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장이모…(Zhang Yi Mou)
연출작 책상 서랍 속의 동화 (有話好好說: Not One Less) 1999년 중국
집으로 가는 길 (俄的父親母親: The Road Home) 1999년 중국
키프 쿨 (有話好好說: Keep Cool) 1997년 중국/홍콩
트라이어드 (搖?搖, 搖到外婆橋: Shanghai Triad) 1995년 중국/프랑스
인생 (人生 / Lifetimes) 1994년 중국/대만
귀주 이야기 (秋菊打官司: The Story Of Qiu Ju) 1992년 중국
홍등 (大紅燈籠高高掛: Raise The Red Lantern) 1991년 중국/홍콩/대만
국두 (菊豆: Judou) 1990년 중국
대호 미주표 (代號 美洲豹: Codename Cougar) 1989년 중국
붉은 수수밭 (紅高梁 / Red Sorghum) 1988년 중국
제작작 용성정월 (龍城正月: Dragon Town Story) 1997년 홍콩
촬영작 노정 (老井: Old Well) 0000년 중국
출연작 키프 쿨 (有話好好說: Keep Cool) 1997년 중국/홍콩
진용 (秦俑: A Terra-Cotta Warrior) 1991년 홍콩
제작 : 쟈오 위
각본 : 바오 쓰
촬영 : 호유 용
음악 : 싼 바오
주연 : 장쯔이, 순홍레이, 쩡 하모, 쟈오 위에린

나우누리 시네프리에서 연 시사회에 당첨되어 ‘집으로 가는 길’이라는 영화를 개봉도 하기 전에 보게 되었다. 나같이 게으른 놈에게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부지런했으면 얼마든지 그러한 기회를 만들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한 중년 남자가 차를 타고 급하게 한가로와 보이는 시골 눈길을 가로질러 온다. 그 남자 아버지의 비보를 듣고 달려온 것이다. 어머니는 먼저 간 아버지의 장례를 전통 장례로, 멀리 도시 병원의 영안실에서 산골 구석 마을까지 긴 행렬로 걸어오기를 바라지만 마을 사람들과 아들의 생각은 그렇지가 못하다.
그러다 우연히 보게 된 아버지, 어머니의 결혼식 사진은 마을 전체에 알려진 아버지, 어머니의 사랑 이야기를 떠올리게 하고, 아들은 결국 어머니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고 아버지의 구천 돌아가는 길을 집으로 돌아오는 길을 따라 마중하게 된다.

영화는 아버지의 비보를 듣고 급하게 달려오는 아들의 시간, 즉 현재로부터 시작하여 부모의 시간, 즉 과거로 갔다가 다시 현재로 돌아오는 구성을 취한다. 보통 흑백이란 과거를 떠올리게 하고 컬러란 현재를 떠올리게 하는 것인데 여기서는 반대의 경우로 적용한다. 나는 이 영화가 과거 부모 세대의 삶과 사랑의 모습에 무게가 있다고 느껴지므로, 현재를 잠시 벗어나 과거를 현재처럼 한번 보아 달라는 의미가 아닌가 억측해 본다.

산골 마을에 열여덟의 아릿다운 처녀가 있다. 처녀는 마을에 새로 온 스무살의 젊은 선생에게 호감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순박한 처녀가 사랑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는 학교 건물을 만들 때 공밥을 정성스레 지어 선생이 자신의 밥을 먹어주기를 바라거나 학생들과 함께 노래부르며 걸어가는 길목에서 자주 마주치거나 학교에서 강의하는 선생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애써 집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우물까지 와서 물을 떠 가는 정도 밖에 없다.
선생은 처녀의 집에 밥을 얻어먹으러 갔다가 찜해 놓았던 그녀를 다시금 확인하고 표현하지는 못하지만 조금씩 그녀에 대한 애정을 쌓아간다. 문화혁명이라는 격동이 밀려오면서 선생 역시 어지러운 세상에 이끌려 잠시 이별을 해야 하지만 머리핀을 자신의 마음의 징표로 전하고 영원히 그 마음을 지킬 것을 약속한다.

이 둘의 사랑은 요즘 흔히 보는 로맨틱 영화만큼 화려하지도 세련되지도 못하다. 촌스럽기 그지없고 소박하기 그지없지만 손수 짠 붉은 천이나 이별과 만남을 잊지 않으려는 머리핀은 몇 천 송이의 꽃보다 절박하고 진실되게 보인다. 사랑을 확인하려 키스를 하지도 몸을 섞지도, 하다못해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도 못하지만 하찮게 보이는 사건과 몸짓도 진실된 사랑을 품는 것 같다. 머리핀을 쥐어주고 떠나는 선생에게 먼길 가며 먹으라고 찐 만두를 전하려 필사적으로 달려가고 잃어버린 머리핀을 찾으려 몇일을 헤매고 텅빈 학교를 예쁘게 단장하고 선생을 기다리다 앓아눕는 처녀는 요즘 사람들 눈에는 순진하다 못해 어리석게 보일 정도이다.

그러나 장예모는 그것이 어리석을 망정 진실된 마음은 담겨 있다는 말을 하려는 것 같다. 중국 역사가 부정했던 부모세대는, 봉건적이고 전근대적인 세대라 부정되었던 당신들은 이제는 그들조차 중국의 모습으로 받아들여야 하지 않는가라고 감정을 흔들면서 말하는 듯하다. 그런 의미에서 집으로 가는 길이란 과거를 보듬는 공간으로 가는 길을 뜻할 것이다.

장예모의 작품은 ‘책상 서랍 속의 동화’ 밖에 본 것이 없다. 거기서 장예모는 교육, 즉 계몽을 강조한 것 같았다. 이 영화에서도 그러한 측면이 보인다. 아버지(선생)는 죽는 순간까지 시골 마을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일깨우려 했으며(강의하는 문구도 ‘알아야 한다’라는 강한 의지가 드러난다) 심지어 학교 건물에는 ‘敎育是建設祖國的武器'(교육은 조국건설의 무기이다)라는 선동적인 문구가 붙어 있다 – 물론 당시 사회상이 그러했겠지만 감독의 의도도 들어가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그의 계몽주의적인 의식은 잘 들어오지 않고 오로지 아버지와 어머니, 처녀와 선생의 사랑과 부모 세대와 자식 세대의 화해, 과거 역사와 현재의 화해 같은 측면에 몰입되기만 했다.
장예모는 시끌벅쩍하게 미사여구를 늘어놓으며 ‘자, 감동해라’가 아니라 ‘그 이야기가 이렇단다’라고 차분히 풀어주는 것만으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힘이 있는 것 같다.

장쯔이의 그 진실된 미소와 눈물이라니!!!

대통령의 연인(The American President) 1995년 미국 콜럼비아
감독 : 롭 라이너
출연 : 마이클 더글라스, 아네트 베닝, 마틴 쉰, 마이클 J. 폭스

2000. 10. 22. 일. KBS

미국의 대통령은 정치도 잘하고 인간적이며 연애도 잘한다. 미국의 대통령은 진정으로 국가를 사랑하고 연인을 사랑하며 정치를 국민을 위한 국민에 의한 국민의 정치로 한다.
멋지다.

이 영화를 보는 내내 느꼈던 건 마이클 더글라스라는 희대의 플레이보이가 정치가, 그것도 대통령이 되어 일삼는 애정행각에 대한 미묘한 부조화였다. 물론 롭 라이너라는 걸출한 감독이 만들어 정치와 사랑의 간극을 아슬아슬하게 이어가는 재치를 발휘했을 터이지만(개인적으로 그의 영화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를 무척이나 좋아한다) 나는 마이클 더글라스가 아릿다운 아네트 베닝을 상대로 추파를 던지는 게 개인적으로 못마땅하다. 워렌 비티가 아주 못마땅해 했음직하다.(하긴 이제는 유부남이 된 녀석이 이미 유부녀였을 그녀에게 흑심을 품었다고 그게 실행에 옮길만한 것이었겠냐마는) 웃음 지을 때에는 다른 어떤 가식도 없이 진실되게 기쁨이나 즐거움을 표현하고 슬퍼하며 울 때에는 슬픔의 나락에 떨어진 듯하여 가련함을 불러일으키는 아네트 베닝은, 대통령으로서의 직무에 충실하면서도 자신의 사랑을 위해서는 더없는 로맨티스트가 되고 사람을 대통령이라는 권위로 누르지 않고 인간으로 대하며 어미 없는 딸을 자상하게 친구처럼 대해주는 아버지로서의 탈을 쓴 마이클 더글라스가 상대하기에는 너무나도 순수해 보인다.(개인적인 생각이다)

마이클 더글라스가 아네트 베닝을 상대하는 주인공으로서 나와서 못마땅한 것도 있지만, 또 미국의 대통령이라고 나온 작자가 온화한 아버지에 유머감각까지 겸비한 핸섬한 백인 남성인데다가 미국을 사랑하고 자신이 가장 부강한 국가의 보스라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여기며…하여튼 헐리웃에서 뽐내고 열렬히 홍보해대고 있는 온갖 미국적 가치의 표상이라는 것도 참 못마땅하다.

하긴, 못마땅할 것도 딱히 없다. 단지 환타지이니까. 이건 어디까지나 백마탄 왕자에 대한 현대판 환타지이니까. 아네트 베닝은 단지 현대적인 자질을 갖춘 신데렐라일 뿐이겠지. 환타지로 볼 때 이 영화만큼 완벽한 환타지를 제공해 줄만한 동화도 없을 것이다. 환타지로서 볼 때 이 영화는 참 재미있으니까. 그 사랑이 참 아름답고 환상적이니까…(하긴, 대통령과 눈맞은 여자는 대통령과 정치적 견해에 있어서 큰 차이가 없는 환경론자 진영 로비스트라니…이만하면 궁색은 갖췄지)

그런데 영화 보고 나서도 환타지 속에서 헤엄치면 어떡하지…
p.s–>지금은 병들어 얼굴을 볼 수 없는 마이클 J.폭스의 멀쩡할 때 모습을 볼 수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반갑고 즐거운 기분이 들게 하는 영화였다. 재미있었다…나는 헐리웃의 Fantasy

씨네21기사 읽기

각본, 감독 : 홍상수
출연 : 이은주, 정보석, 문성근

세상의 연애라는 것이 다 이런 것이라면 참 연애라는 것은 못할 짓인지도 모른다. 영화속에 등장하는 수정과 재훈은 서로가 스스로를 속이면서 가식을 더하고 우연을 가장한 필연이라도 만들면서 억지로 두 사람 사이의 거리를 좁히려 하는 것 같아 연애가 참 힘들고 구차하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흑백으로만 찍었다. 왜 하필이면 그렇게 찍었을까…영화를 보다보니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던 듯 하다. 내 짐작이건대, 이 영화 속에 나오는 수많은 에피소드들은 완벽한 진실이 아닐 것이다. 다시 말해 객관적인 사건들이 아니라 수정(이은주)과 재훈(정보석)의 기억 속에 자기 나름으로 구성되어 있는 사건들일 것이다. 그건 이 영화가 같은 사건들을 가지고 여러번 반복하며 약간씩의 변화를 주고 새롭게 이야기하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 그럼 이 영화의 내용은 영화 속에서조차 ‘사실’로서의 사건이 아니고 ‘기억’으로서의 추측일 것이다. 천연색, 칼라는 마치 보고 있는 영상이 실재하는 것인양 하는 입체안경 같은 것이고 그 입체안경을 벗어 놓고 보아야 기억 같은 아련함과 긴가민가 하는 아리송함이 느껴질 것이기 때문에. 홍상수 감독의 배려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이 영화는 초반에는 재훈과 수정, 그리고 영수라는 인물들 사이에 벌어지는 야릇한 삼각관계 같은 모습을 띄는 것 같다. 그런데 뒤에서 더해지는 정보들로 봐서는 그런 것 같지 않다. 재훈은 돈많은 미술가라는 사실이 뒤늦게 관객에게 알려지고 그 후부터는 재훈이 수정에게 적극적으로 구애를 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수정이 재훈을 타겟으로 정하고 적당히 애타게 만들면서 자기를 확 움켜쥐게 의도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수정은 초반부에 보여준 것처럼 그리 순결하지도 순진하지도 않은 여자였다. 오빠의 부탁에 수음까지 대신해 주는 엽기적인 장면이나 영수와 편집 중에 나누는 성에 대한 이야기는 수정이 ‘처음이에요’라는 말로 섹스를 피하려는 모습이 한낱 내숭처럼 느끼게 만들어 버린다.
그렇다고 재훈이 순정파의 남자인가 하면 또 그렇지도 않았다. 알고보니 친구집에 술마시러 왔을 때 영수의 술주정을 수정이 받고 있을 때 재훈은 옆방에서 다른 여자와 열렬한 키스를 하는 것이다. 게다가 수정과의 애정행위 중에 다른 여자 이름을 부르기까지 한다.
영수는 어떤가. 영수도 알고보니 케이블 TV 사장 조카라는 이유로 근근히 회사에서 PD 노릇하는 무능력한 인물이었다.
이처럼 이 영화 속 인물은 위선의 가면을 쓰지 않은 이가 없었다. 이들에게서 연애라는 것도 그 배후에는 또다른 음모나 음흉한 욕망이 도사리고 있지는 않을까…

내 생각에 수정이 재훈을 타겟으로 삼은 데에는 돈이 중요한 요인이었으리라 추측된다. 재훈은 어리숙하게 보이는 돈많은 남자였으니 그 배경을 알아버린 영수보다는 더 낳은 남편감이었을 것이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돈에 의해 자신의 순결과 처녀막을 던져준 것 같다. 그리고 이 처녀막에 재훈은 감격하고 자신의 모든 단점을 목숨을 걸고 고칠 것을 맹세한다. 재훈은 자신이 만난 그 어떠한 여자들보다도 순결하고 매력적인 여자라고 생각하는 수정에게 흑심을 품었고 그렇게 처녀막의 증명을 통해 수정과 모든 험난한 앞날을 극복해 나갈 것을 맹세하며 일체감을 느낀다.

정말이지 우리네 삶은 위선과 결별할 수 없나. 홍상수 감독은 어차피 인간은 위선적이야…라는 조소를 끊임없이 내뱉는 것 같다. 내가 아는 게 짧아서 다른 구구절절한 이야기 꺼리는 떠올릴 수 없지만 대충이라도 보았던 두 개의 전작품과 이 영화를 보면 계속 그러한 것이 떠오른다. 어찌보면 인간이라는 존재를 경멸의 시선까지는 아니더라도 속내를 까발리고는 ‘자, 속이 이렇게 까맣지 않느냐’며 인간을 비웃는 것 같다.
그러니 내 속내를 들어다보며 ‘아, 나도 그런데…이 사람 나한테 욕하는 거 아니냐’며 나는 내내 불편해 하는 것이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보면서 지내온 내 날들을 반성해 봄직하다.

연애란 저렇게 내숭 떨고 조목조목 따지면서 숨기고 보여주고 하면 피곤하고 기만하는 찝찝한 마음이 들어 못할 것 같다. 적어도 연애를 하고 사랑을 하라면 숨기는 것이 없어야 하고 진실되게 그 사람만 봐야 하지 않을까? 이런 교과서적인 연애론을 아직도 믿고 있는 나이지만 막상 본격적으로 연애를 해 보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나도 재훈과 수정 꼴이 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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