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고와 시뮬라크르

-현대철학과 현대예술의 동형성에 관하여-

사물  

발터 벤야민은 복제의 등장으로 아우라가 파괴되는 것을 ‘현대'(Moderne)의 징후로 보았다. 그에게서 ‘아우라’는 “아무리 가까이 있더라도 어떤 먼 것의 나타남”이라 규정된다. 이 표현 속에 들어있는 “나타남”이라는 낱말을 우리는 ‘현전의 체험’이라는 익숙한 표현으로 번역할 수 있을 것이다. “일회성과 지속성”을 가진 원작과는 달리 기술복제의 산물들은 그저 “일시성과 반복성”만을 가질 뿐이다. 하지만 이 일시적으로 반복되는 복제물들은 단지 원작을 베끼는 데에 그치는 게 아니라 원작 자체에 존재론적 영향을 끼쳐, 현실성 혹은 현실감의 상실을 가져온다. 그것들은 “사물의 역사적 증언가치”를 위협하고, 그 결과 “위험에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은 사물의 권위이다.”

벤야민이 살던 당시에 복제기술은 단지 원작을 베끼는 수준에서 벗어나 창작과정 자체에 변화를 초래하고 있었다. 이미 드가는 창작에 사진을 활용한 바 있다. 프랜시스 베이컨과 앤디 워홀이 모델 없이 오직 복제물인 사진만으로 작업을 하기 훨씬 이전에, 예술에서는 이미 사물성의 상실이 시작되고 있었다. 가령 모네의 <루앵 성당> 연작에서 돌로 된 스콜라 철학은 그 견고한 사물성을 잃고 물에 비친 그림자처럼 흐늘거리는 여러 장의 시뮬라크르들 속으로 해체된다. 이 시뮬라크르들에 다시 견고한 사물성을 되돌려주려 한 세잔느는 사물의 마지막 구원자였는지도 모른다. 이 마지막 구원의 시도가 좌초한 지점에서 재현을 포기한 현대예술이 시작된다.

“시뮬라크르는 단순히 하나의 복사물이 아니라는 것. 그것은 복사물의 개념 그리고 모델의 개념 자체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는 것.” 들뢰즈가 플라톤을 대신하여 이렇게 말했을 때, 그는 벤야민이 말한 ‘아우라’ 혹은 ‘사물의 권위’의 상실을 염두에 두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플라톤이 우려하고 벤야민이 환호한 대로, 복사물의 존재는 그것이 복제하고 있는 원작에까지도 존재론적 영향을 끼친다. “일회성과 지속성”을 갖는 사물의 세계가 서서히 “일시성과 반복성”을 갖는 시뮬라크르의 세계로 변해가는 것, 그리하여 도처에서 “사물의 권위”가 무너지는 것이, 전통과 뿌리를 상실하고 부유하는 ‘현대’의 시대적 징후다.

이 징후가 벤야민에게는 기술의 진보로 실현된 민주주의 문화의 특징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문화보수주의자들에게 그것은 존재의 근원에서 멀어지는 몰락의 징후일 뿐이었다. 시뮬라크르는 그저 예술만의 현상도 아니고, 지각만의 문제도 아니다. 어느새 그것은 우리의 생활세계 전체를 규정하는 개념이 되었다. 실제로 자본주의적 생산은 “일회성과 지속성”을 갖는 장인적 공예를 “일시성과 반복성”을 갖는 기성품의 대량생산으로 바꾸어 놓는다. 뒤샹은 대량생산된 레디메이드를 예술에 도입함으로써 자본주의하에서 유일하게 유일물을 생산하던 예술가의 장인적 창작을 해체시켜버렸다. 그리하여 또 다시 “위험한 상태에 놓인 것은 사물의 권위다.”

기호

줄리아 크리스테바와의 대담에서 데리다는 소쉬르의 기호학이 가진 두 가지 모순되는 측면에 대해 언급한다. 한편으로 그는 기호를 ‘기표와 기의’의 결합으로 규정한다. 이때 한 기호에 의미를 주는 것은 물론 초월적 기의의 의식내적 ‘현전’일 것이다. 여기서 소쉬르는 근대의 형이상학자로 나타난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 소쉬르는 ‘기호란 그 자체로서가 아니라 오직 다른 기호와의 대립 속에서만 비로소 의미를 갖는다’고 말한다. 그게 사실이라면, 이 경우 그 기호에 의미를 주는 것은 ‘현전’이 아니라 다른 기호와의 ‘차이’일 것이다. 여기에서 근대의 형이상학자 소쉬르는 돌연 탈근대적인 차이의 철학자로 나타난다.

낱말의 의미가 ‘차이’에 있다면, 설사 ‘현전’의 체험이라는 것이 가능하다 해도, 눈앞에 ‘현전’하는 그 ‘기의’는 더 이상 ‘초월적’인 것이 아니라 ‘차이에 의해 구조화된 언어 ‘내재적’ 현상일 것이다. ‘내재적 기의’란 결국 또 하나의 기표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이 새로운 기표의 의미는 다시 또 다른 ‘내재적 기의’, 즉 또 하나의 기표에 의존한다. 기표의 밖으로의 초월의 도약은 불가능하다. 기표에 의미를 부여하는 기의가 결국 또 다른 기표에 불과하다면, ‘기표+기의’라는 기호의 정의 자체가 위험해진다. 그리하여 데리다는 지붕에 올라간 후 사다리를 치워버려야 했던 어느 철학자처럼 어느 단계에선가 ‘기호’의 개념을 버릴 것을 제안한다.

현전의 형이상학의 붕괴는 이미 현대예술에서 재현의 붕괴로 예고되었다. 회화의 이념도 시대의 에피스테메에 규정되는 것이라 15세기에서 19세기까지의 근대회화는 ‘환영주의’의 원리를 따르고 있었다. 회화는 가시적 세계의 시각적 재현이며, 그것의 진리성은 원본과의 일치에 있었다. 하지만 20세기에 들어와 회화는 외부 세계의 재현을 포기하고, 순수한 형태와 색채의 유희가 된다. 추상회화는 더 이상 사물을 재현하지 않는다. 그것은 더 이상 그 닮음을 통해 그림 밖의 대상을 지시하는 기호이기를 포기하고, 그 자체가 하나의 사물이 된다. 현대회화가 지시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오직 자기 자신뿐이다.

기호란 정의상 자기가 아닌 다른 것을 대리하는(‘stand for’) 것이다. 그러나 기호가 대리하는 것이 결국 또 다른 기호에 불과하다면, 그것은 더 이상 기호가 아닐 것이다. 기호가 아닌 기호, 자기 자신을 가리키는 기호의 예를 우리는 재현을 포기하고 대상성을 상실한 현대회화의 자기지시성(referentiality)에서 찾을 수 있다. 읽을 수 없는 문자의 모양을 한 앙리 미쇼의 작품은, 현전을 포기하고 초월을 지시하지 않는 기호, 기호 아닌 기호의 예술적 엠블렘이다. 칼리그람이 아닌 칼리그람은 말로 지시를 하지도 않으며 현전을 보여주지도 않는, 순수한 기표의 유희다. 현대회화는 기호를 흉내낸 기호, 즉 시뮬라크르다. 그리하여 오늘날 위험한 상태에 놓인 것은 기호의 권위다.

흔적

‘재현’의 에피스테메 근거한 근대의 환영주의 예술을 포기한 후 현대의 예술가들의 창작은 중세의 장인의 그것을 닮아간다. ‘아직’ 사물과 기호가 두 개의 존재질서로 나뉘어 재현관계를 맺지 않고 있었던 중세에, 장인들은 가시적 대상의 재현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창작을 무엇보다도 ‘재료의 처리’로 이해했고, 이는 ‘이미’ 근대의 환영주의를 포기한 현대예술가들의 창작원리로 부활한다. 중세의 필사본의 미니어처, 중세 성당 안의 모자이크와 스테인드글라스가 현대예술을 연상시키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 안에서는 형태와 색채가 가시적 대상과의 닮음을 창조하는 데에 복무할 필요성에서 해방되어 자유로이 유희하고 있기 때문이다. 데리다의 기표들 역시 초월을 지시할 의무에서 해방되어 자유로이 유희하는 시뮬라크르다.

볼프강 벨쉬에 따르면 데리다는 자기의 사상을 구축하는 시기에 현대의 추상예술, 특히 당시에 프랑스에서 일어난 앵포르멜 운동의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앵포르멜’이란 굳이 분류하자면 추상표현주의 계열에 속하나, 미국에서 발생한 ‘액션페인팅’과 달리 그리기의 행위성이 아니라 그 행위가 남긴 자취에 주목을 한다. 가령 물감을 칠한 인체가 지나간 흔적을 남기는 이브 클라인의 퍼포먼스를 생각해 보라. 미술은 이렇게 더 이상 가시적 대상을 ‘현전’시키지 않는다. 다만 우리 눈앞에 흔적만을 남길 뿐이다. 데리다의 사상과의 친연성은 명백하다. 데리다에게 의미란 한꺼번에 주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초월을 포기한 시뮬라크르들 무한연쇄 속에 존재하는 듯 부재하는 듯, 그렇게 ‘흔적’으로 존재할 뿐이다. 우연의 일치일까?

그 이름이 암시하듯이 앵포르멜에서는 초기 추상과는 달리 ‘형태'(form)마저 해체된다. 중세의 장인들의 창작은 ‘재료’에 기하학적 ‘형태’를 주는 것이었다. 그 바탕에는 물론 기독교적으로 재해석된 플라톤주의가 깔려있었다. 마찬가지로 재료에 기하학적 형태를 준 초기 추상화가들, 가령 몬드리안의 작품은 비록 가시적 대상의 재현을 포기했으나 재현 자체를 포기한 것은 아니다. 그의 작품은 감각의 눈으로 볼 수 없는 사물의 비가시적 본질을 재현한다는 의미에서 매우 플라톤적이다. 하지만 앵포르멜은 다르다. 그것은 ‘형태’마저 해체시킨다. 그리고 ‘마티에르’의 질감을 그대로 드러낸다. 여기서 재료는 형태로 관념화하지 않고 물질로 남는다. 데리다의 시니피앙 역시 소쉬르의 그것처럼 의식내적 현상으로 관념화하여 초월적 기의로 승화하지 않고 물질로 남는다.

상사

칼리그람은 현전의 형이상학을 위한 엠블렘이다. 칼리그람은 ‘말하기’와 ‘보여주기’를 통해 이중으로 의미를 고정시키는 데에 사용된다. 하지만 마그리트의 칼리그람은 다르다. 그것은 외려 현전을 파괴한다. 그의 작품 속에서 의미는 고정되지 않는다.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는 참인지 거짓인지 결정할 토대를 제공해 주지 않는다. 연작의 두 번 째 버전은, 그 어떤 것도 작품의 최종적 해석임을 주장하지 않는 여러 개의 시뮬라크르(“일곱개의 봉인”)로 해체된다. 여기서 의미는 고정되지 않는다. 의미의 일의적 동일시는 불가능하다.

마그리트는 유사(ressemblance)와 상사(similitude)를 분리해 내고, 후자로 하여금 전자에 반대하게 만드는 것 같다. ‘유사’에게는 주인이 있다. 근원이 되는 요소가 그것으로서, 그로부터 출발하여 연속적으로 복제가 가능하게 되는데, 그 사본들은 근원으로부터 멀어질수록 점점 약화됨으로써, 그 근원요소를 중심으로 질서가 세워지고 위계화된다. 유사하다는 것은 지시하고 분류하는 제1의 참조물을 전제로 한다. 반면 비슷한 것은 시작도 끝도 없고, 어느 방향으로도 나아갈 수 있으며, 어떤 서열에도 복종하지 않으면서, 조금씩 퍼져나가는 계열선을 따라 전개된다 (S.72)

마그리트의 작품에는 3차원 공간의 환영이 있다. 그리고 그 안의 대상들은 일러스트레이션을 연상시킬 정도로 정확한 자연주의적 묘사로 재현되어 있어, 현실의 사물을 쏙 빼닮았다.  하지만 닮음을 통해 지시를 하려고 했던 근대의 환영주의 회화에서와는 달리 마그리트에게서 유사성은 더 이상 현실의 대상을 지시하는 데에 사용되지 않는다. 그의 칼리그람에서 ‘닮음’은 현실의 대상을 지시하는 데에 늘 실패한다. 가방은 ‘하늘’이 되고, 주머니칼은 ‘새’가 되고, 나뭇잎은 탁자가 된다. 스폰지는 ‘스폰지’가 되기도 하나, 이 현전은 한갓 우연으로 나타난다.

유사는 재현에 쓰이며, 재현은 유사를 지배한다. 상사는 반복에 쓰이며, 반복은 상사의 길을 따라 달린다. 유사는 전범에 따라 정돈되면서, 또한 그 전범을 다시 이끌고 가 안정시켜야 하는 책임을 떠맡는다. 상사는 비슷한 것으로의 한없고 가역적인 관계로서의 시물라크르를 순환시킨다 (S.73)

그의 작품에 ‘닮음’이 있다면, 그것은 원본과의 유사성이 아니다. 원본이 없는 복제, 굳이 원본과의 일치를 전제하지 않는 시뮬라크르들 사이의 서로 닮음, 즉 상사일 뿐이다. 그의 그림은 원본과의 동일시를 위한 것이 아니다. 그림의 의미는 탈동일화한다. 조형 요소의 의미는 소쉬르가 말하듯이 기표와 기의의 통일, 즉 현전이 아니라, 시물라크르들이 만들어내는 ‘차이’의 놀이 속에서 다양하게 무한히 전개된다.

이 전사술 덕분에 우리는 유사에 대한 상사의 우위를 알게 되었다. 유사는 (이미) 눈에 보이는 것을 재인식하게 하지만, 상사는 알아볼 수 있는 대상, 친숙한 실루엣이 감추어 못 보게 하고 보이지 않게 하는 것을 보게 한다. 유사는 유일한, 언제나 똑같은 단언을 내포한다. ‘이것, 그것, 또 저것. 그것은 저것이다.’ 상사는 함께 춤추고 서로 의지하며 서로 겹치는 상이한 단언들을 (여러 겹으로) 배가시킨다. (S.76)

이 차이의 놀이를 통해 의미는 열려진다. 그리고 한번 열려진 의미는 이제 생산적, 창조적 역할을 발휘한다. 그것은 서로 춤추고 서로 의지하며 서로 포개짐으로써 단언의 의미를 다변화한다. 나뭇잎에는 나무가 들어 있고, 새의 형상이 들어 있다. 하늘은 비둘기 모양의 바다를 담고 있고, 맥주병은 자라나 당근이 된다. 유사성은 의미를 고정시키고, 우리의 지각을 고정시켜 ‘나뭇잎은 나뭇잎’이라는 동어반복의 진부한 진리를 말한다. 반면 상사의 놀이는 친숙한 사물의 질서가 가리는 세계의 측면을 우리에게 새로이 열어 보여준다. 유사성의 재현은 우리에게 가시적인 대상을 보여주지만, 상사성의 유희는 우리로 하여금 보게 만들어준다. 그리하여 여기에는 모종의 해방의 즐거움이 있다.

언젠가 이미지 그 자체와 그것이 달고 있는 이름이 함께 길다란 계열선을 따라 무한히 이동하는 상사에 의해 탈동일화되는 날이 올 것이다. 캠벨, 캠벨, 캠벨. (S.89)

숭고

“텍스트 밖에 아무 것도 없다”는 데리다의 명제는 기호의 밖에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다만 언어적으로 분절되지 않은 세계, 기호의 체계로 구조화되지 않은 세계, 그 어떤 형이상학으로도 해석되지 않은 세계의 체험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결국 실재론과 관념론의 안티노미라는 의식철학의 낡은 패러다임이 오늘날 언어학적 전회를 거쳐 기호학적으로 변주되고 있는 것이다. 칸트가 인식을 현상세계로 제한했듯이, 탈근대의 기호학은 유의미한 언표가 이루어지는 세계의 한계를 시뮬라크르의 현상계로 제한한다. 칸트에게 현상계 밖에 비록 언표될 수는 없으나 물 자체가 존재해야 했듯이, 시뮬라크르의 저편(dehors)에는 언표될 수 없는 그 무언가가 존재한다. 그곳은 숭고의 영역이다.

료타르는 재현을 포기한 현대회화를 “숭고의 부정적 묘사”라 부른다. 숭고의 묘사에는 간접적 방식과 직접적 방식이 있다. 숭고의 간접적 묘사의 예를 우리는 낭만주의 화가들의 자연숭고의 묘사에서 볼 수 있을 것이다. 숭고의 부정적 묘사의 예는 헤브라이의 신의 율법에서 찾을 수 있다. 야훼는 인간에게 눈에 보이는 사물의 형상을 만드는 것을 금지했듯이, 현대의 예술은 가시적 대상의 모방을 스스로 포기했다. 20세기에 들어와 회화는 재현을 포기하고, 음악은 조성을 파괴하고, 시는 의미를 포기하고, 연극은 부조리해졌다. 료타르에 따르면 이 모든 것이 실은 숭고를 드러내는 방식이라고 한다. 말하자면 이 세상에는 언어로 묘사할 수 없는 것, 그림으로 재현할 수 없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 스스로 언어적 묘사와 회화적 재현을 포기했다는 것이다.

19세기까지 회화의 이상은 ‘아름다운 가상’이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20세기의 회화는 ‘아름다움’도 포기하고, ‘가상’으로서의 성격도 포기했다. 그 결과 현대예술은 ‘숭고’의 미학을 따르게 되었다. 료타르는 그 대표적인 예로 버넷 뉴먼의 작품을 든다. 시뮬라크르는 모든 숭고한 것의 아우라를 파괴한다면, 커다라 색면의 병렬로 이루어진 뉴먼의 작품은 그와는 정반대의 체험을 매개하려 한다. “Sublime now”라는 그의 논문 제목이 암시하듯이, 그의 작품이 매개하는 것은 ‘숭고’라는 아우라의 체험이다. 그런 의미에서 앤디 워홀과 버넷 뉴먼의 작품세계는 하나의 동일한 현상의 두 측면인지도 모른다. 워홀의 시뮬라크르의 뉴먼의 숭고 속에서 반복되고 있는 것은 낡은 관념론과 실재론의 대립인지도 모른다.

현시

홉스와 데카르트는 낱말의 혼용을 막는 것을 철학의 임무로 생각했다. 의미를 고정시키려는 근대 형이상학의 강박관념은 한 낱말에 단 하나의 의미만을 대응시키려고 한 초기 비트겐슈타인의 이상언어의 기획에까지 이어진다. 하지만 오늘날의 철학을 지배하는 것은 이와는 전혀 다른 충동인 것 같다. 데리다는 고호의 <구두>에 대한 해석을 둘러싸고 마이어 샤피로와 하이덱거를 함께 비판한다. 서로 대립하는 두 사람이 모두 작품의 최종적 의미를 고정하려고 한다는 데에서는 일치한다는 것이다. 초월의 희망을 포기한 탈근대의 철학자들은 기호작용을 원본과 닮을 의무로부터 해방시키고, 그 결과 세계는 시뮬라크르의 유희가 된다. 시뮬라크르는 원본과의 닮음을 전제하지 않기에, 담론은 참, 거짓의 인식론적 기준 대신에 세계를 새롭게 바라보게 해주는 창조성이라는 미적 기준을 따라 전개된다.

오늘날 진리는 인식론적 재현(representation)이 아니라 예술적 현시(presentation)로 존재한다. 현전의 포기라는 인식론적 회의주의의 멜랑콜리가 창조의 기쁨이라는 미적 낙관주의로 전화했다. 탈근대 철학자들의 글이 문학을 닮아가는 것은 이 때문이다. 가령 푸코의 계보학적 연구는 원본적 재현(representation originaire)이라는 아르토의 잔혹극을 연상시킨다. <쾌락의 활용>에서는 윤리까지 미학화하려 한다. 데리다의 글쓰기가 문학과 철학의 경계를 넘나들고 있음은 널리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들뢰즈는 프랜시스 베이컨의 작품을 토대로 감각론을 발전시키고 있다. 로티는 “구원적 진리” 대한 신학적 열망 대신에 “문학적 문화”를 갖자고 주장한다. 볼프강 벨쉬는 아예 탈근대의 철학이 “현대예술의 정신에서 탄생”했다고 말한다. 탈근대 문화의 유미주의적 경향은 부정할 수 없을 정도로 분명한 사실이다.

또한 그것이 담론의 생산에서 창조적 포텐셜을 갖고 있는 것 역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니체적 창조의 기쁨에 들뜨기 앞서 먼저 이 모든 미적 문화의 바탕을 이루는 두 가지 현상에 대해 비판적 검토가 필요하다. 크게 두 가지가 필요할 것이다. 한편으로는 자본주의적 생산으로 날로 가속화하는 시뮬라크르화에 대한 가치평가, 다른 한편으로는 현전의 형이상학을 파괴한 해체주의의 언어철학적 정당성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 언어는 세계를 그리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가지고 세계 속에서 일을 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언어게임과 맞물려 돌아가는 실천의 차원을 배제한 언어철학은 기호학적 형이상학에 빠지게 된다. 이 실천의 차원이 프랑스의 기호학에서는 완전히 결여되어 있다. 데리다는 과연 언제 비트겐슈타인의 해체에 착수할 것인가?

참고문헌

발터 벤야민,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 in: ‘발터 벤야민의 문예이론’ (반성완 편역) 민음사 1983
자끄 데리다, <기호학과 그라마톨로지> in: ‘입장들’ (박성창 편역) 솔 출판사 1992  
           V rit  en peinture, Paris 1978
장 프랑수아 료타르, <숭엄과 아방가르드> in : ‘포스트모던의 조건’ (유정완 외) 민음사 1999        
미셸 푸코, ‘이것 파이프가 아니다’ (김현 역) 민음사 1998
        ‘성의 역사 II-쾌락의 활용’ (문경자 외) 나남 1999
질 들뢰즈, ‘감각의 논리’ (하태환 역) 민음사 1995
       , <플라톤과 시뮬라크르> in : ‘의미의 논리'(이정우 역) 한길사 1999
Wolfgang Welsch, in: ‘ sthetisches Denken’ Stuttgart 1990

회화 속의 진리

“이 구두라는 도구의 밖으로 드러난 내부의 어두운 틈으로부터 들일을 하러 나선 이의 고통이 응시하고 있으며, 구두라는 도구의 실팍한 무게 가운데는 거친 바람이 부는 넓게 펼쳐진 평탄한 밭고랑을 천천히 걷는 강인함이 쌓여 있고, 구두 가죽 위에는 대지의 습기와 풍요함이 깃들여 있다 (……) 이 구두라는 도구에 스며들어 있는 것은 빵의 확보를 위한 불평 없는 근심과 다시 고난을 극복한 뒤의 말없는 기쁨과 임박한 아기의 출산에 대한 전전긍긍과 죽음의 위협 앞에서의 전율이다. 이 구두라는 도구는 대지에 속해 있으며, 촌아낙네의 세계 가운데서 보존되고 있다.”

하이덱거의 <예술작품의 기원>에 나오는 구절이다. 그런데 미술사학자 마이어 샤피로에 따르면 고호의 그림 속에 등장하는 그 구두는 농민여인의 것이 아니라 “그때쯤에는 이미 도시 사람이 되어 있었던 ‘예술가(=고호) 자신의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그 구두는 “거친 바람이 부는 넓게 펼쳐진 평탄한 밭고랑”이 아니라 파리의 몽마르트 언덕 주변을 걸어다니고 있었을 것이다. 농촌에 도시를 대립시키는 이 해석 속에는 ‘대지로의 귀속성’이라는 표현으로 상징되는 하이덱거의 농민적 파토스에 대한 샤피로의 냉정한 반감이 숨어 있음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그 농민적 이상이란 곧 “대지와 혈통의 신화”라는 나치의 정치적 이상이기도 했다. 마이어 샤피로에게 하이덱거의 고호 해석을 소개한 골트슈타인은 우연하게도(?) 나치의 탄압을 피해 미국으로 건너온 망명객이었다.

샤피로에 따르면 하이덱거는 자신의 주관적 견해를 고호의 작품 속에 집어넣어 읽은 셈이 된다. 즉 그의 고호 해석은 하이덱거 “형이상학의 주관적 투사”가 된다. 만약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고호의 그림이 우리를 구두라는 도구존재에 관한 진리 앞에 세운다는 하이덱거의 숭고한 명제는 철학사에 유례가 없을 우스운 해프닝이 되어 버릴 것이다. 과연 누가 옳을까? 저 그림 속의 구두는 누구의 것일까? 화가의 것일까? 농민의 것일까? 남자의 것일까? 여자의 것일까? 저 구두는 어디에서 온 것일까? 농촌에서 온 것일까? 아니면 도시에서 온 것일까? 그림 속의 구두 안에 들어가 있던 몸은 누구의 것이었을까? <회화 속의 진리>에서 데리다는 이 두 사람의 대립 속으로 뛰어든다.

불필요한 동일시?

사실 고호는 여러 장의 구두 그림을 그렸다. 하지만 샤피로의 말대로 그는 “마치 이 모든 구두가 동일한 진리를 말한다는 듯이” 자기가 염두에 둔 구두가 무엇인지 특정하지 않는다. 서신교환을 통해 하이덱거가 그 그림을 어느 전시회에서 보았다는 진술을 확보하고, 마이어 샤피로는 전시회 카탈록을 구해 하이덱거가 본 고호의 구두를 특정한다. 이어 하이덱거의 해석에 대한 공격의 포문을 연다. 마이어 샤피로의 비난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동일시’에 근거를 두고 있다.

(1) 고호의 작품은 현실에 존재하는 구두의 ‘복사’이다.
(2) 그 구두는 예술가 자신의 것이다.
(3) 농촌의 들판이 아니라 파리라는 대도시에 속한다.

이렇게 샤피로는 그림의 제재(=subjet)를 밝히고, 그것의 소유주를 찾아 그것을 특정 주체(=subjet)에 귀속시키고, 이어서 그것을 특정한 시공간적 좌표 속에 위치시킨다. 이 삼중의 동일시 확실성을 강조하려고 샤피로는 “명백히”, “분명히”와 같은 강한 낱말을 사용한다. 하지만 데리다가 보기에 이 중 어느 것도 확실한 것은 없다. 샤피로가 제시하는 유일한 근거는 작품 외적인 성격의 것, 즉 이 그림이 그려질 당시의 고호가 파리에 살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고호가 이 그림을 그리는 데에 굳이 특정한 구두를 모델로 삼았다고 확정할 근거는 없다.

게다가 고호의 작품 세계 전체라는 컨텍스트를 고려할 때 그 구두는 농민의 구두일 가능성이 크다. 그의 작품세계는 농민들의 삶에 대한 묘사로 가득차 있기 때문이다. 고호가 자신을 ‘농부’와 동일시했다는 것도 하이덱거의 해석을 뒷받침해준다. “내가 내 자신을 농부의 화가라고 부른다면, 그것은 실제로 그러하기 때문이다…” 이 경우 마이어 샤피로처럼 그 구두가 굳이 파리라는 대도시에 속한다고 볼 근거는 없게 된다. 게다가 샤피로 자신도 고호를 농민에 비유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반 고호는 어떤 면에서는 농부와 같다. 예술가로서 그는 노동을 한다. 그는 고집스럽게 자신의 소명으로 맡겨진 일을 해 나간다 (…) 대지와 접촉한 똑바로 선 몸의 무게…”

데리다는 샤피로가 문제가 되는 구절을 전체 맥락에서 ‘폭력적으로’ 떼어냈다고 비판한다. 하이덱거는 원래 고호의 그림을 분석하려고 한 게 아니다. “이 모든 진리는 그림에 대한 기술이나 설명을 통해 얻어진 것이 아니다.” 그저 일상적 도구의 예로써 고호의 구두를 선택했을 뿐이며, 그가 제시한 ‘농민적’ 해석은 구두라는 도구존재에 관해 내릴 수 있는 여러 해석 중에서 하나의 “부수적인 변양태”에 불과하다. 똑같은 그림을 놓고 하이덱거는 얼마든지 도시적 해석을 내릴 수도 있었다.

하이덱거에게 중요했던 것은 ‘구두라는 도구존재로 하여금 말을 하게 내버려두는 것’, 그리하여 그 그림 앞에서 우리는 구두의 도구존재에 어느 때보다 더 가까이 서게 된다는 것이다. 고호의 그림은 도구(가령 농민여인의 구두)가 진정으로 무엇인지를 열어 보여주고, 그 결과 감추어져 있던 구두라는 존재자의 존재가 드러나는 바, 이를 그리이스인들은 ‘알레테이아'(=진리, 탈은폐)라 불렀다. 샤피로는 이 점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이 모든 것을 노철학자의 주관적 ‘투사’라 비난하는 샤피로에 대해 아마 하이덱거는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만약 우리의 기술이 주관적 행위로서 모든 것을 그런 식으로 꾸며대 그 안에 집어넣었다고 보는 것은 가장 극심한 자기기만일 것이다.”

마이어 샤피로가 보기에 하이덱거의 실수는 그저 잘못된 예를 골랐다는 데에 그치지 않는다. 하이덱거는 고호의 그림에서 “개인적인 것”, “관상학적인 것”을 읽어내는 데에 실패했으며, 이것이야말로 가장 치명적인 오류라는 것이다. 이를 위해 그는 위에서 언급한 세가지 동일시에 이어서 네 번째 동일시를 도입한다. 고호 자신의 언급을 의식한 듯 “어떤 면에서 반 고호는 농부와 같다”며,

(3) 고호의 그림 속의 구두를 화가의 ‘알터에고'(alter ego)로 해석한다.

말하자면 고호의 그림 속의 구두를, 자신을 농민으로 여겼던 화가의 ‘자의식’을 표현하는 일종의 초상으로 읽는 것이다. 이로써 그는 결국 모든 것을 화가의 ‘자의식으로, 하나의 주체성으로 소급’시킨다. 여기서 고호가 자기 몸에서 떼어내어 벗어놓은 저 한 쌍의 구두는 마치 고호의 몸에서 잘려나간 두 귀와 같은 존재가 된다. 그것은 “낡은 사물로서의 예술가의 초상(a portrait of the artist as old thing)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바로 이것이야말로 하이덱거가 형이상학의 시대의 병적 징후로 읽으며 문제삼으려 했던 것이다. 즉 주체성 속에서 확실성의 토대를 보장하려 했던 데카르트 이후의 근대적 형이상학을 무너뜨리는 것, 그것이 바로 하이덱거가 새로운 진리개념으로써 하려고 했던 작업이며, 그 기획의 하나가 바로 <예술작품의 근원>이었다. 이렇게 볼 때 샤피로는 외려 하이덱거보다 문제의식의 수준이 뒤떨어져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하이덱거의 논리가 ‘예술의 형이상학적 힘’이라는 의심쩍은 개념 위에 세워져 있다고 말하나, 데리다가 보기에 형이상학적 전제를 더 분명하고 더 결정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오히려 샤피로 쪽이다.

“불필요한 해석주의”?

샤피로의 해석은 철저하게 근대적 형이상학의 틀 내에 머물고 있다. 작품을 현실의 대상의 ‘모방’으로 바라보고, 그 대상을 주체로 귀속시키고, 나아가 작가의 자의식의 표현으로 바라보는 것. 이것이 바로 철저하게 근대적 주체철학이라는 형이상학적 에피스테메 위에 서 있는 근대미학의 특징이다. 우리는 앞에서 하이덱거가 어떻게 이 근대미학의 개념틀을 해체하는지 보았다. 샤피로가 구두의 주인을 찾아 그것을 특정한 주체성에게 귀속시키는 것을 작품해석으로 본다면, 하이덱거는 구두의 주인을 찾아주는 것이 아니라 고호의 작품 속에서 현존재(=세계 속의 인간)의 상관자로서의 도구존재의 진리를 드러내는 것, 아니 그 진리를 작동시키는 것(Ins-Werk-Setzen-der-Wahrheit)이었다. 마이어 샤피로와 하이덱거의 해석의 싸움은 결국 근대의 형이상학과 그것을 해체하려는 시도 사이의 충돌이라고 할 수 있다.

하이덱거와 샤피로 사이에 이러한 대립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데리다는 그 둘 사이에 동시에 묘한 공통성이 존재한다고 암시한다. 가령 두 사람 모두 그림 속의 구두를 ‘쌍’으로 규정한다. 일단 그 두 짝의 구두를 ‘쌍’으로 규정함으로써 해석은 그 밖의 다양한 가능성의 놀이에서 빠져 나와 일정한 방향으로 나아가게 된다. 예컨대 하이덱거의 해석은 한 쌍의 구두에서 아래로, 즉 구두 아래로 존재하는 농민의 대지로 나아가고, 샤피로의 그것은 한 쌍의 구두에서 위로, 말하자면 도시에 살면서도 자신을 농부와 동일시하며 농부와 같은 방식으로 작업을 했던 어느 화가의 얼굴로 나아간다. 샤피로는 재현(=representation)으로서의 작품의 진리를 얻기 위해 구두의 위로 거슬러 올라가 주체에 도달한다. 반면 하이덱거는 현전(=presentation)으로서의 작품의 진리를 위해 구두의 아래로 내려가 그것을 대지에 귀속시킨다. 이렇게 방향은 달라도 결국 작품이 가진 단 하나의 궁극적인 의미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두 사람의 해석은 일치한다.

여기서 이제까지 샤피로에 맞서 하이덱거를 옹호했던 데리다는 이 노철학자를 비판의 표적으로 삼는다. 샤피로와 하이덱거는 서로에게 진리를 빚지고 있다. 샤피로는 하이덱거에게 ‘현전의 진리’를 빚지고 있다. 하이덱거는 샤피로에게 ‘동일시의 진리’를 빚지고 있다. 샤피로와 하이덱거의 공통성의 오류는 예술작품의 진리를 단 한 번에 포착할 수 있다고 믿는 의미결정론에 있다. 두 사람 벗겨놓은 구두를 누군가에게 신기기 위해 풀어진 구두끈을 다시 묶는다. 구두를 주인 없이 그냥 저렇게 놔두면 안 되는가?

데리다에 따르면 예술작품의 진리는 작품 속에 현전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작품 속에 존재하면서 동시에 부재한다. 데리다의 시니피앙은 결코 현전에 도달하지 못한다. 하나의 시니피앙은 다른 것들과의 차이를 이루며 다른 시니피앙들로 연기되면서, 존재하면서 부재하는 흔적으로서 의미를 갖는다. 예술작품 역시 마찬가지다. 그리하여 예술작품의 의미, 그것의 진리성은 그것의 작품 속에 존재하면서 동시에 부재한다. 바로 여기에서 우리는 ‘은폐이자 동시에 탈은폐’라는 하이덱거의 진리개념을 본다. 실제로 데리다는 하이덱거가 말한 ‘존재론적 차이’라는 것이 자기 사유의 출발을 이룬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데리다는 하이덱거의 사상이 일종의 근원으로의 회귀열망이 아닌지, 그리고 그 열망에서 작품 속에서 벌어지는 의미의 유희, 진리의 드러남을 단 한 번의 해석으로 현전하게 만들려는 것이 아닌지 의심한다.

해석이냐 해체냐

[글쓰기와 차이]에서 데리다는 이미 씨니피앙의 소급불가능성, 말하자면 그 배후로 파고들어가는 것의 불가능성에 대해 얘기한 바 있다. (“텍스트 밖에는 아무 것도 없다.”) 만약 그렇다면 존재하는 것은 시니피앙의 놀이, 즉 그것들의 차이, 연기, 산포의 유희뿐이리라. 재현적 인식은 불가능하다. 명제, 주장, 담론은 텍스트 외부의 현실을 지시하는 게 아니다. 텍스트 외부에는 그것이 닮아야 할 원본이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하는 것은 오직 차이 속에서 의미를 연기하며, 자신의 의미를 끝없이 다른 시니피앙들에게 연기시키면서 산포되는, 그리하여 결코 현전에 도달하지 않는 텍스트들의 놀이 뿐이다.

미학의 용어로 옮기면, 예술은 더 이상 현실의 재현이 아니라는 것이다. 예술이 모방해야 할 원본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데리다가 계열성을 띤 작품들에 주목하는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하이덱거가 소개하는 고호의 구두, 마그리트의 구두, 아다미의 구두는 계열을 이루고 있다. 계열성의 예술에 대한 관심은 또한 푸코(<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들뢰즈(<감각의 논리>)에게서도 나타난다. 시뮬라크르! 예술이 모방해야 할 원본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예술작품의 진리에 대한 최종적, 결정적 해석도 있을 수 없다. 존재하는 것은 예술작품이 그때그때 발동시키는 다양한 진리의 놀이이며, 이 해석들 사이에 위계질서란 있을 수 없다. 여기에서 ‘해석학’과 ‘해체론’ 사이에 묘한 긴장관계가 발생한다.

가령 하이덱거의 전통을 이어받은 해석학은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인정하면서도 동시에 그 해석들 사이의 인식론적 우열을 가릴 기준이 존재한다고 본다. 그러나 데리다의 해체론은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만약 담론의 밖에 그 담론과 일치해야 할 어떤 외적 현실이 독립적으로 존재하며 그것이 우리 눈앞에 현전을 한다면, 특정한 해석의 참/거짓, 혹은 적절/부적절을 가릴 기준도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텍스트의 밖에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면, 해석의 기준을 찾으려는 노력은 무의미해진다. 이 경우 각 해석들 사이에는 위계질서가 아니라 통약불가능성이라는 이름의 평등성이 존재하게 된다.

하이덱거가 근대의 형이상학을 벗어나고서도 아직 훗설의 영향 하에 예술적 진리의 ‘현전'(=도구존재의 드러남)으로 되돌아간다면, 데리다는 존재와 존재자의 차이라는 하이덱거의 사상을 받아들여 그 ‘존재’의 정학을 니이체적 시각에서 ‘생성’으로 역동화한다. 데리다에게 예술작품의 진리는 단 한 번에 종국적으로 현상하지 않는다. 고호의 작품이 하이덱거를 만나 하나의 진리를 열어주듯이, 또 다른 사람들을 만나 그와는 또 다른 진리들을 열어줄 수가 있다는 것이다.

데리다는 하이덱거처럼 하나의 근원적 진리로 회귀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가 주목하는 것은 니이체가 말하는 관점주의(Perspktivismus), 즉 하나의 예술작품이 열어주는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들이다. 말하자면 해석자와의 만남 속에서 새로이 세계를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들을 생성해내는 예술작품의 끊임없는 미적 창조력, 바로 거기에 예술작품의 진리가 놓여있다는 것이다. 그에게 예술작품은 ‘해석학적 대상’이 아니라 ‘개념화될 수 없는 것의 보존'(W.Welsch)이다.

subjectile, projetile

독일의 미학자 볼프강 벨쉬는 데리다(나아가 탈근대의 사상가들)의 사유와 엥포르멜 회화 사이의 유사성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앵포르멜은 5,60년대에 프랑스에서 일어난 예술운동이다. 외부세계의 재현을 거부하면서 동시에 차가운 추상을 거부한다는 점에서 미국의 액션페인팅과 같은 추상표현주의와 비슷하나, 액션페인팅이 그림을 그리는 것의 행위성에 주목한다면 앵포르멜은 그것이 남긴 ‘물질적 흔적’을 강조한다. 가령 하르퉁, 마티외, 술라주 같은 사람의 작품 속에서 “텍스추어”(=회화적 구조)는 그 어떤 지시물을 갖지 않고 오직 자기 자신만을 지시할 뿐이다. 이와 유사하게 데리다의 시니피앙은 시니피에를 가리키지 않고 또 다른 시니피앙을 가리킬 뿐이다.

데리다에게 의미작용을 일으키는 것은 시니피에라는 ‘관념’이 아니라 시니피앙이라는 기호매체의 물질성이다. 앵포르멜의 화가들에게 중요한 것은 재현의 projetile이 아니라 질감의 subjectile이었다. 가령 글자인지 문양인지 분간할 수 없는 앙리 미쇼의 특이한 칼리그램 속에서 우리는 의미의 projetile이 마티에르의 subjectile로 돌아가려는 엔트로피의 운동을 볼 수가 있다. 앵포르멜의 화가들은 흔적, 자욱, 산포, 의미의 연기 등을 강조한다. 이들의 작품 속에서 우리는 기호작용에 관한 데리다의 사상의 그림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