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게임의 이런 스토리텔링 방식이 현실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과 닮아 있어서 재미있다고 느낀다. 삶에는 많은 이야기 조각들이 있다. 원한다면 이것을 서사화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 대부분은 굳이 그러지 않는다. 삶이 이야기가 되는 것은 조각들을 끼워 맞추려고 애쓸 때나 가능한 일이다(현실의 작가, 특히 내러티브 논픽션을 쓰는 작가는 이 조각들을 서사화하는 사람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우리는 그냥 살아간다. 도처에 있는 정보와 사건과 이야기를 스쳐 지나간다. 마찬가지로 게임 속에서 플레이어도 이야기를 대충 흘려듣고 게임을 플레이할 수 있다. 심지어 그런 플레이가 즐거움을 줄 수도 있다. 하지만 일단 발견하려고 노력하기만 한다면, 어마어마하게 많은 이야기를 목격할 수 있다.

김초엽, 「세계를 경험하는 것」, 『아무튼, SF 게임』

내가 종종 망각하는 사실을 이 문단이 깨우쳐 준다. 나는 의미와 이야기를 놓치면 안 된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고는 하지만, 사실 그것을 깨닫지 않고도 삶은 경험으로 나아간다. 위 표현대로, 우리는 그냥 살아가는 것이다. 나와 타인의 삶에서 의미를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람은 되고 싶지는 않다는 욕망이, 경험으로서의 삶을 자꾸만 간과하게 만든다.

“감염증이 퍼지고 몇 년 후에 기생생물을 얼굴에서 제거하는 실험이 성공했지만, 시몬인들의 반응은 미적지근했습니다. 우리는 그냥 가면을 쓴 채로 살아가기로 결정했어요.”

“이해할 수 없네요.”

“마음에 들었거든요.”

그 이야기를 들으며 소은은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몰랐다. 그러나 여자는 유일하게 가려지지 않은 두 눈으로 소은을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었다. 여자가 말했다.

“어차피 가면을 쓰지 않아도 우리는 서로의 진심을 모르지요. 생각해보세요. 저는 지금 당신을 향해 웃고 있을까요? 아니면 차가운 얼굴을 하고 있을까요? 어느 쪽이든, 그게 제 진심일까요?”

소은은 말문이 막혔다.

“가면이 우리에게 온 이후로 우리는 억지웃음을 지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가면은 거짓 표정을 만들어내는 대신 서로에게 진짜 다정함을 베풀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그게 시몬 사람들이 여전히 가면을 쓰는 이유랍니다.”

짧은 침묵이 흘렀다. 지구행 우주선이 잠시 뒤에 출발한다는 방송이 나왔고, 여자는 바닥에 놓여 있던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소은이 물었다.

“그래도 떼어내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없나요?”

“왜 그런 생각을 하겠습니까?”

“사람들의 가면 뒤 진짜 얼굴을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으세요?”

“가면 뒤에 진짜 얼굴이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시몬을 떠나며』, 김초엽

오디오북으로 듣는 김초엽의 소설에 빠져 있다.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를 들으면서 우리가 사랑하는 것은 순수한 것 그 자체가 아니라는 생각에 잠시 빠졌다. 순수한 평화, 순수한 평등, 순수한 자유가 작동하는 것처럼 보이는 ‘마을’ 안에서 데이지는 사랑할 것이 없다. 데이지는 불평등과 억압의 공간 ‘시초지’, 지구에 사랑할 것이 있다고 믿는다. 상처 받고, 문제라고 느끼고, 저항하는 존재가 그 안에서 태어난다. 오직 지옥 안에서만 사랑할 대상이 태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