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동형 홈페이지에서 펌
포드는 자기 종업원들의 사생활을 감독하고 규제하는 일단의 감독관들을 두고 있습니다. 그들은 음식, 침대, 방의 용적, 휴식 시간, 그리고 더 은밀한 문제들까지도 감독합니다. 따르지 않는 이는 누구든 해고당하고 하루 6달러라는 자기의 최저 급여를 잃게 됩니다. 포드는 이 최저 임금을 지불하지만 일할 줄 알고 일에 언제나 적합한 사람들, 달리 말해 자신의 일을 자신의 생활방식과 맞출 줄 아는 사람들을 원합니다. 우리 유럽인들은 여전히 너무나 보헤미안적입니다. 우리는 보헤미안식으로 어떤 일을 하면서도 우리가 하고 싶은 대로 살 수 있다고 생각하죠. 당연히 기계화는 우리를 억누릅니다. 나는 기계화를 정신 노동의 과학적 조직화를 포함하는 넓은 의미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리석을 정도로 낭만적이며, 부르주아적으로 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사실상 부르주아적 행태의 가장 전형적인 형태인 보헤미안 기질에 빠져듭니다. 내가 벌써 당신에게 강의를 하고 있군요.
1930년 10월 20일 투리에서 친애하는 안토니오
예를들어, 최근에 내가 가장 관심을 두었던 것들 가운데 하나는 이탈리아 지식인들의 역사입니다. 나는 이탈리아 국민의 역사적 발전을 추적하는 것과 더불어 국가의 이념에 대한 검토를 하고 있습니다. 내가 이 작업의 범위를 제한한다 해도 이 과제는 만만치 않은 것입니다. 최초로 <코스모폴리탄적>-즉 <제국적>-지식인들의 집결지를 만들어냈던 로마 제국에서 출발해서 교황 아래서의 성직자들의 조직화가 제국적 지식인의 코스모폴리타니즘에 유럽적 카스트 제도의 형태를 부여한 기독교 시대로 옮겨가야 합니다. 오직 이 방법만으로만 18세기 이후-즉 국가와 교회 간의 최초의 관할권 분쟁이 시작된 이후-에 어떻게 이탈리아 지식인들이 <국민적>이라고 불릴 수 있게 되었는지를 설명할 수 있습니다. 18세기까지 이탈리아 지식인들은 코스모폴리탄적이었고, 그들의 기능은 교회화 제국 모두의 문화에 보편적 성격을 부여하는 것이었습니다. 근본적으로 무(無)국민적이었던 그들은 기술자로서 전문가로서 다른 나라들의 조직화를 도왔습니다. 그리하여 단일한 국민의 틀 안에서 하나의 범주를 형성하거나 국민적 계급들의 이익을 해석하는 전문화된 집단이 되지 않고 그 대신 유럽의 지도자들을 위한 <관리자>의 역할을 수행했던 것입니다.
1931년 7월 3일 투리에서 안토니오
교회와 종교의 예를 들어봅시다. 교회에게 신에 대한 믿음은 모든 사람 안에서 위로의 큰 원천이자 도덕적 삶의 흔들릴 수 없는 기반을 구성해야만 하오. 그러나 교회는 이러한 흔들리지 않는 힘이나 그러한 위로의 결속력에 대한 자신감을 거의 갖고 있지 않소. 왜냐하면 교회는 충실한 신도들에게 고통받는 이들을 인위적인 수단으로 구제하는 인위적인 제도들을 만들어내도록 강요함으로써 그들이 자신들의 믿음을 의심하거나 철회하지 못하도록 만들기 때문이오. 교회는 신이 상호 이익을 위해 조직하된 인간들 전체를 표상하기 위한 은유에 불과하다는 것을 암묵적으로 인정하고 있소. 그러나 정신적 유기체로 상정되는 교회가 초자연적 존재에 대한 믿음을 꺼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인위적인 수단을 사용해야만 한다면, 속인들의 유기체들이 자신들을 지속시키기 위해 인위적인 수단들에 의지하지 않을 때 현실주의적 조직체라고 상정되는 이것이 실제의 사정이라오. 그런 유기체들 속에서 홀로 떨어져 있는 사람들은, 흔히 그렇듯이, 고통받는 이들을 돕는 것을 전문으로 하는 제도들의 일원일 때조차도 자신들에게 규정된 의무들을 방기해 버린다오.
1931년 12월 7일 투리에서 안토니오
세상에 읽어야 할 책은 많은데…