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보에 실었던 글을 기록으로 남겨 둔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인터스텔라>가 흥행 돌풍을 이어 가고 있는 현재, 조용히 반향을 일으키고 있는 영화가 있다. 대형 할인 마트의 파업 일대기를 그린 <카트>가 그것이다. 카트는 7기 노동조합이 추진하는 작은 영화관 문화 사업의 첫 번째 선정작이기도 하다.

 

실제 벌어진 일

알려진 바와 같이 영화 <카트>는 2007년부터 2008년까지 이어진 이랜드 홈에버 비정규직의 파업이라는 실화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영화이다. 당시 홈에버는 마트 계산원을 비롯한 상당수의 비정규직을 외주화하기 위해 일방적인 대량 해고를 추진했고, 홈에버 비정규직들은 홈에버 월드컵점을 점거하여 파업으로 이에 맞섰다. 파업이 시작된 날은 2007년 6월 30일로, 소위 ‘비정규직보호법’이 시행되는 7월 1일을 염두에 두고 결행했다고 한다. 당시 이미 한국 사회에 만연해 있던 문제, 즉 외주화와 비정규직 양산, 고용의 불안, 더 나아가 삶 자체의 불안을 국가가 법적으로 용인한 바로 그 날 말이다.

이 파업은 회사가 고용한 용역 깡패의 집회 방해와 경찰의 폭력 진압을 500 여 일 동안 버티다가 12명의 집행부가 복직을 포기하는 조건으로 나머지 직원이 복직하는 미결의 승리로 끝났다. 홈에버 파업은 어떻게 보면 파업의 주체, 시점, 국가의 대응 모두가 이후의 파국적 상황에 대한 암시와도 같았으니, 이들의 파업이 끝난 다음 해인 2009년에는 쌍용차 사태가 벌어졌고, 2014년 오늘날 우리는 한 여성 비정규직과 경비 노동자의 죽음을 대면하고 있다.

 

늦었지만 절박하게 찾아 온 영화

대다수의 사람이 상시적인 생계의 불안을 감당해야 하는 지금 <카트>가 개봉한 것은 뒤늦게 찾아 와서 더 절박한 느낌이다. 이 영화는 앞서 얘기한 홈에버 사태의 경과를 각색하여 회고하되, 당위를 강요하지도 무겁지도 않게 피부에 와 닿는 공감을 이끌어낸다. 그리고 이를 통해 우리가 마침내 공유해야 할 어떤 통찰을 스스로 발견하도록 돕고 있다.

이 영화에서 계산원 역시 반찬값이 아니라 생활비를 벌기 위해 일한다는 항변은 교활한 사측 협상 위원의 언사에 국한되지 않고, 이 차별적 구조에 익숙해진 우리의 잔인한 의식을 향한다. 상대적 우위에 안도하고 우월감에 젖어 있는 한, 이 상대적 우위의 달콤함을 누리는 이들은 줄어들고 고난과 불안에 시달리는 이들은 늘어날 것이다. 차별이 심해질수록 불안은 가중되는 것이다. 계산원의 항변은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처한 생계의 곤란함을 함께 걱정해 달라는 호소로 들린다. 이 영화를 보고 나니 비로소 마트 계산원과 청소 노동자가 눈에 들어오고 궁금해지더라는 어떤 이의 반응과 같이, <카트>의 미덕은 바로 우리 자신이면서 동시에 사회의 투명인간과도 같았던 절대적 다수의 불안정 노동자에 대해 관심을 환기시킨다는 것이다.

또한 <카트>는 사회에 변화를 일으키는 감정은 ‘억울함’이라고 말한다. 파업을 하면서 비로소 각성하게 된 한선희(염정아 분)는 편의점 알바를 하고도 급여를 제대로 받지 못한 아들을 도와 편의점 사장으로부터 돈을 받아 낸다. 이 때 한선희의 아들이 하는 말이 이를 보여 준다: “억울해서 잠을 못 잤어. 알바 한 돈 못 받아서. 엄마가 내 억울함을 풀어 줬어.” 약자의 억울함을 하나씩 풀어 가는 과정이 바로 사회의 진보인 것이다. 이용 당하고 천대 받고 내팽겨 쳐지는 억울함, 이 억울함을 호소하는 파업의 권리를 국가가 짓밟는 억울함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된다.

 

양심의 버튼을 누르는 영화 <카트>

<카트>는 함께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무척 많은 영화다. 실화가 된 홈에버 사태에 관해서나 이 영화 안에 담겨 있는 이야기에 대해, 또는 더 나아가 외주화 및 비정규직 문제와 노동조합 활동, 그리고 파업에 대해서도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불안이 억울함을 잠식하고 있는 시대에 이 영화는 우리 각자의 마음 한 켠에 간직한 양심의 버튼을 누른다. 버튼이 눌리고 나면 일상의 장막에 가려져 있던 어떤 것이 새롭게 보이게 될지도 모른다. 지면에서 못다 한 얘기를 우리 각자의 버튼을 켜고 나눠 보고 싶다.

 

 

“자신이 다니는 직장에서 싸우는 게 정말 어려운 거죠. 직장은 생계가 달려 있는 곳 아닙니까. 집회에서는 대통령도 욕할 수 있지만 직장에서 과장 욕 할 수 있나요? 진검승부는 거리가 아니라 직장에서 하는 거예요. 그 싸움을 치열하게 해야 합니다. 세상을 바꾸고 싶다면 자신이 일하는 직장을 바꿔야 해요.”

“기다린다고 해서 비정규직 문제는 해결되지 않아요. 그런데 비정규직 노동자가 직접 나서기는 정말 어렵죠. 정규직 노동자들이 다시 한 번 생각해야 해요. 비정규직 문제를 방치하는 것이 자신들에게 이익인지 말입니다.”

“직장 내에서 싸우지 않으면 자신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아요. 비정규직 노동자가 노조에 가입하고, 노조가 회사와 대등한 관계에서 협상을 할 수 있을 때, 그게 진정한 민주주의죠. 직장 바깥의 민주주의는 어느 정도 이뤄진 것 같아요. 그러나 직장 내 민주주의는 후퇴하고 있어요.”

 

– 김경욱 전 이랜드노조위원장, 2008년 11월 23일자 경향신문 기사

대구 집, 아니 이제는 부모님 집이라 불러야 할 그 동네에서 흐뭇한 뉴스가 나왔다. 소규모 자동차 부품 생산 하청 업체 삼우정밀에서 노조를 결성했고, 이 노조가 이주노동자를 동일한 노조원으로 가입시키는 성취를 이루었다는 것이다.
어머니도 아직 성서 인근 섬유회사에서 비정규 기능직으로 일을 하고 있다.(그리고 자식은 정규직을 포기하고 나와 미쳤다고 비정규 임시직으로 일하고 있다.) 그 곳에도 이주노동자들이 있다 한다. (사실 대구 성서 인근에는 이주노동자들이 많다. 명절 때면 텅 빈 성서 아파트 단지를 이주노동자들이 누비는 것을 보는 건 이제 자연스러운 풍경이 됐다.) 어머니 얘기로는 그 곳 한국인 노동자들은 이주노동자들과 반목 없이 개인적으로 친밀하게 지내고 있다 한다.
그러나 한국인 노동자와 이주노동자의 친밀함, 더 나아가 연대는 상식적인 제도가 되어야 한다. 노동자의 위계화로 인한 내부의 균열은 노동자 전체 삶의 황폐함으로 돌아오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동이 자신을 쪼개지 않고 단일하게 자본에 제시할 때만 비로소 자본에 대항할 힘이 생긴다.(단일자는 단일자하고만 말하고 싶어 한다.) 이건 당연한 원칙이지만 언제나 힘들다. 눈앞의 가시적인 박탈감이 당장의 투쟁을 만들기 때문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에 놓인 강보다 한국인 노동자와 이주노동자 사이에 놓인 강은 더 깊고 넓다. 삼우정밀 노조는 그 강을 건넘으로써 모범 사례를 제시했다. 그들은 지혜로왔다.

뉴스 원문 : 프레시안

  “피부색은 달라도, 노조활동은 같이 합니다”
  [기고] 이주노동자에 ‘유니온샵’ 적용한 삼우정밀 노조
  2007-09-18 오후 3:34:22

  산업 현장에서 이주노동자들을 만나는 것은 이제 흔한 일이다. 하지만 이들 대부분은 노동인권의 사각지대에 있다. 법과 제도에 의해서만 소외된 것이 아니다. 심지어 노동운동에서조차 소외된 경우가 많다. 그런데 대구에 있는 자동차 부품업체인 삼우정밀의 경우, 이주노동자들에게도 유니온샵을 적용해 눈길을 끈다. (☞ 유니온샵이란?)
 
  피부색은 달라도, 노동자라는 점에서는 다를 게 없기 때문이다. 또 유니온샵은 단결권이 사실상 봉쇄돼 있는 이주노동자들이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확보할 수 있는 유력한 방법이기도 하다.
 
  그리고 열악한 노동 조건 속에서 노동조합을 만들고, 이주노동자에 대한 유니온샵 적용을 보장받는 과정에서 삼우정밀 노동자들은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인식을 드러냈다.
 
  “이주노동자들과 함께 하지 않고, 한국인 노동자들만 임금을 올린다면, 순간은 임금이 오를지 모르지만, 회사는 더 손쉽게 사용하고 더 적은 임금을 줘도 되는 이주노동자를 이용하여 한국인 노동자와 이주노동자를 분리하고 노동자를 분할 통제하여 근본적으로 저임금 구조를 깰 수 없다. 노동조합이 노동자 권리확보를 위해서 낮은 곳의 문제를 덮어 두고, 몇몇만 더 좋은 노동조건을 갖춘다는 것은 사실상 허구”라는 것. 전체 노동운동에 큰 시사점을 주는 대목이다. 다음은 삼우정밀의 사례를 소개한 글이다. <편집자>
 
  삼우정밀은 전체 사원 100명이 채 못되는 규모의 자동차 부품업체입니다. 현대, 기아차에 엔진주변 부품을 생산하여 납품하는 1차 하청업체입니다.
 
  그러나 전체적인 경영 상태는 영세성을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원청의 저단가 정책은 고스란히, 영세 하청업체의 저임금정책을 낳고 있는 것이지요.
 
  “같이 고생하는 처지는 마찬가지인데….”
 
  이주노동자들이 삼우정밀에서 일하기 시작한 건 2003년 무렵입니다. 당시 3공단에서 성서공단으로 이전을 하면서 기숙사를 짓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이주노동자들을 고용하기 시작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현재 한국인 노동자들과 똑같이 현장 라인에 배치되어 프레스, 조립, 포장일 들을 합니다.
  

▲ 이주노동자들. 위험하고 힘든 일을 하는면서도, 법적인 보호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진집단 현장

  당시에는 회사에서 이주노동자를 고용하든, 비정규직을 고용하든 삼우정밀 노동자들이 말할 입장이 못 됐습니다. 한국인 노동자들도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면서 특별한 이질감은 없었고, 지내면서 같이 고생하고 산다는 현장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형성되었습니다.
 
  그러던 가운데 한국인 노동자 중심으로 노조가 설립되면서 이주노동자들이 함께하지 못하고, 또 회사에서 방해하면서 일순 어색한 분위기가 형성되기도 했습니다.
 
  삼우정밀에는 현재 22명의 인도네시아 노동자들이 근무하고 있습니다. 대체로 산업연수생 취업비자로 근무하고 있고, 작년 10월경에 입사한 2명 정도만 고용허가제로 입사하였습니다.
 
  이들 중 최근에 3년 근무기간이 만료된 5명 중에서 결혼 때문에 인도네시아로 돌아가겠다는 의사를 밝힌 이라완을 제외하고 4명에 대해 계약연장을 노조에서 회사에 요구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이들 4명은 계약연장을 한 뒤 지난 월요일에 인도네시아로 출국했고 다음 달에 돌아올 예정입니다. 아마도 이러한 절차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이들은 지금쯤 미등록노동자가 돼 있었을 것입니다.
 
  금속노조 삼우정밀 지회는 작년 12월 달에 설립된 대구지부 신규지회입니다. 2006년도 47명의 조합원으로 출발하여 현재는 43명입니다. 몇 명이 퇴사했거든요.
 
  노동조합이 힘을 얻으려면, 이주노동자와 함께 해야
 
  삼우정밀은 대구지역 성서공단에 위치하고 있고, 성서공단은 100인 미만 영세사업장이 밀집한 공단지역입니다. 공단사업주들이 “노조 생기면 회사 망한다”는 반(反) 노조의식을 광범위하게 유포시키고 있는 지역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노동조합을 지키고 단체협약을 체결하는 것이 결코 만만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12월 달 노조를 설립하고 회사의 금형반출, 노조불인정 등 많은 악조건을 뚫고 2006년 12월부터 2007년 7월까지 장장 8개월간 크고 작은 일들을 겪으며 교섭과 투쟁을 진행했습니다.
 
  노동조합 인정, 단체협약 체결(조합활동 보장, 근로조건 저하 없는 주40시간제, 고용안정 및 후생복지, 노동안전 등), 임금인상, 금속노조 중앙협약 및 지부 집단교섭 결과 수용 등이 주요 내용이었습니다. 이 중에서 이주노동자 관련해서는 ‘유니온샵’ 인정과 단체협약 동일적용, 임금인상 동일적용이 핵심 요구였습니다.
 
  특히 유니온샵 인정은 단체교섭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요구였고, 지난한 투쟁을 통해 이주노동자를 포함하는 유니온샵을 따내고, 단체협약 동일적용 및 임금인상 동일적용을 쟁취했습니다. 상여금 인상에서는 단계적 인상으로 최종 노ㆍ사 합의를 도출하게 되었습니다.
 
  삼우정밀 현장근무 노동자는 약 80여 명입니다. 이중에서 이주노동자가 20여 명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번 단체교섭에서 이주노동자들의 권리를 동등하게 보장하라고 요구한 배경에는 여러 가지 이유와 계기가 있습니다.
 
  우선 지회를 설립하고 노동조합이 현장을 장악하기 위해서는 이주노동자와 함께해야 한다는 요구가 자연스럽게 생겼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이주노동자들과 함께하게 된 첫 번째 동기입니다.
 
  “노조와 함께하면 출국한다”는 협박
 
  우리가 밤마다 이주노동자들을 만나기 시작하자 회사 관리부장은 이주노동자들을 협박했습니다.
 
  또한 “노조와 함께하면 출국 조치한다”는 송출업체의 한마디는 이주노동자들을 얼어붙게 만들었습니다. 그 이후로 노조는 이주노동자와의 만남을 철저하게 비밀리에 진행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노동조합은 이주노동자 조직화가 한국의 이주노동자에 대한 제도적인 문제와 회사 및 송출업체의 횡포에 이주노동자들이 스스로 대항하기 어렵다는 현실을 이해하게 되었고, 단체협약 요구사항의 하나로 이주노동자까지 포함하는 유니온샵을 통해서 조직하는 것으로 확고한 방침을 굳히게 되었습니다.
 
  두 번째는 삼우정밀의 근무하는 모든 노동자들은 저임금의 구조에 놓여있고 저임금을 고착화하는 수단으로 회사는 이주노동자들을 이용하고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삼우정밀에서 일하는 한국인 현장 노동자라 할지라도 조합원의 3분의 2는 법정최저임금에 묶여 있는 현실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주노동자들에게는 법정 최저임금외에 상여금은 한 푼도 주지 않고 연차 수당 등을 지급하지 않는 등의 불이익까지 주었습니다.
 
  “한국인 노동자 임금만 올려서는 저임금 구조 깰 수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주노동자들과 함께 하지 않고, 한국인 노동자들만 임금을 올린다면, 순간은 임금이 오를지 모르지만, 회사는 더 손쉽게 사용하고 더 적은 임금을 줘도 되는 이주노동자를 이용하여 한국인 노동자와 이주노동자를 분리하고 노동자를 분할 통제하여 근본적으로 저임금 구조를 깰 수 없다”는 현실 인식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노동조합이 노동자 권리확보를 위해서 낮은 곳의 문제를 덮어 두고, 몇몇만 더 좋은 노동조건을 갖춘다는 것은 사실상 허구”라는 입장정리를 하였습니다. 따라서 이주노동자의 문제는 당연하게 핵심요구로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삼우정밀에서 단체교섭을 약 8개월간 진행하면서 최대 핵심이 유니온 샵이었다는 것은 사 측이 그만큼 이주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같이 한다는 것에 강력히 저항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이주노동자를 ‘저임금 고착화’ 수단으로 쓰는 회사, ‘유니온샵’은 끝내 반대
 
  우리는 교섭막판까지 유니온샵은 인정하는데 조합비 일괄공제는 할 수 없다고 했지요. 회사는 “유니온샵을 하더라도 이주노동자들이 노조에 참여하지 않으면 노조도 어쩔 수 없을 것이다”는 생각을 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주노동자들은 9월 달에 조합비 일괄공제 서명을 해서 회사에 제출 했습니다. (참고로, 이주노동자들이 이국땅에서 뭔가에 서명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또 하나가 있습니다. 단체교섭 막바지에서 이주노동자 문제가 끝까지 쟁점이 되자. 회사는 “동등대우는 명문화하고 유니온샵은 안 된다”라고 했지만, 노동조합은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하면 결국은 전부를 잃게 될 것이라는 입장을 고수하며 마지막까지 사측과 첨예하게 대립하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인식하에 추진한 이번의 단협체결 노력은 기존 노동조합 활동에 대한 반성의 산물입니다. 또한 이것을 가능하게 한 주요한 요인은 바로 공동의 노력과 행동이기도 합니다.
 
  삼우정밀, 성서노조 이주사업부, 금속노조 대구지부, 삼우정밀 이주노동자들과 함께 ‘삼우정밀 이주노동자 대책회의’를 구성하고 매주 금요일 저녁 10시에 모여서 상황을 점검하고, 대책활동을 전개 했습니다.
 
  인도네시아 글로 대자보 붙이고, 함께 팔 흔들며 격려하고…
 
  한국인 조합원들에 이주노동자들이 처한 한국에서의 현실에 대한 교육사업을 추진하고 한편으로 교섭상황을 이주노동자들과 지속적으로 공유하고, 기숙사에 간단한 인도네시아 글로 대자보 붙이기, 투쟁 과정에서 이주노동자들 전체와 간담회를 진행하는 사업들을 펼쳤습니다.
 
  특히 대책회의에서는 성서노조 이주사업부 인도네시아 활동가인 ‘페리’동지 덕분에 이주노동자와 함께하는 대책회의에서 의사소통을 원활하게 할 수 있었습니다.
 
  현장 일상 활동에서는 한국인 노동자와 이주노동자간에 인사하기 등 현장 분위기에서부터 투쟁과정에 이르기 까지 “노동자는 하나다”라는 원칙을 세우기 위한 많은 노력들이 있었습니다.
 
  삼우정밀 지회에서 교섭이 난항을 겪고, 삼우지회 한국인 노동자들이 파업에 돌입하고 현장을 순회할 때는 이주노동자들이 파업대오에 함께 할 수는 없었지만 작업장에서 함께 팔을 흔들면서 마음만은 함께하는 모습을 보여주어 한국인 파업대오에 힘을 불어 넣어 주기도 하였습니다.
 
  “내가 이주노동자들과 함께 노동조합을 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끝으로 가장 중요했던 것은 삼우정밀 지회 조합원들이 교육과 조합원 총회를 통하여 이주노동자들과 함께 할 때만이 노동조합을 지키고, 삼우노동자의 권리를 확보 할 수 있다는 확고한 인식을 가졌고, 총회를 통해 그 결의를 흔들림 없게 하였습니다.
 
  삼우정밀 조합원들은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다시 배우고 있습니다. 한 아줌마 조합원은 대구지부 노보에 이렇게 글을 적었습니다. “내가 이주노동자들과 함께 노동조합을 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말입니다. 노동자의 눈을 갖고 노동자로 다시 태어 난 것을 오히려 감격해 합니다.
 
  ‘유니온샵’은 이주노동자들의 노동3권을 보장하는 유일한 방법
 
  삼우정밀에서 이주노동자들은 법적으로는 조합에 가입할 권리가 있다. 그러나 기업 내에서 산업연수생 신분이거나, 고용허가제 노동자들의 단결권은 사실상 구조적으로 봉쇄되어 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삼우정밀에서의 유니온샵은 이주노동자들의 노동3권을 보장하는 유일한 출구입니다.
 
  아무리 유니온샵을 하더라고 노동조합은 자주적인 조직임을 확인하고, 자발적으로 노동조합에 참가할 때 노동자의 권리를 지켜 질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삼우정밀 이주노동자들은 빠르게 주체적으로 노동조합의 주인이 되고 있습니다.
 
  앞으로 입국하는 노동자들도 조합원이 되냐고요? 당연합니다. 한국인, 이주노동자 할 것 없이 새로 입사하는 노동자는 조합원이 되는 것이니까요.
 
  “삼우메탈 유니온 짱!”
 
  삼우정밀 이주노동자들은 이제 금속노조 조합원이 된 것을 자랑스러워하고 다른 이주노동자 친구들에 얘기 합니다. 자부심이 상당합니다. 현장에서 이제는 눈치 안보고 일해, 임금도 같이 올라, 노동조합도 같이해, 앞으로 스트라이크도 같이 할 거라고 얘기 합니다. 그들은 “삼우메탈 유니온 짱!” 이렇게 말하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웁니다.
 
  최근에는 3년 근로계약이 끝나고, 회사가 계약연장을 거부하는 것을 노동조합에서 회사와 교섭을 하여 계약연장을 관철하였습니다. 이번에 인도네시아로 돌아갔다 오는 4명의 인도네시아 친구들은 조합간부들과 감포 바닷가에도 같이 갔다 오고, 삼우정밀조합원과 식당에서 환송식도 같이 했습니다.
 
  사진 찍고, 비디오에 다 담아서 인도네시아로 갔다가 한 달 후에 다시 돌아 올 겁니다. 인도네시아에서 식구들과 친지들에 보여 주고 한국에서의 얘기를 하겠지요, 그들의 얘기들이 기다려집니다.
 
  통역 확보, 고용허가제 개정…. 민주노총의 지원이 절실하다
 
  이주노동자들과 함께 일하면서 현장 작업에서의 큰 어려움은 없습니다. 가장 큰 어려움이라면 일상적 소통에서 대화가 어렵다는 것이고요. 또한 노동조합 활동에서는 금속노조, 민주노총 차원에서 지원책이 준비되어 있지 않은 것이 커다란 어려움입니다.
 
  단체협약을 체결해도 인도네이사아어로 번역이 되어야 하는 문제, 이후 조합원 총회나, 교육을 일상적으로 진행해야 하는데 통역의 문제 등 앞으로 해결해야 될 과제가 많습니다. 그리고, 현행 고용허가제가 매년 계약을 갱신하도록 하고 있어 이 문제도 해결해야 할 과제입니다.
 
  당장은 이주노동자 조합원 교육을 첫 번째로 진행해야 할 것이고, 한국인 노동자들과 이주노동자들이 함께 삼우정밀 최초의 조합원 총회를 진행하는 것입니다.
 
  그 자리에서 우리는 임단투 시기 같이 배웠던 노동가요 ‘노동자는 하나다’를 힘차게 같이 부를 것입니다. 또한 삼우정밀 이주노동자 대의원을 선출해서 노동조합 일상 활동과 의사결정에 함께 참여 하도록 할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하나가 되는 과정이었다면 이제는 하나로 단결하고 함께 연대 활동을 펼치는 과정으로 더 큰 노동자의 하나됨을 위해서 전진하는데 최선을 다 할 것입니다.

   
 
  김형계/금속노조 대구지부 수석 부지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