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01&articleId=1734456



나는 이 분 의견에 공감하는 쪽이다.
시민들이 외치는 ‘민주주의’를 좀더 구체적으로 다룰 필요가 있다고 본다.
나는 사실 지금 시민들이 외치는 ‘민주주의’가 이명박에 대한 적대감 이상, 이하도 아니라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이 상황이 이명박이 물러나거나 굴복하면, 한나라당이 몰락하면, 조중동이 폐간되면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오산이다. 요즘 노무현을 그리워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제 2의 노무현이 나타나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노무현 역시 경제적으로는 비민주적이었다. 오늘 있었던 재보궐선거에서 비겁한 무소속과 민주당이 휩쓴 것을 보면 시민들의 문제의식이 어디에 닿아있는지 아리송해진다. 물론 일반 시민의 눈에 합당한 대안이 없어 보이기는 하겠지만 말이다.)
이 민주주의라는 구호는 각자가 처한 비민주적인 상황에 대입되어야 한다.
사회 양극화, 비정규직 문제, 갑과 을의 노예관계, 세대간 불평등, 88만원 세대, 경쟁 일변도의 교육 등 각자가 처한 문제에 이 ‘민주주의’를 대입해야 한다.
그래서 각자의 민주주의에 관한 절박한 문제들을 이 해방구적 공간에 쏟아내야 한다.
이미 촛불집회는 광우병만의 문제가 아니게 됐다.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 총체에 대한 거부와 불복종 운동의 성격을 보이고 있다.
달리 말하면 각자가 처한 지금의 상황에 대한 불만의 폭발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불만을 더 구체화하고 동시다발적으로 쏟아내야 한다.
(그리고 점점 그럴 만한 타이밍이 되고 있다.)
이명박 정부와의 대치 그 이후, 만일 시민이 승리한다면 그 순간 쏟아놓은 문제들에 대한 전격적인 해결을 요구해야 한다.
그래서 10대는 대학 서열 폐지, 평준화를, 20대는 실업문제 해결과 비정규직 철폐를, 30대 이상은 양극화 해소와 갑과 을의 불평등 해소(대기업-중소기업 불균형 해소)를 성취하고…그래서 승자독식 사회로 폭주하는 기관차를 멈춰 세워야 한다.
프랑스 68혁명을 의식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 놀라운 해방구에서 한국사회의 절박한 문제들을 다루지 않고 넘어간다면 더 이상의 기회와 가능성은 없을지도 모른다.
촛불의 외침은 더 다양하고 구체화되어야 한다.

내용 보충 : 글 읽고 바로 드는 생각 갈겼더니 몇 개 빠뜨린 게 았다. 위 글을 쓴 사람은 지금 촛불을 든 시민들을 다중이라고 보고 있다. 다중은 자율적이지만 이질적이고, 이들을 지금 묶어 주고 있는 것은 ‘광우병’과 ‘이명박의 비민주적 독선’이다. 이 핫이슈로 묶여 있지만 사실 이들은 각기 절박한 이유로 거리에 나왔다. 과연 이들 각자의 불만이 이 촛불의 거리에서 다루어질 수 있을 것인가. 그래서 그들 각자의 절박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인가. 이 부분에 대한 회의가 든다는 말인 것 같다. (어쩌면 촛불을 든 시민들은 한국사회에서 다중의 역할과 의미를 묻는 가장 상징적인 사례가 될지도…음…?)

아, 이렇게 착하고 질긴 시위대 봤나요
오늘도 촛불 사러 간다, 나 잡아 봐~라
[독자기고] “내가 오늘 어디에 있을지 나도 모른답니다”

처음에는 반신반의했다. 여중고생들이 든 촛불들이 과연 얼마나 강인하게 버텨줄지. 날마다 청계광장에서 촛불문화제가 열리지만 청계광장 바깥의 수많은 사람들이 과연 함께 힘을 실어줄지. 처음 밝혀진 촛불은 그야말로 연약했다.

그런데 벌써 그렇게 한달이 흘렀다. 처음에는 스피커 시설도 갖추지 못해 앞에서 뒤로 ‘전달, 전달’하던 그런 촛불문화제가 드디어 지난 주말인 5월 31일 10만의 초에 불을 밝혔다. 그리고 5월 24일 이후로는 9~10시 무렵이면 어김없이 거리시위로 이어지고 있다.

아고라로 시작하는 하루의 기록

날마다 연행자와 부상자들도 속출하고 있다. 그런데 날마다 참가자들도 늘어나고 있다. 게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촛불의 저항이 매일 매일 24시간 지속되기 시작했다.

   
▲ “미국 광우병 소 가져오지 말아라”라는 피켓을 만들어 시위에 참여한 익산의 어린이 (사진=네이버 카페 ‘김제할머니네집’)
 

이런 식이다. 매일 아침이면 다음 아고라를 시작해, 주요 사이트에는 ‘조중동 우아하게 끊는 법’과 <조선일보>에 광고를 실은 회사들의 홍보실 전화번호가 올라온다. 혹시 이미 받은 경품 자전거나 전화기 때문에 주저하는 소심한 독자들을 위해 경품 자체가 불법이므로 되돌려 주지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와 함께 영업소와 일일이 상대하지 말고 ‘우아하게 본사에 전화해서 해지하라’는 코치는 퍼질 만큼 퍼졌다.

요 며칠 네티즌들의 ‘오늘의 과제’는 일단 전화 다이얼을 돌리는 것으로 시작한다. “당신네 회사가 오늘 아침 <조선일보>에 광고를 실었더라, 그렇다면 나는 당신네 회사가 광고를 철회할 때까지 항의할 것이며 안 되면 불매운동 조직할 것이다.” 요즘 <조선일보> 광고 개재 회사 홍보실은 폭주하는 전화로 골머리께나 앓는 중이다.

효과가 있느냐고? 네티즌들의 집중 포화를 받은 몇몇 기업에서는 광고 보류 혹은 광고 건에 대한 사과 공지를 올렸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네티즌들의 공세에 두 손을 든 제약회사인 명인제약이 있다. 보수언론에 광고를 싣지 않겠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일단 쎈 놈부터 패자”

아침이면 전화 다이얼을 돌리는 네티즌들도 안다. 이게 하루아침에 성과를 낼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그러나 서로 지치지 말고 일단 쎈 놈(조선일보)부터 패자고 격려한다.

그뿐 아니다. 연행자가 있는 경찰서마다 전화 걸어 항의를 하고 ‘칭찬합시다’ 게시판에 들어가서 국민 잡아 가두시는 경찰님들 우리가 낸 세금으로 엿 많이 사드시라는 칭찬 글도 남긴다. <경향신문>과 <한겨레>에 광고 하느라, 진보신당과 <오마이뉴스> 생중계 후원하느라, 강달프(강기갑 민주노동당 의원) 응원하느라 여기저기 후원하고 성금 내느라 부지런히 인터넷뱅킹 창을 클릭한다.

심지어는 이런 경우도 있다. 한나라당 심재철 의원이 온라인에서 ‘스마일 심’으로 활동하며 악플을 달아 온 증거를 찾아냈을 때 네티즌들의 센스는 상상을 뛰어넘었다. 알바비에 보태라며 18원을 후원금으로 보낸 것이다. 세액공제를 위한 영수증 처리는 등기우편으로 부탁한다며 다시 한번 ‘확인 사살’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예비군 부대가 모일 때도, 유모차 부대가 등장할 때도 비슷했다. 누구라고 할 것 없이 사이트에서 사이트로 아이디어를 퍼다 날랐고, 그러는 와중에 꼭 기억해 두어야 할 공지사항과 지침들이 만들어졌다. 누군가는 쥐 잡는 뿅망치를 들고 나오고자 했다. 평화시위를 염원하는 뜻에서 꽃을 들고 나온 이들도 있었다. 좀더 쌈박하고 신선하며 자극적인 피켓 문구를 만들어 사이트에 뿌리며 ‘불펌 환영’ 머리말을 달았다.

‘전화질’과 ‘클릭질’은 재빠르고 또 재치가 넘치며 뜨겁고 열정적이다. 그에 비해 거리에서는 엄청나게 느리고 또 피로하다. 인도에서 차도로 경계를 넘기는 했으나, 그 다음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경찰의 저지에 직면했을 때? 모두 다 알다시피 막히면 돌아가고, 돌아가다 또 막히면 열린 길을 찾아 에둘러 갈 뿐이다.

재치와 뜨거움 그리고 전화질과 클릭질

사람들은 열어줄 때까지 줄기차게 항의하고 구호를 외친다. 그리고 기다린다. 행렬을 특정한 방향으로 유도하려는 이들이 있다면 그게 설령 오래된 운동 단체라 할지라도 “그 쪽은 위험하다. 우린 안 간다. 광화문을 지킬 거다”고 제지당한다. 인터넷 용어로 말하자면, ‘닥치고 광화문!’ 혹은 ‘닥치고 행진!’이다.

하지 않는 건 딱 하나 있다. 포기하고 해산하는 것. 정해진 작전은 없지만 광화문에서 혹은 종로에서 그리고 지난 주말처럼 경복궁 부근에서 어찌됐든 만났다. 예정된 행로는 아니었다. 엄청나게 많은 인파가 모이고 나서 자연스럽게 그런 흐름이 생긴 것일 뿐이다.

“어디로 간대요?” “오늘은 청와대 쪽으로 갈 것 같아요.” “일단 사람들 많은 쪽으로 붙어요.”
배후가 없으므로 해산을 명할 수도 없다. 해산하고 싶을 때 한다. 새벽녘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게 해산은 아니다. 내일 다시 나오기 위해서는 들어가야 할 뿐이다.

10만 명 이상이 운집한 지난 주말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시청에서 서소문로와 서대문을 지나 경복궁 역에 이른 시민들은 더 이상 ‘고시철회, 협상무효’를 외치고 있지 않았다. ‘이명박은 물러가라’는 구호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이다. 시위가 날이 갈수록 확산된 것처럼 그 사이 시위의 성격 역시 진화하고 확장된 것이다.

광우병 쇠고기 수입, 물 사유화를 비롯한 각종 민영화, 대운하, 교육정책 등 철회와 재고를 요구해야 할 것들이 도처에 널려 있다는 사실은 촛불을 든 사람들 사이에서 이미 상식이 돼 있다.

5월 31일 토요일 밤 11시 반이 넘자 경복궁역 부근, 삼청동과 동십자각 일대에서 사람들은 촛불을 들고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했다. 2중, 3중으로 바리케이드 쳐진 닭장차 앞에서 운집해 있는 사람들이 물대포를 피할 재간은 별로 없다. 물대포의 등장이 처음은 아니었지만 잠시 뒤돌아 서 있는 선에서 그칠 줄 알았던 것은 지금까지는 물대포의 공격성과 위력을 체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저게 살수차야?”, “물이 어디서 나오는데?” 라며 시위대가 웅성거리는 사이, 취재 중인 숱한 카메라들을 향해서, 닭장차에 올라간 시민을 향해서, 그리고 ‘평화시위 보장하라’, ‘연행자를 석방하라’, ‘이명박은 물러나라’를 외치는 시위대들을 향해 물대포를 난사했다.

“제게 살수차야? 물은 어디서 나오는데?”

이에 대응한 구호는 ‘세탁비! 세탁비!’, ‘물 뿌려도 안 간다!’, ‘수도요금 올랐다. 아껴 써라 내 세금!’이었다. 물대포의 집중 포화를 견디지 못하고 나가떨어지는 모습을 보았을 때 시민들을 경악했고, 비명을 질렀고 눈을 감았다. 그러나 폭력으로 맞서지 않았다.

경찰들을 향해서는 저항의 구호를 스스로에게는 비폭력 평화시위를 연호했다. 길바닥은 장마가 끝난 직후처럼 흥건했다. 선두에 선 이들이 버티지 못하겠으면 뒤로 빠져나와 불을 쬐며 덜덜 떨리는 몸과 옷을 말렸다.

몸으로 맞서는 이들의 뒤에는 함성으로 맞서는 이들이 있고, 함성으로 맞서는 이들 뒤에는 이 시위의 기본적인 성격을 상징적으로 구현해 내는 이들이 있다. 닭장차와 직접적으로 맞서지 않는 후미는 또 완전히 다른 세상을 실현하고 있다. 길바닥에 주저앉아 어디선가 조달된 커피와 김밥을 나눠먹거나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른다. 노래도 박수도 구슬펐지만, 모두들 약간씩 지치고 피로했지만, 자리를 뜨는 이들은 많지 않다.

어떤 이들은 근처 카페 바깥에 놓인 벤치를 끌어와 길지만 무겁지 않은 토론을 지속하기도 했다. 처절한 긴장감과 아슬아슬한 평화, 그리고 알 수 없는 여유로움이 공존하고 있었지만, 이 이질적인 분위기의 묘한 조화를 모두 당연한 듯 받아들이고 즐겼다.

새벽 세 시가 가까워 오는 시간에 사복체포조가 삼청동 뒤쪽에서부터 내려오고 있는 것을 보았다는 소문, 주변에 병력이 계속 보충되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러자 누군가 그럼 어떡해야 하느냐고 물었다. “가능한 인도 쪽에 서 계세요.” 들려오는 대답이라곤 이게 전부다.

하나 대 여럿, 촛불 대 물대포, 비무장 대 무장

시위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대신 진압은 한 차원 진화한 시위를 쫓아오지 못했다. 곤봉을 휘둘렀고, 방패로 내리찍었으며, 군화발로 짓밟았다. 시민과 전경들은 하나 대 여럿으로 만났다. 촛불 대 물대포로 만났다. 비무장 대 무장으로 만났다. 비폭력 대 폭력으로 만났다.

   
▲ 경찰 폭력은 인터넷을 통해 낱낱이 폭로되고 있다. (사진=‘군화발 동영상’)
 

사실 시위가 절대로 끝나지 않는 이유, 24시간 계속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용량이 부족하면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동 트는 새벽까지도 폭력적인 진압이 계속되는 상황은 인터넷 생중계를 타고 쉼 없이 보도됐다.

현장에서 가까스로 집으로 귀환한 이들은 이불 속에 숨어 벌벌 떨지 않는다. 다시 컴퓨터를 켜고 접속한다. 연행된 경찰서에 항의 전화를 한다. 현장 상황을 왜곡해 보도한 언론사에 정확한 취재와 보도를 요구하며 다이얼을 돌린다. 해외 언론 사이트에 제보할 사진과 유튜브에 올릴 동영상을 제작한다. 구호에 필요한 모금을 하고, 자원봉사자를 모집한다. 내일 시위에 필요한 것들이 무엇인지 연락한다.

그리고 다시 ‘출동’한다. 경찰이 시민을 에워싸고 폭력을 가할 수는 있지만, 시위 자체를 고립시킬 수 없는 이유다.

토요일 시위는 자연스럽게 일요일 밤, 월요일 새벽까지 이어졌다. 이날 시위에 참석하지 못하고 아프리카(afreeca)와 오마이TV를 통해 접한 시위 현장은 지독히도 슬프고 아름다웠다. 경찰은 전날처럼 무차별 물대포 진압을 위해 기자들이 경찰차 위에서 내려갈 것을 종용했다.

순식간에 시민과 기자단 사이의 연대가 형성됐다. 기자들은 내려오지 않았고, 시민들은 그들에게 먹을 것과 비옷을 올려 주었다. ‘언론자유 보장하라’는 구호에서부터 ‘내려오면 조중동’이라는 재치 넘치는 구호도 등장했다.

기자들을 진압하기 위해서 전경들이 경찰차 위로 올라섰을 때는 자정 무렵이었다. 시민들은 ‘취침점호 보장하라’고 연호했다. 학생들은 ‘기말고사 책임져라’고 외쳤다. 다행히 전날처럼 과격한 물대포 진압은 없었다. 언론까지 적으로 돌리는 것이 무모하다는 정도의 판단은 가능한 수준인가보다.

시위대의 깜찍스런 진화와 짜릿한 새벽

이날의 진압 상황이 전날만큼 끔찍했던 것은 당연하다. 정부와 경찰의 대응은 과거를 향한 폭주기관차를 연상하게 했고, 시위대는 깜찍스럽게 진화했다. 새벽 5시 반 무렵이었을 것이다. 그 아비규환에서도 많은 이들이 살아남았고 다시 평화의 촛불을 들었다.

무차별적 진압에 의해 인도로 몰려 있던 시민들은 횡단보도 앞에 섰다. 신호등이 파란색으로 바뀌자 ‘이명박 퇴진’을 외치며 길을 건너기 시작했다. 촛불을 들고 도로를 점거하는 것이 불법이라면, 촛불을 들고 도로를 건너겠다는 것이다.

도로를 지나는 차량들도 응원의 박자를 맞춰 응원의 경적을 울린다. 이 와중에도 좌측통행이 이뤄졌다. 건너가는 이들과 건너오는 이들이 횡단보도 한 가운데서 엉키지 않았다. 짜릿한 새벽이었다. 빨간 불이 켜져 있는 동안에는 인도에 대기하면서 현장을 떠나는 경찰차를 향해 손을 흔들어주기도 했다.

이렇게 질기고 착한 시위대를 본 적이 없다. 오늘도 다시 촛불 사러 간다. 우비도 살 거다. 누구 돈으로 사는지 그게 못내 궁금한 모양인데, 내 돈으로 산다. 들리는 얘기로는 두께 20센티미터의 스티로폼도 효과적이란다. 피켓처럼 구호를 쓸 수도 있고, 깔고 앉을 수도 있고, 경찰의 곤봉과 물 대포 세례를 막을 수도 있단다.

내가 오늘 어느 횡단보도에 서 있을지는 안 가르쳐준다. 언제 어느 도로 위로 들어설지도 안 가르쳐준다. 나도 모르니까! 자, 어디, 나 잡아 봐라~!

2008년 06월 02일 (월) 17:45:49 조은영 / 독자 redian@redian.org

“시민 불복종의 권리는 정부 위에 있다”
[칼럼] 광우병 정국 속 소로우의『시민의 불복종』을 생각하다
등록일자 : 2008년 05 월 30 일 (금) 23 : 57  
 

  나도 잡아가라며 자진해서 경찰차에 올라타는 ‘시민불복종 운동’의 촛불문화제 참여자들의 얼굴에서 19세기 미국의 한 시민, 헨리 데이빗 소로우의 얼굴을 본다.
 
  헨리 데이빗 소로우.
 
  그는 가장 좋은 정부는 가장 적게 다스리는 정부라는 표어를 진심으로 찬성하던 사람이었다. 정부란 기껏해야 하나의 편의기관임을 역설한, 진정한 근본주의 정치학자이자 행동주의자였다. 수많은 정치학자들의 이름이 나열되고 있지만, 소로우처럼 민주주의와 국가에 대해 간명하게 통찰력을 보여준 사람은 흔치 않았다. 그는 말한다.
 
  엄밀하게 말하면 정부는 피통치자의 허락과 동의를 받아야 한다. 정부는 내가 허용해 준 부분 이외에는 나의 신체나 재산에 대해서 순수한 권리를 가질 수 없다. 전제군주제에서 입헌군주제로, 입헌군주제에서 민주주의로 진보해 온 것은 개인에 대한 진정한 존중을 향해 온 진보이다. 중국의 철인조차도 개인을 제국의 근본으로 볼 만큼 현명했다.
 
  소로우는 6년 동안 인두세를 내지 않았다는 이유로 경찰에 체포되어 1846년 7월 하루 동안 감옥에 갇혔다. “두께가 60~90센티미터쯤 되는 단단한 돌벽과, 30센티미터 두께의 나무와 쇠로 된 문과, 햇빛이 스며 들어오는 쇠창살을 바라보며” 그는 인간을 단지 살과 뼈로 된 존재로만 여겨 잡아 가두는 감옥이라는 제도와 국가, 정부에 대해 근본의 성찰을 하면서 시민불복종 사상을 정리할 수 있었다.
 
  노예제도를 운영하고 멕시코와 제국주의 전쟁을 일으키는 미합중국 정부를 소로우는 도저히 정부로서 지지할 수 없었다. 소로우의 생각으로는 그런 정부에 대해서 시민들이 비폭력 불복종운동을 통해 저항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권리이며, 시민 불복종의 권리는 정부 위에 존재하는, 너무나 당연한 천부의 권리였다.
 
  불의의 법들이 존재한다. 우리는 그 법을 준수하는 것으로 만족할 것인가, 아니면 그 법을 개정하려고 노력하면서 개정에 성공할 때까지는 그 법을 준수할 것인가, 아니면 당장이라고 그 법을 어길 것인가? 나는 조용히, 내 고유의 방식으로 정부에 선전포고를 하는 바이다.
 
  자신의 감옥 체험과 시민불복종 사상에 대해 소로우는 2년 뒤인 1848년 콩코드 문화회관에서 대중들에게 강연했다. 그리고 이듬해 이 강연을 정리해서 한 잡지에 「시민정부에 대한 저항」이라는 제목으로 발표했고, 이 글이 바로 소로우 사후에 『시민의 불복종』이라는 소책자로 출판되었다.
 
  오만한 제국주의 강대국처럼 자국의 광우병 쇠고기 수입을 강요하는 미국이 지금으로부터 240여년 전에는 제국주의의 식민지로서 대영제국으로부터 수많은 수탈과 억압의 강요를 받는 처지였다는 사실은 역사의 역설이다.
  미합중국이라는 국가의 탄생은 식민모국인 대영제국의 막강한 군사력에 맞서 식민지 주민이었던 미국 시민들 스스로 자신의 권리와 자유, 자신의 삶과 이익을 지키기 위해 치열하게 싸우고 피를 흘린 댓가였다. 미국 민주주의는 대영제국으로부터 그저 공짜로 얻은 시혜품이 결코 아니었다.
 
  1760년대부터 보스톤을 중심으로 매사추세츠 주민들은 대영제국의 각종 세금과 수탈에 대항해서 수많은 저항투쟁을 벌이고 있었다. 시위와 집회는 늘상 일어나는 일이었다. 청원운동에서부터 영국 상품 불매운동과 급기야는 폭동과 무장투쟁까지 수많은 크고 작은 충돌이 전개되었다. 그리하여 보스턴 대학살 사건과 독립전쟁이 일어나기 이전부터 이미 보스턴의 시민들은 북아메리카 영국군과 영국 총독의 지배를 물리치고 매사추세츠 주 전 지역의 모든 정치 군사조직을 장악하고 사실상의 자치를 행하고 있었다.
 
  독립전쟁의 도화선이 된 대영제국의 인지세 부과는 이런 식민지 반제국주의 투쟁에 들이부은 휘발유였을 따름이다.
 
  이런 역사와 배경 아래 미 합중국을 건설했기 때문에 당시 미국의 시민들은 정부란 결코 억압과 착취 기구여서는 안되며 시민들 스스로가 선택하는 하나의 기구일 뿐이라는 뿌리깊은 인식을 공유하고 있었다.
 
  1776년 1월 지금도 유명한 토마스 페인의 『상식』은 이런 사상의 상징이었다. 페인의 이 소책자는 3개월만에 무려 15만부나 팔려 나갔다. 토마스 페인이 전하는 바 국가와 정부에 대한 식민지 아메리카 주민들의 생각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이렇다.
 
  사회는 어떤 상태에서도 하나의 축복이지만, 정부는 최선의 상태에서도 하나의 필요악에 불과하다.
 
  이런 사상의 결정체가 다름아닌 미합중국 독립선언서의 전문이다. 지금도 민주주의를 얘기할 때 금과옥조처럼 인용되는 전문의 두 번째 구절을 다시 읽어보자.
 
  우리들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자명한 진리로 받아들인다. 즉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태어났고, 창조주는 몇 개의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부여했으며, 그 권리 중에는 생명과 자유와 행복의 추구가 있다. 이 권리를 확보하기 위하여 인류는 정부를 조직했으며, 이 정부의 정당한 권력은 인민의 동의로부터 유래한다. 어떤 형태의 정부이든 이러한 목적을 파괴할 때에는 언제든지 정부를 개혁하거나 폐지하여 인민의 안전과 행복을 가장 효과적으로 가져올 수 있는 새로운 정부를 조직하는 것은 인민의 권리이다.
 
  그렇다. 새로운 정부 조직의 권한은 늘 시민, 인민, 대중들의 손에 있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정부란 왕권과 달리 시민들이 선택하는 것이다. 국가의 강요를 시민은 거부할 수 있는 자유와 권리가 있다. 선거를 통하건 추대를 통하건 그 어떤 방식이든 주권은 시민들에게 있다는 주권재민 사상의 핵심은 시민불복종의 권리, 저항과 혁명의 권리이다. 이는 너무나 당연한 상식이자 진리이다.
 
  국가 이전에 인간이, 시민이, 사회가 있다. 국가의 역사는 잘해야 5천년이지만 사람과 사회의 역사는 수백만 년이나 된다.
 
  미국은 식민지 해방투쟁을 통해 인민의 정부를 만들었고 민주주의를 진일보시켰던 과거 자신의 국가 탄생 역사를 잊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남은 것은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침략한, 20세기 내내 어느 한 해도 전쟁을 멈추지 않았던 추악한 제국뿐이다. 오늘날 한국에 강요하는 광우병 쇠고기 수입은 그 옛날 대영제국이 식민지 아메리카에 강요했던 인지세이다.
 
  그때와 다른 점이 있다면 이명박 정부가 앞장서서 식민모국과도 같은 미국에 엎드려 굴복하고 엎드려 양보하고 엎드려 한미 FTA를 서둘러 애원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51번째 주로 편입해달라고 청원하지 않는 것이 신통할 따름이다.
 
  노동자와 서민 생활에 대한 동질감의 정서와 배려는 처음부터 아예 기대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논외로 치자. 그러나 민주주의와 사회에 대한 이해, 역사에 대한 이해, 정부와 국가의 성격과 할 일에 대한 이해는 눈꼽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기업체 사장 출신 대통령을 우리는 지금 처절하게 경험하고 있는 중이다. 기업 경영하듯이 정부를 운영하면 어떻게 되는지, 비즈니스 후렌드리 국가란 어떤 것인지, 그같은 기업 경영 방식의 정치와 통치를 우리는 지금 정확히 경험하고 있을 뿐이다. 역시 재벌 기업 총수인 정몽구 의원과 대기업 씨이오 출신인 문국현 의원의 어지러운 정치 행보도 양념으로 곁들여 지면서 말이다.
 
  미합중국의 독립 역사와 민주주의 역사로부터 우리가 배울 점은 너무나 많다. 그 가운데서도 정부로부터 지역의 독립과 자치, 개인과 사회의 독립과 자치는 핵심이다. 한국은 국가 탄생의 역사가 60년 밖에 안된다. 그나마 그 역사도 전쟁과 강력한 중앙집권의 독재로 점철되어 지역자치와 자립, 지역 독립의 민주주의 전통은 아직 생겨나지도 않은 우리에게는 정부와 국가로부터의 독립이란 개념 자체가 불온하고 낯설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런 가치야말로 우리가 실천에 옮겨야 할 민주주의의 첫단추이다.
 
  소로우는 이런 민주주의의 핵심이 촛불 문화제이며 나도 잡아가d는 스스로의 시민불복종 권리라고 힘껏 외치고 있다. 이런 정부 위에 있는, 정부를 선택하고 정부를 바꿀 수 있는 천부의 시민권 사상은 간디의 비폭력 무저항운동으로 이어진다. 간디는 소로우에게서 깊은 영감을 얻었으며 나아가 민주주의는 마을 자치(스와라지)라는 토대가 형성되어 있어야만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간디의 사티야그라하(진리파악)란 바로 촛불문화제의 비폭력 평화행진, 시민불복종에 다름 아니다.
 
  이명박 아웃(OUT)을 외치는 시민들의 구호는 선동정치인(僭主)을 시민들의 비밀투표로 추방하는 그리스의 도편(陶片)추방(오스트라키스모스), 엽편추방제를 연상시킨다. 동양의 전통에서도 이런 시민 불복종 사상은 끊이지 않고 이어져 왔다. 맹자를 비롯해서 천명을 거스르고 민의를 등진 군주는 추방해야 한다는 민본주의 혁명론은 그 한 예이다.
 
  미국산 광우병 쇠고기 수입에 대한 촛불문화제는 어쩌면 다가올 더 큰 지진의 전주곡일지도 모른다. 한미 FTA도, 에너지와 식량위기라는 쓰나미도 머지 않아 우리 눈 앞에 엄청난 충격으로 들이닥칠 것이다. 이 때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준비하고 어떤 사회, 어떤 정부를 만들어야 하는가. 그리고 어떤 촛불을 들어야 하는가.
 
  이 지점에서 소로우는 우리에게 참으로 깊은 성찰을 요구한다. 소로우는 “소나무의 가장 가까이에 서 있다고, 자연에서 소나무의 가치를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이 벌목꾼일까?”라고 질문하는 현자였다. 그는 『월든』을 통해 자연에 속한 인간의 한계와 인간의 야만을 고발한, 미국이 낳은 위대한 생태주의 사상가였다.
 
  한미FTA는 우리 경제를 살리고 경제성장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광우병 쇠고기 정부의 강변에 대해 절반에 가까운 시민들이 동조하고 있다. 아마도 촛불문화제에 참석한 시민들 가운데에도 동조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자본주의의 대량생산 대량소비는 더 이상 지속불가능하다는 사실이 석유가, 곡물가, 모든 천연자원 가격의 급등을 통해 금방 알 수 있음에도 여전히 성장과 소비 중독의 물신주의가 지배하고 있다.
 
  이제 그런 시장만능주의, 경제 물신주의는 종말을 고할 날이 다가왔다. 대운하가 살 길이라는 경제성장 지상주의는 이제 더 이상 불가능하다. 저가 비행기 동남아 관광을 가서 온갖 추악한 짓거리를 저지르고 돌아오는 어글리 코리안들의 행태도 조만간 더 이상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공장식 축산도 더 이상 불가능하다.
 
  미국산 광우병 쇠고기 뿐만 아니라 육식 위주의 음식문화 자체에 대해 촛불을 들이대야만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광우병 쇠고기는 어쩌면 우리에게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기회를 제공하는지도 모른다. 우리 자신의 경제지상주의에 대해, 우리 스스로 기업의 노예가 되는 삶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거꾸로 된 삶의 방식에 대해, 촛불을 조용히 켜고 성찰하는 계기 말이다.
 
  오늘 밤 새벽까지 청계 광장에서 촛불을 들고 나서 한 번 소로우를 다시 꺼내보자. 그리고 나 자신과 우리 이웃들의 존엄을 지키는 삶이 무엇인지 근본에서부터 다시 생각해보자.
 
  “나는 무정부주의자라고 자처하는 사람들과 달리 지금 당장 정부를 폐지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지금 당장, 보다 나은 정부를 요구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는 먼저 인간이어야 하고, 그 다음에 국민이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법에 대한 존경심보다는 먼저 정의에 대한 존경심을 기르는 것이 바람직하다. 내가 떠맡을 권리가 있는 유일한 나의 책무는, 어떤 때이고 간에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행하는 것이다… 법이 사람들을 조금이라도 더 정의로운 인간으로 만든 적은 없다. 오히려 법에 대한 존경심 때문에 선량한 사람들조차도 매일매일 불의의 하수인이 되고 있다.
 
  만약 불의가 정부라는 기계의 필수불가결한 마찰의 일부분이라면 그냥 내버려 두라, 그냥 내버려 두라… 결국에는 닳아 없어질 것이다… 그러나 이 불의가 당신으로 하여금 다른 사람에게 불의를 행하는 하수인이 되라고 요구한다면, 분명히 말하는데 그 법을 어기라.
 
  수많은 사람들이 인간으로서가 아니라 기계로서 자신의 육신을 바쳐 국가를 섬기고 있다. 상비군, 예비군, 간수, 경찰관, 민병대 등이 바로 그런 사람들이다. 대부분의 경우 그들이 판단력이나 도덕 감각을 자율적으로 사용하는 일은 전혀 없으며, 오히려 그들 스스로가 자신을 나무나 흙이나 돌과 같은 위치에 놓아버린다. 그래서 나무로 사람을 깎아 만들더라도 그들이 하는 일을 해내는 데는 별 지장이 없을 것이다…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참다운 의미의 영웅, 애국자, 순교자, 개혁가로서 그리고 인간으로서 그들의 양심을 가지고 이바지한다. 그런데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필연적으로 국가에 저항하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따라서 국가로부터 흔히 적으로 취급을 받는다.
 
  모든 사람이 혁명의 권리를 인정한다. 다시 말해서 정부의 폭정이나 무능이 너무나 커서 참을 수 없을 때에는 정부에 충성을 거부하고 정부에 저항하는 권리 말이다.”

박승옥/시민발전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