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텀과 매트릭스

-귄터 안더스의 미디어 이론

태어날 때부터 텔레비전을 보고 자란 세대는 그 물건이 창세 이래 세계에 속한다고 느낄 것이다. 그들에게 텔레비전이 있는 삶은 절대적 세계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우리 주위를 공기가 감싸고 있듯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그들에게는 텔레비전이 그렇게 옆에 있다. 우리가 공기의 존재를 당연히 여기듯이 그들도 텔레비전의 존재를 당연하게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 세대는 다르다. 어렴풋이나마 텔레비전이라는 물건이 처음으로 세계 속에 도입되던 창세기의 기억을 갖고 있다. 텔레비전이 없던 시절 가족들이 함께 저녁을 먹던 분위기는 텔레비전이 생긴 이후의 저녁 분위기는 분명히 다르다. 이런 변화를 우리는 몸소 겪은 바 있다. 요즘 세대에게 텔레비전이 없는 삶이 상상이 안 되겠지만, ‘텔레비전이 없는 삶’을 잠시나마 살아보았던 우리는 적어도 ‘텔레비전이 있는 삶’을 여러 가지 가능한 삶 중의 하나로 상상은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우리 역시 이미 오래 전부터 텔레비전이 만들어낸 세계 속에 들어가 살고 있다. 얼마 전 어느 주간지에 재미있는 기사가 실렸다. 기자가 일정 기간 텔레비전 없이 사는 모험(?)을 하며, 그 체험을 수기로 기록한 것이다. 내용은 자세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하여튼 이러 엉뚱한 실험이 의미를 가질 정도로, 어느 새 텔레비전은 우리의 삶의 본질적 요소가 되어버렸다. 텔레비전 없이 지낸다는 것은 이미 우리 세대에게도 그저 집안에 있는 물건 하나를 내다버리는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그것은 텔레비전을 중심으로 구성된 삶 전체를 바꿔야 하는 실천적 번거로움을 의미한다. 가령 당장 집에서 텔레비전을 들어내면, 지금 거실에서 텔레비전을 보는 어머니는 당장 어떻게 무료한 하루를 보내실 것이며, 나는 그 무료함을 달래드리기 위해 얼마나 많은 화제를 준비해야 하는가.

흔히 우리는 텔레비전을 하나의 ‘도구’로 생각한다. 또 ‘도구’는 인간의 필요에 복무하는 종이라고 믿는다. 과연 그럴까? 가령 내 주머니에는 핸드폰이 들어 있다. 이것으로 연락을 하고, 만남을 약속하고, 택시를 부른다. 나는 이 ‘도구’의 주인이 되어, 필요할 때마다 그것을 유용하게 사용한다. 그것으로 끝인가? 그렇지 않다. 핸드폰을 소지하고 있는 나는 모든 사람에게 도달 가능한 거리에 있게 된다. 언제, 어디서라도 그 호출에 응해야 할 처지에 빠지게 된다. 내게 핸드폰으로 전화를 거는 그 사람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말하자면 우리 인간들이 이 조그만 ‘도구’가 촘촘히 쳐놓은 거미줄 같은 네트워크에 걸린 벌레의 신세가 되는 것이다. 과연 이래도 인간이 ‘도구’의 주인이라고 할 수 있을까? 어쩌면 인간이 ‘주체’라는 것은 근대철학의 신화, 한갓 소망에 지나지 않는지도 모른다.

텔레비전 역시 정보를 담아 전달하는 빈 그릇, 즉 ‘전달수단’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이미 맥루한은 “미디어는 메시지”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말도 수정되어야 한다. 미디어는 메시지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 머리 속의 관념만이 아니라 우리의 몸과 삶 자체를 조직하는 방식이다. 미디어는 한갓 인식론적 현상이 아니라 존재론적 현상이다. 그것은 한갓 정보전달의 수단, 특정 이념이나 가치관의 메시지라는 차원을 넘어서 그 자체가 현대인의 삶을 조직하는 원리이다. 그렇다면 텔레비전이 초래한 생활세계의 변화를 개념화할 새로운 이론적 틀이 있을 법도 하다. 그 이론은 매체의 특성을 논하는 데에 그치는 ‘커뮤니케이션 이론’의 차원을 넘어, 미디어가 초래한 지각방식의 변화, 습속의 변화, 나아가 현실 자체의 존재론적 위상의 변화를 포착하는 철학의 수준에 도달해야 할 것이다.

환영의 세계

그 요구에 응한 최초의 시도가 바로 귄터 안더스의 <팬텀과 매트릭스로서의 세계>다. 금방 눈에 들어오듯이 이 논문의 제목은 쇼펜하우어의 저서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패러디한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방송’이라는 미디어가 낳은 새로운 세계의 존재론을 구성하려는 그의 철학적 의도를 짐작할 수 있다. 실제로 그는 글의 곳곳에서 자신의 미디어론이 동시에 미디어 시대에 대한 철학적 고찰임을 강조하기 위해 여러 철학자의 명제를 인용하여 자신의 것과 대비를 시킨다. 그에게 글의 제목을 빌려준 쇼펜하우어에게 이 세계는 “표상의 세계”였다. 이는 칸트가 말하는 ‘현상의 세계’를 불교에서 말하는 “사바세계”로 해석한 것이다. 그렇다면 쇼펜하우어의 표현을 패러디한 책에서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텔레비전과 라디오가 일종의 사바세계’를 만들어낸다’는 것임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니체는 “모든 위대한 철학자는 진정한 세계란 이 세계 위에 드리워진 베일 뒤에 감추어져 있다는 예감을 갖고 있다”고 했다. 그런 위대한 각성에 도달하지 못한 범인들에게 유일한 세계란 ‘사바세계’일 뿐이다. 마찬가지로 철학 따위에 아무 관심 없이 살아가는 산업사회의 평범한 대중들에게 경험가능한 유일한 세계는 방송이 만들어내는 또 하나의 ‘사바세계’일 뿐이다. 하지만 전쟁을 피해 미국으로 망명을 간 이 독일 비평가가 이 거창한 철학적 각성에 도달하는 데에 필요로 했던 실제 TV시청의 경험은 불과 7, 8분이었다고 한다. 60년대 말에 우리 나라에서도 그랬듯이, 미국에서도 50년대에는 텔레비전이 종종 길거리 전파상의 진열장에 전시되어 있었는데, 저자는 길거리에 잠시 텔레비전이라는 물건을 구경하고 돌아와 이 방대한 철학적 기획에 돌입했다고 한다.

그렇게 씌여진 논문이 오늘날 미디어 이론의 고전으로 꼽히고 있다. 새로운 미디어가 등장하면 거기에 철학적 성찰이 뒤따르는 법이다. 미디어의 발전 단계에 맞추어 미디어의 철학 역시 몇 단계를 거쳐 발전해 왔다. 첫 단계는 영화와 사진의 미디어론이다. 둘째는 라디오와 텔레비전의 이론이다. 그리고 셋째는 최근에 등장한 인터넷에 관한 이론들이다. 오늘날 모든 영화이론이 벤야민에게서 출발한다면, 방송에 관한 모든 이론은 귄터 안더스에게서 출발하고 있다. 하지만 이제까지 세 단계로 발전해 온 모든 종류의 미디어론에 개념적 틀을 제공한 것은 역시 벤야민의 논문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이다. 둘째 단계를 이루는 안더스의 <팬텀과 매트릭스로서의 세계> 역시 벤야민의 논의에 빚진 바가 매우 크다. 따라서 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먼저 벤야민에 미디어론에 대해 살펴보는 게 좋겠다.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

벤야민이 ‘모던’이라는 시대에 새로 등장한 경향으로 주목한 것은 ‘기술복제의 가능성’이었다. 여기서 그는 물론 당시에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던 사진과 영화기술을 염두에 두고 있다. 사실 예술의 복제는 예술사만큼이나 오래된 현상이다. 하지만 벤야민이 유독 현대만을 “기술복제시대”라 부르는 것은, 현대에 이르러 예술작품의 복제기술의 발전이 단지 예술을 베끼는 수준에서 벗어나 역으로 예술적 생산 그 자체에 영향을 끼칠 단계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에서 벤야민이 제기한 명제는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첫째는 기술복제가 현대인의 세계를 바라보는 지각의 방식을 바꾸어 놓았다는 것이다. 둘째는 기술복제가 현실의 존재론적 위상 자체를 변화시켰다는 것이다. 셋째는 기술복제가 ‘대중’이라는 이름의, 과거와는 다른 미디어 수용자를 등장시켰다는 것이다.

벤야민에 따르면 사진이나 영화와 같은 복제기술의 등장은 현대인의 지각, 즉 그들이 세계를 보는 눈 자체를 변화시켰다. 카메라라는 복제의 수단은 ‘시각적’이었던 전통적인 지각의 방식을 ‘촉각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가령 근접 확대촬영을 하는 카메라는 마치 외과의사처럼 대상의 내부로 육박해 들어가며, 뤼미에르의 영화실험처럼 카메라의 영상은 보는 이에게로 사정없이 달려든다. 벤야민은 기술의 발전이 가져온 이 지각의 변화가 새로운 지각이 대중의 비판의식을 고양시켜 줄 것이라고 기대했다. 물론 오늘날 이 견해는 지나치게 소박하고 지나치게 낙관적인 것으로 여겨지고 있지만, ‘미디어의 등장이 현실체험의 방식을 바꾸어 놓는다’는 그의 명제만큼은 오늘날까지도 변함없이 모든 미디어론의 기초를 이루고 있다.

벤야민에 따르면 기술복제는 예술작품의 “지금, 여기”, 즉 작품이 속한 장소와 결부된 현존성을 파괴한다. 유일무이한 대상으로서 예술작품이 갖고 있는 성스런 분위기. 이를 벤야민은 ‘아우라’라고 부른다. 아우라는 “아무리 가까이 있어도 멀리 있는 것처럼 현상”한다. 가령 루브르의 모나리자 앞에 서 보자. 바로 그림 앞에 서 있어도 그 그림은 너무나 멀게만 느껴진다. 아우라는 예술작품이 태초에 갖고 있던 종교적, 제의적 기능의 흔적이다. 그런데 복제기술, 즉 사진과 영화예술은 바로 이 아우라를 파괴한다. 가령 여러 도시에서 동시에 개봉되는 영화를 생각해 보자. 그 중에서 ‘원본’은 어느 것인가? 대답이 있을 리 없다. 영화예술에는 ‘원본’이 애초에 없기 때문이다. 벤야민은 이렇게 원본, 즉 유일무이한 대상이 복제물의 시물라크르들 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진보적 현상으로 보았으나, 이 견해는 오늘날 별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다만 유일무이한 사물의 세계가 다수의 복제물의 세계로 해체되는 것을 ‘현대’의 징후로 본 것만은 오늘날의 미디어론에서도 그대로 반복되고 있다.

나아가 벤야민은 ‘대중'(=mass)이라는 이름의 단자들이 미디어(=media)의 집단적 수용자로 대두하는 것을 ‘현대(=modern)의 시대적 징후로 꼽았다. 과거 예술의 수용자가 관조하는 고독한 개인이었다면, 영화라는 미디어는 새로운 예술수용자를 등장시켰다. 영화의 감상자는 고독한 개인이 아니라 ‘대중’이라는 집단이다. 나아가 이들은 미술관에서 피카소의 작품 속에 고요히 침잠하던 고전 예술의 감상자와는 달리 찰리 채플린의 관람자처럼 예술을 오락처
럼 가볍게 즐긴다. 벤야민은 이 속에서도 혁명을 보았다. 관객이 극중현실에 몰입하는 것을 막음으로써 거기에 늘 비판적 태도를 유지하게 하는 브레히트의 소격효과처럼, 시시각각 변하는 영화 속의 영상은 정지된 그림에 몰두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대중으로 하여금 영화 속의 사건에 늘 비판적 거리를 취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물론 미디어가 요구하는 이 “산만한” 지각이 대중의 비판적 의식화에 기여하리라고 본 이 견해 역시 오늘날에는 더 이상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다만 새로운 예술의 수용자로서 ‘대중’에 주목한 것은 그의 혜안이라고 할 수 있다.

벤야민에 대한 비판은 그의 절친한 친구였던 아도르노에게서 나왔다. 아도르노는 미국에서  대중예술의 자본주의적 상업화를 목격했기에 매스 미디어에 대해 벤야민보다는 비판적인 시각을 견지할 수 있었다. 그는 매스 미디어가 초래한 세 가지 변화 모두에 지극히 비관적인 견해를 표명한다. 가령 헐리우드 영화는 대중의 비판적 의식을 각성하기는커녕, 해피엔딩의 구조로 대중들의 극중 몰입을 완전히 보장하면서 그들을 철저하게 체제순응적인 존재로 길들이고 있었다. 아울러 영화가 파괴한다던 아우라도 ‘스타 시스템’이라는 새로운 아우라의 생산기제에 의해 새로운 모습으로 등장하고 있었다. 아울러 아도르노는 복제예술이 인간의 지각방식에 끼치는 영향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견해를 갖고 있었다. 가령 음반의 경우에서 볼 수 있듯이 진정으로 음악을 듣게 해주는 게 아니라 음악의 지각방식을 특정한 패턴에 고정시킴으로써 인간의 듣기능력을 “퇴행적”으로 고착시킬 뿐이라는 것이다.

벤야민에 대한 아도르노의 비판은 한 마디로 아우라의 파괴가 자본주의하에서는 진보가 아니라 진보의 왜곡으로 나타난다는 데에 있다. 벤야민이 그 논문에서 제시한 대부분의 견해는 오늘날 아도르노의 지적대로 지나치게 낙관적인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하지만 이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벤야민의 텍스트는 아직까지도 새로운 디지털 미디어의 등장과 그것의 미래에 대한 담론에서 여전히 전범의 역할을 하고 있다. 그가 내세운 개별명제들은 모두 폐기되었으나, 그가 만들어낸 분석틀만큼은 여전히 살아서 이론적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 미디어론은 벤야민과 아도르노의 반복인지도 모른다. 가령 귄터 안더스의 미디어론 역시 현상의 분석을 위해 벤야민의 패러다임을 빌어다 쓰고 있다. 하지만 이 새로운 매체의 잠재력에 대해서 그는 아도르노처럼 대단히 비관적인 관점을 보여준다.

세계, 방안으로 들어오다  

“마치 물이나 가스나 전기가 거의 눈에 띄지 않는 손동작 하나에 의해 멀리서부터 우리들 집으로 와서 우리들에게 시중을 들 듯이, 우리는 조그만 손동작 하나로 하나의 이미지가 나타났다가는 곧 또다시 사라져버리는 그런 영상이나 소리를 갖게 될 것이다.”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에서 벤야민이 인용하는 발레리의 말이다. 벤야민은 조금 성급하게 여기 저기 돌아다니며 영상을 보여주는 영화예술에서 이 예언의 실현을 보았다. 물론 우리에게 발레리의 말은 인터넷의 예언으로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1950년대를 살았던 귄터 안더스에게 “그런 영상이나 소리”는 의심할 여지없이 텔레비전과 라디오였다. “하나의 이미지가 나타났다가 곧 또 다시 사라져버리”게 하는 그 “조그만 손동작”은 우리에게는 마우스 클릭을 의미하겠지만, 그에게는 텔레비전이나 라디오를 켜고 끄는 동작을 의미했다. 발레리가 말한 것처럼 영상이나 소리가 마치 물이나 가스처럼 집안으로 들어오는 것은 영화가 아니라 텔레비전과 라디오를 통해 비로소 가능해졌다.

이렇게 전기나 가스를 끌어오듯이 이미지를 집안으로 끌어오는 것은 자본주의적 대량생산을 통해 가능해졌다. 즉 “수상기의 대량생산을 통해 집단적 소비가 불필요”해졌던 것이다. 영화는 영화관에서 집단적으로 관람을 하나, 텔레비전을 보기 위해서는 굳이 집단을 이룰 필요가 없다. 집안에 수상기가 들여놓으면 언제라도 수돗물이나 전기를 쓰듯이 영상을 소비할 수 있다. 라디오나 텔레비전이라는 매체와 함께 새로 등장한 새로운 관객은 가족이다. 가족은 ‘미니 관객'(Publikum en miniature)이 되고, 가정은 점점 더 조그만 극장의 모습을 닮아간다. 텔레비전은 가족들 사이의 시선의 교환을 앗아가고, 그들 사이의 대화마저 앗아간다. 이제는 텔레비전은 가족을 구성하는 원리가 되어, 이제 그것을 틀어놓지 않으면 가족끼리도 같이 있는 것이 서먹서먹해질 정도가 된다.

오늘날 텔레비전과 라디오의 시청자는 돈을 주고 영상과 소리를 사는 이미지의 소비자다. 그들은 영상을 집에서 개인적으로 소비한다. 오늘날 영상의 “대중적 소비”는 이렇게 “유아론적”으로 이루어진다. 유아론적 소비자는 집안으로 들어온 현실의 조각을 소비하는 가운데 “관념론자”가 된다. “세계는 더 이상 우리가 그 안에 들어 있는 외부세계로 나타나지 않는다.” 그것은 속류 관념론에서 말하는 것처럼 우리의 의식이나 우리의 뇌 속에 들어있는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내 방 안에서 일어나는 사건의 총체가 되어버린다. 즉 “나의” 세계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밖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나는 형상의 형태로 방안에서 소유할 수 있다. 그 세계는 나를 위해 존재하는 세계, 내가 마음대로 가질 수 있는 세계다. 그 세계를 갖기 위해 나는 텔레비전의 스위치를 누르기만 하면 된다. 바로 이렇게 “세계”라는 말에 “나의”, “너의”, “그의”와 같은  소유격이 붙을 때, 그 세계는 관념이 아닌 관념이 된다. 그것은 머릿속의 주관적 관념이 아니라 환영, 즉 머리 밖에 형상으로 존재하는 객관적 관념이다.

펜텀으로서의 세계

텔레비전 매체는 현실과 가상이라는 전통적 대립을 무너뜨린다. 가령 불타고 있는 쌍둥이 타워를 비추는 CNN의 화면을 보자. 브라운관에 뜬 저 현실은 내 앞에 존재하는가? 아니면 존재하지 않는가? 어느 쪽으로도 대답하기 어렵다. 지금 나는 쌍둥이 빌딩이 불타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보고 있다. 쌍둥이 빌딩에는 실제로 지금 불이 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분명히 우리 집 안방에서 벌어지는 사건은 아니다. 우리 집에는 화재가 나지 않았고, 그 이전에 쌍둥이 빌딩이 없다. 그런 의미에서 저 영상은 “존재하지도 않고 부재하지도 않는” 사건이다. (S.129) 이렇게 현실도 아니고 허구도 아닌 이 제3의 존재층을 안더스는 “팬텀”이라 부른다. 그리고 이를 “사물로서 등장하는 형태”로 정의한다. 말하자면 팬텀이란 마치 진짜 사건이나 사물인양 등장하는 그림이라는 것이다.

텔레비전은 이렇게 팬텀의 세계를 만들어낸다. 허구이면서 동시에 사실로 등장하는, 그리하여 존재하면서 실은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리얼리티를 만들어낸다. 과거에 모상은 원본이 되는 사건이 벌어진 이후에(nach) 제작되었다. 가령 역사화는 사건이 발생한 다음에 그려진다. 텔레비전의 영상 역시 역사화처럼 원본(原本)의 모상(模像)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TV 영상은 역사화와는 달리 사건의 발생과 모상의 제작 사이의 시간적 간극을 없애버린다. 그리고 우리 앞에 모상도 아니고 원본도 아닌 형태로 “실시간으로”(synchron) 나타난다. 여기서 원본과 모상의 존재론적 차이는 사라지고, 모상 자체가 현실의 직접성을 가지고 우리 눈앞에 생생하게 현상한다. 모상, 그것은 곧 현실이다. “삶이 꿈으로 간주되는 곳에서는 꿈이 삶으로 간주되듯이, 모든 현실이 팬텀으로 등장하는 곳에선 모든 팬텀이 현실이 된다.”(S.143)

이처럼 모상이 현실로 여겨지는 곳에서는 구조적 기만의 메카니즘이 개입되기 마련이다. 모상의 진리성은 원본과의 일치 여부에 있다. 그리하여 모상에 대해서 우리는 늘 원본과 일치할 것을 요구한다. 모상이 모상으로 여겨지는 한, 우리는 여전히 진리요구를 할 수가 있다. 하지만 모상이 곧 원본으로 나타나는 곳에서는 진리요구를 할 수가 없다. 텔레비전이라는 도구는 그저 도구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어떤 사실의 미리 선정된 측면을 보여줌으로써 그 사건에 대한 판단을 암암리에 미리 내포한다. 가령 얼마 전 CNN은 미국의 테러 소식을 듣고 환호성을 지르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비추었다. 그때 카메라는 사건의 본질에서 보여주지 않고 다분히 인종주의적 발언을 했다. 하지만 브라운관 위에서는 정말로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환호를 하고 있었다. 누가 이를 거짓말이라 부르겠는가? 이처럼 원본과 모상 사이의 구별이 없어지고, 모상이 원본과 같은 시간에 현실과 똑같은 생생함을 갖고 나타날 때, 거짓말도 곧 생생한 진리로 현상한다.

오늘날 TV 영상은 소비되는 상품으로 제공된다. 백화점 진열장에 전시된 상품을 보자. 상품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 상품을 ‘x’ 라고 하자. 그 ‘x’ 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 아무 말도 안 하는 듯이 보인다. 즉 그것은 아직 술어가 달리지 않은 주어일 뿐이다. 하지만 그런가? 실은 그렇지 않다. 진열장에 전시되어 있다는 것 자체가 자기 자신에 대한 자화자찬인 것이다. 즉 상품 ‘x’ 는 인간들이 술어를 붙여야 할 주어에 불과한 게 아니라 이미 자체 내에 술어를 포함하고 있다. 말하자면 그 존재 안에 이미 자기 자신에 대한 판단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그 판단은 의식되지 않는 상태로 소비자에게 강요된다. 소비자는 상품이 스스로 내린 그 판단을 마치 자기가 주체적으로 내린 판단인 양 착각을 하게 된다. TV 영상이라는 상품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소비자로 하여금 점점 더 이 이미 내려진 판단에 의존하게 만들고, 나아가 이 의존성을 꿰뚫어 볼 가능성조차 앗아간다.

대중, 유아론적 관념론자

텔레비전은 팬텀의 세계를 만들어낼 뿐 아니라 동시에 새로운 인간을 만들어낸다. 이를 안더스는 “은둔자 대중”(Massen-Eremiten)이라 부른다. 가령 외부환경과의 일체의 접촉을 끊고 집에서 TV나 비디오를 보며 지내는 일본의 ‘오다꾸’ 혹은 최근의 예로 인터넷 중독자를 생각해 보라. 사실 TV의 시대를 사는 우리 모두는 “은둔자 대중”, 즉 일종의 ‘오다꾸’다. 벤야민에게 영화 대중이 잠재적인 민주적 집단이 되리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안더스에게 이런 기대는 “비정치적인 영역으로의 민주주의의 무의미한 확장”일 뿐이다. TV 대중은 그저 뿔뿔히 흩어져 자기 집안의 감옥에 틀어박혀 자기만의 세계를 소비하는 세속적 수도승일 뿐이다. 설혹 “라디오 수신기와 텔레비전 수상기가 세계를 향한 창을 열어 줄지는 모르나, 그것은 동시에 세계의 소비자를 ‘관념론자’로 만들어버린다.” 아무리 객관적이라 하더라도 관념론자의 세계는 어디까지나 환영의 세계다. 그것은 세계가 아닌 세계, 현실이 아닌 현실이다.

벤야민은 말한다. “영화가 등장함에 따라 이러한 감옥의 세계가 10분의 1초의 다이너마이트로 폭파됨으로써 우리는 사방으로 흩어진 감옥세계의 파편들 사이에서 유유자적하게 모험에 가득찬 여행을 시도할 수 있게 되었다.” 오늘날에는 이를 ‘인터넷 서핑’이라 부른다. 그리고 이를 상찬하기 위해 우리 역시 이와 똑같은 수사법을 사용한다. 하지만 텔레비전이 전달해주는 파편적 영상들 사이를 여행할 때 우리는 실은 결코 여행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독일어에서 ‘배우다, 경험하다’는 말(erfahren)에는 ‘(자동차나 마차를 타고) 떠나다'(fahren)이라는 말이 들어 있다. 따라서 텔레비전이 우리 안방에 배달해주는 세계의 조각들 사이에서 “유유자적하게 모험에 가득찬 여행”을 하는 것이 실은 진짜로 여행하는 것(fahren)이 아니라면, 그 여행을 통해서 우리가 외부세계를 경험(erfahren)하는 것도 실은 불가능하다는 얘기가 된다.

데카르트는 <제2성찰>에서 인간의 정신은 몸과 달라서 분할을 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과연 그럴까? 우리는 텔레비전을 보면서 뜨게질을 하거나 밥을 먹거나 신문을 보거나 혹은 그 밖의 일을 한다. 텔레비전을 볼 때에 인간의 영혼은 분열되고, 그의 몸은 이렇게 파편화한 행동의 집산으로 전락한다. 벤야민은 찰리 채플린의 영화를 보는 “산만한” 지각이 피카소의 그림을 보는 관조와 집중보다 진보적이라고 보았지만, 때로 산만함은 인간의 지적 능력을 떨어뜨리는 산만함에 불과하다. 텔레비전을 보면서 인간은 자신을 ‘대중-인간’으로 전화시킨다. 아도르노가 대량복제된 음반이 진정한 듣기의 능력을 퇴화시킨다고 본 것처럼, 안더스에게도 텔레비전이 매개하는 지각은 감각의 퇴보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텔레비전의 지각은 더 이상 그리스적 의미의 ‘시각’도 아니고 헤브라이 전통의 ‘청각’도 아니고, 그저 ‘먹는 것’이다. 텔레비전 앞에서 인간은 엄마가 떠서 입안에 넣어주는 밥을 먹는 어린아이가 된다. 한 마디로 텔레비전의 시청자는 정신적 ‘구강기’로 퇴행하는 것이다.

이 어린이의 배를 채워주기 위해 텔레비전은 부지런히 현실의 파편들을 방안으로 배달한다. 아이의 입맛을 맞추려면 날로 새로운 그림, 더욱 더 충격적인 그림, 한 마디로 센세이셔널한 그림을 동원할 필요가 있다. 그 결과 세계는 볼거리를 제공하는 노출증 환자로 전락한다. 그리고 시청자들은 세계의 볼거리를 훔쳐보는 절시증 환자, 관음증 환자가 된다. 최근 몇몇 나라에서 유행하는 ‘리얼리티 쇼우’란 실은 텔레비전 자체에 내재한 이 노출증과 절시증의 결합이 극단적으로 나타난 것에 불과하다.

사물의 권위

텔레비전은 이상하게 친숙감을 만들어낸다. 연속극에 나오는 저 여배우는 개인적으로 본 적이 전혀 없어도, 이상하게 우리에게 매우 친숙하게 느껴진다. 텔레비전 스타들에 대해 팬들이 느끼는 친밀감을 생각해 보라. 그들은 전혀 친분 관계가 없는 사람의 사생활까지 꿰고 스타들을 마치 자기의 가족이나 친구나 되는 것처럼 느낀다. 그리하여 그들의 불행을 마치 자기 일처럼 걱정하고, 그들의 기쁨을 마치 자기 일처럼 기뻐하고, 그들에 대한 공격을 마치 자기에 대한 모욕인양 느낀다. 하지만 현실의 스타는 어떠한가? 실제로 그들은 모든 면에서 대중들과 너무나 먼 곳에 있다. 스타의 신분은 비루한 대중들과는 다른 세계에 속한다. 그들의 세계는 대중에게는 전혀 낯선 세계이고, 그 세계로부터 대중은 철저히 소외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외를 대중들은 소외로 느끼지를 않는다. 텔레비전은 이렇게 먼 것을 가깝게 함으로써 “소외를 친숙화”한다.

텔레비전은 또한 수용자와 세계 사이의 거리를 지운다. 아무리 멀리 떨어진 곳에서 벌어지는 일이라도 텔레비전은 그것을 우리의 안방에 옮겨놓음으로써 가깝거나 먼 사물들 사이의 공간적 차이를 지워버린다. 이때 텔레비전을 통해서 보여지는 사물이나 사건의 고유한 가치는 지워진다. 원래 그 사건은 특정한 장소에 귀속되는 유일한 사건이리라. 하지만 카메라에 잡히는 순간, 그 사건은 그 장소에서 풀려나와 대량으로 복제된다. 이로써 여기서 사물들은 고유의 가치, 고유의 의미를 상실하고 “중립화”한다. 이 순간에 벤야민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이렇게 해서 위험한 상황에 놓이게 되는 것은 사물의 권위다.”(<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사물이 가진 아우라의 파괴를 벤야민은 진보적인 현상으로 보았다. 하지만 귄터 그라스에게 이것은 상찬해야 할 진보적 현상이 아니라 우려해야 할 심각한 사태였다.

“아무리 가까이 있더라도 어떤 먼 것의 일회적 나타남.” 이것이 벤야민이 말하는 아우라의 개념이다. 귄터 안더스의 견해의 바탕에는 바로 이 아우라의 개념이 깔려 있다. 텔레비전은 아우라를 파괴한다. 그래서인지 그가 말하는 텔레비전 영상의 규정은 정확하게 이 아우라 개념을 뒤집어 놓은 것임을 알 수 있다. 텔레비전 영상은 ‘아무리 멀리 있더라도 어떤 가까운 것의 반복적인 나타남’이다. 귄터 안더스에게 이는 벤야민에게서와는 달리 “제의적 가치”의 파괴라는 진보적 현상이 아니라 사물의 위기, 나아가 세계의 위기이다.

매트릭스의 세계

텔레비전의 시청자는 텔레비전을 통해 배달되는 세계의 파편들을 마음대로 조립하여 자기의 세계를 구성한다. 그는 마음대로 세계를 껐다가 킬 수가 있다. 이를 통해 그는 팬텀으로 이루어진 자기 세계의 주인이 된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결코 그렇지가 않다. 과거에 사람들은 사진이나 영상을 조작함으로써 현실에 반대하여 거짓말을 했다. 하지만 텔레비전은 현실을 수단으로 하여 거짓말을 한다. 과거처럼 “어떻게”만이 아니라 “무엇을 말하고, 무엇을 말하지 않느냐” 하는 것이 거짓말을 하는 수단이 된다. 시청자가 세계의 파편들을 조립하여 자기의 세계를 구성하기 전에, 그 세계는 이미 판에 박힌 형태로 그에게 전달된다. 텔레비전이 배달해주는 영상의 파편들은 이미 누군가에 의해 구성된 총체성으로서 후에 시청자가 자기 세계를 구성하는 “선험적 조건”이 된다. 세계는 통채로, 총체성으로 주어진다. 시청자라는 자기 세계의 주인은 실은 거대한 매트릭스의 세계의 수인(囚人)인 셈이다.

“대중-인간에게 세계가 매트릭스의 총체성 속에서 배달될 때, 세계를 대신하여 표상의 총체성이 등장한다. 하지만 이 세계는 오직 그것이 그(=시청자)에게 각인된다는 의미에서만 “그의 세계”다. “나의 표상이 너희의 세계다.” 매트릭스를 생산하는 자의 의지는 이렇게 말한다. 그렇게 말했다, 히틀러는.

여기서 우리는 영화 <매트릭스>가 귄터 안더스 미디어론의 디지털 버전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매팬텀과 매트릭스는 그저 관념적인 현상에 불과한 게 아니다. 벤야민의 복제기술이 예술을 베끼는 수준에서 벗어나 예술창작에 영향을 끼치기 시작했듯이, 텔레비전은 현실의 팬텀을 만들어내는 데에 그치지 않고, 그 팬텀으로 현실에 영향을 끼치게 된다. 이제 사람들은 어떤 사건의 사회적, 정치적 중요성을 ‘그것이 텔레비전에 나왔느냐, 안 나왔느냐’를 기준으로 판단하기 시작한다. 이렇게 “어떤 사건의 복제형태가 원본의 형태보다 사회적으로 더 중요할 때, 이때 원본은 복제를 지향하지 않을 수 없다.” 말하자면 이제 텔레비전이 현실을 닮는 게 아니라 거꾸로 현실 자체가 텔레비전 속의 가상의 모델에 맞추어 자신을 연출하게 되는 것이다.

가령 서구의 어느 방송사는 마피아와 계약을 맺고, 그들이 은행을 습격하는 장면을 생생하게 화면에 담아 방송했다. 그런 예는 우리 나라에도 존재한다. 이번 선거전에서 몸싸움을 벌였던 여야의 운동원이 병원에 입원했다. 물론 진짜로 부상을 당해서가 아니라 상대의 폭력성을 드러내기 위한 텔레비전 쇼였다. 귄터 안더스는 팬텀과 매트릭스의 세계를 만들어내는 매체가 꼭 방송일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논문의 말미에서 그는 오늘날 다른 매체들도 다소간 텔레비전과 같은 성격을 띠고 있다며, 자기 이론을 일반화한다. 실제로 오늘날의 언론은 점차 매트릭스를 닮아가고 있다. 어느 야당의원은 국회에서 대정부 질의를 하는 가운데 각 일간지의 신문을 차례로 들어 보였다. 다음날 모든 신문사의 1면에는 질의를 하는 그 의원이 자기 신문을 들고 있는 사진이 실렸다.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1. 우리가 세계로 가는 게 아니라 세계가 우리에게 올 때, 우리는 더 이상 “세계 안에” 있는 게 아니라, 그것의 게으른 소비자가 된다.
2. 세계가 우리에게 오되, 그저 그림으로만 올 때, 그것은 반은 존재하고, 반은 부재하면서 환영과 같은 것이 된다.
3. 우리가 (TV를 통해 배달되는) 세계를 언제라도 인용할 수 있을 때 (설사 지배까지는 하지 못해도, 적어도 키거나 끌 수 있을 때), 우리는 신적인 힘의 소유자가 된다.
4. 세계가 우리에게 말을 걸어오는데, 우리가 세계에 말을 걸 수는 없을 때, 우리는 벙어리가 되도록, 말하자면 자유롭지 못하도록 심판을 받는다.
5. 우리가 세계가 하는 말을 들을 수 있을 때, 하지만 거기에 작용을 가하지 못하고 오직 듣기만 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엿듣는 자 혹은 관음증 환자가 된다.
6. 특정한 장소에서 발생하는 사건이 중계가 되고 “방송”으로 다른 모든 장소에 전송될 수 있을 때, 그 사건은 거의 모든 곳에 편재하는 상품이 되고, 개별화 원리로서의 자기의 공간적 위치를 상실한다.
7. 그 사건이 운반가능하여 수많은 복제들로 등장할 때, 그것은 대상의 성격상 대량생산된 물건이 된다. 그 대량생산품의 배달될 때 대가가 지불될 때, 그 사건은 상품이 된다. 8. 그 사건이 복제의 형태 속에서, 말하자면 그림으로서 비로소 중요하게 여겨질 때, 존재와 가상, 현실과 그림 사이의 차이는 사라진다.
9. 그 사건이 원본의 형태보다 복제된 상태에서 사회적으로 더 큰 중요성을 띨 때, 원본은 복제를 닮아가고, 사건은 그것의 복제의 매트릭스가 되지 않을 수 없다.
10. 지배적인 세계체험이 그런 대량 복제에 가까워질 때, (우리가 “세계”라는 말로써, 그 안에 우리가 들어가 사는 그것을 의미하는 한) “세계”의 개념은 폐기된다. 세계는 사라지고, 방송을 통해 생성된 인간의 태도는 “관념론적”으로 된다. (S.111)

이제까지의 얘기를 귄터 안더스는 이렇게 요약한다. 현대의 호러비전이다. 이 사태의 끔찍함을 히틀러는 소름끼치는 목소리로 한 문장 안에 요약한다.  

나의 표상이 너희의 세계다.
그가 꾸는 꿈이 곧 우리의 세계라고 한다. 우리를 가둔 이 거대한 매트릭스를 만들어내는 사람은 누구일까? 알 수 없다. 20년 전 기독교를 가장한 공산주의자로 보도되었던 ‘도시산업선교회’라는 단체가 있었다. 그때 시민들은 공안당국이 꾼 꿈을 현실로 알고 살아야 했다. 그때 신문과 방송에 의해 공산주의자로 매도되었던 어느 목사는 지금도 TV의 뉴스를 보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오직 연속극만 본다고 했다. 왜? “드라마는 허구라는 게 분명하니까. 현실이라고 주장하지 않으니까. 하지만 뉴스는……”

물론 오늘날 이렇게 뻔뻔한 조작은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다고 텔레비전의 속성이 변하겠는가? 오늘날에도 우리는 누군가의 표상을 세계로 알고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내가 살고 있는 이 세계는 누구의 표상일까? 나는 누구의 꿈을 살고 있는 것일까? 벤야민의 유토피아가 귄터 안더스의 디스토피아가 되었다. 누구의 말이 옳을까? 미디어가 만들어내는 세계는 유토피아일까? 아니면 디스토피아일까? 벤야민의 유토피아와 안더스의 디스토피아는 어쩌면 미디어라는 야누스의 두 얼굴인지도 모른다.

참고문헌

G nter Anders, ‘Die Welt als Phantom und Matrize’ in : Die Antiquiertheit des Menschen Bd. I, M nchen 1956
Walter Benjamin, ‘Das Kunstwerk im Zeitalter seiner technischen Reproduzierbarkei'(1936), in: Gesammelte Schriften Bd. I·2, Frankfurt a.M. 1974
Konrad Paul Liessmann, Philosophie der Modernen Kunst, Wien 1999

회화 속의 진리

“이 구두라는 도구의 밖으로 드러난 내부의 어두운 틈으로부터 들일을 하러 나선 이의 고통이 응시하고 있으며, 구두라는 도구의 실팍한 무게 가운데는 거친 바람이 부는 넓게 펼쳐진 평탄한 밭고랑을 천천히 걷는 강인함이 쌓여 있고, 구두 가죽 위에는 대지의 습기와 풍요함이 깃들여 있다 (……) 이 구두라는 도구에 스며들어 있는 것은 빵의 확보를 위한 불평 없는 근심과 다시 고난을 극복한 뒤의 말없는 기쁨과 임박한 아기의 출산에 대한 전전긍긍과 죽음의 위협 앞에서의 전율이다. 이 구두라는 도구는 대지에 속해 있으며, 촌아낙네의 세계 가운데서 보존되고 있다.”

하이덱거의 <예술작품의 기원>에 나오는 구절이다. 그런데 미술사학자 마이어 샤피로에 따르면 고호의 그림 속에 등장하는 그 구두는 농민여인의 것이 아니라 “그때쯤에는 이미 도시 사람이 되어 있었던 ‘예술가(=고호) 자신의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그 구두는 “거친 바람이 부는 넓게 펼쳐진 평탄한 밭고랑”이 아니라 파리의 몽마르트 언덕 주변을 걸어다니고 있었을 것이다. 농촌에 도시를 대립시키는 이 해석 속에는 ‘대지로의 귀속성’이라는 표현으로 상징되는 하이덱거의 농민적 파토스에 대한 샤피로의 냉정한 반감이 숨어 있음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그 농민적 이상이란 곧 “대지와 혈통의 신화”라는 나치의 정치적 이상이기도 했다. 마이어 샤피로에게 하이덱거의 고호 해석을 소개한 골트슈타인은 우연하게도(?) 나치의 탄압을 피해 미국으로 건너온 망명객이었다.

샤피로에 따르면 하이덱거는 자신의 주관적 견해를 고호의 작품 속에 집어넣어 읽은 셈이 된다. 즉 그의 고호 해석은 하이덱거 “형이상학의 주관적 투사”가 된다. 만약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고호의 그림이 우리를 구두라는 도구존재에 관한 진리 앞에 세운다는 하이덱거의 숭고한 명제는 철학사에 유례가 없을 우스운 해프닝이 되어 버릴 것이다. 과연 누가 옳을까? 저 그림 속의 구두는 누구의 것일까? 화가의 것일까? 농민의 것일까? 남자의 것일까? 여자의 것일까? 저 구두는 어디에서 온 것일까? 농촌에서 온 것일까? 아니면 도시에서 온 것일까? 그림 속의 구두 안에 들어가 있던 몸은 누구의 것이었을까? <회화 속의 진리>에서 데리다는 이 두 사람의 대립 속으로 뛰어든다.

불필요한 동일시?

사실 고호는 여러 장의 구두 그림을 그렸다. 하지만 샤피로의 말대로 그는 “마치 이 모든 구두가 동일한 진리를 말한다는 듯이” 자기가 염두에 둔 구두가 무엇인지 특정하지 않는다. 서신교환을 통해 하이덱거가 그 그림을 어느 전시회에서 보았다는 진술을 확보하고, 마이어 샤피로는 전시회 카탈록을 구해 하이덱거가 본 고호의 구두를 특정한다. 이어 하이덱거의 해석에 대한 공격의 포문을 연다. 마이어 샤피로의 비난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동일시’에 근거를 두고 있다.

(1) 고호의 작품은 현실에 존재하는 구두의 ‘복사’이다.
(2) 그 구두는 예술가 자신의 것이다.
(3) 농촌의 들판이 아니라 파리라는 대도시에 속한다.

이렇게 샤피로는 그림의 제재(=subjet)를 밝히고, 그것의 소유주를 찾아 그것을 특정 주체(=subjet)에 귀속시키고, 이어서 그것을 특정한 시공간적 좌표 속에 위치시킨다. 이 삼중의 동일시 확실성을 강조하려고 샤피로는 “명백히”, “분명히”와 같은 강한 낱말을 사용한다. 하지만 데리다가 보기에 이 중 어느 것도 확실한 것은 없다. 샤피로가 제시하는 유일한 근거는 작품 외적인 성격의 것, 즉 이 그림이 그려질 당시의 고호가 파리에 살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고호가 이 그림을 그리는 데에 굳이 특정한 구두를 모델로 삼았다고 확정할 근거는 없다.

게다가 고호의 작품 세계 전체라는 컨텍스트를 고려할 때 그 구두는 농민의 구두일 가능성이 크다. 그의 작품세계는 농민들의 삶에 대한 묘사로 가득차 있기 때문이다. 고호가 자신을 ‘농부’와 동일시했다는 것도 하이덱거의 해석을 뒷받침해준다. “내가 내 자신을 농부의 화가라고 부른다면, 그것은 실제로 그러하기 때문이다…” 이 경우 마이어 샤피로처럼 그 구두가 굳이 파리라는 대도시에 속한다고 볼 근거는 없게 된다. 게다가 샤피로 자신도 고호를 농민에 비유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반 고호는 어떤 면에서는 농부와 같다. 예술가로서 그는 노동을 한다. 그는 고집스럽게 자신의 소명으로 맡겨진 일을 해 나간다 (…) 대지와 접촉한 똑바로 선 몸의 무게…”

데리다는 샤피로가 문제가 되는 구절을 전체 맥락에서 ‘폭력적으로’ 떼어냈다고 비판한다. 하이덱거는 원래 고호의 그림을 분석하려고 한 게 아니다. “이 모든 진리는 그림에 대한 기술이나 설명을 통해 얻어진 것이 아니다.” 그저 일상적 도구의 예로써 고호의 구두를 선택했을 뿐이며, 그가 제시한 ‘농민적’ 해석은 구두라는 도구존재에 관해 내릴 수 있는 여러 해석 중에서 하나의 “부수적인 변양태”에 불과하다. 똑같은 그림을 놓고 하이덱거는 얼마든지 도시적 해석을 내릴 수도 있었다.

하이덱거에게 중요했던 것은 ‘구두라는 도구존재로 하여금 말을 하게 내버려두는 것’, 그리하여 그 그림 앞에서 우리는 구두의 도구존재에 어느 때보다 더 가까이 서게 된다는 것이다. 고호의 그림은 도구(가령 농민여인의 구두)가 진정으로 무엇인지를 열어 보여주고, 그 결과 감추어져 있던 구두라는 존재자의 존재가 드러나는 바, 이를 그리이스인들은 ‘알레테이아'(=진리, 탈은폐)라 불렀다. 샤피로는 이 점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이 모든 것을 노철학자의 주관적 ‘투사’라 비난하는 샤피로에 대해 아마 하이덱거는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만약 우리의 기술이 주관적 행위로서 모든 것을 그런 식으로 꾸며대 그 안에 집어넣었다고 보는 것은 가장 극심한 자기기만일 것이다.”

마이어 샤피로가 보기에 하이덱거의 실수는 그저 잘못된 예를 골랐다는 데에 그치지 않는다. 하이덱거는 고호의 그림에서 “개인적인 것”, “관상학적인 것”을 읽어내는 데에 실패했으며, 이것이야말로 가장 치명적인 오류라는 것이다. 이를 위해 그는 위에서 언급한 세가지 동일시에 이어서 네 번째 동일시를 도입한다. 고호 자신의 언급을 의식한 듯 “어떤 면에서 반 고호는 농부와 같다”며,

(3) 고호의 그림 속의 구두를 화가의 ‘알터에고'(alter ego)로 해석한다.

말하자면 고호의 그림 속의 구두를, 자신을 농민으로 여겼던 화가의 ‘자의식’을 표현하는 일종의 초상으로 읽는 것이다. 이로써 그는 결국 모든 것을 화가의 ‘자의식으로, 하나의 주체성으로 소급’시킨다. 여기서 고호가 자기 몸에서 떼어내어 벗어놓은 저 한 쌍의 구두는 마치 고호의 몸에서 잘려나간 두 귀와 같은 존재가 된다. 그것은 “낡은 사물로서의 예술가의 초상(a portrait of the artist as old thing)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바로 이것이야말로 하이덱거가 형이상학의 시대의 병적 징후로 읽으며 문제삼으려 했던 것이다. 즉 주체성 속에서 확실성의 토대를 보장하려 했던 데카르트 이후의 근대적 형이상학을 무너뜨리는 것, 그것이 바로 하이덱거가 새로운 진리개념으로써 하려고 했던 작업이며, 그 기획의 하나가 바로 <예술작품의 근원>이었다. 이렇게 볼 때 샤피로는 외려 하이덱거보다 문제의식의 수준이 뒤떨어져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하이덱거의 논리가 ‘예술의 형이상학적 힘’이라는 의심쩍은 개념 위에 세워져 있다고 말하나, 데리다가 보기에 형이상학적 전제를 더 분명하고 더 결정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오히려 샤피로 쪽이다.

“불필요한 해석주의”?

샤피로의 해석은 철저하게 근대적 형이상학의 틀 내에 머물고 있다. 작품을 현실의 대상의 ‘모방’으로 바라보고, 그 대상을 주체로 귀속시키고, 나아가 작가의 자의식의 표현으로 바라보는 것. 이것이 바로 철저하게 근대적 주체철학이라는 형이상학적 에피스테메 위에 서 있는 근대미학의 특징이다. 우리는 앞에서 하이덱거가 어떻게 이 근대미학의 개념틀을 해체하는지 보았다. 샤피로가 구두의 주인을 찾아 그것을 특정한 주체성에게 귀속시키는 것을 작품해석으로 본다면, 하이덱거는 구두의 주인을 찾아주는 것이 아니라 고호의 작품 속에서 현존재(=세계 속의 인간)의 상관자로서의 도구존재의 진리를 드러내는 것, 아니 그 진리를 작동시키는 것(Ins-Werk-Setzen-der-Wahrheit)이었다. 마이어 샤피로와 하이덱거의 해석의 싸움은 결국 근대의 형이상학과 그것을 해체하려는 시도 사이의 충돌이라고 할 수 있다.

하이덱거와 샤피로 사이에 이러한 대립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데리다는 그 둘 사이에 동시에 묘한 공통성이 존재한다고 암시한다. 가령 두 사람 모두 그림 속의 구두를 ‘쌍’으로 규정한다. 일단 그 두 짝의 구두를 ‘쌍’으로 규정함으로써 해석은 그 밖의 다양한 가능성의 놀이에서 빠져 나와 일정한 방향으로 나아가게 된다. 예컨대 하이덱거의 해석은 한 쌍의 구두에서 아래로, 즉 구두 아래로 존재하는 농민의 대지로 나아가고, 샤피로의 그것은 한 쌍의 구두에서 위로, 말하자면 도시에 살면서도 자신을 농부와 동일시하며 농부와 같은 방식으로 작업을 했던 어느 화가의 얼굴로 나아간다. 샤피로는 재현(=representation)으로서의 작품의 진리를 얻기 위해 구두의 위로 거슬러 올라가 주체에 도달한다. 반면 하이덱거는 현전(=presentation)으로서의 작품의 진리를 위해 구두의 아래로 내려가 그것을 대지에 귀속시킨다. 이렇게 방향은 달라도 결국 작품이 가진 단 하나의 궁극적인 의미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두 사람의 해석은 일치한다.

여기서 이제까지 샤피로에 맞서 하이덱거를 옹호했던 데리다는 이 노철학자를 비판의 표적으로 삼는다. 샤피로와 하이덱거는 서로에게 진리를 빚지고 있다. 샤피로는 하이덱거에게 ‘현전의 진리’를 빚지고 있다. 하이덱거는 샤피로에게 ‘동일시의 진리’를 빚지고 있다. 샤피로와 하이덱거의 공통성의 오류는 예술작품의 진리를 단 한 번에 포착할 수 있다고 믿는 의미결정론에 있다. 두 사람 벗겨놓은 구두를 누군가에게 신기기 위해 풀어진 구두끈을 다시 묶는다. 구두를 주인 없이 그냥 저렇게 놔두면 안 되는가?

데리다에 따르면 예술작품의 진리는 작품 속에 현전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작품 속에 존재하면서 동시에 부재한다. 데리다의 시니피앙은 결코 현전에 도달하지 못한다. 하나의 시니피앙은 다른 것들과의 차이를 이루며 다른 시니피앙들로 연기되면서, 존재하면서 부재하는 흔적으로서 의미를 갖는다. 예술작품 역시 마찬가지다. 그리하여 예술작품의 의미, 그것의 진리성은 그것의 작품 속에 존재하면서 동시에 부재한다. 바로 여기에서 우리는 ‘은폐이자 동시에 탈은폐’라는 하이덱거의 진리개념을 본다. 실제로 데리다는 하이덱거가 말한 ‘존재론적 차이’라는 것이 자기 사유의 출발을 이룬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데리다는 하이덱거의 사상이 일종의 근원으로의 회귀열망이 아닌지, 그리고 그 열망에서 작품 속에서 벌어지는 의미의 유희, 진리의 드러남을 단 한 번의 해석으로 현전하게 만들려는 것이 아닌지 의심한다.

해석이냐 해체냐

[글쓰기와 차이]에서 데리다는 이미 씨니피앙의 소급불가능성, 말하자면 그 배후로 파고들어가는 것의 불가능성에 대해 얘기한 바 있다. (“텍스트 밖에는 아무 것도 없다.”) 만약 그렇다면 존재하는 것은 시니피앙의 놀이, 즉 그것들의 차이, 연기, 산포의 유희뿐이리라. 재현적 인식은 불가능하다. 명제, 주장, 담론은 텍스트 외부의 현실을 지시하는 게 아니다. 텍스트 외부에는 그것이 닮아야 할 원본이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하는 것은 오직 차이 속에서 의미를 연기하며, 자신의 의미를 끝없이 다른 시니피앙들에게 연기시키면서 산포되는, 그리하여 결코 현전에 도달하지 않는 텍스트들의 놀이 뿐이다.

미학의 용어로 옮기면, 예술은 더 이상 현실의 재현이 아니라는 것이다. 예술이 모방해야 할 원본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데리다가 계열성을 띤 작품들에 주목하는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하이덱거가 소개하는 고호의 구두, 마그리트의 구두, 아다미의 구두는 계열을 이루고 있다. 계열성의 예술에 대한 관심은 또한 푸코(<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들뢰즈(<감각의 논리>)에게서도 나타난다. 시뮬라크르! 예술이 모방해야 할 원본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예술작품의 진리에 대한 최종적, 결정적 해석도 있을 수 없다. 존재하는 것은 예술작품이 그때그때 발동시키는 다양한 진리의 놀이이며, 이 해석들 사이에 위계질서란 있을 수 없다. 여기에서 ‘해석학’과 ‘해체론’ 사이에 묘한 긴장관계가 발생한다.

가령 하이덱거의 전통을 이어받은 해석학은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인정하면서도 동시에 그 해석들 사이의 인식론적 우열을 가릴 기준이 존재한다고 본다. 그러나 데리다의 해체론은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만약 담론의 밖에 그 담론과 일치해야 할 어떤 외적 현실이 독립적으로 존재하며 그것이 우리 눈앞에 현전을 한다면, 특정한 해석의 참/거짓, 혹은 적절/부적절을 가릴 기준도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텍스트의 밖에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면, 해석의 기준을 찾으려는 노력은 무의미해진다. 이 경우 각 해석들 사이에는 위계질서가 아니라 통약불가능성이라는 이름의 평등성이 존재하게 된다.

하이덱거가 근대의 형이상학을 벗어나고서도 아직 훗설의 영향 하에 예술적 진리의 ‘현전'(=도구존재의 드러남)으로 되돌아간다면, 데리다는 존재와 존재자의 차이라는 하이덱거의 사상을 받아들여 그 ‘존재’의 정학을 니이체적 시각에서 ‘생성’으로 역동화한다. 데리다에게 예술작품의 진리는 단 한 번에 종국적으로 현상하지 않는다. 고호의 작품이 하이덱거를 만나 하나의 진리를 열어주듯이, 또 다른 사람들을 만나 그와는 또 다른 진리들을 열어줄 수가 있다는 것이다.

데리다는 하이덱거처럼 하나의 근원적 진리로 회귀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가 주목하는 것은 니이체가 말하는 관점주의(Perspktivismus), 즉 하나의 예술작품이 열어주는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들이다. 말하자면 해석자와의 만남 속에서 새로이 세계를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들을 생성해내는 예술작품의 끊임없는 미적 창조력, 바로 거기에 예술작품의 진리가 놓여있다는 것이다. 그에게 예술작품은 ‘해석학적 대상’이 아니라 ‘개념화될 수 없는 것의 보존'(W.Welsch)이다.

subjectile, projetile

독일의 미학자 볼프강 벨쉬는 데리다(나아가 탈근대의 사상가들)의 사유와 엥포르멜 회화 사이의 유사성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앵포르멜은 5,60년대에 프랑스에서 일어난 예술운동이다. 외부세계의 재현을 거부하면서 동시에 차가운 추상을 거부한다는 점에서 미국의 액션페인팅과 같은 추상표현주의와 비슷하나, 액션페인팅이 그림을 그리는 것의 행위성에 주목한다면 앵포르멜은 그것이 남긴 ‘물질적 흔적’을 강조한다. 가령 하르퉁, 마티외, 술라주 같은 사람의 작품 속에서 “텍스추어”(=회화적 구조)는 그 어떤 지시물을 갖지 않고 오직 자기 자신만을 지시할 뿐이다. 이와 유사하게 데리다의 시니피앙은 시니피에를 가리키지 않고 또 다른 시니피앙을 가리킬 뿐이다.

데리다에게 의미작용을 일으키는 것은 시니피에라는 ‘관념’이 아니라 시니피앙이라는 기호매체의 물질성이다. 앵포르멜의 화가들에게 중요한 것은 재현의 projetile이 아니라 질감의 subjectile이었다. 가령 글자인지 문양인지 분간할 수 없는 앙리 미쇼의 특이한 칼리그램 속에서 우리는 의미의 projetile이 마티에르의 subjectile로 돌아가려는 엔트로피의 운동을 볼 수가 있다. 앵포르멜의 화가들은 흔적, 자욱, 산포, 의미의 연기 등을 강조한다. 이들의 작품 속에서 우리는 기호작용에 관한 데리다의 사상의 그림을 본다.

책의 세계, 세계의 책

i
“빛이 있으라.”
(창세기 1:3)

왜 그랬을까? <숭고론>의 저자 위(僞) 롱기누스는 이 문장을 숭고한 문체의 전범으로 꼽았다. 헬레니즘 문명에 속하는 저자가 왜 하필 머나먼 오리엔트 헤브라이즘 경전 속의 구절을 숭고의 탁월한 예로 선택한 것일까? 게다가 그 문장은 아무런 수식도, 그 어떤 미사여구도 없이 달랑 주어와 동사, 두 낱말로 이루어져 있지 않은가. 거기 어느 구석에 숭고함이 깃들일 여지가 있단 말인가? 2년 전 <숭고론>을 읽다 이 물음을 갖게 된 이후 오랫동안 이 문제를 놓고 머릿속으로 씨름을 해 왔다. 그러다가 최근에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그리고 이제 그 대답을 얻은 것 같다.

아마 ‘있다’라는 동사가 명령법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일 게다. 우리말과 달리 서구에서 존재를 표시하는 동사가 명령형으로 쓰이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가령 ‘여기에 있으라’고 하고 싶을 때, 그들은 ‘있다’ 대신에 ‘머물다’, ‘기다리다’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명령은 곧 ‘너’에게 내리는 것이므로 명령법에서는 보통 주어가 생략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 문장을 보라. 거기에는 주어가 들어 있다. 그것도 2인칭이 아니라 3인칭의 형태로. 기이하지 않은가? 그러고 보니, 보면 볼수록 기이한 문장이다. 일상적 언어규칙의 밖에 존재하는 문장이다.

“있으라.” 여기서 ‘있다’라는 동사는 이미 존재하는 사물이 3차원 공간 속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나타내는 데에 사용되고 있지 않다. 아직 존재하지 않았던 사물을 3차원의 좌표 속에 처음으로 들여놓기 위해 사용되고 있다. 하이덱거라면 이를 아마도 ‘존재자와 존재의 차이’라고 했을 게다. 호모 파브르가 제 아무리 제작의 명인을 자처해도, 무(無)에서 유(有)를 만들어낼 수는 없다. 그것은 인간의 제작능력의 한계를 벗어나는 일이다. 그리고 우리 언어의 문법 역시 바로 그 한계에 사로잡혀 있다. 그래서 저 문장은 인간의 언어규칙 밖으로 나가지 않을 수 없었으리라. 바로 그 때문에 숭고한 것이 아닐까?

“있으라.” 어느 민족의 신화도 유태의 신화만큼 급진적이지 못하다. 가령 그리스 신화에서는 땅과 하늘이 이미 있고 그 안에 신들이 산다. 하지만 유태의 신은 세계 밖에 있고 땅과 하늘을 비로소 “있”게 만든다. 그의 창조는 creatio ex nihilo, 즉 무(無)로부터의 창조다. 그가 세계를 창조하는 광경을 머리 속에 그려 보라. 그것은 이미지를 떠올리는 우리 표상능력을 배반한다. 왜? 그러려면 존재의 영점, 아직 시간이 없었던 시점(?), 아직 공간이 없었던 지점(?)으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상상이 되는가? 유태 신화의 이 가공할 형이상학적 스케일. 그 앞에서 헬레니즘의 저자 역시 ‘숭고’의 감정을 느껴야 했을 게다.

ii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요한복음 1:1-3)

신은 말씀으로 세계를 지었다. 세계는 신의 말씀으로 된 거대한 책이고, 그 속에 존재하는 사물들은 신의 어휘다. 천지창조는 거대한 세계의 책을 쓰는 작업이었을 게다. 신은 먼저 어둠 속에서 붉을 켠다. “빛이 있으라.” (창 1:3) 이어 하늘과 땅과 물을 갈라 책을 펼친다. “물 가운데 궁창이 있어 물과 물로 나뉘게 하리라…”(1:6) 이 코발트 빛 종이 위에 신은 마침내 해와 달과 별, 꽃과 나무와 숲, 물고기와 들짐승과 날짐승을 적어 넣으신다. “물들은 생물로 번성케 하라, 땅 위 하늘의 궁창에는 새가 날으라 (….)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되 육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종류대로 내라.”(1:20,24)

이것으로 끝인가? 아니다. 그 책을 읽고 이해하고 경탄해줄 독자가 필요하다. 그리하여 신은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1:27)하시고, 그에게 책 읽는 법부터 가르치신다.  

여호와 하나님이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어떻게 이름을 짓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이르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일컫는 바가 곧 그 이름이라. (2:19)

엄마가 아기에게 그림책을 보여주고 이름이 뭐냐고 묻듯이 신은 손가락으로 자기가 써넣은 어휘들을 하나 하나 짚어나간다. 그러면 최초의 독자는 하나씩, 하나씩 또박또박 그 이름을 말함으로써 신을 기쁘게 한다.

천사들은 천국을 우러러보거나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필요가 없다. 그 이유는 천사들이야말로 늘 하나님의 얼굴을 바라보며 시간의 단절 없이 하나님의 영원불변의 의지를 읽기 때문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의지를 읽고, 그것을 선택하고, 그것을 사랑한다. 그들은 항상 읽고 있고, 그들이 읽는 책은 결코 끝이 없다. 그들이 읽는 책은 절대로 덮이는 법이 없으며, 두루마리는 절대로 되감기는 일이 없을 것이다. 하나님이야말로 그들의 책이고 영원이기 때문이다. (아우구스티누스)

인간이 세계 속에서 거대한 성경책을 읽어야 했다면, 천사들은 성경을 읽을 필요가 없었다. 그들은 신(神)의 얼굴을 책으로 읽었기 때문이다.  

iii
저자의 지혜와 섬세함을 그토록 정황하게 나타내는 글자들, 그렇게 아름답고 정교하게 만들어졌으면서도 서로 분명하게 구분되는 글자들 (…) 우주의 피조물을 통해서, 마치 살아있는 글자들을 통해서처럼 우리는 조물주의 위대하심을 읽도록 우주라는 경이로운 책 앞에 놓였도다. (후라이 루이스 데 그라나다 <신앙상징입문서>)

이렇게 우주와 자연을 거대한 책으로 보는 생각은 원래 카톨릭 교회의 수사법에서 시작하여 중세 초기의 신비주의 철학자들로 이어졌다가, 그 후에 마침내 보편적인 것이 되었다고 한다. 알랑 드 릴르라는 시인은 “이 지상의 모든 피조물은 그림이나 책과 같다”고 했다. 12세기의 후고라는 사람은 세계를 “신의 손가락에 의해 씌어진 책과 같은 것”으로 보았다.

눈에 뵈는 모든 사물들이 분명하게 우리에게 상징적으로 말할 때, 즉 비유적으로 해석될 때, 그것들은 눈에 뵈지 않는 의미와 말을 가리킬 수 있다.” (후고 <천상의 위계>, II)

눈에 뵈는 사물을 통해 눈에 뵈지 않는 의미를 나타내는 것. 이를 ‘알레고리’라 부른다.  가령 흰색, 붉은 색, 녹색은 ‘자비’, 검은 색과 노란 색은 ‘속죄’와 ‘슬픔’, 흰 색은 빛과 영원, 장미는 처녀성, 타조는 정의, 비둘기는 성령, 물고기는 그리스도…. 이 목록에는 원칙적으로 끝이 없었다.

움베르토 에코에 따르면 ‘세계를 알레고리로 읽는다’는 것은 곧 ‘세계를 성서처럼 해석한다’는 뜻이었다고 한다. 말하자면 그들은 세계를 연구하기 위해 책을 쓴 것이 아니라 성서를 입증하기 위해 세계를 읽었던 것이다. 세계를 읽으면 읽을 수록 알레고리의 체계는 날로 복잡해져만 갔다. 하지만 그것이 모든 이의 마음에 들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이 알레고리의 연구들은 할 일 없는 사람들이나 하는 짓이다. 여러분은 내가 아무 피조물에 대해서나 알레고리의 유희를 해대지 못하리라 생각하는가? 알레고리를 못할 만큼 재치 없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루터 )

교회의 권위가 땅에 떨어져 갈 때쯤, 유명한 종교 개혁가는 이렇게 짜증을 냈다. 종교개혁은 세계를 알레고리의 책으로 보는 스콜라 수사학의 개혁이기도 했던 것이다. 하지만 알레고리에 대한 루터의 저주에도 불구하고 ‘세계의 책’이라는 은유는 사라지지 않았다.

iv
하나님이 인간을 위해 창조하신 것이 숨겨져 있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어떤 사물을 숨겨놓으면서 어느 것에나 특별한 형식의 외적이며 가시적인 기호를 새겨놓으셨다. 마치 보물단지를 묻어놓은 사람이 다시 찾을 수 있도록 매립장소에 표시를 해놓는 것처럼. (파라켈수스 [물성론 9서])

중세의 신학자들이 ‘세계=책’이라고 했을 때, 그때의 ‘책’은 ‘성서’를 가리켰다. 유태의 랍비들에게 모세 5경에 담긴 진리를 모두 풀어쓰려면 온 바다의 물을 잉크로 쓴다 하더라도 모자랐다. 마찬가지로 중세의 서구인들에게 성경 속에는 세상의 모든 사물과 모든 사건에 대한 진리가 들어 있었다. 하지만 르네상스 시대에 들어오면 이와는 다른 새로운 독해법이 등장한다. 물론 이 시기에도 세계는 여전히 ‘책’이었다. 하지만 그 ‘책’은 더 이상 성경이 아니었다. 이 시절에도 세계 속의 사물은 여전히 글자처럼 그 의미를 읽을 수 있는 기호였다. 하지만 그 사물이 가진 의미는 더 이상 성경 속의 인물이나 사물이 아니었다. 세계를 신이 쓰신 텍스트로 보는 수사법은 여전히 남아 있었지만, 중요한 것은 더 이상 세계를 성경과 대응시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어떤 사물을 숨기면서 새겨놓으신 “외적이며 가시적인 기호”를 통해 그 사물의 비가시적 속성을 읽는 것이었다.

인간의 오성의 비밀스런 운동이 그의 음성에 의해 현시되는 것처럼, 풀도 자기의 외징을 통해 호기심 많은 의사에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때 풀은 (…) 자연의 침묵의 베일 속에 감추어진 자기의 내적 덕성을 드러내 준다. (크롤리우스 [징조론])

“이야기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 시기에 자연은 아직 언어적 본질을 갖고 있어 여전히 인간에게 말을 걸었다. 그리고 그 말을 통해 보이지 않는 자기의 내적 속성을 의사들에게 살짝 귀뜸해 주었다. 여기에서 풀의 외징, 즉 가시적 특성은 풀의 내적 성분, 즉 그것의 보이지 않는 성질의 기호가 된다. 말하자면 그들은 풀의 모양에서 그것의 약효를 읽었던 것이다. 중세에는 세계 속의 사물이나 사건을 성서 속의 사물과 사건으로 읽는 상징적 독해가 강조되었다면, 르네상스부터는 이렇게 사물들 사이의 인과적 연관, 발생적 연관을 찾아 읽는 경향이 강화된다. 중세의 알레고리적 독해 대신에 별들은 모든 초목들의 모태이다. 창공에 빛나는 하나 하나의 별들은 모두 어떤 한 식물의 영적인 모형이다. 별은 그런 식으로 그 식물을 표상한다. 각각의 풀 내지는 초목들이 하늘을 쳐다보는 지상의 별인 것처럼, 각각의 별들은 오직 질료에서만 지상의 초목들과 구별되는 영적인 형상을 지닌 천상의 초목이다. 이 천상의 초목들은 지상을 향하여 자기들이 산출한 지상의 초목들을 내려다 보면서 그들에게 어떤 특수한 덕목(=속성)을 불어넣는다. (크롤리우스 [징조론])

이렇게 사물들 사이의 유사성에 기초해 한 사물을 다른 사물의 기호로 읽는 은유적 독해나, 생장작용 면에서 볼 때 식물이 야수에 가까이 있듯이 인간은 야수에 가까이 있다. 하지만 인간은 지성이 있기에 별들에 가깝다. 이런 연쇄고리들은 엄격히 진행되기 때문에, 그것들은 마치 제1원인으로부터 가장 낮고 가장 미세한 사물들에게까지 늘어져 있는 하나의 밧줄 모양으로 나타난다.

사물들 사이의 인접성에 기초한 환유적 독해가 들어선다.  
손의 엄지손가락과 같은 위치에 날개와 비례하여 달려 있는 날개 깃. 우리의 손가락들과 같은 날개 깃의 맨 끝 부분….
이렇게 유비로 읽는 독해법이 있는가 하면  식물들이 서로 간에 증오감을 갖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 올리브와 포도나무는 양배추를 싫어하며, 오이는 올리브로부터 도망간다고 한다.

사물들 사이에 공감과 반감을 보는 독해법도 있었다. 16세기에는 이렇게 모방, 인접, 유비, 공감/반감에 따라 자연을 읽었다. 푸코가 전하는 얘기다. 그 시절 빛을 보는 두 눈은 해와 달, 사랑의 키스를 전하는 입은 비너스(=금성), 코는 쥬피터(=목성)의 지팡이였고, 수사슴의 머리에는 나무가, 인간의 얼굴에서는 풀이 자랐고, 하늘에 일곱 개의 혹성이 있기에 인간의 얼굴에도 일곱 개의 구멍이 있었으며, 장례식에 사용된 장미의 냄새는 그 이력을 모르는 사람들까지 슬프게 해주었다.

‘수사슴의 머리에는 나무가 자란다.’ 우리는 여기서 ‘나무’가 사슴뿔의 은유라고 본다. 하지만 르네상스 시대의 사람들은 거기서 문학적 ‘은유’ 이상의 것을 보았다. 지금 보면 터무니없는 얘기에 불과하나 여기에도 지적 진보는 있었다. 중세의 자연신학이 자연물 속에서 상징적 의미를 읽었다면, 르네상스의 자연철학은 그보다는 과학적(?)이었다. 르네상스의 책(=자연) 속의 모든 것은 다른 모든 것을 가리키는 기호였다. 그것들은 다른 모든 것과 모방, 인접, 유비, 공감의 원리로 서로 연관을 맺고 있었다. 따라서 르네상스의 책읽기, 즉 자연 독해에는 적어도 사물들 사이의 발생적, 인과적 연관을 추적하려는 의지가 들어 있었다. 파라켈수스나 야콥 뵈메의 자연철학과 기호론이 점성술, 약학, 연금술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음을 생각해 보라. 르네상스적 책읽기는 점성술, 약학, 연금술이 현대의 천문학, 의학, 화학의 탄생에 기여할 만큼의 과학성을 갖고 있었다.

세계를 책으로 보는 은유는 이 시대에 의미변화를 겪게 된다. 세계는 여전히 사물로 된 기호로 가득 찬 책이었으되, 더 이상 성경책은 아니었다. 그 책은 여전히 신이 쓰신 책이었으되, 더 이상 신학적 텍스트는 아니었다. 자연은 성서가 아닌 뭔가 다른 책이었다. 바로 이 때부터 ‘세계=책’이라는 은유는 인간의 이성이 신학의 감시에서 벗어난 자연탐구를 가능케 해주는 근거로 소용된다. 진리는 오직 성경에만 들어 있는 것이 아니다. 진리는 신이 쓰신 또 다른 책 속에 들어 있다. 그 다른 책이란 바로 자연이다. 여기에서 서서히 진리의 근원은 성경에서 자연으로 바뀌어 간다.

v
인간 정신은 본래 자기가 실제로 보는 것보다 과장되게 사물의 질서와 사물의 상등성을 가정하기 쉽다. 자연 속에는 서로 다른 많은 사물들이 있는 데 반해, 정신은 존재하지도 않는 유사한 사물들과 일치하는 사물들과 서로 관계 있는 사물들을 상정한다. (베이컨 [신기관])

두 사물의 유사성을 그것들의 동일성의 증거로 읽는 독해는 얼마나 강력하고 끈질긴 버릇이었던가. 베이컨은 이를 ‘우상’이라 불렀다. ‘유사하다’는 것을 ‘동일하다’는 증거로 읽었던 은유적 독해는 점차 차가운 이성의 공격을 받기 시작한다. 고전주의적 이성은 엄격한 목소리로 외형적 유사성이 두 사물의 동일성을 의미하는 건 아니라고 단언한다. 사슴의 뿔은 사슴의 머리에 자라는 ‘나무’가 아니다. 수염은 얼굴에 자라는 ‘풀’이 아니다. 얼굴의 일곱 구멍은 인간의 안면에 박힌 ‘천공'(天空)이 아니다.

우리는 흔히 두 사물 사이에 몇 가지 유사성을 발견할 때, 현실적으로는 그 양자가 서로 다른 경우에도 그 둘 가운데 하나에만 옳은 것을 양자 모두에게 적용시키는 습관이 이 있다. (데카르트 [정신 계도의 규칙])

푸코에 따르면 세르반테스의 <동키호테>는 “르네상스적 세계에 대한 부정”이었다고 한다. 그 책에서는 “동일성과 차이라는 잔혹한 이성이 기호와 유사성을 쉴 새 없이 비웃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17세기부터 르네상스의 독해는 동키호테처럼 사정없이 비웃음을 당한다. 유사성은 더 이상 지식의 원천이 아니라 오류의 근원이다. 르네상스의 은유적 독해 대신 이제 동일성과 차이를 가르는 잔혹한 이성적 독해법이 등장한다. 도처에서 유사와 유사의 기호만 보고 ‘차이’를 보지 못하는 동키호테들은 이제 ‘광인’의 취급을 받게 된다. 베이컨에게는 아직 ‘종족의 우상’, 즉 인간의 보편적 습성이었던 것이 어느덧 소수 광인의 습성으로 여겨지게 된 것이다.

언어는 더 이상 세계의 형상들 가운에 하나도 아니요, 태초 이래로 사물에 각인된 외징도 아니다 (푸코 [말과 사물])

예전에는 말을 못하는 사물들도 인간에게 말을 걸었다. 외징을 통해 자기의 내적 본질을 귀뜸해주었다. 하지만 이제 사물들은 의미를 잃고 영원히 침묵하게 된다. 중세처럼 상징적인 의미든, 르네상스의 은유적인 의미든, 사물은 이제 일체의 의미를 잃고 글자 그대로 사물이 되어 버린다. 사물은 더 이상 의미를 가지고 인간에게 말을 건네는 주체가 아니다. 이성의 차가운 손은 이들을 한갓 계량의 대상으로 만들어 버린다.

그렇다면 세계는 여전히 책인가? ‘세계=책’이라는 것도 실은 한갓 은유에 불과하지 않은가. 게다가 은유는 더 이상 지식의 원천이 아니라 오류의 근원이 아닌가. 세계는 책이 아니다. 책은 세계가 아니다. 세계가 책이라 믿는 것은 종족의 우상이요 광인들의 버릇이다. 그렇다면 ‘세계의 책’이라는 은유는 이제 완전히 사라진 것인가? 그렇지 않다. 르네상스의 자연철학이 근대의 자연과학으로 대체가 되었어도 ‘세계=책’이라는 은유는 여전히 살아남았다. 가령 케플러와 갈릴레이에게 이 세계는 여전히 거대한 책이었다. 다만 과거처럼 낱말이 아니라 숫자로 쓰여졌다는 차이가 있었을 뿐이다. 이들에게 세계는 거대한 수학 책이었다.

이들의 책 속에 사물은 추상적인 숫자가 되었다. 사람들은 더 이상 사물의 본질을 묻지 않는다. 그저 그것의 크기와 양과 속도를 잴 뿐이다. 세계 속의 사물은 더 이상 신의 어휘가 아니다. 그것은 사물의 본질을 보여주지 않는다. 다만 추상적 기호일 뿐이다. 자연은 언어적 본질을 잃었고, 과거처럼 인간에게 말을 걸어 자신의 내적 본질을 알려주기를 그쳤다. 인간은 더 이상 자연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그를 대화의 상대로, 또 다른 주체로 보지 않고, 한갓 죽은 대상으로 간주할 뿐이다.

vi
그리하여 또 다른 형태의 침묵이 시작된다. 이를 우리는 자연의 가슴 아픈 애도라 부르자. 이는 형이상학적 진리다. 자연에 말을 부여한다면, 모든 자연은 소리 높여 탄식을 하리라 (…) 초목이 바스락 소리를 내기만 해도, 거기에서 한탄의 소리가 들린다. 말을 잃었기에 자연은 탄식한다. 자연의 슬픔은 그녀를 침묵하게 만든다. 그 모든 애도 속에서 자연은 말이 없으려고 한다. (발터 벤야민 [인간의 언어와 언어 일반에 관하여])

벤야민은 다시 자연에 말을 돌려주려고 한다. 어린 시절 우리는 자연과 대화를 할 능력을 갖고 있었다. 어린아이들을 보라. 꽃과 나무와 벌레와 말을 주고받는다. 어린아이들은 선생님과 장사꾼 뿐 아니라 기차와 풍차를 연기하기도 한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사물의 언어를 듣는 이 미메시스 능력을 잃어버렸다. 신은 세상을 말씀으로 만들었다. 세상의 모든 사물들은 신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다. 아담의 언어는 따로 배울 필요가 없었다. 사물의 언어적 본질을 그림처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그 말의 청각적 영상 속에 사물의 본질이 시각적 영상으로 담겨 있었다. 이렇게 사물의 본질을 그림처럼 보여주는 언어는 불가능한가?

이것은 단지 생태론적 관점에서 근대 자연과학에 밀려난 르네상스적 자연철학의 세계관의 부활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벤야민에게서 아담의 언어는 비평작업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림을 글자로 읽을 수 있듯이, 또한 글자를 그림으로 읽을 수 있다. 글자를 사물로 간주할 수 있듯이, 사물을 글자로 읽을 수 있다. 벤야민의 비평은 “결코 쓰여지지 않은 것”, 즉 사물의 언어적 본질을 텍스트로 옮겨놓으려는 시도였다. 세계는 책이 되어야 하고, 책은 사물의 본질을 보여주는 그림이어야 한다. 하지만 분열된 근대적 세계는 더 이상 변증법적 종합을 허용하지 않는다. 세계의 진리는 이제 철학적 체계로 포착되지 않는다. 그리하여 그의 텍스트 속에서 저자는 사라지고, 조각조각 분열된 현실의 파편들만이 나열될 뿐이다. 하지만 그 텍스트 조각들의 충돌 속에서, 그 단편들의 몽타주 속에서 불현듯 세계의 진리가 이미지가 되어 꽃불처럼 떠올랐다가 사라진다. 어떻게 하면 그런 책을 쓸 수 있을까?

vii
이 작업의 방법. 문학적 몽타주. 나는 말할 것이 없다. 그저 보여줄 뿐….
(벤야민, [파사주])

여기에 모은 글은 신문, 잡지 혹은 책에서 조우한 구절의 인용과 그에 대한 코멘트로 이루어졌다. 정치적, 학문적 텍스트가 어지럽게 섞여 있는 것은 당시 내 생활의 그림이다. 베를린에 있던 시절이었으므로 그때 한국의 상황에 대해 알려준 것은 어느 출판사에서 커다란 상자에 가득 담아 보내준 신문, 잡지, 책 등의 자료였다. 여기에 인용된 한글 텍스트는 대부분 그 상자에서 나왔다. 발송을 위해 무게를 줄이려고 신문, 잡지의 글은 가위로 오려낸 조각의 상태를 하고 있었다. 이렇게 조각으로 실려 온 우리 사회의 망탈리테는 나를 경악시켰다. 모든 시대는 다른 시대를 인용하기에, 한 시대를 바라보며 가끔 ‘데자뷔’의 경험을 하게 된다. 이런 글쓰기를 시작했을 당시 팩스나 상자 속에 실려온 우리 시대의 모습이 어디선가 이미 본 듯한 느낌을 주었다. 우리의 90년대는 파시즘이 대두하던 30년대의 인용이었을까?

그 글들을 여기에 다시 책으로 묶어놓은 것은 우리 사회의 망탈리테를 그리기 위함이다. 하지만 원래 그 글들은 체계적으로 우리 지성계의 지도를 작성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원래 의도는 다분히 정치적, 실천적 성격의 것, 즉 그때그때 발생하는 정치적, 사회적 아젠다에 즉각적인 코멘트로 대응을 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주제와 글감의 선택 역시 체계적 관점이라기보다는 상당 부분 상황의 결정에 내맡겨졌다. 바로 그 만큼 이 텍스트들은 우연의 산물인 셈이다. 그래서 어떤 면에서는 더 객관적이다. 우연의 산물 속에 우주의 진행이 인간의 가공을 거치지 않고 들어와 있듯이, 체계화하려는 주체의 의지가 없는 글 속에는 어쩌면 사회의 객관적 진행을 더 충실하게 보여 주는지도 모른다.

우연히 스크랩한 글 쪼가리들을 뒤적이다가 그 속에서 우리 사회를 이끌어 가는 이념의 그림이 떠오르는 것을 보았다. 우리 사회의 지배적 망탈리테가 정치적 국가주의, 경제적 자유지상주의, 문화적 보수주의의 세 축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은 이 작업을 통해 우연히 발견되었다. 그리고 소우주 속에 대우주가 반복된다고 본 르네상스의 독해법이 틀리지 않아, 마치 프랙털 구조처럼 이 거시적 이념의 좌표가 자디잔 미시적 구조들 속에 무수히 반복되며 사회의 모습을 제 형상대로 찍어낸다는 것을 나는 시각적으로 확인한 것 같다. 거시구조와 미시구조 사이의 이 유사성이 사물이 글자처럼 읽히는 존재론적 근거가 된다. 하나의 사물은 다른 사물을 거울처럼 비쳐주는 모나드, 그 때문에 ‘짝짓기’나 ‘왕따’와 같은 아이들의 하잖은 놀이 속에서도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거대한 구조가 반복되는 장엄함을 볼 수가 있다.

viii
전환이 있을 때마다 서술의 문제에 직면하는 것이 철학적 글쓰기에 고유한 특성이다.
(벤야민, [독일 비극의 근원])

벤야민은 철학자로서 아마 최초로 스타일의 문제를 의식한 사람일 게다. 현실의 문제들은 거기에 적절히 접근하기 위해 특정한 철학적 스타일을 요구한다. 여기서 ‘스타일’이란 그저 글의 바깥을 꾸미는 장식이 아니라 오로지 그것을 통해서만 드러나는 진리가 있다는 의미를 함축한다. 소크라테스가 결코 글을 쓰지 않은 것은 데리다의 말한 것처럼 글자가 인간의 기억력을 감퇴시킨다고 믿어서가 아니었을 게다. 그의 진리는 오직 장바닥의 사람들과의 대화 속에서 드러날 수 있었다. 디오게네스가 책을 쓰지 않은 것은 단지 강단철학에 대한 경멸 때문이 아니었다. 그의 진리는 오직 특유의 행위예술 속에서만 빛날 수 있었다. 이 글의 광대 스타일 역시 개인의 주관적 스타일이 아니다. 문제 자체의 요구와 필연성을 반영하는 객관적 스타일이다.

이 글의 운명은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다. 어느 시사주간지에 연재를 하던 중 “주관적 관념의 세계”라는 열화 같은 비난을 받아 도중하차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그 스타일이 사람들에게 불쾌감을 준다고도 했다. 내 글에 비난을 퍼부은 그 잡지의 독자들에게는 이 사건으로 인한 내 불쾌감이 해소될 때까지 하는 일마다 재수가 없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농담은 그것이 왜 우스운지 설명해야 하는 순간 더 이상 농담일 수 없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스타일에게 자신을 줄줄이 해명해야 할 의무를 부여하면, 그것은 더 이상 스타일일 수가 없다. 오늘날 ‘레토릭’이란 말은 한갓 경멸어로 전락했지만, 그 낱말은 원래 언어가 갖고 있던 ‘마법적’이라고 해야 할 어떤 힘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이 글들의 스타일은 그 힘의 발동조건과 관련이 있다.

ix
시모니데스에 따르면 그림은 “말없는 시”, 시는 “말하는 그림”이다. 물론 그림=시라는 이 은유의 바탕에는 화가들이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장인의 수준에서 예술가로 끌어올리기 위해 회화를 ‘자유교양’의 하나로 만들려는 의지가 깔려 있다. 가끔은 이것이 자유교양의 기득권을 누리던 시인들의 반발을 샀던 모양이다. 여기에 심기가 불편했던지 르네상스의 어느 유명한 화가는 이렇게 대꾸했다.

당신네 시인들이 그림을 말 못하는 시라고 한다면, 화가도 충분히 시를 눈 먼 그림이라 칭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 둘 중 어느 것이 더 큰 결함인가 생각해 보라. 눈이 먼 것이냐? 말을 못하는 것이냐? (레오나르도 다빈치)

여기서 문자로 된 텍스트와 이미지로 이루어진 그림은 서로 적대적으로 대립하는 듯이 보인다. 하지만 사실을 말하자면 다빈치는 여기서 시와 회화의 동등성을 말하고 있을 뿐이다. 회화도 장인의 수공업적 활동에 불과한 게 아니라 시 못지 않게 훌륭한 정신적 활동이라는 것이다. 알베르티는 “그림을 바라보면서 역사책을 읽는 것과 같은 기쁨”을 느낀다고 했다. 그것은 회화도 시 못지 않게 고상한 제재를 묘사하고, 시 못지 않게 고귀한 주제를 전달했기 때문일 게다. 실제로 오랫동안 회화는 신화, 성서, 역사 등 문자로 된 성스런 문서의 시각적 번역이었다.

내가 그림을 바라보면서 역사책을 읽는 것과 같은 기쁨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한 사람은 글로, 한 사람은 붓으로 그린다는 점에서 둘 다 화가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알베르티 [건축론])

역사가는 글로 그리고, 화가는 붓으로 그린다. 글씨로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 칼리그람을 말하는 게 아니다. 문제는 과연 ‘텍스트가 그림이 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벤야민은 텍스트를 그림으로 만들려고 했다. 그때 마침 예술은 외부 세계의 가상이기를 포기하기 시작했다. 근대라는 시대에 들어와 세계관의 총체성은 무너지고, 현실은 파편화되고, 대중은 원자화되고, 노동은 추상화되었다. 그래서일까? 회화에서는 대상성이 파괴되고, 음악에서는 조성이 무너지고, 문학에서는 의미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이런 상태에서 텍스트가 그림이 되어야 한다면, 대체 어떤 그림이 될 수 있을까? 아마 입체주의 그림처럼 캔버스에 신문 쪼가리와 같은 현실의 단편들을 오려 붙인 꼴라주가 될 것이다. 혹은 <전함 포템킨>의 오뎃사 계단 장면처럼 단편적인 이미지들의 충돌로 이루어진 몽타주일 것이다.

꼴라주 입체주의 그림이 보여주는 것이 캔버스에 접착된 세계를 쪼가리들 하나 하나가 아니라, 세계를 그렇게 바라보는 시각이다. 몽타주가 보여주는 것은 여러 개의 파편적 장면들이 아니라 그것들의 충돌 속에서 불꽃처럼 번득이다 사라지는 제3의 이미지이다. 변증법의 정과 반이 부딪혀 종합으로 상승하는 것이 새로운 억압으로 돌변할 수 있다면, 이제 진리는 비(非)종합의 형태를 취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타블로의 정적인 그림이 아니라 여러 개의 파편이 부딪혀 만들어내는 꽃불이 되어 번득여야 한다. 그리고 꽃불처럼 순간적으로 명멸하는 이 작은 이미지 속에 현실의 본질이 농축된다. 그런 세계의 본질의 그림을 매개하는 책은 어떤 형태일까? 고전적 의미의 책의 형식도 붕괴한다. 오로지 인용만으로 된 책, 그리하여 체계화하고 분류하고 분석하고 종합하는 저자의 역할이 사라진 책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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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한 권의 책이 되기 위해 존재한다 (말라르메)

정말 그럴까? 소비에트에서 기호학이 처음 시작되었을 때만 해도 세계가 언어구조를 갖고 있다는 생각은 작업가설에 불과했다. 말하자면 여러 문화현상의 분석에 언어학적 패러다임을 적용하려고 그것들을 일부러 언어로 간주했던 것이다. 기호학이 체코를 거쳐 프랑스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이 가설은 서서히 형이상학적 명제로 바뀌어 간다. 가령 구조주의자 레비 스트로스에게 미개인들의 친족 구조는 언어적으로 분절화되어 있었다. 인간을 인간으로 만들어주는 것이 언어의 사용이고, 인간의 생각 자체가 언어적으로 이루어지기에, 인간이 만들어낸 사회가 언어적 구조를 갖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리라. 게다가 자연에 질서를 부여하고, 자연의 사물을 분류하는 것도 언어를 통해서 이루어지지 않는가. 그리하여 세계는 다시 한번 언어로 쓰여진 텍스트가 된다. 정말로 세계는 한 권의 책이 되기 위해서 존재했던 것일까?  

xi
텍스트 밖에는 아무 것도 없다. (자끄 데리다)

세계가 온통 책 속으로 빨려 들어간 후 세계는 더 이상 따로 존재하기를 그친다. 세계는 기호들의 무한 연쇄 속에 사라진다. 존재하는 것은 오직 텍스트로 분산된 세계의 흔적과 자취뿐이다. 이상한 나라에서 앨리스가 본 고양이처럼 세계는 사라지고 세계의 웃음만 남는다. 이것보다 더 큰 웃음은 없다. 이것은 우주론적 규모의 웃음이다. 모든 위계를 지워버리고 원초적 평등의 강림을 알리는 라블레의 웃음이다. 세계는 한번 크게 웃고….. 사라졌다.

xii
시뮬라크르는 그릇된 복사물이 아니라는 것, 그것은 복사물의 개념 그리고 모델의 개념 자체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는 것….. (질 들뢰즈 [의미의 논리])

과거에 텍스트는 세계의 복사물이었고, 그 안에 세계의 모습을 담고 있었다. 하지만 세계가 웃음 속에 사라진 이상 저 혼자 세계의 진리를 자임하는 텍스트는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하는 것은 오직 시뮬라크르들, 즉 세계에 대한 해석들뿐이다. 앤디 워홀의 연작 속의 마릴린 먼로. 이 연작 속의 개별 작품들이 실물과 닮았는지는 문제가 안 된다. 중요한 것은 모델(실물)도 아니고, 그것을 충실히 베낀 복사물(사진)도 아니고, 다만 색 분해가 되어 단색으로 인쇄된 시뮬라크르들의 놀이다. 이 놀이가 “복사물의 개념, 그리고 모델의 개념 자체에 문제를 제기”한다. 아직도 세계가 존재한다면, 그것은 오직 자취와 흔적으로만 존재할 뿐, 세계의 총체성은 시뮬라크르 파편들 속으로 사라진다.

xiii
초월적 시니피에의 부재, 이를 놀이의 무한계, 즉 존재론 신학과 현전의 형이상학을 뒤흔드는 놀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자끄 데리다 [그라마톨로지])

초월적 시니피에는 사라졌다. 이론으로 해석되지 않은 세계, 언어로 미리 분절되지 않은 세계, 텍스트 밖에서 맨 눈으로 본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세계로 아는 것은 실은 해석된 세계, 언어로 분절된 세계, 이미 ‘문자’로 씌여진 텍스트에 불과하다. 초월적 기의는 없다. 텍스트 밖의 세계는 없다. 따라서 텍스트가 닮아야 할 원본도 없다. 초월적 시니피에의 부재는 현전의 형이상학을 뒤흔드는 놀이, 이 놀이의 무한계 속에서 진리는 존재하며 동시에 부재한다. 텍스트는 다른 텍스트를 지시하고, 그 텍스트는 또 다른 텍스트를 지시하고… 하지만 텍스트는 결코 세계에 도달하지 못한다. 이 무한소급의 놀이에서 세계는 하나의 해석 속에 잠시 모습을 드러냈다가 사라지고, 다른 해석으로 자리를 옮겨 모습을 드러냈다가 다시 사라진다. 그리고 그렇게 무한히… 이 놀이는 세계의 ‘현전’을, 원본의 시각적 그림을 허락하지 않는다. 하지만…

존재했던 것이 현재와 순간적으로 만나 하나의 별자리를 이루는 것…. (발터 벤야민 [파사주])

그것이 “변증법적 그림”이다. 벤야민에게는 아직 현전이 있다. 그림이 있다. 이 그림은 세계의 자취나 흔적이 아니라 세계의 현전이다. 방향을 잃고 밤하늘을 헤멜 때, 불현듯 까만 하늘에 어지러이 널린 별들 틈에서 불현듯 형상이 떠오른다. 마치 그 사이에 끈이라도 달린 양 몇 개의 별이 모여 별자리를 이룬다. 데리다에게 진리란 파랑, 노랑 빨강으로 색 분해 된 시뮬라크르들의 시리즈였다면, 벤야민에게 진리란 몽타주의 충돌 속에 떠오르는 이미지다. 아직 현전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은 구원이다. 해방이 역사 ‘속’에서가 아니라 역사’로부터’ 이루어지는 것처럼, 이 변증법적 그림은 밖에서 이 죽은 세계의 안으로 계시되는 구원의 약속이다.

xiv
구원적 진리의 쇠퇴와 문학 문화의 발흥… (리차드 로티)

헤겔과 비슷한 어조로 그는 서구 문화의 역사를  요약한다. 신학에서 철학으로, 거기서 문학으로. 이제까지 스케치한 책읽기의 역사를 보라. 중세인들에게 세계는 성경책, 근대인들에게는 철학책, 그리고 이제 우리에게 세계는 문학 텍스트 되었다. 오늘날 탈근대 사상가들은 미학적 글쓰기를 한다. 원본과의 일치, 대응으로서의 진리는 사라지고, 그 자리에 ‘새로움’의 미적 가치가 들어선다. 과거 예술가들이 같은 그림을 여러 장 그릴 때, 그들은 거듭되는 실패를 통해 자연에 대해 가장 이상적이며 최종적인 복사물을 얻고자 했다. 하지만 오늘날 예술가들이 같은 그림을 여러 장 그릴 때, 그것은 더 이상 이상적인 복사물을 얻기 위함이 아니다. 연작을 이루는 그림들 사이에 위계질서는 없다. 원본이 사라졌기에 위계의 기준도 없다. 그것들은 시큘라크르, 하나의 시뮬라크르가 다른 것보다 더 참된 것이 아니다. 다만 새로울 뿐이다.

데리다와 들뢰즈를 따라서 그 역시 현전의 부재, 원본의 불가지의 우울함을 새로움을 창조하는 미적 기쁨으로 바꾸어 놓는다. 세계의 완전한 그림을 얻겠다던 이상이 붕괴했으므로 철학은 이제 자연의 거울이 아닌 다른 것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문학이 되기로 한다. 하지만 그것이 과연 유일한 길일까? 그것은 혹시 칸트 류의 형식미학이 아닐까? “새로운 것은 항상 더 좋은 것”이라는 아방가르드의 이념은 실패로 끝났다. 새로운 것이 항상 더 좋으리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로티는 문학 텍스트의 미학성의 공허함에 소통의 ‘유용성’이라는 실용주의 원리를 채워 넣을 줄 안다. 하지만 새로운 것이 항상 더 유용하리라는 보장이 어디에 있는가. 예술적 아방가르드의 좌절은 철학적 아방가르드의 좌초를 예고하는 것일까?

그림은 정지상태의 변증법. 현재의 과거에 대한 관계가 순수 시간적, 연속적이라면, 과거의 현재에 대한 의미는 변증법적이다. 그것은 시간의 흐름이 아니라 그림. 도약하는…. 오직 변증법적 그림만이 진정한 그림, 우리가 그것을 만나는 곳은 언어다. 깨어남. (벤야민 [파사주])

철학은 다른 길을 갈 수도 있다. 사적 유물론은 신학과 별자리를 이룰 수가 있다. ‘현전’은 과거에 있었던 일의 본질이 현재와 관련 속에서 갑작스레 파악되는 “인식가능성의 현재”다. 과거와 현재는 연속을 이루지 않는다. 과거와 현재의 시간적 연속이 몽타주의 공간적 병존 속에 들어갈 때, 변증법적 그림이 섬광처럼 떠오르고, 이 그림은 텍스트와 세계 사이에 벌어진 무한한 거리를 유지하면서도 불현듯 “사상 자체”를 보여준다. 해방이 역사 ‘속’에서가 아니라 역사’로부터’ 이루어지는 것처럼, 변증법적 그림은 텍스트의 바깥으로부터 이 가치를 잃은 잿빛 세계 안으로 섬광처럼 계시되는 구원의 약속이다.

xv
원들은 매끈매끈 기름칠이 잘 되어 있다. 그것들은 세계를 품고 있다. (기욤 아폴리네르)

세계가 온통 책 속으로 빨려 들어간 후 책이 세계가 되었다. 우리가 보는 것은 세계의 흔적이고, 우리가 아는 것은 세계의 사실이 아니라 해석의 세계다. 진리는 사라지고, 그 자리에 해석의 다양성과 그것의 창조성에 대한 미적 경탄만 남는다. 진리가 떠나면 세계는 아름답다. 우리는 그 아름다움의 세계에 갇혀 버렸다. 하지만 아무리 아름다워도 그것은 무수한 원으로 이루어진 원형감옥일지 모른다. 여기서 탈옥을 하려면? 책 속으로 사라질 때 세계가 크게 웃었듯이, 책이 웃을 때 세계가 다시 나타난다. 광대의 놀이를 보며 폭소를 터뜨릴 때 책은 그만 세계를 다시 뱉어내고 만다. 책을 폭파하는 폭소와 함께 다시 책 밖으로. 엑스 리브리스!

그러나 마지막 원은 텅 비어 있다. 그리고 광대는 삐딱하게 지나간다. (장 타르디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