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리언>

SF, Sci-Fi, Science Fiction을 공상 과학이라고 번안해 부르는 것이 부당하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과학적 가능성에 기반한 상상을 헛된 공상에 불과하다고 폄하하다니. 과학적으로 구성된 대안 세계가 지닌 이름의 자리가 너무나도 초라한 것 아닐까 하는 억울한 마음마저 짐짓 느끼기도 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과학적 허구에 특별한 지위를 부여할 이유는 없다. 오히려 과학적 허구라는 장르가 다른 것보다 과학의 측면에서 더 공상에 가까운지도 모른다. SF는 과학적으로 추론할 수 있는 세계를 넘어서는 것에 관심이 많다. 스탠리 큐브릭의 영화 <2001년 스페이스 오디세이>에서 인류의 문명을 잉태시킨 미지의 존재 모노리스(Monolith)는 과학적으로 추론 가능한가. 테드 창의 소설 <네 인생의 이야기>에서 과거와 현재, 미래를 총체적 덩어리로 인식하는 외계의 지적-영적 생명체란 과학적으로 존재 가능한가. 과학적 상상은 과학적 세계에 대해 성찰적이면서 동시에 반과학적이다. 과학적 허구는 과학의 위대한 진리를 제시하기보다 역설적으로 과학이 해 내지 못하는 것, 과학의 불가능성에 대한 인간의 열정과 신경증을 드러낸다. 어쩌면SF는 과학의 공백에 대한 인간의 불안, 과학 법칙에 대한 무의식 또는 환상의 반격 같은 것 아닐까.

<에이리언>도 이런 맥락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미지의 치명적인 외계 생명체 에일리언은 인간의 전지전능한 과학적 세계에 대한 경고다. 인간 문명이 우주를 탐험하고 동면 장치로 생명의 시간을 조절하며 인간을 닮은 로봇, 안드로이드를 창조할 만큼 발달할지라도, 아니 어쩌면 그렇게 발달할수록 물리적 세계를 관장하는 전지전능함이 완전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강박과 불안의 응집력은 커진다. 이 응축된 강박과 불안이 공포스러운 실체를 드러낸다면 어떤 모습일까.

그것이 H. R. 기거가 상상해 낸 에일리언이다. 기거의 에일리언은 이물적(alien) 요소의 총합이다. 검고 윤기 나는 피부, 길쭉한 머리를 하고 곤충을 닮은 외형은 어쩌면 괴물을 묘사하는 익숙한 관습에 가깝다. 이 괴물이 머리 속을 떠나지 않게 만드는 치명적 면모는 그 외의 것들이다. 이 괴물이 성체가 되기 전, 알에서 몇 단계의 유충으로 변태하기까지의 형상은 명백히 인간의 생식 기관을 닮았다. 정자, 난자, 인간의 성기를 연상시키는 이것은 마치 과학과 지식의 세계를 침범하는 리비도, 충동의 세계를 암시하는 것 같다. 한 방울만으로도 주변을 녹여 버리는 산성 피는 어떤가. 이 괴물은 신체 기관의 가장 깊은 수준에서부터 외부를 공격한다. 산성 피를 머금고도 녹아 내리지 않는 이 존재의 장기는 도대체 무엇으로 이루어진 것일까. 그리고, 그 입 속의 입. 이 괴물은 사람을 날카로운 금속성 이빨로 찢어 발기기보다 뜻밖에도 그 입 깊은 곳에서 튀어 나오는 또 하나의 입으로 인간의 육질을 관통한다. 인간의 몸에 기생하다가 인간의 몸을 뚫고 나온다는 것을 포함해서, 에일리언은 생애 과정부터 생물학적 특질까지 총체적으로 인간의 내부, 이면과 관련되어 있다. 에일리언은 상상하기도 힘든 치명적인 이물적 타자다. 그것도 인간의 심연에서 인간 자신이 잉태한 자신의 적대자다.

인간의 내면, 심연을 들여다 보게 되는 모티프는 에일리언과 사투를 벌이는 노스트로모호 내부의 폐쇄된 미로라는 공간에도, 우주의 깊은 암흑 속 미지의 LV-426 행성에도 새겨져 있다. 폐소공포증을 불러 일으키는 미로 같은 노스트로모호 내부의 통로는 심연으로 빠져드는 통로이고 LV-426 행성은 우주라는 심연의 밑바닥이라고 생각해 보면 어떨까. 노스트로모호의 인공지능 시스템 마더가 정체 불명의 신호를 포착하고 긴 동면에 빠진 승무원을 깨우며 이야기가 시작되는데, 이 동면 – 에일리언과의 사투 – 다시 동면으로 구성된 이야기 덕분에 나는 영화를 볼 때마다 자꾸만 이것이 모두 꿈, 2등 항해사 리플리의 악몽에 불과하기를 바라게 된다. 인간의 정신 그 심연에 잠들어 있던 억압된 괴물이 노스트로모호라는 문명, 의식의 세계로 침입하려 하고 이를 리플리가 의식과 심연을 잇는 폐쇄된 통로에서 끝내 저지하는 중첩된 꿈에 대한 은유이기를 말이다. 이 바람이 간절한 것은 에일리언이 심연에서 튀어나온 형벌, 잠재된 것이 실현된 신적 폭력 같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에일리언의 점액질 분비물로 노스트로모호의 기계 금속에 녹아 붙어 버린 채 차라리 나를 죽여 달라고 울부짖는 달라스 선장의 절규는 꿈에서나 그릴 만한 지옥도가 아닌가. 그것도 과학 문명을 극도로 위태롭게 느끼는 마음이 만들 만한 지옥도. 명심해야 할 것은 에일리언이 인간을 찾은 것이 아니라 인간이 에일리언을 찾았다는 사실이다. LV-426 행성이라는 심연에서 영겁의 시간 동안 잠자고 있던 에일리언을 인간이 찾아 깨웠다. 그래서 차라리 꿈에서 깨어 난 것은 리플리가 아니라 에일리언이라고 해야 이 영화를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은 것이다.

꿈을 암시하는 이야기 구조는 이 영화를 그토록 강렬하게 불길한 암시로 가득 차 있으면서도 그것을 견딜만한 고난으로 만든다. 그러나 이 영화가 이후 다섯 편의 후속작이 만들어질 만큼 프렌차이즈가 되었다는 것은 다른 차원의 일이다. 시리즈를 거듭하면서 리플리는 구원자의 면모를 확장해 갔다. 이주민의 유일한 생존자 아이를 구하는 여성 전사가 되고 추방된 죄수들을 위해 거룩한 종교적 희생을 감내하며 발달한 유전자 기술에 힘입어 200년 후에 부활해서는 인간을 냉소하는 구원자가 된다. 에일리언의 신적 폭력에 기술 문명이 아니라 순수한 투지와 집념으로 저항하는 구원자 리플리에게서 느끼는 신화적 매혹이 이 프렌차이즈를 이끌었음은 명백하다. 그리고 우주적 규모의 세계체제가 된 자본주의의 탐욕이 에일리언이라는 심연의 재앙을 자초하는 주범이 된다는 또 하나의 테마는 일련의 충격적이고 불길한 사건들을 사회적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는 단서가 된다. 또한 인간을 닮은 로봇 안드로이드를 통해 드러낸 창조자 인간의 자가당착은 <블레이드 러너>에서 인간보다 인간적인 복제 생명체 레플리컨트의 고뇌를 빌어 대자적 존재의 존엄에 대한 물음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어쩌면 우리는 통제 불가능한 난폭한 존재 에일리언을 숭배하는 마음을 품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초발달한 미래의 세계에서도 인간을 압도하는 존재를 만나고 싶은 어떤 충동으로써 말이다. 프렌차이즈의 시작이 된 <에이리언>은 이 모든 방향의 영감을 지닌 영화다.

<에이리언>을 만든 리들리 스콧은 에일리언이라는 존재에 매혹되는 지점에 관심이 깊었던 것 같다. 그는 <에이리언>의 프리퀄 <프로메테우스>와 <에이리언 : 커버넌트>를 세상에 내 놓으면서 이 매혹에 대해 보충한다. 그가 보충한 상상은 지구의 인간을 창조한 외계의 지적 존재가 있고 이들이 에일리언을 배양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는 에일리언이라는 존재를 리들리 스콧이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보여 준다. 리들리 스콧에게 에일리언은 인간의 인식 영역 바깥에 대해 품는 환상의 담보물이다. 과학적 인식 체계가 발전하더라도 언제나 남는 인식 바깥의 것들, 인간의 사고가 닿지 않는 것에 대해 품는 편집증적 환상이 우리에게는 늘 존재한다는 것을 알려 주는 표식 말이다. 인간을 압도하는 산성피를 가진 외계의 생명체에 대한 상상은 인간을 창조한 또다른 존재가 있다는 상상과 다르지 않고, 이 세상이 프로그래밍된 매트릭스에 불과하다는 상상과 멀지 않다. 달이 하필이면 정확한 크기로 정확한 위치에서 지구를 돌면서 태양을 완벽히 가리는 이유부터 우주가 빅뱅으로 존재하게 된 이유까지 과학적 사고를 확장한다고 해도 사물과 존재에 대해 풀지 못한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열쇠의 담지자가 있을 것이라는 환상을 비켜 가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과학은 체계적인 망상, 편집증에 대한 투쟁이지만 편집증은 언제나 과학의 심연에 존재한다. 리플리의 꿈 속 깊은 곳에서 에일리언이 기다린다는 상상은 과학이 자신의 심연에서 SF를 바라보는 것을 떠올리게 만든다. 마치 과학의 막다른 길에 공상과학의 신이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김군>

1980년 5월 광주의 시민군이었던 최진수씨는 1989년 2월 22일 28차 5·18 진상조사특별위원회에 출석해 계엄군의 송암동 학살 사건을 생생하게 증언했다. 수십 명의 공수부대원이 시민군이 숨어든 집 앞마당으로 들이닥치는 순간을 말할 때 그는 차마 꺼내기 힘든 말인 듯 입이 막혔고 입술이 떨렸다. 1980년 5월 24일 광주 송암동에서 계엄군은 무작위로 시민군을 즉결처분했다. 최진수씨보다 한 발짝 먼저 툇마루를 넘었던 이름 모를 동료는 관자놀이에 총을 맞고 그 자리에서 숨을 거뒀다. 최진수씨는 그 순간 쓰러지는 동료의 눈을 아직도 떠올린다. 영화 <김군>은 30년이 지난 지금 그 증언을 최진수씨의 얼굴로 겹쳐 다시 잇는다. 이런 말을 덧붙이면서 : “그 친구 대신에 제가 산 거죠. 툇마루에서 먼저 발을 내딛었으면 제가 먼저 죽었을 텐데. 그 생각만 수십 년 동안 하고 있습니다.” 

영화 <김군>은 한국 현대사의 격랑을 상징하는 사진 이미지를 두고 벌이는 이야기의 투쟁을 그린다. 기관총을 탑재한 군용 트럭 위에서 방탄모를 눌러 쓰고 매서운 눈빛으로 뒤돌아 보는 어느 시민군의 사진에 일베와 지만원 뿐만 아니라 이 영화 역시 매혹되었다. 그 자체로 포토제닉하기도 한 이 사진에서 출발하기는 했지만, 사실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1980년 광주의 현장을 담은 사진은 모두 한국 민주주의 역사의 초석적 사건, 광주의 아픔과 독재에 대한 민중의 저항 등을 표상하는 상징적 힘을 지닌 매혹적 이미지다. 금남로에서 구호를 외치는 시민 군중의 얼굴 하나하나는 수업을 파하고 온 학생 김 아무개, 세탁소 문을 닫고 나눠줄 주먹밥을 챙겨 온 이 아무개의 구체적 삶이 아니라 저항하는 민중의 현현으로 우리를 매혹시킨다. 이미지의 매혹적 면모는 종종 그것을 구성하는 구체적 이야기를 압도하거나 넘어선다. 그렇게 사진이 매혹적 이미지가 되어 가는 동안 점차 우리가 잊게 된 것이 무엇인지 이 영화는 깨닫게 해 준다. 구체적 삶 또는 이야기의 공백, 위에 서술한 최진수씨의 증언으로도 채울 수 없는 김군의 이름 같은 것 말이다. 그 공백이 이 영화가 일베와 지만원의 대체 역사와 싸우는 전장이다. 

영화 <김군>은 사진 이미지의 매혹에서 출발했지만 결국은 그것으로부터 구체적 개인의 삶을 구하려는 영화다. 그렇지 않다면 필름 아카이브에서 꺼낸 필름을 루페로 들여다보고 확대 사진의 은염 입자 속에서 매혹적 울림을 감상하는 것으로 그쳐도 충분했을 것이다. 대신 일베 및 지만원이 일으킨 소동을 영화로 다루기로 마음 먹었을 때, 소동이 일어난 사진의 주인공을 찾아 나설 때부터 목표는 정해진 것이나 다름 없다. 그러나 지만원의 주장이 넌센스에 불과하다는 것은 영화가 시작하고 5분도 지나지 않아 알 수 있다. 처음 만난 시민군 본인의 증언을 확인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여기서 더 나아가 이 영화는 이미지가 지운 시민군의 얼굴과 이름을 복원한다는 목표를 아슬아슬한 지점까지 몰아붙인다. 세 명의 광주 시민군(이강갑, 최영철, 최진수) 극장 재회 장면은 이미지로부터 현실의 구체적 개인을 규명하고 개인이 자신의 상징화된 이미지를 성찰하게 하며 개인이 자신의 기억과 서로의 관계를 직시하도록 만드는 인위적 시공간이다. 이 장면에서 나는 30여 년 간 서로를 찾지 않고 각자의 외상적 경험을 삭이며 살아 온 시민군, 특히 최진수씨의 삶을 영화가 침범하는 것은 아닐까 긴장하게 된다. 영화가 이들의 삶을 극적으로 이용하려는 것 같다는 느낌이 이 영화의 윤리적 태도를 의심하게 만든다. 그런데 반대로 생각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영화가 시민군의 구체적 삶 속으로 섣불리 침입한 것이 아니라 시민군이었던 이들이 이미지 뒤에서 훼손당한 이야기로부터 자신의 삶을 구하기 위해 영화의 세계를 필요로 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영화가 시민군의 기억을 추적하며 만난 수많은 광주의 주역들이 회고하고 증언하는 과정 속에서 사진에 대한 조롱의 이야기에 맞서기 위해 자신들만의 이야기 세계가 필요함을 자각하고 있었다면 말이다. 

덧붙여 시민군 사진에 대한 조롱이 지닌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일베로부터 촉발되어 지만원이 공적 소동으로 만든 5·18 북한군 개입설은 한국 민주주의의 역사를 부정한다. 일베와 지만원은 광주의 상징적 사진 이미지를 조롱하고 그 이야기를 전복하여 대체 역사를 구성하려 한다. 물론 이는 망상에 불과하지만 그들의 악의에 찬 조롱이 진짜로 원하는 바는 성공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들은 광주의 역사를 피해자의 기억으로, 민중의 주체적 저항을 타자에 대한 죄책감으로 가두고 싶어 한다. 그들이 왜곡하고 조롱하는 사진이 광주에서 벌어진 피해의 기록이 아니라 무장하고 저항한 시민군에 대한 것이라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그들은 광주가 저항했다는 것을 지우고 싶은 것이다. 광주의 저 무장한 청년이 실은 남파한 북한군이라는 것을 진지하게 확신하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할지라도 그들은 광주 시민이 체제에 저항하는 정치적 주체였다는 것을 부정하고 싶다는 욕망에 대해서만은 확신에 차 있을 것이다. 시민군이 북한군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하려면 시민군 역시 피해자였음을 상기해야 하리라. 시민군이 피해자로 남아 있는 한 우리는 그들을 주체로 동일시하지 못하고 돕지 못한 죄의식에 사로잡혀 있으리라. 이처럼 파시즘이 죄의식을 전가하며 주체를 억압하는 전략이 여전히 이곳에서 유효하게 작동하고 있음을 영화 <김군>이 도착하는 진실 앞에서 되새겨 본다. 

아, 이렇게 착하고 질긴 시위대 봤나요
오늘도 촛불 사러 간다, 나 잡아 봐~라
[독자기고] “내가 오늘 어디에 있을지 나도 모른답니다”

처음에는 반신반의했다. 여중고생들이 든 촛불들이 과연 얼마나 강인하게 버텨줄지. 날마다 청계광장에서 촛불문화제가 열리지만 청계광장 바깥의 수많은 사람들이 과연 함께 힘을 실어줄지. 처음 밝혀진 촛불은 그야말로 연약했다.

그런데 벌써 그렇게 한달이 흘렀다. 처음에는 스피커 시설도 갖추지 못해 앞에서 뒤로 ‘전달, 전달’하던 그런 촛불문화제가 드디어 지난 주말인 5월 31일 10만의 초에 불을 밝혔다. 그리고 5월 24일 이후로는 9~10시 무렵이면 어김없이 거리시위로 이어지고 있다.

아고라로 시작하는 하루의 기록

날마다 연행자와 부상자들도 속출하고 있다. 그런데 날마다 참가자들도 늘어나고 있다. 게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촛불의 저항이 매일 매일 24시간 지속되기 시작했다.

   
▲ “미국 광우병 소 가져오지 말아라”라는 피켓을 만들어 시위에 참여한 익산의 어린이 (사진=네이버 카페 ‘김제할머니네집’)
 

이런 식이다. 매일 아침이면 다음 아고라를 시작해, 주요 사이트에는 ‘조중동 우아하게 끊는 법’과 <조선일보>에 광고를 실은 회사들의 홍보실 전화번호가 올라온다. 혹시 이미 받은 경품 자전거나 전화기 때문에 주저하는 소심한 독자들을 위해 경품 자체가 불법이므로 되돌려 주지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와 함께 영업소와 일일이 상대하지 말고 ‘우아하게 본사에 전화해서 해지하라’는 코치는 퍼질 만큼 퍼졌다.

요 며칠 네티즌들의 ‘오늘의 과제’는 일단 전화 다이얼을 돌리는 것으로 시작한다. “당신네 회사가 오늘 아침 <조선일보>에 광고를 실었더라, 그렇다면 나는 당신네 회사가 광고를 철회할 때까지 항의할 것이며 안 되면 불매운동 조직할 것이다.” 요즘 <조선일보> 광고 개재 회사 홍보실은 폭주하는 전화로 골머리께나 앓는 중이다.

효과가 있느냐고? 네티즌들의 집중 포화를 받은 몇몇 기업에서는 광고 보류 혹은 광고 건에 대한 사과 공지를 올렸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네티즌들의 공세에 두 손을 든 제약회사인 명인제약이 있다. 보수언론에 광고를 싣지 않겠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일단 쎈 놈부터 패자”

아침이면 전화 다이얼을 돌리는 네티즌들도 안다. 이게 하루아침에 성과를 낼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그러나 서로 지치지 말고 일단 쎈 놈(조선일보)부터 패자고 격려한다.

그뿐 아니다. 연행자가 있는 경찰서마다 전화 걸어 항의를 하고 ‘칭찬합시다’ 게시판에 들어가서 국민 잡아 가두시는 경찰님들 우리가 낸 세금으로 엿 많이 사드시라는 칭찬 글도 남긴다. <경향신문>과 <한겨레>에 광고 하느라, 진보신당과 <오마이뉴스> 생중계 후원하느라, 강달프(강기갑 민주노동당 의원) 응원하느라 여기저기 후원하고 성금 내느라 부지런히 인터넷뱅킹 창을 클릭한다.

심지어는 이런 경우도 있다. 한나라당 심재철 의원이 온라인에서 ‘스마일 심’으로 활동하며 악플을 달아 온 증거를 찾아냈을 때 네티즌들의 센스는 상상을 뛰어넘었다. 알바비에 보태라며 18원을 후원금으로 보낸 것이다. 세액공제를 위한 영수증 처리는 등기우편으로 부탁한다며 다시 한번 ‘확인 사살’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예비군 부대가 모일 때도, 유모차 부대가 등장할 때도 비슷했다. 누구라고 할 것 없이 사이트에서 사이트로 아이디어를 퍼다 날랐고, 그러는 와중에 꼭 기억해 두어야 할 공지사항과 지침들이 만들어졌다. 누군가는 쥐 잡는 뿅망치를 들고 나오고자 했다. 평화시위를 염원하는 뜻에서 꽃을 들고 나온 이들도 있었다. 좀더 쌈박하고 신선하며 자극적인 피켓 문구를 만들어 사이트에 뿌리며 ‘불펌 환영’ 머리말을 달았다.

‘전화질’과 ‘클릭질’은 재빠르고 또 재치가 넘치며 뜨겁고 열정적이다. 그에 비해 거리에서는 엄청나게 느리고 또 피로하다. 인도에서 차도로 경계를 넘기는 했으나, 그 다음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경찰의 저지에 직면했을 때? 모두 다 알다시피 막히면 돌아가고, 돌아가다 또 막히면 열린 길을 찾아 에둘러 갈 뿐이다.

재치와 뜨거움 그리고 전화질과 클릭질

사람들은 열어줄 때까지 줄기차게 항의하고 구호를 외친다. 그리고 기다린다. 행렬을 특정한 방향으로 유도하려는 이들이 있다면 그게 설령 오래된 운동 단체라 할지라도 “그 쪽은 위험하다. 우린 안 간다. 광화문을 지킬 거다”고 제지당한다. 인터넷 용어로 말하자면, ‘닥치고 광화문!’ 혹은 ‘닥치고 행진!’이다.

하지 않는 건 딱 하나 있다. 포기하고 해산하는 것. 정해진 작전은 없지만 광화문에서 혹은 종로에서 그리고 지난 주말처럼 경복궁 부근에서 어찌됐든 만났다. 예정된 행로는 아니었다. 엄청나게 많은 인파가 모이고 나서 자연스럽게 그런 흐름이 생긴 것일 뿐이다.

“어디로 간대요?” “오늘은 청와대 쪽으로 갈 것 같아요.” “일단 사람들 많은 쪽으로 붙어요.”
배후가 없으므로 해산을 명할 수도 없다. 해산하고 싶을 때 한다. 새벽녘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게 해산은 아니다. 내일 다시 나오기 위해서는 들어가야 할 뿐이다.

10만 명 이상이 운집한 지난 주말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시청에서 서소문로와 서대문을 지나 경복궁 역에 이른 시민들은 더 이상 ‘고시철회, 협상무효’를 외치고 있지 않았다. ‘이명박은 물러가라’는 구호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이다. 시위가 날이 갈수록 확산된 것처럼 그 사이 시위의 성격 역시 진화하고 확장된 것이다.

광우병 쇠고기 수입, 물 사유화를 비롯한 각종 민영화, 대운하, 교육정책 등 철회와 재고를 요구해야 할 것들이 도처에 널려 있다는 사실은 촛불을 든 사람들 사이에서 이미 상식이 돼 있다.

5월 31일 토요일 밤 11시 반이 넘자 경복궁역 부근, 삼청동과 동십자각 일대에서 사람들은 촛불을 들고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했다. 2중, 3중으로 바리케이드 쳐진 닭장차 앞에서 운집해 있는 사람들이 물대포를 피할 재간은 별로 없다. 물대포의 등장이 처음은 아니었지만 잠시 뒤돌아 서 있는 선에서 그칠 줄 알았던 것은 지금까지는 물대포의 공격성과 위력을 체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저게 살수차야?”, “물이 어디서 나오는데?” 라며 시위대가 웅성거리는 사이, 취재 중인 숱한 카메라들을 향해서, 닭장차에 올라간 시민을 향해서, 그리고 ‘평화시위 보장하라’, ‘연행자를 석방하라’, ‘이명박은 물러나라’를 외치는 시위대들을 향해 물대포를 난사했다.

“제게 살수차야? 물은 어디서 나오는데?”

이에 대응한 구호는 ‘세탁비! 세탁비!’, ‘물 뿌려도 안 간다!’, ‘수도요금 올랐다. 아껴 써라 내 세금!’이었다. 물대포의 집중 포화를 견디지 못하고 나가떨어지는 모습을 보았을 때 시민들을 경악했고, 비명을 질렀고 눈을 감았다. 그러나 폭력으로 맞서지 않았다.

경찰들을 향해서는 저항의 구호를 스스로에게는 비폭력 평화시위를 연호했다. 길바닥은 장마가 끝난 직후처럼 흥건했다. 선두에 선 이들이 버티지 못하겠으면 뒤로 빠져나와 불을 쬐며 덜덜 떨리는 몸과 옷을 말렸다.

몸으로 맞서는 이들의 뒤에는 함성으로 맞서는 이들이 있고, 함성으로 맞서는 이들 뒤에는 이 시위의 기본적인 성격을 상징적으로 구현해 내는 이들이 있다. 닭장차와 직접적으로 맞서지 않는 후미는 또 완전히 다른 세상을 실현하고 있다. 길바닥에 주저앉아 어디선가 조달된 커피와 김밥을 나눠먹거나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른다. 노래도 박수도 구슬펐지만, 모두들 약간씩 지치고 피로했지만, 자리를 뜨는 이들은 많지 않다.

어떤 이들은 근처 카페 바깥에 놓인 벤치를 끌어와 길지만 무겁지 않은 토론을 지속하기도 했다. 처절한 긴장감과 아슬아슬한 평화, 그리고 알 수 없는 여유로움이 공존하고 있었지만, 이 이질적인 분위기의 묘한 조화를 모두 당연한 듯 받아들이고 즐겼다.

새벽 세 시가 가까워 오는 시간에 사복체포조가 삼청동 뒤쪽에서부터 내려오고 있는 것을 보았다는 소문, 주변에 병력이 계속 보충되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러자 누군가 그럼 어떡해야 하느냐고 물었다. “가능한 인도 쪽에 서 계세요.” 들려오는 대답이라곤 이게 전부다.

하나 대 여럿, 촛불 대 물대포, 비무장 대 무장

시위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대신 진압은 한 차원 진화한 시위를 쫓아오지 못했다. 곤봉을 휘둘렀고, 방패로 내리찍었으며, 군화발로 짓밟았다. 시민과 전경들은 하나 대 여럿으로 만났다. 촛불 대 물대포로 만났다. 비무장 대 무장으로 만났다. 비폭력 대 폭력으로 만났다.

   
▲ 경찰 폭력은 인터넷을 통해 낱낱이 폭로되고 있다. (사진=‘군화발 동영상’)
 

사실 시위가 절대로 끝나지 않는 이유, 24시간 계속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용량이 부족하면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동 트는 새벽까지도 폭력적인 진압이 계속되는 상황은 인터넷 생중계를 타고 쉼 없이 보도됐다.

현장에서 가까스로 집으로 귀환한 이들은 이불 속에 숨어 벌벌 떨지 않는다. 다시 컴퓨터를 켜고 접속한다. 연행된 경찰서에 항의 전화를 한다. 현장 상황을 왜곡해 보도한 언론사에 정확한 취재와 보도를 요구하며 다이얼을 돌린다. 해외 언론 사이트에 제보할 사진과 유튜브에 올릴 동영상을 제작한다. 구호에 필요한 모금을 하고, 자원봉사자를 모집한다. 내일 시위에 필요한 것들이 무엇인지 연락한다.

그리고 다시 ‘출동’한다. 경찰이 시민을 에워싸고 폭력을 가할 수는 있지만, 시위 자체를 고립시킬 수 없는 이유다.

토요일 시위는 자연스럽게 일요일 밤, 월요일 새벽까지 이어졌다. 이날 시위에 참석하지 못하고 아프리카(afreeca)와 오마이TV를 통해 접한 시위 현장은 지독히도 슬프고 아름다웠다. 경찰은 전날처럼 무차별 물대포 진압을 위해 기자들이 경찰차 위에서 내려갈 것을 종용했다.

순식간에 시민과 기자단 사이의 연대가 형성됐다. 기자들은 내려오지 않았고, 시민들은 그들에게 먹을 것과 비옷을 올려 주었다. ‘언론자유 보장하라’는 구호에서부터 ‘내려오면 조중동’이라는 재치 넘치는 구호도 등장했다.

기자들을 진압하기 위해서 전경들이 경찰차 위로 올라섰을 때는 자정 무렵이었다. 시민들은 ‘취침점호 보장하라’고 연호했다. 학생들은 ‘기말고사 책임져라’고 외쳤다. 다행히 전날처럼 과격한 물대포 진압은 없었다. 언론까지 적으로 돌리는 것이 무모하다는 정도의 판단은 가능한 수준인가보다.

시위대의 깜찍스런 진화와 짜릿한 새벽

이날의 진압 상황이 전날만큼 끔찍했던 것은 당연하다. 정부와 경찰의 대응은 과거를 향한 폭주기관차를 연상하게 했고, 시위대는 깜찍스럽게 진화했다. 새벽 5시 반 무렵이었을 것이다. 그 아비규환에서도 많은 이들이 살아남았고 다시 평화의 촛불을 들었다.

무차별적 진압에 의해 인도로 몰려 있던 시민들은 횡단보도 앞에 섰다. 신호등이 파란색으로 바뀌자 ‘이명박 퇴진’을 외치며 길을 건너기 시작했다. 촛불을 들고 도로를 점거하는 것이 불법이라면, 촛불을 들고 도로를 건너겠다는 것이다.

도로를 지나는 차량들도 응원의 박자를 맞춰 응원의 경적을 울린다. 이 와중에도 좌측통행이 이뤄졌다. 건너가는 이들과 건너오는 이들이 횡단보도 한 가운데서 엉키지 않았다. 짜릿한 새벽이었다. 빨간 불이 켜져 있는 동안에는 인도에 대기하면서 현장을 떠나는 경찰차를 향해 손을 흔들어주기도 했다.

이렇게 질기고 착한 시위대를 본 적이 없다. 오늘도 다시 촛불 사러 간다. 우비도 살 거다. 누구 돈으로 사는지 그게 못내 궁금한 모양인데, 내 돈으로 산다. 들리는 얘기로는 두께 20센티미터의 스티로폼도 효과적이란다. 피켓처럼 구호를 쓸 수도 있고, 깔고 앉을 수도 있고, 경찰의 곤봉과 물 대포 세례를 막을 수도 있단다.

내가 오늘 어느 횡단보도에 서 있을지는 안 가르쳐준다. 언제 어느 도로 위로 들어설지도 안 가르쳐준다. 나도 모르니까! 자, 어디, 나 잡아 봐라~!

2008년 06월 02일 (월) 17:45:49 조은영 / 독자 redian@redian.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