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사람들이 스스로 흥분을 가라앉히고 막은 길을 피해 스스로 길을 뚫고 만들며 청와대까지 진출하는 것은 정말 놀랍고 짜릿한 일이었다. 몇일간 새벽에 경찰에 쫓기고 연행되면 다음에 모일 때 시민들은 스스로 그들을 피하거나 앞질러 목적지로 가는 길을 파악해 달렸고 물대포를 맞으면 다음날 천막을 준비했고 프락치를 적발하면 흥분하다가도 적절하게 그들을 돌려보내거나 제제하는 방법을 강구했다. 시민들 사이에 포위돼 오히려 전경들이 철수하는 상황에서도 시민들은 수고했다고 박수를 쳐 주고 물 주고 피켓으로 부채질도 해 줬다. 그래도 전경들은 물대포를 쏘고 방패로 찍고 곤봉을 휘둘렀다. 시민들은 그냥 맞고 피를 흘렸다. 그래도 이들은 발랄함을 놓지 않는다. 불법 도로 점거를 시위 진압의 이유로 삼으니까 이제는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등 놀이를 하고 있다. 닭장차를 불법 주차라면서 딱지를 붙이고 끌어내면서 견인하는 거라는 재치도 보인다. 누가 가르치거나 주도하지 않고 자발적으로 그렇게 판단하고 행동하고 있는 게 정말 신기하고 울컥하게 한다.

원본출처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915895

경찰이 막으면 돌아가면 되고~
특공대보다 힘센 비폭력 시민들

[비폭력 시위백서] 촛불문화제, 현명한 대중들에 매일 놀란다

임재성 (blueljs)

요즘 사람들은 두 가지에 놀란다. 하나는 이명박 정권의 안하무인. 10만 명이 청와대 앞까지 가서 외쳤다. 대통령 나오라고. 보수 언론사 논설위원도 TV 토론에서 이야기한다. 이쯤 되면 대통령이, 아니 최소한 책임 있는 각료가 시민들과 만나야 하는 거 아니냐고.

그런데도 정권이 기껏 내린 결정은 물대포와 소화기를 쏘아대는 것이었다. 그리고 비겁하게도 사람들이 줄어드는 새벽쯤에 특공대를 투입해 마구잡이 연행을 한다. 배후가 있다면서 정작 잡아들이는 것은 다음날 출근해야 할 시민들이다.

또 다른 하나는 바로 시위 분위기다. 어떻게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무엇 하나 논의된 것 없이 이렇게 모이고 움직이고 저항하는가다. 이러한 놀람은 나를 포함한 속칭 ‘운동권’-활동가들도 마찬가지이다. 속으로는 ‘판이 커지면 지도부가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가장 현명한 것은 대중들이라는 확신을 갖게 됐다.

비폭력 직접행동으로서의 촛불시위

30일 밤 서울 태평로 덕수궁앞 도로에서 미국산 쇠고기 전면수입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경찰과 대치하는 가운데 한 여고생이 시위 진압을 위해 대기중인 경찰 살수차(물대포)를 혼자서 가로막고 있다. ⓒ 권우성

미국산 소고기 수입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촛불집회에 대한 다양한 관찰과 분석들이 나오고 있다. 청소년들의 선도적인 행동을 두고 새로운 세대의 등장을 선언하는 분석, 문화제와 집회에 깔려있는 국가주의·애국주의에 대한 비판, 실패한 내각 구성과 광범위한 신자유주의 정책이 만든 민중의 저항이라는 평가까지.

필자는 이러한 분석에 하나를 추가해 보고자 한다. 필자는 지금의 촛불집회는 우리가 경험한 저항문화 중에서 가장 비폭력적인 직접행동에 가깝다고 느낀다. 시민들이 상식적으로 택한 비폭력은 지금 가장 급진적인 실천으로 구성되고 있다.

필자가 함께 활동하는 평화주의 운동그룹은 ‘평화캠프’라는 행사를 몇 년간 진행해 왔다. 이 캠프의 프로그램 중 하나가 ‘비폭력 직접행동 트레이닝’이었다. 2004년에는 영국의 한 활동가를 초청해서 전문적인 교육을 받기도 했는데, “사람이 아닌 건물이나 차량을 훼손하는 것이 폭력인가 아닌가”와 같은 질문에서 시작해서 어떻게 스크럼을 짜야 연행되는 시간을 늘릴 수 있는지에 대한 실제적인 트레이닝을 하기도 했다.

간디와 마틴 루터 킹의 실천 등에서 유래했고, 서구의 신사회운동에서 자주 활용되는 비폭력 직접행동의 가장 큰 원칙은 ‘수단과 목적의 일치’라 할 수 있다. 즉 달성하고자 하는 목적만큼이나 수단도 중요하며, 그렇기에 과정으로서의 비폭력과 민주주의를 강조하는 입장이다. 기존의 저항문화를, 집회방식을 어떻게 하면 보다 나은 방식으로 바꿀 수 있을까 고민했던 한국 평화운동 그룹에게는 매우 적절한 자극이었다.

그렇게 배우고 익히긴 했지만 정작 실제 한국의 저항문화 속에서 이를 활용하거나 확산시킬 기회를 갖지 못했다. 늘 아쉬워하면서도 정작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을지 난감하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개방 문제를 둘러싼 시위를 경험하면서, 이미 사람들은 비폭력 직접행동을 거리에서 실천하고 있음을 보게 되었다.

요즘 촛불집회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구호 중 하나가 ‘비폭력’이다. 폭력을 꺼리는 것만으로도 ‘투쟁의 의지’가 없으며 타협적이라고 비판받던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게다가 ‘비폭력’을 이렇게 구호로서 사람들이 광범위하게 외친 것은 전무한 일이 아닐까 한다.

몇몇 사람들이 흥분해서 전·의경에게 욕을 하거나, 땅바닥에 떨어진 작은 막대기라도 들면 그 주위의 사람들이 “비폭력, 비폭력”을 외친다. 밀고 당기면서 뺏은 방패들도 곧 돌려준다. “경찰은 우리의 적이 아닙니다, 욕하거나 때리지 맙시다”라고 어떤 사람이 외치기도 한다.

막으면 돌아가고, 기다린다… 도덕적 우위로 싸우는 비폭력

비폭력은 무저항이 아니다. 힘과 힘이 부딪칠 때는 힘이 센 쪽이 이긴다. 국가와 시민들이 힘으로 부딪칠 때에는 조직적인 폭력을 독점하고 있는 국가가 당연히 유리할 수밖에 없다.

비폭력은 이 프레임을 깨보자는 것이다. 즉, 힘이 아닌 ‘도덕적 우위’로 싸우는 것이다. 그리고 끝까지 그 도덕적 우위를 잡고 늘어진다. 그게 우리의 힘이기 때문이다. 촛불을 든 이들은 거리에서 도덕적 우위를 자신의 힘으로 삼고자 결심한 듯 했다.

막으면 돌아간다. 보통 집회 행진이 막히면 선봉대를 꾸리든, 대오 전체가 밀고 당기든 뚫고 지나가는 것이 이전까지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아주 평범하게 생각한다.

청와대로 가자. 그런데 길이 막혔다. 그럼 돌아가자.

지난 토요일 집회에선 시청에서 집회를 한 사람들이 광화문이 막혀있자 독립문을 지나 사직터널로 돌아가서 청와대 앞으로 갔다. 경찰이 급하게 길목을 막아봤지만 대오는 한 발 빠르게 다 막지 못한 틈으로 지나갔다. 굳이 싸우지 않았다.

31일 밤 서울시청앞 광장에서 열린 24차 촛불문화제를 마친 시민, 학생 수천명이 독립문으로 우회해서 사직공원을 지나 청와대를 향해 행진을 벌이고 있다. 경찰버스 바리케이트에 막히자 부모들은 어린아이를 중앙분리대를 넘겨 옮기며 행진을 계속했다. ⓒ 권우성

막으면 기다린다. 결국 최종 저지선 앞에서 막혔을 때 시간이 지나도 사람들은 해산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자발적으로 모인 사람들이라 해산을 결정할 사람도 없었다. 누군가 “해산합시다” 하면 “너나 가라”고 야유를 하기도 했다. 경찰도 “몇 시까지 해산시키면 연행하지는 않겠다”고 타협할 ‘지도부’가 없으니 답답할 노릇이었다.

밤이 늦을수록 집에 가는 사람들이 많아졌지만, 상당수의 사람들은 기다렸다. 고시를 철회하지도 재협상을 하겠다고 하지도 않는데 왜 집에 들어가느냐는 것이다. 둘러앉아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토론을 하기도 했으며 가로등 불에 책을 보는 사람도 있었다. 물론 대치하는 곳에서는 밀고 당기기가 지속됐지만 그 뒤에서 많은 이들은 차분하게 기다렸다. 예전에는 볼 수 없었던 ‘독함’과 ‘무서움’이다. 하지만 전혀 비장하지 않은 즐거운 모습으로 이들은 기다렸다.

비폭력적인 저항은 많은 시간과 기다림이 필요하다. 힘과 힘은 금방 결판이 난다. 그러나 비폭력은 다르다. 핵 기지를 봉쇄했던 외국의 예를 보면 그 기지로 핵 물질이 반입되지 못하게 며칠이고 사람들이 에워싼다. 사전에 많은 식량과 물품 등이 준비된 상태에서 진행된 것이었다. 물대포로 공격하면 준비된 우비를 꺼내 입고, 최대한 연행을 늦추기 위해서 강력하게 스크럼을 짠다. 이들은 이러한 저항을 수개월에 걸쳐서 준비한다.

그러나 우리는 자연스레 그러한 방식을 택했다. 우리 역시 청와대 앞에서 ‘불법’적으로 도로를 점거하고 기다렸다. 아무리 수만 명이 모여서 촛불을 들어도 꿈쩍도 하지 않는데 방법이 있는가. 근처 슈퍼에서 먹을 것을 사다 나르고, 밤이 돼서 추위에 떨면서도 말이다. 물대포 앞에서 우리는 준비한 우비는 없었지만 급하게 비닐을 구해서 그 아래에서 버텼다. 그렇게 “이명박 나와라”를 외친 사람들이 결국 마주한 것은 테러진압 훈련을 받았다는 경찰특공대였다.

잡아가라, 대신 때리지 마라

앞선 핵기지 봉쇄에 관한 이야기를 조금 더 하면, 이 봉쇄에서 중요했던 것은 관찰자의 역할이다. 직접 봉쇄에 참여한 이들만큼 중요한 관찰자는 현장을 기록하고 경찰을 감시하고 이후 재판에 사용될 자료를 준비하는 이들이다. 이들은 별도의 교육을 받기도 한다.

이미 우리의 촛불집회에는 수많은 관찰자가 등장해서 활동하고 있었다. 언론사의 기자들보다 이러한 관찰자들의 역할이 더욱 빛나는 지금이다. 어떤 이들은 실시간으로 현장을 생중계하기도 하며, 수많은 이들이 캠코더·카메라·휴대폰 등을 통해서 현장의 모습을 담아 인터넷을 통해 공유한다.

그렇게 공개된 경찰의 무자비한 폭력이 지금 전 국민을 들끓게 하고 있다. 새벽까지 대통령을 만나겠다고 기다린 시위대에게 시민들은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으며 다음 집회에는 꼭 참여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비폭력 직접행동의 힘이라고 할 수 있다.

집회 현장에서 외쳐지는 “평화시위 보장하라!”라는 구호에서 시민들의 자신감을 느낄 수 있다. 사람들은 평화-비폭력이라는 도덕적 우위를 활용하며 저항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연행에 있어서도 훨씬 적극적인 모습을 나타낸다.

‘닭장차투어’라는 말이 네티즌 사이에서 유행이 될 정도로 연행에 대한 태도가 달라졌다. 경찰의 불법적인 채증 앞에서 시위대들은 얼굴을 가리기 위해 마스크를 쓰기는커녕 손으로 V를 그리며 조롱한다. 그리고 외친다. 우리가 무슨 죄를 졌냐고. 연행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유치장에서 나와 경찰서를 배경으로 자랑스레 사진을 찍는다.

집시법 위반. 불법 집회. 맞다. 불법도로 점거, 맞다. 하지만 사람들은 명쾌한 논리를 찾아냈다. 그것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며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온다는 헌법이었다. 대통령이 국민의 뜻을 이렇게 무시하면 결국 헌법을 어긴 것이며 그 상황에서 시민들은 집시법을 어기는 시민불복종을 택한 것이다. 아무리 외쳐도 꿈적도 하지 않는 대통령 만나려고 맨 몸으로 거리로 나온 것이 무슨 큰 잘못이냐고 사람들은 말한다. 그리고 기꺼이 말한다. 그게 잘못이라면 잡아가라. 대신 때리지 마라. 사람을 왜 때리는가. 내가 널 때렸는가.

비폭력 직접행동을 구성하는 또 다른 축인 내부의 민주주의 역시 이번 촛불집회에서 두드러진 부분이다. 정부가 ‘배후, 배후’ 하고 노래를 불렀지만 정작 참여자들이 놀란 것은 이렇게 ‘지도부’가 없는 상황에서도 사람들이 잘 움직이며 싸우고 있다는 것이다. 자전거를 이용해서 가두행진의 앞과 뒤의 상황을 소통해주는 이들이 생겨났고 의대생을 중심으로 의료봉사단도 부지런하게 움직이고 있다. 내 관점에선 불편하긴 하지만, 예비군들의 활동도 자발적인 역할그룹이라 할 수 있다.

비폭력 직접행동의 해외 사례들을 살펴보면 활동이 준비되는 과정에서 참여하는 이들은 작은 분임을 형성해서 내부적으로 논의하는 과정을 갖게 된다. 그 과정을 통해서 전체의 계획이 결정되고 토론된다. 현재의 촛불집회는 그러한 논의의 장은 부재한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무언가를 결정할 때 즉석 토론이 이루어지고 그 과정에서 사람들은 어떤 직위나 이름으로 우위를 주장하지 않는 모습은 분명 중요한 가능성이라고 느껴진다.

비폭력이라는 도덕성을 통해 우리의 저항 이어가길

처음 촛불문화제가 행진으로 확대되었을 때 많은 언론에서 ‘변질’이나 ‘폭력’ 등의 용어를 사용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 누구도 지금은 촛불집회에 폭력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진 못하고 있다. 경찰이 불법집회라고 해산을 명령하면 사람들은 국민주권원칙과 평화집회로서 맞서고 있다. 그러한 시민들을 폭력적으로 해산시키고 끊임없이 연행해 가는 경찰과 정권은 매일매일 패배하고 있으며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니는 이 글에서 지금의 촛불집회가 한국 사회에서 등장한 여러 저항 중에서 가장 비폭력 직접행동에 근접하는 모습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러한 내 분석이 현학적인 ‘이름붙이기’가 아닌 이후 활동에 있어서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비폭력 직접행동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핵심은 힘의 우위가 아닌 도덕의 우위로서 싸우는 것이다. 어쩌면 경찰이나 정권은 상황 반전을 위해 시위자 중 일부가 폭력을 사용하는 것은 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미 시민들은 작은 폭력이라도 침소봉대되어서 탄압의 빌미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기에 지금의 비폭력은 고도의 ‘전술’이라고 할 수 있다. 비록 이 비폭력 저항의 과정이 느리고 답답해 보인다 하더라도 우리가 기댈 수 있고, 승리할 수 있는 방식은 이것뿐이라 확신한다. 그리고 이미 우리는 매일매일 승리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임재성 기자는 전쟁없는세상 활동가입니다.

2008.06.02 11:41

“시민 불복종의 권리는 정부 위에 있다”
[칼럼] 광우병 정국 속 소로우의『시민의 불복종』을 생각하다
등록일자 : 2008년 05 월 30 일 (금) 23 : 57  
 

  나도 잡아가라며 자진해서 경찰차에 올라타는 ‘시민불복종 운동’의 촛불문화제 참여자들의 얼굴에서 19세기 미국의 한 시민, 헨리 데이빗 소로우의 얼굴을 본다.
 
  헨리 데이빗 소로우.
 
  그는 가장 좋은 정부는 가장 적게 다스리는 정부라는 표어를 진심으로 찬성하던 사람이었다. 정부란 기껏해야 하나의 편의기관임을 역설한, 진정한 근본주의 정치학자이자 행동주의자였다. 수많은 정치학자들의 이름이 나열되고 있지만, 소로우처럼 민주주의와 국가에 대해 간명하게 통찰력을 보여준 사람은 흔치 않았다. 그는 말한다.
 
  엄밀하게 말하면 정부는 피통치자의 허락과 동의를 받아야 한다. 정부는 내가 허용해 준 부분 이외에는 나의 신체나 재산에 대해서 순수한 권리를 가질 수 없다. 전제군주제에서 입헌군주제로, 입헌군주제에서 민주주의로 진보해 온 것은 개인에 대한 진정한 존중을 향해 온 진보이다. 중국의 철인조차도 개인을 제국의 근본으로 볼 만큼 현명했다.
 
  소로우는 6년 동안 인두세를 내지 않았다는 이유로 경찰에 체포되어 1846년 7월 하루 동안 감옥에 갇혔다. “두께가 60~90센티미터쯤 되는 단단한 돌벽과, 30센티미터 두께의 나무와 쇠로 된 문과, 햇빛이 스며 들어오는 쇠창살을 바라보며” 그는 인간을 단지 살과 뼈로 된 존재로만 여겨 잡아 가두는 감옥이라는 제도와 국가, 정부에 대해 근본의 성찰을 하면서 시민불복종 사상을 정리할 수 있었다.
 
  노예제도를 운영하고 멕시코와 제국주의 전쟁을 일으키는 미합중국 정부를 소로우는 도저히 정부로서 지지할 수 없었다. 소로우의 생각으로는 그런 정부에 대해서 시민들이 비폭력 불복종운동을 통해 저항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권리이며, 시민 불복종의 권리는 정부 위에 존재하는, 너무나 당연한 천부의 권리였다.
 
  불의의 법들이 존재한다. 우리는 그 법을 준수하는 것으로 만족할 것인가, 아니면 그 법을 개정하려고 노력하면서 개정에 성공할 때까지는 그 법을 준수할 것인가, 아니면 당장이라고 그 법을 어길 것인가? 나는 조용히, 내 고유의 방식으로 정부에 선전포고를 하는 바이다.
 
  자신의 감옥 체험과 시민불복종 사상에 대해 소로우는 2년 뒤인 1848년 콩코드 문화회관에서 대중들에게 강연했다. 그리고 이듬해 이 강연을 정리해서 한 잡지에 「시민정부에 대한 저항」이라는 제목으로 발표했고, 이 글이 바로 소로우 사후에 『시민의 불복종』이라는 소책자로 출판되었다.
 
  오만한 제국주의 강대국처럼 자국의 광우병 쇠고기 수입을 강요하는 미국이 지금으로부터 240여년 전에는 제국주의의 식민지로서 대영제국으로부터 수많은 수탈과 억압의 강요를 받는 처지였다는 사실은 역사의 역설이다.
  미합중국이라는 국가의 탄생은 식민모국인 대영제국의 막강한 군사력에 맞서 식민지 주민이었던 미국 시민들 스스로 자신의 권리와 자유, 자신의 삶과 이익을 지키기 위해 치열하게 싸우고 피를 흘린 댓가였다. 미국 민주주의는 대영제국으로부터 그저 공짜로 얻은 시혜품이 결코 아니었다.
 
  1760년대부터 보스톤을 중심으로 매사추세츠 주민들은 대영제국의 각종 세금과 수탈에 대항해서 수많은 저항투쟁을 벌이고 있었다. 시위와 집회는 늘상 일어나는 일이었다. 청원운동에서부터 영국 상품 불매운동과 급기야는 폭동과 무장투쟁까지 수많은 크고 작은 충돌이 전개되었다. 그리하여 보스턴 대학살 사건과 독립전쟁이 일어나기 이전부터 이미 보스턴의 시민들은 북아메리카 영국군과 영국 총독의 지배를 물리치고 매사추세츠 주 전 지역의 모든 정치 군사조직을 장악하고 사실상의 자치를 행하고 있었다.
 
  독립전쟁의 도화선이 된 대영제국의 인지세 부과는 이런 식민지 반제국주의 투쟁에 들이부은 휘발유였을 따름이다.
 
  이런 역사와 배경 아래 미 합중국을 건설했기 때문에 당시 미국의 시민들은 정부란 결코 억압과 착취 기구여서는 안되며 시민들 스스로가 선택하는 하나의 기구일 뿐이라는 뿌리깊은 인식을 공유하고 있었다.
 
  1776년 1월 지금도 유명한 토마스 페인의 『상식』은 이런 사상의 상징이었다. 페인의 이 소책자는 3개월만에 무려 15만부나 팔려 나갔다. 토마스 페인이 전하는 바 국가와 정부에 대한 식민지 아메리카 주민들의 생각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이렇다.
 
  사회는 어떤 상태에서도 하나의 축복이지만, 정부는 최선의 상태에서도 하나의 필요악에 불과하다.
 
  이런 사상의 결정체가 다름아닌 미합중국 독립선언서의 전문이다. 지금도 민주주의를 얘기할 때 금과옥조처럼 인용되는 전문의 두 번째 구절을 다시 읽어보자.
 
  우리들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자명한 진리로 받아들인다. 즉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태어났고, 창조주는 몇 개의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부여했으며, 그 권리 중에는 생명과 자유와 행복의 추구가 있다. 이 권리를 확보하기 위하여 인류는 정부를 조직했으며, 이 정부의 정당한 권력은 인민의 동의로부터 유래한다. 어떤 형태의 정부이든 이러한 목적을 파괴할 때에는 언제든지 정부를 개혁하거나 폐지하여 인민의 안전과 행복을 가장 효과적으로 가져올 수 있는 새로운 정부를 조직하는 것은 인민의 권리이다.
 
  그렇다. 새로운 정부 조직의 권한은 늘 시민, 인민, 대중들의 손에 있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정부란 왕권과 달리 시민들이 선택하는 것이다. 국가의 강요를 시민은 거부할 수 있는 자유와 권리가 있다. 선거를 통하건 추대를 통하건 그 어떤 방식이든 주권은 시민들에게 있다는 주권재민 사상의 핵심은 시민불복종의 권리, 저항과 혁명의 권리이다. 이는 너무나 당연한 상식이자 진리이다.
 
  국가 이전에 인간이, 시민이, 사회가 있다. 국가의 역사는 잘해야 5천년이지만 사람과 사회의 역사는 수백만 년이나 된다.
 
  미국은 식민지 해방투쟁을 통해 인민의 정부를 만들었고 민주주의를 진일보시켰던 과거 자신의 국가 탄생 역사를 잊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남은 것은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침략한, 20세기 내내 어느 한 해도 전쟁을 멈추지 않았던 추악한 제국뿐이다. 오늘날 한국에 강요하는 광우병 쇠고기 수입은 그 옛날 대영제국이 식민지 아메리카에 강요했던 인지세이다.
 
  그때와 다른 점이 있다면 이명박 정부가 앞장서서 식민모국과도 같은 미국에 엎드려 굴복하고 엎드려 양보하고 엎드려 한미 FTA를 서둘러 애원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51번째 주로 편입해달라고 청원하지 않는 것이 신통할 따름이다.
 
  노동자와 서민 생활에 대한 동질감의 정서와 배려는 처음부터 아예 기대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논외로 치자. 그러나 민주주의와 사회에 대한 이해, 역사에 대한 이해, 정부와 국가의 성격과 할 일에 대한 이해는 눈꼽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기업체 사장 출신 대통령을 우리는 지금 처절하게 경험하고 있는 중이다. 기업 경영하듯이 정부를 운영하면 어떻게 되는지, 비즈니스 후렌드리 국가란 어떤 것인지, 그같은 기업 경영 방식의 정치와 통치를 우리는 지금 정확히 경험하고 있을 뿐이다. 역시 재벌 기업 총수인 정몽구 의원과 대기업 씨이오 출신인 문국현 의원의 어지러운 정치 행보도 양념으로 곁들여 지면서 말이다.
 
  미합중국의 독립 역사와 민주주의 역사로부터 우리가 배울 점은 너무나 많다. 그 가운데서도 정부로부터 지역의 독립과 자치, 개인과 사회의 독립과 자치는 핵심이다. 한국은 국가 탄생의 역사가 60년 밖에 안된다. 그나마 그 역사도 전쟁과 강력한 중앙집권의 독재로 점철되어 지역자치와 자립, 지역 독립의 민주주의 전통은 아직 생겨나지도 않은 우리에게는 정부와 국가로부터의 독립이란 개념 자체가 불온하고 낯설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런 가치야말로 우리가 실천에 옮겨야 할 민주주의의 첫단추이다.
 
  소로우는 이런 민주주의의 핵심이 촛불 문화제이며 나도 잡아가d는 스스로의 시민불복종 권리라고 힘껏 외치고 있다. 이런 정부 위에 있는, 정부를 선택하고 정부를 바꿀 수 있는 천부의 시민권 사상은 간디의 비폭력 무저항운동으로 이어진다. 간디는 소로우에게서 깊은 영감을 얻었으며 나아가 민주주의는 마을 자치(스와라지)라는 토대가 형성되어 있어야만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간디의 사티야그라하(진리파악)란 바로 촛불문화제의 비폭력 평화행진, 시민불복종에 다름 아니다.
 
  이명박 아웃(OUT)을 외치는 시민들의 구호는 선동정치인(僭主)을 시민들의 비밀투표로 추방하는 그리스의 도편(陶片)추방(오스트라키스모스), 엽편추방제를 연상시킨다. 동양의 전통에서도 이런 시민 불복종 사상은 끊이지 않고 이어져 왔다. 맹자를 비롯해서 천명을 거스르고 민의를 등진 군주는 추방해야 한다는 민본주의 혁명론은 그 한 예이다.
 
  미국산 광우병 쇠고기 수입에 대한 촛불문화제는 어쩌면 다가올 더 큰 지진의 전주곡일지도 모른다. 한미 FTA도, 에너지와 식량위기라는 쓰나미도 머지 않아 우리 눈 앞에 엄청난 충격으로 들이닥칠 것이다. 이 때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준비하고 어떤 사회, 어떤 정부를 만들어야 하는가. 그리고 어떤 촛불을 들어야 하는가.
 
  이 지점에서 소로우는 우리에게 참으로 깊은 성찰을 요구한다. 소로우는 “소나무의 가장 가까이에 서 있다고, 자연에서 소나무의 가치를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이 벌목꾼일까?”라고 질문하는 현자였다. 그는 『월든』을 통해 자연에 속한 인간의 한계와 인간의 야만을 고발한, 미국이 낳은 위대한 생태주의 사상가였다.
 
  한미FTA는 우리 경제를 살리고 경제성장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광우병 쇠고기 정부의 강변에 대해 절반에 가까운 시민들이 동조하고 있다. 아마도 촛불문화제에 참석한 시민들 가운데에도 동조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자본주의의 대량생산 대량소비는 더 이상 지속불가능하다는 사실이 석유가, 곡물가, 모든 천연자원 가격의 급등을 통해 금방 알 수 있음에도 여전히 성장과 소비 중독의 물신주의가 지배하고 있다.
 
  이제 그런 시장만능주의, 경제 물신주의는 종말을 고할 날이 다가왔다. 대운하가 살 길이라는 경제성장 지상주의는 이제 더 이상 불가능하다. 저가 비행기 동남아 관광을 가서 온갖 추악한 짓거리를 저지르고 돌아오는 어글리 코리안들의 행태도 조만간 더 이상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공장식 축산도 더 이상 불가능하다.
 
  미국산 광우병 쇠고기 뿐만 아니라 육식 위주의 음식문화 자체에 대해 촛불을 들이대야만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광우병 쇠고기는 어쩌면 우리에게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기회를 제공하는지도 모른다. 우리 자신의 경제지상주의에 대해, 우리 스스로 기업의 노예가 되는 삶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거꾸로 된 삶의 방식에 대해, 촛불을 조용히 켜고 성찰하는 계기 말이다.
 
  오늘 밤 새벽까지 청계 광장에서 촛불을 들고 나서 한 번 소로우를 다시 꺼내보자. 그리고 나 자신과 우리 이웃들의 존엄을 지키는 삶이 무엇인지 근본에서부터 다시 생각해보자.
 
  “나는 무정부주의자라고 자처하는 사람들과 달리 지금 당장 정부를 폐지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지금 당장, 보다 나은 정부를 요구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는 먼저 인간이어야 하고, 그 다음에 국민이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법에 대한 존경심보다는 먼저 정의에 대한 존경심을 기르는 것이 바람직하다. 내가 떠맡을 권리가 있는 유일한 나의 책무는, 어떤 때이고 간에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행하는 것이다… 법이 사람들을 조금이라도 더 정의로운 인간으로 만든 적은 없다. 오히려 법에 대한 존경심 때문에 선량한 사람들조차도 매일매일 불의의 하수인이 되고 있다.
 
  만약 불의가 정부라는 기계의 필수불가결한 마찰의 일부분이라면 그냥 내버려 두라, 그냥 내버려 두라… 결국에는 닳아 없어질 것이다… 그러나 이 불의가 당신으로 하여금 다른 사람에게 불의를 행하는 하수인이 되라고 요구한다면, 분명히 말하는데 그 법을 어기라.
 
  수많은 사람들이 인간으로서가 아니라 기계로서 자신의 육신을 바쳐 국가를 섬기고 있다. 상비군, 예비군, 간수, 경찰관, 민병대 등이 바로 그런 사람들이다. 대부분의 경우 그들이 판단력이나 도덕 감각을 자율적으로 사용하는 일은 전혀 없으며, 오히려 그들 스스로가 자신을 나무나 흙이나 돌과 같은 위치에 놓아버린다. 그래서 나무로 사람을 깎아 만들더라도 그들이 하는 일을 해내는 데는 별 지장이 없을 것이다…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참다운 의미의 영웅, 애국자, 순교자, 개혁가로서 그리고 인간으로서 그들의 양심을 가지고 이바지한다. 그런데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필연적으로 국가에 저항하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따라서 국가로부터 흔히 적으로 취급을 받는다.
 
  모든 사람이 혁명의 권리를 인정한다. 다시 말해서 정부의 폭정이나 무능이 너무나 커서 참을 수 없을 때에는 정부에 충성을 거부하고 정부에 저항하는 권리 말이다.”

박승옥/시민발전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