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사코>

아사코와 바쿠는 어떻게 사랑에 빠졌을까. 둘의 만남은 처음부터 이상했다. 사진 전시회를 보러 미술관을 들른 날 우연히 만난 아사코와 바쿠는 아이들의 콩알탄 놀이가 일으키는 소음 속에서 갑자기 입을 맞추며 모든 과정을 생략하고 사랑하는 사이가 된다. 아사코와 바쿠의 첫만남처럼 영화 <아사코>는 보는 이를 당황스럽고 혼란스럽게 만든다. <아사코>는 시종일관 감정의 결이나 인과의 구조물을 쌓아 올리지 않고 갑작스럽게 상황과 행위를 제시한다. 아사코와 바쿠가 갑자기 사랑에 빠지고 어느 날 바쿠가 갑자기 사라진다. 그리고 바쿠와 같은 얼굴을 한 료헤이가 갑자기 등장한다. 이 영화의 서사를 인과의 고리 안에서 납득하고 이해하기란 난망하기 때문에 계속 갑자기라는 수식어를 붙이며 설명하게 된다. 저녁 식사 초대를 받아 방문한 자리에서 료헤이의 친구 쿠시하시가 마야의 TV 연기를 본 후 갑자기 공격적으로 혹평을 하는 씬은 아직도 왜 이 상황이 필요했는지 이해하기가 힘들다. 그리고 한 가지 더 고백하자면 앞서 말한 콩알탄의 소음 속에서 아사코가 바쿠의 갑작스런 키스를 그대로 받아 들이며 연인이 되는 첫 시퀀스부터 아사코가 얼마나 수동적 여성 캐릭터의 전형을 보여 줄지 걱정이 앞서게 된다. 이 영화가 그저 통속적인 이야기 같다는 의구심이 꼬리를 물게 된다. 어쩌면 이 영화는 실제로 그런 우려의 경계 위에 놓여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영화 이후의 시간이 뜻밖에도 오랫동안 이 영화에 남는다. 무엇이 나를 이 영화에 머물게 하는 걸까.

영화 <아사코>의 세계는 말하자면 이유를 알 수 없는 세계다. 이유는 모르고 사태가 주어진다. 그런데 그 때문에, 이유를 미처 알지 못한 채 사태가 벌어지고, 그런 채로 사태 안에 자신이 남겨지기 때문에 무언가에 끊임 없이 붙들리는 세계다. 그 무언가가 벌어진 사태인지 그 사태의 이유인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그것이 벌어진 이후 홀린 듯이 무언가에 붙들려 있는 것 같다. 사실 나는 아사코를 붙드는 것이 바쿠도 바쿠가 떠난 이유도 아니라 미결감이라고 말하고 싶다. 사태로서는 끝났지만 마음 속에서는 끝나지 않은 채 남아 있는 것. 끝나지 않는 아사코의 마음 속 사태는 어쩌면 바쿠조차 끝낼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사코는 바쿠의 손을 붙잡고 홋카이도를 향하는 길에서 깨달았을 것이다. 내 마음 속 사태는 이제 더 이상 바쿠로 인한 것이 아님을. 이윽고 바쿠를 돌려 보내고 홀로 제방을 오른 아사코에게 들리는 거친 파도 소리는 이런 깨달음을 드러내기도 하겠지만 여전히 아사코를 붙들어 흔드는 미결감의 혼란도 들려 주는 것만 같다.

이 영화에서 미결감의 정조를 눈치 채는 것은 사후적이다. 그보다 앞서 맞닥뜨리는 것은 다소 마술적이라 할 사건의 전개다. 다시 첫 시퀀스로 돌아가면 미술관을 연달아 나서는 바쿠와 아사코의 걸음 위로 깔리는, 음과 음 사이를 이상하게 움직이는 음악조차 주술적인 느낌을 불러 일으킨다. 아사코는 바쿠를 만나기 전 미술관에서 어느 쌍둥이의 사진을 매료된 듯 한참 쳐다본다. 그 순간 바쿠를 만나 연인이 되고, 바쿠가 떠난 2년 후에는 바쿠를 그대로 닮은 료헤이를 만나 연인이 된다. 마치 사진 속 쌍둥이가 바쿠와 료헤이를 암시한 것처럼. 하루요가 아사코에게 “저 남자 너를 울릴 거야”라고 하고 나면 바쿠는 어느 날 구두를 사러 나가서 사라져 버린다. 바쿠가 아사코를 떠날 것이라는 예감은 빵을 사러 나서는 바쿠를 향해 손 흔드는 아사코를 멀어지듯 찍은 트랙 아웃 쇼트에서도 미리 제시된다. 영화가 앞서 제시한 것을 실현하는 방식으로 사건을 풀어 가고 있다고 느끼게 만드는 예는 더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영화가 앞서 제시한 것을 재연하는 방식으로 풀어 가는 것도 찾을 수 있다. 바쿠가 아사코에게 그랬듯이 아사코는 료헤이에게서 갑자기 떠난다. 아사코가 바쿠의 손을 잡고 자리에서 일어나 료헤이에게서 멀어지는 이 장면은 앞서 빵 사러 나서는 바쿠에게 손 흔드는 아사코를 담은 장면과 마찬가지로 트랙 아웃 쇼트로 찍혔다. 그리고 아사코가 바쿠를 돌려 보내고 료헤이의 오사카 집을 찾았을 때 아이들의 공놀이 사이에서 료헤이를 만나는 장면은 영화 첫 시퀀스의 콩알탄 장면을 반드시 떠올리게 만든다. 또한 도호쿠 지역에 자원 봉사를 하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사코가 료헤이에게 “고속도로에서 나왔어?”라고 묻는 대사는 바쿠와 홋카이도로 가는 길에서 똑같이 반복된다. 이처럼 앞선 것을 실현하거나 재연하면서 영화는 기시감이라는 정조를 만든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사태를 무심코 운명처럼 받아 들이게 만들고 뒤돌아 서면 이런 나를 이해할 수 없어 당혹케 하는 기시감의 혼미함이 이 영화를 감싸고 있다.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무언가 잔여감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아사코의 말처럼 영화 속 모든 일이 뜻 모를 긴 꿈 속 같아서 깨어나서도 한동안 그 꿈에 더 머물고 싶어져서인지도 모른다.

솔직해져야겠다. 내가 이 영화에 사로잡힌 것이 사실 이처럼 묘하게 풍기는 정조 때문은 아니라는 것을. 실은 나는 이 영화를 보고 아사코가 결국 선택한 행위를 이해하고 싶어 한참 동안 머물러야 했다. 아사코가 주어진 것에 매료되고 그것에 충실히 매진하는 안전한 수동성의 패턴을 끊고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바쿠가 아니라 료헤이와의 관계를 복구하려고 단호해지는 것에 나는 놀랐다. 아사코는 그 때까지 어디까지나 타자의 부름에 충실히 반응하고 응답하는 인물이었고 바쿠로 인해 삶 전체가 어떤 상처에 지배당하는 인물이었다. 아사코가 다시 나타난 바쿠의 손을 잡고 료헤이에게서 떠나는 것은 아사코의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영화가 아사코의 미결감을 동정한다면 기꺼이 그럴 수 있는 일일 것이다. 그 순간 아사코를 향하는 비난에는 억울함마저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아사코가 료헤이에게 돌아가기로 결심하고 료헤이 앞에서 날선 비난을 그대로 받아 들이는 동안 아사코의 미결감은 더 이상 보살펴야 할 것이 아니게 된다. 아사코는 이 순간 영화의 세계가 보이던 동정에 대립하는 것처럼 보인다. 아사코는 그 동안 이루어진 영화의 작동 법칙과 달리 영화보다 먼저 말을 뱉는다. “바쿠, 더 이상 안 되겠어. 돌아가야 해. 료헤이가 있는 곳으로. 더 이상 내 걱정은 할 필요 없어.” 그리고 제방 너머 파도 소리가 들리고 아사코가 정면을 응시하며 이제는 상황이 변했음을 보여 준다.

이제 아사코가 영화를 규정한다. 영화적 사태가 아사코의 결심대로 따라가야 한다. 아사코가 일으킨 변화가 무엇인지 영화가 확인해야 한다. 아사코는 도호쿠 지역의 어부에게 힐난을 들으며 교통비를 빌려 료헤이를 찾고, 자신을 닮은 바쿠가 이제 머리 속에서 떠나지 않는다며 분노를 쏟아 내는 료헤이의 날선 말을 묵묵히 듣는다. 아사코는 비난에 흔들리지 않고 그것을 기꺼이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오카자키의 어머니 에이코는 젊은 시절 아침을 같이 하기 위해 도쿄까지 갔던 추억의 남자가 실은 남편이 아니라는 고백을 하는데, 이것은 아사코가 깨달은 바의 단초를 영화가 사후적으로 구성한 것에 가깝다. 에이코가 두고두고 회고하는 잊을 수 없는 사랑의 경험이 실은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에 대한 끊임 없는 사로잡힘이라는 것, 아사코 역시 어쩌면 그렇게 바쿠로부터 새겨진 미결감에 평생을 붙잡히며 살지도 모른다는 것, 미결의 미혹을 헤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로 지금의 사랑을 해야 한다는 것으로 풀어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아니면 아사코는 미결감의 고통을 료헤이도 똑같이 겪게 해서는 안 된다고 결심한 거라고 해야 할까. 아사코는 료헤이가 허락한다면 아사코가 료헤이에게 입힌 상처가 자신을 찌르는 송곳이 되어 돌아오는 것을 감내하면서까지 료헤이와 함께 하려 한다. 이 모든 것을 자신의 책임으로 받아들이면서 자신이 지금 료헤이를 사랑한다는 인식이 오히려 또렷해진 것 같아 보인다. 나는 아사코의 이런 결심이 윤리적 선택에 가깝다고 계속 말하고 싶어진다. 아사코는 미결감과 기시감의 아릿한 착란 속에서도 자신이 원하는 것을 깨닫고, 그것을 양보하지 않고, 그것이 야기할 일들에 대해 책임 지고, 끝내 그것을 완수하려 하지 않는가. 연이어 이런 생각이 꼬리를 문다. 나는 왜 아사코처럼 하지 못하는가. 이런 생각들이 나를 이 영화에 붙들리게 하는 것이다.

<김군>

1980년 5월 광주의 시민군이었던 최진수씨는 1989년 2월 22일 28차 5·18 진상조사특별위원회에 출석해 계엄군의 송암동 학살 사건을 생생하게 증언했다. 수십 명의 공수부대원이 시민군이 숨어든 집 앞마당으로 들이닥치는 순간을 말할 때 그는 차마 꺼내기 힘든 말인 듯 입이 막혔고 입술이 떨렸다. 1980년 5월 24일 광주 송암동에서 계엄군은 무작위로 시민군을 즉결처분했다. 최진수씨보다 한 발짝 먼저 툇마루를 넘었던 이름 모를 동료는 관자놀이에 총을 맞고 그 자리에서 숨을 거뒀다. 최진수씨는 그 순간 쓰러지는 동료의 눈을 아직도 떠올린다. 영화 <김군>은 30년이 지난 지금 그 증언을 최진수씨의 얼굴로 겹쳐 다시 잇는다. 이런 말을 덧붙이면서 : “그 친구 대신에 제가 산 거죠. 툇마루에서 먼저 발을 내딛었으면 제가 먼저 죽었을 텐데. 그 생각만 수십 년 동안 하고 있습니다.” 

영화 <김군>은 한국 현대사의 격랑을 상징하는 사진 이미지를 두고 벌이는 이야기의 투쟁을 그린다. 기관총을 탑재한 군용 트럭 위에서 방탄모를 눌러 쓰고 매서운 눈빛으로 뒤돌아 보는 어느 시민군의 사진에 일베와 지만원 뿐만 아니라 이 영화 역시 매혹되었다. 그 자체로 포토제닉하기도 한 이 사진에서 출발하기는 했지만, 사실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1980년 광주의 현장을 담은 사진은 모두 한국 민주주의 역사의 초석적 사건, 광주의 아픔과 독재에 대한 민중의 저항 등을 표상하는 상징적 힘을 지닌 매혹적 이미지다. 금남로에서 구호를 외치는 시민 군중의 얼굴 하나하나는 수업을 파하고 온 학생 김 아무개, 세탁소 문을 닫고 나눠줄 주먹밥을 챙겨 온 이 아무개의 구체적 삶이 아니라 저항하는 민중의 현현으로 우리를 매혹시킨다. 이미지의 매혹적 면모는 종종 그것을 구성하는 구체적 이야기를 압도하거나 넘어선다. 그렇게 사진이 매혹적 이미지가 되어 가는 동안 점차 우리가 잊게 된 것이 무엇인지 이 영화는 깨닫게 해 준다. 구체적 삶 또는 이야기의 공백, 위에 서술한 최진수씨의 증언으로도 채울 수 없는 김군의 이름 같은 것 말이다. 그 공백이 이 영화가 일베와 지만원의 대체 역사와 싸우는 전장이다. 

영화 <김군>은 사진 이미지의 매혹에서 출발했지만 결국은 그것으로부터 구체적 개인의 삶을 구하려는 영화다. 그렇지 않다면 필름 아카이브에서 꺼낸 필름을 루페로 들여다보고 확대 사진의 은염 입자 속에서 매혹적 울림을 감상하는 것으로 그쳐도 충분했을 것이다. 대신 일베 및 지만원이 일으킨 소동을 영화로 다루기로 마음 먹었을 때, 소동이 일어난 사진의 주인공을 찾아 나설 때부터 목표는 정해진 것이나 다름 없다. 그러나 지만원의 주장이 넌센스에 불과하다는 것은 영화가 시작하고 5분도 지나지 않아 알 수 있다. 처음 만난 시민군 본인의 증언을 확인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여기서 더 나아가 이 영화는 이미지가 지운 시민군의 얼굴과 이름을 복원한다는 목표를 아슬아슬한 지점까지 몰아붙인다. 세 명의 광주 시민군(이강갑, 최영철, 최진수) 극장 재회 장면은 이미지로부터 현실의 구체적 개인을 규명하고 개인이 자신의 상징화된 이미지를 성찰하게 하며 개인이 자신의 기억과 서로의 관계를 직시하도록 만드는 인위적 시공간이다. 이 장면에서 나는 30여 년 간 서로를 찾지 않고 각자의 외상적 경험을 삭이며 살아 온 시민군, 특히 최진수씨의 삶을 영화가 침범하는 것은 아닐까 긴장하게 된다. 영화가 이들의 삶을 극적으로 이용하려는 것 같다는 느낌이 이 영화의 윤리적 태도를 의심하게 만든다. 그런데 반대로 생각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영화가 시민군의 구체적 삶 속으로 섣불리 침입한 것이 아니라 시민군이었던 이들이 이미지 뒤에서 훼손당한 이야기로부터 자신의 삶을 구하기 위해 영화의 세계를 필요로 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영화가 시민군의 기억을 추적하며 만난 수많은 광주의 주역들이 회고하고 증언하는 과정 속에서 사진에 대한 조롱의 이야기에 맞서기 위해 자신들만의 이야기 세계가 필요함을 자각하고 있었다면 말이다. 

덧붙여 시민군 사진에 대한 조롱이 지닌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일베로부터 촉발되어 지만원이 공적 소동으로 만든 5·18 북한군 개입설은 한국 민주주의의 역사를 부정한다. 일베와 지만원은 광주의 상징적 사진 이미지를 조롱하고 그 이야기를 전복하여 대체 역사를 구성하려 한다. 물론 이는 망상에 불과하지만 그들의 악의에 찬 조롱이 진짜로 원하는 바는 성공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들은 광주의 역사를 피해자의 기억으로, 민중의 주체적 저항을 타자에 대한 죄책감으로 가두고 싶어 한다. 그들이 왜곡하고 조롱하는 사진이 광주에서 벌어진 피해의 기록이 아니라 무장하고 저항한 시민군에 대한 것이라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그들은 광주가 저항했다는 것을 지우고 싶은 것이다. 광주의 저 무장한 청년이 실은 남파한 북한군이라는 것을 진지하게 확신하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할지라도 그들은 광주 시민이 체제에 저항하는 정치적 주체였다는 것을 부정하고 싶다는 욕망에 대해서만은 확신에 차 있을 것이다. 시민군이 북한군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하려면 시민군 역시 피해자였음을 상기해야 하리라. 시민군이 피해자로 남아 있는 한 우리는 그들을 주체로 동일시하지 못하고 돕지 못한 죄의식에 사로잡혀 있으리라. 이처럼 파시즘이 죄의식을 전가하며 주체를 억압하는 전략이 여전히 이곳에서 유효하게 작동하고 있음을 영화 <김군>이 도착하는 진실 앞에서 되새겨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