렇게까지 하면서 버텼는데 한 줌의 관객이라도 설득을 못 시키면, 그럴 가능성이 높지만 그렇다면 결국 다시는관객이나 언론과 소통하려고 하지 않을 거다.”

100분 토론은 지루한 공방을 되풀이했을 뿐이었다. 그 자리에서 김기덕감독은 선글라스를 쓴 채 자신의 영화가 시장에서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는 상황을 설파했다. 함께 토론에 나왔던 강한섭 교수는말한다. “그는 우리를 가지고 논 거다. 사실 김기덕 감독도 꽤 전략적인 사람이다. 그는 지금 한국영화의 환경이 치유불능이며소수의 권력자들만 득세하고 변방에선 늘 주류를 지향할 수밖에 없는 권력 구조로 만들어졌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는 그 나름대로세상에 저항하고 있는 거다. 그래서 그는 토론에서도 선글라스를 끼고 나오고 블랙유머로 일관했던 셈이다.” 김기덕 감독은 다시한번 <시간>을 홍보하기 위해 언론 플레이를 한 것이 아니냐는 독설에 시달렸다.

김기덕 필름 사무실에<월스트리트 저널> 아시아판의 한 기자가 전화를 걸어왔다. 기자는 말했다. “김기덕 감독이 특별히 영향을 받은 감독이누구인지 알고 싶다. 그런 내용의 기사를 쓰고 싶다.” 전화를 받은 강영구 PD는 대답했다. “ 지금 그런 한가로운 이야기를 할때가 아닙니다. 지금 인터넷이 난리가 났어요. <괴물>과 관련한 감독님의 발언 때문이죠. 모르셨어요?” 기자는 전혀모르고 있었다. 그는 김기덕 감독이 그런 논란에 휩싸여 있다는 것 자체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는 정말 김기덕 감독이 무슨 영화를좋아하는지 궁금할 따름이었다. 사실 <월스트리트 저널>의 궁금증이 정상이었다. 한 감독의 작품 세계를 궁금해하는 게당연하다. 그러나 지금 대한민국에서 김기덕의 영화를 궁금해하는 사람은 없다. 모든 게 왜곡돼 있다.

지난 21일 김기덕감독은 <연합뉴스>에 보낸 이메일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번 관객들의 질타를 계기로 차분히 제 영화와 영화 작업을돌아보니 참으로 한심하고 이기적인 영화를 만들었고, 한국 사회의 어둡고 추악한 모습을 과장하여 관객에게 강요하고 관객들로 하여금불쾌감을 갖게 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야말로 한국 사회에서 기형적으로 돌출해 열등감을 먹고 자란 괴물임을 알았습니다. 제영화는 어느 관객의 말처럼 모두 쓰레기입니다. <시간>도 수입사가 계약을 해지해준다면 개봉을 멈추고 싶습니다.늦었지만 이제라도 한국 관객의 진심을 깨닫고 조용히 한국영화계에서 물러날 수 있다는 것이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김기덕 감독은반짝 관심과 언론의 장난질 속에서 오랜 동안 싸워왔다. 그러나 이젠 그 싸움마저도 끝나가고 있다.

원문 : http://www.premiere.co.kr/magazine/magazine_star_detail.asp?OidThread=128&Page=1

대부분 영화 한 편으로 한 배우가 좋아지게 된다. 이것은 최면 같은 거다. 나에게는 성현아가 그렇게 됐다. 가수로 나왔을 때, 영화 ‘애인’에 나온다 했을 때 나는 그가 여느 이들과 다름없는 ‘인형’이나 ‘연예인’이라는 생각을 했다.
물론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라는 영화에 나온 그의 모습을 이에 대한 반론으로 내놓을 수도 있겠지만 그 영화가 그를 바꾸지는 못했다고 생각했다.(영화 ‘주홍글씨’도. 하지만 난 이 영화를 아직 제대로 못 봤다. DVD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몇 번이고 마음을 다잡았지만 아직…)
그러나 나는 영화 ‘시간’을 보고 그에 대한 생각을 고쳐먹었다.
그는 이 영화에서 길가의 큰 나무줄기를 마구잡이로 걷어차고 있었다. 과격하지만 최후의 자존심을 지키는 발짓이 아니라, 말그대로 마구잡이로.
그리고 정말 미친듯이 무심하고 상실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여느 배우들처럼 미친듯이 보이기 위해 미친 표정을 짓는 것이 아니라.
그는 영화에서 배우는 한 도구일 뿐이라는 것, 그리고 그 도구조차도 때로는 나름의 관점을 보여줘야 한다는 것을 아는 것 같아 보였다.
그래서 그가 아름답게 보였다.

우연히 보게 된 프리미어에서 그와의 인터뷰를 퍼 나른다. 간만에 재미붙였다.

 

에서 성현아

 

성현아는 가늘고 길게 산다

2006-08-21

신기주 기자 / 사진김선태

성현아는 살아가는 게 아니라 살아지는 게 두렵다. 막막했던 시기도 있었지만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건 살아지는 대로 가 아니라 살아가고 있어서라고 믿기 때문이다. 성현아에겐 <시간>이 약이었다.

김기덕 감독이, 여리다?
정말이다. 내가 느끼기에 그는 참 여린 사람이다. 섬세한 사람이다. 그래서 남들과 다른 생각을 하는 거다.

승승장구하지 못했던 게 오히려 행운이다?
가늘고 길게 가는 거지.

김기덕 감독에 얽힌 소문들도 많다. 예전엔 여배우들과 유난히 각별하다고 해서 말들도 많았다.
감독님 본인도 그런 소문들 얘기를 한다. 김기덕 감독에 대한 소문은 소문이 소문을 낳은 듯하다. 사람들은 겪어보지 못한 채 다른사람을 평가한다. 한때 나한테 그랬듯이 말이다. 내가 본 김기덕 감독은 순진하진 않아도 순수한 사람이다.

김기덕 영화는 여성에 대해 폭력적이다. 요즘은 덜해진 듯하지만 <시간>에도 그런 장면이 있다. 하정우 씨의 옛사랑은 이렇게 말한다. 너 옛날에 나 좋아했지? 그러니까…
시간이 지나서 좀 헐었지만 그래도 날 가져. 그 대사 말인가?

여배우가 김기덕 영화에 출연한다는 건 어떤 건지 궁금해지더라.
모든 사람에게 다 친절할 필요는 없지 않나? 김기덕 감독의 영화에 출연한다는 건 그의 룰에 나를 맞춘다는 얘기다. 그게 배우다.일단 그의 룰을 받아들이면 남들의 잣대가 무엇이든 문제될 게 없다. 나 역시 모든 인간들에게 친절한 사람은 아니다. 그러고싶지도 않다.

무슨 얘긴가?
김기덕 감독처럼 나 역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뿐이다. 어차피 나는노출에 신경 쓰는 배우도 아니고 대중들이 선호하는 스타도 아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내 길을 가는 것뿐이다. 관객들이 내영화를 안 보면 난 안 보는 사람이 손해라고 생각한다. 난 그렇다.

꼭 영화를 해야 했나? 연기나 연예 활동 말고 아예 다른 일을 찾을 수도 있었다.
할줄 아는 게 있어야지. 또 영화는 꼭 한번 해보고 싶었다. 어쨌든 영화는 연기자들의 로망이니까. 알고 보면 영화계가 참 배타적인곳 아닌가. 보수적이고. 그런데 나한테는 오히려 문을 편하게 열어줬다. 영화는 어려울 때 유일하게 내 손을 잡아줬다.

그랬던 성현아가 다른 여배우가 돼 있다. 김기덕, 홍상수 감독의 영화에 모두 출연한 여배우는 당신뿐이다. 시간은 그렇게 사람을변하게 만든다. 김기덕 감독이 성현아를 <시간>에 캐스팅한 것도 그래서가 아닐까. 시간이 만들어내는 부침을 당신만큼온몸으로 체험한 여배우도 드물다.
<시간>엔 김기덕 감독의 지금 정신 상태가 많이 배어있다고 본다. 물론나를 닮은 부분도 있겠지. 남자의 사랑이 식었다고 생각한 여자는 성형수술을 한 다음 딴 모습으로 나타난다. 시간이 권태를만들어냈다고 믿었으니까. 새로워지면 다시 사랑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다.

그건 대중을 상대하는 배우한테도해당되는 일 아닌가? 대중은 처음엔 신선해 하지만 금세 질려버린다. 여배우는 노출 연기를 아껴둬야 한다는 말이 있다. 다른이유가 아니다. 옷을 벗으면 사람들은 다 봐버렸다고 느끼고 금세 식상해버린다는 얘기다. 그게 사실이라면 당신은 불리한 상황이다.
이상하다. 내가 노출 연기를 많이 한 것도 아닌데 다들 그렇게 생각한다.

내 말이 그 말이다. 다 봤다 이거다. 나도 봤다.
…내가 이제 와서 예뻐 보일 것도 아니고 고상한 척하기에도 이미 많은 걸 잃어버린 거 아닌가. 이젠 어떻게 보일까를 고민하진않는다. 어차피 난 비호감 배우니까. 크게 달라지겠나. 단지 지금처럼 일할 수 있으면 그뿐이다. 과정이 행복하면 내 인생이행복한 거다. <손님은 왕이다>에선 명계남 선배와 일할 수 있어서 좋았고 <시간>에선 김기덕 감독과 일할수 있어서 좋았다. 평생 <시간> 같은 작업만 하고 살았으면 좋겠다.

비호감도 호감이 되는 세상이다. 와이어에 매달려 날아다니던 당신이 지금은 김기덕 감독이나 홍상수 감독과 일하고 있다. 홍상수 감독은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전에도 몇 차례나 당신을 캐스팅하려고 했었다던데?
좀와전된 얘기다. 몇 차례 인터뷰를 했었는데 인연이 잘 닿지를 않았다. 처음 홍상수 감독은 날 마음에 안 들어 했다. 내가 온갖치장을 다 하고 인터뷰를 하러 갔었거든. 홍상수 감독이 나를 딱 보더니 ‘어휴’ 그러더라. 그러니 홍상수 감독이 나를 꼭캐스팅하려고 했던 건 아니다. 그럴 이유가 없지 않나. 지금은 나한테 연락도 안 한다. 난 전화번호도 모른다. 어쨌든 나 자신이많이 바뀐 건 맞다. 숙련됐다고 해야 하나. 지금 이 시간을 굉장히 소중하게 생각하는 법을 배웠다.

어차피 달라지지 않는다면서 가수는 왜 했었나?
웃긴 거지. 뭐, 짧은 기간이었지만 재미있었다. 흐뭇할 때도 있다. 내 음반도 있다.

노래 잘하나? 춤 잘 추고?
전혀. 몸이 뻣뻣해서 춤이 춤 같지가 않다.

그런데 왜 했나? 게다가 음반을 낼 무렵엔 배우로서도 슬그머니 자리를 잡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그 무렵엔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로 홍상수 감독과 칸에 가지 않았나?
사실 발라드를 부르려고 했는데 댄스가 워낙 강세여서… 그러다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에 캐스팅 됐는데 계약 조건이 촬영시작부터 영화가 개봉할 때까지는 영화 말고는 일절 다른 걸 하지 않는다는 거였거든. 한참 늦어져서 뜬금없어 보이게 된 거지.

그것도 예쁘니까 하는 거 아닌가. 자신이 예쁘다고 생각하나?
요즘은 예쁜 애들이 너무 많다. 난 하나도 안 예쁘다.

미스코리아 출신 아닌가?
그러게 말이다.

독특한 거 같긴 하다. 뼈에 금이 가고도 한참 동안 모르고 방치했다가 얼마 전에 알았다던데 둔해도 너무 둔한 거 아닌가?
그게 정말 나다. 미스코리아는 외모지.

<시간>의 성현아는 여러 가지로 재미나게 읽을 구석이 있다. 시간은 미모를 앗아가니까. 그걸 새롭게 해도 얼굴만 바뀔 뿐결국 그 사람이 새롭게 되는 건 아니다. 다시 사랑을 얻을 수는 없는 거다. 미스코리아라는 미모도 시간이 그걸 앗아가거나지루하게 만든다.
그런 걸 따지면 너무 심란해진다. 아마 죽어도 여러 번 죽었어야 했을 거다. 난 중간 아닌가. 톱배우가 아니다. 늘 사람들의 시선 속에 있는 그런 대단한 스타들은 금세 사람들이 질려버릴까 노심초사하겠지. 하지만 난 중간에서묻어가니까 자유롭다.
중간에 시련이 있었던 게 오히려 행운이다?
더 이상 잃을 게 없어졌으니까.어떤가? 사랑이 변하나?
김기덕 감독은 <시간>의 시나리오 첫머리에 이렇게 써 놓았다. 사랑이 식은 건 아닌데 마음이 식고 몸이 식었다. 시간이 흐르면 다 그렇게 되는 것 같다. 안 그런가?

시간이 흐르면 사랑도 식더라. 몸이 식고 마음이 식으면 그게 사랑이 식는 거 아닌가? 사랑이 식은 건 아니라는 얘긴 이상하다.
그 말이 맞는 거 같기도 하다. 오래 사귀면 사랑 때문에 만난다기보다는 정리할 게 많아져서 관계를 유지하게 되니까.

그렇게 흘러버린 시간을 억지로 되돌릴 수 있는 걸까? 성형수술 같은 걸로?
안 되지. <시간>도 그런 행위에서 여러 가지 생각을 끌어내려는 영화다. 정말 되돌릴 수 있는지를 묻고 있는 게 아니지. 시간이 흘러버린 사랑은 끝내야지. 헤어지는 게 맞다.

사랑이 사는 데 그렇게 중요한 걸까?
살면서 사람이 느낄 수 있는 몇 안 되는 행복한 감정이 사랑 아닌가. 그것도 나이가 들면 귀찮아져서 느낄 수 없게 된다더라. 여자는 서른다섯 살만 돼도 사랑이 귀찮아진다더라.

그렇다면 당신도 몇 년 안 남은 셈이다.
그래서 다들 만나던 사람을 만나는 거다. 어떤 사랑도 시간이 지나면 무덤덤해진다. 그러면 서로 싸우게 되지. 하지만 한편으로 이런생각을 하게 된다. 나도 완벽한 게 아닌데 이 남자가 내 단점을 애써 참아주고 있겠구나 느끼게 되면 문득 고마워지는 거지. 또다른 사람을 만나봐야 다를 게 없다고 느끼게 되고. 그렇게 사는 거다.

성현아는 화려한 여자라는 이미지가 있다. 명품으로 치장하고 다닐 거 같고.
어릴 때 쇼핑 참 좋아했지.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돈도 시간도 참 아깝다. 요즘은 쇼핑할 돈도 시간도 없다. 틈이 나면 인터넷쇼핑을 한다. 그게 참 재밌다. 잘 보고 있으면 밤 12시가 넘어갈 무렵이면 가격이 5만 원이었던 게 3만 원으로 잠깐 내려갈때가 있다. ‘새로고침’ 스위치를 누르면 바뀌어 있는 거지. 그때 딱 사는 거다. 어찌나 행복한지.

정말 그런 거에 행복해 하면서 사나?
대신 난 살아가는 게 아니라 살아지고 있다고 느끼면 불행해진다.

살아지는 순간이 더 많지 않나?
그러면 난 내가 뭘 위해 이러고 있는지 고민한다. 그런데 언제나 결론은 그런 고민도 삶의 일부라는 거다. 이러다 내가 죽어버리면 내가 안고 있던 고민도 사라지는 거 아닌가. 내 존재가 있어서 고민이 있는 거지.

뜻대로 되는 게 어디 있나? <애인>도 그렇다. 하고 싶어했던 건 아니지 않나? 당신은 제작사가 섹스만 강조한다면서 홍보를 안 하겠다고도 했었다.
배웠다는 영화판 사람들이 왜 그렇게 답답한지. 그때까진 일을 하면서 고집을 피워본 적이 없었다. 그땐 정말 참을 수가 없었다. 그나마도 소심하게 내 블로그에 글을 올렸는데 일이 커졌다.

영화라는 게 원하지 않는 방향대로 흘러가는 게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경우보다 훨씬 많다. 김기덕 감독도 <시간>에관련해선 인터뷰를 전혀 안 하겠다지 않나. 어차피 뜻대로 되는 게 아닌데 나서서 이러쿵 저러쿵 말해봐야 소용 없는 거니까.
난 그를 이해할 수 있다. 김기덕 감독은 언론 때문에 상처를 많이 입었다. 나 역시 그런 편이고.

그렇게 상처를 받으면서도 배우를 하겠다는 이유를 모르겠다.
솔직히 외국 나가서 다른 걸 배워볼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 난 자기 분야에 전문성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면 나도 모르게 주눅이든다. 난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없다는 생각을 한다. 그럴 때면 내가 배우인 게 그나마 다행이다 싶다. 배우니까 성현아가 있는거지.

연기를 하면 사는 데 자신감이 생긴다?
적어도 일할 땐 제대로 살고 있다고 느껴진다.살아지고 있는 게 아니지. 다들 말로는 다음 작품을 준비한다고들 하는데 난 뭘 준비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현장에서 배울 게 더많은데 말이다. 빨리 다음 작품을 하고 싶다. 인생에 기회가 세 번 온다고 하지만 난 매 순간이 기회인 거 같다.

어떤 배우들은 당신을 부러워할 거다. 칸에도 가고 카를로비 바리에도 가봤으니까.
내가 거기 가서 한 게 뭐가 있나. 이번에 카롤로비 바리에 갔을 때도 내가 백 마디 하는 것보다 김기덕 감독이 한 마디 하는 게 더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내더라.

그래도 성현아는 꽤 용기 있는 여배우라고 생각했다. 언제나 용감한 여배우는 귀하니까.
용기는 무슨… 내가 처한 상황이 한 번도 넉넉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애쓰는 것뿐이다. 지금까지 나한테 좋았던 적이 있었나? 크게성공한 적도 없다. 앞으로도 그럴 거 같진 않다. 계속 영화를 할 수 있다면 그게 나한테는 큰 성공인 거다.

강한 놈이 오래 가는 게 아니라 오래 가는 놈이 강한 거다?
내 말이 그 말이다. (유)지태가 연극 극단을 만든다던데 출연시켜 달라고 졸라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