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디어”
(에르빈 파노프스키)

현시에서 재현으로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중세의 예술은 감각적 자연의 외적 재현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감각적인 아름다움의 바탕에 깔려 있는 초감각적 아름다움을 상징적으로 암시하는 것이 중세 예술의 과제였다. 그 결과 중세 장인들의 창작은 자연과의 직접적 대면을 통해서가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무엇보다도 예술가가 자기 내면의 이미지를 재료에 투사하는 과정이었다. “예술은 세 개의 차원 위에 서 있다. 예술가의 마음속에, 도구 속에, 그리고 예술로부터 형태를 얻는 재료 속에.” 라는 단테의 말은 중세의 장인들의 예술의지가 어떤 것이었는지 잘 보여준다.

이에 반해 르네상스의 문헌들은 초기부터 예술의 과제가 현실의 직접적인 모방임을 강조한다. 체니노 체니니는 자연의 습작이 회화를 이끌어주는 “가장 완벽한 지도자”라 불렀다. “산을 잘 그려서 자연적으로 보이게 하고 싶거든, 거칠고 다듬어지지 않은 커다란 바위들을 취해, 네 통찰이 허락하는 바에 따라 거기에 명암을 주라.”(체니노 체니니 <회화론>) 여기에서 회화는 모델의 사용, 즉 자연의 습작과 함께 시작하는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 그 결과 르네상스의 회화론에서는 형식적이고 객관적인 정확성, 즉 진리충실성(verisimilitude)이 강조된다.

“회화는 그것이 재현하는 사물과 최대한의 유사성을 가질 때 상찬할 만한 것이 된다. 그리고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자연의 사물을 개선하고자 하는 예술가들을 반박하기 위해서다.”

자연의 진리충실한 모방이라는 관념과 함께 자연을 극복한다는 생각도 강조되었다. 회화가 자연을 극복하는 방식에는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팬터지를 이용해, 켄타우르스나 키메라처럼 자연이 산출할 수 없는 형상들을 만들어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예술적 지성을 이용하여 현실 속에서는 결코 완전하게 실현될 수 없는 미를 가시화하는 것이다. ‘자연을 충실하게 모방하라’는 요구와 ‘자연에서 아름다움을 선택하여 자연을 극복하라’는 요구. 르네상스인들은 ‘모방자가 되라’는 요구와 ‘교정자가 되라’는 이 두 가지 요구를 대립적이라기보다는 상호 보족적인 것으로 보았다.

“진리충실한 닮음을 만들어내는 데에 그치지 않고 거기에 미를 부여해야 한다 (…) 고대의 화가 데메트리우스가 최고의 찬사를 받지 못한 것은, 그가 사물들을 마음에 들게 하기보다는 자연에 유사하게 만들려고만 했기 때문이다.”

아이디어  

신플라톤주의자 피치노는 미를 “대상과 아이디어의 명확한 일치” 혹은 “물질에 대한 신성한 이성의 승리”로 규정하고, 이를 “신의 얼굴로부터 빛의 방사”로 설명했다. 알베르티는 이런 형이상학적 견해에 반대하며 고대의 순수 현상학적 정의로 돌아가 “미란 부분들 사이의 특정한 일치와 조화”라고 말한다. 여기에서 플로티누스 이래 중세의 미론을 이루었던 요소 중의 하나, 즉 미에 대한 실질적 정의(mateial definition)는 포기된다. 따라서 초기 르네상스 시대에 신플라톤주의가 회화론에 끼친 영향은 미미했다고 할 수 있다. 신플라톤주의가 초기 르네상스 회화에 끼친 영향은 “아이디어”의 개념에서 찾을 수 있다.

피치노에 따르면 ‘아이디어’는 형이상학적 실재다. 그것은 신의 마음속에, 천사의 마음속에 실재하는 것이며, 초감각적인 선(先)존재가 인간의 영혼 속에는 흔적으로, ‘인상'(formulae)으로 존재한다.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아 거의 꺼져버린 이 불은 “교육”에 의해 다시 피어오를 수가 있다. 우리가 세계를 인식할 수 있는 것은 이 생득관념 혹은 본유관념 덕분이며, 이는 미에 대한 인식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이 관념과 가장 많이 일치하는 하는 대상은 아름다우며, 우리는 감각적 현상을 우리 내면의 생득적 인상(formulae)과 비교함으로써 양자의 일치를 확인한다.

알베르티는 자연에 대한 습작 없이 미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이 관념을 강하게 비판한다. “아무리 훈련된 정신의 소유자라도 포착하기 힘든 저 미의 관념(=아이디어)은 훈련되지 않은 정신의 품을 빠져나간다.” 이렇게 알베르티조차 신플라톤주의의 어법을 구사하고 있으나, 여기서 그는 ‘아이디어’라는 관념을 변형시켜, 그것을 신플라톤주의에 대립되는 의미로까지 확장시키고 있다. 알베르티가 보기에 미를 포착할 수 있는 정신적 능력은 오직 연습과 훈련에 의해서만 갖출 수 있는 것이었다. 이렇게 예술작품에 대한 평가의 기준을 모방의 적절성에 찾는 견해는 성기 르네상스까지 이어진다.

“아름다운 여인을 그리기 위해 나는 수많은 아름다운 여인들을 보아야 했다 (…) 하지만 아름다운 여인들의 수는 너무나 적고, 또 제대로 된 판정자 역시 별로 없기에, 나는 내 마음 속에 떠오르는 어떤 아이디어를 사용한다. 그것이 어떤 예술적 가치를 갖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떠올리려고 매우 열심히 노력한다.”

라파엘로는 자신이 어떤 ‘내면적 아이디어’를 사용하고 있다고 고백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이 아이디어에 형이상학적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냥 그의 머리에 떠오를 뿐, 그 자신은 이것이 옳은지 그른지조차 알지 못한다. 그에게 물었다면 감각적 경험의 총체가 특정한 방식으로 내면의 정신적 이미지로 전화한 것임을 부정하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만약 그렇다면 라파엘의 아이디어는 초월적 근원이 아니라 경험적 근원을 갖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알베르티에게 경험 없는 아이디어는 존재할 수 없으나, 아이디어가 경험에서 나온다고 얘기하지는 않았다. 라파엘은 사실상 아이디어에 관한 경험주의적 설명을 주고 있으나, 그것의 근원을 명확히 밝히는 데에 주저한다. 바자리는 아이디어가 경험을 전제한다고 얘기하는 수준을 넘어, 아예 아이디어가 경험에서 도출된다고 말한다. “세 예술의 아버지인 디자인은 (…) 많은 사물들로부터 일반적 판정을 도출해낸다. 자연 속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들의 형태나 관념 (….) ” 여기에서 아이디어는 더 이상 예술가의 마음 속에 선천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후천적으로 구성되는 것으로 재규정된다.

주체와 객체의 분리  

그 어떤 상위의 실재를 전제하지 않고 주체가 의식적 노력에 의해 예술적 생산의 법칙을 획득할 과제를 갖게 될 때, 언제, 그리고 어떤 근거에서 예술가가 정확한 법칙을 획득했다고 주장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제기된다. 마니에리스트들이 본격적으로 정식화하게 될 이  주체-객체의 문제가 르네상스 시대에는 아직 정식화되지 않았다. 그리하여 르네상스의 사상가들은 이 문제를 이미 해결된 것으로 간주했다. 고전주의 시대의 사상가들에게 ‘아이디어’는 객체로부터의 주체의 독립을 주장하는 근거 혹은 자연에 대한 주체의 우위를 주장하는 근거로 사용되었다. 하지만 르네상스인들에게 ‘아이디어’는 아직 정신과 자연의 타협으로 여겨졌다. 그들에게 아름다움은 분리된 부분의 외적 결합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개별적 경험을 하나의 새로운 전체로 통합하는 내적 비전에 있었다. 여기에서 주체와 객체는 자연스레 상응하는 것으로 상정된다.

르네상스 시대에 ‘아이디어’라는 개념은 이미 후에 고전주의자들에게서 나타나는 바와 같이 ‘이상’의 의미를 띠게 된다. 알베르티와 라파엘은 ‘아이디어’라는 말을 자연을 능가하는 아름다움의 정신적 이미지, 즉 ‘미적 이상’과 동의어로 사용한다. 반면 바자리는 이 말을 예술창작의 바로 전(前)단계로서 예술가의 머리 속에 떠오른 ‘관념’, 즉 ‘제재’나 ‘주제’의 의미로 사용한다. 종종 이 두 가지 상이한 어법은 서로 구별되지 않은 채 사용되기도 하나, 양자를 구별하기 위해서 종종 전자 앞에 “아름다운”과 같은 수식어를 붙이기도 한다. 논리적으로는 비교적 명확히 구별되는 이 두 개의 어법은 주체와 객체 사이에는 본질적으로 상응의 관계가 있다고 상정되는 점에서는 서로 일치한다.

한편 ‘아이디어’의 개념이 자연의 관찰과 연결되어 형이상학적 차원을 상실하면서, 서서히 오늘날 ‘천재’라 불리워지는 개념의 구성이 가능해진다. 르네상스 시대에 예술창작은 이미 주체-객체의 모순적 관계로 여겨졌으나, 아직 그들은 창작과정을 지배하는 초주체적, 초객체적인 법칙이 존재한다고 믿었다. 이런 초객체적, 초주체적인 법칙의 존재는 주어진 법칙에 따르기보다는 자기의 재능에 따라 법칙을 부여하는 천재의 개념과 모순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아이디어’의 개념이 거기에 덧붙여져 있던 객관주의적 측면, 즉 형이상학적 차원을 서서히 상실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미 르네상스 시대에 ‘천재론’으로 나아가는 근거가 마련되었다고 할 수 있다.

숭고와 시뮬라크르

-현대철학과 현대예술의 동형성에 관하여-

사물  

발터 벤야민은 복제의 등장으로 아우라가 파괴되는 것을 ‘현대'(Moderne)의 징후로 보았다. 그에게서 ‘아우라’는 “아무리 가까이 있더라도 어떤 먼 것의 나타남”이라 규정된다. 이 표현 속에 들어있는 “나타남”이라는 낱말을 우리는 ‘현전의 체험’이라는 익숙한 표현으로 번역할 수 있을 것이다. “일회성과 지속성”을 가진 원작과는 달리 기술복제의 산물들은 그저 “일시성과 반복성”만을 가질 뿐이다. 하지만 이 일시적으로 반복되는 복제물들은 단지 원작을 베끼는 데에 그치는 게 아니라 원작 자체에 존재론적 영향을 끼쳐, 현실성 혹은 현실감의 상실을 가져온다. 그것들은 “사물의 역사적 증언가치”를 위협하고, 그 결과 “위험에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은 사물의 권위이다.”

벤야민이 살던 당시에 복제기술은 단지 원작을 베끼는 수준에서 벗어나 창작과정 자체에 변화를 초래하고 있었다. 이미 드가는 창작에 사진을 활용한 바 있다. 프랜시스 베이컨과 앤디 워홀이 모델 없이 오직 복제물인 사진만으로 작업을 하기 훨씬 이전에, 예술에서는 이미 사물성의 상실이 시작되고 있었다. 가령 모네의 <루앵 성당> 연작에서 돌로 된 스콜라 철학은 그 견고한 사물성을 잃고 물에 비친 그림자처럼 흐늘거리는 여러 장의 시뮬라크르들 속으로 해체된다. 이 시뮬라크르들에 다시 견고한 사물성을 되돌려주려 한 세잔느는 사물의 마지막 구원자였는지도 모른다. 이 마지막 구원의 시도가 좌초한 지점에서 재현을 포기한 현대예술이 시작된다.

“시뮬라크르는 단순히 하나의 복사물이 아니라는 것. 그것은 복사물의 개념 그리고 모델의 개념 자체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는 것.” 들뢰즈가 플라톤을 대신하여 이렇게 말했을 때, 그는 벤야민이 말한 ‘아우라’ 혹은 ‘사물의 권위’의 상실을 염두에 두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플라톤이 우려하고 벤야민이 환호한 대로, 복사물의 존재는 그것이 복제하고 있는 원작에까지도 존재론적 영향을 끼친다. “일회성과 지속성”을 갖는 사물의 세계가 서서히 “일시성과 반복성”을 갖는 시뮬라크르의 세계로 변해가는 것, 그리하여 도처에서 “사물의 권위”가 무너지는 것이, 전통과 뿌리를 상실하고 부유하는 ‘현대’의 시대적 징후다.

이 징후가 벤야민에게는 기술의 진보로 실현된 민주주의 문화의 특징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문화보수주의자들에게 그것은 존재의 근원에서 멀어지는 몰락의 징후일 뿐이었다. 시뮬라크르는 그저 예술만의 현상도 아니고, 지각만의 문제도 아니다. 어느새 그것은 우리의 생활세계 전체를 규정하는 개념이 되었다. 실제로 자본주의적 생산은 “일회성과 지속성”을 갖는 장인적 공예를 “일시성과 반복성”을 갖는 기성품의 대량생산으로 바꾸어 놓는다. 뒤샹은 대량생산된 레디메이드를 예술에 도입함으로써 자본주의하에서 유일하게 유일물을 생산하던 예술가의 장인적 창작을 해체시켜버렸다. 그리하여 또 다시 “위험한 상태에 놓인 것은 사물의 권위다.”

기호

줄리아 크리스테바와의 대담에서 데리다는 소쉬르의 기호학이 가진 두 가지 모순되는 측면에 대해 언급한다. 한편으로 그는 기호를 ‘기표와 기의’의 결합으로 규정한다. 이때 한 기호에 의미를 주는 것은 물론 초월적 기의의 의식내적 ‘현전’일 것이다. 여기서 소쉬르는 근대의 형이상학자로 나타난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 소쉬르는 ‘기호란 그 자체로서가 아니라 오직 다른 기호와의 대립 속에서만 비로소 의미를 갖는다’고 말한다. 그게 사실이라면, 이 경우 그 기호에 의미를 주는 것은 ‘현전’이 아니라 다른 기호와의 ‘차이’일 것이다. 여기에서 근대의 형이상학자 소쉬르는 돌연 탈근대적인 차이의 철학자로 나타난다.

낱말의 의미가 ‘차이’에 있다면, 설사 ‘현전’의 체험이라는 것이 가능하다 해도, 눈앞에 ‘현전’하는 그 ‘기의’는 더 이상 ‘초월적’인 것이 아니라 ‘차이에 의해 구조화된 언어 ‘내재적’ 현상일 것이다. ‘내재적 기의’란 결국 또 하나의 기표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이 새로운 기표의 의미는 다시 또 다른 ‘내재적 기의’, 즉 또 하나의 기표에 의존한다. 기표의 밖으로의 초월의 도약은 불가능하다. 기표에 의미를 부여하는 기의가 결국 또 다른 기표에 불과하다면, ‘기표+기의’라는 기호의 정의 자체가 위험해진다. 그리하여 데리다는 지붕에 올라간 후 사다리를 치워버려야 했던 어느 철학자처럼 어느 단계에선가 ‘기호’의 개념을 버릴 것을 제안한다.

현전의 형이상학의 붕괴는 이미 현대예술에서 재현의 붕괴로 예고되었다. 회화의 이념도 시대의 에피스테메에 규정되는 것이라 15세기에서 19세기까지의 근대회화는 ‘환영주의’의 원리를 따르고 있었다. 회화는 가시적 세계의 시각적 재현이며, 그것의 진리성은 원본과의 일치에 있었다. 하지만 20세기에 들어와 회화는 외부 세계의 재현을 포기하고, 순수한 형태와 색채의 유희가 된다. 추상회화는 더 이상 사물을 재현하지 않는다. 그것은 더 이상 그 닮음을 통해 그림 밖의 대상을 지시하는 기호이기를 포기하고, 그 자체가 하나의 사물이 된다. 현대회화가 지시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오직 자기 자신뿐이다.

기호란 정의상 자기가 아닌 다른 것을 대리하는(‘stand for’) 것이다. 그러나 기호가 대리하는 것이 결국 또 다른 기호에 불과하다면, 그것은 더 이상 기호가 아닐 것이다. 기호가 아닌 기호, 자기 자신을 가리키는 기호의 예를 우리는 재현을 포기하고 대상성을 상실한 현대회화의 자기지시성(referentiality)에서 찾을 수 있다. 읽을 수 없는 문자의 모양을 한 앙리 미쇼의 작품은, 현전을 포기하고 초월을 지시하지 않는 기호, 기호 아닌 기호의 예술적 엠블렘이다. 칼리그람이 아닌 칼리그람은 말로 지시를 하지도 않으며 현전을 보여주지도 않는, 순수한 기표의 유희다. 현대회화는 기호를 흉내낸 기호, 즉 시뮬라크르다. 그리하여 오늘날 위험한 상태에 놓인 것은 기호의 권위다.

흔적

‘재현’의 에피스테메 근거한 근대의 환영주의 예술을 포기한 후 현대의 예술가들의 창작은 중세의 장인의 그것을 닮아간다. ‘아직’ 사물과 기호가 두 개의 존재질서로 나뉘어 재현관계를 맺지 않고 있었던 중세에, 장인들은 가시적 대상의 재현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창작을 무엇보다도 ‘재료의 처리’로 이해했고, 이는 ‘이미’ 근대의 환영주의를 포기한 현대예술가들의 창작원리로 부활한다. 중세의 필사본의 미니어처, 중세 성당 안의 모자이크와 스테인드글라스가 현대예술을 연상시키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 안에서는 형태와 색채가 가시적 대상과의 닮음을 창조하는 데에 복무할 필요성에서 해방되어 자유로이 유희하고 있기 때문이다. 데리다의 기표들 역시 초월을 지시할 의무에서 해방되어 자유로이 유희하는 시뮬라크르다.

볼프강 벨쉬에 따르면 데리다는 자기의 사상을 구축하는 시기에 현대의 추상예술, 특히 당시에 프랑스에서 일어난 앵포르멜 운동의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앵포르멜’이란 굳이 분류하자면 추상표현주의 계열에 속하나, 미국에서 발생한 ‘액션페인팅’과 달리 그리기의 행위성이 아니라 그 행위가 남긴 자취에 주목을 한다. 가령 물감을 칠한 인체가 지나간 흔적을 남기는 이브 클라인의 퍼포먼스를 생각해 보라. 미술은 이렇게 더 이상 가시적 대상을 ‘현전’시키지 않는다. 다만 우리 눈앞에 흔적만을 남길 뿐이다. 데리다의 사상과의 친연성은 명백하다. 데리다에게 의미란 한꺼번에 주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초월을 포기한 시뮬라크르들 무한연쇄 속에 존재하는 듯 부재하는 듯, 그렇게 ‘흔적’으로 존재할 뿐이다. 우연의 일치일까?

그 이름이 암시하듯이 앵포르멜에서는 초기 추상과는 달리 ‘형태'(form)마저 해체된다. 중세의 장인들의 창작은 ‘재료’에 기하학적 ‘형태’를 주는 것이었다. 그 바탕에는 물론 기독교적으로 재해석된 플라톤주의가 깔려있었다. 마찬가지로 재료에 기하학적 형태를 준 초기 추상화가들, 가령 몬드리안의 작품은 비록 가시적 대상의 재현을 포기했으나 재현 자체를 포기한 것은 아니다. 그의 작품은 감각의 눈으로 볼 수 없는 사물의 비가시적 본질을 재현한다는 의미에서 매우 플라톤적이다. 하지만 앵포르멜은 다르다. 그것은 ‘형태’마저 해체시킨다. 그리고 ‘마티에르’의 질감을 그대로 드러낸다. 여기서 재료는 형태로 관념화하지 않고 물질로 남는다. 데리다의 시니피앙 역시 소쉬르의 그것처럼 의식내적 현상으로 관념화하여 초월적 기의로 승화하지 않고 물질로 남는다.

상사

칼리그람은 현전의 형이상학을 위한 엠블렘이다. 칼리그람은 ‘말하기’와 ‘보여주기’를 통해 이중으로 의미를 고정시키는 데에 사용된다. 하지만 마그리트의 칼리그람은 다르다. 그것은 외려 현전을 파괴한다. 그의 작품 속에서 의미는 고정되지 않는다.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는 참인지 거짓인지 결정할 토대를 제공해 주지 않는다. 연작의 두 번 째 버전은, 그 어떤 것도 작품의 최종적 해석임을 주장하지 않는 여러 개의 시뮬라크르(“일곱개의 봉인”)로 해체된다. 여기서 의미는 고정되지 않는다. 의미의 일의적 동일시는 불가능하다.

마그리트는 유사(ressemblance)와 상사(similitude)를 분리해 내고, 후자로 하여금 전자에 반대하게 만드는 것 같다. ‘유사’에게는 주인이 있다. 근원이 되는 요소가 그것으로서, 그로부터 출발하여 연속적으로 복제가 가능하게 되는데, 그 사본들은 근원으로부터 멀어질수록 점점 약화됨으로써, 그 근원요소를 중심으로 질서가 세워지고 위계화된다. 유사하다는 것은 지시하고 분류하는 제1의 참조물을 전제로 한다. 반면 비슷한 것은 시작도 끝도 없고, 어느 방향으로도 나아갈 수 있으며, 어떤 서열에도 복종하지 않으면서, 조금씩 퍼져나가는 계열선을 따라 전개된다 (S.72)

마그리트의 작품에는 3차원 공간의 환영이 있다. 그리고 그 안의 대상들은 일러스트레이션을 연상시킬 정도로 정확한 자연주의적 묘사로 재현되어 있어, 현실의 사물을 쏙 빼닮았다.  하지만 닮음을 통해 지시를 하려고 했던 근대의 환영주의 회화에서와는 달리 마그리트에게서 유사성은 더 이상 현실의 대상을 지시하는 데에 사용되지 않는다. 그의 칼리그람에서 ‘닮음’은 현실의 대상을 지시하는 데에 늘 실패한다. 가방은 ‘하늘’이 되고, 주머니칼은 ‘새’가 되고, 나뭇잎은 탁자가 된다. 스폰지는 ‘스폰지’가 되기도 하나, 이 현전은 한갓 우연으로 나타난다.

유사는 재현에 쓰이며, 재현은 유사를 지배한다. 상사는 반복에 쓰이며, 반복은 상사의 길을 따라 달린다. 유사는 전범에 따라 정돈되면서, 또한 그 전범을 다시 이끌고 가 안정시켜야 하는 책임을 떠맡는다. 상사는 비슷한 것으로의 한없고 가역적인 관계로서의 시물라크르를 순환시킨다 (S.73)

그의 작품에 ‘닮음’이 있다면, 그것은 원본과의 유사성이 아니다. 원본이 없는 복제, 굳이 원본과의 일치를 전제하지 않는 시뮬라크르들 사이의 서로 닮음, 즉 상사일 뿐이다. 그의 그림은 원본과의 동일시를 위한 것이 아니다. 그림의 의미는 탈동일화한다. 조형 요소의 의미는 소쉬르가 말하듯이 기표와 기의의 통일, 즉 현전이 아니라, 시물라크르들이 만들어내는 ‘차이’의 놀이 속에서 다양하게 무한히 전개된다.

이 전사술 덕분에 우리는 유사에 대한 상사의 우위를 알게 되었다. 유사는 (이미) 눈에 보이는 것을 재인식하게 하지만, 상사는 알아볼 수 있는 대상, 친숙한 실루엣이 감추어 못 보게 하고 보이지 않게 하는 것을 보게 한다. 유사는 유일한, 언제나 똑같은 단언을 내포한다. ‘이것, 그것, 또 저것. 그것은 저것이다.’ 상사는 함께 춤추고 서로 의지하며 서로 겹치는 상이한 단언들을 (여러 겹으로) 배가시킨다. (S.76)

이 차이의 놀이를 통해 의미는 열려진다. 그리고 한번 열려진 의미는 이제 생산적, 창조적 역할을 발휘한다. 그것은 서로 춤추고 서로 의지하며 서로 포개짐으로써 단언의 의미를 다변화한다. 나뭇잎에는 나무가 들어 있고, 새의 형상이 들어 있다. 하늘은 비둘기 모양의 바다를 담고 있고, 맥주병은 자라나 당근이 된다. 유사성은 의미를 고정시키고, 우리의 지각을 고정시켜 ‘나뭇잎은 나뭇잎’이라는 동어반복의 진부한 진리를 말한다. 반면 상사의 놀이는 친숙한 사물의 질서가 가리는 세계의 측면을 우리에게 새로이 열어 보여준다. 유사성의 재현은 우리에게 가시적인 대상을 보여주지만, 상사성의 유희는 우리로 하여금 보게 만들어준다. 그리하여 여기에는 모종의 해방의 즐거움이 있다.

언젠가 이미지 그 자체와 그것이 달고 있는 이름이 함께 길다란 계열선을 따라 무한히 이동하는 상사에 의해 탈동일화되는 날이 올 것이다. 캠벨, 캠벨, 캠벨. (S.89)

숭고

“텍스트 밖에 아무 것도 없다”는 데리다의 명제는 기호의 밖에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다만 언어적으로 분절되지 않은 세계, 기호의 체계로 구조화되지 않은 세계, 그 어떤 형이상학으로도 해석되지 않은 세계의 체험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결국 실재론과 관념론의 안티노미라는 의식철학의 낡은 패러다임이 오늘날 언어학적 전회를 거쳐 기호학적으로 변주되고 있는 것이다. 칸트가 인식을 현상세계로 제한했듯이, 탈근대의 기호학은 유의미한 언표가 이루어지는 세계의 한계를 시뮬라크르의 현상계로 제한한다. 칸트에게 현상계 밖에 비록 언표될 수는 없으나 물 자체가 존재해야 했듯이, 시뮬라크르의 저편(dehors)에는 언표될 수 없는 그 무언가가 존재한다. 그곳은 숭고의 영역이다.

료타르는 재현을 포기한 현대회화를 “숭고의 부정적 묘사”라 부른다. 숭고의 묘사에는 간접적 방식과 직접적 방식이 있다. 숭고의 간접적 묘사의 예를 우리는 낭만주의 화가들의 자연숭고의 묘사에서 볼 수 있을 것이다. 숭고의 부정적 묘사의 예는 헤브라이의 신의 율법에서 찾을 수 있다. 야훼는 인간에게 눈에 보이는 사물의 형상을 만드는 것을 금지했듯이, 현대의 예술은 가시적 대상의 모방을 스스로 포기했다. 20세기에 들어와 회화는 재현을 포기하고, 음악은 조성을 파괴하고, 시는 의미를 포기하고, 연극은 부조리해졌다. 료타르에 따르면 이 모든 것이 실은 숭고를 드러내는 방식이라고 한다. 말하자면 이 세상에는 언어로 묘사할 수 없는 것, 그림으로 재현할 수 없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 스스로 언어적 묘사와 회화적 재현을 포기했다는 것이다.

19세기까지 회화의 이상은 ‘아름다운 가상’이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20세기의 회화는 ‘아름다움’도 포기하고, ‘가상’으로서의 성격도 포기했다. 그 결과 현대예술은 ‘숭고’의 미학을 따르게 되었다. 료타르는 그 대표적인 예로 버넷 뉴먼의 작품을 든다. 시뮬라크르는 모든 숭고한 것의 아우라를 파괴한다면, 커다라 색면의 병렬로 이루어진 뉴먼의 작품은 그와는 정반대의 체험을 매개하려 한다. “Sublime now”라는 그의 논문 제목이 암시하듯이, 그의 작품이 매개하는 것은 ‘숭고’라는 아우라의 체험이다. 그런 의미에서 앤디 워홀과 버넷 뉴먼의 작품세계는 하나의 동일한 현상의 두 측면인지도 모른다. 워홀의 시뮬라크르의 뉴먼의 숭고 속에서 반복되고 있는 것은 낡은 관념론과 실재론의 대립인지도 모른다.

현시

홉스와 데카르트는 낱말의 혼용을 막는 것을 철학의 임무로 생각했다. 의미를 고정시키려는 근대 형이상학의 강박관념은 한 낱말에 단 하나의 의미만을 대응시키려고 한 초기 비트겐슈타인의 이상언어의 기획에까지 이어진다. 하지만 오늘날의 철학을 지배하는 것은 이와는 전혀 다른 충동인 것 같다. 데리다는 고호의 <구두>에 대한 해석을 둘러싸고 마이어 샤피로와 하이덱거를 함께 비판한다. 서로 대립하는 두 사람이 모두 작품의 최종적 의미를 고정하려고 한다는 데에서는 일치한다는 것이다. 초월의 희망을 포기한 탈근대의 철학자들은 기호작용을 원본과 닮을 의무로부터 해방시키고, 그 결과 세계는 시뮬라크르의 유희가 된다. 시뮬라크르는 원본과의 닮음을 전제하지 않기에, 담론은 참, 거짓의 인식론적 기준 대신에 세계를 새롭게 바라보게 해주는 창조성이라는 미적 기준을 따라 전개된다.

오늘날 진리는 인식론적 재현(representation)이 아니라 예술적 현시(presentation)로 존재한다. 현전의 포기라는 인식론적 회의주의의 멜랑콜리가 창조의 기쁨이라는 미적 낙관주의로 전화했다. 탈근대 철학자들의 글이 문학을 닮아가는 것은 이 때문이다. 가령 푸코의 계보학적 연구는 원본적 재현(representation originaire)이라는 아르토의 잔혹극을 연상시킨다. <쾌락의 활용>에서는 윤리까지 미학화하려 한다. 데리다의 글쓰기가 문학과 철학의 경계를 넘나들고 있음은 널리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들뢰즈는 프랜시스 베이컨의 작품을 토대로 감각론을 발전시키고 있다. 로티는 “구원적 진리” 대한 신학적 열망 대신에 “문학적 문화”를 갖자고 주장한다. 볼프강 벨쉬는 아예 탈근대의 철학이 “현대예술의 정신에서 탄생”했다고 말한다. 탈근대 문화의 유미주의적 경향은 부정할 수 없을 정도로 분명한 사실이다.

또한 그것이 담론의 생산에서 창조적 포텐셜을 갖고 있는 것 역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니체적 창조의 기쁨에 들뜨기 앞서 먼저 이 모든 미적 문화의 바탕을 이루는 두 가지 현상에 대해 비판적 검토가 필요하다. 크게 두 가지가 필요할 것이다. 한편으로는 자본주의적 생산으로 날로 가속화하는 시뮬라크르화에 대한 가치평가, 다른 한편으로는 현전의 형이상학을 파괴한 해체주의의 언어철학적 정당성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 언어는 세계를 그리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가지고 세계 속에서 일을 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언어게임과 맞물려 돌아가는 실천의 차원을 배제한 언어철학은 기호학적 형이상학에 빠지게 된다. 이 실천의 차원이 프랑스의 기호학에서는 완전히 결여되어 있다. 데리다는 과연 언제 비트겐슈타인의 해체에 착수할 것인가?

참고문헌

발터 벤야민,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 in: ‘발터 벤야민의 문예이론’ (반성완 편역) 민음사 1983
자끄 데리다, <기호학과 그라마톨로지> in: ‘입장들’ (박성창 편역) 솔 출판사 1992  
           V rit  en peinture, Paris 1978
장 프랑수아 료타르, <숭엄과 아방가르드> in : ‘포스트모던의 조건’ (유정완 외) 민음사 1999        
미셸 푸코, ‘이것 파이프가 아니다’ (김현 역) 민음사 1998
        ‘성의 역사 II-쾌락의 활용’ (문경자 외) 나남 1999
질 들뢰즈, ‘감각의 논리’ (하태환 역) 민음사 1995
       , <플라톤과 시뮬라크르> in : ‘의미의 논리'(이정우 역) 한길사 1999
Wolfgang Welsch, in: ‘ sthetisches Denken’ Stuttgart 19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