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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렇게 착하고 질긴 시위대 봤나요 – 레디앙(펌)
아, 이렇게 착하고 질긴 시위대 봤나요 오늘도 촛불 사러 간다, 나 잡아 봐~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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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기고] “내가 오늘 어디에 있을지 나도 모른답니다” | ||||||||||||||||||||||||
처음에는 반신반의했다. 여중고생들이 든 촛불들이 과연 얼마나 강인하게 버텨줄지. 날마다 청계광장에서 촛불문화제가 열리지만 청계광장 바깥의 수많은 사람들이 과연 함께 힘을 실어줄지. 처음 밝혀진 촛불은 그야말로 연약했다. 그런데 벌써 그렇게 한달이 흘렀다. 처음에는 스피커 시설도 갖추지 못해 앞에서 뒤로 ‘전달, 전달’하던 그런 촛불문화제가 드디어 지난 주말인 5월 31일 10만의 초에 불을 밝혔다. 그리고 5월 24일 이후로는 9~10시 무렵이면 어김없이 거리시위로 이어지고 있다. 아고라로 시작하는 하루의 기록 날마다 연행자와 부상자들도 속출하고 있다. 그런데 날마다 참가자들도 늘어나고 있다. 게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촛불의 저항이 매일 매일 24시간 지속되기 시작했다.
이런 식이다. 매일 아침이면 다음 아고라를 시작해, 주요 사이트에는 ‘조중동 우아하게 끊는 법’과 <조선일보>에 광고를 실은 회사들의 홍보실 전화번호가 올라온다. 혹시 이미 받은 경품 자전거나 전화기 때문에 주저하는 소심한 독자들을 위해 경품 자체가 불법이므로 되돌려 주지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와 함께 영업소와 일일이 상대하지 말고 ‘우아하게 본사에 전화해서 해지하라’는 코치는 퍼질 만큼 퍼졌다. 요 며칠 네티즌들의 ‘오늘의 과제’는 일단 전화 다이얼을 돌리는 것으로 시작한다. “당신네 회사가 오늘 아침 <조선일보>에 광고를 실었더라, 그렇다면 나는 당신네 회사가 광고를 철회할 때까지 항의할 것이며 안 되면 불매운동 조직할 것이다.” 요즘 <조선일보> 광고 개재 회사 홍보실은 폭주하는 전화로 골머리께나 앓는 중이다. 효과가 있느냐고? 네티즌들의 집중 포화를 받은 몇몇 기업에서는 광고 보류 혹은 광고 건에 대한 사과 공지를 올렸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네티즌들의 공세에 두 손을 든 제약회사인 명인제약이 있다. 보수언론에 광고를 싣지 않겠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일단 쎈 놈부터 패자” 아침이면 전화 다이얼을 돌리는 네티즌들도 안다. 이게 하루아침에 성과를 낼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그러나 서로 지치지 말고 일단 쎈 놈(조선일보)부터 패자고 격려한다. 그뿐 아니다. 연행자가 있는 경찰서마다 전화 걸어 항의를 하고 ‘칭찬합시다’ 게시판에 들어가서 국민 잡아 가두시는 경찰님들 우리가 낸 세금으로 엿 많이 사드시라는 칭찬 글도 남긴다. <경향신문>과 <한겨레>에 광고 하느라, 진보신당과 <오마이뉴스> 생중계 후원하느라, 강달프(강기갑 민주노동당 의원) 응원하느라 여기저기 후원하고 성금 내느라 부지런히 인터넷뱅킹 창을 클릭한다. 심지어는 이런 경우도 있다. 한나라당 심재철 의원이 온라인에서 ‘스마일 심’으로 활동하며 악플을 달아 온 증거를 찾아냈을 때 네티즌들의 센스는 상상을 뛰어넘었다. 알바비에 보태라며 18원을 후원금으로 보낸 것이다. 세액공제를 위한 영수증 처리는 등기우편으로 부탁한다며 다시 한번 ‘확인 사살’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예비군 부대가 모일 때도, 유모차 부대가 등장할 때도 비슷했다. 누구라고 할 것 없이 사이트에서 사이트로 아이디어를 퍼다 날랐고, 그러는 와중에 꼭 기억해 두어야 할 공지사항과 지침들이 만들어졌다. 누군가는 쥐 잡는 뿅망치를 들고 나오고자 했다. 평화시위를 염원하는 뜻에서 꽃을 들고 나온 이들도 있었다. 좀더 쌈박하고 신선하며 자극적인 피켓 문구를 만들어 사이트에 뿌리며 ‘불펌 환영’ 머리말을 달았다. ‘전화질’과 ‘클릭질’은 재빠르고 또 재치가 넘치며 뜨겁고 열정적이다. 그에 비해 거리에서는 엄청나게 느리고 또 피로하다. 인도에서 차도로 경계를 넘기는 했으나, 그 다음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경찰의 저지에 직면했을 때? 모두 다 알다시피 막히면 돌아가고, 돌아가다 또 막히면 열린 길을 찾아 에둘러 갈 뿐이다. 재치와 뜨거움 그리고 전화질과 클릭질 사람들은 열어줄 때까지 줄기차게 항의하고 구호를 외친다. 그리고 기다린다. 행렬을 특정한 방향으로 유도하려는 이들이 있다면 그게 설령 오래된 운동 단체라 할지라도 “그 쪽은 위험하다. 우린 안 간다. 광화문을 지킬 거다”고 제지당한다. 인터넷 용어로 말하자면, ‘닥치고 광화문!’ 혹은 ‘닥치고 행진!’이다. 하지 않는 건 딱 하나 있다. 포기하고 해산하는 것. 정해진 작전은 없지만 광화문에서 혹은 종로에서 그리고 지난 주말처럼 경복궁 부근에서 어찌됐든 만났다. 예정된 행로는 아니었다. 엄청나게 많은 인파가 모이고 나서 자연스럽게 그런 흐름이 생긴 것일 뿐이다. “어디로 간대요?” “오늘은 청와대 쪽으로 갈 것 같아요.” “일단 사람들 많은 쪽으로 붙어요.” 10만 명 이상이 운집한 지난 주말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시청에서 서소문로와 서대문을 지나 경복궁 역에 이른 시민들은 더 이상 ‘고시철회, 협상무효’를 외치고 있지 않았다. ‘이명박은 물러가라’는 구호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이다. 시위가 날이 갈수록 확산된 것처럼 그 사이 시위의 성격 역시 진화하고 확장된 것이다. 광우병 쇠고기 수입, 물 사유화를 비롯한 각종 민영화, 대운하, 교육정책 등 철회와 재고를 요구해야 할 것들이 도처에 널려 있다는 사실은 촛불을 든 사람들 사이에서 이미 상식이 돼 있다. 5월 31일 토요일 밤 11시 반이 넘자 경복궁역 부근, 삼청동과 동십자각 일대에서 사람들은 촛불을 들고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했다. 2중, 3중으로 바리케이드 쳐진 닭장차 앞에서 운집해 있는 사람들이 물대포를 피할 재간은 별로 없다. 물대포의 등장이 처음은 아니었지만 잠시 뒤돌아 서 있는 선에서 그칠 줄 알았던 것은 지금까지는 물대포의 공격성과 위력을 체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저게 살수차야?”, “물이 어디서 나오는데?” 라며 시위대가 웅성거리는 사이, 취재 중인 숱한 카메라들을 향해서, 닭장차에 올라간 시민을 향해서, 그리고 ‘평화시위 보장하라’, ‘연행자를 석방하라’, ‘이명박은 물러나라’를 외치는 시위대들을 향해 물대포를 난사했다. “제게 살수차야? 물은 어디서 나오는데?” 이에 대응한 구호는 ‘세탁비! 세탁비!’, ‘물 뿌려도 안 간다!’, ‘수도요금 올랐다. 아껴 써라 내 세금!’이었다. 물대포의 집중 포화를 견디지 못하고 나가떨어지는 모습을 보았을 때 시민들을 경악했고, 비명을 질렀고 눈을 감았다. 그러나 폭력으로 맞서지 않았다. 경찰들을 향해서는 저항의 구호를 스스로에게는 비폭력 평화시위를 연호했다. 길바닥은 장마가 끝난 직후처럼 흥건했다. 선두에 선 이들이 버티지 못하겠으면 뒤로 빠져나와 불을 쬐며 덜덜 떨리는 몸과 옷을 말렸다. 몸으로 맞서는 이들의 뒤에는 함성으로 맞서는 이들이 있고, 함성으로 맞서는 이들 뒤에는 이 시위의 기본적인 성격을 상징적으로 구현해 내는 이들이 있다. 닭장차와 직접적으로 맞서지 않는 후미는 또 완전히 다른 세상을 실현하고 있다. 길바닥에 주저앉아 어디선가 조달된 커피와 김밥을 나눠먹거나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른다. 노래도 박수도 구슬펐지만, 모두들 약간씩 지치고 피로했지만, 자리를 뜨는 이들은 많지 않다. 어떤 이들은 근처 카페 바깥에 놓인 벤치를 끌어와 길지만 무겁지 않은 토론을 지속하기도 했다. 처절한 긴장감과 아슬아슬한 평화, 그리고 알 수 없는 여유로움이 공존하고 있었지만, 이 이질적인 분위기의 묘한 조화를 모두 당연한 듯 받아들이고 즐겼다. 새벽 세 시가 가까워 오는 시간에 사복체포조가 삼청동 뒤쪽에서부터 내려오고 있는 것을 보았다는 소문, 주변에 병력이 계속 보충되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러자 누군가 그럼 어떡해야 하느냐고 물었다. “가능한 인도 쪽에 서 계세요.” 들려오는 대답이라곤 이게 전부다. 하나 대 여럿, 촛불 대 물대포, 비무장 대 무장 시위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대신 진압은 한 차원 진화한 시위를 쫓아오지 못했다. 곤봉을 휘둘렀고, 방패로 내리찍었으며, 군화발로 짓밟았다. 시민과 전경들은 하나 대 여럿으로 만났다. 촛불 대 물대포로 만났다. 비무장 대 무장으로 만났다. 비폭력 대 폭력으로 만났다.
사실 시위가 절대로 끝나지 않는 이유, 24시간 계속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용량이 부족하면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동 트는 새벽까지도 폭력적인 진압이 계속되는 상황은 인터넷 생중계를 타고 쉼 없이 보도됐다. 현장에서 가까스로 집으로 귀환한 이들은 이불 속에 숨어 벌벌 떨지 않는다. 다시 컴퓨터를 켜고 접속한다. 연행된 경찰서에 항의 전화를 한다. 현장 상황을 왜곡해 보도한 언론사에 정확한 취재와 보도를 요구하며 다이얼을 돌린다. 해외 언론 사이트에 제보할 사진과 유튜브에 올릴 동영상을 제작한다. 구호에 필요한 모금을 하고, 자원봉사자를 모집한다. 내일 시위에 필요한 것들이 무엇인지 연락한다. 그리고 다시 ‘출동’한다. 경찰이 시민을 에워싸고 폭력을 가할 수는 있지만, 시위 자체를 고립시킬 수 없는 이유다. 토요일 시위는 자연스럽게 일요일 밤, 월요일 새벽까지 이어졌다. 이날 시위에 참석하지 못하고 아프리카(afreeca)와 오마이TV를 통해 접한 시위 현장은 지독히도 슬프고 아름다웠다. 경찰은 전날처럼 무차별 물대포 진압을 위해 기자들이 경찰차 위에서 내려갈 것을 종용했다. 순식간에 시민과 기자단 사이의 연대가 형성됐다. 기자들은 내려오지 않았고, 시민들은 그들에게 먹을 것과 비옷을 올려 주었다. ‘언론자유 보장하라’는 구호에서부터 ‘내려오면 조중동’이라는 재치 넘치는 구호도 등장했다. 기자들을 진압하기 위해서 전경들이 경찰차 위로 올라섰을 때는 자정 무렵이었다. 시민들은 ‘취침점호 보장하라’고 연호했다. 학생들은 ‘기말고사 책임져라’고 외쳤다. 다행히 전날처럼 과격한 물대포 진압은 없었다. 언론까지 적으로 돌리는 것이 무모하다는 정도의 판단은 가능한 수준인가보다. 시위대의 깜찍스런 진화와 짜릿한 새벽 이날의 진압 상황이 전날만큼 끔찍했던 것은 당연하다. 정부와 경찰의 대응은 과거를 향한 폭주기관차를 연상하게 했고, 시위대는 깜찍스럽게 진화했다. 새벽 5시 반 무렵이었을 것이다. 그 아비규환에서도 많은 이들이 살아남았고 다시 평화의 촛불을 들었다. 무차별적 진압에 의해 인도로 몰려 있던 시민들은 횡단보도 앞에 섰다. 신호등이 파란색으로 바뀌자 ‘이명박 퇴진’을 외치며 길을 건너기 시작했다. 촛불을 들고 도로를 점거하는 것이 불법이라면, 촛불을 들고 도로를 건너겠다는 것이다. 도로를 지나는 차량들도 응원의 박자를 맞춰 응원의 경적을 울린다. 이 와중에도 좌측통행이 이뤄졌다. 건너가는 이들과 건너오는 이들이 횡단보도 한 가운데서 엉키지 않았다. 짜릿한 새벽이었다. 빨간 불이 켜져 있는 동안에는 인도에 대기하면서 현장을 떠나는 경찰차를 향해 손을 흔들어주기도 했다. 이렇게 질기고 착한 시위대를 본 적이 없다. 오늘도 다시 촛불 사러 간다. 우비도 살 거다. 누구 돈으로 사는지 그게 못내 궁금한 모양인데, 내 돈으로 산다. 들리는 얘기로는 두께 20센티미터의 스티로폼도 효과적이란다. 피켓처럼 구호를 쓸 수도 있고, 깔고 앉을 수도 있고, 경찰의 곤봉과 물 대포 세례를 막을 수도 있단다. 내가 오늘 어느 횡단보도에 서 있을지는 안 가르쳐준다. 언제 어느 도로 위로 들어설지도 안 가르쳐준다. 나도 모르니까! 자, 어디, 나 잡아 봐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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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이 막으면 돌아가면 되고~특공대보다 힘센 비폭력 시민들 – 오마이뉴스(펌)
그래, 사람들이 스스로 흥분을 가라앉히고 막은 길을 피해 스스로 길을 뚫고 만들며 청와대까지 진출하는 것은 정말 놀랍고 짜릿한 일이었다. 몇일간 새벽에 경찰에 쫓기고 연행되면 다음에 모일 때 시민들은 스스로 그들을 피하거나 앞질러 목적지로 가는 길을 파악해 달렸고 물대포를 맞으면 다음날 천막을 준비했고 프락치를 적발하면 흥분하다가도 적절하게 그들을 돌려보내거나 제제하는 방법을 강구했다. 시민들 사이에 포위돼 오히려 전경들이 철수하는 상황에서도 시민들은 수고했다고 박수를 쳐 주고 물 주고 피켓으로 부채질도 해 줬다. 그래도 전경들은 물대포를 쏘고 방패로 찍고 곤봉을 휘둘렀다. 시민들은 그냥 맞고 피를 흘렸다. 그래도 이들은 발랄함을 놓지 않는다. 불법 도로 점거를 시위 진압의 이유로 삼으니까 이제는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등 놀이를 하고 있다. 닭장차를 불법 주차라면서 딱지를 붙이고 끌어내면서 견인하는 거라는 재치도 보인다. 누가 가르치거나 주도하지 않고 자발적으로 그렇게 판단하고 행동하고 있는 게 정말 신기하고 울컥하게 한다.
원본출처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915895
경찰이 막으면 돌아가면 되고~
특공대보다 힘센 비폭력 시민들
[비폭력 시위백서] 촛불문화제, 현명한 대중들에 매일 놀란다
요즘 사람들은 두 가지에 놀란다. 하나는 이명박 정권의 안하무인. 10만 명이 청와대 앞까지 가서 외쳤다. 대통령 나오라고. 보수 언론사 논설위원도 TV 토론에서 이야기한다. 이쯤 되면 대통령이, 아니 최소한 책임 있는 각료가 시민들과 만나야 하는 거 아니냐고.
그런데도 정권이 기껏 내린 결정은 물대포와 소화기를 쏘아대는 것이었다. 그리고 비겁하게도 사람들이 줄어드는 새벽쯤에 특공대를 투입해 마구잡이 연행을 한다. 배후가 있다면서 정작 잡아들이는 것은 다음날 출근해야 할 시민들이다.
또 다른 하나는 바로 시위 분위기다. 어떻게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무엇 하나 논의된 것 없이 이렇게 모이고 움직이고 저항하는가다. 이러한 놀람은 나를 포함한 속칭 ‘운동권’-활동가들도 마찬가지이다. 속으로는 ‘판이 커지면 지도부가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가장 현명한 것은 대중들이라는 확신을 갖게 됐다.
비폭력 직접행동으로서의 촛불시위
▲ 30일 밤 서울 태평로 덕수궁앞 도로에서 미국산 쇠고기 전면수입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경찰과 대치하는 가운데 한 여고생이 시위 진압을 위해 대기중인 경찰 살수차(물대포)를 혼자서 가로막고 있다. ⓒ 권우성
미국산 소고기 수입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촛불집회에 대한 다양한 관찰과 분석들이 나오고 있다. 청소년들의 선도적인 행동을 두고 새로운 세대의 등장을 선언하는 분석, 문화제와 집회에 깔려있는 국가주의·애국주의에 대한 비판, 실패한 내각 구성과 광범위한 신자유주의 정책이 만든 민중의 저항이라는 평가까지.
필자는 이러한 분석에 하나를 추가해 보고자 한다. 필자는 지금의 촛불집회는 우리가 경험한 저항문화 중에서 가장 비폭력적인 직접행동에 가깝다고 느낀다. 시민들이 상식적으로 택한 비폭력은 지금 가장 급진적인 실천으로 구성되고 있다.
필자가 함께 활동하는 평화주의 운동그룹은 ‘평화캠프’라는 행사를 몇 년간 진행해 왔다. 이 캠프의 프로그램 중 하나가 ‘비폭력 직접행동 트레이닝’이었다. 2004년에는 영국의 한 활동가를 초청해서 전문적인 교육을 받기도 했는데, “사람이 아닌 건물이나 차량을 훼손하는 것이 폭력인가 아닌가”와 같은 질문에서 시작해서 어떻게 스크럼을 짜야 연행되는 시간을 늘릴 수 있는지에 대한 실제적인 트레이닝을 하기도 했다.
간디와 마틴 루터 킹의 실천 등에서 유래했고, 서구의 신사회운동에서 자주 활용되는 비폭력 직접행동의 가장 큰 원칙은 ‘수단과 목적의 일치’라 할 수 있다. 즉 달성하고자 하는 목적만큼이나 수단도 중요하며, 그렇기에 과정으로서의 비폭력과 민주주의를 강조하는 입장이다. 기존의 저항문화를, 집회방식을 어떻게 하면 보다 나은 방식으로 바꿀 수 있을까 고민했던 한국 평화운동 그룹에게는 매우 적절한 자극이었다.
그렇게 배우고 익히긴 했지만 정작 실제 한국의 저항문화 속에서 이를 활용하거나 확산시킬 기회를 갖지 못했다. 늘 아쉬워하면서도 정작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을지 난감하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개방 문제를 둘러싼 시위를 경험하면서, 이미 사람들은 비폭력 직접행동을 거리에서 실천하고 있음을 보게 되었다.
요즘 촛불집회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구호 중 하나가 ‘비폭력’이다. 폭력을 꺼리는 것만으로도 ‘투쟁의 의지’가 없으며 타협적이라고 비판받던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게다가 ‘비폭력’을 이렇게 구호로서 사람들이 광범위하게 외친 것은 전무한 일이 아닐까 한다.
몇몇 사람들이 흥분해서 전·의경에게 욕을 하거나, 땅바닥에 떨어진 작은 막대기라도 들면 그 주위의 사람들이 “비폭력, 비폭력”을 외친다. 밀고 당기면서 뺏은 방패들도 곧 돌려준다. “경찰은 우리의 적이 아닙니다, 욕하거나 때리지 맙시다”라고 어떤 사람이 외치기도 한다.
막으면 돌아가고, 기다린다… 도덕적 우위로 싸우는 비폭력
비폭력은 무저항이 아니다. 힘과 힘이 부딪칠 때는 힘이 센 쪽이 이긴다. 국가와 시민들이 힘으로 부딪칠 때에는 조직적인 폭력을 독점하고 있는 국가가 당연히 유리할 수밖에 없다.
비폭력은 이 프레임을 깨보자는 것이다. 즉, 힘이 아닌 ‘도덕적 우위’로 싸우는 것이다. 그리고 끝까지 그 도덕적 우위를 잡고 늘어진다. 그게 우리의 힘이기 때문이다. 촛불을 든 이들은 거리에서 도덕적 우위를 자신의 힘으로 삼고자 결심한 듯 했다.
막으면 돌아간다. 보통 집회 행진이 막히면 선봉대를 꾸리든, 대오 전체가 밀고 당기든 뚫고 지나가는 것이 이전까지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아주 평범하게 생각한다.
청와대로 가자. 그런데 길이 막혔다. 그럼 돌아가자.
지난 토요일 집회에선 시청에서 집회를 한 사람들이 광화문이 막혀있자 독립문을 지나 사직터널로 돌아가서 청와대 앞으로 갔다. 경찰이 급하게 길목을 막아봤지만 대오는 한 발 빠르게 다 막지 못한 틈으로 지나갔다. 굳이 싸우지 않았다.
▲ 31일 밤 서울시청앞 광장에서 열린 24차 촛불문화제를 마친 시민, 학생 수천명이 독립문으로 우회해서 사직공원을 지나 청와대를 향해 행진을 벌이고 있다. 경찰버스 바리케이트에 막히자 부모들은 어린아이를 중앙분리대를 넘겨 옮기며 행진을 계속했다. ⓒ 권우성
막으면 기다린다. 결국 최종 저지선 앞에서 막혔을 때 시간이 지나도 사람들은 해산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자발적으로 모인 사람들이라 해산을 결정할 사람도 없었다. 누군가 “해산합시다” 하면 “너나 가라”고 야유를 하기도 했다. 경찰도 “몇 시까지 해산시키면 연행하지는 않겠다”고 타협할 ‘지도부’가 없으니 답답할 노릇이었다.
밤이 늦을수록 집에 가는 사람들이 많아졌지만, 상당수의 사람들은 기다렸다. 고시를 철회하지도 재협상을 하겠다고 하지도 않는데 왜 집에 들어가느냐는 것이다. 둘러앉아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토론을 하기도 했으며 가로등 불에 책을 보는 사람도 있었다. 물론 대치하는 곳에서는 밀고 당기기가 지속됐지만 그 뒤에서 많은 이들은 차분하게 기다렸다. 예전에는 볼 수 없었던 ‘독함’과 ‘무서움’이다. 하지만 전혀 비장하지 않은 즐거운 모습으로 이들은 기다렸다.
비폭력적인 저항은 많은 시간과 기다림이 필요하다. 힘과 힘은 금방 결판이 난다. 그러나 비폭력은 다르다. 핵 기지를 봉쇄했던 외국의 예를 보면 그 기지로 핵 물질이 반입되지 못하게 며칠이고 사람들이 에워싼다. 사전에 많은 식량과 물품 등이 준비된 상태에서 진행된 것이었다. 물대포로 공격하면 준비된 우비를 꺼내 입고, 최대한 연행을 늦추기 위해서 강력하게 스크럼을 짠다. 이들은 이러한 저항을 수개월에 걸쳐서 준비한다.
그러나 우리는 자연스레 그러한 방식을 택했다. 우리 역시 청와대 앞에서 ‘불법’적으로 도로를 점거하고 기다렸다. 아무리 수만 명이 모여서 촛불을 들어도 꿈쩍도 하지 않는데 방법이 있는가. 근처 슈퍼에서 먹을 것을 사다 나르고, 밤이 돼서 추위에 떨면서도 말이다. 물대포 앞에서 우리는 준비한 우비는 없었지만 급하게 비닐을 구해서 그 아래에서 버텼다. 그렇게 “이명박 나와라”를 외친 사람들이 결국 마주한 것은 테러진압 훈련을 받았다는 경찰특공대였다.
잡아가라, 대신 때리지 마라
앞선 핵기지 봉쇄에 관한 이야기를 조금 더 하면, 이 봉쇄에서 중요했던 것은 관찰자의 역할이다. 직접 봉쇄에 참여한 이들만큼 중요한 관찰자는 현장을 기록하고 경찰을 감시하고 이후 재판에 사용될 자료를 준비하는 이들이다. 이들은 별도의 교육을 받기도 한다.
이미 우리의 촛불집회에는 수많은 관찰자가 등장해서 활동하고 있었다. 언론사의 기자들보다 이러한 관찰자들의 역할이 더욱 빛나는 지금이다. 어떤 이들은 실시간으로 현장을 생중계하기도 하며, 수많은 이들이 캠코더·카메라·휴대폰 등을 통해서 현장의 모습을 담아 인터넷을 통해 공유한다.
그렇게 공개된 경찰의 무자비한 폭력이 지금 전 국민을 들끓게 하고 있다. 새벽까지 대통령을 만나겠다고 기다린 시위대에게 시민들은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으며 다음 집회에는 꼭 참여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비폭력 직접행동의 힘이라고 할 수 있다.
집회 현장에서 외쳐지는 “평화시위 보장하라!”라는 구호에서 시민들의 자신감을 느낄 수 있다. 사람들은 평화-비폭력이라는 도덕적 우위를 활용하며 저항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연행에 있어서도 훨씬 적극적인 모습을 나타낸다.
‘닭장차투어’라는 말이 네티즌 사이에서 유행이 될 정도로 연행에 대한 태도가 달라졌다. 경찰의 불법적인 채증 앞에서 시위대들은 얼굴을 가리기 위해 마스크를 쓰기는커녕 손으로 V를 그리며 조롱한다. 그리고 외친다. 우리가 무슨 죄를 졌냐고. 연행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유치장에서 나와 경찰서를 배경으로 자랑스레 사진을 찍는다.
집시법 위반. 불법 집회. 맞다. 불법도로 점거, 맞다. 하지만 사람들은 명쾌한 논리를 찾아냈다. 그것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며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온다는 헌법이었다. 대통령이 국민의 뜻을 이렇게 무시하면 결국 헌법을 어긴 것이며 그 상황에서 시민들은 집시법을 어기는 시민불복종을 택한 것이다. 아무리 외쳐도 꿈적도 하지 않는 대통령 만나려고 맨 몸으로 거리로 나온 것이 무슨 큰 잘못이냐고 사람들은 말한다. 그리고 기꺼이 말한다. 그게 잘못이라면 잡아가라. 대신 때리지 마라. 사람을 왜 때리는가. 내가 널 때렸는가.
비폭력 직접행동을 구성하는 또 다른 축인 내부의 민주주의 역시 이번 촛불집회에서 두드러진 부분이다. 정부가 ‘배후, 배후’ 하고 노래를 불렀지만 정작 참여자들이 놀란 것은 이렇게 ‘지도부’가 없는 상황에서도 사람들이 잘 움직이며 싸우고 있다는 것이다. 자전거를 이용해서 가두행진의 앞과 뒤의 상황을 소통해주는 이들이 생겨났고 의대생을 중심으로 의료봉사단도 부지런하게 움직이고 있다. 내 관점에선 불편하긴 하지만, 예비군들의 활동도 자발적인 역할그룹이라 할 수 있다.
비폭력 직접행동의 해외 사례들을 살펴보면 활동이 준비되는 과정에서 참여하는 이들은 작은 분임을 형성해서 내부적으로 논의하는 과정을 갖게 된다. 그 과정을 통해서 전체의 계획이 결정되고 토론된다. 현재의 촛불집회는 그러한 논의의 장은 부재한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무언가를 결정할 때 즉석 토론이 이루어지고 그 과정에서 사람들은 어떤 직위나 이름으로 우위를 주장하지 않는 모습은 분명 중요한 가능성이라고 느껴진다.
비폭력이라는 도덕성을 통해 우리의 저항 이어가길
처음 촛불문화제가 행진으로 확대되었을 때 많은 언론에서 ‘변질’이나 ‘폭력’ 등의 용어를 사용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 누구도 지금은 촛불집회에 폭력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진 못하고 있다. 경찰이 불법집회라고 해산을 명령하면 사람들은 국민주권원칙과 평화집회로서 맞서고 있다. 그러한 시민들을 폭력적으로 해산시키고 끊임없이 연행해 가는 경찰과 정권은 매일매일 패배하고 있으며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니는 이 글에서 지금의 촛불집회가 한국 사회에서 등장한 여러 저항 중에서 가장 비폭력 직접행동에 근접하는 모습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러한 내 분석이 현학적인 ‘이름붙이기’가 아닌 이후 활동에 있어서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비폭력 직접행동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핵심은 힘의 우위가 아닌 도덕의 우위로서 싸우는 것이다. 어쩌면 경찰이나 정권은 상황 반전을 위해 시위자 중 일부가 폭력을 사용하는 것은 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미 시민들은 작은 폭력이라도 침소봉대되어서 탄압의 빌미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기에 지금의 비폭력은 고도의 ‘전술’이라고 할 수 있다. 비록 이 비폭력 저항의 과정이 느리고 답답해 보인다 하더라도 우리가 기댈 수 있고, 승리할 수 있는 방식은 이것뿐이라 확신한다. 그리고 이미 우리는 매일매일 승리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임재성 기자는 전쟁없는세상 활동가입니다.
2008.06.02 11: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