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 준다고 몇 번 집 밖으로 내쫓았더니 오히려 이 녀석은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 버렸다.
창 밖, 옆 집 사이 담장에 불쌍하게 앉아 쳐다보며 들여보내 달라고 애원하던 것은 옛날 일이 돼 버렸다.
원래 그 곳을 자기 활동 영역으로 하던(약 6개월마다 그 주인이 바뀐다) 턱시도 고양이가 사티와 대치하며 으르렁 대고 있으면 내가 쫓아 버렸는데, 그러다 보니 사티가 자기 영역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덥다고 현관문을 열어 놓으면 냉큼 밖으로 뛰쳐 나가 버린다.
창 밖으로 보면 자기 영역 순찰 중이다.
아까 나갔다 들어와서 씻겨 놨더니 털이 마르기도 전에 또 나가 버렸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벌을 준 거지만 사티는 거기서 개척 정신을 배웠다.
녀석은 내 머리 위에 있다. ㅡ.ㅡ;
이제는 함부로 못 나가게 원군 역할을 하지 말아야겠다.
[태그:] 사티
사티 복귀
그 불쌍한 눈을 또 어떻게 내칠 수 있을까.
결국 다시 복귀했다.
온 몸의 떼를 씻겨놓고 지금 그루밍 중이다.
홀쭉하고 털 엄청 빠져서 몰골이 말이 아니다.
다시 동거 시작이다.
이런 제길…
내가 도를 닦아야 한다…
사티를 내쫓다
고양이는 생후 2~3개월 내에 성격이 형성된단다.
그래서 사람과 친숙한 고양이가 되려면 2~3개월령 때 사람과 자주 접하는 경험을 해야 한다.
사티가 길고양이 출신이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은 이 녀석이 처음부터 나를 전혀 무서워하지 않았다는 것 때문이다(어미가 길고양이였던 연두는 아직도 나를 어느 정도 무서워 한다. 고양이는 너무나도 개성이 강하다).
사티의 큰 목소리 덕분에 녀석과 나는 만나게 됐다.
사티는 그만큼 자신의 감정을 최대한으로 표현하고 주체적이며 독립적이다.
이는 나쁘게 말하면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이라는 말도 된다.
자기중심적이고 사람을 무서워 하지 않는 고양이가 사람을 공격하는 것까지 주저하지 않는다면, 때로는 사람과 함께 살기가 힘들다는 것을 알게 됐다.
녀석을 처음 데리고 와서 바로 동물병원에 데리고 갔을 때에도 녀석은 수의사의 상처난 손에 더 깊은 상처를 내 버렸다.
“키우기 힘들겠어요”라는 말에 멋적은 웃음을 보였지만, 실제로 지금까지 녀석과 함께 산다는 것이 상당히 힘들었다.
자신이 사랑을 확인하고 싶을 때는 주저하지 않고 내 품에 달려 들어와서 나를 흐뭇하게 해 줬지만, 조금이라도 심기가 불편하면 여지없이 내 손에는 한 줄 또는 두 구멍의 상처가 생기고는 했다.
내 손에 상처가 많아질수록 녀석에 대한 내 감정도 극단적이게 된 것 같다.
새벽 내내 녀석과 싸우고, 잔인하게 응징하며 보낸 적도 한 두 번이 아니다.
나도 이성을 잃고 괴롭힐만큼 녀석은 절대 자신의 감정에 대한 정직한 표현을 굽히지 않는다.
내 생활도 피폐해 가고, 녀석도 나 때문에 많은 스트레스를 받을 것이다.
그래서 두 세 번 녀석을 내쫓기도 했지만 문 앞에서 가냘프게 울부짓는 걸 내치기도 힘들었다.
고양이는 영역의 동물이다.
그래서 고양이는 사람이 아니라 집을 사랑한다고도 한다.
때문에 낯선 곳에서 두려워하다 결국 내 품으로 다시 들어왔던 것이다.
물론 동정표를 던지며 들어와서는 다시 본색을 드러낸다.
몇 번을 반복해도 녀석은 바뀌지 않는다.
그 때마다 내가 어리석었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나는 이 또한 고양이의 특성임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고치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나는 비 오는 혹독한 날씨에 녀석을 내쫓았다.
처음에는 힘들어도, 나와 녀석에게는 이것이 더 나은 길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이게 몇 번이고 반복될지는 알 수 없지만 내 손에 더 이상 상처가 생기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타자와 함께 한다는 것은 머리 속으로만큼 쉬운 일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