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살이는 성충이 되면 하루 만에 죽어. 몸속은 텅 비었고 위도 장도 없다지. 속엔 알만 가득 차 있어. 낳고 죽으면 끝나는 목숨이지. 인간도 마찬가지야. 허망하지.”

“저도 텅 비었어요.”

“이런 우연이 있나. 나도 텅 비었는데.”

“우리 말고도 있나요?”

“요새는 다들 그래.”

“다들?”

“특히 이런 대도시에 사는 사람들은…너만 그런 거 아냐.”
공기인형

AirDoll

 

대화는 실패하고 있지만 ‘텅 빈’의 의미는 더 풍부해진다.

너무 오랜만에 김기덕의 영화를 봐서일까.
피에타를 보고 나서 한참 동안 말문이 막혀 있다.
다만 그의 영화는 여전히 어떤 변증법적 힘을 지니고 있다.
그의 오랜 주제는 사랑과 증오, 죄와 구원, 복수와 용서의 동일성에 대한 탐구가 아닌가.
돈의 악마적 측면을 체화하고 있는 강도에게 미끄러지듯 침입해 온 엄마라는 존재에게 우리는 이렇게 질문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어머니, 당신은 용서인가요, 복수인가요?”

추가: 이 글을 쓰는 순간 베니스 영화제 수상 소식이 전해지니 덜컥 생각이 멈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