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사람들이 스스로 흥분을 가라앉히고 막은 길을 피해 스스로 길을 뚫고 만들며 청와대까지 진출하는 것은 정말 놀랍고 짜릿한 일이었다. 몇일간 새벽에 경찰에 쫓기고 연행되면 다음에 모일 때 시민들은 스스로 그들을 피하거나 앞질러 목적지로 가는 길을 파악해 달렸고 물대포를 맞으면 다음날 천막을 준비했고 프락치를 적발하면 흥분하다가도 적절하게 그들을 돌려보내거나 제제하는 방법을 강구했다. 시민들 사이에 포위돼 오히려 전경들이 철수하는 상황에서도 시민들은 수고했다고 박수를 쳐 주고 물 주고 피켓으로 부채질도 해 줬다. 그래도 전경들은 물대포를 쏘고 방패로 찍고 곤봉을 휘둘렀다. 시민들은 그냥 맞고 피를 흘렸다. 그래도 이들은 발랄함을 놓지 않는다. 불법 도로 점거를 시위 진압의 이유로 삼으니까 이제는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등 놀이를 하고 있다. 닭장차를 불법 주차라면서 딱지를 붙이고 끌어내면서 견인하는 거라는 재치도 보인다. 누가 가르치거나 주도하지 않고 자발적으로 그렇게 판단하고 행동하고 있는 게 정말 신기하고 울컥하게 한다.

원본출처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915895

경찰이 막으면 돌아가면 되고~
특공대보다 힘센 비폭력 시민들

[비폭력 시위백서] 촛불문화제, 현명한 대중들에 매일 놀란다

임재성 (blueljs)

요즘 사람들은 두 가지에 놀란다. 하나는 이명박 정권의 안하무인. 10만 명이 청와대 앞까지 가서 외쳤다. 대통령 나오라고. 보수 언론사 논설위원도 TV 토론에서 이야기한다. 이쯤 되면 대통령이, 아니 최소한 책임 있는 각료가 시민들과 만나야 하는 거 아니냐고.

그런데도 정권이 기껏 내린 결정은 물대포와 소화기를 쏘아대는 것이었다. 그리고 비겁하게도 사람들이 줄어드는 새벽쯤에 특공대를 투입해 마구잡이 연행을 한다. 배후가 있다면서 정작 잡아들이는 것은 다음날 출근해야 할 시민들이다.

또 다른 하나는 바로 시위 분위기다. 어떻게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무엇 하나 논의된 것 없이 이렇게 모이고 움직이고 저항하는가다. 이러한 놀람은 나를 포함한 속칭 ‘운동권’-활동가들도 마찬가지이다. 속으로는 ‘판이 커지면 지도부가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가장 현명한 것은 대중들이라는 확신을 갖게 됐다.

비폭력 직접행동으로서의 촛불시위

30일 밤 서울 태평로 덕수궁앞 도로에서 미국산 쇠고기 전면수입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경찰과 대치하는 가운데 한 여고생이 시위 진압을 위해 대기중인 경찰 살수차(물대포)를 혼자서 가로막고 있다. ⓒ 권우성

미국산 소고기 수입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촛불집회에 대한 다양한 관찰과 분석들이 나오고 있다. 청소년들의 선도적인 행동을 두고 새로운 세대의 등장을 선언하는 분석, 문화제와 집회에 깔려있는 국가주의·애국주의에 대한 비판, 실패한 내각 구성과 광범위한 신자유주의 정책이 만든 민중의 저항이라는 평가까지.

필자는 이러한 분석에 하나를 추가해 보고자 한다. 필자는 지금의 촛불집회는 우리가 경험한 저항문화 중에서 가장 비폭력적인 직접행동에 가깝다고 느낀다. 시민들이 상식적으로 택한 비폭력은 지금 가장 급진적인 실천으로 구성되고 있다.

필자가 함께 활동하는 평화주의 운동그룹은 ‘평화캠프’라는 행사를 몇 년간 진행해 왔다. 이 캠프의 프로그램 중 하나가 ‘비폭력 직접행동 트레이닝’이었다. 2004년에는 영국의 한 활동가를 초청해서 전문적인 교육을 받기도 했는데, “사람이 아닌 건물이나 차량을 훼손하는 것이 폭력인가 아닌가”와 같은 질문에서 시작해서 어떻게 스크럼을 짜야 연행되는 시간을 늘릴 수 있는지에 대한 실제적인 트레이닝을 하기도 했다.

간디와 마틴 루터 킹의 실천 등에서 유래했고, 서구의 신사회운동에서 자주 활용되는 비폭력 직접행동의 가장 큰 원칙은 ‘수단과 목적의 일치’라 할 수 있다. 즉 달성하고자 하는 목적만큼이나 수단도 중요하며, 그렇기에 과정으로서의 비폭력과 민주주의를 강조하는 입장이다. 기존의 저항문화를, 집회방식을 어떻게 하면 보다 나은 방식으로 바꿀 수 있을까 고민했던 한국 평화운동 그룹에게는 매우 적절한 자극이었다.

그렇게 배우고 익히긴 했지만 정작 실제 한국의 저항문화 속에서 이를 활용하거나 확산시킬 기회를 갖지 못했다. 늘 아쉬워하면서도 정작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을지 난감하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개방 문제를 둘러싼 시위를 경험하면서, 이미 사람들은 비폭력 직접행동을 거리에서 실천하고 있음을 보게 되었다.

요즘 촛불집회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구호 중 하나가 ‘비폭력’이다. 폭력을 꺼리는 것만으로도 ‘투쟁의 의지’가 없으며 타협적이라고 비판받던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게다가 ‘비폭력’을 이렇게 구호로서 사람들이 광범위하게 외친 것은 전무한 일이 아닐까 한다.

몇몇 사람들이 흥분해서 전·의경에게 욕을 하거나, 땅바닥에 떨어진 작은 막대기라도 들면 그 주위의 사람들이 “비폭력, 비폭력”을 외친다. 밀고 당기면서 뺏은 방패들도 곧 돌려준다. “경찰은 우리의 적이 아닙니다, 욕하거나 때리지 맙시다”라고 어떤 사람이 외치기도 한다.

막으면 돌아가고, 기다린다… 도덕적 우위로 싸우는 비폭력

비폭력은 무저항이 아니다. 힘과 힘이 부딪칠 때는 힘이 센 쪽이 이긴다. 국가와 시민들이 힘으로 부딪칠 때에는 조직적인 폭력을 독점하고 있는 국가가 당연히 유리할 수밖에 없다.

비폭력은 이 프레임을 깨보자는 것이다. 즉, 힘이 아닌 ‘도덕적 우위’로 싸우는 것이다. 그리고 끝까지 그 도덕적 우위를 잡고 늘어진다. 그게 우리의 힘이기 때문이다. 촛불을 든 이들은 거리에서 도덕적 우위를 자신의 힘으로 삼고자 결심한 듯 했다.

막으면 돌아간다. 보통 집회 행진이 막히면 선봉대를 꾸리든, 대오 전체가 밀고 당기든 뚫고 지나가는 것이 이전까지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아주 평범하게 생각한다.

청와대로 가자. 그런데 길이 막혔다. 그럼 돌아가자.

지난 토요일 집회에선 시청에서 집회를 한 사람들이 광화문이 막혀있자 독립문을 지나 사직터널로 돌아가서 청와대 앞으로 갔다. 경찰이 급하게 길목을 막아봤지만 대오는 한 발 빠르게 다 막지 못한 틈으로 지나갔다. 굳이 싸우지 않았다.

31일 밤 서울시청앞 광장에서 열린 24차 촛불문화제를 마친 시민, 학생 수천명이 독립문으로 우회해서 사직공원을 지나 청와대를 향해 행진을 벌이고 있다. 경찰버스 바리케이트에 막히자 부모들은 어린아이를 중앙분리대를 넘겨 옮기며 행진을 계속했다. ⓒ 권우성

막으면 기다린다. 결국 최종 저지선 앞에서 막혔을 때 시간이 지나도 사람들은 해산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자발적으로 모인 사람들이라 해산을 결정할 사람도 없었다. 누군가 “해산합시다” 하면 “너나 가라”고 야유를 하기도 했다. 경찰도 “몇 시까지 해산시키면 연행하지는 않겠다”고 타협할 ‘지도부’가 없으니 답답할 노릇이었다.

밤이 늦을수록 집에 가는 사람들이 많아졌지만, 상당수의 사람들은 기다렸다. 고시를 철회하지도 재협상을 하겠다고 하지도 않는데 왜 집에 들어가느냐는 것이다. 둘러앉아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토론을 하기도 했으며 가로등 불에 책을 보는 사람도 있었다. 물론 대치하는 곳에서는 밀고 당기기가 지속됐지만 그 뒤에서 많은 이들은 차분하게 기다렸다. 예전에는 볼 수 없었던 ‘독함’과 ‘무서움’이다. 하지만 전혀 비장하지 않은 즐거운 모습으로 이들은 기다렸다.

비폭력적인 저항은 많은 시간과 기다림이 필요하다. 힘과 힘은 금방 결판이 난다. 그러나 비폭력은 다르다. 핵 기지를 봉쇄했던 외국의 예를 보면 그 기지로 핵 물질이 반입되지 못하게 며칠이고 사람들이 에워싼다. 사전에 많은 식량과 물품 등이 준비된 상태에서 진행된 것이었다. 물대포로 공격하면 준비된 우비를 꺼내 입고, 최대한 연행을 늦추기 위해서 강력하게 스크럼을 짠다. 이들은 이러한 저항을 수개월에 걸쳐서 준비한다.

그러나 우리는 자연스레 그러한 방식을 택했다. 우리 역시 청와대 앞에서 ‘불법’적으로 도로를 점거하고 기다렸다. 아무리 수만 명이 모여서 촛불을 들어도 꿈쩍도 하지 않는데 방법이 있는가. 근처 슈퍼에서 먹을 것을 사다 나르고, 밤이 돼서 추위에 떨면서도 말이다. 물대포 앞에서 우리는 준비한 우비는 없었지만 급하게 비닐을 구해서 그 아래에서 버텼다. 그렇게 “이명박 나와라”를 외친 사람들이 결국 마주한 것은 테러진압 훈련을 받았다는 경찰특공대였다.

잡아가라, 대신 때리지 마라

앞선 핵기지 봉쇄에 관한 이야기를 조금 더 하면, 이 봉쇄에서 중요했던 것은 관찰자의 역할이다. 직접 봉쇄에 참여한 이들만큼 중요한 관찰자는 현장을 기록하고 경찰을 감시하고 이후 재판에 사용될 자료를 준비하는 이들이다. 이들은 별도의 교육을 받기도 한다.

이미 우리의 촛불집회에는 수많은 관찰자가 등장해서 활동하고 있었다. 언론사의 기자들보다 이러한 관찰자들의 역할이 더욱 빛나는 지금이다. 어떤 이들은 실시간으로 현장을 생중계하기도 하며, 수많은 이들이 캠코더·카메라·휴대폰 등을 통해서 현장의 모습을 담아 인터넷을 통해 공유한다.

그렇게 공개된 경찰의 무자비한 폭력이 지금 전 국민을 들끓게 하고 있다. 새벽까지 대통령을 만나겠다고 기다린 시위대에게 시민들은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으며 다음 집회에는 꼭 참여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비폭력 직접행동의 힘이라고 할 수 있다.

집회 현장에서 외쳐지는 “평화시위 보장하라!”라는 구호에서 시민들의 자신감을 느낄 수 있다. 사람들은 평화-비폭력이라는 도덕적 우위를 활용하며 저항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연행에 있어서도 훨씬 적극적인 모습을 나타낸다.

‘닭장차투어’라는 말이 네티즌 사이에서 유행이 될 정도로 연행에 대한 태도가 달라졌다. 경찰의 불법적인 채증 앞에서 시위대들은 얼굴을 가리기 위해 마스크를 쓰기는커녕 손으로 V를 그리며 조롱한다. 그리고 외친다. 우리가 무슨 죄를 졌냐고. 연행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유치장에서 나와 경찰서를 배경으로 자랑스레 사진을 찍는다.

집시법 위반. 불법 집회. 맞다. 불법도로 점거, 맞다. 하지만 사람들은 명쾌한 논리를 찾아냈다. 그것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며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온다는 헌법이었다. 대통령이 국민의 뜻을 이렇게 무시하면 결국 헌법을 어긴 것이며 그 상황에서 시민들은 집시법을 어기는 시민불복종을 택한 것이다. 아무리 외쳐도 꿈적도 하지 않는 대통령 만나려고 맨 몸으로 거리로 나온 것이 무슨 큰 잘못이냐고 사람들은 말한다. 그리고 기꺼이 말한다. 그게 잘못이라면 잡아가라. 대신 때리지 마라. 사람을 왜 때리는가. 내가 널 때렸는가.

비폭력 직접행동을 구성하는 또 다른 축인 내부의 민주주의 역시 이번 촛불집회에서 두드러진 부분이다. 정부가 ‘배후, 배후’ 하고 노래를 불렀지만 정작 참여자들이 놀란 것은 이렇게 ‘지도부’가 없는 상황에서도 사람들이 잘 움직이며 싸우고 있다는 것이다. 자전거를 이용해서 가두행진의 앞과 뒤의 상황을 소통해주는 이들이 생겨났고 의대생을 중심으로 의료봉사단도 부지런하게 움직이고 있다. 내 관점에선 불편하긴 하지만, 예비군들의 활동도 자발적인 역할그룹이라 할 수 있다.

비폭력 직접행동의 해외 사례들을 살펴보면 활동이 준비되는 과정에서 참여하는 이들은 작은 분임을 형성해서 내부적으로 논의하는 과정을 갖게 된다. 그 과정을 통해서 전체의 계획이 결정되고 토론된다. 현재의 촛불집회는 그러한 논의의 장은 부재한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무언가를 결정할 때 즉석 토론이 이루어지고 그 과정에서 사람들은 어떤 직위나 이름으로 우위를 주장하지 않는 모습은 분명 중요한 가능성이라고 느껴진다.

비폭력이라는 도덕성을 통해 우리의 저항 이어가길

처음 촛불문화제가 행진으로 확대되었을 때 많은 언론에서 ‘변질’이나 ‘폭력’ 등의 용어를 사용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 누구도 지금은 촛불집회에 폭력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진 못하고 있다. 경찰이 불법집회라고 해산을 명령하면 사람들은 국민주권원칙과 평화집회로서 맞서고 있다. 그러한 시민들을 폭력적으로 해산시키고 끊임없이 연행해 가는 경찰과 정권은 매일매일 패배하고 있으며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니는 이 글에서 지금의 촛불집회가 한국 사회에서 등장한 여러 저항 중에서 가장 비폭력 직접행동에 근접하는 모습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러한 내 분석이 현학적인 ‘이름붙이기’가 아닌 이후 활동에 있어서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비폭력 직접행동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핵심은 힘의 우위가 아닌 도덕의 우위로서 싸우는 것이다. 어쩌면 경찰이나 정권은 상황 반전을 위해 시위자 중 일부가 폭력을 사용하는 것은 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미 시민들은 작은 폭력이라도 침소봉대되어서 탄압의 빌미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기에 지금의 비폭력은 고도의 ‘전술’이라고 할 수 있다. 비록 이 비폭력 저항의 과정이 느리고 답답해 보인다 하더라도 우리가 기댈 수 있고, 승리할 수 있는 방식은 이것뿐이라 확신한다. 그리고 이미 우리는 매일매일 승리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임재성 기자는 전쟁없는세상 활동가입니다.

2008.06.02 11:41

경찰이 막으면 돌아가면 되고~특공대보다 힘센 비폭력 시민들 – 오마이뉴스(펌)”에 대한 한 개의 댓글

  1. 비폭력은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되어줄 수 있겠지요
    관찰자의 역할에 대한 부분을 읽으며
    요새 계속 머리 속에 맴도는 생각 가운데 하나의 단초가 보이는 듯도 싶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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